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서 후회하는 다섯가지, 첫번째 이야기

그저께 신문 칼럼에서 언급된 책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by Bronnie Ware을 아마존에서 구입하여 대략 읽어 보았다. 좋은 세월이다. 인구에 희자되는 거의 모든 책들을, 아마존이니 교보문고니 하는 전자책방을 통해서, 마우스 몇 클릭으로 실시간으로 구입해서 읽을 수 있는 세상이니.

저자는 가방끈 짧은 호주여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솔찍하게 잘 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와 닿았지 않는가 싶다. 솔찍한 그녀가 했던 말들 중에서 내가 매우 공감했던 것으로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가, (젓을) 잘 먹고 트림을 잘하고 응가를 잘 하면 100점이고 행복이듯이, 세상을 떠나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잘 먹고 잘 배설하는 것이 극히 (가장) 중요하다’ 라는 말인데, 내가 감동을 받아서(?) 아내에게 힘주어 전달해 드렸다. 눈이 하나 없어도, 다리를 못 쓰게 되어도, 이빨이 없어도 어떤식으로든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있지만, 저자의 지혜로운 말처럼, 이 두가지 기관 즉 ‘들어가고 나가는 장치가’ 고장이 나면, 거의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이 매우 힘들고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자신이 사람들을 돌보면서 얻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더라. 이것 잘 기억해야겠다 싶다. 이것 어느날 그저 마음 먹는다고 그때부터 저절로 되는 것 아니지 싶은데… 간이 완전히 재생되는데 7년인가 걸린다고 하더만, 지금 당신의 간에 당신이 수년 전에 들어부었던 알코올 아직 남아 있는 것 아닌가요? 아! 젊고 건강한 그대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요? 그렇겠네요 🙂

아래에 그 다섯가지를 옮겨 놓았는데, 각각의 항목 아래에 한두개씩 작은 제목들도 같이 옮겨 놓았다. 내가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아니면 저자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분의 가르침이 여기 저기에 녹아 있는 듯 하다. 참 그리고 일전에 ‘돈 잘쓰는 법’ 이야기할때 내가 하나 슬쩍 끼워 넣었다던 것도 여기 등장하네 🙂 ‘당신은 환경의 산물이니, 환경을 바꾸는데 돈을 쓰라’.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by Bronnie Ware

1. I wish I’d had the courage of live a life true to myself, not the life others expected of me.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했던 삶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원했던 삶을 살껄…)
– Products of our environment (우리는 환경의 산물)

2. I wish I hadn’t worked so hard. (그렇게 돈벌이만 하지 말껄…)
– Purpose and intention (목적과 의도)

3. I wish I’d had the courage to express my feelings. (내 자신에게 좀 더 솔찍했고 또 그것을 표현했었더라면 좋았을껄…)
– No guilt (죄책감 없이)

4. I wish I’d stayed in touch with my friends. (친구들과 좀 더 오갈껄…)
– Allow yourself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을 허락하라)

5. I wish I had let myself be happier. (내 자신의 행복을 더 소중히 여겼었더라면…)
– Happiness is now (행복은 바로 지금)
– A matter of perspective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가)
– Darkness and dawn (새벽이 오기전에 가장 어둡다)

리디아 고

일전에 ‘인경씨’이야기 하면서 한국계 뉴질랜드 교포골퍼 ‘리디아 고’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다.

리디아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때 뉴질랜드로 이민온, 지금은 이십대 초반이 된, 뉴질랜드인 프로골퍼다. 불과 일이년전만 하여도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고수했던 그야말로 세계최고의 여자 골퍼였다. 아내와 나도 LPGA골프 중계를 종종 보았었는데, 아내는 리디아의 팬이었다.

리디아의 아버지가 뛰어난 아마추어 골퍼인 연유로 어릴때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정확한 샷들과 좋은 숏게임으로 매이져를 비롯한 수많은 LPGA챔피언쉽에서 우승을 하였다. 스물이 덜 된 나이에 아마 백억은 벌었지 싶다.

뉴질랜드에서는 ‘우리의 리디아’ 하면서 누구나 그녀를 좋아하고 (플레이하는 태도도 좋고 또 티비에 인터뷰할때도 어른스럽고 튀지 않아서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았다) 그녀의 추락을 모두들 안타까워 한다.

나는 그녀의 경이로운 성공을 놀라워하면서도, 티비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때면,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완벽하고 성숙한 대답’을 늘 ‘비슷한 내용과 톤’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무언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 아내는 괜히 샘내고 깍아 내린다고 하더라마는 🙂

한번은 티비에서 좀 특집으로 ‘리디아 고’에 대한 도큐멘터리 같은 것을 방영했던 적이 있었다. 수많은 훌륭한 성취와 몇 차례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참고로, 그녀는 14세 되는 시절에 LPGA 캐나다오픈을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 등장하여, 17세에 세계랭킹 1위 그리고 18세에 매이저 챔피언쉽에 우승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 시절이 그녀의 ‘프로골프’ 전성기였던 셈이다. 인터뷰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뭐 특별히 좋아 하는 음식이나 잘 먹는 것이 있니?’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고 해주시는 것 다 잘먹어요. 그런데 한달에 한번 아이스크림 한 개를 먹을 수 있는데요 좋아해요. 하지만 어떤 달은 안먹고 그냥 넘어가는 달도 있어요’.

내가 이말을 듣는 순간에 ‘오잉 이게 무슨 말이냐?’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넌 무슨 기계 아니면 수도승 할아버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부모와 가까운 친척등이 소위 ‘리디아 군단’을 조직해서 (사실상 작은 회사와 같지 않나? 그 수익이) 그녀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단지 골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관리’하신다고 하더라. 그런 ‘관리’의 결과로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저 리디아 하고 싶은데로 놓아두었었더라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가 없었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 이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순종적이고 착한 한국소녀’ 리디아에게 지긋이 붙어 있는 캐디가 없는거라. 그야말로 캐디 갈아치우기를 밥 먹듯이 하더라. 그 다음에는 코치 갈아치우기. 이 기사를 쓴 데이비드 리더베트라는 코치는, 내 기억에 타이거 우즈 같은 사람도 코치한 세계적인 코치인데, 이 사람을 갈아치우는 것은 물론이요 그 뒤로도 수 많은 세계적인 그리고 또 듣도보도 못한 코치들이 왔다가 가는거라. 이상하지 않나? 리디아의 어두운 뒷면? 아니지. 리디아 뒤에서 누군가가 하는 짓이었지. 캐디, 코치 바꾸기를 밥먹듯이 하고난 다음에는 장비 바꾸기에 돌입.

나의 아내, 자칭 ‘나를 알고 또 내 수준에 맞는 유일하고 무료인 골프 코치’께서도 이야기 하기를 ‘골프는 일관성의 운동이니 제발 이랫다 저랫다 쥐랄을 좀 하지말고 지긋이 해보라’는 골프 최고의 진리를 힘주어 여러번 말씀하셨다. 핸디도 없는 내 아내도 아는 진리를 리디아 뒤에 있는 그 사람들은 왜 ‘더 이상’ 모르는 것일까? 이전에는 ‘아이스크림 한달에 한개’처럼 극단적으로 일관성을 추구 하더만.

리디아 성공의 요인이, ‘리디아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그 과정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하는 바람’에 이제 리디아 실패의 요인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순종적인 ‘아이’ 리디아. 스물이 넘었는데도,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허락하지도 않고 또 도와주지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왜요? 눈이 잘 안보여요 🙂 내가 사이비 도인으로 리디아의 추락을 보면서 딱 한마디 했었다. ‘그녀가 이제 girl에서 woman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 세상 그 무었도 이 과정을 세우거나 변화 시킬 수가 없다’.

이 기사에서, 세계적인 코치라는 데이비드 리더베터는, 그녀의 부모를 비난하며 ‘그 무지함이 실로 상상하기 어렵다’고 표현했었다. 영어권에서는 정말 심한 비난이다. 물론 전에 코치하다가 잘렸으니 사심도 좀 있겠지, 하지만 데이비드 리더베터의 표현에 따르면 ‘부모의 무지가 리디아를 세계최고의 골퍼에서 이제는 평범한 골퍼로 추락시킨 요인’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리디아를 관리하여 큰 성공을 이루어 냈던 그 똑똑한 사람들이 한가지 못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어떻게 내려 오는가’ ‘어떻게 놓아 주는가’ ‘어떻게 그녀가 행복하게 살게 도와 주는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 아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또 알려고 한 적도 없지 싶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것들에 대한 해답은, 그런 ‘관리 잘하는 사람들’로부터 결코 나올 수가 없다. 바로 이게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한 인간이 두가지 상반된 것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누군가를 ‘관리’하면서 오래 살다보면 세상을 ‘관리의 시각’으로 보게 되고 흡사 인간의 삶이 ‘관리의 대상’으로 착각하여 보이게 되는 것이다.

‘관리’하면 떠오르는, ‘스카이 케슬’이라는 드라마를 한두편 본 적이 있다. 인기도 좋고 또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훌륭하십니다. 계속 그렇게 사세요… 그런 사람들이 들으면, 내 행색을 아래위로 흩어 보면서, 콧웃음을 치거나 펄쩍 뛰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다 가난을 면치 못한 꼴이다. 부유함이 무었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110원 가지면 100원 가진 것보다 부유하다고 일차원적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바로 그것이 가난인 줄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인의 카르마인가 싶다. 카르마에 좌지우지 되고 있을때는 당사자가 그 카르마를 자각하기가 정말 힘들다.

리디아가 인터뷰하는 말을 들으며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린 것이 참 성숙하다’ 좋게 생각했었을 것이다. 같은 한국인인 내가 그때 느끼기에는 ‘저것 누가 써 준 것을 외워서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말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녀 뒤에 있는, 그녀를 관리하는 그 자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던 것이라 짐작했었다. 어리버리한 리디아. 아니 어리버리하게 만들어진 리디아. 정말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녀도 예외없이 겪어야 하는데, 그 뒤에 있는 ‘취한’ (술만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요) 부모와 관리전문가들 덕분에 그 과정이 험난해 보인다.

‘마이 해뭇다 아이가? 가가 고마 대학 가서 연애도 하고 술도 퍼묵고 공부에도 시달리고 하면서 정상적으로 커구로 이제라도 좀 나조라.’ 이것 지금 안하면 장차 그 백억을 다 써도 행복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결국은 행복하자고 모두들 이런 쥐랄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행복이 또 다시 트로피를 ‘당장’ 들어 올리는데에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카르마가 카르마인 것은, 카르마에 휘둘리고 있을때 그 당사자가 그것이 카르마인 줄을 깨닫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지만, 만약 깨닫는다면, 그 순간부터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고

나는 사무실에서 자주 해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데 (개방구조 사무실이라 시끄럽다) 동료들이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을 만약 듣게 된다면, 아마 당신이 인도의 삐리리리~~~ 코브라 춤추게 하는 음악 들은 것처럼 ‘거참 괴이한 음악이다’ 생각하지 싶다. 조아람씨의 바이얼린으로 1960-1980년대 노래 연주를 듣고 있거든 🙂

전에 모국에서 친구를 만났을때, ‘한국 짜장면을 외국에서 만들어 팔아보았는데 (어떤 티비 프로그램) 서양 사람들도 잘 사먹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그럴까?

조아람씨의 연주를 (그리고 어떤 한국 음악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연세 지긋한 이곳 친구분들께, 예술적 감각이 없지 않은 분들, 내가 좋아하는 한 곡을 들려 드렸더니, ‘흥미 있네…’ 하시더라 (‘이게 뭐임매?’ 그런 뜻).

서양사람들이 먹어보고는 단 한사람도 좋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은 무었일까? 단팥속이 들어간 빵이었다. 그 단팥속 맛있다는 사람 단 한 명도 못 봤다.

짜장면은? 글쎄… 일부 용감한 사람이 먹어 보기는 하겠지만 ‘좋다’는 사람은 아마 극소수일껄.

어떨때 참 신기하다 느낄 때가 있다. 이렇게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성장과정을 거쳐 완전히 다른데서 살다가 만난 사람들끼리, 이 정도 함께 의사소통하고 비교적 잘 어울려 일하고 있다는 것이. 똑 같은 음악을 듣고 똑 같은 음식을 먹고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쳐 같은 곳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끼리 과연 어느 정도 함께 의사소통하고 또 얼마나 잘 어울려 일하나?

기분 나쁘나? 쏘리 🙂

다시 본 영화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고단한 여행길, 수천미터 상공을 떠가는 조각배 안에서 다시 본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오래전에 보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같은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또 받아들이는지 궁금한 생각에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

사람마다 그리고 처한 환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를 것이며 또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륜에 촛점을 맞출 것이요,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 또 어떤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는 삶의 본질에 촛점을 맞출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는 스토리 전개 끝에, 주인공 프란체스카가 장성한 아이들에게 남긴 유서가 마지막에 등장한다. 프란체스카가 이제 어른이 된 남매에게 말한다. ‘Do whatever you have to do to find happiness in your life. There’re so many beauties.’ ‘아이들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너희들 자신의 행복을 너희들의 삶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보거라.’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원작을 쓴 사람이) 전하고자 했던 매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각자가 태어나서 자란 사회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물리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대부분의 인생이 그리고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지배하에서 보내다가 죽게 된다. 태어난 환경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옵션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상대적으로 (옆사람들 보다) 낫고 유리한 것들을 고르려고 애쓰며 살다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옆사람들 보다 낫다고 내가 저절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행복을 찾기 보다는 내가 참된 행복을 느끼는 그 무었을 스스로 찾아보라’는 것이다.

주어진 것들 중에서 최적의 선택을 해 온 사람들, 사지선다에 능한 인생들에게는, B학점이 가능하고 또 노력하면 얻게 될 것이다. B학점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B학점 못 받는 사람이 대다수고 또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A학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B학점과는 다른 무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사지선다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떻게 찾느냐고? 사지선다가 아니라니까…

장수의 비밀, 행복의 비밀

두 갈래의 길

70년을 함께 해로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아흔이 넘었고 아내도 팔십대 중반이 되도록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다. 두 분 모두 손마디가 굵고 손톱이 다 닳았다. 그 손으로 논농사 밭농사 지어, 우리 같은 city boys & girls도 먹이고 또 두분과 가족들도 생활을 해 오셨겠지. 금슬이 참 좋아 보여, 나도 아내와 더불어 그렇게 익어 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두 가지 장수의 비밀 그리고 행복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그 부부는 오랜 세월 동안 더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그들의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도와 왔다. 요새도 때로 점심을 차려서 동네에 홀로 된 상노인께 가져다 드릴뿐만 아니라 먹여 드리고 또 식사를 하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 드린다. 자선과 자비를 오래 베풀어 오셨다. 할아버지께서 말씀 하신다. ‘남들을 속이고 나쁘게 하면 내 마음에 괴로움이 가득차지만 남들을 돕고 좋게 하면 내 마음에 웃음꽃이 피나니 그 웃음꽃이 장수의 비밀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논밭에 오늘도 어김없이 일을 하러 와서는, 두 번째 비밀을 알려 주신다. ‘내가 100살이 될 때 까지만 일을 하고 그 다음에는 논밭을 팔아 (또 모은 돈으로) 다른 노인들을 위한 재단을 하나 만들겠다.’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와 늘 마음이 잘 맞다고 하신다. 아! 참으로 훌륭하시다 두 분 모두.

‘하늘 밑 단 한 사람 그대’ – 제목도 로맨틱하게 🙂


또 다른 커플.

이 두 분은 부부는 아니지만 멀고 먼 외딴 섬에서 함께 살며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 분은 토오쿄오 대학교에서 불교관련 박사학위를, 또 한 분은 쿄오토오 대학교에서 불교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대단히 많이 배우고 크게 공부한 사람들이다. 전 세계를 다니며 훌륭한 스승들을 찾아 인생의 해답을 듣고 가르침을 얻고자 오랬동안 노력해 온 분들이다.
일본 선불교 그리고 한국의 간화선 불교를 깊이 연구하고 또 수행하며 사시는 분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글을 읽어 보니 훌륭한 내용들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는데, 나 같은 사람이 보아도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분들의 웹사이트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골프의 참된 즐거움은 ‘치는’데서 온다. 오직 특별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즐거움을 ‘연구하거나 가르치는’데서 찾는다. 연구하고 가르친다고 특별한 극소수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치는 사람들 중에서 극소수가 어떤 인연에 의해 그 특별한 길을 저절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뀔 수가 없고 또 그 특별한 길이 더 큰 ‘참된 즐거움’을 보장하는 것도 아닐 것이라 나는 믿는다.

삶이란 온 몸으로 사는 것이기에, 삶의 본질이 무었인지는 알고 있으되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 생각한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 내가 입는 옷, 거쳐하는 집, 블로그에 관련된 기술등등 지금 나의 삶을 가능케 하는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손발과 머리로 땀흘려 노력하여 만들어낸 실체요 은혜이기에, 내가 이 조건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내게 있어서 삶이란 온 몸으로 부대끼며 인연과 은혜를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요, 해탈은 그 안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두 분 박사님들께서는 그토록 원하던 해답을 얻었고 또 행복을 찾으셨을까? 그 촌로 부부께서는 ‘오늘’ 행복해 보이시던데…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할 것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