8개의 훌륭한 길 – 세번째 이야기

두카에서 벗어나는 8개의 훌륭한 길 – 세번째 이야기

지난 번에 ‘바르게 생계를 유지함’ Right Livelihood에 관해서 이야기 했었다. 이 블로그 찾아 오는 그대가 무기나 마약을 거래하거나 사람을 헤치면서 생계를 유지 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만하면 됐지 싶고 이제 다른 두 개 이야기를 해보자. 나중에 이 8개를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한 번 더 짚어보기는 하겠지만, 이 8개가 어떤 순서가 있지는 않다고 한다. 서로 상호보완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닌가 한다.

‘바르게 본다’ Right Understanding 또한 그렇게 어려운 것 같지는 않다. 이전에 말했던, 붓다께서 처음으로 주신 가르침이라는 Dukkha에 관한 4 가지 진실 – 즉 Dukkha가 있다. Dukkha의 기원이 있다. Dukkha의 사라짐이 있다. 그리고 Dukkha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 있다. 이 네가지를 잘 생각해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오케이. 붓다께서 자주 그리고 힘주어 말씀하셨던 것을 이쯤에서 나도 한 번 언급하려고 한다. ‘오직 당신 스스로가 판단하고, 또한 당신 자신이 (생각 혹은 시도를) 직접 해보고 수긍하는 가르침만을 받아들이라.’ 붓다의 가르침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가 아니고, ‘이성과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생활 철학이요 삶의 지혜’라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바르게 의도한다’ ‘바르게 지향한다’ Right Aspiration. 내가 존경하는 한 스님께서는 Right Thought 보다는 Right Aspiration 혹은 Right Intention 이 더 가까운 의미라고 하시더라. 지향이나 의도는 ‘욕망’ (desire) 과는 다르다고 한다. ‘이 생에서 나는 반드시 해탈 열반을 성취하리라’ 이런 생각이나 태도는 욕망이나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받들어 힘이 자라는데로 명상하고 또 노력을 기울이고, 카르마를 덜 만들며,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런 의도나 지향은 목마름에서 비롯된 욕망이라 보기는 어렵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당연한 듯 세상을 향해 더 많은 요구하지 않으며 사는 삶. 세상 돌아가는 이치을 밝게 보며, 좀 더 어른스럽게, 좀 더 젠틀맨으로 살기를 추구하는 삶, 그런 삶속에 바른 의도와 바른 지향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존경하는 한 스님의 말씀을 옮기며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이제 여덟개 중에서 세개를 알게 되었다.

‘Meditation is a way of de-conditioning the mind which helps us to let go of all the hard-line views and fixed ideas we have. Ordinarily, what is real is dismissed while what is not real is given all our attention. This is what ignorance (avijja) is.’
명상이란, 우리가 가진 편견들과 굳어져 버린 믿음들을, 훔켜 쥔 내 손아귀를 풀어 흘려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들은 허상 혹은 가짜 대상에 온 정신을 팔면서, 정작 참된 모습 그리고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고 또 소흘히 한다. 이것을 무지라고 한다.

8개의 훌륭한 길 – 두번째 이야기

재미교포중에서 훌륭한 항공과학자가 된 분이 있었다. 이분은 록히드마틴인가 하는 큰 회사에서 박사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사일 정밀유도장치 그런쪽의 전문가였다고 한다. 유튜브 보면 미군들이 아파치나 무슨 최신 스텔스 비행기에서, 칠흑같은 야간에 적들을 화면에서 손바닥 보듯이 보고 있다가 그런 유도미사일을 멀리서 발사해서 표적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동영상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신기해 하거나, 이유없이 속이 시원해 하거나 혹은 우리나라는 그렇게 좀 못하나 불평을 하는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지 싶은데,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역사가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흘렀었더라면, 그렇게 첨단 미사일을 발사하는 군인들이 우리의 우방이 아닐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독립국가가 아닐 수도 있으며, 또 그렇게 비명횡사하여 먼지가루로 사라지는 그 사람들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악행을 저질러 천벌을 받는 악인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잘못 타고난 죄겠지…

어쨋던 그 교포박사분이 붓다의 가르침을 알게 되어 그 ‘8개의 훌륭한 길’을 실천하며 살려고 하는데, 그중에서 Right Livelihood 라는 것이 딱 걸리는 거라. 무슨말인고 하면, 붓다께서도 예를 들면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들거나 독약을 제조하는 것등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말고, 바른 직업을 가지고 바르게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라고 하셨거든. 그런 무기도 만들어 돈을 잘 버는 회사니 연봉을 얼마나 많이 주었겠어. 그 박사분 고심하다가 그 잘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평화로운 목적으로 항공과학기술을 사용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고 한다. 물론 연봉 대폭삭감 🙂

내가 이전에 카르마의 rebirth 이야기를 했었는데, 모르고 하면 카르마가 없는데 알고 하면, 의식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했던 그 언행의 결과가 rebirth 하여 부머랭으로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고 했었다. 시차가 있고 또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일지라도. 내가 보기에 이 박사분 지혜로운 사람이고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던 것이지. 그런 rebirth를 이런쪽에서는 원천봉쇄하지 않았나. 굳이 불교의 지혜가 아니더라도, 불을 가까이 하면 데이고 칼을 가까이 하면 베이는 것은 진리고, 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항상 다른 사람들만 데이고 베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도 언젠가 어떤 형태로건 데이고 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 그사람이 만약에,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과외를 시켜서 한 사람이라도 더 젓히고 한 계단이라도 더 위로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 성공이며 또한 행복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믿는 부모였던지, 아니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 더 큰 명성 그리고 더 잘난 배우자 이런 것들에 눈이 심하게 멀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는 아마 없었었겠지.

묘수가 필요한 이유는 묘한 짓을 도모하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들면, 양립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동시에 가지려고 하거나, 상극인 것들을 한 자리에 두려고 시도하거나. 그런데 어떤 바둑 고수가 말하던데, 묘수가 필요하게 되어 설령 그 묘수를 잘 둔다고 해도 (묘수가 필요했던 그) 대국을 이기는 경우는 드물다더만. 흡사 골프를 치면서 자신의 능력을 넘는 어떤 무리한 샷을 행운이 따라서 해내고 나면, 라운드 후반에 그렇게 얻은 점수를 다시 빼앗기는 일이 흔히 벌어지는 (종종 ‘그런 짓을 다시 시도하다가’)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 골프 파트너 영감이 옛날에 이븐파 치던날을 언젠가 글로 남겼는데,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묘수가 필요한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았고, 따라서 묘기를 쓸 필요도 이유도 없었고, 다만 쳐야할 샷을 실수없이 반복해서 쳤더라’는 싱거운 이야기지.

당신도 골프 좀 치나? 그러면 알겠네. 이것 정말 싱겁나? 이것 정말 쉽나?

자가용과 청소부 그리고 담마

이 사진이 뭐냐고?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 식물원을 지나서 걸어 오면서 찍은 사진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좀 어두운데 그 길이 내가 식물원 안에서 (매우 큽니다) 특히 좋아하는 길 중의 하나다. 한 겨울에 때 이른 목련이 활짝 피어 있다. 참 흰 차가 보이나?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으니 기억하세요.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직장을 다니던 시절 나는 어떤 이유로, 밤 늦게 그리고 주말에 자주 회사에 남아서 일을 했었다. 그러면 늦은 시간에 사무실 청소하는 사람들, 주로 어떤 가족들이 (부부 그리고 때로는 어린 아이들도 함께) 사무실을 열고 들어와 청소를 하는데, 내가 뒤돌아 보면서 인사를 하고 또 내 쓰레기통을 직접 큰 봉투에 쏟아 부어 주면서 서로 좋게 대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들은 화목하고 좋은 가족이었지 싶다. 그리고 아마 낮에는 어떤 장사를 하거나 다른 직업이 있었지 싶다. 커가는 자녀들 때문에 혹은 또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좀 더 수입이 필요해서 그렇게 밤에, 소위 알바를 뛰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가끔 창밖을 내다보면 그들이 타고와 주차해 두었던 왜건 승용차가 눈에 띄었는데, 지금 기억에 아마 내가 몰던 차보다 더 좋은 차가 아니었던가 싶다 🙂

왜 승용차 몰고와서 밤에 청소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하는가 하면, 그 당시에 내 기준으로는 (그 당시 한국사람의 기준) 청소부가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상황이 좀 당황스러웠던지 아니면 좀 본능적인 레벨에서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 등장하는 그 흰차도 사실은 왼쪽 큰 목련 나무 부근에 있는 공공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 몰고 온 차거든. 걸어 다니리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자가용 몰고 다니는 청소부’라는 어떤 생각 혹은 개념은 내게 이런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소위 ‘undo’ (풀어서 되돌림) 하는 것이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오. 그것들이 잘 이루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쉽지 않겠지?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아는 많은 고승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단지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그 전체 이야기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크고 좋은 변화를 가져 올 수가 있다’고. 내가 지금 그 전체 이야기를, 오늘 아침에 내게 일어났던, 그 이야기를 이렇게 자각하고 또 그대들과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마’가 무었이라고 했던지 기억나나? The way it is. 청소부가 ‘지금 이곳에서’ 자가용 모는 것도 the way it is. 그리고 내가 아침에 보였던 반응과 그 반응을 자각하는 ‘지금의 나’ 또한 the way it is. 하지만 내가 그 다음에 죽 걸어서 출근 했던 방향이 동쪽이었던지는 모르겠어요~~~ 🙂

달마가 동쪽으로?

이곳에서는, 골프를 배우는 첫날부터 필드에서 치면서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늙은 코치 머레이도, 나와 아내에게 공을 잔디 위에 놓아 주면서 주저하지 말고 쳐보라고 했었다. 골프장에 19번째 혹은 20번째 홀처럼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한 두 군데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 코치는 나와 아내에게 또 이렇게 말했었다 ‘공을 때리려 하지 말고, 흡사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채를 스윙하여 공이 놓여진 자리를 지나가거라’. 세월이 꽤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첫날 그가 우리에게 힘주어 말했던 바로 이 한마디에 그가 오십년 골프 친 진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이 진리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습득하게 해주려고 그 이후에 노력했었지만, 우리의 능력 부족으로 대부분의 경우 별 성과 없이 끝이 나고 말았었다. 하지만 은퇴하여, 쿡아일랜드에서 매일 매일이 봄 여름임을 즐기는 그에게, 누군가가 한마디로 골프를 잘치는 법을 지금 말해보라고 하면 그는 아마 똑 같이 말할 것이다. 그가 평생을 수만 수십만 시간을 투자하고, 수천 혹은 수만 라운드를 치면서 체득한 진리를 ‘말로 표현하라’고 하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사람들은 각자의 수준과 능력대로 그가 말한 이 진리를 해석하고 또 나름대로 시도했을 것이다. 우리 내외도 그랬듯이…

그와 몇차례 연습 라운드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정신없이 내가 무슨짓을 하는지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고 후딱 지나갔었다. 하지만 드물게 내가 멀쩡한 정신이었던, 그 날 그 홀에서, 그가 드라이브 치는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가 정말로 자기가 가르친데로 스윙을 하는 것을 ‘나도’ 보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참으로 훌륭했었던 것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만약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매우 좋은 아마츄어골퍼가 되지 싶다. 그때는 몰라서 못했고 이제는 머리로 알아도 실제로 실현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한 라운드에 겨우 한 두번?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현실에서) 꾸준히 일관되게 실현할 수 있을때, 그때 참으로 아는 것이 되고, 자신의 골프가 (혹은 삶이) 한 단계 두 단계 향상되고 발전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골프를 치지 않거나 혹은 거부감이 있는 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

한 스웨덴 사람이 태국인가 어딘가 불교국가를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을, 영화속에서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했던 것을 기억한다. 자기 나라에서는 Why? How? When? 같은 생각들이나 말들이 중요하고 또 자주 쓰는 말인데, 이곳에서는 그런말들은 쓰지 않는 것이 좋고 (또 일상에서 잘 쓰지도 않고) 대신 ‘is’ 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고 또 흔히 쓰더라고. 무슨 뜻인가 하면, ‘아! 원래 이렇구나’ ‘그게 그렇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편히 잘) 살지 ‘왜 이렇게 하지?’ ‘어떻게 저렇게 하지?’ 혹은 ‘언제나 하지?’ 이런말들을 계속하면 자신도 주변도 괴롭히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는 뜻 🙂

옛날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기억나나? 그때 그 ‘달마’는 어떤 배 불룩 튀어 나온 늙은 영감 조각상 이름이 아니라, 붓다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지칭하는 ‘Dhamma’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때 우리 골프 코치 머레이는, 자기가 깨달은 ‘골프의 Dhamma’를 한마디로 ‘공을 때리려 하지 말고, 흡사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채를 스윙하여 공이 놓여진 자리를 지나가거라’ 라는 말로 표현 했었다. 2,600년전 붓다께서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Dhamma’를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수준으로 아는대로 표현하자면).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떤 조건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따라서 아무것도 영속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도 (인간의 몸과 마음도) 이것에서 예외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당신과 나는 그렇게 존재한다. This is the way it is.’

그때 늙은 코치 머레이가, 자신이 체득한 골프의 ‘담마’를 우리 내외에게 첫날 말해 주었던 이유는, 우리가 ‘어른 대 어른’으로 즉 ‘논리와 추론을 하는 존재’들로 (logic and reasoning) 만났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돈을 받았으니 무언가 쿨한 이야기를 해줘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장사에는 필요했을테지만 🙂 만일 우리 내외가 그 늙은 코치 머레이의 어린 자녀들이었다면 그는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서 골프를 가르쳐 주었을까?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모르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런 ‘담마’ 말은 하지 않았지 싶고, 다만 그를 따라서 그가 운영하는 그 골프장에서 많이 그리고 자주 골프채를 가지고 공놀이를 하면서 ‘놀게’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가끔 필요할 때에는 ‘자 이럴때는 요렇게 쳐봐’ 하면서 그냥 보여 주었을 것이다. 사랑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 보면서. 그렇게 한 몇년을 따라서 ‘놀고’ 나면, 키가 어른의 2/3밖에 안되고 근력이 어른의 반도 안되는 어린 아이들이지만 소위 싱글을 그냥 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골프라는 어떤 특정 운동 어떤 한가지 기술에 대한 이야기니, 인생 전반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서, 삶의 어떤 부족함 비어있음을 느끼게 되어 혹은 여태껏 추구해 왔던 것과는 다른 어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어 이렇게 붓다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었을때, 되돌이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미 나이를 먹어 버렸는데 어떻하니? 이미 지금 이 자리에 와 버렸는데 어쩌란 말이니? 그러면 뭐 안된다는 말이야 뭐야? 🙂

8개의 훌륭한 길 – 첫번째 이야기

두카에서 벗어나는 8개의 훌륭한 길 – 첫번째 이야기

자기를 찾아온 고객들이 꼭 송어를 잡게 해주는 낚시 가이드의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때때로 기억하는, 내게는 좋은 삶의 가르침을 준 이야기다.

송어 플라이 낚시로 유명한 그 지역에는 많은 낚시 가이드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유명한 가이드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사람이 자기가 가이드하는 모든 고객들이 송어를 잡게 하는 기적 같은 일을 해 내는 가이드이기 때문이었다. 그 비밀이 무었일까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또 궁금해 했었다. 낚시 가이드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그는 자기의 비밀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낚시를 떠나는 전날이면, 그는 다음날 낚시를 안내 할 장소에 늘 홀로 갔었다. 그리고 강가의 돌들을 뒤집어 보고 또 주변을 자세히 살피면서 지금 바로 이 장소에서 송어들이 먹이감으로 흔히 찾게 되는 것이 무었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강의 어느 부근에 많이 있는지를 미리 알아내서 왔던 것이다. 다음날 미리 알아둔 그 주변으로 고객들을 안내한 후에 그는 미리 보아둔 그 먹이감과 가장 유사한 모양의 미끼를 (가짜 미끼를 사용함) 플라이 낚시를 하는 고객들에게 사용하게 했었던 것이다.

알고 나면 별 것 아닌데, 모를때는 상상하지 못했었고, 또 많은 사람들은 알고 나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 이론의 내용이 무었인지는 잘 모르거나 아니면 오래전에 잊어버렸겠지만. 하지만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재미있고 쉬운 실례들을 (examples) 통해서 어렵지 않게 이해 할 수 있다 (물리학 수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 원리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 할 수도 있는 이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이나 휴대전화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은 잘 모르지 싶다. 나도 물론 몰랐다. 휴대전화의 경우, 상대성이론에 따라 GPS보정이 되지 않으면 단지 지도엡이나 운동엡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통화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상대성이론은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는 현실속에 부지기수로 적용된 이외에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블랙홀의 존재를 밝혀내는 데에도 기여했었다고 한다.

그 낚시 가이드의 비밀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들이 남다른 재능과 노력으로 창조해 냈던 훌륭한 것들이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잘 생각해보면, 송어떼가 그때 그 부근에서 어떤 먹이를 잘 먹는가 하는 사실 그리고 상대성이론으로 설명하는 그 현상들 자체는, 그 가이드 그리고 이인슈타인과 상관없이 늘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도 늘 존재하는 그사람들과는 별개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그 무었을 발견하고 정리하여, ‘매우 유용한 형태와 방법’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 더 좋고 더 나은 그 무었인가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던 것이 아닐까?

서구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접하고 종교로 인정하는데에 이견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그들에게 알려진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한결같이, ‘어떤 절대자’ ‘어떤 신’의 존재를 인정하였거나 혹은 그 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종교가 시작되었는데, 불교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붓다 자신도 신이 아니고, 또 붓다의 어떤 가르침에도 절대자나 신이 등장하거나 관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설하고.

내 짧은 생각에는 붓다께서도, 그 낚시 가이드나 아인슈타인처럼, 세상에 이미 존재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어떤 진리를 (진실을) 발견하고 증명하고 또 정리하여 우리들에게 알려주심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삶, 더 좋고 더 나은 삶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가이드는 송어잡이에, 아이슈타인은 과학이론에, 그리고 붓다께서는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각각 그 촛점을 맞추었던 것이 다를뿐. 그리고 내게는, 송어를 왕창 잡는 것이나 성능 좋은 핸드폰을 가지는 것 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 모두가 원하는 그 질문들에 그분에 주시는 해답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분은 그 해답을 바로 이 ‘8개의 훌륭한 길’을 통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상대성이론이, 단지 어떤 이야기거리나 혹은 물리공식으로써가 아니라, 내 삶에 (내 사업에 혹은 내 어떤 연구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또 의미가 되게 하려면, 그 결과로 알려진 몇가지의 물리학공식을 읽어 보는 수준을 넘어, 그 공식이 생기게 된 이유와 경로 그리고 그 공식의 바탕이 되는 좀 많은 내용들을 내가 알고 또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이, 붓다의 ‘행복에 이르는 공식’을 우리가 제대로 배우고 이해해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적용시켜 어떤 성과를 낼려면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보너스 잡담. 어떤 사람이 결혼하면서 아래의 조건을 (준수할 것을) 아내될 사람에게 제시하였다고 한다. 읽어보고 감동한 나도, 한장 인쇄를 해서 아내에게 조심스레 보여 주었는데, 맨 첫줄을 읽고 나더니, ‘일체의 항의 없이 즉시 집밖으로 나가라’고 하기에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요. 아직 밖에 있어서~~~

  • – 내 옷과 빨랫거리를 잘 관리하시오.
    – 세 끼 식사를 제시간에 내 방으로 가져오시오.
    – 내 침실과 서재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특히 내 책상은 나만이 사용하는 것임을 명심하시오.
    –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와의 모든 개인적인 관계를 포기하시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집에서 당신과 함께 앉아 있는 일. 당신과 함께 외출하거나 여행을 하는 일등.
    – 나에게서 어떠한 친밀한 관계도 기대하지 말며, 나를 어떤 식으로든 비난하지 마시오.
    – 내가 요구할 경우 즉각 침묵하시오.
    – 내가 요구할 경우 일체의 항의 없이 즉시 내 침실이나 서재에서 나가시오.
    – 우리 자녀들의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마시오.

그리고 또 이 사람은 죽을때, 무의미한 의료처치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I want to go when I want. It is tasteless to prolong life artificially. I have done my share, it is time to go. I will do it elegantly.” (나는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싶소. 인위적으로 억지로 살아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은 어리석소. 살만큼 살았으니 나는 품위있게 가겠소)

아인슈타인이 결혼한 후 그의 첫부인 밀레바에게 제시한 요구서, 그리고 사망시 남겼다는 말. 진짜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