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 Win – 가야금과 고토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

NO 3C

No Condemnation No Criticism and No Complaint.

나무래지 말고 비난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 집 나간 비둘기처럼 당신에게로 되돌아 오리니. (Dale Carnegie의 저서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에 나온 말로 기억)

그저께 내가 정신이 좀 돌았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옛날에 보초서다가 잠시 미쳐서 쓰레기 줏어 먹었음 – 참 잘했어요) 어디 그뿐이겠나. 비슷한 짓들 수없이 많이 했지.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을껄. 정신이 되돌아 오면 보통 아이씨 하면서 빨리 잊고 지나가려고 하겠지만, 일어났던 일을 글로 쓰면서 조용히 되돌아 보는 것은 어떨까? 당장은 잘 쓰지지도 않고 또 괜찮은 생각도 들지 않지만, 신체를 사용하는 운동기술처럼, 반복해서 쓰고 또 생각하노라면 점점 나아지고 좋아지지 싶은데. 며칠 지나서 읽어 보고 또 몇 주 지나서 다시 쓰고 하면서 얻는 것이 있지 싶다.

NO 3C가 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씨 하면서 자신을 나무래고 비난하고 또 자신에게 불평하면 어떤 일이 생긴다고? 집나간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 온다더만. 역설적인 말같지만, 이렇게 되씹는 과정을 통해 잠시 미쳤던 자신의 모습, 햇가닥 머리가 돌았던 자신의 이면을 보게 되고 차차 받아들이게 되면, 지나간 일들과 그런 짓을 했던 자기 자신을 차차 덜 나무래고 덜 비난하게 되지 싶다. 비둘기가 차차 헷갈려 하면서 집으로 되돌아 오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NO 3C를 타인들에게 적용시키면, 그들로부터 3C를 받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때때로 수준이 너무 낮은 상대방에게 적용시키다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좀 발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크고 길게 보면 그래도 남는 장사요 자기 자신에게 훨씬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말했지만, 이전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짓을 계속할때’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았다. ‘모른다는 것’ 본인의 언행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인줄 알았었다. 근래에 와서, 어쩌면 ‘모른다는 것’ 보다는 ‘자기만의 이유가 완강하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 ‘자기만의 이유’ 놓지 못하고 또 양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짓을 계속하고 지속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때때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결과들을 보면서도, 그토록 자기만의 이유를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을 놓아 버리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아무 존재감도 없는 nobody가 될까 하는 ‘두려움’이 아닌가 한다.

우리 인간 존재가 필요로 하는 원초적인 욕구인데 어떻게 나무라겠나.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가지고 있을 ‘그들의 완강한 이유’를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게 되겠지. 서로 서로가. 모르면 배우면 나아질텐데, 이렇게 손에 잡히는데로 본능적으로 완강하게 붙잡고 있으니, 어떻게 상태를 개선하거나 향상시키기도 훨씬 어려우리라.

NO 3C는, 일단 표면적으로라도 ‘자기만의 완강한 이유’를 좀 내려 놓아보자는 시도고, 이미 지나간 ‘내가 저지른 이상한 짓들’을 반복해서 쓰면서 되씹는 것은, 내가 완강하게 붙잡고 있었던 나만의 이유를 심사숙고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완강하게 붙잡고 있는 그들의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시도다.

점점 더 작은 수의 비둘기가 점점 덜 자주 당신에게 되돌아 오기를 바란다 🙂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두번째 이야기

옛날에 한국이 미국원조를 많이 받을때 ‘교육원조’의 일환으로, 서울대 사람들이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많이 받았었다. 한때 서울대 교수들 중에서 이 대학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미네소타 주립대’ 하면 지명도가 아직도 상당하지 싶다. 이 미네소타 주립대는 영어로 ‘The University of Minnesota, Twin Cities’ 라고 하며 세계 50대 대학, 미국내 톱20, 재학생 숫자 5만에 가까운, 실제로 유명하고 좋은 대학이다.

미네소타주에는 대학교가 많다. 그리고 주립대학교도. 1995년 경에 미네소타 지역의 칼리지 (전문대) 그리고 교육대등을 합쳐서 ‘미네소타 주립대학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 이전까지 ‘Moorehead State University’ 그리고 ‘Mankato State University’ 등의 독자적인 이름과 역사를 가진 미네소타 지역 소규모 전문대 혹은 교육대들이 이 시스템 일부가 되면서 현재 알려진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무어헤드)’ 그리고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맨카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책의 저자 홍교수께서 재직중인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는 재학생 6천명 정도의 소규모 지방 대학교로서, 세계 대학 랭킹에 나타날 수준은 아닌 community college 혹은 미국내에서 중하위권 수준의 지방 대학교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홍교수께서 가르치는 철학과의 경우 학사과정만 개설되어 있으며, 또한 이 대학에는 (불교등 종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학과는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일하는 대학교는 종교학과가 있는데, 학부생 커리큘럼을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그런 내용과 수준의 과정들이 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분이, 미국 정규대학에서, 그것도 이공계통이 아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드문일이고 또 이분의 불교관련 연구 내용도 물론 훌륭하겠지만, ‘미네소타주립대학’ 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이분의 책과 이야기들이, 한국불교(인)의 모자람을 되돌아보고 또 좋은 발전 계기로 삼는 것을 넘어서, 무슨 엄청나고 새로운 권위로 받아들여질까 해서 하는 말이다. 한번 물어 봅시다. 우리나라 대학전체에서 100위권 혹은 그 아래 수준인 작은 지방대학교에서, 학부생 3,4학년들을 가르치며 사용한 철학 혹은 종교학 교재를 어떤 교수가 출판했다고 한다면, 그대가 서점에 갔을때 혹은 전자책을 구매할때 거들떠 보기라도 하겠나? 그런데 이 책은? 미국 지방대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했던 내용은 무언가 차원이 다르고 거룩한가? 나도 영어권 대학 그리고 대학생들 좀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들이 허우대가 크고 우리나라 또래들보다 좀 더 독립적인 것은 맞지만, 무슨 대단한 지적수준의 소유자들거나 한국 대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는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에게 홍교수께서 해준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물론 출판하면서 가감이 있었겠지만,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홍창성교수 본인이 책 타이틀을 그렇게 하자고 했을까. 돈벌이 하자고 출판사 뇬넘들이 잔대가리 굴린 것이지. 참고로, 홍교수는 이력을 밝힐때 분명히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 라고 밝히는 분이며, 도를 많이 닦은 분이니, 실력과 글의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어할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탁구 치지? 나도 치는데, 지나가는 사람 열명하고 붙으면 아마 9명에게는 이기지 싶은데. 물론 그래봐야 어릴때부터 제멋대로 친 동네탁구 수준이지만. 최근에 부서 사람들 여러명이 수요일마다 체육관에서 탁구 치는 모임을 조직해서, 나도 가끔 비가 오거나 해서 산에 가기 어려울때에 끼어서 뚝딱거리며 쳤었더랬다. 요새야 밥주걱처럼 생긴 채로 (양면 모두 사용), 놀부 마누라가 흥부 빰 때릴때 쥐던 모양으로 채를 잡고 치는 것이 대중적이지만, 내 세대만 하여도, 탁구채가 펜홀더라고 형태도 다르고 (앞면만 사용) 또 쥐는 법도 다른 채 밖에는 없었다. 몇번 치면서 어울리다 보니 재미도 있고, 또 게임을 하면, 다 이기는데 한사람에게만은 이기기가 어려워서 연구도 하게 되면서 좀 엮이게 되었다.

혹시 상상이 될란가 모르겠는데, 앞면밖에 사용할 수 없는 이 펜홀더 라켓으로 몸 왼쪽으로 오는 공을 치려면, 팔을 돌려서 손바닥이 상대방을 향하게 비틀어 쳐야만 한다. 점점 젊어지니 이렇게 하는데 부담이 생기고 또 괜스래 어려운 느낌이 들더라 (연장 나무래는 목수?) 그래서 소위 이면타법이라고 펜홀더 라켓 뒷면에도 고무를 붙여서 (‘중국펜홀더’처럼) 쳐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남편이 탁구치는 시간에 부엌에서 ‘명상하면서’ (일전에 권장했던데로) 일하고 있을 그대를 위하여 설명 드리자면, 오른손잡이인 놀부 마누라가 밥 좀 달라는 시동생 흥부의 빰을 밥주걱으로 일딴 한번 때리고 (마주선 흥부의 왼쪽빰에 작렬) 팔이 되돌아 오는 길에 흥부의 오른쪽빰을 밥주걱의 반대면으로 두번째로 강타하는 바로 그 모습이 되겠다. 이때 손등이 상대방을 향하고 있다 🙂 여러가지 노력을 들여서 라켓을 바꾸고, 유튜브도 많이 보면서 연구 그리고 집에 있는 탁구대에서 연습도 했었더랬다. 어제 실전에서 해봤는데 그야말로 0점 전혀 안통하더라. 이면으로 치기도 어렵고 또 수십년 쳐온 습관대로, 왼편으로 공이오면 팔이 저절로 돌아가니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더라.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옷으며 고백을 하고서는 뒷면에 붙였던, 이제는 무겁기만 한 고무를 떼서 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탁구 초보자도 아니고 또 나름 연구에 연습을 했음에도,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무용지물 그야말로 0점이라는 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특별히 가벼운 고무를 사오고 나무를 깍고 생쑈를 했던 그 짓이 비록 허무하고 우습게 끝이 났지만, 어쩌면 탁구 시합에서 한두점 더 따는 것 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체험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현실을 깨닫고 제자리로 되돌아 온 내 자신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일본의 한 야구감독이 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몇번 해 본 것 가지고는 시합때는 택도 없고, 수백번 수천번을 실수없이 확실히 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될까말까 하다’고. 그리고 산속에서 독학으로 바둑을 연마하여 바둑의 도가 텃다고 생각하며 하산한 형제가, 시내 기원에 가서 참패를 당하고서 자신들의 수준이 고작 아마추어 몇급 정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나도 블로그 쓰면서 조심하려고 하지만, 한번 입을 열면 제 잘난 맛에 입 다물기가 어렵다 🙂 어디서 누구에겐가 선생 노릇하려 들때 조심해야 한다. 대가리로 생각해 본 것 혹은 그저 몇 번 해본 것 가지고는 실전에서는 택도 없다니까. 그리고 바로 그 실전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쓰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심정 이해하면 함부로 입 놀리기 어렵고 또 장사를? 이런 종자들에게 마땅한 표현을 내가 일전에 했었다 ‘딸 팔아서 술 받아 쳐먹는 애비 꼴’이라고. 쉽고 쿨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세상 참 허무하고 어렵게 사는 꼴이다. 삶은 실전이고 인생은 현실입니다요 🙂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첫번째 이야기

한 일년 쯤 전에 피디수첩에서 큰 승려단체 대빵할배가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고 까발렸던 적이 있었다. 무려 두번이나. 그때 이 할배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동시에 깨졌던 승려가 있었는데 ‘현응’이라고 했다. 그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려면 이 승려도 보통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지. 중과 계급장. 대머리와 함께 모두 번쩍번쩍 🙂

이 승려는 좋은 책을 썼던 사람으로서 나도 그 책을 좋아하며 읽었었는데, 피디수첩을 상세히 보고 난 이후에 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 정도 가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리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노는 수준이 너무 하수라, 그런 책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가 있었던지 몹시 의아했으며 또한 그런 출처불명의 책을 한때 좋아했고 그 저자를 존경했던 것에 낙심했었다.

미국의 한 대학교 철학과에 재직중인 한국인 교수 부부가, 바로 이 현응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서 출판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이들의 교분은 여러가지 자료를 볼때 상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았던 바,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 한국인 교수부부, 특히 외부로 더 알려진 남편 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일지 나는 한편으로 궁금했었다. 한참 지나서 우연히 그 남편 교수되는 사람이 기고한 글을 보게 되었다. 한국사람이라면 흔히 말했을 ‘이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같은 수준의 내용이 아니더라. 일견 예상했던 바요 그리고 다행이었다.

이야기 잠시 옆길로 빠져요. 손에 장을 지지느니 큰소리 칠때 조심하세요. 내가 우연히 만났던 이곳 사람은 직업이 신문 스포츠란에 논평을 기고하는 것이었는데, 옛날에 이곳에 스타디움을 새로 지으며 건설비용에 관한 많은 언쟁이 있었을때 ‘그 비용으로 누가 지으면 내가 전화번호부를 뜯어 먹겠다’고 논평에 썼었더란다. 그 당시 이곳 전화번호부는 2권이었고 또 매우 두꺼웠었다. 한 두해가 지나서 실제로 그 비용으로 스타디움 건설을 마쳤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화번호부를 물에 불려서 뜯어 먹었던 것’은 아니고, 공개 사과를 하는 개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 🙂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아직 서로를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상대방의 어떤 좋은 언행이, 마음을 사로잡고 또 마음을 열게하는 경우도 많지 싶다. 그 남편이라는 미국교수는 홍창성박사인데, 그분 이야기인즉 ‘옛날에 내가 현응스님을 한국에서 만났던 적이 몇차례 있었다. 한번은 귀국 선물로 내게 책을 한권 사주었는데, 그때 자신을 위해서 (아마 업무에 관계된) 책을 몇권 동시에 구입하더라. 계산하는 곳에서, 내게 선물하는 그 책은 자신의 카드로 결재하고 나머지는 업무용 카드로 결재를 하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고 또 책 한권쯤 끼워 넣어서 업무용 카드로 결재한들 누가 뭐라겠나만 그는 구태여 그렇게 하더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 박사에 그 스님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비록 그 피디수첩 방영 내용이 전부 날조된 것일 수는 없겠지만 또한 동시에 상당한 오해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밝히자면, 이후에 벌어진 재판에서, 피디수첩의 방영 내용에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은 쪽으로 판결이 나서 현응스님이 승소하였다. 진실은 흑백으로 나누기가 어려울 때가 있겠지만, 어떤 색깔쪽으로 더 가깝거나 멀다는 것을 밝힐 수는 있지 않겠나. 쓰레기통에서 책을 다시 꺼내서 잘 말려 놓았다. 비유로. 요새 모두들 전자책 읽지 않나요?

서론이 무척 길었다. 항상 사서 드시는 그대는 모르겠지만, 원래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많이 기다려 본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 한 술 더 뜨자. 홍창성박사가 옛날에 쓴 어떤 수필 비슷한데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이 수행에 눈을 뜬 것이, 맞벌이 부부인 부인이 첫 아이를 낳고서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쁘게 되는 바람에) 이 양반이 한 일년간 매일 기저귀 갈면서 아기를 힘들게 돌 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 솔찍하며 인간적이요 또한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그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자 이제 쥐꼬리만한 본론을 말할 차례가 왔다. 궁극적으로 내 자랑이 되겠다.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책과 관련하여 저자가 밝힌 수행의 단계는 아래와 같다.

[저자의 단계별 정리]
1. 수행자가 고해에서 벗어나고자 깨달으려는 강한 욕구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2. 깨닫기 위해 경전 공부와 참선에 집념을 갖고 용맹정진한다.
3. 오랜 정진으로 심신이 자연스레 공부와 수행의 습관이 밴다.
4. 깨닫겠다는 의식적 욕구는 점점 줄어들어 아무런 집착 없이 공부와 수행을 계속한다.
5. 심신에 밴 공부와 수행은 자연스레 수행자를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내가 보기에, 외딴섬에서 나 홀로 떠들어대는 바로 그 이야기를 이 양반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학벌 좋고 똑똑하신 교수님께서, 오랜 세월 공부와 연구를 한 결과로 하시는 우아하고 수준있는 이야기를 나도 이 블로그에서 짓어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우하하하 멍멍멍…

다음에 더 이야기 하자. 기대하시라. 이렇게 올라 갔으니 다음번에는 내려갈 차례 아니겠어요 🙂

옆길로 새는 이야기 하나

일전에 내가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으면 할것이라던 그 잡담을 할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오늘 회사에서 미팅을 얼마나 열나고 심하게 오래 했던지 취하고 정신이 없는 기분이다.

어제 붓다께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신 이야기를 했었다. 누구에게 주셨을까? 처음에는 옛 스승을 찾아서 주려고 했었는데 (붓다에게도 스승으로 모시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럼 있었지. 단지 붓다만큼 안 유명할 뿐이지) 그분이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기 때문에, 멀고 먼 길을 걸어서 옛날에 함께 고행하던 옛 동료 다섯명을 찾아가서 첫 가르침을 주셨다.

그 사람들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언젠가 다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붓다께서는 그당시 유행했고 또 본인도 수년을 더불어 시도했던 고행 혹은 만행을 (안먹고 안자며 몸의 욕구를 묵살하여 어떤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고자 시도함) 중지한 이후에 제대로 먹고 마시고 자면서 ‘중도’의 길로 수행하여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깨달은분, 성불한분, 최고의 진실을 깨우친분) 되셨다. 이런 소문을 그 옛 동료들도 들었는데,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이 시도하는, 잘 알려지고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그 구도의 길을 저버리고 제 갈길을 마음대로 가서 잘먹고 잘살았다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득도 성불하여 자기들을 만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시큰둥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럴리가 없다. 미쳤던지 사기꾼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오면 아는체도 하지 말자. 자리를 마련해 주지도 말고 옷도 받아 주지 말자’ 다른 사람들도 동의 했다. 좀 지나서 붓다가 더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는 다른 사람이 말했다 ‘옷은 안 받아 주더라도 자리는 마련해 줄까보다’. 그리고 붓다가 그들을 만났을때 그들은 일어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옷을 받아 주었다 🙂 나는 이런 구절을 읽을때 그야말로 이 글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확신이 든다. 쪼잔하고 인간적인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뒤에서는 큰소리 쳤는데 앞에서는 쫄았어요~~~

(이제 옆길로 세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한국불교에서 소위 최대 최고의 경전으로 높이 받들어지는 그 유명한 경전의 시작을 듣는 순간, ‘갠지스강가의 모래 숫자 보다 더 많은 공덕을 쌓고…’ 하는 이 황당무계하고 무리한 표현을 딱 듣는 그 순간에, 이것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말씀하실 분이 아니다. 이것 인디라군이나 왕서방이 붓다를 사칭해서 제멋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라는 직감이 순간적으로 왔었다 (현대 학자들이 문헌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이 경전이 붓다의 저술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는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을 기록한 불교경전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 직감 틀린적도 많고 또 그것 가지고 내 억장 무너지게 했던 적도 많아요’ 🙂 하지만 예를들어, 당신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에게 얼마나 능력이 있는 아빠인지 말해준다고 가정하면, 내가 돈이 하늘의 은하수 만큼 많고 또 어제 촛대뼈 깐 졸개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 만큼 많다 이렇게 이야기 하겠나? 당신이 성숙한 어른이 되어 사랑고백을 하는데, 하늘의 별, 온 세상의 모래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의 머릿칼을 곱한 숫자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겠나? (전두환을 포함한 대머리들 때문에 결과는 0이다) 물론 그런 넘들도 있겠지. 하지만 제대로 철들고 성숙한 아빠들이나 lover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지 싶다.

영어 표현에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라는 것이 있다. 그자들이 붓다를 사칭하며 그런 책을 쓰면서 몰랏던 것은 그리고 결코 알 길이 없었고 또 도달할 수도 없었던 것은, 붓다의 크기와 깊이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 흉내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던 것이지 (=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정말 사기꾼은 아홉의 진실에 하나의 사기를 결정적인 장소와 시간에 슬쩍 집어 넣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많이 또 자주 보였던 그 아홉만을 기억하고 또 철썩같이 믿고 (특히 자기의 이익과 관련이 되는 경우에는) 그 결정적인 나머지 하나를 보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눈 앞에 가져다가 보여 주어도 믿지 않고 또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기꾼보다 더 고수가 내려다 보면, 속는 사람도 또 속이는 사기꾼도 훤히 보이겠지. 양쪽 모두 하수들 아닌가. 그 사기꾼이 진정 최고수였다면, 사기를 치는 대신에 다른 정당하고 존경받는 다른 일을 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좋아서 사기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겠나. 주제넘게 크고 좋은 것을 쉽게 가지려 하다보니 미쳐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아니, 그 경전이 좋은 말씀이고 또 90% 붓다의 말씀과 의미가 통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 이렇게 말하고 싶나? 나도 하나 물어보자. ‘당신 진품 에르메스 가방은 그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사고 싶어 하면서, 그 모양과 품질도 거의 똑 같은 모조품은 왜 100분의 1의 돈을 주고도 사려고 하지 않는가?’ 그 멋진 가방이 만약 ‘진달래 가방’ 같은 진짜 상표를 달고 독자 개발한 디자인으로 정당하게 100분의 1값으로 팔린다면 나도 사겠다 (상표때고 속여서 아내에게 줄 계획). 10%의 가짜건 어떻든 간에 가짜를 섞는 행위는 사기라니까. 그리고 사기 치는데는 숨겨진 저의가 있다니까. 당신의 이익이 아닌 그넘의 이익…

이야기 왕창 옆길로 샛네. 다시 그 다섯명의 옛 동료들과 붓다의 재회 장면으로 되돌아와서, 붓다가 앉아서 이야기를 좀 시작하려고 할때 그들은 한결같이 반발하였다. 그들도 한자락하는 당대 최고수들이었을 것이다. 사정해도 안통하니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들을 설득하고 붓다의 깨달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Dukkha의 설법을 그들에게 최초로 베푸셨다고 한다. 어떻게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입을 다물고 반발을 중지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까?

‘이보게 자네들의 기분을 잘 알겠고 또 나를 의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도 이해가 되네. 그런데 한가지만 부탁하세. 내 얼굴을 보아주게. 어떤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사실이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더욱 ‘내면의 진실이 실재한다면 얼굴과 언행을 통해서 반드시 표출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 다섯분의 옛 동료들은 붓다의 얼굴을 새삼 자세히 바라보았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이분 얼굴에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들을만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니 입을 다물고 들어 보자’. 아! 이분들도 참으로 고수들이셨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선입견을 일순간 과감히 접고 붓다의 말씀을 들어 주었지 않았는가? 이것 쉬워 보여도 ‘나도 일가견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 싶다. 바로 이것 때문에, 잔치상 어떻게 더 잘 차리는가 의논하다가, 상 뒤엎고 칼부림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이 다섯분들 나중에 어떻게 되셨냐고? 붓다의 가르침을 받들고 수행에 정진하여 모두 아라한이 (소위 ‘성불’)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훌륭하시다. 인간적으로도. 언젠가 말했듯이 붓다의 부인과 아들도, 남편 아빠 찾아와서 집에 가자고 조르다가 (요 부분만 내가 지어냄, 찾아 와서 만났던 것은 사실)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이다.

내 직감과 육감이 틀린 적도 많았고 또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었다. 내친 김에 한가지만 더 하자. 한 십년 혹은 이십년 전에 소위 서울대생 몇명이, 부산인가 어디 지방에서 수행을 많이 했다는 사람을 만나고 그의 영향으로 집단으로(?) 출가했다고 매스컴에서 오르내리며 인간극장 이런데도 나오고 떠들썩 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그 당시 방영 되었던 무슨 인간극장 같은 것을 건너 뛰며 보기도 했었는데, 그 지방에 산다는 수행자가 화면에 막 등장하는 바로 그 순간, 그자의 얼굴에서 ‘싸움닭’ 상판을 직감적으로 보았던 거라. 아! 수행 챔피언쉽 타이틀 쟁탈전 하는 자로구나… 그 젊은 서울대생들, ‘나는 득도 성불하리라’는 건방과,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줄줄 흘러 넘치던 이십대 넘들이 얼마나 impressed 됬고 또 감격했었겠나 상상이 된다. 이넘들이 대부분 실제로 승려가 되었고 한둘은 아직도 매스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그 중 한넘은 내가 보기에 스승을 뛰어 넘은 것 같다. 훗날 취해서 옆길로 새는 이야기에 다시 등장 할 것이니 기대하시라.

그리고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 혹시 내 글 몇개 읽어 보고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면, 다음번에 나를 만나서 한잔 할때까지 보류하시라. 이 글 읽고 내 상판이 어떨지 궁금해지지 않았나? 좀 어리버리한 이류 싸움닭 같은 모습이 아직 많긴 한데, 내 과거의 얼굴을 기억하는 그대들이 ‘아!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네’ 이렇게 느끼게 되길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