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n Respect

영어 표현에 ‘Earn respect’ 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단어는 아니지만 ‘존중을 얻다’ 정도로 기계적으로 번역하기에는 좀 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earn’ 이라는 말도 또 ‘respect’ 라는 말도, 그 뜻을 좀 더 정확히 이해 하려면 영어권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싶다. 이 두 단어를, 영어권 문화에서는 한국문화에서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

근래에 들어 넷플릭스를 통하여 좋은 한국 영화 드라마를 서너개 보았다. ‘자체발광 오피스’ 라는 코메디가 내용도 연기도 너무 좋아서, 그 긴 시리즈를 두 번을 반복해서 아내와 함께 보았다. 어제는 우연히 읽고 있는 책에서, 이순재 선생이, 주연 배우인 스카렛 요한슨의 연기력이 좋다고 칭찬을 하던 영화 ‘The Other Boleyn Girl’ 이라는 좋은 영화를 보았다.

시대도 배경도 주제도 전혀 다른 이 두개의 작품에서, 두 사람의 여자 주인공을 통하여 아내와 내가 보았고 또 깊이 감동했던 것은, ‘earn respect’ 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부부 가족 친구 직장동료등 우리는 다양하고 많은 관계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혹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요소나 가치들이 각 사회마다 시대마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나 시대를 초월하여 공통적이고 또 가장 중요한 하나만 뽑으라면 나는 ‘earn respect’ 를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그 드라마 영화 한 번씩 보시지 🙂

미셸 오바마 자서전 ‘Becoming’ 이야기 3

큰 돈이 걸린 투견을 위해 싸움개를 전문으로 기르는 자들이, 장차 돈을 벌어 줄 미래의 챔피언 싸움개를 양성하는데 사용하는 기술을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족보가 좋은 새끼개를 골라서 은퇴한 늙은 싸움개와 장난반 연습반 싸움을 붙이면서 훈련을 시키는데, 잘 지켜 보면서 새끼개가 은퇴한 개로부터 기술은 배우되 절대 진다는 느낌이 들때까지는 놓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런 훈련을 많이 한 다음 큰 돈이 걸린 진짜 투견 대회에 참가 시키는데, 이렇게 체계적으로 훈련된 그 개는 두려움이 무었인지를 모른다고 한다. 단 한 번도 패해본 적이 없으니. 전혀 겁을 내거나 위축되지 않는 상태에서 싸움에 임한다더라. 이게 무슨 뜻일까?

미셸 오바마 여사가 자서전에서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인종차별의 ‘최대 최악의 원인이자 결과’가 미국흑인들로 하여금 ‘시작도 해보기 전에 이미 두렵고 무서워서 정신적으로 패하도록’ 미국사회가 온갖 방법으로 그들에게 패배의식 혹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얼마나 무섭고 나쁜 이야기인 줄,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 대부분은 경험 해본 적이 없을테고 또 나아가 미국의 영부인까지 왜 이런 이야기를 자서전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큰 주제로 다루고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지난번 글에 ‘남의 나라의 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감추는 중년 남자’ 언급을 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블로그에 등장했던 그 보살원장은 나의 아내다. 나는 그녀를 통하여 뉴질랜드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난 십여년간 많이 듣고 또 알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에서 서당개 노릇하느라 내가 좀 바쁘다 🙂 이를 통하여, 이 나라의 국가 1절이 왜 원주민말인 마오리어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또한 왜 국가의 가사에 내가 이전에 말했던 그런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이 나라의 공립 유치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몇 주전에 아내의 유치원이 속해 있는 지역협회에서도 90주년 기념일을 크게 축하 하였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학습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것의 배경이 되는 교육철학적인 측면도 정부와(문교부) 유치원협회들이 함께 개발하고, 실행하며 또 모니터링 한다. 원장이나 선생들 마음대로 (시끄럽다고 보드카를 몰래 먹여 ‘곤히’ 재우거나 하면서) 아무것이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유치원 교육 내용에 반영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서, 뉴질랜드 국민 다수가, 아빠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 아가에게 무었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그 원하는 내용들을, 합의된 교과와 방식 그리고 절차에 따라서 유치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아내가 유아교육과 학생으로 유아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시절부터 십수 년이 지나 큰 공립유치원 원장으로 일하는 지금까지,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또 아무것도 모르던 나 같은 사람도, 이 나라의 유치원 교육에서 원주민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를 얼마나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아이들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성들여 가르치는지, 때때로 이것 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너살된 어린 아가들에게, 일찍부터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알게하고 또 자신과 이질적인 문화를 대할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마치 밥 먹을 때마다 테이블매너를 가르치듯이 지속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장차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버스에서 들리는 외국어 소리, 식당에서 나는 이질적인 음식냄새 그리고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화의 차이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 새끼 싸움개가 패배나 두려움이 무었인지 모르면서 큰 싸움개로 자랐듯이. 비록 목적은 극단적으로 다르나 그 방법은 지혜로우며 또 결과는 같지 않을까?

그냥 개인적으로 내 생각과 비위에 맞지 않다는 것과, 저것들이, 저 인종들이, 저 무리들이 하는 짓이니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지난날 나는 사소하고 어리석은 이유들로 때로 상사나 동료들과 언쟁을 벌였던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건데 한 번도 ‘인종간의 어떤 문제’가 원인이 되었던 기억은 없다. ‘인간간의 어떤 문제로’ 부딪혔었지. 이 두가지가 매우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아마 잘 이해하고 공감 하실 것이다.

나는 이 착하고 훌륭한 국민들, 약자를 보살피고, 쉽게 믿고 또 인간적인 동정을 베풀며, 있다고 별로 거만하지 않고 또 없다고 별로 기죽어 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 피부색 언어 그리고 문화가 다른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화목과 조화를 위하여, 그 좋은 머리와 세금을 아낌없이 쓰고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감동을 느낀다. 서로에 대한 존경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구성원 상호간의 유대와 지원은 이런 과정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돈으로 살 수 없고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조차도 이나라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 되고 싶게끔 만든다. 그래서 이나라 국가를 부를때면 내가 늘 눈물을 몰래 훔치게 되는 것이다.

영어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 A great man shows his greatness by the way he treats little men (Thomas Carlyle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사회도 나라도 그의 위대함을 약자와 소수를 대접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보이지 않을까?

그대가 속해 있는 그 조직, 그 사회와 나라는 어떤 식으로 약자와 소수를 대접하는가? 당신은 그것에서 위대함을 느끼는가?

미셸 오바마 자서전 ‘Becoming’ 이야기 2

영어에 ‘dignity’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으로는 ‘존엄’ 정도로 번역되는 듯 한데 좀 부족한 느낌이다. 어떤 사전에는 ‘위엄, 존엄, 관록, 품위, 체면, 위신’ 이렇게 잔뜩 대응되는 단어들을 늘어 놓았던데 어쩌면 이것을 전부 다 합쳐도 실제로 dignity의 참된 의미를 전달하기가 어렵지 싶다. 순수한 우리말에는 왜 이런 dignity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없을까? 아프리카 스와힐리어에는 에스키모의 언어에서만큼 ‘눈'(snow)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들에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일까.

오바마여사의 자서전 전반을 통하여 내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dignity라고 하겠기에 서론이 좀 길었다. 무슨 어떤 dignity인지를 오바마여사의 자서전을 통하여 이야기하기 전에, 무었이 dignity가 아닌지를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이어 지금 그 크고 흰 집에 살고 있는 부부를 통해서 먼저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새로 영부인이 된 그 여자는 일찍부터 빼어난 몸을 밑천으로 (경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진 들일 수 있음) 살아온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그것을 돈이나 다른 방법으로 구해서 즐기며 살아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 받는 소위 말해 궁합이 잘 맞는 부부라고나 할까. 이 여자가,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비싼 옷을 입고, 한국여자가 신으면 키가 졸지에 2배로 커질 하이힐을 신고, 머리에는 FLOTUS (미국영부인) 라고 크게 쓰인 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 모습에 dignity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큰 집에 들어가기 이전에, 무었을 위해 그리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 왔고, 어떤 비젼과 희망을 지금 POTUS (미국대통령)가 된 배우자와 나누며 함께 이루려고 하는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진실 속에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들의 삶 속에 dignity가 있는 것이다. 이 여자가 이런 사진들이 하이라이트인 삶을 (경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진 들일 수 있음) 살고 있을때, 오바마 여사는 시카고 외곽 흙수저 가정에서, 오직 부모의 헌신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최고의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5대 로펌에서 그리고 시카고의 사회단체들과 시립병원등에서 일했었다. 한 인간이, 과거 한때 어떻게 살았었던가를 가지고 마치 인간은 결코 변치 않는 존재인양 폄하하거나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한쪽 길을 오래 걷게 되면 그 길과 본질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좀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똥물속에 잠수를 너무 오래하고 나면 그 물이 장차 샘물로 바뀌고 나서도 이미 대가리 속에 든 똥물은 없어지지 않는다’ 🙂

오바마 여사는 그녀의 자서전, 지난 2주 동안에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한 (발매 첫 주에만 140만귄이 팔렸다고 한다) 그 책을 통하여, 미국영부인을 포함한 이 세상 누구에게도 dignity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개인적이고 은밀하며 어쩌면 치부로도 보일 수 있는 내면의 갈등과 인간적인 괴로움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온 과정등을 가감없이 솔찍하게 말하였다. 마치 친한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 놓듯이. 이것이 dignity요, 오직 평생을 통하여 진실하게 dignity가 있는 삶을 살아 왔던 그녀이기에 또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보살’ (Bodhisattva)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을 터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이 시대를 사는 보살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녀의 dignity로써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FLOTUS로서 지혜와 용기 그리고 힘과 능력으로 미국을, 어쩌면 세상을 바꾼 그 큰 업적들 때문이기도 하다.

내 카르마를 따라 한 마디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시대의 보살은, 수 백년 전 혹은 수 천년 전 사람들이 그 당시의 지적 수준과 세계관으로 붓다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님긴 책들을 평생 붙들고 씨름하며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이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들 속에 있는 것도 아니지 싶다. 바로 그녀처럼, 바로 이 시대 이 현실속에서, 지금 닥친 난관과 좌절을 극복하며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찾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지 않을까? 올해 노벨상을 받은 일본의 과학자 혼조 다스쿠선생이 말씀 하시기를 ‘네이쳐나 사이언스같은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의 90%는 10년만 지나도 거짓말로 밝혀진다’면서 자신은, 기존의 이론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연구를 계속하기 보다는 일일이 스스로 확인하여 납득할 수 있을 때에만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하물며 현대 인터넷 시대의 첨단 과학 이론들이 이지경인데, 천 년 혹은 이천 년 전 옛날 사람들이 그 당시 수준으로 써서 남긴 이론들은? 손기정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이 위대한 것은 그때 그 당시 최고의 기록으로 올림픽을 제패했었기 때문이지, 그분의 2시간 29분이라는 올림픽 기록이 절대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하는 아마츄어 마라토너들은 지금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당시 그 상황에서 훌륭하셨다는 것이지 어떤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기록을 (진리를) 남기신 것을 액면 그대로 대대손손 기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미국인들에게 그녀는 ‘유인원’ ‘늘 성난 뇬’ ‘엉덩이가 산만한 뇬’뿐이었을 것이지만 그녀는 그런 모욕과 좌절 그리고 차별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넘어서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 사는 소수들을 위하여 (여자라서, 백인이 아니라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태어난 곳이 후져서, 부모가 흙수저라서) 용기를 주고 빛을 밝히신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와 반대쪽에 선 사람들이 그녀와는 전혀 다른 태도와 방법으로 소수들을 대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그들이 아니면 자기 자신이 그 더럽고 힘든 일들을 직접해야 한다는 ‘게으름’, 그들과 나누면 내것이 줄어든다는 ‘욕심’, 우리 증조부가 탈출한 흑인노예 잡으러 다니던 보안관이었는데 내 딸이 어떻게 흑인과 (장차 영부인이 되건 말건 알게 뭐냐) 기숙사에서 한 방을 사용할 수가 있는가를 미려한 언어와 배우자의 힘으로 대학에 관철시켜 딸의 기숙사 방을 바꾸었던, 그 부모의 ‘무지와 증오’에서 기인한 바가 크지 싶다.

자신이 살아온 그 작은 세계, 그 가정, 그 지역, 그 대학, 그 회사, 그 나라가 마치 우주의 유일한 중심이며, 원래부터 늘 그랬던 그 무었이라 믿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바마여사가 그녀의 자서전을 통하여 조용하고 품위있지만 힘있게 전달하려는 매세지는, 그것을 표현하는 다양한 언어들 이전에 ‘눈'(snow)은 이미 늘 언제나 존재해 왔고, 세상에는 나의 이 작은 세계 (그리고 이 제한된 시간) 이외에도 수 없이 다양한 다른 세계들이 존재하며, 원래부터 그랬다는 것 따위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더 좋겠다’라는 것들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서 조금씩이라도 노력하자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직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의 발로 서고 괴로운 과정을 극복하여 성취를 이루어 본 그녀 같은 사람들만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위에, 타인들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을 함께 개선 하려는 사심없는 노력을 할 수 있지 싶다.

오바마 여사의 자서전을 읽으며 인간의 참된 품위와 가치 그리고 dignity를 배우며 또 생각한다.

교통사고의 어떤 결말

양로원 앞에서 길을 건너던 할머니를 치여 숨지게 한 트럭 운전자가 5천불의 배상금을 물다.

트럭에 치여 숨진 그 할머니의 유가족들은 그 운전자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을 나서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알프레드 프라이스’라는 그 트럭 운전자는, 어쨋던, 자기 트럭에 치인 마가렛 스튜어트 할머니가 뉴질랜드 해밀턴시의 한 도로에서 사망하던 순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프라이스씨는 트레일러가 달린 큰 트럭을 운전하여 배달장소에 도착한 후에 입구를 찾는 중에 잠시 한눈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91세의 스튜어트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프라이스씨가 정신을 차려 횡단보도를 보았을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할머니는 트럭에 치인 후였습니다.

프라이스씨는 지난 목요일 해밀턴법원에서 과실치사에 대한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케시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에게, 할머니 유족들에게 5천불의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언도 했습니다.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의 변호사가 제출한, 운전면허 유지를 위한 청원서를 받아 들여 허가 했습니다. 프라이스씨는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지난 2017년 12월에 일어났던 이 사고는 그 트럭 전방에 설치된 카메라에 녹화되었습니다. 그 영상에 따르면 프라이스씨는 시속 약 30킬로미터로 서행하고 있었으며, 또한 경찰도 밝히기를, 초록색 신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트럭을 운전했었던 것으로 영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라이스씨와 그의 부인은, 지난 5월, 법무부가 마련한 만남의 장소에서,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의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주저없이 돌아가신 분과 나의 자리를 바꾸겠다’고 하며 사죄하였습니다. 프라이스씨가 써 온 편지를 돌아가신 할머니의 조카딸이, 할머니의 오빠, 즉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 읽어 주었습니다.

경찰은 운전면허취소를 하지 않겠다면 징역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법원에 권고하였지만, 윌슨판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윌슨판사는, 운전자 프라이스씨의 무과실 운전경력, 사람들이 증언하는 그의 인간됨, 그가 처음부터 유죄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지난 5월에 있었던 스튜어트 할머니 유가족과의 만남의 결과를 모두 고려하였습니다.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는 면허정지 처벌을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사고로 크게 고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물론 유가족까지도 당신을 돕고 싶어 합니다. 어쩔수 없는 사고였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그 62세의 트럭운전자에게 처음있는 사고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 가족들과 프라이스씨 가족이 서로 알게 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두 가족들은 법정에 나란히 앉아서 판사의 선고를 기다렸습니다. 유가족들은 (할머니의 오빠, 시누이 그리고 두 조카) 판사에게 운전자 프라이스씨가 운전면허를 정지 당하거나 감옥에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법정을 빠져 나오니, 프라이스씨가 밖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에서 가족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도 기꺼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우린 그를 용서했어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어요.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한 조카가 말합니다. ‘그가 잘못했던 것이 아니예요. 내가 바로 지금 차를 주차하다가도 이런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또 다른 조카의 말입니다. ‘할머니는 체구가 조그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분이었어요.’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는 미혼에 자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늙은 부친을 돌아가실 때까지 뒷바라지 했었던 딸이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의 죽음을 가지고도, 그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어떤 선택이 가능했었고 또한 그들은, 돌아가신 할머니도 기꺼이 받아 들이실 훌륭한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그런식으로 일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물론 않으셨겠지만, 어쩌면 사랑하는 남은 가족들과 또한 다른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할 그 가해자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받아들이고 잘 마무리 하기를 바라셨으리라 짐작해요.

그 할머니의 바램을, 남은 사람들이 (피해자, 가해자, 그 가족들, 법원 그리고 경찰까지도) 훌륭한 방식으로 실행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었더라면 무슨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날까지, 이미 지나버린 그리고 아무도 되돌릴 수 없는 그 과거의 일에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 다니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의 무덤을 찾을때마다 사람들은 원망과 비통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겠지요. 자주 찾기도 어려워질 것이고요. 그리고 감옥을 나온 그 운전자는 더 이상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어쩌면 흠뻑 뒤집어 썻던 그 차가운 원망과 비난의 소나기 속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뒤늦게 이혼 당하고 쓸쓸히 병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할머니가 기뻐했을까요?

그 벌금으로 유가족들은 아마도 할머니의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드렸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주 찾아가서 꽃을 놓으며 할머니의 예뻣던 과거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떠올리며 ‘아! 그 운전자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싶어요. 이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또 조금만 지나면 까맣게 잊혀질 이 사람들이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있지 싶어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우리가 익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당신이 지금 이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어쩌면 지난 과거에 어떤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요?

오늘 그대와 나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 놓여질까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 운전자가 그리고 유가족들이, 그 사고 전에, 아무렇게나 트럭을 몰며 또 서로 함부로 다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이었었다면, 그 할머니의 바램을, 듣지도 또 실행할 힘도 능력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 선택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이미 쌓여 있는 과거의 카르마를 조금이라도 줄일 선택을 하세요. 그래야 가볍게 왔다가 가볍게 갈 수가 있을꺼예요. 길가에 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처럼…

To Sir, with Love

데이비드 비서로 부터 이메일 초대가 왔다. 그가 6월 중순에 은퇴한다는 것이다. 그 은퇴식에 초대를 받았다. 지난 한 두해 동안 서로 소식이 좀 뜸했었다. 다시 연락하여 은퇴식 전에 차 한잔 마실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것이 오늘 아침이었다.

25년전 그와 우리내외는, 비유하자면,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젊은 주임교수와 방금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한국어에) 벙어리 젊은 학생부부로, 이곳 빅토리아대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제버릇 개 못준다고, 게으르고 이상한 자존심만 있는 문제(?) 학생이었고, 아내는 당연히 모범생. 데이비드는 나를 포함한 우리들 학생 모두를, ‘영어를 애처럼 하는, 어른 모습을 한 이상한 애들’로서가 아니라, ‘영어는 지금 비록 잘 못하지만, 자존심 있고 교육받은 정상적인 성인들’로 대접해 주었다.

나같은 농땡이 학생도, 이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느낌을 잘 기억한다. 그리고 그러한 ‘존중과 받아들여 줌’이 나를 포함한 그 새로 이민 온 학생들에게 미쳤던 긍정적인 효과와, 그가 말없는 행동으로 우리에게 주었던 용기는, 데이비드의 상상을 초월한 영향을 많은 사람들에게 미쳤을 것이라, 내 경험을 통해서 감히 이야기 한다.

내가 빅토리아대학교 전산부로 옮겨 오고 나서 얼마 후, 사내 신문을 통하여 그가 교육대학 학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신을 소개하며 연락을 하여 우리는 2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선생과 학생이 아닌 직원으로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나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하였다. 그의 핸섬했던 얼굴은 이십년 세월속에 주름이 잡혔지만 그의 멋있는 저음 목소리와, 100% 표준 영어 그리고 좋은 매너는 변치 않았다. 그는 우리의 만남을 참으로 기뻐하며 우리 내외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이후에 데이비드 내외가 나의 생일 파티에도 와서 우리가 함께 ‘익어감’을(?) 한잔 술을 나누며 축하 해주기도 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그가 커피를 샀다.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며 최근 남북한 정세, 은퇴계획, 결혼생활 그리고 자식 이야기등을 나누었다 – 부부농사는 약간 실패하여 새 파트너와 살지만, 자식농사는 성공하여 딸이 의사다. 아직 10명 가까운 박사과정 학생들이 학위를 마칠때까지 주임교수로서 그들을 돌봐야 하고 또 그간 집필했던 언어학 관련 서적을 마무리 하여 출판할 계획으로 당분간 바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많은 친구들이 유럽에 있어, 두 차례 정도 유럽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코펜하겐에도 친구가 있어서, 내가 최근 다녀 온 스웨덴 이야기를 했더니, 어쩌면 스톡홀름에 잠시 갈 수도 있겠다고 하였다. 옛날에 핀란드를 두번 갔었는데 그렇게 평화롭고 좋더라고 하였다.

문득, 내가 최근 스톡홀름 KTH 대학교를 방문했을때 가졌던 느낌과 감정을 이야기 했더니, 100% 알아 듣고, 자기도 그런 경우가 50-60십대에 접어 들면서 있었다고 하면서 (내가 다 알아 듣지 못하는 유려한 영어로) 그 느낌을 공감해 주었다. 20-30대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 줄 생각하면서 살았었는데, 막상 50-60대가 되고 나면 오직 하나의 길을 걸을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그런 감정, 약간의 슬픔 그리고 노스텔지어가 섞인, 그런 느낌이라고 그가 말했던 것 같다. 참, 우리말 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수준이 있겠지요? ‘그 대학에 갔더니 기분이 꿀꿀하더라’ 이렇게 말하는 자도 있고 ‘그 대학에 가서 과거를 회상하며 상념에 잠겼더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도 생각이 나고, 인생의 윤회가 새삼스럽더라’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겠지요? 누가 전자고 누가 후자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헤어지기 전에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은퇴 파티에서 못볼지도 모르니 지금 이 말을 해야겠어요. 당신은 선생으로 지난 수십 년간 단지 영어만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요. 25년 전 당신이 말없는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우리 같이 하찮은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격려가, 우리 내외를 포함한 그 학생들 그 이민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었을지 당신은 잘 모를 것이예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기억하세요. 그대는 참 스승이었음을.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하였다. ‘참으로 감사하오.’

보살은 인간 세상 어디에나 있다.

룰루가 부르는 To Sir, with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