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험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말은 험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지금도 많이 본다. 나도 고국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살던 그 시절에는 어쩌면 그렇게 자주 말했었을 것이다.

선친과 함께 주말 명화극장을 (더빙한 미국영화들) 티비에서 보던 그 옛날, 어버지는 자주 말씀하셨다. ‘저 서양넘들은 매일 서로 보는데도 사랑한다고 시도때도 없이 말하고, 차문 열어주며 신사숙녀처럼 굴지만, 얼마 못가 이혼하는 이상한 넘들이다.’ 그때는 내눈에도 그렇게 보이더라.

하지만 그 서양넘들의 세상에서 자식 낳아 기르고 직장 다니며 사반세기 넘어 살고 보니 이제는 보이는 것이 다르더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으면 정말 좋은데, 굳이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지금 좋은 것을 선택한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일이라는 개념없이 오늘을 아무렇게나 사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세상살이가 어제 오늘 내일 한결같이 살기 쉽지 않음을 공감하며,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못한다고 지나치게 나무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감정에 솔찍하고 오늘 내 자신에 정직하며,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나누며 또한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것 말은 쉽지, 가방끈 길고 돈 많고 힘 세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인간이어야만 가능한 어떤 특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모재벌 회장이 집으로 창녀들을 불러들인 것이 찍힌 영상이 퍼진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아내와 이런말을 서로 주고 받으며 공감했었다. ‘그 넘 차라리 정말 괜찮은 여자와 인간 대 인간으로 한번 화끈하게 사랑에 빠지지’ 그리고 나중에 들통나서 마누라에게 또 매스컴에서 깨질때, 마누라 앞에 무릎꿇고 ‘그때 나는 그녀와 사랑했었다.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 이렇게 할 수준이 되는 자가 등장 인물들 중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 창녀들 신체검사는 용의주도하게 미리 했었을 것이다. 그것이 능력이고 수준이라고 생각하며 사는데 어쩌겠나…

그리고 ‘지금 내 감정에 솔찍하고 오늘 내 자신에 정직하며,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나누며 또한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는 데에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으로 그 마음을 표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입은 험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아니다. 성숙하고 품위 있는 마음에서는 험한 말과 함부로 하는 행동이 나오기 어렵다. 치약통이 찟어지면 ‘이미 들어 있던’ 내용물이 밖으로 삐져 나오는 것이다.

Earn Respect

영어 표현에 ‘Earn respect’ 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단어는 아니지만 ‘존중을 얻다’ 정도로 기계적으로 번역하기에는 좀 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earn’ 이라는 말도 또 ‘respect’ 라는 말도, 그 뜻을 좀 더 정확히 이해 하려면 영어권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싶다. 이 두 단어를, 영어권 문화에서는 한국문화에서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

근래에 들어 넷플릭스를 통하여 좋은 한국 영화 드라마를 서너개 보았다. ‘자체발광 오피스’ 라는 코메디가 내용도 연기도 너무 좋아서, 그 긴 시리즈를 두 번을 반복해서 아내와 함께 보았다. 어제는 우연히 읽고 있는 책에서, 이순재 선생이, 주연 배우인 스카렛 요한슨의 연기력이 좋다고 칭찬을 하던 영화 ‘The Other Boleyn Girl’ 이라는 좋은 영화를 보았다.

시대도 배경도 주제도 전혀 다른 이 두개의 작품에서, 두 사람의 여자 주인공을 통하여 아내와 내가 보았고 또 깊이 감동했던 것은, ‘earn respect’ 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부부 가족 친구 직장동료등 우리는 다양하고 많은 관계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혹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요소나 가치들이 각 사회마다 시대마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나 시대를 초월하여 공통적이고 또 가장 중요한 하나만 뽑으라면 나는 ‘earn respect’ 를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그 드라마 영화 한 번씩 보시지 🙂

보살 원장 vs 프로페셔널 원장

주말아침 가족과 함께 동네카페에 왔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인도인 부부가 어린딸을 데리고 와서 바깥 테이블에 앉는다. 체육복 바지에 슬리퍼 질질.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고 휴지는 널부러지고 설탕하나 제대로 커피잔에 넣지 못하고 상위에 줄줄 흘리고 치울 줄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또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만드는 이 사회는 장차 어떤 모습일까…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다.

그 공립 유치원에도 최근 들어 인도나 중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이민온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거의 오분의 일이나 된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그 부모는 그들의 부모들과 그들이 이전에 속했던 그 사회의 수준을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나는 다양하고 오랜 경험을 통해 보아왔다. 도대체 몇 세대가 지나야 자연스러운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아니 그런 것이 도대체 무었을 의미하는지…

보기 드문 어쩌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동양인 원장이니, 말도 잘 안통하고 이 새로운 사회의 물정도 잘 모르는 그 부모들이 대부분 의지하고 싶어 한다. 어떤 부모들에게는 이 유치원을 선택했던 이유였기도 하고.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디 누군들 다르랴.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동양인 원장은 자주 뒷골이 땡긴다고 했다. 대다수의 다른 학부모들 눈에는 이전에 본 적도 없고 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쩌면 원치도 않는 이질적인 장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금발의 이전 원장은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능력으로 수십 년간 너무도 잘 알려졌던 사람이었다. 내가 묻는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것 같은가? 프로페셔널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다. 다른 부모들이나 원생들과 똑같이. 하지만 아마도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는 못했을 것이고, 당신이 지금 창밖의 인도인 가족을 보며 느끼는 그런 감정을 숨기며 이런 부모들과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십년 넘도록 같이 일했었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동양인 원장은 지금 이순간 그리고 오늘을 사는 보살이다. 물론 프로페셔널하다. 충분히 배웠고 모두들 인정하는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음식을 한 그릇 만들어 팔아도 마음이 들어가고 혼이 베어난다고 하는 세상인데, 이 소중한 어린 사람들을 가르쳐 어쩌면 평생을 좌우할 몸과 마음의 습관을 만들어 주는데 단지 프로페셔널 하다고 될까? 모든 관계는 서로의 기를 나누는 행위이며 이 어린 것들도 귀신처럼 알아챈다고 하더만…

이 동양인 원장이 그 어린것들을, 때로 측은한 마음을 숨기면서 스스럼없이 안아주고 또 지나가며 엉클어진 대가리라도 한번 더 만져 주고, 그 버벅거리는 영어하는 부모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조언 해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그 결과로 이 아이들은 내가 오늘 조롱하는 그런 짱께나 카레로만 남지 않을 어떤 기회를 장차 조금이라도 더 가지게 되리라. 보살행은 때로 은밀하며 자주 어려움을 부른다. 다른 길을 선택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며 또한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살은 선택하지 않는 듯 선택한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처럼 보며 피해 왔고 또 이런 사람들 때문에 뒷골 땡기는 것은 더욱 더 싫다. 이 보살원장은 말이 없고 나는 말이 많다. 중생은 선택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인가…

목련을 좋아 한다는 이 보살원장께, 그 모자라고 힘없고 후진 부모들을 대신하여 올리는 감사의 노래다. 소프라노 김주연님이 그 아가들과 함께 부른다.

그때 그 사람

Silly old Gordon fell in a ditch…

이자는 허우대도 멀쩡하고 또 한때 큰 회사에서 돈을 주무르는 일도 한적이 있어서, 한 큰 종교단체에 사무장 비스무래한 자리를 꽤차게 되었다. 매우 훌륭한 분을 근처에서 자주보며 그 큰 그릇의 언행과 삶을 보면서, ‘혹시 나도 격이 비슷한 것이 아닐까? 나 정도면 어쩌면 이런데 좀 끼일 수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자가, 자기와 유사한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일을 했었다면, 그들이 어떤 이유건 방식으로건 이자의 발상에 재동을 걸어 일종의 경고를 해주었을 테지만, 이자의 주위에는 그런 유용한(?) 자들이 없었다. 일단 이것 저것 주어 모아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한 권 출판하였다. 비영리출판단체가 아니고서는 출판하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으로, 인쇄된 책 대부분은 아마 자기 서재에 꽃혀있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집을 방문하여 목격한 적은 없다 – 실재로 책은 대략 읽어 보았다. 역시 쓰레받기… 읽는 모든 사람들은 아는데 정작 쓴 본인만 모르는 경우. 장차 큰 비 내릴 징조…

어쩌다 이자와 한번 엮일 기회가 있었다. 이자가 무언가 강연을 하는 중에 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잠시 졸았다. 뒤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아마 이때 이넘이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뭐 중요한 사람이라고… 사람이 좀 졸 수도 있고 그렇지… 아니 아니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니, 중요한 사람이 말씀하시는데 발칙하게 졸은 넘을 용서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이외에는 이넘과 엮인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10년에 한번씩, 어떤 종교단체들은 ‘Synod’ 라는 매우 큰 행사를 주최한다. 관련성직자들, 관련단체들 그리고 신도대표들이 참가하여 2박3일간 큰 회의를 한다. 나도 그때 우연히 참가 하게 되었다. 행사중 많은 소모임 토론등이 있는데, 한 토론장에서 이넘과 정통으로 마주 앉게 되었다. 난 아는 것도 없지만 그보다 꿀을 먹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글세 이넘이 주변에 앉은 참가자분들에게 ‘저 자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여기서 뭐하나’ 투의 조롱하는 말을 하는것을 듣게 되었다.

큰 행사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큰 행사장에서 오고가며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게 되며, 그 중에는 안면이 있거나 아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다. 한참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떤 사람이 내려오기에 문득 얼굴을 들어보니 그넘이었다. 그래도 때와 장소가 나를 경건하게 하는지라, 좋은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아마 이름도 불렀겠지. 이넘이 면전에서 완전히 무시하며 그대로 지나가는거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2박3일이 지나서 행사를 마치는 총회가 열렸다. 수백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행사 마무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의견을 수렴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큰 강당에 여러명의 ‘젊고 잘 뛰는’ 지원자들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 준비가 되었고, 모두들 숨죽여 누군가가 첫 스타트를 끊기를 눈치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 뒤에 내가 손을 들었고 이내 한 발빠른 젊은이가 내손에 마이크를 쥐어 주었다. 나를 보낸 단체의 견해를,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용기있게 피력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그 넘의 놀랐을 상판이 문득 떠올랐다. 그넘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넘에게 받았던 것을 면전에서 되돌려 주었다. 그넘과 나 (그리고 그때 함께 계셨던 고맙고 유머러스 하셨던 그분) 이외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그넘은 잊기를 바랬고 또 편리하게 잊었을 것이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자는 이번에는 다른 줄에 서서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이자가 속한 정당은, 늘 대표 1인만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는 1인당이었는데, 투표전후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바람에 당선확률이 0%었던 이넘이 졸지에 비례투표로 국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넘이, 당대표 즉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사람과 다툼을 벌이다가 탈당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탈당하면 더 이상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 안된다. 처음부터 제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었었고, 그 당수에게 기회를 되돌려 주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건데 이넘은 남은 한두해를 꼬박꼬박 봉급받으며 국회의원 노릇 잘 해먹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당수가 된 듣보잡 당을 하나 새로 만든다.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그저 수백표를 획득하며 우연히 올라왔었던 그 무대에서 영영 사라진다. 옛날 이자가 출판했던 그 책 수준이다. 그리고는 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거나 자기 말을 듣으려고 하지 않는지 아마도 오늘날 까지 몹시 의아해 하는, 늙고 꼬장꼬장한 은퇴한 영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그릇이 달라지는가? 그릇의 크기가 있는가? 무었이 그것을 결정 짓는가?

오래전 한 월간지에서, 교도관으로 수십년 근무했던 분의 긴 인터뷰를 읽었다. 많은 질문 중에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선천적인 악인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 교도소에 오는 사람 10명중 1명 정도는 아마도 선천적인 악인이거나 보통 사람과 확연히 달라서, 비록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범죄자가 되었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자의 이름이 ‘고든’이었고, 그때 이자가 악인이었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릇이 작은자였고 그러한 자신을 잘 보지도 또 알지도 못했던 자였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그릇은 처음부터 너무 작았던지 아니면 결코 그 크기나 모양이 바뀌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 열 명 중의 한 명처럼…

내 자신도 내가 어떤 그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떤 ‘엮임’이 벌어지면, 쌍방 그릇의 크기와 내용물이(?)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Silly old Gordon fell in a ditch…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Thomas the Tank Engine’ 만화에 나오는 노래중의 하나로, 나도 아이와 함께 자주 불렀던 노래.

스탠포드 수학박사

직원들 중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수학과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국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와 사진을 보니 나름 유머도 있는 분 같더라.

나는 수포자 세계를 개척한 원로의 한 사람으로서, 이 양반과 한번 만나서 서로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수학이라는 자의 (척도)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삶이 과연 어떠했었고 앞으로 어떠할 것인지 한 번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내가 봐도 잘 쓴 편지였다. 감동먹고 커피 한 잔 사겠노라 연락이 오길 내심 기대 하며 기다렸다. 편지 말미에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회신하지 않아도 된다…’고 썼었더랬다. 어떤데서는 이런식으로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나…

답장이 없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캠퍼스에서 어떤 자그마한 한국 남자 두사람이 서로 지나치게 되었다. 서로의 눈빛에서 서로가 상대가 누군지를 짐작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보았고 그 짐작이 둘 다 맞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