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언더파

지난 한 두해 중단 했었던 골프를 최근에 다시 시작하였다. 새로 가입한 클럽에서 주선해 준 회원들과 주말에 한 라운드를 함께 했다. 간략히 나를 소개하고 싸구려 중고공을 많이 가지고 왔으니 폐를 끼치지 않겠노라 좋게 부탁 말을 하였다.

그저 평범한 라운드였다. 각자의 능력대로 각자의 골프를 치며 모였다 흩어졌다를 18번 반복하였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라운드였다. 그리고 아무도 특별하게 생기지도 또 행동하지도 않았다. 배가 조금 나온 중년 남자들 그리고 중년 여자 한명. 그들은 친절하게 남은 거리를 내게 알려주며,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괜찮은 샷이 나오면 ‘굳샷’이라고 외치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나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힘들었지만 라운드를 마치고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음료수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좋더라.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활동 하던 ‘마이클’이라는 필명의 골퍼가 있었다. 마음골프 김헌선생에 버금갈 만큼 좋은 글을 쓰고 또 내게도 도움이 된 많은 골프 팁을 나누어 준 고마운 분이다. 이 재미교포 분의 글 중에서 ‘내가 이븐을 치던 날’ 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처절(?) 했던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잘 기억할 뿐만 아니라 또한 골프의 공포를 내게 선명하게 부각 시켜준 흥미로운 글이었다. 아마추어가 이븐파를 한 번이라도 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줄 나는 그때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수 년에 걸친 그의 처철했던 노력을 읽고나서.

음료수를 마시며 내가 묻는다. 오늘 스코어가 어땟어요? 아! 오늘 6언더파 66을 쳤어요. 좋은 라운드였네요. 그래요… 그것뿐이었다. 이상한 골프장이었나? 한 두해 전에 아시아퍼시픽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쉽이 열렸던 코스다.

이렇게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있더라. 아무것도 심각해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또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해탈이란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붓다께서도 말씀하셨다. ‘너무 (해탈에) 광분하지 마라’ 🙂


한 파트너가 6언더파를 칠때 또 다른 파트너는 1언더파를 쳤다. 한 사람은 공무원 다른 사람은 전산직에 종사한다고 했다. 1언더파 친 사람의 부인은 핸디가 3이라는데 그녀도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날 따라 나처럼 이리저리 헤매면서 뒤땅에 뱀샷을 날려 대길래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내심 흐뭇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80대 초반의 스코어를 기록했더라…

어떤 사람에게 쓰레기통에 바로 넣고 싶은 스코어카드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나도 한번이라도 해봤으면 꿈꾸는 스코어카드일 수도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며, 또한 (최고 수준의 아마추어 골퍼들인) 이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느끼는 불만족과 괴로움은, 백돌이인 내가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해맑은 웃음 vs 침묵의 암살자

‘해맑은 웃음’과 ‘침묵의 암살자’의 결투

새벽에 문득 빗소리에 잠이 깨어 티비를 켠다. 어제 우연히 들은 박인비선수와 어느 외국선수의 골프 연장전이 열리는 시간이다. ANA Inspiration이라는 매이져챔피언쉽 결승전이다.

뚱뚱하고 못생겨서 한국여자골프계에서는 상품성이 없다고(?) 스폰서도 없이 오래 고생했었던 박인비선수. 나도 처음에는 별로였다. 무슨 저런 스윙이 있나? 골프가 무슨 퍼팅대회냐? 하면서.

전투가 폭격이나 스나이퍼로는 승패가 갈리지 않듯이, 골프도 대부분의 승부는 결국은 백병전 끝에 마지막에 비수를 꽂아서야 끝이 난다. 특히 LPGA 여자골프는 더욱.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에 단검을 잘 쓰기로 유명한 (퍼팅의 신) 박선수는 막판에 이렇게 일대일로 붙는 sudden death play-off에서는 (연장전 한 홀에서 이기면 그대로 우승) 가장 무서운 상대임에 틀림이 없다.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은 ‘부처’라고 한다. 성격이 좋다는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결정적인 퍼팅에 꼭 필요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또한 의미 하지 싶다. 단검의 신인데 상대에게 비수를 꽂으면서 자신의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는다…

무슨 운동이든지 오래 관심을 가지다보면 좋아하는 선수도 생기고 또 존경하는 선수도 생기게 마련이다. 박인비선수는 우리내외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중의 한 사람이다. 세상에 사연없는 삶이 어디있고 또 이만큼 성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나. 비록 알려진 일부만 들었을 뿐이고 또 골프장에서 보여주는 demeanour 만으로 가지게 된 생각이지만, 더 듣고 더 알게 될수록 우리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훌륭한 선수이다. ‘디미노어’란 것은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한 인간의 수준 혹은 품격을 의미한다. 만나다 보면 물론 보이지만 티비를 통해서도 좀 옅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박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것은 기억하지만, 그녀가 무슨 준비를 해서 어떻게 금메달을 땃었던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 싶다. 올림픽이 끝나고 말하더라. 그 더운 여름에 두세달을 단검쓰는 (퍼팅) 연습을 죽기살기로 했다고. 올림픽처럼 출전 선수의 기량이 비슷한 상황 그리고 대표하는 나라의 명예가 걸린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경쟁자들을 딱 한끗 머리카락 만큼의 차이로라도 물리치려면 반드시 퍼팅에서 이겨야만 했다. 인간이 극도로 노력하여 퍼팅에 도가 트면 어느 정도 경지에 까지 도달 할 수 있는지 난 그때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목격하였다. 본인도 고백하기를 ‘신들린 듯이 아무 생각없이 퍼팅을 했다’고 하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걸고 그 엄청난 압박과 온국민의 기대를 온몸에 받으면서 (금메달 따면 당연하고 못따면 죽일뇬 되는 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 퍼팅을 하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나도 보았다. ‘해맑은 웃음’ 선수가 이것을 만약에 목격했었고 또 오늘 시합중에 자주 떠올렸더라면 백전백패 했을 것이다.

‘페닐라 린드베리’ 선수는 LPGA에서 알려지지 않은 무명선수다. 오래는 됬지만 그저 그런 선수. 어디를 봐도 세계챔피언인 박선수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게 초라하고 또 단 한번도 LPGA에서 우승해본 적이 없는 선수다. 그런데 나는 이 선수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른 뇬들이 바지를 입던지 혹은 치마밑에 사각빤스를 뻔뻔하게(?) 입고 다니는데 비해서…가 아니고, 이 선수가 늘 해맑은 웃음을 띠면서 행복하게 골프시합을 하는 듯한 모습을 내가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짓눌리고 스트레스 받고 이겨도 부족한 듯 보이는 그런 모습 말고, 내가 좋아서 내가 원하는데로 하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demeanour를 보았다고나 할까. 흔치 않은 모습이라 생각했었다.

오늘 새벽은 이 무명의 ‘해맑은 웃음’ 선수가 ‘침묵의 암살자’ 하고 그냥 어떤 시합에 같이 참가하는 정도가 아니고, 권투로 치면 WBC 세계 타이틀 연장전을 무명의 도전자가 무하마드알리하고 붙는 그런 장면이었다. 어제 해가 지고 공이 안보일때까지 몇홀이나 치고 박았는데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서 오늘 아침 일찍 다시 시작한다고 하였다.

두 세번 ‘해맑은 웃음’에게 기회가 왔는데 살짝살짝 빗나가며 비수를 꽂지 못한다. 내심 그녀가 이기기를 바라는데 (박선수는 마이 해무따 아이가…) 이렇게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박선수의 단검에 끝장나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거의 사라졌다. 박선수는 주특기 단검으로 죽을고비를 살짝살짝 넘기면서 8번째 연장전까지 오게 되었다.

‘해맑은 웃음’이 프리샷루틴을 정확히 지켜면서 서두르지 않고 티샷을 한다. 샷하기 직전에 척추를 옆으로 딱 틸트한다 (꺽는다). 눈여겨 봐두었다 장차 나도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 잘 써먹게. 멋진 프리샷루틴에 멋진 스윙이다. 나같은 보통 골퍼들은 이렇게 틸트하려고 하면 상체를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숙이면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게 된다. 배가 나와서 그만… 그 결과 스윙궤도가 아웃인으로 더 바뀌고 좀 더 훌륭한 슬라이스를(?) 구사하게 된다는 설이 있다더라. 8번째 연장전을 벌이는 홀은 340미터 정도의 파4인데 린드베리선수가 조금 더 멀리 드라이버를 쳤지만 한클럽 이상 차이를 내지는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세컨샷을 그린에 올렸는데, 박선수는 대략 3-4 미터 그리고 린드베리선수는 8-10미터 정도 홀에서 떨어져 있다. 아까 5번째 연장전에서 퍼팅했던 곳과 거의 비슷한데 그때는 린드베리선수의 퍼팅이 홀에서 2-3센티 전에 그만 멈추고 말았었다. 쥐꼬리만큼만 더 길었더라면 그때 이미 승패가 갈라졌었다. 퍼팅의 신이 딱 지켜 보고 있는 앞에서 이 무명의 선수가 확률이 아마 5%도 되기 어려운 퍼팅을 이번에는 기필코 집어 넣고 만다. 딸시합 보러 멀리서 온 노부모도 너무나 기뻐한다. 퍼팅의 신이 결국 단검에 찔려서 깨지고 말았다. 인터뷰를 하는데 박선수는 ‘이런 퍼팅은 그야말로 챔피언의 퍼팅이며, 이런 퍼팅에는 도무지 어찌해 볼 방법이 없다’며 축하해 주었다. 역시 휼륭한 왕챔피언이다.

결국 헤벌레 자주 웃는 뇬이 무서운 암살자를 이긴 것이다. 인터뷰에서 ‘해맑은 웃음’이 말하더라. ‘어쩐지 이번에는 꼭 이기고 우승할것만 같은 생각이 어제부터 들더라고.’ 이런 경험 해본적 있나? 그 차원이야 전혀 다르겠지만 나도 이런 경험을 몇 번 했던 적이 있었다. 억지로 혹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 아무런 의심없이 ‘이번에는 된다’는 확신이 저절로 드는 경험. 이때 원했던 데로 되지 않았던 경우가 아마도 없었지 싶다. 저절로 확신이 들어야 한다. 억지로 혹은 슬쩍 자기최면을 걸거나 해서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내 짐작에는 ‘그 비슷한 장면을 몸과 마음으로 많이 연습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뭘 알겠나마는…

새벽에 자다말고 내가 이 글을 남기는 이유가 있다. 이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외국인의 골프 우승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 방식이랄까 혹은 행복의 비결이랄까 그런 것을 슬쩍 옅본 느낌이다. 이것을 꼭 기록해 두고 싶었다. 앞으로 자주 읽고 이 느낌을 떠올리게 되리라. 그리고 언젠가 이 글과 내 골프를 동시에 이야기할 때가 오지 싶다.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든다. 저절로…

어떤 재미로 골프를 치나? 큰것 한방? 어울려 먹고 마시는 재미? 돈따는 재미? 돈쓴 자랑? 혹은 큰일날 재미?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골프를 잘 치면 아무채나 들고도 잘 친다는 뜻도 있겠지만, 골프를 잘 치면 골프의 진수를 더 쉽게 맛볼 능력이 생긴다는 뜻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는 만큼만 보이듯이 능력 만큼만 맛볼 수 있다.’ 물론 핸디켑만이 능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궁금해 할까싶어 사진 몇 장 올린다.     

아까 박선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중 한명이라고 했는데, 린드베리선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일부터 좀 웃어야겠다. 해맑은 웃음… 삶의 멋이고 또 멋진 삶이다.

인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넓이뛰기 예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로 장차 남게 될 선수가 발판을 잘못 밟아 이미 두차례 실격을 당하고 마지막 시도를 남겨둔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 흑인선수는 당시 넓이뛰기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리안의 우월성을 떠벌리던 히틀러 면전이라 긴장했었나… 이전에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라 몹시 당황한다.

이때 한 독일선수가 다가온다. 그는 당시 나찌독일을 대표하는 올림픽 육상선수이며 최근 벌어진 유럽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넓이뛰기 3위를 차지 했었다. 출발선부터 발판까지를 이 미국인의 보폭으로 재보고서는 발판 훨씬 이전의 한 지점을 가르키며 조용히 말한다. 당신의 평소 기록이라면 발판 훨씬 이전에서 뛰어 올라도 지금 예선 통과기록을 충분히 넘을 수가 있으니 위험을 감수한 무리한 시도를 하지말고 이 지점에서 점프하라…

예선을 통과했다. 둘이 결승에서 다시 만나 겨루었다. 그리고 시상대에 오른다. 나란히. 약간 낮은 곳에 선 그 독일선수가 이 흑인선수를 올려다 보며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함께 시상대에서 내려와 팔짱을 끼고 스타디움을 돌아 퇴장한다. 그 넘이 보고 있는데도.

이 흑인선수는 그때 그 독일인이 보여주었던 스포츠맨쉽, 그 용기와 우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으로 되돌아 가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자식을 둘 남겨두고 이 독일선수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사한다. 죽기전에 부탁하였다. 장차 자기 아들에게, 세상이 전쟁으로 이렇게 쪼게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던지를 꼭 좀 알려주라고.

종전 후에 이 미국인은 독일을 몇차례 방문한다. 그리고 그때 그의 훌륭한 아버지와 함께 겨루었었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아들을 만나 그 약속을 지킨다. 또한 그 아들의 결혼식을 bestman이 되어 축하해 준다. 이들의 우정은 대대로 이어진다.

70년이 지났다. 그때 베를린 올림픽이 열였던 바로 그곳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고, 넓이뛰기 시상식에 그 독일선수의 아들과 손녀 그리고 맨 오른쪽에 그 미국선수의 손녀가 함께 섰다. 중간에 흰 담뇨 뒤집어 쓴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되고.

인간이 이렇게 숭고하고 멋질 수 있다. 인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M은 중견 변호사였다. 남편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를 원하였다. 그녀와 나는, 변호사와 지원부서 말단직원으로 만났다. 불과 석달 남짓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내 발로 기어 나왔던, 나에게는 악몽과 같았던 로펌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아무것도 아니었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무었을 서로에게서 보았던지 우리는 그 인연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직장을 구했고 우리는 서로 오고 갔다. 그녀와 남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스카치 위스키도… 첫 아이를 임신한 그녀에게 배가 터지도록 LA갈비를 구워 먹였다. 알아 듣기 어려운 서로의(?) 영어발음을 넘어 존경과 우정을 아마도 서로에게서 느꼈던가 보다.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다.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변호사 그리고 또한 세 아들을 둔 특별한 엄마가 되었다. 십수년 동안 주고 받은 손편지가 한 박스다 – 가리늦게 왠 펜팔… 매년 잊지 않고 주고 받는 달력도 늘 내 서재에 걸려 있다.

1형 당뇨병으로 평생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산다. 일과 세 아이들 엄마 노릇 하는 그 빠쁜 와중에 틈틈히 운동을 계속 하였다. 얼마 전에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 뉴욕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내가 그녀의 처지였었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인간승리다.

아내와 함께 에딘버러공항에 내릴 날이 올 것이다. 그 특별한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아들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넘들의 대가리를 만져줄 때가 올 것이다.

그 로펌에, 10년이 훨씬 지나 우리 가족 모두가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 로펌의 장학생이 되어 수여식에 온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났다. 이제 아이는 그 옛날 M이 일했었던 그 회사에서 그녀의 옛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