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

코라(Kora)는 아프리카 전통 현악기예요. 감비아(Gambia)라는 아프리카대륙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전통악기로 알려져 있어요.

한 십여년 전인데요, 그때 코라와 연주자를 주제로 만든 도큐멘터리를 보기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닥불 주변에서 북이나 치면서 엉덩이나 흔드는 줄 상상했었어요.

그 도큐멘터리에 나왔던 연주자가 Toumani Diabaté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는데요, 무려 70대째 그 집안에서 코라만을 연주하면서 사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오십대 중반이 되서 좀 늙어 보이지만, 그때 도큐멘터리에 나왔을때는 얼마나 젊고 총명하게 생겼던지, 그리고 무었보다 그의 코라 연주를 듣고서는 정말 놀라고 또 충격을 받았었어요. 아! 사람은 다 똑 같구나, 지금 좀 가난하게 산다고 무슨 원시인 수준으로 착각했던 내가 무지하고 무식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코라연주들을 녹음해서 가끔 듣게 되었는데요, 심금을 울리는 그런 소리가 아닌가 싶네요. 멋진 코라연주 한번 들어봐요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전에 아내와 토오쿄오 근처 오다이바라는 지역에 갔던 적이 있었다. 마침 무슨 봄맞이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벗꽃도 흐드러져 있던데…

큰 건물들 사이 어디에선가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길래 발걸음을 재촉해 보았다. 휠체어를 탄 수십명의 장애인들, 그리고 자원봉사자 ‘춤꾼’들이, 각자 휠체어를 하나씩 밀면서 함께 춤을 추고 있더라. 그 익숙한 노래에 맞추어서.

이 노래를 들으면 늘 그 기억이 난다. 몹시 놀라며 좀 부끄러웠던 기억도. 그리고 노래가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항상 같이 든다.

요새도 이 노래 크게 울려 퍼질까?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우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우 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우 우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우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우 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우 우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지금 남반구에서는

아이가 며칠 스키 휴가를 다녀왔단다.

어릴때부터 늘 함께 스키를 탓던 best friend 와 같이. 이 친구 녀석은 회사를 그만두고, 1-2년 캐나다 휘슬러라는 곳에서 스키장 잡일을 하며 실컷 스키를 탈려고 곧 캐나다로 떠난단다. 휘슬러 들어봤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스키 리조트 중의 하나인데, 한 시즌에 2백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스키의 메카라고 한다.

휘슬러도 아름답겠지만, 아이가 친구넘과 다녀온 이곳의 스키장도, 내게는 그야말로 장관이며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리프트 타고 왔다 갔다하는 ‘양의 스키’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고, 아무도 발길이 닿지 않은, 사진에서 보이는 그런 산 정상을 걸어 올라간 다음, 활강하는 ‘질의 스키’를 요즘은 즐긴다나 🙂

내가 그들의 나이였을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자연과 환경이 그런 자유로운 영혼들을 허락하는가 싶다.

André Rieu

André Rieu 아세요? 한국 웹사이트에는 ‘앙드레 류’ 라고 쓰고 있던데, 그렇게 썻다가는 혹시 ‘앙드레 김’처럼 약간 특이한 한국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일부러 네덜란드어로 된 이름을 썼어요.

아이가, 이 사람 고향에서 7월말에 하는 공연 실황 중계를, 우리 동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줬어요. 주말에 부부가 한 세시간 즐거웠네요. 안드레 리우는 자기가 이끄는 80인조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와 함께 전세계를 순회하며 매년 거의 100회 가까운 공연을 해요. 우리 내외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한번은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희망해요. 참 실황 생중계는 유럽 몇나라에서만 가능했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며칠이 지난 후에 극장에서 볼 수 있었어요. 아마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지 싶은데요.

아이는, 이 사람의 대표적 시디인 ‘Dreaming’ 을 어릴때 늘 들으면서 잠이 들었어요. 아마 일이천번은 족히 들었을꺼예요. 아이의 머리에 인이 밖혀 있겠지요 🙂 나도 어쩌면 수백번은 들었을 아주 아름다운 클레식 모음이니 한번 들어 보세요.

어제 산길에서 문득, 주말에 본 이 아름다운 공연을, 붓다께서도 보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좀 황당한 상상을 했어요. 생소한 악기와 음악들 그리고 매우 다른 모습의 사람들 속에서 과연 그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상상해 보았어요.

비록 음악과 옷과 음식 그리고 술처럼, 외향은 달랐어도, 붓다께서는 사람들이 오감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기쁘고 좋은 눈으로 보셨을 꺼예요. 그리고 공연장을 빠져 나가시면서는 아마 싹 잊으셨을 것 같아요. 나중에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지 싶은데요 ‘지나치게 세련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는 카르마가 따른다. 우리 삶의 실체는 이렇게 세련되지도 또 아름답지도 않다. 이 카르마의 결과로, 그대는 바로 이러한 삶의 실체를 받아들이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이예요.

한참 멋있고 기분 좋은데 찬물 끼얹어서 죄송 🙂

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지어 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직장에서 그런 일은 ‘simply doesn’t happen’.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신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