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예전엔 그렇게 정다웠건만
지금은 멀리서 손짓만
미워서도 싫어서도 아니었어요
너무나 당신을 사랑했나봐
사랑한 게 죄라면 그건 당신 죄예요
지금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예전엔 그렇게 좋아했건만
지금은 헤어져 생각만
미워서도 싫어서도 아니었어요
너무나 당신을 사랑했나봐
사랑한 게 죄라면 그건 당신 죄예요
지금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사랑한 게 죄라면 그건 당신 죄예요
지금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이야기 – 노랫말도 목소리도 참 아름답지요? 건데 이 사람은 옛날에 동료가수들 곗돈 십억을 싸들고 미국으로 달아난 도둑이예요. 남편과 잘 정착하셔서 이젠 사회봉사도 하시고 또 교회활동도 열심이시라네요 🙂 인간의 참된 아름다움은 무었일까요? 붓다께서는,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은 상태 혹은 괴롭지 않은 상태라고 하셨다지요.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추하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요? 무언가를 덧붙여서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추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예전엔~~~

Win Win – 가야금과 고토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

코라

코라(Kora)는 아프리카 전통 현악기예요. 감비아(Gambia)라는 아프리카대륙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전통악기로 알려져 있어요.

한 십여년 전인데요, 그때 코라와 연주자를 주제로 만든 도큐멘터리를 보기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닥불 주변에서 북이나 치면서 엉덩이나 흔드는 줄 상상했었어요.

그 도큐멘터리에 나왔던 연주자가 Toumani Diabaté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는데요, 무려 70대째 그 집안에서 코라만을 연주하면서 사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오십대 중반이 되서 좀 늙어 보이지만, 그때 도큐멘터리에 나왔을때는 얼마나 젊고 총명하게 생겼던지, 그리고 무었보다 그의 코라 연주를 듣고서는 정말 놀라고 또 충격을 받았었어요. 아! 사람은 다 똑 같구나, 지금 좀 가난하게 산다고 무슨 원시인 수준으로 착각했던 내가 무지하고 무식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코라연주들을 녹음해서 가끔 듣게 되었는데요, 심금을 울리는 그런 소리가 아닌가 싶네요. 멋진 코라연주 한번 들어봐요 🙂

기념 –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

내가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던 식물원에는 플라그(기념동판) 붙은 장소나 벤치가 많다. 그중에는 매우 오래된 플라그도 있는데, 몇개가 기억이 난다. ‘에니가 앉던 곳’ (Annie’s Seat) 이라는 플라그가 붙은 벤치는, 지금부터 백년도 훨씬 전에 이곳에서 일하던 조경사의 아내가, 식물원에서 일하던 남편을 이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곤 했었다고 동판에 기록되어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다.

130년쯤 전에, 물에 빠진 동생을 구출하려다가 익사한 10살 형을 기리는 동판이 박힌 벤치도 있다. 아름답고 좋은 장소에 있어서, 나도 그 벤치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출퇴근때 자주 지나치는데 ‘아우는 잘 살다가 죽었을까?’ ‘자기를 구하려다가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했었을까?’ 그런 생각이 뜬금없이 떠오르곤 했었다.

옛날에, 조선시대 종교 박해에 관한 책자를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라에서 믿지 말라는 종교를 믿는다고 신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얼마나 나쁘게하고 또 심하게 고문을 했었던지 그 묘사들을 읽으면서 진절머리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가지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이야기는, 힘이 장사이던 좀 무식한 시골청년 신자가, 때리고 주리를 트는 악랄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겠노라고 잘 버티고선 감방으로 되돌아 와서 많은 신도들에게 귀감도 되고 또 칭찬을 받았었다고 하는데, 이 젊은이는 ‘때리는 것은 참겠는데 배고픈 것은 정말 참기가 어렵다’면서 감옥 바닥에 깔아 놓은 그 더럽고 오래된 가마니를 (짚으로 만든) 뜯어서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죽고 없는 먹새 버둑이 (레브레도리트리버 종) 녀석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지금도 퍼먹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 ‘정말 배고프면 죽는 것보다 괴롭구나’ 이해가 된다.

오늘 우연히 신문에서 ‘절두산성지’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그 책자를 읽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목을 자르던 산. 150여년 전에 병인박해라는 종교 탄압 시기에, 약 8,000명의 어떤 종교의 신도들이 참수를 당했었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 들으면, 그때는 정말 무식하고 무시무시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자주 있는데, 이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종교를 믿었었네. 참고로, 무조건 잡아다가 죽인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버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고문을 견디다가 결국은 목이 잘리는 것을 기꺼이 ‘선택’했던 신도들의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이렇게 다른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또 종교나 신념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머리로 알지만, 이런 실화들은 늘 우리 가슴에 무언가 뭉글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이 원래부터 이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회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어떤 부산물적인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들을 붓다께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고 어떤 가르침을 주십사 한다면 과연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 오늘, 내가 가끔 언급하는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가르치는 녹음된 설법을 한두개 들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자신을 포함한 붓다를 따르는 사람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자신이 진전을 이루고 또 어떤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때, 바로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정작 수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것 참 어려운 이야기 아니냐? 목표를 정하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죽기 살기로 이루어 나가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가 무척 어렵지 않겠나 싶은데, 목표나 과정에 정력을 쏟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니… 그럼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합니까? 만약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수행은 삶 자체요 과정이지, 그것으로 도달할 목표도 결과적으로 획득할 대상도 사실은 없다’ 이 비슷한 (계속 모호한) 대답을 듣게 되지 싶다.

한 이십여년 전에, 어떤 종교의 수장을 (말그대로, 한국에서는 그 종교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이곳에서 며칠 모시면서 가까이에서 보았던 적이 있었다. 이분이 그 연세에도 여러모로 열리고 또 깨인 분이라는 것을 자주 옅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 이분이 떠나기 전에, 여기에 있는 한국대사가 이분을 위해서 만찬을 열었었다. 나도 참석 했었다. 만찬이 끝나고 잠시 오락(?) 시간이 있었다. 마침 어떤 젊은 여성 공무원도 우연히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 연세 높은 어떤 종교의 수장께서 가라오케를 하시며, 이 젊은 여성의 팔과 어깨등의 신체부위를 성추행으로 보일만큼 이리저리  만져대는 것을 나는 바로 옆에서 보았다. 내가 좀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지금이면 아무도 그렇게 못하고, 만약 그랬다가는 성추행으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한 특정인의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그 종교 전체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한 그런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와 나 그리고 당신, 우리 모두는 한계가 많은 ‘다 같은’ 인간이기에…

요새처럼 일본과 어르렁거릴 때,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순신장군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좀 많지 싶다. 그런데 그분과 앉아서 대일본관, 해군작전, 군민협동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면 현대의 한국 그리고 한국해군에도 도움이 될 훌륭한 말씀들을 듣게 되지 싶다. 하지만, 그분과 여성관, 가족관, 평등한사회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내 짐작에 거의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 싶다. 이순신장군을 폄하하는 이야기 아니다.

그대에게 종교란 무었인가? 무었을 기대하며 또 무었을 얻고자 하는가? 어떤 변치 않는 가치나 도전 받지 않는 절대적인 무었이 거기에 있고, 또 그것을 배워 자신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건 구현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왜?’ 라는 질문에서 붓다의 구도가 시작 되었고, 그 질문에 대한 최고의 대답이 붓다의 가르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가 아니다.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직업삼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과 또한 그들을 추종하는 ‘좀 무지한’ 사람들이 떼지어 하는 짓이 그 가르침을 ‘종교’로 만들었던 것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띠게 만들었겠지.

잘 해보세요. 나는 관심 없어요 🙂

덴마크영화 Lykke-Per, 네번째 이야기

페르가 파탄에 이르는 장면,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역시 카르마가 주제입니다. 그 유대인 가족과 매우 가깝게 된 페르. 아름답고 이지적인 딸 야코버와는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고, 돈 많은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등은 페르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페르가 꿈에도 그리던 그 프로젝트를 이제 시작할 단계에 이르렀어요.

그 당시 덴마크에서는, 이런 대규모의 토목프로젝트들이 정부기관의 검토를 거쳐 사전 승인을 얻어야 했어요. 그 유대인 가족이 손을 써서 그 과정을 쉽고 빨리 끝내게 도와주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장기적인 엄청난 이윤을 위해, 사람과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는 큰 사업가들입니다. 페르는 그들의 소개에 따라서, 정부기관에서 이런 일을 맡아서 하는 그 고위 공무원을 만나러 갔어요. 딱 한사람이 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아!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하필이면 이 공무원이 군인장교 출신으로 ‘권위나 위계질서’ 같이 페르가 너무도 상처받고 싫어하는 그런 것들을 따지는 인물이었던 거예요.

약속한 두번째 방문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 고위 공무원. 듣자하니 자기를 끼워줘야만 승인을 고려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것 같군요. 자존심 강한 페르는 (사실은 ‘상처가 큰 페르’가 더 맞는 표현이겠지요) 이 고위 공무원의 태도에 불쾌해하며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받았다고 느낀 그 모욕의 몇배를 절대적으로 도움을 받아야만할 이 인물에게 되돌려 주고서 사무실을 나옵니다. 큰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업가와 주변 사람들은 경험도 많고 연줄도 많고 또 돈도 많습니다. 다시 한번 페르를 위해서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이번에는 모든 투자자들을 전부 초대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그 고위 공무원이 오기로 되어 있어요. 몰론 돈을 좀 주었겠지요. 한가지 조건이면 이 프로젝트를 그자리에서 승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즉시 컨소시움을 만들어 페르의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게 되는 거지요. 그 한가지 조건은, 페르가 지난번에 했던 모욕적인 말에 사과를 하는 것이예요. 갑자기 이런 사실을 듣게 된 페르는 당황합니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면, 이제 그의 엄청난 행운이 어마어마한 행복으로 바뀔 절대적으로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 고위 공무원이 약속한 시간에 방으로 들어 옵니다. 사과의 시간. 페르가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 순간 그를 평생 따라 다니던 망령이 다시 그를 에워싸며 지배합니다. 페르의 머리가 휘리릭 돌아 버리는군요. 더 심한 모욕을 그 공무원에게 퍼붓고는 페르는 그 자리를 뜹니다. 어쩌면 아버지(같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하고 싶었던 그런 반항의 말이었던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오고 말았어요. 아무도, 어떤 돈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모두 떠나고 그 돈 많은 유대인 가족도 이제는 ‘아! 이 사람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함께 이런 일을 도모할 상대가 아니다’ 깨닫게 되고 손을 듭니다.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었네요. 그 엄청난 행운을, 페르는 자기손으로, 마치 유리병을 콘크리트 바닥에 있는 힘껏 내던져 산산조각 내듯이, 송두리채 박살 내고야 말았습니다. 페르 나름대로는 할 말이 많겠지요. 하지만 원래 세상 돌아가는 것이 그렇답니다. 이곳에서 하는 말이 있어요. ‘백가지의 성공은 한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지만, 백가지의 실패는 백가지의 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다’.

야코버도 떠나고 말았을까요? 아름답고 품위있는 야코버는 일편단심 페르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또 그 결과로 성공의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렸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나의 페르입니다. 돈은 내게도 있어요. 그리고 나에겐 페르만 있으면 됩니다. 야코버는 페르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둘만의 영국여행을 계획합니다. 그 계획을 의논하던 카페에서, 페르는 야코버에게 갑자기 (약혼의) 파혼과 결별을 선언합니다. 페르의 마음이 변했을까요? 아닙니다. 야코버를 사랑하지만, 페르의 ‘카르마가 속삭이는 바’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야코버에게서 받는 사랑은 동정이며, 또 이런 비참한 자신에게 야코버를 묶어 두는 것은 자신에게는 참기 어려운 모욕이 되는 것이겠지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가 살아온 삶이, 그가 성장하고 자라며 (어떤 환경이나 이유로 말미암아) 생긴 ‘마음을 쓰는 습관’이 그로 하여금 이런식으로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럴때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그래서 ‘습관이 카르마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카르마가 팔자를 바꾼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파혼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 하던 야코버는 이제 (모든) 결혼을 포기합니다. 그녀는 이미 페르와 영원한 가약을 맺었었습니다. 페르와 사이에서 임신한 아기를 (그에게 말해 줄 기회조차 없이 그는 떠나고 말았어요) 아무도 모르게 유산시킵니다. 되돌아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부탁을 합니다. ‘제가 물려 받을 몫의 재산을 미리 좀 주시면 안되겠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싶습니다.’ 야코버는 교장선생님이 되어 큰 heart로 수많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큰 엄마가 됩니다.

오늘 이 영화 이야기를 마치는 것이 좋겠네요. 계속합니다. 페르는 자기의 카르마와 그로 말미암아 한계 지어진 자신의 삶을 차차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의 삶에 더 이상 자신의 카르마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그들로부터 멀리 떠나 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사는 삶을 선택합니다. 참 안타까운 운명이지요? 마음 아프군요. 하지만 그는 이런 삶에서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페르와 야코버. 파혼한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만, 서로의 소식은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이제 세월이 흘러서 두 사람 모두 많이 늙었습니다. 페르가 야코버의 학교에 편지를 보내 그녀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페르는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어요. 야코버는 먼 길을 달려 페르가 홀로 사는 그 외딴 집으로 찾아옵니다. 페르는 야코버를 위해서 차를 끓여 떨리는 손으로 부어 줍니다. 그리고 오랬동안 조금씩 저축했던 작은 유산을 야코버의 학교에 기부합니다. 그의 풍차 모델과 설계도도 함께요.

내가 당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가 묻는 페르에게 야코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과 더불어 나누었던 기쁨과 슬픔이 나의 삶을 영글게 했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어요. 내 인생에 일어난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알게 되서 좋았습니다.’  자코바는 그 돈을 받고나서 페르의 손을 잡으며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말합니다. ‘그 학교는 당신과 내가 함께 세운 것이나 다를바가 없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당신과 나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아요’ 이렇게 말이예요. 영화는 이쯤에서 끝이 납니다.

이 영화와 관련된 몇 가지 단상들은 다른 기회에 이야기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