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원 이차원 삼차원

지난 모국 방문때였다. 전철이 다음 정거장에 가까워질 무렵, 문 바로 앞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하던 노인의 핸드폰으로 전화 왔다. 마침 전철이 정차하고 문이 열리니, 노인은 딱 한 발짝 문 밖으로 나가더니 그 자리에 서서 전화를 받는다. 뒤에 있던,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전철에서 쉽게 내리지 못하고 들어오는 승객들과 뒤섞여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내리지 못하게 되던지 아니면 혹시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순간적으로 그 노인의 양어깨를 잡고 뒤에서 부축하여 앞으로 몇 발짝 더 걸어 나가게 하였다. 사람들은 그틈에 무사히 내리고. 하지만 그 노인은 전화 받느라 아직도 정신이 없는 듯…

신입생들이 들어오는 시즌이 되면 대학 캠퍼스는 활기차게 변모한다. 서점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더욱 붐비게 된다.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등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비즈니스에만 너무 몰두하여, 부주의하게 옆으로 뒤로 함부로 급작스래 방향을 바꾸어 부딫힐 뻔하기도 하고, 또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자기 주변에 누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 생각없이 눈뜬 장님처럼 다니기도 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아기들에게는 오직 자신밖에는 없다. 자기 배 고프면 울고 자기 기분 좋으면 웃고 자고. 이 세상이 오로지 자기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자기 이외는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다. 일차원이다. 물리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이런 수준에 머문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 이외에도 눈 앞에 있는 상대방 그리고 때로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보고 의식할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 시대 그 장소에 따라서 사회화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또 그 기대에 맞추어 주고 받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차원이다.

좀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면, 자기 자신 그리고 상대방은 물론, 지금 눈 앞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당장 관련이 없는 제3자들도 보고 고려할 능력이 차차 생기지 싶다. 삼차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도 거래를 하긴 하지 싶다. 다만 자기 자신과 하겠지. 이상하지 않나? 여전히 거래를 하긴 하는데, 자신 그리고 상대방은 물론 제3자들까지 이익이 될 수가 있다니…

스위스뇬과 라오스넘, 깨달음과 습관

직원중에 라오스계 넘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아마 어렸을때 와서 자란 듯하다. 볼때마다, 내게는, 더럽고 게으르며 어글리한 느낌을 준다. 팀원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일 이외는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늘 헤헤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큰 소리로 낸다. 그넘 참… 사무실에서 손톱을 깍으며, 신발을 벗고 왔다 갔다 한다 (자기 이외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짓들을 하면서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 그 부모의 영향이며 또 그 부모를 길러준 그 나라의 영향일 것이다.

직원중에 스위스계 뇬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던지 아주 어릴때 와서 자랐던지. 건데 생김새도 언행도 이곳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있다. 팔등신 미녀에 똑똑하며 일을 딱 부러지게 한다. 회사 근처 공원에서 가끔 점심시간에 홀로 운동하는 모습을 본다. 그뇬 참… 이뇬은 신발을 벗는데서 한 수 더 떠서 아예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물론 이뇬 이외에 그 누구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방면에 본좌다.

그 넘을 볼때는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고, 이 뇬을 볼때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옛날 만화속에서 어쩌면 맨발로 잔디위를 뛰어 다녔을 그 예쁜 하이디가.


내가 일하는 이 대학에는,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을 위한 학사학위 특별 과정이 있다. 교육대학을 마쳤거나 졸업반인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이 이곳에서 1년 과정을 마치면서 TESOL 영어교육학사 학위를 받는 협력과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출퇴근때 그 건물을 자주 지나니, 소위 말해서 ‘대가리에 보자기 쓴’ 인도네시아 여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25년전 그 건물에서 잠시 영어를 배울때, 같은 코스를 공부하던 터키인인가 그 근처 나라에서 왔던 무슬램 여자, 보자기 쓴 그 여자가 전혀 건방지지 않은 태도로 ‘당신들이 이슬람 종교를 모르며 일생을 산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좋은 의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가리에는…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EBS방송의 연재 도큐맨터리를 본 적이 있나?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외국 문화와 그 결과물인 외국인 아내들이, 한국의 문화와 만나서 부딪치고 갈등하는 가운데, 인간 삶의 어떤 진실 혹은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였다. 모든 문화는 (개인들은) 상대적이며 그 환경의 소산이고, 한국문화 (한국인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득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속에서 혹은 알 필요가 없다는 교만속에서 사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것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나는 살아 왔다. 세상에 그런것들이 정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꽤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있다. 무지와 어리석음이 있는 곳에, 그 바탕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거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다문화 고부열전’을 통하여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또 소위 후진국에서 자랐지만, 나의 수준이나 내공을 월등히 능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처했었던 어떤 상황보다 열악하고 힘든 여건속에서, 내가 해낼 능력이 없고 또 깜양이 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좋은 태도로 힘껏 해내는 그 사람들을 보고 나서, 나는 더 이상 ‘후진국’이니 ‘대가리에 보자기 쓴 뇬들’이니 하는 말들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깨달음을 잠시 맛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을 며느리로 삼고 싶거나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흡사 그 ‘다문화 고부열전’의 모든 결말이 이해와 화해로 끝은 나지만, 그것이 앞으로 갈등없고 행복하기만한 고부관계나 가족생활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 머리로 부터 오는 것이요, 습관은 오랜 삶 속에서 굳어져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때문이다. 습관이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자명하듯, 깨닫음이 저절로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깨달음은 다만 첫번째 문을 여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첫번째 문조차도 열지 못한채 흘러 간다. 하지만 첫번째 문 뒤에 첩첩히 닫힌 문들이 습관 혹은 카르마라는 빗장을 걸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 빗장들을 풀며 그 첩첩히 닫힌 문들을 열기 위해서는, 그 머리로 깨달은 바가 가슴으로 흘러 내려가 내 몸의 새로운 습관이 되고 새로운 카르마가 되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친구의 급사에 크게 충격받은 배불뚝이 중년이, 새다리처럼 가는 팔로 턱걸이 20개를 목표로 철봉에 매달리는 그 손바닥 찢어지는 고통의 과정이며,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첫 몇 킬로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헉헉 억지로 뛰기 시작하는 그 물리적인 과정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10% 덴트의 법칙’ 이라고 내가 명명한 법칙이 있다. 오래 지속된 습관 카르마를 참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과거에 지속되었던 기간의 10분의 1 기간이라도 최소한 시도를 해야 덴트(dent) 즉 ‘이빨이라도 약간 먹힌다’는 법칙이다. 운동 안한지 얼마나 되었나? 보자기 쓴 뇬들이라고 싸잡아 무시하며 산지는? 20년? 그러면 최소한 2년은 노력을 해야 이빨이라도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내 일천한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전에는 잠시 반짝한다고 까불다가 훅간다.

팀 미팅을 하면, 뒤쪽에 서 있는 내 눈에 그넘의 검은 양말이 흘낏 보인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앉아 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맨발을 본다. 그리고 소리없이 웃는다. 내 습관 내 카르마를 생각하면서.

더닝 크루거 효과

‘더닝-크루거 효과’ 라고 들어 보았나? 이곳에 간략한 설명이 있다.

누군가가 좀 과장해서 그린 그래프지만 적나라하다. 경험과 실력이 거의 전무한 사람들이 최고 수준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계속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면서도 자신감은 점점 낮아지면서 거의 바닥을 치다가, 아주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될때 비로소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초보자들의 자신감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실제 논문에 사용된 그래프다. 검사결과 최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검사전 자신의 능력이 60번째 정도 백분위수에 해당될 것으로 생각했었고 (100명 중에서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40명 정도 있을 것으로 예측), 상위 25%에 실제로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70번째 정도 백분위수에, 그리고 실제로 최상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75번째 정도 백분위수에 해당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들 인생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대는 어떤 그룹에 속할것으로 생각하는가?

하수고수 1

1. 있는 줄 조차도 모른다. 봐도 안보이고 들어도 안들린다. 잘 모른다고 누가 좀 말했다고 길길이 날뛰며 죽이려고 한다.

2. 보고 듣고 감탄하며 사진을 마구 찍는다. 사진은 묻히거나 업로드 해도 정작 본인은 안 본다. 자기 인생과는 거의 무관한 수준.

3. 혼자서 와보고 또 와보니 너무 좋아서 사서 가지려고 시도 한다. 구입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다양하고 집요한 시도를 통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가진다. 일종의 비약이다. 하수들을 알아 보긴 하는데 피한다.

4. 오랜 씨름 끝에 어느듯 하나 되어 누가 무었을 시도 했었던지 조차도 흐미해지고 그냥 하루하루 살게 되었다. 이젠 옛날에 생각했었던 그 의미도 기억에 없고 또 원했던 것을 가졌어도 가진 줄도 잘 느끼지 못한다. 흡사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처럼…하수들이 자기들 친구인 줄 여기며 친하게 대해 준다… 잘도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