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성공 오늘의 행복?

우연한 기회에 꽤 좋은 골프클럽의 회원이 되다보니, 어제 잘 나갔던 사람들과 (상당수는 현재도 잘 나가고 있는) 함께 라운드를 할 기회들이 종종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함께 여행을 해보면, 바둑을 두어보면, 도박을 해보면 그리고 골프를 쳐보면 그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고 하더라. 내 작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런 것 같다.

이 나라 전직 육군총장과 한 라운드를 했었는데, 물론 속으로야 한 가닥이 아직 있겠지만 겉으로는 (내가 느끼기에는) 겸손하고 조용한 중늙은이였다.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다만 내가 묻는 말에만 좋게 대답을 해주었다. 어깨에 아무런 계급장도 달려 있지 않아서 들어올리는 골프채가 가벼워 보였다. 내세우지 않고 바라지 않으며 위에 서려하지 않아 보이니, 종종 무지랭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또 때때로 아래에 서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무리없이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이 보였다. 한때 별들이 어깨 위에서 번쩍였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클럽의 멤버로 다만 골프를 함께 칠 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멋있고 또 부러웠다.

최근에는 아주 대단한 사람과 두어 라운드를 우연히 치게 되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장관 그리고 대단한 변호사로서 이나라 원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엄청나게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던 존경받는 정치인 법률가라고 하였다. 우리 아이도 한두 차례 만났었다고 하며 이 사람의 명성은 그 분야에서는 전설이라고 하였다. 첫라운드를, 내가 잘 아는 노부부와 더불어 4명이 함께 치면서 이 사람과 내가 골프 수준도 비슷하니 앞으로 종종 함께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면들을 보게 되었다. 클럽 회원 대부분이 이 사람이 누구인줄 알고 또 보기플레이어 수준이니 어떤 회원들과도 어울릴 수가 있을텐데, 이 사람은 거의 대부분의 라운드를 오직 한 사람, 어떤 한국이름의 회원과만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회원들의 온라인 예약 시스템에 훤히 드러난다. 그날은 아주 예외적으로 노부부와 내가 함께 치게 되었던 것이고.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했고 또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최근에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는등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차례 하였다. 어떤 것을 내게 물었는데 결국은 그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자주 기울었고 정작 내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럴수도 있겠지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 그는 이날 88을 치면서 자신의 최고 기록이라고 기뻐하며 한잔 하자고 하였다. 노부부는 먼저 떠나고 나만 함께 클럽하우스로 갔는데, 이 사람이 자신의 음료와 음식을 주문하고선 쓱 테이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보통은 한잔 산다. 굳이 최고 기록을 세운 날이 아니라도 그저 함께 클럽 하우스에 오면 보통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함께 음료와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 먹을래 인사치례 조차없이 혼자서 그냥 먹는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어 이사람 좀 이상하다. 왜 다른 회원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때 이 사람 혹시 게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위키피디아를 보니 스스로 고백하는 동성연애자라고 쓰여 있더라. ‘그러면 어때 우린 골퍼로서 필드에서 만나서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낼뿐인데… 어쩌면 이 클럽에도 게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있나? 내가 파트너가 좀 되주지 뭐 그래’ 이런 좋은 마음으로 두번째 라운드를 함께 하였다.

그 한국 사람이 같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열서너살 된 한국 남자 중학생 아이였다. 좀 놀랬다. 이 아이와 자주 그리고 오직 이 아이 하고만 골프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환갑이 훨씬 지난 사람과 그 남자 중학생이 친구처럼 같은 수준으로 노는 것이다. 아주 편하게 서로가. 내가 좀 더 놀랬다. 그는 첫홀에서 칩샷 실패를 하였다. 그런데 나와 다른 동반자가 퍼팅을 아직 끝내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그 자리로 되돌아가서 그린 한복판으로 칩샷 연습을 하는거라. 내가 몹시 놀랬다. 그리 길지 않은 내 골프경험에 그래도 수백명의 사람들과 수백 라운드를 했었는데 이런 짓을 하는 골퍼는 처음 보았다. 우아…

몇 홀을 계속하면서 이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어 조금씩 떨어져 걷던지 (이곳에선 카트 거의 안탄다) 아니면 일부 이야기를 못들은 척하게 되었다. 조금씩 불편해지는데… 가장 어려운 홀에 함께 도착했다. 그 아이에게 그저께 자신이 이곳에서 파를 했노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게 ‘그가 파를 했던 것이 맞다’는 말을 직접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때까지도 그저 좀 수다스러운 사람 정도로 느꼇기에 스스럼없이 ‘그렇다 이 사람은 그저께 라운드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이 홀에서 파를 기록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내게 다시 그 말을 반복하라고 하는거라. 내가 순간적으로 빡쳐서 ‘that’s enough’ 이라고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때 아마 이 사람이 좀 삐졌던가보다. 라운드 끝까지 그리 좋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하더만 별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그 아이와.

나중에 우리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 사람과 일어났던 이야기를 했더니 ‘워낙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고 또 지금도 대단한 변호사기 때문에, 설령 아빠가 본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매우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지 싶다’ (그러니 아빠는 괜히 배 아파 하지 마시라)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짧게 ‘인생이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행복하다. 한쪽이 비대하다고 인생의 다른면들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만 말하고는 더 이상 아이와의 설전을 피했다. 나와 아내는 안다. 학창시절 수많은 고객들에게 자동차를 팔며 억센 차도매상들과 상대하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던 아이. 수많은 다양한 친구들과 좋은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아이. 후진국들을 친구들과 오래 여행하며 그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좋아했던 아이. 그리고 킥복싱 트레이너로 또 수련자로 가르치며 얻어 터지며 사는 우리 아이는 (자기 나이에) ‘삶의 균형 잡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 수준에서 더 이상 가르치거나 말할 것이 없다 🙂

그 대단한 정치가 변호사, 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 과연 행복할까? 그 아이와 골프치고 큰 집으로 되돌아가 혼자서 밥먹고 무슨 훌륭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던데 그렇게 글 쓰면서 살면 과연 좋을까? 이 좋은 골프장에서 나같은 무지랭이, 100만원도 안하는 순고물차를 명차들이 즐비한 그 주차장 한쪽 구석에 아무도 안보게 살며시 황송하게 주차하고 다니는, 생긴것도 다르고 말귀도 잘 못알아 듣는 (청력의 문제만이 아닌) 내가, 클럽 챔피언부부 부터 카레먹는 넘들 그리고 골프에 미친 까칠이들과도 별 스스럼 없이 코스에서 어울려 희노애락을 나눌때 이 사람은 그런 자유가 없지 않은가? 그 명성과 돈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과연 골프에만 소용이 없는 것일까?

그저께는 어떤 전직군인과 한 라운드를 했는데 그는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게 무언가를 물으면 내 대답을 듣고서 그는 내게도 대답을 자발적으로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가 이렇게 물어서 내가 대답을 해주면 내 말 끝에 자신의 아이들은 몇인지 몇살인지 부연하여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 대부분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인데 참으로 중요한 예절이다. 물론 나는 늘 그렇게 해왔지 🙂 지금도 국방부에서 민간인 문관으로 일한다고 하였다. 아들 하나가 군인인데 올해말에 유엔군의 일부로 한국 비무장지대에 근무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입에 발린 감사의 말은 영어의 한계로 일단 뒤로 미루었다. 제대하기 전에 중국에 몇해 있었는데 그때 서울에도 몇차례 왔었다며, 중국 일본 한국의 오묘한 관계와 역학에 대해서 짧게 코맨트하며 관심을 보이더라. 나도 비록 의무였지만 한때 군인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어쩌다 우연히 좋은 샷을 날릴때 큰소리로 칭찬하며 인정해 주는 모습에 ‘이 사람 신사구나’ 싶었다.

집에와서 인터넷을 보니 고위장교로 예편하였고 주중국 대사관 무관으로 있었던 것 같았다. 짱께 장교(장군)들과 찍은 멋진 사진이 인터넷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의 계급이나 업적 그리고 경험을 내게 떠벌리지 않았다. 아마 내가 묻지 않으면 그는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중립적인 (한국에 관한) 주제에만 관심을 적절히 표명할 것이다. 그도 어깨가 가벼운 사람인듯 하였다. 어제의 계급으로 살지 않는 사람. 겸손하고 열린 그리고 외교관처럼 멋진 매너의 소유자라 내 적성에 딱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라운드가 기다려진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행복과 관련이 있나?
1. 관련이 있다 – 어제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해 오늘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2. 관련이 적다 – 어제의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오늘의 삶에서 (지금 속한) 시간과 장소에 적절한 언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은 아마 더 힘들게 될껄 🙂
3.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 어제에만 사는 사람들에게는.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오늘도 없고 내일은 더욱 없을 것이니. 이미 죽은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초보 골퍼지만 글을 마치면서 한마디 부연 하지 않을 수 없다. 넣으면 당연한데 못넣으면 기분이 뭐같은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되면 내 수준의 골퍼들은 ‘안들어가면 어쩌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며 좋지 않은 결과와 그에 따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골프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한가지 좀 잘하는 것이 있다. 나쁜 샷을 치고도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이 나빠서 짧은 퍼팅이 (핀에 맞고 튀어 나오든지) 들어가지 않아도 조용히 줏어들고 다음 홀로 걸어 가지 아쉬워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무언가를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냥 내 실력으로 받아 들인다. 물론 나중에 연습하는 정보로는 활용한다. 골프의 신은 아주 감정적이고 섬세한 여신이다.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나중에 돌려 준다. 황송하게 더 많이 줄 때도 있다. 하지만 건방을 떨면 금세 눈치 채고 처절한 보복을 가하는 무자비한 여신이다. 그저께 내 동반자가 첫 2홀을 버디로 시작하였다.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그때 그 동반자 머리에 어떤 생각이 오고 갔을까? 골프의 여신이 눈치 채고 그녀의 본색을 드러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절하고 비참한 보복을 당한 끝에 100을 넘겨 스코어 카드를 찢어 버리고 (더불어 찢어진 가슴을 감추며) 그는 클럽 문을 나서더라.

나는 요새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오면 ‘안들어갈 수도 있다. 안들어 갔던 적도 많았다. 들어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들어가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40펏 이상을 밥먹듯이 하던 (내게는 무척 어려운) 그 그린에서 요샌 심심찮게 20대 후반 펏으로 라운드를 마무리 한다. 물론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여신이 혹시 마음을 바꾸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

그저께 내가 중매하여 20년 이상을 잘 사는 친구부부에게 초대받아 저녁을 함께 하였다. 어떤 나이를 넘게 되니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더라. 이 글을 빌어 연배 많은 그 친구에게 한마디 하련다. 혹시 위에서 말한 짧은 퍼팅하는 생각을 하면 어떨까? ‘잘 안될 수도 있다. 잘 안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되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을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 그리고 나는 좋은 미래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면 탄수화물을 멀리하기가 어쩌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더 나은 무었들로 채우기가 쉬워질지도 모른다. 성공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오는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인생에서도 골프에서도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 확신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친구, 그대와 내가 보통 인연은 아닌듯 한데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래요.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다른 삶

2주전 국민투표와 함께 실시되었던, 안락사와 대마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물었던 투표 결과가 방금 발표되었다.

안락사는 65%의 지지를 받아 12개월 이내로 법으로 제정된다고 한다. 아무나 죽겠다면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다수의 의사가 동의하는 6개월 미만의 생존 가능성 밖에는 없는 사람이 적법한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대마초는(마리화나) 안타깝게도(?) 46%의 찬성만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불법으로 여전히 남게 되었다.

최근에 김의신박사의 ‘암 걸리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법’ 주제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분은 단지 세계적인 암전문가로서 좋은 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 최고의 암병원에서 오랜 기간동안 (대부분 다른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다가 안되서 온) 수많은 미국인 암환자들과 또한 돈 보따리를 들고 (치료비가 엄청남) 태평양을 건너 그 병원을 찾은 수많은 부자 한국인 암환자들이, ‘암’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판이한 태도와 자세를 보이는지에 대한 사회인류학적인(?) 고찰을 또한 나누는 내용이라 내겐 큰 흥미가 있었다. 이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수십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나도 이분이 묘사하는 (부족하고 부끄러운) 한국인의 태도와 자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아직 시간이 좀 있을때 자각을 하고서 무언가 개선과 발전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강연은 십여년 전에 촬영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현재에도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신문에 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관련 기사를 보고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540페이지 논문을 대략 읽어 보았는데, 영미권국가들과 공통된 내용들도 물론 있었지만 몇가지 특이한, 다시 말해서 김의신박사가 말씀한 (암과 죽음에 관련하여 미국인들과 비교할때) 한국인들이 보이는 특이한 태도와 일맥상통하거나 어떤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급한다.

일전에 하버드대학교 연구결과를 (‘돈 잘 쓰는법 ‘연구하여 책으로도 발간된 논문) 언급한 글에서도 나왔듯이 이 나라를 비롯한 영미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들은 ‘경험’이나 (자기계발) ‘이타행’과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면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것) 관련된 것들이 상위에 랭크 되는데 반하여, 이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이러한 ‘경험’ ‘개인의 발전’ ‘이타행’ 같은 분야에는 관심이 없고 또한 이런 것들이 자신의 행복을 증신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영미권과 거의 동등한 상위 20%의 부유한 한국인들 조차도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김의신박사의 강연과 이 논문의 (신문기사의) 내용을 동시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우리들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단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동일한 조사를 중국이나 인도 그리고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것 같은가?

[가장 중요한 내용을 요약한 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논문이니 결과에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어제 오랫만에 찾아온 아이와 주말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가 첫 차를 살때 얼마나 너의 선택을 확신했었던지, 나는 아직도 우리가 함께 앉아서 사인하던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후로 아이는 차를 (물론 고물 중고차들) 열번은 더 바꾸고 또 학생때는 아르바이트로 큰 중고차 딜러 회사에서 몇년 일하기도 했었다. 일반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중고차 도매상들과도 상대하고 또 직접 옥션을 현장에서 하기도 하면서. 혹시 들어봤나 옥션하는 영어를,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지? 이렇게 이제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가, 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당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 ‘아빠는 그때 왜 나를 막지 않았어요?’라고 궁금한 듯 물었다. ‘너의 설익은 확신과 그에 따르는 서두름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 했었지만, 내가 너의 나이일때 원하던 것들을 그렇게 가져본 경우가 별로 없어서 선물인 셈 치고 잠자코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가 모든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이가 첫 교통 벌과금을 끊겼던 에피소드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지나가는 차량이 전혀없는 한적한 주택가 막힌 골목에서 엄마 아빠의 차를 차고에서 잠시 빼서 친구를 태우고 그 골목을 몇 미터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경찰차가 하필이면 마침 그때 나타나서 면허를 요구했고 아이는 초보면허 조건을 위반하면서 친구를 태우고 또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죄로 엄청나게 큰 벌금을 물게 되었던 것이다. 벌이가 없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우리가 대신 벌금을 내 주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가 물론 먼저 ‘아이고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살살 빌었었겠지. 우리는 그 이벤트가 아이에게 돈으로 환산 할수 없는 중요한 인생의 레슨을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었다. 십년 세월이 흐른후에, 물론 그 중간에도 몇차례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안전운전 습관을 위해서, 그 고마운(?) 경찰관과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 그 경찰관은 숨었다가 벌금을 걷는 이상한 사람은 물론 아니었지만, 아침에 배우자와 크게 다투고 나왔었거나 혹은 업무 첫날이었던 생초보 경찰관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뿐 🙂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치 그런 괴로웠던 에피소드가 (손해, 후회, 두려움등) 없이도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결코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익이나 얻음에는 반드시 이전에 지불했던 댓가가 있다. 어제 지불한 댓가없이 오늘의 얻음은 (경험 혹은 깨달음)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배움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를 통해서 생길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자신이 깊이 엮이지 않은 (deeply involved) 그런 순간적인 간접 경험은 쉽게 왔다가 쉽게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연이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생각을 더 발전시키면 장차 괴로운 과정을 거쳐 망상에서 깨게 된다. 1960년대 극빈국 한국에서 미국대학에 유학갔던 사람들이 했던 대학 식당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첫째는 학생식당 구석에 있던 ‘누구나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주스기계’를 보면서 마치 천국을 본듯 가치체계에 거대한 혼란이(?) 왔었다는 것이고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던 집에 사과가 익도록 하나도 남아나지 못했던 몹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새가 먹은 것이 아니다), 둘째는 식당에서 거룩한 양식을 드시는 미녀 여학생들 중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지어주던 사람들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서 혼자서 쑈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눈이 마주쳐도 거의 아무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나 이곳처럼 몇몇 팔자 좋은(?) 나라들에서는 눈이 딱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거나 혹은 째려보면서 지나가면 무언가 잘못되었나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거나 혹은 서로의 안부를 ‘오늘 어때요?’ 가볍게 묻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미녀 여학생은 그냥 그렇게 미소지었던 것 뿐이었는데 🙂

지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1960년대 미국 유학간 그 한국 청년의 상사병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가? 아이가 첫차를 사면서 보여주었던 그 확신과는 다르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었인가 🙂

서론이 길었다.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라는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면, 작년에 한 육개월 탁구를 규칙적으로 연습했었다.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몇차례 치면서 오래 꺼져 있던 불이 재점화 되었던 것이었는데, 아내가 처음 몇주 혼자서 광란하는 것을 보더니 ‘레슨을 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참고로 내 수준은 동네탁구 중상위 정도였다. 어렵게 레슨을 주선해서 몇차례 먼거리를 운전하여 배워 보았다. 이곳에는 거의 100% 세이크핸드이므로 팬홀더를 사용하는 내게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이브등 한두가지 내가 꼭 원하던 기술을 시도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만. 멀리 운전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무리하게 레슨을 받다가 허리도 아파서 결국은 대여섯번 하고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중고 탁구로봇을 레슨비 내는 대신에 구입하게 되었고 그것이 차고에서 여름내내 내가 드라이브를 집중적으로 연습하여 마스트하는 또 다른 인연으로 발전하였다. 하나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학교때도 안되던 드라이브를 이 나이가 되어서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드라이브 공격으로 아마 지역5부 정도의 수준으로 향상이 된것으로 생각한다. 함께 탁구치던 대부분의 동료들을 격파하였다, 그 드라이브 공격으로. 차차 탁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데, 몇달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며 했던 루프 드라이브 연습의 결과로 생각지도 않았던 복근이 생겨난 것을 나중에 골프를 재개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골프 스윙의 동력과 (힘의 원천) 축은 어디인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복근(코어)’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탁구가 인연이 되어 우연히 생겨난 복근과 그를 이용하여 좌우로 스윙했던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골프 스윙에 특히 내가 어려워하는 드라이버 스윙에 큰 도움이 됨을 차차 깨닫고 있다. 마치 우리 아이가 댓가를 지불하고 무언가를 얻었던 것처럼, 나도 나름대로는 꽤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몸으로 증득한 깨달음’이다.

턱걸이는 팔힘으로 하는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특히 손을 안쪽으로 돌려잡고 하는 친업의 경우) ‘몸 전체의 근육으로 하는데 복근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마도 팔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지 싶다’고 대답하지 싶다. 턱걸이도 복근의 힘을 필요로 한다.

‘골프는 맨탈’이라고 하도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긴 하는데, 골프를 못치는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좀 향상 시키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무었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집중력이 중요한데 그것도 체력이 고갈되면 무너진다’ 이 정도가 내게 가장 그럴싸하게 들린 골프 맨탈 이야기였다. 혹시 그대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내가 근래에 깨달은, 골프 맨탈은 무었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말하자면 ‘골프를 치면서 그리고 샷하기 직전에 마음속에 걱정되거나 혼란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생기는 것을 잘 막아내고 조절하여, 자기가 연습한 만큼의 실력을 몸이 구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이다. 물론 중년 주말골퍼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맨탈이 강해진다고 갑자기 공이 바로 가거나 멀리 가지는 않고 또 스코어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흡사 맨탈이 강하다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대 위에서 뒤로 넘기가 갑자기 가능해지지 않음과 완전히 동일한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연습한 범위안에서 우리의 현재 신체가 허락하는 한계안에서 자신이 가진 최고 능력의 샷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의 효과이자 결과다. 어떻게 하면 골프 맨탈이 강해지나? 스윙연습? 체력단련? 도움이 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지금 치려는 샷에 두려움이 없어지면 (혹은 몸을 방해하지 않을만큼 적어지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냐고? 중년 주말골프에게 가장 현실적인 처방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런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을 접는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치라는 말은 아니지만, 오비 말뚝이 보이는 홀에서 드라이버를 치려는 순간에, 혹은 2펏으로 끝내고 싶은 어려운 롱펏을 할때,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오비가 나거나 3펏을 해도 괜찮다고 ‘진정’으로 마음을 먹는 순간 몸은 긴장을 의욕으로 바꾸어 ‘지금 내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샷’을 허락한다. 진정성 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나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니 오해 말고. 그 결과가 오비거나 3펏이면 그것이 나의 지금 골프 능력인 것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억울할 이유도 없지 않나? 사라진 비싼 새공들이 아까우면 중고공을 사용하고  내말 안듣는 비싼 장비에 마음이 괴로우면 자기 수준에 맞는 장비에 만족하는 것도 골프 맨탈에 관련이 있지 싶다. 생초보와 세계적 수준의 프로가 동일한 장비를 ‘흔히’ 사용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유일하지 싶은데, 이 괴이한 상황이 (어처구니 없는 자유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면 골프 맨탈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차차 선택을 하게 되지 싶다. 이렇게 골프 맨탈이 차차 나아지면, 이제 골프 맨탈 이야기는 그만 좀 하고서, 그저 스윙도 연습하고 또 체력도 기르면서, 좋은 코치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숏게임 연습도 좀 하노라면 ‘몸으로 하는 골프 능력’이 향상 되겠지. 그러면 점수도 좋아지지 않고 어떻게 베기겠나?

말은 쉽지, 하지만 유튜브 보거나 남의 이야기 듣고 읽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교통 벌과금을 물고 그 빚을 갚으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좀 뼈에 사무치는 시간이 무르익어야, 섣부른 확신이 불러온 손해를 깨닫게 되는 과정과 후회하는 마음을 되씹는 괴로움이 있고 난 후에야,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으로 심신이 좀 변한 다음에야, 그 인연을 따라서 더 나은 무었이 저절로 그리고 참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해탈 열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걷고 달려야 하는 이유

일전에 두뇌를 위해서 달려야 한다고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좀 더 절실하고 현실적인 이유를 이야기 하려고 해요.

‘노인들에게 물어 보면 가장 두려워 하는 질병이 치매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암도 밝혀진 원인들이 있듯이 (따라서 일부는 우리가 예방할 수 있듯이) 치매도 좀 예방하거나 늦출 가능성이 있는 것 같네요.

중년기의 심폐능력이 노년기의 치매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스웨덴의 한 대학에서 40년에 걸쳐서 연구한 내용을 인터넷 신문에서 우연히 보고서 조금 더 찾아 보았어요. 예테보리대학교 뉴스에 실린 글을 대략 번역하였는데요, 전체 논문은 이곳에서 읽어볼 수 있어요.

심폐능력이라고 번역한 cardiovascular fitness의 정의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심장과 폐가 산소가 녹아 있는 혈액을 근육에 전달하는 능력과, 그 근육이 전달 받은 산소로 운동에너지를 생산하는 능력을 함께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이 났을때 심장이 빨리 뛰고 또 숨을 많이 쉬게 되는데요, 그것이 심폐능력이 아닌 이유는, 그렇게 생성된 산소로 성을 계속 내는 것 이외에 달리 운동에너지를 근육에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내지 마세요. 운동 안됩니다 🙂


중년의 체력과 치매 위험 사이에는 상당한 관련이 있다.

‘중년시기에 높은 심폐능력을 (심폐지구력) 가졌던 여성들이 장차 노년에 치매에 걸릴 가능성은, 평균 혹은 평균이하의 심폐능력을 중년에 보여 주었던 여성들보다 90% 가까이 낮다. 다시말해 거의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이 연구결과는 우리가 치매를 (그리고 알츠하이머처럼 유사한 종류의 질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연구는 191명의 스웨덴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평균 50세였을떄 심폐능력을 측정하여 기록하고 비교한 다음, 향후 44년 동안 6차례에 걸쳐서 치매를 검사한 결과 입니다.

심폐능력을 측정했을때, 여성들은 크게 4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심폐능력 (40명) 중간정도의 능력(92명) 낮은 능력(59명) 그리고 혈압이 검사중에 너무 높아지거나 혹은 다른 건강상의 이유로 측정을 마칠 수 없었던 20명 등입니다.

높은 심폐능력을 측정시에 보였던 여성들은, 향후 44년간 실시한 치매검사에서 오직 5%만 (다시말해 40명 중에서 2명만) 치매가 발병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간정도의 능력을 보였던 여성들은 25%, 낮은 능력을 보였던 여성들은 32%, 그리고 측정을 마치지 못했던 여성들은 20명 중에서 거의 반이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또한 높은 심폐능력의 여성중에서 치매가 발병한 그 두명은 (다른 그룹들에 비하여) 평균 11년 뒤인 90세를 전후해서 발병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른 그룹의 여성들은 평균 79세에 치매가 발병했습니다.

연구를 진행했던 학자들은, 이 결과가 중년시기 (낮은) 심폐능력이 노년기 치매의 원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 냈다고 말합니다.

‘흥분되는 연구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중년시기에 심폐운동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우리는 치매를 지연하거나 혹은 예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예를들면, 삶의 어떤 시기에 육체적인 건강을 높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치매등을 포함한 노년건강에 영향이 있는가 등은 더 연구되어야 합니다.’

이 연구는 참여 대상이 비교적 소수이며 또한 50세 전후에 한번만 심폐능력을 측정했다는 한계가 있음을 밝힘니다.

Tool of Titans

‘여러가지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200명이 직접 밝힌 놀라운 생각, 기적의 습관, 압도적 성공의 비밀’ 이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은, 2년전 미국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훌륭한 책이예요.

영문판 그리고 한국어 번역판도 있네요. 그리 어렵지 않은 영어로 씌어진 책이니 한번 아마존에서 eBook으로 구입해서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에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남겨 두었던 ‘기억나는 조언’들입니다. 도움이 되길 바래요.


  • 과거의 성공에서 빠져나오라. 그래야 내일도 성공할 수가 있다.

  • 허리를 펴고 똑 바로 앉아서, 얼굴에 미소를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좀 있어라. 몇 분이 지나면 정말 기분이 그렇게(up) 된다.

  • (10%를) 기부할 계획을 세우고 , 이런 방면에 머리좋고 기술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작지만) 의미있는 도움을 주라. 예를들면 이런 좋은 웹사이트들이좋은정보를 제공합니다.

  • 10년 후의 나를 떠올리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무슨말을 할까 생각하라.

  • 당신에게, 어린이와 개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생각해 보라.

  • 12시간 단식 (예를들면, 저녁7시 이후로 아무것도 안먹고 아침 7시 먹기) 혹은 18시간 단식 (예를들면, 점심 먹고 저녁을 건너뛰고 다음날 아침 먹기) 을 시도하라.

  • 가끔씩 하루라도 혹은 한주말이라도 (원래는 3일에서 2주간을 제안하고 있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살아보라. 예를들면, 집에서 자더라도 침대대신 슬리핑백에서 자고, 낡고 싼 옷을 입으며, 오트밀이나 인스탄트 커피처럼 싸고 험한 것을 캠핑기어로 만들어 먹고, 또 인터넷은 도서관같은 곳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보라.

  • 무었이 혹은 어떤 사람이 당신을 불쾌하게 하고 기분 상하게 하거든, 당신 자신을 (스스로의 마음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그 불쾌감과 기분상함은 그곳에 무었인가 있다는 표시다.

  • Cliché를 (사람들이 통속적으로 늘 하는 교훈적인 말 혹은 경고의 말) 우습게 보지 말고 귀담아 듣고 다시 잘 생각해 보라.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내게 필요했던 지혜는 그곳에 이미 다 있더라. 그때는 왜 몰랐었을까 그리고 왜 다른곳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들을 찾아 헤맷을까?

  • 명상은 결국은 ‘현재에 집중’ 해서 살고자하는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