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처럼 보려면 독수리의 두뇌를 가져야 한다

좋은 이야기가 자주 ‘One Strange Rock’ 도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것 같네요 🙂 몽고에서는 독수리를 훈련시켜, 말타고 거대한 평원에 데리고 나가서 여우 사냥을 하는 풍습이 오래 내려 온다고 해요. 그 도큐멘터리에도 실제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기억에 그 context는 (스토리의 주제는) ‘3킬로 떨어진 여우를 즉각적으로 볼 수 있는 독수리의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독수리의 눈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독수리의 두뇌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왜 하고 있었던가 하면, 인간만이 가진 유일하고 독창적인 능력들도 모두 인간의 발달된 ‘두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예요.

어제 니르바나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했었어요. 내가 했던 이야기에 따르면,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위 ‘불을 끄고 목마름을 없애는’ 꾸준한 과정이 필요하며 (붓다께서 가르치신 8가지 훌륭한 길을 따라서), 그 과정이 흡사 태권도처럼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지, 흑과 백의 이분법 처럼 ‘끄진 사람과 끄지지 않은 사람’ 이렇게 단순히 나눌 수가 없다고 했었어요. 불과 목마름을 줄여가는 수행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는 지당한 말이지 싶고 또 여러분도 동의하지 싶어요.

하지만 ‘불이 50% 꺼지면, 50점 짜리 니르바나를 경험한다’ 이런식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붓다와 훌륭한 제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니르바나는 오직 스스로 realise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시기 때문이예요. 이 ‘realise’라는 말에 정말 정확히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는 아마 없지 싶어요. ‘Tommy’s realised his life-long dream’ 이런식으로 사용하는데, 이 뜻은 대략 ‘토미가 평생을 꿈꾸던 그것을 (구태여 말로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혹은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이) 스스로 이루어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좀 이런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내가 왜 처음에 독수리 눈과 두뇌 이야기를 했을까요? 만약 당신에게 어떤 괴이한 기적이 일어나서 독수리의 눈과 독수리의 두뇌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독수리처럼 ‘보게’ (사실은 ‘독수리처럼 두뇌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독수리의 눈도 또 독수리의 두뇌도 없는데 말이예요? 오직 그 사람만이, 다만 그렇게 그저 체험하며 살 뿐이지 싶이요.

이야기가 조금 빗나가는데요, 니르바나가 어떤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어떤 것 혹은 어떤 상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머리 깍고 단 하루만이라도 승려로서 수행하는 것이 일반 대중으로 평생을 수행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도 했어요. 종교를 업으로 삼아, 사람들을 ‘가르치며 밥 벌어 먹고 산다’는 이들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건방떠는 것과 돈벌이 하는 것’이예요. 왜냐하면 이 두가지 만큼, 가르치려는 자가 가르칠 자격이 없는 넘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반증하는 것은 없다고 나는 확신하거든요.

우리는 이 정도만 니르바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싶어요. 우주 끝에는 뭐가 있나요? 니르바나 다음에는 어떤 상태가 있나요? 이런 질문들에는 붓다께서 결코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또한 니르바나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주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하지 않으셨고, 단지 몇 차례 간접적인 비유를 들거나, 혹은 이러저러한 것은 니르바나가 아니다 이런식으로 말씀을 하신 경우는 있다고 하는군요. 참 그리고 붓다께서 ‘(수백명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니르바나를 reslise 했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대요. 기분 좋지요 🙂

우리 모두 기억해요. 지금 우리에게는 니르바나가 흡사 독수리의 눈과 그 보는 능력처럼 다만 이야기 거리요 상상일 뿐이지만, 우리들 중에서 누군가는 언젠가 니르바나를 realise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예요. 그리고 그때, 그 사람의 학벌, 피부색, 성별 그리고 머리 카락의 길이는 결코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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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rth=스르럭뽕’ 이제 좀 이해할만 하다. 그런데 무었을 어쩌란 말이냐?

많은 대답들이 있을 것이고 또 장차 이야기 하겠지만, 지금 딱 떠오르는 대답은, ‘우리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야구공이 아니고 부머랭이다.’

그것도 보통 부머랭이 아니고, 강력 고무줄로 각자의 몸에 단단히 연결된 부머랭을, 우리 모두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함부로 마구잡이로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rebirth’를 통해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Rebirth를 통해 자신에게로 되돌아 올 줄 확실히 알면 함부로 던지겠나? Rebirth의 순리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되돌아 갈 줄 알면 아무렇게나 던지겠나? Rebirth로 부모님이 내 손에 쥐어 주신것인 줄 알면 그리고 rebirth로 장차 내 자식들 손에 쥐어 줄것인 줄 알면 아무 생각없이 던지겠나?

더 생각하고 던지겠지. 그리고 조심해서 더 잘 던질려고 노력하겠지 안그래? 그것이 다음 자동차를 고르는 일이건, 조상을 모시는 방법이건, 내 심신을 돌보는 일이건, 마음에 안드는 넘들을 상대하는 방법이건, 공부 안하는 자식을 혼내는 일이건, 내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건 그리고 하다못해 오늘 저녁거리를 장만하는 것이건 주말여행을 계획하는 것이건 간에 말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과정이 소위 말하는 ‘mindfulness=마음챙김’이지 싶은데.

One Strange Rock 도큐멘터리에 나오는 그 8명의 우주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여러번 이야기 했고 또 아마도 가장 힘주어 했던 말은 무었일까? ‘We are interrelated. Everything (on the earth) is interwoven.’ 그리고 과학자들이 밝혀 냈다면서 덧 붙이더라. ‘우리 모두는 하나에서 나왔고 다시 하나로 되돌아 간다.’ (literally=상징적인 의미가 아닌 액면 그대로).

이거 전부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은데 🙂

Perspective is everything

‘원근법’이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견해 혹은 시각이 극히 중요하다’ 라는 말이 되겠다. 어제 소개한 One Strange Rock에 나오는, 명언중의 명언이다.

견해나 시각은, 여러개 있는 중에서 (구두나 자동차처럼) 고르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지는 것일까? 당신이 만약 골프를 쳐 본적이 없고 골프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실제로 해본 것이 없다고 치자. 그러면 골프에 대해서 (골프라는 운동 자체) 당신이 견해나 시각이 있을 수 있나? 당연히 없다. 자연훼손이나 농약 그런 이야기들은 골프 ‘관련’이지 골프 ‘자체’가 아니지 않은가? 골프에 관한 견해나 시각은 골프를 치면서 생기고 또 발전하는 것이다.

붓다께서, 인간에게는 6개의 감각이 있다고 가르치셨다고 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감에 더해서 ‘마음’을 6번째 감각기관 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이 ‘마음’이 저기서 말하는 ‘perspective’와 아주 관계가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감이 받아들인 것을 뇌가 ‘마음을 통해서’ 해석하듯이, 세상만사 모든 것들과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perspective’에 따라서 내게 이해되고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이 ‘견해’ 혹은  ‘시각’이 인간을 규정하고 그의 삶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왜 perspective를 그렇게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가 하면, 내 생각에는, 첫째로 대기권 위에서 오랫동안 수없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지구 주위를 돌면서 세상을 본다), 지구의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과 디테일로 본다는 것이, 그 우주인들에게 어떤 근본적이고 의미심장한 견해 혹은 시각의 변화를, 단지 지구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전체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지고 왔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과학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너무 거대한 스케일 이거나 혹은 극히 작은 스케일의) 자연 현상들을 밝혀 내어 우리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견해 혹은 시각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에,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써, 아마 우주에서 보았던, 엄청난 규모의 연어 (salmon) 이동과 산란 그리고 죽음 (산란후 자연사). 그 집단적인 죽음 뒤에 실로 엄청난 규모의 질소 (nitrogen) 이동이 있고, 그렇게 이동된 질소가 다시 거대한 규모의 숲을 만들어 내는, 자연의 어마어마하며 또 정교한 ‘rebirth’의 과정을, NASA와 과학의 힘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무덤 위에 심은 사과나무 이야기 기억하지? 바로 그런 의미의 가르침을 붓다께서 주셨던 것이고 또 수천년 지나서 NASA와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밝혀내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Perspective is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