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어려움

그저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곳에서는 한번 ‘정해진대로 늘 하듯이’ 해보고 안되면 ‘안되는가보다’ 하며 지나가거나, 내버려 두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나중에 찾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젠가 듣고서 나도 상당히 공감했는데, 영국과 일본에서는 무슨 새로운 일이나 혹은 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 또 일전에 한국군 공병으로 미군 공병들과 작전을 많이 해본 분의 이야기에서, 미군 공병들은 정해진 교본에 따라서, 못 하나 나무 한쪽도 곧이 곧대로 따라서 하기 때문에, 같은 시설을 완공하는데 한국군 공병보다 시간도 더 걸리지만 정말 큰 차이는, 교본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더라는 것이 (따라서 문제 해결을 자기 윗선으로 돌린다) 기억이 난다. ‘전혀 모른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이곳에서 예전에, 많이 배우고 성공한 중국인들과 가끔 일을 같이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방식은, 위에서 묘사한 영국 일본의 회의 문화 (머리를 함께 모아서 새로운 것에 대처하자) 혹은 미국의 교본 따라하기 (자기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것을 따라서 하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절차에 따른다)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기업에서 함께 일했던 어떤 중국인 매니져가 이런 말을 내게 직접 하기도 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서구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어. 자기가 좀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저렇게 꾸물거리며 의논을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니 머리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

그때는 나도 공감했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우를 경험했던 일도 많았고 또 지금도 경험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세상의 다양한 면들을, 흡사 양파의 껍질처럼 여러 겹의 그리고 여러 수준의 진실들을 차차 보게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

그렇게 개인적으로 똑똑한 중국인들 그리고 인도인들의 역량을, 적재적소에서 잘 발휘하게 해서 결국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강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그 영국 일본 미국인들이고,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내고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절차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개인 차원에서 동일한 시간에 벽돌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데는 이 사람들이 아마 그 중국인 매니져 같은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 벽돌의 질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벽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오랜 기간에 걸쳐서 큰 건물들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짓는데는 이 사람들이 더 뛰어 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머리를 모아서 함께 계획을 하고 합의를 하고, 그 합의된 절차와 방법을 시스템을 만들어서 적용시키고 또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는 그런 능력에는, 개인의 뛰어남 보다는, 개미처럼 조직의 일부로 개인이 따르는 그런 능력이 좀 더 필요하지 싶고, 내가 만났던 그 중국인들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어떤 시스템이나 절차와 방법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따르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싶다. 이것이 모이고 쌓이고 지속되면 한 나라의 국민성 그리고 어떤 집단의 특성이 되는 것이리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얼마나 뿌리가 깊고 또 직장생활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아내와 내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느꼈고 또 지금도 느끼고 있다. 이것 자각하기도 어렵고 또 자각하더라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붓다께서 가르치신 아상과 (我相 ‘스스로가 가지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 –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실체가 없는 허구라고 한다. 중요한 가르침이다)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로 알고 나서도 자기 생각의 습관 그리고 마음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요새도 헬조선이니 하면서 이민이니 무슨 스칸디나비아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하던데, 이렇게 잘 살게 된 한국 사람들이 옛날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서 혹은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렇게 떠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 ‘자아실현’ 그리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꿈꾸는데로 그곳에 가서 살게 되더라도 바로 위에서 말한 이런 차이 때문에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곳에서 직장도 다니며 상당한 정착을 이룬 후의 이야기다. 다시말해 세탁소나 구멍가게 하며 사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퍼런 눈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과, 이해관계 속에서 다투고 따지고 조정하면서 매니지를 하기도 하고 매니지를 받기도 하며 사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오늘날의 당신을 만들어 준, 그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언행들이, 그곳에서는 특이하거나 혹은 괴이한, 다시 말해 문제성 언행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이것 깨닫기도 어렵고 또 깨닫고 나서도 바꾸기는 더 어렵다. 우리의 DNA에 ingrained 되어 있다. 세포에 각인되어 있고 또 그것이 대를 잇는다. 그래서 머리 좋은 이민 2세 3세 중에서 의사나 공학박사는 많지만 성공한 변호사는 찾기가 좀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좀 사는 곳에서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인간과 인간의 이해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한 충돌’이고 (혹은 인간들이 만든 집단끼리의 충돌) 그 해결책이 미분적분이나 화학구성의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도둑을 잡으려면 경찰이 더 세야 하듯이, 그런 충돌을 해결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할려면, 그들보다 그 방면에서 한 두 수 더 높아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거라. 돈을 많이 벌게 되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이민와서 어려워 하는 그 게임을, 부모를 대신해서 종결 짓고 한을 풀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물론 아이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을 상상해 본적조차 없겠지. 어제 밤에 이 이야기를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무슨 클라이언트 대하듯이, 예의바른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지키더라 🙂 지금 생각하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이런 것인가 상상하며 쓴웃음이 지어진다. 해탈이 무었인지도 모르고 해탈에 대한 생각조차 아예 없는, 그래서 얻을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고 또 그 주체도 없고 헐…

헬조선 진단서 1

최근 자료들에 따르면,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이 나라들을 구분할 때 대한민국은 확실하게 선진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 헬조선 하면서 이민을 고려한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흡사,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근육미 넘치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죽겠다 죽겠다 하는 꼴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런 기사들이 가끔 신문에 나는데, 나는 원본 내용들을 찾아서 자세히 살펴본지가 꽤 오래 되었다. 이번에도 그 레가툼연구소의 웹사이트를 살펴 보았는데, 이전에 다른 조사들에서 보아왔던 어떤 패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어쩌면 ‘헬조선 진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래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그 레가툼연구소의 2018년 리포트인데, 각 나라들을 경제, 안전, 자유, 환경등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순위를 매기고 그 합산으로 전체 순위를 정하는 식으로 리포트가 작성된 듯 하다. 내가 검은색으로 표시한 항목이 ‘Social Capital’ 이라는 항목인데 오른쪽에 설명이 붙어 있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간의 유대, 사회지원망, social norms 그리고 사회참여등의 역량을 측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 ‘social norms’라는 것은 ‘구성원들의 언행을 제어하는 상호간의 비공식적인 이해 혹은 약속’이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더라. 다시말해 ‘사회 구성원 다수가 볼때, 무었이 좋고 나쁜지 어떤 짓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암묵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또 서로 지키게 하는 어떤 약속 혹은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체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하는 노르웨이와 뉴질랜드가, 이 항목에서도 각각 3위 1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반해서, 한국은 78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권위 있는 조사결과를 보자.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소위 말해서 선진국 36개 나라만 속해있는 OECD회원국 간의 행복도 조사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한국도 여러 항목들에서 다른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은 물론이려니와 어떤 항목에서는 톱을 달리기도 한다. 역시 검은색으로 표시된 ‘Community’라는 항목을 주의해서 보자. 위에서 본 ‘Social Capital’과 거의 동일한 항목이다. 뉴질랜드가 거의 톱을 달리는데 반해서 한국은 그야말로 ‘빵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Social norms’가 무었이라고 했던가? ‘사회 구성원 다수가 볼때, 무었이 좋고 나쁜지 어떤 짓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암묵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또 서로 지키게 하는 어떤 약속 혹은 힘’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 ‘social norms’가 0점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 구성원 다수가 무었이 좋고 나쁜지, 어떤 짓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모르거나 동의하지 않고, 또 나아가 아무도 지키려 하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이런 사회라면 그 구성원간에 유대나 지원이 가능할까?

헬조선? 자신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 이 모두가 그들 탓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남 탓하는 그 모습이 또한 헬조선의 반증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런 ‘강대국’을 만든 한국인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존경해 마지 않는다. ‘선진국’?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