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채우는 것과 쌓이는 것은 별개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직도 청춘이지만, 더 어렸던(?) 시절에는 그저 남들따라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얻고 줏고 벌고 빼았아(?) 채우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준이나 인생의 승패는 그렇게 채우는 능력으로 매겨지는 줄 알았었다.
살다보니 채우는 능력과 쌓이는 결과가 딴판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야 부모를 잘 만났거나 책상에 오래 앉았던 사람들이 당연히 더 있겠지. 그런데 채운것들이 쌓이려면 그릇이 번듯하게 크기도 좀 있고 또 깨지거나 구멍이 뚫리지 않아야 되는데, 이 그릇의 크기와 온전함은 부모 주머니에서 떨어진 돈이나 공부 머리와는 별로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그것들로 말미암아 달라지기도 어려운 것임을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는 큰데 그릇이 작거나 깨져 있으면 밖으로 흘러 넘치고 줄줄 새게 된다. 흘러 넘치는 것이 돈이면 돈지랄하는 인간말종이 되고, 줄줄 새는 것이 권력이면 사람들 못살게 하는 미친개가 되고, 흘러 넘치는 것이 정력이면(?) 가정파탄 아니면 감옥행. 줄줄 새는 것이 지식이면 사람들이 면전에서 다투지는 못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 외로운 늙은이로 종치게 되겠고 또 흘러 넘치는 것이 ego 라면 해탈 열반이나 천국행은 날샛겠지 🙂
인생 초기 대량 실점한 삶을 살아온 내가 대량 득점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가까이서 또 멀리서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세상 참 공평하다’ 그리고 ‘행복은 얼마나 채우는가 보다는 얼마나 쌓이는가에 있다’.
화가 삶의 원동력?
친구 최군 이야기를 하면서 내 자신을 ‘화를 잘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랬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상에 크게 그리고 깊이 화를 냈었다. 유감스럽게 지금도 별로 향상된 것이 없다.
친구들보다 더 노력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대신에, ‘대학을 나와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자존심 있는 기술자에게 반지하방이나 강요하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어떻게 정상이냐’ 하면서 크게 화를 냈었다. 그래서 그런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니어 전산기술자들이 주동이 되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회의시간에 이야기만 들으면서, ‘나는 왜 기회가 없는가? 나도 너희들만큼 할 수 있다’ 또한 깊이 화를 냈었다. 그래서 그런 프로젝트들을 내손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장들을 찾아 떠났다.
그 나라와 그 사회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통하여 최소한 내 자신에게는 증명하였다. 시니어 기술자라고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10배 크기의 프로젝트를 내 손으로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며, 너희들만큼 아니 너희들보다 더 잘 할수 있다는 것을 또한 스스로에게 증명하였다.
화는 이토록 엄청난 에너지가 되어 인간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팔자를 바꾼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동안에 내 마음에도 화에 대한 인이 박히고 굳은 살이 생겨났을 것이다.
오늘, 집 부근 내가 좋아하는 산길을 뛰어 오르며 길 양쪽에 우거진 숲에서 풍기는 진한 소나무 향기에 취했었다. 나즈막히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동요를 부르는 순간 깨달았다. 내 삶의 에너지 원천이 더 이상 화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양날 선 위험한 칼을 던져 버릴 때가 왔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좋은 에너지를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사는 것이 좋다. 외부나 타인에 대한 반발력이 아닌, 그야말로 내 자신에게서 우러나는 힘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상생의 길이요, 장수의 길이며 해탈의 길인지도 모른다.
이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처럼, 이제 그만둘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 온 것이다.
인경씨
인경씨는 서른이 넘은 프로골퍼예요. 전에 세계에서 유일한 도마 (뜀틀) 기술인 ‘양1’을 창조했다고 소개했던 체조선수 양학선 선수처럼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인경씨는 키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며 또 나이도 많은 축에 속하는 골퍼예요. 온갖 스폰서들의 이름이 붙은 옷을 잘 차려입고서 섹시하게 배꼽을 드러내며 스윙을 날리는 상품성(?) 있는 골퍼는 아니랍니다. 인경씨 보면, 다른 골퍼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한복을 잘 차려 입은 북조선 미녀를 보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 인경씨는 언제나 열심히 스스로 훈련을 하는 골퍼였고 또 재능도 있었어요. 그래서 한 5년쯤 전에 미국에서 열린 아주 큰 경기에서 (‘매이저’라고 해요)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어요.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었던가 하면 30센티 앞에 두고 있었어요. 이것을 굴려서 넣으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못 넣었답니다. 결과적으로 연장전이 벌어졌고, 그렇게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 어떻게 잘 칠 수가 있었겠어요? 졌답니다. 유튜브에, 골프 최악의 순간, 비운의 골퍼 이런 종류의 영상에 나오게 되는 치욕과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다시 마음을 추스려 잘 해볼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다음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우승은 커녕 상위권에도 들지 못하며 점점 잊혀졌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그 30센티 퍼팅을 실패한 직후의 모습입니다. 차마 인경씨 얼굴을 보기가 어렵내요.
인경씨는 순례여행도 홀로 다녀 보고 또 법륜스님이 계시는 정토회에도 나가서 수행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그때 그 고통을 딪고 일어나려고 무척 많은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칠흑같이 깜깜한 절망의 밤이 아마도 한 3-4년은 계속되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포기했지 싶어요. 그렇지만 인경씨는 포기하지 않고, 그 부러진 날개로 다시 날아 볼려고 열심히 노력을 계속 했대요.30센티 퍼팅을 실패했던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인경씨는 영국에서 벌어진, 가장 권위있다는 브리티쉬오픈에서 (‘매이저’ 입니다) 우승을 하게 됩니다. 참 잘했어요. 그야말로 골퍼의 해탈 열반이 아니겠어요? 부활한 인경씨의 모습입니다. 오른손에 챔피언 트로피를 들고 훨훨 날고 있군요 🙂
인경씨는 이제 서른이 갓 넘었는데요. 앞으로도 오래 선수생활을 하길 바라지만 또 장차 은퇴를 하더라도 참 행복하게 살지 싶어요. 한 훌륭한 인간으로, 좋은 배우자 좋은 엄마 노릇을 하며, 인생의 많은 행복을 누릴 조건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녀가 벌어들인 돈때문이 물론 아니예요.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또 어떤 사람도 대신 찾아 줄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을, 행복의 열쇄를, 인경씨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찾은 것 같은 느낌이 그녀를 볼때면 들어요. 그 길고 절망적이었던 어둠을 인내와 노력으로 몰아내고 그 자리를 빛으로 다시 채운 인경씨. 한 인간이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무르익고 여물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참 훌륭하고 또 존경스럽습니다.누가 내게 ‘어떤 프로선수와 한라운드를 함께 해보고 싶은가’ 묻는다면, 나는 섹시한 미녀골퍼도 또 300미터 티샷 날리는 괴물골퍼도 아니고, 물론 인경씨와 함께 하고 싶다고 하겠지요.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인경씨와 한 라운드를 함께 한다면, 그녀가 부러진 날개로 더 높이 나르게 된 그 힘들고 외로웠던 과정을, 그리고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사는 그녀의 품위 있는 삶을 이야기 듣고 싶어요.
인경씨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지 싶네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더 로즈’ 베티 미들러가 불러요. 그리고 내 나름대로 번역을 덧붙였어요.
The Rose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the tender reed.
Some say love it is a razor
That leaves your soul to bleed.Some say love it is a hunger
An endless, aching need
I say love it is a flower,
And you it’s only seed.It’s the heart afraid of breaking
That never learns to dance
It’s the dream afraid of waking
That never takes the chanceIt’s the one who won’t be taken,
Who cannot seem to give
And the soul afraid of dying
That never learns to live.And the night has been too lonely
And the road has been too long.
And you think that love is only
For the lucky and the strong.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어떤 이는, 사랑은 연약한 갈대를 익사 시키는 강물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이 그대의 영혼을 피흘리게 하는 면도날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이는, 사랑이 끝없이 아픈 갈망이며 굶주림이라고도 말하는데
나는, 사랑은 꽃이며 당신은 그 사랑의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어요.상처 받기 두려워 하는 마음이 결코 춤을 새로 배우지 못하게 막고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까 두려워 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결코 시도하지 못하게 막아요.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은 베풀지 못하는 법이며
죽는것을 두려워 하는 영혼은 정말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해요.밤이 너무 외롭고 또 갈 길은 너무 멀 때
사랑이란 운이 좋은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만의 것인가 당신은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한겨울 차가운 눈 아래 묻혀 있는 그 씨앗이
봄이 오면 따스한 햇님의 사랑으로 장미로 피어나리라는 것을.
백년 세월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고작 100년전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으며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그때 스페이스셔틀이니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이야기를 티비에서 우연히 보고 있었거든.
장수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아버지대에 처음으로 인간이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것을 목격하고서, 자기대에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이는 인류가 바퀴를 굴리며 그 성능을 향상 시키며 살아 왔던 지난 수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과 비교하면, 실로 그 발전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술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인류가 지난 몇 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축척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발전을 지난 100년 혹은 50년 기간에 이루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런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와 양 모두) 그리고 그 결과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 인류가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할 시간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깜작 놀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종교가, 지난 수십년 기간만을 본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또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복잡한 요리 레서피가 과연 진짜인가 알아 보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는 그 레서피로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어 보고 어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종교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유래없이 급변하는 불안하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언제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행복을 증진시키며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리가 없겠지.
어쩌면 이토록 엄청난 속도로 나르는 (flying) 현대인들에게는, 지난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던, 바퀴 굴리는 시절의 종교는 더 이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가르침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었나? 그 해답은 스스로 알아보고 깨달아야 하지 싶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뜨는 쪽으로 자기 발끝만 보며 오래 오래 걷는다고 히말라야 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뒤늦게,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아무데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미 사라진 옆사람들을 나무래겠나 아니면 불쌍한 내 발을 혼내겠나 🙂
Perspective is everything
‘원근법’이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견해 혹은 시각이 극히 중요하다’ 라는 말이 되겠다. 어제 소개한 One Strange Rock에 나오는, 명언중의 명언이다.
견해나 시각은, 여러개 있는 중에서 (구두나 자동차처럼) 고르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지는 것일까? 당신이 만약 골프를 쳐 본적이 없고 골프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실제로 해본 것이 없다고 치자. 그러면 골프에 대해서 (골프라는 운동 자체) 당신이 견해나 시각이 있을 수 있나? 당연히 없다. 자연훼손이나 농약 그런 이야기들은 골프 ‘관련’이지 골프 ‘자체’가 아니지 않은가? 골프에 관한 견해나 시각은 골프를 치면서 생기고 또 발전하는 것이다.
붓다께서, 인간에게는 6개의 감각이 있다고 가르치셨다고 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감에 더해서 ‘마음’을 6번째 감각기관 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이 ‘마음’이 저기서 말하는 ‘perspective’와 아주 관계가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감이 받아들인 것을 뇌가 ‘마음을 통해서’ 해석하듯이, 세상만사 모든 것들과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perspective’에 따라서 내게 이해되고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이 ‘견해’ 혹은 ‘시각’이 인간을 규정하고 그의 삶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왜 perspective를 그렇게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가 하면, 내 생각에는, 첫째로 대기권 위에서 오랫동안 수없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지구 주위를 돌면서 세상을 본다), 지구의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과 디테일로 본다는 것이, 그 우주인들에게 어떤 근본적이고 의미심장한 견해 혹은 시각의 변화를, 단지 지구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전체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지고 왔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과학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너무 거대한 스케일 이거나 혹은 극히 작은 스케일의) 자연 현상들을 밝혀 내어 우리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견해 혹은 시각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에,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써, 아마 우주에서 보았던, 엄청난 규모의 연어 (salmon) 이동과 산란 그리고 죽음 (산란후 자연사). 그 집단적인 죽음 뒤에 실로 엄청난 규모의 질소 (nitrogen) 이동이 있고, 그렇게 이동된 질소가 다시 거대한 규모의 숲을 만들어 내는, 자연의 어마어마하며 또 정교한 ‘rebirth’의 과정을, NASA와 과학의 힘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무덤 위에 심은 사과나무 이야기 기억하지? 바로 그런 의미의 가르침을 붓다께서 주셨던 것이고 또 수천년 지나서 NASA와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밝혀내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Perspective is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