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두번째 이야기

해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대학은 한동안 온갖 행사등으로 왁자지껄 활기를 띠게 되요. 서양여자들이 10대 후반에 활짝 꽃 핀 모습을 실제로 많이 본 적이 없지요? 나는 이곳에 살아서 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 대학이고 또 사무실이 중앙도서관에 위치한 이유로 아주 많이 보았어요. 값싼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쳤지만 어떤 여학생들의 외향적인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넋을 잃게 하는 신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때가 많아요. Dirty old man?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많은 경우에 자연스러운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그 스케일이나 수준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압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예요.

기분이 좀 나빠졌을지도 모를 당신을 위해 덧붙이자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여성이 일생을 통해서 누리는 아름다움의 양은 어쩌면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마치 코스모스와 장미를 비교하는 것처럼, 이런 서양여성들의 아름다움은 장미처럼 활짝 피었다가 금세 시들어서, 이르면 20대 후반 혹은 30대만 되어도 급격히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아요. 유전적인 면도 있을 것이고 또 육식을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식생활과도 관계가 있지 싶네요 🙂

‘있는 그대로 이미 충분히 아름다우며 인공미를 덧붙이는 것이 그 아름다움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많은 경우에 치명적이다’ 라는 나의 생각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싶은데요. 요새는 하도 성형기술이 발달을 해서 성형을 했는지 않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만큼 자연스럽게 성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고 또 그중에는 (개인적으로는) 설득력이 있는 이유들도 있을꺼예요. 하지만 ‘미용성형천국’이라는 이 표현이 내게는 ‘참되지 않다’ 그리고 ‘속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영어표현에 ‘out of proportion’ 이라는 말이 있어요. (큰 그림에서 볼때 각각 요소들의) ‘비율이 서로 맞지 않는다’ 이렇게 번역되겠지만, 어쩌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는 우리표현에 더 잘 대응하지 싶네요. 참된 아름다움, 큰 힘등 세상의 가치있고 좋은 것들은 ‘앞뒤가 맞는’ 경우가 많지 싶네요. 내 자신만 돌이켜 보아도 ‘out of proportion’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았을때’ 여러가지 어려움과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때때로 proportion이 좀 적절해지고 앞뒤가 더 맞았을때 평안했던 것 같아요.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안중근의사 어머니의 편지’라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여러가지 조사를 통해서 이 글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께서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가 아님이 밝혀졌어요.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지어낸 이 글이, 어쩌면 안중근의사의 뜻을 더욱 기리고 그 가족의 훌륭함을 세상에 알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만들어낸 가짜가, 사람들의 입에 이리저리 오르내리다가 어느듯 신문방송에 까지도 인용되는 ‘사실’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내가 보기에는, 안의사와 안의사의 어머니를 크게 모욕하는 나쁜짓이며 사기인데요, 어쩌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뭐 어때서’ ‘안중근 의사는 위대하니까 이정도야’ 이렇게 생각하지 싶어요. 없는 것을 가짜로 만들어 있다고 속이는 것은 거짓이며 사기입니다. 만들어 내는 사람의 어리석음 욕심과 교만의 결과입니다. 그 사람도 또 그 대상도 (이런 거짓을 통하여) 결코 더 나아지거나 의미있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바로 이런 짓들을 저지르는 정신상태가, 미용성형천국의 예로 표현했던 ‘참되지 않고 속이 비어 있음’ ‘out of proportion’ ‘앞뒤가 맞지 않음’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어리석음이 지속되는 것은 첫째로는 그것이 어리석음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둘째로는 비난을 당하면 그 좋은 머리와 정력을 동원해서 극렬하게 반발하며 온갖 변명들을 찾아내기 때문이지 싶어요. 그래서 바뀌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겠지요.

이책에서 이영훈박사께서, 위안부문제와 그 전면에 나서 있는 정치단체인 ‘정대협’에 (지금은 단체 이름이 바뀌었어요) 대하여 가지는 생각에 나도 많이 공감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고 또 참되지 않고 속이 비어 있으면, 잠시 반짝할지는 모르지만, 정말 힘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참된 힘은 자연스러움 그리고 진실함에서만 비롯된다고 나는 믿습니다. 나는 이런 정치단체의 거창한 구호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업적들 보다도, 그 이면에 가려지고만 사람들의 진실된 이야기들에 더 관심이 많아요. ‘정치행위’는 일종의 ‘허구’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떤 에너지입니다. 마치 자기장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지지 않나요? 하지만 그 정치행위의 대상이 되었던, 예를 들자면 그 위안부 여성들의 삶은 허구가 아닙니다. 현실이었고 실재였지요.

한국에서 두번째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혔던 문할머니. 일흔 전후해서 돌아가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분이 친구분을 통해서 책으로 남긴 진실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 속에서 행복을 맛보기도 했었다던 그 다사다난 했던 삶이, 이분이 위안부였던 몇년 그리고 정치적인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에 좋다’고 이리저리 끄집어 내서 세상에 까발린 어떤 것들 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고 (듣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고 또 감동적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대가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일본 사람의 이름 ‘치바 도이치’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할까 해요. 그는 안중근 의사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로 있었던, 그 악명 높았다던 일본군 헌병이었어요. 정말 무서운 넘들이었겠지요.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자기들의 영웅을 (이토오 히로부미는 일본 지폐에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살해한 테러범 안중근을 다루었을까요. 상상만 하여도 몸서리쳐질 일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젊은 일본넘이 이순신장군을 암살한 후에 한국 감옥에 갖혀 있는 경우라고 하겠지요. 안중근의사는 훌륭한 어머니의 (그리고 아버지의) 교육을 받은 아주 훌륭한 인격자셨고 또 글에도 뛰어난 분이었어요. 치바 도이치는 차차 대화를 통해 (내가 감옥 안팎에 있어 봐서 좀 아는데요 -오잉?- 이야기 나눌 시간이 참 많아요. 쌍방이 할 일이 거의 없는데 뭘 하겠어요?) 인간 안중근을 존경하게 되고, 또한 서로의 입장은 다르지만 안의사가 왜 자기들의 영웅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것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안의사께서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기 때문이지만, 이 사람 치바 도이치 또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지 싶어요. 안의사께서 대략 서른 그리고 치바 도이치는 이십대 중반이었다고 하는군요.

안의사께서 사형당하던 그날, 문득 치바 도이치가 ‘글을 하나 남겨 달라’고 이전에 부탁했었던 것을 기억하시고 써 주신 것을, 장차 치바 도이치는 가보로 간직하며 매일 안의사의 명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차차 마을에도 알려져서, 마을 절에도 안의사의 영정을 모시게 되었고 또 기념석도 세웠다고 해요. 비유하자면, 이순신 장군을 암살한 어떤 일본 젊은이의 위패를 한국의 사찰에서 모시고 또 비석을 세워서 그 정신을 기린 것인데요. 이것 감동적이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되요. 바로 이런 인간의 진심과 진실이 일본의 힘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하기가 그래도 무척 어렵겠지요? 왜냐하면 ‘그깟 왜넘들’이니까요. 한쪽에서는 가짜 편지나 만들어서 반짝 ‘lip service’ 하는 동안에, 다른쪽에서는 매일 그분의 명복을 대를 이어 빌어 드리고 또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분을 기리고 있어요… 진심의 힘 그리고 진실의 힘.


치바 도이치 선생의 후손들이 한국정부에 기증하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국보로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안의사께서, 마음에 큰 괴로움을 가지게 된 그 일본 헌병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이 글귀에 담겨 있네요. 안의사께서는 참으로 크고 훌륭한 분이셨지요?

혹시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인간 삶의 진실 그리고 참된 힘은 무었일까요?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모두들 평화를 추구하며 평화롭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고의로 그렇게 되지 못하게 안팎으로 못살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것이 ‘정말 가난한 꼴’이 아니면 도대체 무었일까요?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에서 개탄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일본 대림사입구에 설치된, 안중근의사와 치바도이치선생을 기리는 추모비입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라고 씌어 있어요.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첫번째 이야기

어떤넘이 어두운 골목에서 강도짓을 목적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뒷머리를 벽돌로 내려쳤다고 하자. 그런데 맞은 사람이 격투기 선수였거나 강력계 형사였던 바람에 곧바로 반격을 당해서 강도짓을 하려던 그넘이 오히려 코뼈가 부러지고 떡실신 되어 병원에 실려갔다고 하자. 단지 위협해서 돈을 빼았으려 했던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뒷머리를 벽돌로 가격한 경우’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런데 그넘이 퇴원하고 나서 나중에 ‘폭력은 나쁘고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이렇게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면? 이야기가 조금 더 복잡해지는데, 만약에 당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그 강도의 하수인으로 골목 끝에서 망을 보던 사람이 당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였었다면, 폭력은 나쁘고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며 ‘평화’를 외치는, 그 강도넘의 자식 손주들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눈치챗지? 일본과 한국의 과거사 그리고 그것이 오늘을 사는 그대와 내게 끼치고 있는 영향을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카르마와 그 엄청난 에너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히로시마 핵폭탄이 떨어졌던 자리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늘 ‘평화’를 기리고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도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즐겨 찾는다던 이곳의 아름다운 그 식물원, 그곳 한켠에도 일본인들이 설치한 ‘평화’의 불꽃과 히로시마에서 가져온 기념석이 있다. 오래전, 아름답게 단장된 이구역에 우연히 발을 들였다가 플라그에 (설명판) 씌여진 ‘히로시마’ ‘평화’ 이런 내용을 보고서 마음에 파장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을 그래도 들어보기라도 해본 사람들이니, ‘perception은 육감의 경험에서 비롯되나, 설령 그 경험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마다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상이한 perception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내가 하는 이야기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대와 내가 ‘해탈을 증득하고 열반을 체험하는 것’이지, 어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책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강하게 표현하거나 혹은 그것을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전서울대교수 이영훈선생과 다른 다섯분의 학자들이 쓴 책이다. 그대도 혹시 들어 보았거나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영훈선생 말씀처럼, 여태껏 한국에서 이런 종류의 책이 출판된 적이 역사상 없었다. 또한 이토록 충격적으로 우리모두를 발가벗기는 책도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리고 팩트에 근거하여 직설적으로 하는 책도 없었다.

한 개인이, 해탈 열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또 괴로움을 참으며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껍질을 깨고 나와서 병아리가 되고 또 장차 훨훨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고 미룰 수도 없다. ‘이런 책을 왜 썼어요?’라는 질문에, 이영훈선생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크게 망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였다.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책을 이미 읽었거나 혹은 읽을 예정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도움이 될 좋은 인터뷰이니 한번 보길 권한다.

헬조선 진단서 1

최근 자료들에 따르면,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이 나라들을 구분할 때 대한민국은 확실하게 선진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 헬조선 하면서 이민을 고려한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흡사,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근육미 넘치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죽겠다 죽겠다 하는 꼴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런 기사들이 가끔 신문에 나는데, 나는 원본 내용들을 찾아서 자세히 살펴본지가 꽤 오래 되었다. 이번에도 그 레가툼연구소의 웹사이트를 살펴 보았는데, 이전에 다른 조사들에서 보아왔던 어떤 패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어쩌면 ‘헬조선 진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래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그 레가툼연구소의 2018년 리포트인데, 각 나라들을 경제, 안전, 자유, 환경등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순위를 매기고 그 합산으로 전체 순위를 정하는 식으로 리포트가 작성된 듯 하다. 내가 검은색으로 표시한 항목이 ‘Social Capital’ 이라는 항목인데 오른쪽에 설명이 붙어 있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간의 유대, 사회지원망, social norms 그리고 사회참여등의 역량을 측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 ‘social norms’라는 것은 ‘구성원들의 언행을 제어하는 상호간의 비공식적인 이해 혹은 약속’이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더라. 다시말해 ‘사회 구성원 다수가 볼때, 무었이 좋고 나쁜지 어떤 짓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암묵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또 서로 지키게 하는 어떤 약속 혹은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체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하는 노르웨이와 뉴질랜드가, 이 항목에서도 각각 3위 1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반해서, 한국은 78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권위 있는 조사결과를 보자.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소위 말해서 선진국 36개 나라만 속해있는 OECD회원국 간의 행복도 조사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한국도 여러 항목들에서 다른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은 물론이려니와 어떤 항목에서는 톱을 달리기도 한다. 역시 검은색으로 표시된 ‘Community’라는 항목을 주의해서 보자. 위에서 본 ‘Social Capital’과 거의 동일한 항목이다. 뉴질랜드가 거의 톱을 달리는데 반해서 한국은 그야말로 ‘빵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Social norms’가 무었이라고 했던가? ‘사회 구성원 다수가 볼때, 무었이 좋고 나쁜지 어떤 짓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암묵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또 서로 지키게 하는 어떤 약속 혹은 힘’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 ‘social norms’가 0점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 구성원 다수가 무었이 좋고 나쁜지, 어떤 짓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모르거나 동의하지 않고, 또 나아가 아무도 지키려 하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이런 사회라면 그 구성원간에 유대나 지원이 가능할까?

헬조선? 자신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 이 모두가 그들 탓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남 탓하는 그 모습이 또한 헬조선의 반증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런 ‘강대국’을 만든 한국인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존경해 마지 않는다. ‘선진국’?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