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씨

인경씨는 서른이 넘은 프로골퍼예요. 전에 세계에서 유일한 도마 (뜀틀) 기술인 ‘양1’을 창조했다고 소개했던 체조선수 양학선 선수처럼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인경씨는 키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며 또 나이도 많은 축에 속하는 골퍼예요. 온갖 스폰서들의 이름이 붙은 옷을 잘 차려입고서 섹시하게 배꼽을 드러내며 스윙을 날리는 상품성(?) 있는 골퍼는 아니랍니다. 인경씨 보면, 다른 골퍼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한복을 잘 차려 입은 북조선 미녀를 보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 인경씨는 언제나 열심히 스스로 훈련을 하는 골퍼였고 또 재능도 있었어요. 그래서 한 5년쯤 전에 미국에서 열린 아주 큰 경기에서 (‘매이저’라고 해요)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어요.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었던가 하면 30센티 앞에 두고 있었어요. 이것을 굴려서 넣으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못 넣었답니다. 결과적으로 연장전이 벌어졌고, 그렇게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 어떻게 잘 칠 수가 있었겠어요? 졌답니다. 유튜브에, 골프 최악의 순간, 비운의 골퍼 이런 종류의 영상에 나오게 되는 치욕과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다시 마음을 추스려 잘 해볼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다음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우승은 커녕 상위권에도 들지 못하며 점점 잊혀졌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그 30센티 퍼팅을 실패한 직후의 모습입니다. 차마 인경씨 얼굴을 보기가 어렵내요.
인경씨는 순례여행도 홀로 다녀 보고 또 법륜스님이 계시는 정토회에도 나가서 수행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그때 그 고통을 딪고 일어나려고 무척 많은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칠흑같이 깜깜한 절망의 밤이 아마도 한 3-4년은 계속되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포기했지 싶어요. 그렇지만 인경씨는 포기하지 않고, 그 부러진 날개로 다시 날아 볼려고 열심히 노력을 계속 했대요.

30센티 퍼팅을 실패했던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인경씨는 영국에서 벌어진, 가장 권위있다는 브리티쉬오픈에서 (‘매이저’ 입니다) 우승을 하게 됩니다. 참 잘했어요. 그야말로 골퍼의 해탈 열반이 아니겠어요? 부활한 인경씨의 모습입니다. 오른손에 챔피언 트로피를 들고 훨훨 날고 있군요 🙂
인경씨는 이제 서른이 갓 넘었는데요. 앞으로도 오래 선수생활을 하길 바라지만 또 장차 은퇴를 하더라도 참 행복하게 살지 싶어요. 한 훌륭한 인간으로, 좋은 배우자 좋은 엄마 노릇을 하며, 인생의 많은 행복을 누릴 조건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녀가 벌어들인 돈때문이 물론 아니예요.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또 어떤 사람도 대신 찾아 줄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을, 행복의 열쇄를, 인경씨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찾은 것 같은 느낌이 그녀를 볼때면 들어요. 그 길고 절망적이었던 어둠을 인내와 노력으로 몰아내고 그 자리를 빛으로 다시 채운 인경씨. 한 인간이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무르익고 여물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참 훌륭하고 또 존경스럽습니다.

누가 내게 ‘어떤 프로선수와 한라운드를 함께 해보고 싶은가’ 묻는다면, 나는 섹시한 미녀골퍼도 또 300미터 티샷 날리는 괴물골퍼도 아니고, 물론 인경씨와 함께 하고 싶다고 하겠지요.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인경씨와 한 라운드를 함께 한다면, 그녀가 부러진 날개로 더 높이 나르게 된 그 힘들고 외로웠던 과정을, 그리고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사는 그녀의 품위 있는 삶을 이야기 듣고 싶어요.

인경씨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지 싶네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더 로즈’ 베티 미들러가 불러요. 그리고 내 나름대로 번역을 덧붙였어요.

The Rose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the tender reed.
Some say love it is a razor
That leaves your soul to bleed.

Some say love it is a hunger
An endless, aching need
I say love it is a flower,
And you it’s only seed.

It’s the heart afraid of breaking
That never learns to dance
It’s the dream afraid of waking
That never takes the chance

It’s the one who won’t be taken,
Who cannot seem to give
And the soul afraid of dying
That never learns to live.

And the night has been too lonely
And the road has been too long.
And you think that love is only
For the lucky and the strong.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어떤 이는, 사랑은 연약한 갈대를 익사 시키는 강물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이 그대의 영혼을 피흘리게 하는 면도날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이는, 사랑이 끝없이 아픈 갈망이며 굶주림이라고도 말하는데
나는, 사랑은 꽃이며 당신은 그 사랑의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상처 받기 두려워 하는 마음이 결코 춤을 새로 배우지 못하게 막고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까 두려워 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결코 시도하지 못하게 막아요.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은 베풀지 못하는 법이며
죽는것을 두려워 하는 영혼은 정말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해요.

밤이 너무 외롭고 또 갈 길은 너무 멀 때
사랑이란 운이 좋은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만의 것인가 당신은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한겨울 차가운 눈 아래 묻혀 있는 그 씨앗이
봄이 오면 따스한 햇님의 사랑으로 장미로 피어나리라는 것을.

백년 세월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고작 100년전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으며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그때 스페이스셔틀이니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이야기를 티비에서 우연히 보고 있었거든.

장수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아버지대에 처음으로 인간이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것을 목격하고서, 자기대에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이는 인류가 바퀴를 굴리며 그 성능을 향상 시키며 살아 왔던 지난 수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과 비교하면, 실로 그 발전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술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인류가 지난 몇 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축척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발전을 지난 100년 혹은 50년 기간에 이루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런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와 양 모두) 그리고 그 결과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 인류가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할 시간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깜작 놀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종교가, 지난 수십년 기간만을 본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또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복잡한 요리 레서피가 과연 진짜인가 알아 보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는 그 레서피로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어 보고 어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종교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유래없이 급변하는 불안하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언제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행복을 증진시키며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리가 없겠지.

어쩌면 이토록 엄청난 속도로 나르는 (flying) 현대인들에게는, 지난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던, 바퀴 굴리는 시절의 종교는 더 이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가르침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었나? 그 해답은 스스로 알아보고 깨달아야 하지 싶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뜨는 쪽으로 자기 발끝만 보며 오래 오래 걷는다고 히말라야 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뒤늦게,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아무데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미 사라진 옆사람들을 나무래겠나 아니면 불쌍한 내 발을 혼내겠나 🙂

Perspective is everything

‘원근법’이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견해 혹은 시각이 극히 중요하다’ 라는 말이 되겠다. 어제 소개한 One Strange Rock에 나오는, 명언중의 명언이다.

견해나 시각은, 여러개 있는 중에서 (구두나 자동차처럼) 고르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지는 것일까? 당신이 만약 골프를 쳐 본적이 없고 골프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실제로 해본 것이 없다고 치자. 그러면 골프에 대해서 (골프라는 운동 자체) 당신이 견해나 시각이 있을 수 있나? 당연히 없다. 자연훼손이나 농약 그런 이야기들은 골프 ‘관련’이지 골프 ‘자체’가 아니지 않은가? 골프에 관한 견해나 시각은 골프를 치면서 생기고 또 발전하는 것이다.

붓다께서, 인간에게는 6개의 감각이 있다고 가르치셨다고 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감에 더해서 ‘마음’을 6번째 감각기관 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이 ‘마음’이 저기서 말하는 ‘perspective’와 아주 관계가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감이 받아들인 것을 뇌가 ‘마음을 통해서’ 해석하듯이, 세상만사 모든 것들과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perspective’에 따라서 내게 이해되고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이 ‘견해’ 혹은  ‘시각’이 인간을 규정하고 그의 삶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왜 perspective를 그렇게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가 하면, 내 생각에는, 첫째로 대기권 위에서 오랫동안 수없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지구 주위를 돌면서 세상을 본다), 지구의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과 디테일로 본다는 것이, 그 우주인들에게 어떤 근본적이고 의미심장한 견해 혹은 시각의 변화를, 단지 지구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전체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지고 왔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과학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너무 거대한 스케일 이거나 혹은 극히 작은 스케일의) 자연 현상들을 밝혀 내어 우리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견해 혹은 시각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에,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써, 아마 우주에서 보았던, 엄청난 규모의 연어 (salmon) 이동과 산란 그리고 죽음 (산란후 자연사). 그 집단적인 죽음 뒤에 실로 엄청난 규모의 질소 (nitrogen) 이동이 있고, 그렇게 이동된 질소가 다시 거대한 규모의 숲을 만들어 내는, 자연의 어마어마하며 또 정교한 ‘rebirth’의 과정을, NASA와 과학의 힘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무덤 위에 심은 사과나무 이야기 기억하지? 바로 그런 의미의 가르침을 붓다께서 주셨던 것이고 또 수천년 지나서 NASA와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밝혀내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Perspective is everything.

레지나 보따리장사, 매리 레인보우

기차 혹은 기차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근래에 ‘인도 국경을 지나는 기차들’ 이라는 3부작 BBC 도큐멘터리를 보다가, ‘레지나’라는 네팔 여자의 삶을 잠시 옅볼 기회가 있었다.

레지나는 네팔과 인도 국경간 몇 십킬로 구간을 오가는 그 완전 고물 기차의 단골 고객이다. 그녀는 네팔 상점들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인도에서 사다가 기차로 밀반입 해주고 얻는 적은 수수료로 아들 둘과 함께 사는 여자다. 십대 중반에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서는 열아홉 나이에 남편에게 버림 받고 그때부터 두 아이들을 기르며 홀로 살아 왔다. 최빈국에서도 하층 삶을 산다.

비록 국경은 없으나, 때때로 네팔 군경들이 기차가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가 출입구를 막고 밀수를 단속하여 물건들을 압수한다. 관세를 내야만 되찾을 수 있는데, 하루벌어 하루먹는데 무슨 관세를 어떻게 내나… 도큐멘터리 속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데, 레지나는 죽을 힘을 다해 보따리를 지키려고 하고 다만 하나라도 빼돌려 담장 밖으로 아들과 함께 가지고 나가려고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며 슬퍼한다.

레지나는 ‘unshakable spirit’의 소유자다. 달리 좋은 표현을 잘 모르겠다. ‘불굴의 영혼’? 그녀는 보따리장사지만, 가수요 신앙인이며 또한 달변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하버드 옥스포드 박사들이 쓴 그 어떤 책들 보다도 더 많은 훌륭한 가르침을 나는 레지나에게서 받는다.

밀수품 보따리를 잔뜩 실고 가는 고물 기차에서 노래하던 레지나. 무슬렘이면서도 힌두교 큰 축제때 염소 한 마리를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도 바치던 레지나. 그녀가 말한다 ‘그들의 신과 나의 신이 다르지 않다. 오직 인간의 마음이 분별할 뿐이다’. 다음날 떠날 기차를 기다리며 허름한 곳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면서 ‘비록 거적때기지만 (어떤 사람들처럼 몸을 팔지 않고) 내 손으로 벌어서 산 내 것 위에 눕는다’고 말하던 레지나. 자라나는 아들들이 엄마를 위해주고 또 밖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여 작은 돈이라도 벌어 오는데 감동해서 기뻐하던 엄마 레지나. 그때 레지나가 말하더라. ‘내 삶이 하도 힘이 들어서,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꺼졌다는 생각에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었다’고.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이리 잘 해주니 내 영혼이 충만하고 기쁘다’고 (Now my soul is content). 죽기 살기로 보따리 장사를 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하루벌어 하루먹으니. 그 고물 기차가 자기에게는 삶의 터전이요 기쁨이요 신 (god)이라고 하던 레지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이 훌륭한 인간을, 그 불굴의 의지를, 그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고 싶다.

이제 그 고물 기차는 영원히 멈추었고, 협괘는 부서졌으며, 낡은 역건물은 허물어졌다. 중국과 인도의 자본을 들여와, 세 나라를 연결하는 최신식 기차를 네팔 정부가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아! 레지나. 잘 살고 있기를…


아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을 ‘레인보우 매리’라고 명명하였다. 여러가지의 채소를 오븐에 구운 다음에, 한 두가지 소스를 위에 뿌린 것이다. 맛있겠나 🙂 ‘매리 베리’라는 우리 내외가 좋아하는 요리사로부터 티비를 보며 배운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내가 음식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매리의 무지개’.

매리는 84살 할머니 요리사인데, 지금도 현역으로 티비에서 요리를 가르치고 또 책도 쓰고 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알려진 요리사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왼손이, 아마도 류머티스 때문에, 손가락들이 기형이 되어 제 구실을 못한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만 목 아래로는 쪼글쪼글한 상할머니다. 그 연세에 그 손으로, 보통 사람들이 만들기 쉽고 또 좋아할 음식들을 소개하고 또 쉽게 배우도록 도와 준다. 은근한 진짜 유머도 있고 또 멋도 잘 부린다. 우리 내외가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존경한다. 이 분은 끝까지 자신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지켜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태워 촛불을 밝혀 자신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을 그리고 기쁨을 주는 삶을 산다. ‘래인보우 매리’를 함께 먹으면서 아내에게 ‘당신도 아마 저 분처럼 살게 될 것이오’ 덕담을 건넨다. 어떤 사람들은 흡사 그런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똑같이 힘들고 아무것도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레지나 보다 어쩌면 수 백배 더 부유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리 베리 할머니 보다 월등히 젊고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환경이 인간을 좌우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또 인간의 행복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홀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계단,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스스로 알아내어 스스로 올라야 하는, 그 계단이 인간의 품격을 결정짓고, 행과 불행을 좌우하며 또한 해탈 열반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기차에 사람들이 매달리고 지붕에 잔뜩 앉고 또 동물들과 사람들이 섞여 있는 그런 사진을 보면, ‘아! 어떻게 저렇게 사나’ 생각했었다. 마치 그 사람들이, 함께 있는 그 동물들과 비슷한 수준인 것처럼. 레지나를 알게 된 나는 이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와 똑 같은 삶이 그곳에도 있다는, 어쩌면 어처구니 없도록 명백한,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품격은, 그가 무었을 먹고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집에 사는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기에.

레지나 그리고 매리 베리. 두 아름답고 훌륭한 인간을 본다.

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그리고

말을 잘하고 또 자기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듣거나 읽고 그 내용에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며 또 자주 그 내용과 저자를 동일시하여 ‘아!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가보다’ 부러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자신의 작은 노력을 포장으로 부풀려 실제 보다 더 비싸게 팔며 세상을 쉽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것 같다. 특히 자기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댓가를 노리며 사는 사람들 중에서. 여기에는 인쇄를 받는다는 직접적이고 금전적인 댓가도 있지만, 간접적인 댓가로 명예나 지위 혹은 영향력을 추구하는 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자기 것이건 자기 것이 아니건, 어떤 생각을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간의 기술이 생기고 경험이 좀 쌓이면 식은죽 먹기보다 쉽다. 그러니 들은 말과 그 말을 한 사람, 읽은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을 섣불리 동일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설령 당신이 그 말과 글에 감동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동일시’에서 이자들이 바라는 ‘댓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베를린필하모니 실황연주를 앞자리에 앉아서 한 번 들으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하는 줄 누구나 안다. 하지만 거의 완벽하게 그 연주를 재생하고 또 내가 원하면 수십 수백번을 들을 수 있는 그 음반은 왜 상대적으로 훨씬 쌀까? 옛날에 아내가 돌봐주던 아기의 엄마가 (시향 첼로 연주자였다) 아내에게 첼로 연주를 코 앞에서 한 번 해 준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소리와 진동이 (연주자의 ‘기’?) 온 몸에 전달되는 것이 음반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고 하더라만… 혹은 미스월드하고 댄스파티 한 번 같이 가는 것과 그녀의 사진을 벽에 걸어 놓고 혼자서 춤추는 차이? 남자 버젼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요 투자가인 워렌 버펫과 점심 한끼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한 두시간 나누는데 수억을 낸다는데 (2018년 점심은 35억에 낙찰 되었다. 몰론 좋은 곳에 기부한다고 한다) 그 사람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다가 밥상위에 붙여 놓고 식은밥 먹으면서 혼자 대화하는 수준?

한 인간이, 자기가 실제로 노력해서 성취하고 또한 그 결과를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에서 안팎으로 증명한 이야기만이, 베를린필하모니의 실황 연주나 워렌 버핏과의 대화처럼 ‘내게’ 참된 가치가 있는 말이고 글인 것이지, 그 이외는, 그녀의 사진을 붙여 놓고 혼자 추는 춤이나, 그의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다가 밥상 머리에 놓고 혼자 먹는 밥 정도의 차원이고 그 정도의 가치밖에는 내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쉬운 일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어려운 일 이야기를 해보자. 이미 짐작했겠지만, 자신이 말하고 쓴대로 ‘상당 기간’ 실천하며 사는 삶이 어려운 일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쓰고 나서도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남들의 생각을 줏어다가 짜집기 하여 말하거나 쓰고 나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동네 언덕에도 잘 올라 가지 않는 사람이 당장 에베레스트산을 무산소 단독 등정한다는 말 만큼, 현실성이 없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 아닐까?

자 이제 위험한 일 이야기.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인 양 말하고 쓰는 행위’ 만큼 위험하고 유해한 일은 별로 없지 싶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카르마가 반드시 따른다. 우리 모두 조심하자! 카르마는 종종 시차가 있다. 그래서 기억력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넘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실제로는 거의 없다. 좋지 않게 얻은 댓가에는 반드시 또 다른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와 내가 하면 좋을 일. 자신의 삶으로, 소리없이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으로, 보이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 바로 당신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듣고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그 실황연주에, 그 댄스파티에, 그 점심에 서로를 좀 끼워 주기도 하면서…

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그리고 하면 좋을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