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또라이로 생각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좋은 책들을 반복해서 읽다가, 이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구절이 최근 내 눈에 작열하고 마음에 꽂히는 일이 발생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또라이로 보이기 시작한다면 자신에게 정신적 노안이 왔다는 것이며 또한 주변 사람들도 나를 또라이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수십년간 매일 그리고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지만 안경이나 노안은 커녕 의약품 통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인쇄된 주의사항을 읽으면서 점점 나아지는 시력을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이며 생물학적 나이와 비교해서 수십년은 젊다는 직간접적인 증거를 (원형탈모등 몇가지만 좀 빼고) 수시로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듣게 되니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한두해 전부터 내 주변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짓들이 또라이로 보이기 시작했거든 🙂 이것도 큰 문제지만 그보다 그 또라이들 눈에 나도 또한 또라이로 보일 것이라는 것이 내게는 더욱 큰 충격으로 와닿았다. 이럴수가…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서로를 또라이로 보기 시작하면서 정말로 나이가 드는가보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나도 별 수 없구나…

노엘

출근길 버스, 막 떠나려는 참에 어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아주 힘겹게 버스에 천천히 오른다. 반신을 잘 쓰지 못하는 듯. 빈의자에도 간신히 걸터 앉는다. 허름한 옷차림에 가방을 등에 맨 흰머리 흰수염이 더부룩한 상늙은이…

가만있자 저 사람 혹시 노엘이 아닌가? 뒤쪽에 앉아 있던 내가 자세히 보니 맞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두세 정거장 가서 시내에 내린다. 이번에도 힘겹게 버턴을 누르고 겨우겨우 걸음을 옮겨 앞문으로 내렸는데, 내리고서도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좀 엉거주춤 서 있다. 운전수는 친절하게 기다렸다가 버스를 서서히 출발시킨다.

이 시간에 이곳에서 내리는 것을 보면 그는 놀러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런 몸과 행색으로 이 사람은 지금 무었을 하는 것일까? 그때 내가 그곳을 떠나면서 본것이 마지막이었으니 15년 세월이 흘렀다. 출근후 자리에 앉자말자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비록 오래전의 일이었으나 나는 그때의 에피소드를 생생히 기억할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도 성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단번에 찾을 수가 있다. 아! 한국으로 치면 국회사무처 비슷한 국회 지원 기관에서 매니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좀 정신이 멍하고 충격을 받아서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같은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그 당시에 그는 그곳에서 최고위급 매니져였었다. 그리고 그 당시 (죽었다 살아난) 뇌졸증의 여파로 반신이 불구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다녔으니, 지난 15년 이상을 이런 몸으로 계속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오십이 넘었었지 싶고 또 머리가 하옛었다. 15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말할것도 없고.

내가 상당한 근거로 짐작컨데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람 어쩌면 의지의 사나이 조용한 인간승리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라면 그런 몸상태로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려움들과 도전들에 직면할때 노엘처럼 꾿꾿히 견디며 가혹한 운명에 대응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동안 그를 잊지 않았으며 때때로 기억했었는데 앞으로는 힘겹게 버스를 타고 내리던 그의 모습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내 삶에서 내가 직면해 있는 어려움과 도전들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한때 나는 어려움에 빠진 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져 이유없는 호의를 베풀었었다. 그는 그때 멋지게 그것을 되갚았을뿐만 아니라, 이토록 세월이 흐른 후에 자신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더 많은 호의를 다시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인연이 흘러가는 모습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때 한순간 그런 자비의 마음을 내지 않았었더라면 그와 나는 아무런 인연없이 헤어졌을 것이고 아무것도 서로 주고 받지도 또 남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작은 자비가 15년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내게로 되돌아 온다. 신기하기도 하고 또 좀 무섭기도 한것이 인연 카르마가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비가 오는 바람에 버스를 타게 되었다. 막 버스에 오르려는데 줄 반대쪽에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서있길래 손짓으로 먼저 타라고 하였다. 괜찮다며 사양하는 사람과 문득 눈이 마주쳤는데 노엘이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듯 하였다.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뒤쪽 자리에 앉아 내릴때까지 그를 물끄럼히 바라보면서 그의 삶에 행복과 기쁨을 기원하였다.

가혹한 시련이 지난날 이유없이 그를 덥쳤었다. 비록 그는 쓰러졌었지만 다시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는 집에서 안락하게 서서히 죽어가는 삶보다는, 일어나서 쪽팔리고 힘이 들지만 정상적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였고 15년이 지난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다. 확실히. 나의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그의 건투를 빈다.

내가 나의 작고 가벼운 십자가마저도 불평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들때 나는 그를 기억하리라. 힘들게 지팡이를 짚고서 천천히 버스를 오르내리던 그의 모습을 잊지 않으리라.

카르마는 당사자가 죽어도 소멸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행했던 것들의 결과물인 카르마는 (업 혹은 업식은) 설령 그 당사자가 죽고난 후에도 쉽게 그리고 즉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 산 사람들이 휘둘리고 그들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제 자신과 또한 주변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볼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만 되고 나면 혹은 결혼만 하고나면, 그 부모인 내가 여태껏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유롭게 살게 될것으로 생각하세요? 그 아이들 나이의 두배가 훨씬 넘도록 세상을 산 당신이 바로 어제, 지난달 혹은 작년에,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했던 (그리고 또한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언행들이, 이미 돌아가신지가 오래되었거나 혹은 멀리 사시는 연로한 당신 부모님이 만들었던 어떤 카르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당신 생각의 버릇, 반응의 방식 그리고 어떤 결정들 속에 그분들의 그림자와 영향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부모자식관계나 부부관계등 밀접한 인간관계는 카르마가 씨줄날줄로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이것을 마치 날카로운 칼로 단칼에 잘라버린다고, 그 많던 카르마가 동시에 단번에 떨어져 나가고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있던 카르마 위에, 더 풀기 어렵고 복잡한 새로운 카르마를 덧붙이는것 뿐입니다. 결코 당신 곁에서 저절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그 아이들에게서도, 설령 당신이 죽은후에라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씨줄날줄을 한올두올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도 꼭 해야만 한다면 말이예요. 그래야 당신도 상대방도 또한 당신들이 사랑하는 아이들도 자유롭고 장차 행복하게 살수 있을꺼예요. 아니 최소한 당신이 그들의 삶에, 아무도 원치않고 또 아무런 필요도 없는 부당한 카르마를 평생 짐지우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쉽고 빠른 길은 두고두고 부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를 당신 자신만 감당하게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지금 본인도 깨닫듯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모님들께서 당신께 했던 것들 그리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해 보세요. 감사하고 좋았던 것들은 반복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인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좋지 않았던 것들은 당신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로건 물려주지 않으려고, 당신이 죽는날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부모는 이렇게 힘들고 소리없는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뛰어 올라간 산위에서 나는, 나의 부모들이 내게 남긴 카르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은혜를 감사함과 동시에, 내가 내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어떤 카르마를 남기며 살다가 떠나게 될 것인지 생각하며 나 자신의 건투를 빌어 봅니다.

당신도 나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며 또한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지당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방법을 선택하시길 새해 인사를 갈음하여 기원드립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인연

일전에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벗꽃나무를 발견했어요. 이제 봄도 다가오고 하니 장차 벗꽃이 피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서 가보았어요.

키가 이미터 좀 넘을것 같고 나무 몸체도 별로 굵지 않아서 그리 오래전에 심은 나무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더니 이곳에서 흔한 플라그가 나무 밑둥지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일본수상 하야토이케다 기념식수 1963년’ 이렇게 씌어 있네요.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아직 살아 있을까? 잠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을 방문하여 바로 이 나무를 심은 그 다음해 쯤에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났으니 이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원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과 좀 떠들썩하게 심었을지도 모를 이 나무를 기억하는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벗꽃나무는,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일본 수상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내가, 이렇게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박인희님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런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남긴 카르마는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쉽게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같은 자리에 서서, 앞서 왔다가 먼저 가버린 이 사람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내가 왔던 흔적 그리고 장차 내가 가고나서 남을 흔적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번에 이곳을 지날때면 봄 기운이 더욱 완연하여 아마 벗꽃이 피겠지요. 그때는 다만 그 순간을 즐기기를 희망합니다.

윤회냐 스르럭뽕이냐? 두번째 이야기

‘Rebirth=스르럭뽕’ 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지난번에 했었다. 하나는 물질적인 것들이 끝없이 돌고 도는 것, 또 하나는 비물질적인 것들이 (정신적인) 끝없이 변화하는 것. 이번에는 세번째 rebirth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최근에 ‘One Strange Rock’ 이라는 네셔널지오그래픽 도큐맨터리를 보았다. 8명의 NASA출신의 우주인들이 도합 1,000일 이상 지구밖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꼈던 것을, 과학적인 근거로 해석하고 또 이야기 나누는 ‘지구 이야기 10편’인데 내게는 그야말로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만한 최고의 도큐멘터리였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하겠다. 각설하고.

카르마 혹은 업 (業 업보 )이라는 말 들어 봤겠지? ‘무언가 나쁜 짓을 하면 그 댓가를 언젠가 어떤식으로든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런식으로 이해하고 있지 싶은데, 틀린말은 아니지만 불충분하다.

붓다께서는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하는 모든 것들’ 로부터 카르마가 생겨 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카르마는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죽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던 남아 그들의 삶에 영향을 계속 미친다. ‘카르마가 돌고 돈다’는 말이다. Karma rebirth.

이순신 장군은 돌아가신지가 오래 되었지만 한국사람이면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그분의 영향으로 (그분이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했던 일들로 말미암아) 우리민족의 역사와 삶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순신이라는 한 개인의 카르마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이 블로그를 지금 내가 일본어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었이 좋고 나쁘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해도 그분의 영향으로 해군사관학교 갔던 군인들도 많지 않겠나? 명량해전도 없었고 이순신장군도 몰랐었더라면, 요리사나 농부가 되었을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군함을 타는 해군이 되었다면, 그 해군이 된 사람들의 삶 속에 이순신 장군께서 어떤 형태로든지 (어떤 영향으로든지) 존재하고 계신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말이 아니지 싶은데? 그 해군의 자식 손주들이 선대를 따라서 또 해군이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카르마가 끝없이 돌고 돌며 ‘rebirth’ 하는 하나의 예인데, 그런 엄청나고 역사적인 삶이 아닌, 그대와 나 우리들의 평범한 삶에도, 당연히 카르마가 생기고 또 그것들이 알게 모르게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은 (rebirth)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에서 짧게 언급했던, One Strange Rock 이라는 도큐멘터리에 나오는 8명의 우주인 중에 한 사람인 Jerry Linenger. 이사람은 미해군 장교요 의사요 박사인 동시에 우주인이었는데, 이 사람이 도큐멘터리에 나와서 했던 말을 이곳에 적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지구 상공 수백킬로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 안에 있었을때,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자주 떠올렸다. 이 순간 내가 이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삶 그리고 그가 일생을 통해 내게 미친 그의 영향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오늘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장성한 네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다. (되돌아보건데) 나는 크디 큰 수많은 인연들의 결과로 이시간 이장소에 태어나, 나의 아내를 만났고, 이 새로운 생명들을 세상에 오게 했으며, 그들에게, 나의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을 이어) 내게 했었던 것과 똑 같은 영향을 미치고 좋은 삶을 주었다. 이제 내가 이 세상에 왔던 의미가 대부분 이루어졌으니 나는 언제 떠나도 여한이 없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카르마도 인연을 따라 돌고 도는 것이다. 이 우주인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또한 거대한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로써, 그의 인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어떤 카르마를 따라 오고 가며 돌고 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붓다께서는 우주선도 허블망원경도 NASA도 없었던 2,600년 전에, 이런 진실를 알아 내셨고 또 그것을 지금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