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넘들 이야기

언젠가 이웃 호주넘들의 실체를 까발려(?) 주겠다는 말을 했었기에 오늘은 그런 이야기 조금.

‘아잔차’ 이제 누군지 알지? 이분이 서구인 스님도 수 백명 배출했던 걸출한 태국 테라바다불교의 고승이셨다고 설명했던 기억나나? 그 서구인 스님들 중에서 물론 호주인 스님들도 있지.

이곳에서 하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어 ‘나쁜 개주인은 있어도 나쁜 개는 없다’고. 전적으로 100% 동의하기는 좀 어렵지만 상당한 진실을 포함한 말이라고 나도 ex-개주인으로 생각해. 이것 사람에게 갖다 붙이기는 약간 어색하긴 한데 내가 만약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한다면 이게 그냥 다만 헛소리일까?

언젠가 법륜스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원래 성격이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중이 되고 나서도 따지는 쪽의 일을 혹은 짓을 하고, 원래 성격이 원만한 사람은 중이 되어도 원만한 중이 된다’고 했던 말이 있는데, 참 맞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호주인 스님중에서 상당히 높히 올라간 분들도 있었어.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서 승려들은 위계질서가 딱 잡혀 있어. 소위 말해 짠밥을 엄청나게 따진다는 것이지. 사실 따지기야 하겠나, 그보다는 그것으로 질서를 세운다는 의미지. 모여서 사니까. 승려들의 짠밥은 매년 하기에 하는 석달의 안거를 (‘Vassa’ Rains Retreat라고 영역) 몇 번 했던가로 딱 정해지는데, 붓다께서 생전에 사시던 그곳에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땅이 질어서, 늘상 하듯이 동네로 나가서 밥을 받아와 드시고 숲속을 거닐기가 어려웠다고 해. 그래서 붓다께서 비오는 석달 동안은 실내에서 함께 명상하고 수행하면서 지내라고 하셨는데, 좁은 구석에 많은 중들을 가두어 놓으니(?) 맨날 언쟁 다툼을 하고 이게 좀 잘 안 되는거라. 그래서 붓다께서 후속 초치들을 몇가지 하셔서 훗날 비구들이 (스님들이)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지. 그 안에는 ‘석달간 입을 닥칠 것’도 들어 있데요. 제발 좀 싸우지 않게 🙂

이렇게 짠밥이 많이 쌓이면 어떤 특권 혹은 권리가 주어지는데, 붓다께서 직접 정하신 이후에 쭉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것들도 있다고 해. 예를 들어, 새로 어떤 사람을 비구가 (스님) 되도록 의식을 하고 계를 내리는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우리 똑똑하셨고 또 현실적이셨던 붓다께서 다 정해주고 직접 운영하시다가 돌아가셨어. 안그러면 치고 박고 대가리 깨지고 하니까.

승단이 (‘붓다’,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의 모음을 뜻하는 ‘승단’ 이 세가지를 불교에서 제일 중요시 여겨. Buddha, Dhamma, Sanga 이렇게 말해.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 들어 보았나? 그 세가지 보배가 바로 이것들) 혹시 어떤 불상사로 대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적절한 숫자의 승려들이 여러군데 지역(나라)에서 그런 특권을 가지고 있도록 하셨는데, 붓다가 살아 계실때는 여자스님들도 (비구니) 물론 있었어. 붓다의 부인 ‘야소다라’도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성불했다고 내가 이미 말했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난리통에 그만 다른 여자분들께 비구니계를 줄 특권을 가진 여자스님들의 대가 끊어지고 말았던 거야. 매우 오래전에.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지금 한국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은 무면허 운전이십니다 🙂 그래서 또 태국에는 여자 스님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무슨 여성차별을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잔차의 제자였던 한 호주인 스님이 (다시말해, 태국 테라바다 불교 비구) 짠밥이 무척 많아져서 비구 수계를 주는 권위를 가지게 되었어. 자격이 되는 호주인들이 이분을 통해서 태국에 가지 않고서도 스님이 되었고 또 이 분의 유튜브 설법들도 인기 짱! 잘 나갔어요. 건데 이 사람 국적이 뭐랬더라? 호주! 어떤 여자분에게 비구니의 계를 자기 마음데로 준거라. 그러고는 승단에서 쫒겨났데요~~~ 이 사람들이 원래 좀 그렇다니까. 이 글 시작하면서 내가 뭐라고 했었더라 🙂

내가 옛날에 또 어떤 책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테레사회 수녀가 되려다가 뛰쳐 나온 여자가 쓴 무슨 인사이드 스토리 같은 내용이었어. (갑자기 주제를 바꾸고 또 주제넘게 말해서 미안한데) 영어를 좀 시간 내서 공부 하세요. 아니 영어가 싫으면 일어, 불어, 독어를 하시든지. 한국어로 씌어진 서적이나 정보의 10배 아니 100배를 듣고 보고 알 수가 있게 되요. 그리고 또 자신을 상대적으로 볼 능력도 동시에 생기고. 이것 중요합니다 선생님 득도 하시는데에.

다시 원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테레사 수녀는 천주교에서 성녀로 추앙받지만, 또 시각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혹은 어떤 한계가 있는 언행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네. 아마 교회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전혀 배재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분의 전체 모습을 보고 판단하여 성녀의 반열에 올린 것이 아닌가 싶어. 완벽함만이 성녀나 성인의 조건일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인간적인 한계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주 훌륭한 업적, 인간이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쌓았으니 그렇게 존경하고 기리자는 것이 아니겠나. 이 여자는 그 수녀회에서 수련중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다가 결국은 수녀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뛰쳐 나오게 돼. 건데 왜 그런 책을 썼겠어? 돈 벌려고? 어쩌면. 하지만 그것 보다는 ‘내가 이상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상해서 그랬다’는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어 내게는.

이렇게 자의식 혹은 자기주장이 강한 것이 어떤 힘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지함 혹은 나약함의 증거이기도 하지 싶어. 컨텍스트나 상황에 따라서. 어쨋던 이 여자 이야기를 내가 왜 하는 것일까? 그 여자도 또한 호주인이었기 때문이지 🙂

우리 이웃 넘들 이야기였어요. 난민들에게 야비하게 하는 이야기는 센스티브하기 때문에 나중에 합시다요.

귀신 이야기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작년말에, 태국의 큰스님 ‘아잔차’ (Ajahn Chah)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내가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티라다모’ (Ajahn Tiradhammo) 스님께서도 (‘아잔차’의 제자이다) 참석하셔서 오랫만에 좋은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날 나왔던 귀신 이야기 그리고 또 내가 본 귀신 이야기 🙂

스님의 가르침이 끝난 뒤에 질의문답 시간이 되었다. 몇몇 매우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상당히 복잡하게 들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질문들을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적절히 웃어 넘기기도 하면서 잘 대답을 해주시더라. 마지막에 한 여자가 용기를 내서 어떤 질문을 하는데, 이전 사람들과는 달리 영어가 좀 딸려서 알아 듣기가 어려웠다. 차차 스님의 답변을 들으면서 그 질문을 짐작할 수가 있게 되었다. 질문인즉, 자기가 귀신이 씌었는지 다른 사람들의 과거나 어떤 개인적인 일들을 저절로 알게 되고… 뭐 그런 이야기 같았다. 그 여성은 말레이지아에서는 많이 배우고 또 진실한 사람인듯, 박사공부를 했으며 자원봉사일도 한다고 하였다. 어쨋든 스님께서 질문을 잘 듣고 대답하시길, 자기도 태국에 있을때 그런 사람들과 또 그런 경우들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한번은 어떤 부모가 스님을 찾아 와서, 자식이 자꾸만 자기들을 친부모가 아니라고 하면서 멕시코 어디에 있는 진짜 부모 만나러 가야한다고 난리를 친다고 하소연을 했었다고 한다. 얼마나 난리가 심했던지 결국 그 부모는 아이와 함께 아마 멕시코로 갔었던 모양인데 (형편이 꽤 좋은 집이었던 듯) 그런데 가보니 실제로 그런 지역 그런 동네에 어떤 아이가 어렸을때 급사했던 부부가 있었더라고 (아이가 묘사했었던데로). 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세상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이유로 혹은 어떤 에너지로 말미암아 이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본인에게 일어난다고 하여 그것에 마음을 빼았기면 안된다.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다만 지켜보며 지나가기를 기다려라. 내가 보았던 사례들 중에서 많은 경우는, 당사자들이 (그것에 마음을 빼았기고 또 그것에 빠지게 되면서) 무슨 신비한 능력을 얻어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지내다가, 시간이 지나서 그런 이상한 기운이 사라지고 나면, 아주 심한 휴유증을 앓으며 나쁘게 되는 경우를 보았다. 그저 별 것 아닌 지나가는 일이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

언젠가 우연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한 웹사이트에서, 기고한 글들에 (자기의 지식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좋은 글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긴 댓글들도 처음 보았고 또 그런 긴 댓글들의 또 다른 댓글들이 그렇게 때로 몰려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자기 잘 났다고 짖어대는 그 정교하고 긴 댓글들을 보면서, 그 속에 빠져서 사는 이런 자들의 상판과, 그런 짓을 열 올리며 하고 앉아 있을 모습과, 또 이런 자들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죄없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는 ‘이런 자들이야말로 귀신 씌인 사람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도 조심합시다. 까딱 정신을 잃고 빠지면 이렇게 귀신 씌이는 것 일도 아니랍니다… ‘귀신 씌인 소리’는 우리가 들어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근접한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다른 표현으로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 소리는 이곳에서… 🙂

학문 하악문

처녀 총각 시절 아내가 내게 들려준 유머인데,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떠올릴때 마다 웃음 짓게 한다.

  • 도서관에서 –

학문을 넓힌다.
학문에 힘쓴다.
학문을 닦는다.

  • 그리고 화장실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