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제자

탁구제자가 생겼다. 이름이 좀 특이한데 ‘내 왼쪽’이라고 🙂

작년중순부터 오랜 공백뒤에 재개한 탁구에 재미를 붙여, 규칙적으로 집에서 로봇으로 연습을 하고 회사에서 동료들 매주 시합을 그리고 또 클럽에도 간간히 가서 모르는 고수들과도 한번씩 붙어 본지가 이제 반년이 되었다. 나는 소위말하는 구식탁구라, 요즘은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펜홀더 채를 사용한다. 백핸드에 (특히 아마추어들은) 큰 약점이 있지만 동시에 포핸드 드라이브나 스매쉬를 강하게 구사하기 수월한 강점도 있다더라.

탁구가, 한쪽 팔과 어깨 손목을 (그리고 허리까지도 한쪽 방향으로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편방향 운동인지라, 나도 규칙적으로 치게 되면서 몸에 도움이 되는 면도 많지만 또한 전부터 늘 좋지 않았던 오른쪽 어깨에 상당한 무리가 가해지고 자주 통증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펜홀더 라켓을 쥐고 자주 장시간 탁구를 치면 (라켓 뒷면을 받치는) 중지 첫째 마디가 휘면서 통증을 느끼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러면 남들 다하는 쉐이크핸드 채로 (밥주걱처럼 생긴 채를 손바닥 전체로 감싸 쥐는) 바꾸면 되지 않는가 생각하겠지만, 그게 또 해본 사람들 말에 따르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고 한다. 시간도 길게는 수년 걸리기도 하고. 평생 익숙해진 수저사용 버릇을 여간해서 고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작년에 탁구에 재미 붙이면서, 집에서 연습할 상대로 중고로봇을 하나 싸게 장만했었다. 이것이 사람과 달라서, 내가 공을 개판으로 쳐도 성을 내거나 다음에 만나면 슬그머니 피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잇점이 있다 🙂 어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왼손으로 쉐이크핸드 채를 들고 로봇을 상대로 탁구연습을 해보았다. 내가 이글을 시작하면서 말했던 새로운 제자.

골프 코치중에서 유튜브 활동등을 통해서 오래동안 잘 알려진 ‘숀 글레멘트’라는 PGA코치가 있다. Shawn Clement’s Wisdom in Golf 내가 보기에 아주 좋은 골프레슨이 거의 무료로 제공되니 그의 유투브 채널을 한번 보시라. 거의 5-10년 진행해온 레슨들이, 내용도 좋지만 또 양도 엄청나서 어쩌면 당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뜬금없이 이 골프코치 이야기를? 왜냐하면 이 사람은 (원래 오른손잡이면서) 왼손으로도 골프를 거의 오른손과 같은 수준으로 치는 사람이거든. 처음봤을때는 입이 딱 벌어지더라. 이것 정말 어렵지 않겠나? 내가 아는 어떤 골프코치가, 옛날에 자기가 코치스쿨에 처음 들어갔을때 (초보자들이 골프 배우는 애로를 이해하라고) 학교에서 왼손으로 골프를 몇시간 치게 했었단다. 그만큼 어색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쉐이크핸드 탁구채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일본 펜홀더 채보다 대략 1/3정도가 더 무겁다. 고무가 양면에 모두 부착되기 때문이다. 말이 그깟 1/3인데 실제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엄청나다. 같은 채라도 고무를 바꾸면서 채전체 무게가 10%만 늘어도 (1/3은 커녕) 단번에 느낄수 있고, 게임 지구력은 물론 부상에도 크게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 나도 그런 경험을 약간 하기도 했고. 내 왼팔. 왼손목. 왼어께 그리고 복근을 (위에서 볼때)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것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신상품, 새것들이다. 이 새것들을 어제 처음 사용해 보았다. 무거운 쉐이크핸드 채를 들고서도 신나게 씽씽 🙂

여태까지 오른쪽 어깨나 중지에서 심한 통증을 느낄때면 그저 마사지를 하면서 이삼일 탁구를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하체를 쓰는 다른 운동을 하긴 했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내 왼팔’ 제자와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이라 겨우 공을 뚝딱 퍼드득 넘기는 수준이지만, 간혹 시도해본 포핸드 백핸드 드라이브가 신나게 들어갈 때도 있더라. 어제 이 새로운 제자와 탁구를 치면서 땀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고서 내심 기뻣다. 새로운, 어쩌면 좀 웃기는 도전이지만, 내가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운동의 옵션이 하나 더 생기고 또 조금씩 늘고 이루어 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누릴 기회도 주지 않을까 한다. 그렇치 않아도 내게 매번 깨져서 성이 나 있는 직장 동료들에게, 어느날 쉐이크핸드 채를 왼손에 들고서 한판 붙어 볼래 하면서 약올릴 계획은 전혀 없다.

아! 철수 시리즈 1

성공의 요소 – 겁을 상실한 철수씨

가끔 아내와 인생 성공의 요소들은 과연 무었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을때가 있다. 유치원 선생님 경험이 많으니,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유전적 혹은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이야기 할때도 있고 (복잡한 레고등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들의 ‘하늘과 땅만큼 다른’ 태도와 방식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할 예정이다) 우리 아이 친구들의 다양한 삶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이곳에서 한때 인연을 맺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민 유학 왔던 사람들의 삶에서 본 성공과 실패의 공통점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먼저 지금 떠오르는 내 잘났다는 이야기 하나.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지내기 힘들고 어려운 순서가 ‘여행 -> 유학 -> 취업’ 아닌가 싶다. 이 세상 어느나라 어디에서도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상대방 주머니에 넣어 주면’ (합법적인 방법을 나는 말하고 있는데, 설령 불법적인 방법을 당신이 굳이 포함한다고 해도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래도 아마 적용될 듯) 내가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얻을 수가 있다. 여행은 물론이고 유학도 마찬가지. 일부 돈을 내고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극소수의 대학들을 빼면, 상당히 좋은 대학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학들이 당신을 (사실상 당신 주머니에 있는 돈을) 쌍수를 벌여 환영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행지 사람들이나 유학대상기관들은) 당신이 적당히 기존의 맴버들과 어울릴만 하기만 하면 그리고 당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는 동안 별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줄 것이다. 아니 팔 것이다. 그러니 살 수가 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그런데 반대로, 이 세상 어느나라 어디에가도 ‘그곳 사람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 넣기’는 (역시 나는 합법적인 방법을 의미하고 있는데, 혹시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불법적인 방법을 포함해도 내가 말하려는 것이 여전히 적용될 듯) 위에서 말한 그 방향보다 열배 백배는 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외국여행 다녀와서 무슨 대단한 성취를 한것처럼 떠들거나 혹은 유학가서 무슨 학위를 획득했다고 잘난체 하는 것을 약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철수씨가,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는 바로 그 사람, 최근에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책을 냈단다. 이 양반 한국을 떠나 독일 미국 연구소에 잠시 적을 두며 있던 지난 한해 동안에 쓸쓸하고 괴로운 마음에 달리기를 좀 했던 모양인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내게 딱 들었던 생각이 ‘이 양반 또 다시 겁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일년 골프쳐서 보기플레이어 된 사람이 골프에 관한 책을 출판한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 나는 이것이 머리가 좀 돌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짓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양반 몇년전에 처음 정치무대에 등장했을때 사람들이 ‘당신 무언가를 다스리거나 경영하거나 혹은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나라와 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발칙한) 발상을 하는가’ 물었을때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생각에는 어떤 사람이 2미터 깊이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잘 할 능력이 있다면, 태평양을 건너는것도 그 능력을 활용하면 가능하지 싶다’고.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철이 없고 겁을 상실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좀 그랬었고. 이 양반 자신도 어쩌면 그것을 그 이후 몇년 동안 정치판에서 처절하게 당하면서 경험을 했던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부작용이 어쩌면 외국에서 미친듯이 달리기?

아내와 인생 성공의 요소를 이야기 할때 내가 가끔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 ‘겁을 좀 상실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런 객관적으로 증명할 경험도 능력도 전혀 없는 사람이, 술취한 호기 같은 것으로 겁을 상실한 생각을 하고 그런 짓을 잠시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깨면 그런 생각은 싸악~ 사라지고 그런 행동도 쑤욱~ 중지된다. 그런것 말고, 비록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라도 무언가 경험과 능력을 스스로 얻어보고 또 쌓아본 사람 그런 사람들 중에서 좀 겁이 없이 (판을 갈아치우자는) 발칙한 발상을 하는 사람이 크게 성공하고 정말 무언가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귀때기 새파란 나이에 이곳에 올때 겁대가리가 없었다. 세상을 모르고 앞뒤도 모르고 또 잃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배수진? 무슨 배우 이름인가? 그런데 완전 빵점은 면하는 딱 하나를 우연히 가지고 왔었다. 다른 친구들, 지금은 박사도 되고 원장도 되고 사장도 된 내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열심히 전공, 영어 그리고 취업 공부할때, 내가 혼자서 컴퓨터실에서 독학으로 익혔던 CAD기술과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태동기였지만 영어권에서 더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여기에 와서 이렇게 써먹을 것을 예상하고 작정하여 독학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을 열어 오래 또 멀리도 왔다. 이곳 사람들 주머니에 든 돈을 내 주머니로 합법적으로 옮기면서 🙂 물론 CAD는 인연이 다해 오래전에 내 인생에서 멀어졌고 지금은 몇장의 도면만 내게 남아 있지만. 그때, 지금도 가까운 직장 선배와 (아마도) 업계 최초로 CAD를 활용하여 도시설계를 했었던 곳을 구글맵으로 볼수있다. 그곳에 사람들이 정말로 산다더라.

철수씨의 책을 우연히 읽은 아내는 철수씨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쪽은 엄청나게 똑똑하고 부자요 너무나 알려진 사람이고 다른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빼면 🙂 나도 그와 내가, 아니 우리 내외 모두가 닮은점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이 부유하고 똑똑한 사람이 독일에서 한해를 사는 모습을 잘 담고 있는 그의 마라톤 책을 읽고서, 자신의 이민초기 경험도 떠올리면서, 이 사람이 참으로 겸손하고 진심이 있는 훌륭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능력과 성공여부에는 비록 관심이 없지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상한 여자같은 종자들 말고, 그 전후에 그 자리에 계신 훌륭한 인격자분들을 이어서 만약 철수씨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한국은 한 단계 위로 도약할 것이다. 돈? 경제? 그런건 모르겠고. 품격으로 말이다. 사람만 인격이 있고 품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라에도 그런 것이 있다. 한 나라가 노는 수준이 있고 국격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보아 왔다. 어느듯 우리도 이런 기준으로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왈가왈부 해보는 수준에 까지 도달했네! 훌륭하다 대한민국 그리고 철수씨도.

위빠사나 – 깨달음에 이르는 길, 첫번째 이야기

최근에 집중명상과 소위 ‘삼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글의 마지막에 ‘그럼 뭐?’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은 (내가 보고 들은데로) 좀 해보려고 한다.

먼저 그 글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다. 붓다께서도 집중명상의 (팔리언어로는 Samatha 혹은 Samadhi그리고 영어로는 calm meditation 혹은 concentration meditation으로 번역) 도사였으며 그것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을 남기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붓다께서 강조하신 집중명상은, 고요함 속에서 어떤 규칙적인 움직임에 (예를 들자면 자신의 호흡)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지, 어떤 일이나 문제해결등에 몰입하는 행위를 의미하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과 관련된 집중명상은, 산업공학자가 반도체불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오랜 기간 밤낮없이 몰입하는 것아니 바둑이나 만화 삼매경에 빼지는 것과는 다르고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한 어떤 복잡한 문제를 손쉽게 단 한번에 해결하는 ‘silver bullet’은 없다. 일전에 언급했지 싶은데,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한두줄의 식으로 혹은 한두마디 요약으로 설령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나 관련도 없고 또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싶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것으로, 예를들자면 GPS처럼, 보통사람들의 삶에 관련이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서 우리와 관련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또 누군가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면 우리가 그속에서 상대성원리를 발견하던지 느끼든지 그렇지도 못한다는데에 딜레마가 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쨋던.

그렇게 ‘한줄’ ‘단번에’ ‘당장’되는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대도 나도 ‘때로는’ 이런 것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는 보통 사람들이기에 오늘은 그 비슷한 해결책을 한번 말해보려고 한다.

이전 글에서 말했던 ‘그럼 뭐?’에 대한 단 한줄의 대답은 ‘집중명상으로 고요해진 마음으로 위빠사나 명상을 하라’이다. 이게 무슨 말? ‘위빠사나 명상’은 지혜를 구하는 명상이라고 한다. 무슨 지혜를 어떻게 구하는데? 위빠사나 명상에 무슨 거창한 비밀이나 엄청난 방법이 감추어진 것이 아니고, ‘위빠사나 명상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생성과 소멸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또 지켜보는 마음의 훈련(수련)’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당신이 어제 산 번쩍이는 새 승용차도 당연히 들어 있고, 올해 승진한 당신의 직업, 지금 당신 머리속을 오가는 생각들 그리고 하다못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달’ 이렇게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물론 처음에는 이미 과거에 발생한 어떤 생성과 소멸을 떠올리며 생각하게 되겠지만, 차차 생방송으로 발전하여 바로 지금 당신 마음속에서 그리고 머리속에서 생멸하는 그 욕심 (혹은 욕망), 혐오 그리고 환상 (혹은 착각), 이 세가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겠다. 이렇게 오래 잘하면 당신도 해탈하고 열반에 도달한다고 붓다께서 가르치셨으니, 이제 목표와 그에 도달하는 길이 한줄로 정리가 되셨나 🙂

이 직접적인 가르침은 한두해 전에 티라다모 스님께서 호주에서 하신 설법에 매우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목록 위에서 대여섯째 줄에 등장하는 ‘Calm meditation and observing greed hatred and delusion’이 바로 그 설법이 되겠다.


작년말에 탁구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동영상 몇개를 관심있어 하는 친구를 위해서 올렸었다. 탁구를 아마도 많이 해보지 않은 그 친구가 보기에는 로봇을 상대로 드라이브도 걸고 스매시도 하는 내 모습이 좀 괜찮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탁구를 좀 치는 사람들은 알지 (동네탁구 수준을 넘는 정도라면), 저렇게 로봇이 규칙적으로 보내주는 스피드와 구질과 낙하지점이 일정한 공을 신나게 치는 것과 실제 경기는 하늘과 땅차이며, 그렇게 로봇으로 연습한 내용을 실전에서는 아마 십분의 일 혹은 백분의 일도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어제 신년들어 처음으로 클럽에 가서 나보다 한두수 위인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사람들과 게임을 했었다. 최근들어 백핸드 스매싱을 꽤 연습했었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수천번 백핸드 스매싱 그리고 어중간하게 뜬 커트볼에 대한 포핸드 스매싱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었다. 실전에서는 어떻게 쓰일까 약간의 기대는 있었는데 금세 그 대답을 들었다. 12-15 게임 정도를 4-5명의 다른 사람들과 붙었는데, 백핸드 스매싱을 단 한차례도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차례 어중간하게 뜬 커트볼 스매싱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하였다. 전부 넷트에 걸리고 말았다. 당신이 탁구를 좀 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참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스포츠 이야기.

MMA라고 들어봤나? Mixed Martial Arts의 머리글로 아마 ‘종합격투기’ 정도로 변역되지 싶다. 쉬샤오동이라는 중국인 종합격투기 선수가 있다. 나이가 마흔정도로 지긋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물론 실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중국 전통 무술의 실전성’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온몸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상당히 잘 알려진 사람이다. 자기 잘난체 하거나 돈을 벌려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닌듯 하고, 중국인들에게 ‘엉터리 전통에 매달려 눈뜬 장님으로 21세기를 살지 말고, 현실을 자각하고 장차 실제로 더 부강한 중국 더 강한 중국 무술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당히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중국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물의를(?) 일으키는지 당신은 혹시 알았었나?

우리나라 태권도와 비슷한 혹은 더 큰 위상을 지닌 전통무술이 중국에는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이소룡을 통해서 보게된, 빠른 팔놀림을 위주로 상대를 공격하는, 영춘권 그리고 타이치 라고 불리면서 무슨 요가처럼 서구에 퍼진 태극권등은 중국인들이 크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중국 전통 무술의 대가들과 이 사람이 수차례 대결을 벌렸는데 (물론 공식적인 시합들이었다) 모든 상대를 KO로 박살 냈다. 일단 그중에서 압권인 경기 하나를 감상하시겠다. 이 두사람이 우연히 갑자기 이렇게 붙게 된 것이 전혀 아니다. 압도적인 기득권층인 전통무술하는 사람들이 온갖 비난과 비방 그리고 ‘이런 종합격투기 한다는 넘은 순식간에 한방에 날려버린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를 치고나서 성사된 경기라는 것을 알고 보시라.

압권인 장면은 코뼈가 부러지도록 얻어 터지고 KO패 당한 그 전통무술의 대가가 승부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13분15초 부근의 장면이다. 그야말로 무술에서도 쓰레기요 인간으로서도 전혀 수양이 안된 말종이라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나는 생각된다. 어떤 사람이 이런 댓글을 붙였더라. (이 전통 무술의 고수라는) ‘맞는 선수도 실제로 자기가 고수일거라고 착각을 했을것임. 주위에서 하도 떠받들어 주고 실전이란걸 경험 못해봤으니.’ 참으로 예리한 분석이요 명언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소소한 탁구경험과 이 중국인 MMA 종합격투기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었나?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과 위빠사나 명상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럼 다음에 계속 🙂

술권하는 사회 탁구권하는 친구

한국 단편 소설중에 ‘술권하는 사회’라는 것을 옛날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신식교육받은 새신랑이 날마다 술에 떡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착한 시골 새색시가 어느날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보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렇게 술을 먹인단 말이오?’ 신랑이 대답하였다. ‘사회가 먹이네…’ 색시는 부엌에서 술국을 끓이며 혼자말로 원망한다 ‘그 사회란 뇬 참으로 못되고 고약한 뇬이로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탁구장이나 들락거리며 학창시절을 허송세월 하였다. 어머니께 탁구란, 머리좋은(?) 자식을 망쳐서 좋은 대학 못가게 만든 원흉의 하나로 아마 영구히 기억되어 있을것이다. 탁구가 무슨 죄 그리고 머리는 무슨 머리 🙂

영호, 대환이, 화섭이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넷은 탁구단짝들이었다. 유도 유단자였던 영호는 운동을 원래 잘하고 또 머리도 있는 모범생이었는데, 드라이브에 이은 렐리로 게임을 했었으니, 쪼무래기였던 그 당시에 이미 지금 생활체육으로 치면 아마 4부나 5부는 되었을 것이다. 대환이와 화섭이도 잘쳤고. 나야 일관되게 공부도 꼴찌 탁구도 꼴찌…

오랜 세월이 지나, 올해 후반부터 다시 탁구를 규칙적으로 치기 시작하였다. 회사 동료들이 수요일마다 대학교 체육관에 모이는 곳에도 가서 치고 또 클럽에도 가서 동호인들과도 쳐보았다. 마라톤과 골프를 오래 해오면서 나는, 탁구는 그 스케일이나 운동량이 그저 조그만 탁자 주변에서 시끄럽게 따닥따닥 거리는 놀이정도라 생각하며 무시했었다. 막상 지난 서너달을 규칙적으로 연습을 해보니, 좋은 추억도 떠오르지만 나름대로 묘미가 있고 또 운동량도 만만치가 않다. 예를 들자면 하회전으로 오는 공을 루프드라이브로 회전을 주어 반구하는 훈련을 하면 맥박이 거의 160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내가 흘린 땀으로 차고바닥이 (뻥을 좀 치자면) 물바다가 될때가 많다. 내가 산을 뛰어 오를때 보통 그 정도 맥박이 되고, 정상부근에서 최대한 밀어부쳐 풍력발전기가 있는 정상에 올라가고 나면 맥박이 180정도가 되니 이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힘든게 장난이 아니다.

탁구를 이렇게 다시 치면서, 몹시 유사한 모양과 크기의 공을 사용하는 이 골프와 탁구라는 스포츠가 또한 몹시 상이한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딱 정지해 있는 공을 내가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움직임을 시작하여 멀리 또 바로 쳐보내고자 하는 운동인데 반해서 (이넘의 운동은 내가 원수?) 다른 하나는 결코 정지하지 않고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며 변화무쌍하게 회전되는 공을 내가 따라서 움직이며 정신없이 쳐서 상대방에게 보내는 운동이라는 것이 (니가 원수?) 우습기도 하고 또 흥미 있기도 하다. 흡사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자신이 초래한 문제들로 괴로워하고 또 어떨때는 남들이 초래한 문제들로 괴로워하는 그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 나이가 들면서 운동도 다양화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굳은날도 있고 햇볕이 쨍한날도 있을테니…

Win Win – 가야금과 고토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