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말종 변호사

혹시 이사람 누군지 아세요? 루디 줄리아니라는 미국변호사인데요 뭐하는 사진일까요?

이 사람은 일전에 말한 그 인간말종의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선거소송들을 대리하는 미국에서는 매우 알려진 변호사랍니다. 얼마전에 언론들을 모아놓고 부정선거소송에 관한 모종의 중대발표를 한답시고 인터뷰를 자처했었는데요, 그 물에 그 밥이라고, 그 인간말종과 똑같이 아무런 내용도 없는 황당한 인터뷰였다고 하네요. 아마 그때 머리에 발랐던 염색약이 땀에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별로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닌데 더욱 괴이한 모습이 되었군요 🙂

그저께는 하원의원들이 모인 어떤 청문회에 답변을 하러 갔는데, 생방송 중에 2차례에 걸쳐 방귀를 끼는 소리가 생생히 전파를 탓다는 소식도 있군요. 참 가지가지 하네요 그리고 말년에 도대체 왜 저렇게 살까 싶지요?

그런데 혹시 아세요 이 사람 루디 줄리아니는 오래전 뉴욕시장이었어요. 그때 9.11 이라고 미국이 큰 테러 공격을 당했을때 이 사람은 시장으로서 아주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당시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중 한명이었다고 해요. 어느정도였었나 하면, 이 사람이 뉴욕의 식당에 식사를 하러 들어가면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멈추지를 않았었다고 해요. 상상이 됩니까?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어쩌면 가장 큰 명예를 아마도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정당하게 획득해서 누렸던 것이 아니었던가 해요. 멋진 사람이었지요?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왜 그 인간말종이나 대변하며 이런 개망신을 당하면서 다니는 것일까요? 두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네요.

이 사람은 뉴욕시장 이후에 상원의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요. 미국 상원의원은 정말 엄청난 명예와 권력의 자리입니다. 숫자도 몇명 안되요.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루디 줄리아니는 그 인간말종 편에 섰어요. 그러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나이를 먹어 노망이 난 것이지요. 더 이상 가지 말아야 할 곳과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이제는 구분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과거의 영광이 그립겠지요. 하지만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기립박수가 멈추지를 않았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간 오랜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따라 이미 이리저리 오고 갔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그때 그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겠지요. 그렇기에 내려오지를 못하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그 인간말종 편에 서서, 어쩌면 4년 후에 다시 한번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서 미친 짓을 하고 있지 싶네요. 4년 후에 그 인간말종은 감옥에 있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데요.

여담이지만, 영미권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또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한국의 식자들과 언론들이 (미국서 힘들게 따오신 박사학위? 이방면에는 별 소용 없지 싶은데요…) 그 인간말종의 황당무계한 부정선거 발언에 마치 무슨 진실이 담겨 있거나 혹은 어떤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선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가 없었어요.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지 자발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저 미국 신문 잡지 이곳 저곳에 난 선정적인 기사들을 옮기는 수준인 듯한 모습을 보면서, 몇년 전에 그 인간말종과 김정은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서로를 협박하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 났어요. 당시 나는 한국방문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의 주류 언론뿐만 아니라, 그 주류언론에 의견과 정보를 제공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매일 읽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었어요. 미국에도 한반도 정세에 매우 정통한 교수들이나 소수 언론 매체들이 있어요. 그때도 그저 미국 주류 언론에 난 선정적인 기사들을 이것 저것 뽑아 번역하거나 인용하는 수준의 한국 언론들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인재가 없고 자원이 없나’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차차 깨닫게 되었어요 ‘어떤 종류의 정보나 분석은, 그야말로 오래오래 그속에 살아서 그들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요. 나 잘났다 소리처럼 들린다고요? 그런 의사는 없었지만 그렇게 들렸다면 쏘리 🙂

두어가지 덧붙이는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첫번째는, 나이가 들면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한발을 들고서 양말을 신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니까요.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혹시 내가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대답이 불분명하면 일단 중지 하는 것이 좋겠지요. 유명한 재벌이나, 정치가 혹은 스타 변호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해당되고 말고요. 최근 사망한 유명한 재벌, 일전에 블로그에도 한두차례 비극적으로 등장했던 그 사람도 자신이 가졌던 그 엄청난 돈으로 ‘내가 내 스스로의 삶에 균형을 더 잡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필요한 시간이나 공간을 사면서) 살고 있는가’ 자문할 능력이 참으로 있었다면, 어쩌면 더 멋지고 존경받는 모습으로 아직도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두번째는, 우리 아이가 어릴때 쓰던 표현에 따르면 ‘올라간 모든 것은 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 붓다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으뜸인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어쩌면 루디 줄리아니도 그저 모든것을 내려놓고 좋은 곳에 가서 올리브 농사나 지으며 평온하게 살다 죽게 될지도 모르지 싶네요. 누가 알아요 젊은뇬들 중에서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나이든 영감에게 끌리는 것들도 있지 않겠어요 🙂 건데요, 인간이 이게 안되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안된다니까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몬시뇰’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지금은 죽은, 그 수퍼맨이 (Christopher Reeve) 주연했던 멋진 영화입니다. 언젠가 이 영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네요. 어쨋던, 죽음을 앞둔 마피아 두목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입니다) 오랜 ‘합법적’ 사업파트너였던 주인공 추기경에게 죽기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부탁합니다. 주인공 추기경은 어렵게 허락을 해요. 이 마피아 두목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짓을 했었던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최근 두 사람의 사업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잠적한 추기경의 부랄친구를 찾아내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서 승락을 합니다. 그때 death bed에서 그 마피아 두목은 추기경의 눈을 마주보며 (이 사람은 눈을 마주보고 했던 모든 약속을, 설령 엄청난 손해가 있었더라도 여태껏 전부 지켰어요) 십자가에 맹세를 합니다. 친구를 죽이지 않겠다고요 그리고는 고백성사를 해요. 장면이 살짝 바뀌면서 이제는 말기암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그 마피아 두목이, 죽기전 마피아 패밀리에 대한 마지막 책임을 (손에 피를 묻히며 배신자를 응징하는 일을) 다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추기경의 친구는 조직원들에 의해서 이미 발각되어 호텔 구석에 몰려 있어요. 그는 추기경과 했던 약속을 되풀이하며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 마피아 두목이 소음권총을 머리에 발사하면서 말합니다 ‘그래 너도 나도 이제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겠구나. 하지만 어쩌겠니…’ 인간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이런 평범한 인간들의 한계와 고통을 (그 속에서 허덕이다가 가는 중생들의 삶을) 그렇게 안타까워 하신 것이겠지요. 오늘은 이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많은 제약회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미친듯이 개발하고 있어요. 상업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거대 제약회사로서 인류에 대한 책무를 다한다는 측면도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전 글에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가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자선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분도 빨리 효과적인 백신이 만들어져서 싼값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급될 수가 있도록, 큰 돈을 기부하여 백신을 몇천원 수준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분이 지난 몇달간 효과적인 백신을 가장 빨리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 제약회사로 지속적으로 언급해 온 회사는 우리도 들어본 ‘화이자’라는 제약회사 입니다.

오늘 이 화이자 제약회사에서, 90%에 가까운 매우 놀라운 효과를 보이는 백신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는 발표를 했어요. 여러분이 혹시 아실지도 모르지만 빌 게이츠는 그동안 곧 백악관에서 쫒겨날 ‘노랑머리 인간말종’이 미국 전체에게 큰 화를 초래하는 무책임한 짓들을 하는데에 반대해 왔어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매우 잘못된 대응을 여러차례 직접적으로 질타했어요. 한 신문에서 오늘 화이자의 백신발표를 언급하면서 ‘참으로 오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가 없다’고 했어요. 백신개발이 며칠안에 되는 것이 아니니 아마 일주일 전에 발표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상상이 되나요?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존 멕케인은 미국 ‘아리주나’주의 상원의원이었어요. 해군제독의 (아마 4스타) 아들이며 젊은 시절에는 공군에서 유명한 ‘문제아 파일럿’이었다고 해요.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비행기를 사고로 불태워 먹었다던가 항공모함에서 출격하기 전에 ‘우연히’ 미사일을 함상에서 발사한다던가 그런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근래에 암으로 사망한 이분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던 용감한 미국의 군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인들이 군인과 경찰의 노고에 얼마나 감사하며, 특히 참전 군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여러분들도 알고 있나요? 어디서든 줄을 서 있는 군인들을 가장 앞으로 보내서 편의를 봐주는 것은 미국에서는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합니다.

존 맥케인은 북베트남 상공에서 피격당해 낙하산 탈출을 합니다. 뼈가 심하게 부러진 채로 붙잡혀 북베트남군 병원을 거쳐 감옥에서 수년간 갖혀 있었어요. 이 사람이 누구의 아들인지 아는 북베트남군들이 가만히 두었겠어요? 물론 몽둥이로 패거나 고문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온갖 방법으로 절망감과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기들이 시키는데로 하도록 만들었겠지요. 지금도 존재하는 비데오를 보면 이 사람이 병원에서 붕대에 칭칭 감긴채로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약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전쟁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강제로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요. 전쟁이 끝나고 이 분도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되돌아 왔어요. 미국은 이 사람을 ‘화냥년’ 대접하며 천대하기는 커녕 나라에 봉사한 참전 영웅으로 대접합니다. 그래서 정계에 진출하여 상원의원도 오래하고 대통령 후보도 되었었지요.

이야기가 옆길로 좀 세는데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되었지만 예전에는 처신이 좋지 않은 여자를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 화냥년이라고도 표현했었어요. 이 표현의 어원은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이 많은 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쳤는데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어떻게 고향으로 되돌아 왔을때 (‘환향녀’ 즉 고향으로 되돌아온 여자) 우리 조상님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더러운 여자라고 그렇게 천대를 했다고 해요. 임금까지 나서서 그들이 우물에 목욕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기만 하면 차별하지 말고 대해주라고 했는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지요. 이 표현의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후로 살펴보건데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그녀들이 자기 발로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나라에 갔나요? 누가 그 처녀들을 짱께들에게 붙들려가게 만들었나요? 아마도 이런 못난 남자들의 전통이 유구하게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자기는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며 지랄을 떠는 넘들이, 바로 헬조선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당신과 나는 예외겠지요 🙂

다시 그 인간말종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자는 군대를 가지 않았어요. 베트남전쟁때 (무작위 추첨을 통한) 강제징집을 교묘한 방법으로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라를 위해서 한번도 총을 잡아보지 않은 자가 참전 조종사였던 존 맥케인에게 ‘포로로 잡혔던 군인에게 무슨 명예가 있는가’ 이런식의 극히 모욕적이고 치명적인 악담을 합니다. 당연히 존 맥케인의 장례식에도 초대를 받지 못해요. 두 사람은 같은 정당 소속의 정치인들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존 맥케인의 부인은 여러차례 직간접적으로 (반대 정당의)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표현을 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 존 맥케인이 상원의원을 오래 했던 이 아리조나 주에서, 인간말종이 쉽게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던 그곳에서, 근소한 표차이로 바이든이 승리 합니다. ‘죽은 존 맥케인이 산 트럼프를 작살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존 루이스는 흑인 인권운동을 오래 했던 존경받는 하원의원이었습니다. ‘조지아’라는, 짐작컨데 옛날 흑인 노예들이 목화를 땃던 그런 미국 남부 주의 (state) 하원의원을 수십년 지내다가 근래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이 사람도 존 맥케인처럼 자기 주에서는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이 사람이 죽었을때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그 인간말종에게 언론들이 인터뷰를 했어요. ‘이분의 죽음과 업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몰라.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뭘 믿겠어?’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언론들이 다시 물었어요 ‘흑인들의 인권신장에 근래에 가장 기여한 분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은 존 루이스를 떠올렸겠지요. 그 인간말종이 대답했어요 ‘응… 나. 내가 흑인들의 인권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기고 있지’. 이 언론의 인터뷰는 많은 미국인들의 공분을 샀어요. 특히 죽은 존 루이스의 고향인 조지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상상할 수 있겠지요. 미국 대통령 투표결과가 발표되었는데요, 보수적인 조지아 주에서도 그 인간말종은 근소한 차이로 바이든 후보에게 지고 맙니다. 역시 ‘죽은 존 루이스가 산 트럼프를 작살냈다’는 기사가 뜹니다.

당신과 나도 여태껏 살면서 비록 그 정도나 횟수는 다를지언정 얼마나 이와 비슷한 짓들을 했었을까요? 내가 언제 원수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었던지 또 내가 어떻게 앙갚음을 당했었던지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보복은 있었으되 어리석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던 언행의 결과는 부매랑처럼 언젠가는 그리고 어떤 형태로건 내 자신에게 되돌아 옵니다. 그것이 남들에게 했던 것이건 자신에게 했던 것이건 혹은 무었이었건 말이예요. 오늘 밧줄을 얽히고설키게 만들면 언젠가 그것에 내가 걸려 크게 넘어지는 순간이 올꺼예요. 그 순간은 내가 예상하지도 또 원하지도 않는 때일 것이며,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너무 늦겠지요. 지금 덜 얽히고설키게 만들며 또 하나라도 더 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이미 수천년 전에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어요.

길에 떨어진 사금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

알려진 골프코치들 중에서 김헌이라는 분이 있다. PGA니 KPGA 선수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무슨 미국 티칭프로 자격을 내세우는 분도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이분만큼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을 지도한 실전 경험을 가진분은 (5,000명 이상)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것이다.

이분이 왜 그렇게 유명하신가, 그런데 왜 돈은 엄청 못버셨는가 하면 🙂 소위 말해서 도가 튼 분이기 때문 아닌가 한다. 이분의 강의를 들으면 진심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김없이 그리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분이라는 것을 자주 그리고 분명히 볼 수가 있다.

아마 이분의 그런 점들이 (가식없이 꾸미고 포장하지 않으며 또 자신의 것이라고 움켜쥐고서 돈 내놓아라 하지 않는 것등) 이분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한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받는 존경과 또 스스로 느끼는 진정한 만족감과 재미를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한다. 돈과 권력으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게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뒤돌아서 침뱃는 그런 가짜를 사고 팔아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짜 보물도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판에 그런 가짜를 왕창 모아 가지고서 뭘 하려나?

내가 지금껏 골프에 버벅거리며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과 글과 책을 보았지만, 김헌선생의 가르침 만한 것을 동서양 어디서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공짜로 나누어주신, 자신의 골프경험 30년을 농축한 이 2시간짜리 강의만큼의 가치를 지닌 가르침을 나는 아마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보지 못하지 싶다. 이분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기에 이렇게 내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혹시 그대도 관심이 있으면 보기를 권한다. 그 훌륭한 강연은 여기를 클릭.

이분이 어떤 강좌에서 하신 말씀중에서 내가 늘 기억하며 골프뿐만 아니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있다. ‘수천명의 아마추어를 가르쳐 보았지만 골프의 즐거움 아니 인생의 행복이, 땀을 흘리며 지루하게 길을 가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으면서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에서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이나 금광을 찾으면서 사는것 같다. 세상에 그런 금맥이나 금광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설령 그것을 찾았다손 치더라도 금맥이나 금광이 참된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분의 가르침, 공짜 좋아하는 ‘가난한’ 내게 무료로 주시는 이 훌륭한 가르침들을 가지고서 나는 ‘반드시’ 싱글이 되고 또 득도하리라 🙂

그대는 길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우며 오늘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금맥을 찾아 헤매며 내일의 행복을 쫓는 사는 사람인가? 혹은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이번 홀에서 돈만 따면 되는 사람인가 🙂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어제 오랫만에 찾아온 아이와 주말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가 첫 차를 살때 얼마나 너의 선택을 확신했었던지, 나는 아직도 우리가 함께 앉아서 사인하던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후로 아이는 차를 (물론 고물 중고차들) 열번은 더 바꾸고 또 학생때는 아르바이트로 큰 중고차 딜러 회사에서 몇년 일하기도 했었다. 일반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중고차 도매상들과도 상대하고 또 직접 옥션을 현장에서 하기도 하면서. 혹시 들어봤나 옥션하는 영어를,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지? 이렇게 이제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가, 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당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 ‘아빠는 그때 왜 나를 막지 않았어요?’라고 궁금한 듯 물었다. ‘너의 설익은 확신과 그에 따르는 서두름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 했었지만, 내가 너의 나이일때 원하던 것들을 그렇게 가져본 경우가 별로 없어서 선물인 셈 치고 잠자코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가 모든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이가 첫 교통 벌과금을 끊겼던 에피소드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지나가는 차량이 전혀없는 한적한 주택가 막힌 골목에서 엄마 아빠의 차를 차고에서 잠시 빼서 친구를 태우고 그 골목을 몇 미터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경찰차가 하필이면 마침 그때 나타나서 면허를 요구했고 아이는 초보면허 조건을 위반하면서 친구를 태우고 또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죄로 엄청나게 큰 벌금을 물게 되었던 것이다. 벌이가 없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우리가 대신 벌금을 내 주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가 물론 먼저 ‘아이고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살살 빌었었겠지. 우리는 그 이벤트가 아이에게 돈으로 환산 할수 없는 중요한 인생의 레슨을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었다. 십년 세월이 흐른후에, 물론 그 중간에도 몇차례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안전운전 습관을 위해서, 그 고마운(?) 경찰관과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 그 경찰관은 숨었다가 벌금을 걷는 이상한 사람은 물론 아니었지만, 아침에 배우자와 크게 다투고 나왔었거나 혹은 업무 첫날이었던 생초보 경찰관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뿐 🙂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치 그런 괴로웠던 에피소드가 (손해, 후회, 두려움등) 없이도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결코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익이나 얻음에는 반드시 이전에 지불했던 댓가가 있다. 어제 지불한 댓가없이 오늘의 얻음은 (경험 혹은 깨달음)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배움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를 통해서 생길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자신이 깊이 엮이지 않은 (deeply involved) 그런 순간적인 간접 경험은 쉽게 왔다가 쉽게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연이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생각을 더 발전시키면 장차 괴로운 과정을 거쳐 망상에서 깨게 된다. 1960년대 극빈국 한국에서 미국대학에 유학갔던 사람들이 했던 대학 식당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첫째는 학생식당 구석에 있던 ‘누구나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주스기계’를 보면서 마치 천국을 본듯 가치체계에 거대한 혼란이(?) 왔었다는 것이고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던 집에 사과가 익도록 하나도 남아나지 못했던 몹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새가 먹은 것이 아니다), 둘째는 식당에서 거룩한 양식을 드시는 미녀 여학생들 중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지어주던 사람들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서 혼자서 쑈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눈이 마주쳐도 거의 아무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나 이곳처럼 몇몇 팔자 좋은(?) 나라들에서는 눈이 딱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거나 혹은 째려보면서 지나가면 무언가 잘못되었나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거나 혹은 서로의 안부를 ‘오늘 어때요?’ 가볍게 묻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미녀 여학생은 그냥 그렇게 미소지었던 것 뿐이었는데 🙂

지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1960년대 미국 유학간 그 한국 청년의 상사병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가? 아이가 첫차를 사면서 보여주었던 그 확신과는 다르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었인가 🙂

서론이 길었다.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라는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면, 작년에 한 육개월 탁구를 규칙적으로 연습했었다.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몇차례 치면서 오래 꺼져 있던 불이 재점화 되었던 것이었는데, 아내가 처음 몇주 혼자서 광란하는 것을 보더니 ‘레슨을 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참고로 내 수준은 동네탁구 중상위 정도였다. 어렵게 레슨을 주선해서 몇차례 먼거리를 운전하여 배워 보았다. 이곳에는 거의 100% 세이크핸드이므로 팬홀더를 사용하는 내게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이브등 한두가지 내가 꼭 원하던 기술을 시도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만. 멀리 운전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무리하게 레슨을 받다가 허리도 아파서 결국은 대여섯번 하고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중고 탁구로봇을 레슨비 내는 대신에 구입하게 되었고 그것이 차고에서 여름내내 내가 드라이브를 집중적으로 연습하여 마스트하는 또 다른 인연으로 발전하였다. 하나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학교때도 안되던 드라이브를 이 나이가 되어서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드라이브 공격으로 아마 지역5부 정도의 수준으로 향상이 된것으로 생각한다. 함께 탁구치던 대부분의 동료들을 격파하였다, 그 드라이브 공격으로. 차차 탁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데, 몇달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며 했던 루프 드라이브 연습의 결과로 생각지도 않았던 복근이 생겨난 것을 나중에 골프를 재개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골프 스윙의 동력과 (힘의 원천) 축은 어디인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복근(코어)’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탁구가 인연이 되어 우연히 생겨난 복근과 그를 이용하여 좌우로 스윙했던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골프 스윙에 특히 내가 어려워하는 드라이버 스윙에 큰 도움이 됨을 차차 깨닫고 있다. 마치 우리 아이가 댓가를 지불하고 무언가를 얻었던 것처럼, 나도 나름대로는 꽤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몸으로 증득한 깨달음’이다.

턱걸이는 팔힘으로 하는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특히 손을 안쪽으로 돌려잡고 하는 친업의 경우) ‘몸 전체의 근육으로 하는데 복근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마도 팔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지 싶다’고 대답하지 싶다. 턱걸이도 복근의 힘을 필요로 한다.

‘골프는 맨탈’이라고 하도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긴 하는데, 골프를 못치는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좀 향상 시키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무었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집중력이 중요한데 그것도 체력이 고갈되면 무너진다’ 이 정도가 내게 가장 그럴싸하게 들린 골프 맨탈 이야기였다. 혹시 그대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내가 근래에 깨달은, 골프 맨탈은 무었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말하자면 ‘골프를 치면서 그리고 샷하기 직전에 마음속에 걱정되거나 혼란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생기는 것을 잘 막아내고 조절하여, 자기가 연습한 만큼의 실력을 몸이 구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이다. 물론 중년 주말골퍼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맨탈이 강해진다고 갑자기 공이 바로 가거나 멀리 가지는 않고 또 스코어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흡사 맨탈이 강하다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대 위에서 뒤로 넘기가 갑자기 가능해지지 않음과 완전히 동일한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연습한 범위안에서 우리의 현재 신체가 허락하는 한계안에서 자신이 가진 최고 능력의 샷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의 효과이자 결과다. 어떻게 하면 골프 맨탈이 강해지나? 스윙연습? 체력단련? 도움이 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지금 치려는 샷에 두려움이 없어지면 (혹은 몸을 방해하지 않을만큼 적어지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냐고? 중년 주말골프에게 가장 현실적인 처방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런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을 접는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치라는 말은 아니지만, 오비 말뚝이 보이는 홀에서 드라이버를 치려는 순간에, 혹은 2펏으로 끝내고 싶은 어려운 롱펏을 할때,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오비가 나거나 3펏을 해도 괜찮다고 ‘진정’으로 마음을 먹는 순간 몸은 긴장을 의욕으로 바꾸어 ‘지금 내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샷’을 허락한다. 진정성 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나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니 오해 말고. 그 결과가 오비거나 3펏이면 그것이 나의 지금 골프 능력인 것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억울할 이유도 없지 않나? 사라진 비싼 새공들이 아까우면 중고공을 사용하고  내말 안듣는 비싼 장비에 마음이 괴로우면 자기 수준에 맞는 장비에 만족하는 것도 골프 맨탈에 관련이 있지 싶다. 생초보와 세계적 수준의 프로가 동일한 장비를 ‘흔히’ 사용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유일하지 싶은데, 이 괴이한 상황이 (어처구니 없는 자유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면 골프 맨탈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차차 선택을 하게 되지 싶다. 이렇게 골프 맨탈이 차차 나아지면, 이제 골프 맨탈 이야기는 그만 좀 하고서, 그저 스윙도 연습하고 또 체력도 기르면서, 좋은 코치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숏게임 연습도 좀 하노라면 ‘몸으로 하는 골프 능력’이 향상 되겠지. 그러면 점수도 좋아지지 않고 어떻게 베기겠나?

말은 쉽지, 하지만 유튜브 보거나 남의 이야기 듣고 읽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교통 벌과금을 물고 그 빚을 갚으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좀 뼈에 사무치는 시간이 무르익어야, 섣부른 확신이 불러온 손해를 깨닫게 되는 과정과 후회하는 마음을 되씹는 괴로움이 있고 난 후에야,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으로 심신이 좀 변한 다음에야, 그 인연을 따라서 더 나은 무었이 저절로 그리고 참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해탈 열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