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당연한 것들

당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은 무었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한번이라도 따로 생각해 본적조차 아마 없었을테니까. 그래야 또 정말 당연한 것인거고. 이번 기회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지.

당신 개인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가족에게도 또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따로 생각조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그야말로 당연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당신이 자라나서 몸담은 사회나 혹은 나라에서도 너무나 당연해서 논의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수십년전 내가 잠시 몸담았던 회사에서, 몇해전부터 우연히 일하게 된 우리아이는 종종 회사주변 바닷가를 점심시간에 달린다고 한다. 지난날 나도 수백번은 족히 달렸던 그 아름다운 바닷가를. 한번도 보여준 적도 이야기를 한적도 없었지 싶은데, 이십년 세월이 흘러 아빠의 족적이 가득한 그곳에 아들의 족적이 겹쳐지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자라날때 우리가족에게 당연했던 것들은 과연 무었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때 나는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매년 그리고 오래 참가했었다. 항상 가족과 함께 갔었다. 그때 아기였던 아이의 눈에 아빠가 산천을 달리며 연습을 하고 또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 멀리 갔다가 한참만에 다시 나타나는 모습들이 반복되어 각인되었지 싶다. 한번은 마라톤을 완주하던 마지막 구간을, 결승선 근처에서 엄마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아이를 불러내 손을 잡고 같이 결승선을 통과했던 적도 있었다. 일부러 무었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자연스레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우리집에서는,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짧은 빤스를 입고 비슷하게 차려입은 다른 무리들과 산천을 그리고 도시의 아름다운 길들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이 ‘그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장성하고나서, 아빠가 했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그것을 자기도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친구분 딸에게 조언을 했던 적이 있다. 키도 크고 눈도 큰 사람들이 (내가) 말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처음에는 위압감을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맞짱을 뜰 자격과 능력이 되기에 그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항상 맞짱을 뜨고 맞먹는다는 마음을 가져라.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맞짱을 뜨고 맞먹게 될테고 그때는 맞짱을 뜬다 맞먹는다 그런 생각조차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런 수준이 되어야 ‘정말로’ 맞짱을 뜰수가 있다. 이런 비슷한 말이었지 싶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던 그 공부 잘한다던 젊은이는 지금 그넘들과 맞짱을 ‘정말’ 뜨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졸리는 눈까풀이라던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은 무었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자기를 정확히 보고 아는 것’도 그중 하나지 싶다.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등 집단속에서 배우며 성장한 구성원이, 그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것들을 넘어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고 또 안다는 것은 극히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교공부나 머리로만 이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상당한 경험으로 여러차례 확인 하였다. 골프를 쳐보면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지? 나는 어쩌다 괜찮은 골프장 회원이 되어, 오선의원 + 장관 + 박사 한꺼번에 한 사람, 육참총장, 국제기업 사장, 의사나 박사는 수도 없이 (은퇴한 사람들 포함) 같이 라운드를 해보고선 깨달은 것이 많다. 후진 삶을 살면서 카르마가 쌓인 넘도 보았지만, 동시에 수십년 지역에 의료봉사를 했던 의사가 그렇게 좋은 일은 하고서도 카르마를 쌓은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세상을 그리고 상대하는 사람들을 시도때도 없이 자기 병원에 찾아온 환자 취급하는 버릇에 인이 밖혔더란 말이다 🙂 그 카르마와 이고로 말미암아 장차 노년에 괴로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이 되더라.

골프를 치면서, 지위고하 성공여부를 막론하고 적어도 그 시간 그 장소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때로 어리석고 쪼잔한 중년들과 노인들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더라. 그리고 아주 지능적으로 속이는 정말 나쁘고 위험한 넘도 보았다. 아빠 따라온 어린 인디언 소년과 클럽에서 주최한 매치플레이를 하는데, 우연을 가장하여 최악의 벙커 라이를 멀쩡하게 개선한 뒤에 벙커샷을 하여 그 홀을 이기고선 결국은 매치플레이에서도 승리하는 꼴을 감명깊게 보면서 인간과 인생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존 지사장이라는 그넘에게는 무었이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게는 또 무었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또 당신에게는?

심사숙고할 주제가 아닐 수가 없다.

뒤죽박죽 인간 엉망진창 인생

한 이십년 전에 어떤 가족에게 은혜를 (?)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한국인 종교모임에 속하여 자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놀았었는데 (?)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었다. 서로 의지가 되기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민와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찌그러진 상황에서, 에헴 소리도 어쩌다 서로 좀 내보면서 그리운 한국의 맛도 (?) 보고 그랬었다.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며 놀던 한 가족이 한국으로 급히 귀국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부인이 남아 집을 팔고 다른 정리를 마치고 뒤따를 계획이었다.

집은 빨리 안팔리고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이웃중에 변태성욕자가 있어 여자 혼자 사는 줄 알게 되면서 빨래줄에 널어둔 속옷이 자꾸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집 뒷쪽 문들을 드라이버로 쑤셔서 강제로 열고 침입하려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지난날 웃으며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불렀던 나를, 그 부인이 직장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집을 팔고 차를 팔아 송금하겠으니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한국으로 즉시 귀국하라고 하였다. 변호사를 찾아가 법정대리인 절차를 밟은 후, 복도에 알람을 설치하고 몽둥이를 침대머리에 두고서 그 집에서 한두달을 살았다. 오래 안팔렸던 집을 팔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서 집을 씻어내고, 실내를 꾸미고 잔디를 깍아야 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부동산업자들을 연일 상대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집을 팔았다. 그리고 내 차도 아마 그렇게 못했을텐데, 그 사람들 차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이 그 차를 샀었던 딜러에게 찾아가 부족한 영어로 사정하여 팔았다. 집도 차도 예상보다 나은 가격에 팔게 되어 기뻣다.

그 여자의 오빠들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툭 내려와서 돈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내게 말하였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가 같은 도시에 살았는데? 골프 치시느라 너무 바쁘셨구나. 존경스러운 그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해주고 나는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 변태는 늘어진 내 사각빤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몽둥이도 다행히 사용되지 않았다.

그 내외는 나를 잘 알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알았었다. 나는 한장의 편지, 한통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은혜를 입었다. 참으로 고맙다’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 한번이면 난 충분했었을 것이다. 웃으며 작별했었을 것이다. 어차피 떠난 사람들이었고 이미 인연이 다한 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외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여 했던 적선이었다. 아무런 (물질적인)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내 주소도 알고 전화번호도 알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장의 편지, 한번의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사는게 바빳겠지. 귀국하니 힘들었겠지. 그리고 고맙긴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편치 않은 상대에게 어색한 표현을 굳이 하기도 어려워서 차일피일 했었겠지. 나도 차차 살면서 깨닫는데, 흉내 내기는 쉽지만 참으로 사람 노릇하기는 (비록 소소한 상황에서 조차도) 정말 쉽지 않더라.

세월이 흘러서, 그때 그일이 있어났을 당시에 (내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던, 그 소위 형제 자매들과 이 부부가 한국에서 서로 오가며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것을 들었을때 생겨났던 내 마음의 소용돌이를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 난 뭐냐? 도대체 내가 뭘 한거지? 원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가?’ 그 격한 감정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마도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인연은 오묘하게 오가는 것이다. 굳이 내가 받은 상이 (?)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는 하찮은 상이 아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이며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원한도 실망도 별로 없이 지난 그 일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나 역시 예외없이 뒤죽박죽이었고 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좋아하겠나? 하지만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그 실체는 변하지 않고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현명한 스승이 말하였다. 십년 이십년을 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발전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보여 절망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와서, 무슨 호르몬 변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차차 쉬운 상황에서나마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을 좀 더 보게 된다. 내 자신도 흠칫 놀란다. 한편으로는 믿기지도 않고 의구심도 든다. 이래봤자 크고 엄청난 상황에 부닥치면 한방에 훅 날아간다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은근이 올라온다 ‘사람이 백날에 아흔 아홉날은 그저 소소한 것들로 마음을 끓이며 놓았다 들었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데, 백날에 하루 왕창 깨질지 몰라도 아흔 아홉날 나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인간이 뒤죽박죽이고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참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부와 가족들, 아이들도 이제 장성했겠지. 잘 살길 바란다. 서로 마주보며 과거사를 들추어 누가 무었을 했었고 무었을 하지 않았었던가를 따지며 어리석게 엮이지 않는한,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싶다. 용서? 누가 뭘 용서 하겠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나도 마이 바다 무따 아이가. 좀 되돌려 준 것뿐. 아마도 플러스 마이너스 0 이 되었지 싶다.

작년에 내가 집안에 큰 일을 당하고 나서 ‘짐작하고 알면서도 결국은 침묵했었던’ 한때 ‘친구’라 불렀던 그 인간들에게도, 그 부부 그리고 그때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함께 먹고 마시던 그 사람들에게 옛날에 내가 가졌던 그런 감정이 생겨났었다. 더 이상 ‘친구’라 부르지 않으니, 집에서도 무어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 불편할 때가 어쩌다 있다. ‘그 인간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대충 알아 듣는 듯 🙂

이번에는 십년 세월이 흐르지 않고서도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다. 친구라 부르기 싫으면 이름을 그냥 부르면 되지 않겠나 🙂 그리고 그들이 비록, 내가 궁지에 몰릴때 몽둥이 들고 자면서 집과 차를 대신 팔아주진 않을 사람들이지만, 전화 한통 편지 한장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고 한결같이 바쁜 사람들이지만, 그나마 좋은 시절에 꽃놀이는 어울려서 다닐 수 있지 않겠나? 전에도 함께 먹고 마시며 놀았으니 다음에 만나도 그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또 먹고 마시며 꽃놀이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나? 혐오의 마음이나 감추거나 누르는 감정은 별로 없다. 인간이 그러하기에, 사는 것이 원래 이 꼴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기에. 또 나도 꽃놀이 좀 어울려 다니고 싶기에 🙂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좀 더 들리고 더 보이게 된다. 반대로 일단 받아들이지 않고 장막을 쳐버리면 들어야 할 것도 안들리고 봐야 할 것도 안보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막히고 단절되어 양쪽 모두 크게 잃게 된다. 상대방이나 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블링블링? 엉망진창?

어제 이야기 했던 티비드라마 ‘결혼계약’에서 주인공 혜수씨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직전에 묻는 말이 있어요. (나의 병으로) 앞으로 나는 ‘엉망진창’이 될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묻습니다.

엉망의 ‘엉’은 큰 숫자를 의미하는 ‘억’이 변화된 것이에요. 그리고 ‘망’은 그물이라는 뜻인데요,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 그물처럼’ 이런 의미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물이 엄청나게 많이 얽히고 섥히면 그 겉으로 드러난 (표면의) 모습은 어떨까요? 몹시 우둘투둘하고 보기에 징그럽겠지요. 진창은 천연두나 종기의 자국 혹은 흉터를 의미합니다. 네 글자를 합친 의미는, 천연두나 종기의 흉터가 마치 수없이 많은 그물 모양처럼 피부를 징그럽게 뒤덮은 꼴 이런 정도입니다. 징그럽고 보기싫고 무섭고 괴롭고 가까이 하기싫고 아무도 원치않는 그런 꼴이 바로 ‘엉망진창’입니다.

오래 떠나 살면서 한국어가 변화하고 변천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로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의미도 알수 없는 단어들을 사람들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새롭게 듣게된 단어는 ‘블링블링’ 입니다. 물론 한국어는 아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인 듯 합니다. 알아보니 자마이카 출신의 어떤 래퍼가 (가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퍼져, 한국뿐만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슬랭처럼 사용되는 듯 합니다. 한국어 ‘반짝반짝’과 대응하는 자마이카 말인듯 하네요.

그대에게 삶은 ‘블링블링’ 인가요 ‘엉망진창’ 인가요? 아니면 지금은 엉망진창인 느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블링블링을 꿈꾸며 살고 있나요?

붓다께서는 삶은 ‘두카’라고 하셨어요. 짱께들이 ‘고’ 즉 괴로움이라 번역하였고, 코쟁이들도 ‘suffering’ 역시 ‘괴로움 혹은 고통’이라고 번역하였는데요, 사실은 둘 다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두카’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는’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다시말해 ‘항상 불만족스럽고 늘 불완전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셨습니다. 목이 정말 마를때 시원한 물을 들이키면 행복해지나요? 갈증이라는 일종의 괴로움이 사라짐은 분명하고 잠시 어떤 기분 좋음이 (행복이라고 굳이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금새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다음번 목마름’ 뿐이 아니겠어요? 마시고 돌아서면 또 마셔야 하고, 잠시 기분이 좋더만 돌아서고 나면 잘 해야 본전 아니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바로 이러한 우리 인생의 ‘멈추지 않는 갈증과 그것이 끝없이 빙글빙글 도는 윤회’를 표현하신 말이 ‘두카’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런 두카에서 해방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예를 들자면) 목이 마를때 마신 물이 주는 그 쾌감 혹은 일종의 행복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아니면 한번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는 목마름이 애초에 생기지 조차 않는 상태? 하지만 이런 상태들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함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혹은 제정신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겠어요? 목마름이라는 예를 떠나서 다른 어떤 것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도 ‘한번 얻어진 어떤 것이 (행복처럼 추상적인 대상이건 돈처럼 구체적인 것이건)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혹은 ‘한번만 얻고 나면 다시는 더 얻을 필요가 없이 만족한 상태가 지속 되는 상황’이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도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도 하고 또 일종의 희망을 (?) 가지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예요. 나는 좀 비범한 (?)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런 신데렐라 이야기의 뒷조사를 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가 알아본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속 결말은 ‘두카’입니다. 종종 상황이 정반대로 뒤집어져 처음의 행복을 나중에 모조리 토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길게보면 이 세상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란 없어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참 모습은 ‘블링블링’ 보다는 ‘엉망진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네요. 물론 괜찮은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 할지도 모를 삶을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각자 각자의 처지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목마름은 (비유적으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며, 오로지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두카’가 동전의 뒷면처럼 우리의 삶에 찰싹 들어 붙어있다는 것뿐 아닌가 하는데서, ‘삶은 엉망진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이 ‘두카’이며 ‘엉망진창’에 가까울진데,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인간의 노력들도 (해탈의 과정도) 엉망진창의 과정일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랬다 저랬다, 됐다가 안됐다가, 저녁에 왔다가 아침이면 가버리는, 그야말로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불안정함, 불만족함, 불완전함. 이런 고약한 up & down의 반복이 해탈의 과정이 아니겠어요? 붓다께서는 80세가 넘어 돌아가셨어요. 현대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아마 120세쯤 장수하셨지 싶네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분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알려진 이분의 또 다른 위대함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다른 사람들 그리고 수행자들과 더불어 매일 매주 매달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똑같이 함께 (정해진) 수행에 정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만 먹고나면 영원히 배부른 밥이 없듯이, 한번만 성취하고나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해탈 열반도 세상에 없다는 진실을, 몸소 웅변으로 똑똑히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분만은 예외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내게는 많은 것을 무언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어요.

잘 먹고 입고 편해서 얼굴에 기름이 졸졸 흐르는 모양새로 (그렇게 먹고 입고 자도록 땀흘려 제공해 주었던 사람들 고마운 줄은 모르고)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입을 놀리는 성직자나 도사같은 가짜들을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또 따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

어쩌다 한번씩 청소를 하면서, 예를들면 밀대로 부엌바닥을 닦으면서, 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청소란 사실은 (더러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만 희석시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요. ‘줄이는 행위가 청소’ 입니다. 희석시켜 줄이는 것이지 결코 전부 없앨 수도 없고 또 설령 어떻게 한번 거의 없앤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되돌아 오지 않겠어요? 인생도,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해탈이니 사랑도 결국은 이와 같지 않을까요? 더러움을, 어두움을, 어리석음을 좀 닦아내서 줄이고 또 뒤돌아서 다시 좀 닦아내고 줄이면서 세월이 흐르고 장차 종착역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언가 명백하고 확실한 그래서 내 손에 꼭 쥘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도, 닦아내고 또 닦아내는 땀 흘리는 과정만 존재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실체이며 또한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선 한동안 망설이셨다고 합니다. 이것 가르쳐서 뭐하나? 누가 알아 듣겠나? 이런 마음이셨다고 하지요. 하지만 붓다께서는 마음을 바꿔 잡수셨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우리도 두카니 해탈이니 배워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왜 마음을 바꾸셧을까요? 무었이 그분의 마음을 돌렸을까요? 내가 듣기로는, 그분이 보시기에 ‘인간들이 불쌍해서’ ‘사람들이 사는게 슬퍼서’ 그러셨다고 해요. 측은한 마음.

계절 탓인지, 돌아가신 사랑하던 이들의 삶을 되돌아 보아도, 내가 사는 꼴을 보아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아도 인생은 참 애잔하다는 마음입니다. 애처롭고 애틋한 마음. 일종의 슬픔.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다시 전철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회사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스쳐가는 사람들에게는 알게뭐야 불친절, 그리고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는 야비한 언행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겠지요. 그럼 그때 또 만나요 🙂

다마네기

사실은 ‘양파처럼 진실이 겹겹인 세상’이라는 글 제목 대신에 그냥 양파만 좀 ‘선정적인’ 언어로 써 보았어요.

이곳에서 꽤 오래 살면서, 나도 이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하거나 당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았는데요, 상대적으로 이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하고 덜 복잡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예를들어, 슈퍼에 과자나 사탕을 사러가면 자주 느끼게 되는데요, 역사가 오십년 백년 이렇게 된 회사들이 그냥 할아버지대에서 잡숫던 과자와 사탕을 손주대에도 그대로 만들어서 같은 상품을 아직도 파는 것을 흔히 볼수 있어요. 파는 사탕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마 1/10 혹은 1/100도 안될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잠시 입에 달콤하자고 먹는 사탕이 뭐 그렇게 다를 수가 있고 또 지난 백년간 뭐 그렇게 달라졌거나 향상이 되었을까요. 얼핏보면 ‘좀 모자라나’ ‘바보들인가’ 싶지만 이 나라 사람들도 좋은 것 알고 고급 다 알아요 🙂

요샌 세상이 좋아서, 유튜브로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한국 티비 선전들을 최근에 보았는데요, 지금이야 한국과 이나라의 경제 수준이 거의 동등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이나라와 한국의 경제 수준은 현재 한국과 말레이지아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래된 한국의 티비 선전을 보면서, 지금 현재의 이나라와 비교해도 너무 종류가 많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한국사람의 시각으로는 ‘이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좀 후지다’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이곳에서 집을 사거나 차를 구입할때 그 과정이 너무 단순해서 ‘이것이 전부냐? 뭐가 빠졌거나 혹시 속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단순함에 길이 들어서 (다른 세상에서의) 복잡한 절차나 과정이 더더욱 복잡해 보이는 쪽으로 나도 변했어요. 돈을 주면 물건을 주고, 댓가를 지불하면 약속한 것을 이행함에 별로 복잡함도 없고 또 사기가 개입될 여지도 없으며 아무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사는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나머지 시간에도 그냥 멍하게 살까요? 아니지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을 많이 하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또한 이나라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마음과 에너지를 쏟을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한국에는 ‘사기’ ‘횡령’ ‘가짜 고소 고발 (그리고 가짜 역고소)’ 같은 ‘거짓’을 동기로 하는 범죄 발생율이 인구비례로 따지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수십배 수백배에 달한다는 많은 증거들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있는데요, 이런말 들으면 더 기분이 나쁘겠지만, 구한말 어떤 선교사가 남긴 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거짓말을 일상속에서 밥먹는듯이 하는데, 자신의 거짓말을 (사기나 속임수) 어떤 특별한 능력처럼 자부심을 가진듯이 말하더라’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충격적이지요 쏘리 🙂

자살한 전 서울 시장에 대한 진실이, 마치 다마네기처럼 까면 깔수록 다른 색깔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남을 보면서, 섣불리 함부로 단정짓고 입을 놀린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복잡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며, 세상을 이렇게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며 제 이익 챙기는 뇬넘들은 (그 바쁜 와중에) 제 정신이 잠시 들때 거울에 비친 제 상판때기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미운 마음과, 또 그들처럼 날래고 잘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뇬넘들이 만든 복잡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지난번 ‘엄마’글에서도 밝혔듯이, 세상사는 복잡하며 인간들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존재들이라고 나는 깨닫고 있습니다. 까지고 또 까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그 ‘가짜 진실들’에도 (?) ‘진짜 진실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그 농도와 빈도를 가지고서 장난을 치면서 세상을 속이고 또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혼란과 혼돈속에서 똑똑한 뇬넘들은 제 몫보다 훨씬 많이 챙기며 웃고 사는 세상이 혹시 내가 떠나온 나라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아닌가 싶어요. 나와 그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헷갈리고 망설일때 멀찌감치 챙겨 달아나고, 그 뛰어난 능력에 자부심을 (?)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 소달구지를 몰던 할아버지 세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대로 발전했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옛노래처럼 보리밥 김치를 쌀밥과 삼겹살로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곳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감자처럼 한겹만 까면 되는 단순한 세상에 사는 단순한 넘이, 다마네기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하는 한탄이에요.

아까 위에서 ‘그런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운 인간의 진면목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데 ‘피부 관리’ 같은 생각이외에는 ‘어떤 철학적이거나 삶에 본질에 관련된 사색을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작년에 ‘설탕의 역사와 그것에 관련된 비극적인 인간의 이야기’에 관한 도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간략히 말해 설탕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요 식민지의 역사며 노예의 역사입니다. 주제를 벗어난 장황한 이야기 대신에 한가지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아프리카 몇곳에는 지금도 유적처럼 남아 있는 ‘원주민을 잡아다가 노예로 (자마이카나 그런 멀고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만들었던 전초기치 / 항구시설’ 들이 있어요. 그중에 규모가 컷던 항구에는 한꺼번에 수백 혹은 수천명의 잡아온 원주민들을 (실어나를 배가 들어올 때까지 감금해 두었던) 지하 토굴 감옥 같은 시설이 있는데요, 그야말로 당신이 지금 기르는 개보다도 훨씬 못한 지옥에서 그들을 임시로 보관 (?) 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런데요 이 이야기의 압권은 그 토굴 바로 위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백인 선원들, 가족들 그리고 노예관련 무역을 하던 백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하던 곳이지요. 지금도 있는데요 멀쩡히 지어진 좋은 교회입니다. 그 백인들이 자신들의 무사 항해를 (노예장사) 그들의 신에게 빌며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에 새로 장만할 가족들의 ‘사랑의 보금자리’ 새 집에 대한 상상등을 그곳에서 할때,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강제로 잡아온) 수백 수천명의 원주민들이 바로 교회 아래 토굴에서 짐승보다도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대소변과 뒤섞여 그저 숨만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뭐가 빠졌을까요? 그 백인들의 머리에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100%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사기꾼은 자신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속이는 뇬넘들이며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인간 말종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 보아도 (걱정스러운 기미나 주름 이상의) 어떤 가책이나 마음의 동요도 없을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며 또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사진은 불과 200년 전에 거룩하신 백인들께서 얼마나 머리를 써서 흑인 노예들을 배로 잘 운반했던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한 1/3이 죽어도 크게 남는 장사였데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습하고 더운 배 밑창에서 아프리카에서 사로잡힌 흑인 원주민들은 한달 두달을 꼼짝 달싹 못하게 묶인채 누워서 대소변을 아래로 줄줄 싸면서 그리고 죽어가면서 운반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 또 있는데요, 현재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들이 바로 이 아프리카 나라들이라고 해요. 과도한 설탕 소비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죽어간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노예로 붙들려 가서 재배한 사탕수수가 되돌아와 손주를 죽이는 그야말로 ‘설탕의 저주’입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무지한채 오래 살아왔어요. 진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눈에 보이는, 백인들이 건설한 선진국 그리고 그들이 이룬 멋있고 아름다운 외형만을 인정하고 또 동경하며 살았었어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능력이 생겼기를 바래요. (개인의) 아름다움에 섞여 있고 공존하는 추함과, (집단의) 축척된 부와 세련된 문화 그리고 선진국이 된 이면에 존재하는 추악함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대들이 사는 그 세상, 오늘 내가 좀 화가 나서 퍼부었던 고국에 대한 마음도 아마 비슷하지 싶네요. 애증의 마음… (나를 포함한) 인간의 한계와 부조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촌닭에게

강원도 ‘정선’ 🙂 카지노 도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듯이, 카지노 근처에는 전재산을 도박에 탕진하고 나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혹은 떠나지 않고) 수년을 노숙자 생활을 하며 터무니 없는 ‘미래의 한방’을 꿈꾸며 사는 ‘오늘의 폐인’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십년 가까이 소형자동차 안에서 숙식하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도박을 연구하며 사는 어떤 남자가 기억이 난다. 그 좁고 불편한 차안에서 노구를 누이기 전에 그는 바이얼린을 조용히 연주하였다.

우리 인생의 부조리와 불완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되어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도 한때는 괜찮은 사람,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상한 아빠였을 것이다. 그 나이에 바이얼린을 켜려면 그리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니 가능한 것은 그런 폐인의 삶을 지루하고 우울하게 지속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운명뿐이 아닌가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정면에서 걸어오는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를 지나쳤다. 순간적으로 두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제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혹한 운명을 바꾸기에 그가 지금 가진 카드는 (상황은) 너무나 좋지 않다. 그는 아마도 그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온갖 병고를 겪으며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내가 비교적 건강하다고 교만에서 비롯된 저주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전에 했던 선택들이 장차 우리가 하게 될 선택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며 또한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가의 이야기, 나아가 너와 나는 과연 이런 운명의 노예일뿐인가 잠시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그런 도큐멘트리를 티비에 보여주는 이유도 그리고 내가 아침에 스쳐지나간 초고도 비만의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들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며 지금 살고 있는가?’ ‘내가 가진 (남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초고도 비만의 정체는 무었이며 그 실체는 어떤 것인가?’

어제 너에게, 그 아름답게 가꾼 멋있는 몸매를 가지고서 이제부터는 숨이 차고 땀을 흘리는 달리기나 빠르게 걷기를 하라고 권했었다. 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한결같이 달리기의 최대 수혜자는 (잘 돌아가는) 두뇌이며 (안정된) 마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훌륭한 스승들도 ‘일단 몸과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너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자랑할 충분한 외향적인 아름다움을 이미 가지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내면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운동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길 권한다. 일단 심신이 안정이 되고 더 균형이 잡히게 되면 어떤 것에 빠져서 노예가 되기가 훨씬 어렵게 된다. 보약이며 백신인 것이다. 세상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네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한 것이니 이것을 지키고 향상시키는데에 가진 돈과 시간과 정력을 우선적으로 투자해라.

‘사람들이 다 배워서 하는 것’이라고 어제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은,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고 따라서 하는 것이고 또 누구에게선가 배워서 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배워서 따라 하다가 습관이 되고 인이 밖히면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술을 마시는 것이건, 도박을 하는 것이건, 운동을 하는 것이건, 좋은 습관이건 나쁜 버릇이건 간에. 일단 노예로 전락하고 나면 그것에서 헤어나기가 너무나 어렵게 된다. 아침에 스쳐지나간 그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처럼. 그렇게까지 되기 이전에 막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좋은 운동을 통한) 보약과 백신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공급하면서 동시에 네가 정녕 바라지 않는 것에 노예가 되는 것을 막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 노력의 최대의 무기가 어제 말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쓴 검증된 좋은 책들을 꾸준히 많이 자주 읽는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산물이요 결국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운명의 노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제한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유용한) 자유 또한 가지고 있다. 마음이 괴롭고 혼란할때, 좋은 책을 펴는 것이다. 그 이상 무언가를 자신에게 요구하거나 강권하거나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 말했듯이, 어떤 한국최고의 골프코치가 발견했다던 ‘(아마추어들이) 골프를 잘치는 최고 최대의 비결은 오래 자주 치는 것’이라는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말이다. 네 자신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네 자신에게 어둠과 대항할 힘과 무기를 ‘자꾸만 손에 쥐어 주면서 스스로를 응원’해야 한다. 그러면 서서히 그리고 언젠가는 변화된 너를 놀라며 발견하게 되리라. 그때 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요, 과거에 일어났던 동일한 일들에 대한 너의 해석과 생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지마라. 세상에 무릇 좋은 것은 때가 와야 하고 무르익어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잊지 마라.

골프를 ‘오래 자주 치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터무니 없는 기대를 스스로 하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낏하여) 또한 이랬다 저랬다 마음을 바꾸면서 스스로 좌절하기 때문이다. 손에 물집이 생겨서도 아니고 시간이나 돈이 갑자기 없어져서가 아니다. 제 열정으로 화다닦 시작했다가 제 풀에 서서히 망하는 것이다. 어떤 지름길도 감추어진 기적의 비법도 없으니, ‘그저 좀 안되도 가고, 좀 실망해도 붙어 있고, 좀 시시해도 버리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 마음의 회의와 업엔다운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만두면서 망하는 것’이다. 종국에는 초고도 비만 혹은 카지노 폐인으로 (문자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의미상으로) 인생을 종치게 된다.

그래도 뭐 그만이긴 하다. 결국은 모두 왔다가 가는데.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더라. 늙었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되지 못한 노화에 동반된 심신의 고통이 괴로운 것이라고. 어떻게 살아도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손에 든 카드가 그리 나쁘지 않은 너와 내가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이렇게 초고도 비만이 된 것이 아무렇지도 않나요? 댁은 이렇게 카지노 폐인으로 차에서 사는 삶이 어떤가요? 아마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지 싶다. 만약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이런 비참한 꼴이 되기 훨씬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젊고 아름다운 촌닭. 아직 시간이 있을때, 아직 그렇게 끔찍하게 되돌리지 않으면 안될 현실에 직면하지 않았을때 우리 조금씩이라도 애써 보자.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정과 평온이 장차 많이 생기고 나면, 그때는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을 하건 삭발을 하건, 엄마에게 돈받아 등산 다니며 백수로 살건 투잡을 뛰건, 결혼을 하건 말건 더 이상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네 엄마는 네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시게 되고 나면, 네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해주실 것이다. ‘자식의 참된 행복을 바라는 마음’ 부모의 바램은 이것뿐이다. 네가 엄마가 원하시는 것을 먼저 드린다면 엄마는 얼마나 네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 싶어 하시겠니? 밤에 부산 바닷가에서 하늘에 올라 별을 모두 따다 주실 것이다.

네 자신의 것이건 그 누구의 것이건 지나간 과거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도록 노력해라. 꾸준히 시도하고 넘어지고 패하면 다시 일어나 또 시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 보거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어쩌면 그런 눈물로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애쓰다가 보면 차차 그런쪽에 낭비될 네 삶의 에너지를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오롯히 사용할 날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나도 뒤늦게 나마 그렇게 노력했고 또 일부는 성공한 듯이 보인다. 너도 노력하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그리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저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