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적

당신 삶의 적은 누구인가? 무었이 그대 인생의 주된 적인가?
그뇬, 그넘? 뱃살? 미세먼지? 당신 자신? 아니면 자식이 원수냐?

‘다투는 마음’이 큰 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나?

표현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어떤 대상이나 상대를 향해, 다투는 마음이 일단 생겨나고 나면, 그 결과 혹은 효과는 같다.
설령 당신이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엮이고 손바닥이 마주쳐 소리가 나면,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는 그 결과에 영향을 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더 큰 다툼의 마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투는 마음이 생겨 나면, 마치 독한 제초제를 뿌린 밭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말라 죽는다. 사랑과 존경이, 화목과 평화가, 그 빛나던 지성과 존엄성이, 그리고 몸이. 그 대상 혹은 상대의 밭에서도 말라 죽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가장 소중한 당신, 그대 자신의 밭에서도 말라 죽는다. 상대에게서도 잃고 자신에게서도 잃으니 이중으로 크게 많이 잃는다.

‘다투는 마음’은 인간의 불행이 싹트고 자라 열매 맺는 최고 최대의 토양이다.

인간에게 가능한 ‘마음’ 중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발달된 것은 무었일까?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것은 무었일까?
측은히 여기는 마음 혹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공존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은? 몰론 다투는 마음이겠지. 다툼은 본능에서 비록된 면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강요되어 점차 개인의 습관 혹은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면도 많다.


다투지 말게 그 누구하고도.
자신과 다투지 말고,
한 솥밥 먹는 사랑하는 이들과 다투지 말고,
인연이 되어 오고가는 사람들과 다투지 말고,
말 못하는 미물이나 자연과도 다투지 말게.
왜냐하면 그 다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당신 자신이기 때문일세.

먼저 당신의 삶이 다툼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하네.
오늘 하루를 당신이 그 다투는 마음, 화난 마음, 언짢은 마음, 섭섭한 마음에 매몰되어 눈뜬 장님으로 보내고 나면, 그것이 오늘로 끝나고 내일이면 청명한 새날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닐세.
당신이 허락했거나 혹은 아무 생각없이 보냈던 이 오늘의 결과로,
내일 당신은 더 쉽게 다투게 되고, 더 크게 화내게 되고, 더 사소한 일에 언짢게 되고, 더 자주 섭섭한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네.

당신의 소중한 인생을, 이 나쁜 적이 망치는 것을, 술취해서 혹은 징징 짜면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누가 한 푼이라도 당신 지갑에서 빼았아 가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막을 당신이, 이 큰 도둑을, 이 어마어마한 적을 왜 넋놓고 바라 보고만 있는가?
손에 잡히는데로, 몽둥이가 없으면 하다못해 젓가락을 들고서라도, 무슨짓을 하던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묻지 마시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그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고,
바로 그 찾는 과정이 해답일세.
물어서 알아내고 또 대답해서 알려줄 그 무었은 없네.

인생에 참으로 중요한 것들 중에서 획득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네.
인생에 참으로 중요한 것들을 깨달아 오늘 하루를 그렇게 한 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 나자빠지고 엎어지고 넘어져도, 삶의 본질을 꽤뚫어 보고 깊이 이해하여, 다시 털고 일어나서 또 해보는 것. 이것 이상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또 그 너머에 무슨 장미빛 행복이 감추어져 있지도 않네.

그대와 나의 행복을 기원하네.

스위스뇬과 라오스넘, 깨달음과 습관

직원중에 라오스계 넘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아마 어렸을때 와서 자란 듯하다. 볼때마다, 내게는, 더럽고 게으르며 어글리한 느낌을 준다. 팀원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일 이외는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늘 헤헤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큰 소리로 낸다. 그넘 참… 사무실에서 손톱을 깍으며, 신발을 벗고 왔다 갔다 한다 (자기 이외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짓들을 하면서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 그 부모의 영향이며 또 그 부모를 길러준 그 나라의 영향일 것이다.

직원중에 스위스계 뇬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던지 아주 어릴때 와서 자랐던지. 건데 생김새도 언행도 이곳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있다. 팔등신 미녀에 똑똑하며 일을 딱 부러지게 한다. 회사 근처 공원에서 가끔 점심시간에 홀로 운동하는 모습을 본다. 그뇬 참… 이뇬은 신발을 벗는데서 한 수 더 떠서 아예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물론 이뇬 이외에 그 누구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방면에 본좌다.

그 넘을 볼때는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고, 이 뇬을 볼때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옛날 만화속에서 어쩌면 맨발로 잔디위를 뛰어 다녔을 그 예쁜 하이디가.


내가 일하는 이 대학에는,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을 위한 학사학위 특별 과정이 있다. 교육대학을 마쳤거나 졸업반인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이 이곳에서 1년 과정을 마치면서 TESOL 영어교육학사 학위를 받는 협력과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출퇴근때 그 건물을 자주 지나니, 소위 말해서 ‘대가리에 보자기 쓴’ 인도네시아 여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25년전 그 건물에서 잠시 영어를 배울때, 같은 코스를 공부하던 터키인인가 그 근처 나라에서 왔던 무슬램 여자, 보자기 쓴 그 여자가 전혀 건방지지 않은 태도로 ‘당신들이 이슬람 종교를 모르며 일생을 산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좋은 의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가리에는…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EBS방송의 연재 도큐맨터리를 본 적이 있나?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외국 문화와 그 결과물인 외국인 아내들이, 한국의 문화와 만나서 부딪치고 갈등하는 가운데, 인간 삶의 어떤 진실 혹은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였다. 모든 문화는 (개인들은) 상대적이며 그 환경의 소산이고, 한국문화 (한국인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득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속에서 혹은 알 필요가 없다는 교만속에서 사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것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나는 살아 왔다. 세상에 그런것들이 정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꽤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있다. 무지와 어리석음이 있는 곳에, 그 바탕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거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다문화 고부열전’을 통하여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또 소위 후진국에서 자랐지만, 나의 수준이나 내공을 월등히 능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처했었던 어떤 상황보다 열악하고 힘든 여건속에서, 내가 해낼 능력이 없고 또 깜양이 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좋은 태도로 힘껏 해내는 그 사람들을 보고 나서, 나는 더 이상 ‘후진국’이니 ‘대가리에 보자기 쓴 뇬들’이니 하는 말들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깨달음을 잠시 맛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을 며느리로 삼고 싶거나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흡사 그 ‘다문화 고부열전’의 모든 결말이 이해와 화해로 끝은 나지만, 그것이 앞으로 갈등없고 행복하기만한 고부관계나 가족생활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 머리로 부터 오는 것이요, 습관은 오랜 삶 속에서 굳어져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때문이다. 습관이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자명하듯, 깨닫음이 저절로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깨달음은 다만 첫번째 문을 여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첫번째 문조차도 열지 못한채 흘러 간다. 하지만 첫번째 문 뒤에 첩첩히 닫힌 문들이 습관 혹은 카르마라는 빗장을 걸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 빗장들을 풀며 그 첩첩히 닫힌 문들을 열기 위해서는, 그 머리로 깨달은 바가 가슴으로 흘러 내려가 내 몸의 새로운 습관이 되고 새로운 카르마가 되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친구의 급사에 크게 충격받은 배불뚝이 중년이, 새다리처럼 가는 팔로 턱걸이 20개를 목표로 철봉에 매달리는 그 손바닥 찢어지는 고통의 과정이며,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첫 몇 킬로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헉헉 억지로 뛰기 시작하는 그 물리적인 과정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10% 덴트의 법칙’ 이라고 내가 명명한 법칙이 있다. 오래 지속된 습관 카르마를 참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과거에 지속되었던 기간의 10분의 1 기간이라도 최소한 시도를 해야 덴트(dent) 즉 ‘이빨이라도 약간 먹힌다’는 법칙이다. 운동 안한지 얼마나 되었나? 보자기 쓴 뇬들이라고 싸잡아 무시하며 산지는? 20년? 그러면 최소한 2년은 노력을 해야 이빨이라도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내 일천한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전에는 잠시 반짝한다고 까불다가 훅간다.

팀 미팅을 하면, 뒤쪽에 서 있는 내 눈에 그넘의 검은 양말이 흘낏 보인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앉아 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맨발을 본다. 그리고 소리없이 웃는다. 내 습관 내 카르마를 생각하면서.

심연 – 요약표

한두 해 전에 친구 이군이 배철현 선생의 ‘심연’이라는 책을 보내 주었다. 좋은 책을 잘 읽고 나서, 배선생님께 감사의 이매일을 드렸더니 도반이라 부르며 회신을 보내 주셨다. 아래 요약표는 이군이 그 책을 읽고 만들어서 최근에 내게 보내준 것이다.

이런 좋은 책을 쓰는 배선생님도 대단하시고, 한 중소기업의 대표로 그 바쁜 와중에 이런 요약표를 만들어 스스로 공부하고 또 나누는 이군도 대단하다. 최고의 적선은 다른 사람들이 지혜를 깨우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던데, 두 분께 감사드린다.

고독, 혼자만의 시간 갖기
순간, 봄의 약동으로 싹이 트는 찰나의 시간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탈레스
생각, 인생이라는 집을 짓도록 도와주는 설계도 저는 누구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생각하게 만들 뿐입니다. 소크라테스
현관, 진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이 변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프 톨스토이
인내, 열정과 몰입을 안겨주는 선물 만일 당신이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아픔은 그 일 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서 옵니다. 당신은 당장 그것을 무효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침묵,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 기도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실패,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내게 보여주세요. 내가 그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줄게요. 조앤 콜린스
동굴, 환상과 공포가 함께 존재하는 매혹적인 공간 당신이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그 동굴에 당신이 찾는 보화가 가득 차 있습니다. 조셉 캠벨

 

관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기
묵상,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제 3의 눈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단절, 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 행복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당신 행동에서 나옵니다. 달라이 라마 14세
숭고,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는 삶의 태도 모든 인간은 실수를 합니다. 유일한 범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만심입니다. 소크라테스
사유,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거룩한 선물 감히 당신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요. 볼테르
관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연습 당신의 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믿지 마십시요. 그것들은 한계를 보여줄 뿐입니다. 당신의 이해를 통해 세상을 보십시요. 리처드 바크
오만,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 바보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
심연, 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 인류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파스칼

 

자각, 비로소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
괴물, 나를 조정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저는 신에게 올바른 질문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엘리 위젤
임시 치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바꿀 유일한 무기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인간의 본성이나 운명 탓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실수와 약함의 메아리일 뿐입니다. 데모크리토스
가면, Show Yourself!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주십시요 당신 자체이기 때문에 미움받는 것이 당신이 아닌 것이 당신인 척하여 사랑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앙드레 지드
갈림길, 내가 선택한 그 길에는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았다 여러분은 걸어야 합니다. 걸음을 통해 길을 만드십시오.
그 길은 이미 존재하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하늘과 같습니다. 그곳에서 새들은 날아다니지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발자국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쇼 라즈니쉬
멘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스승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당신을 수많은 총알로 무장시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사람과, 당신의 등을 살짝 밀어 당신을 창공으로 뛰어내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진부, 나에게 찾아오는 새로움을 막는 훼방꾼 사람들은 높은 산, 바다의 넘실대는 파고, 강물의 드넓은 조류, 별들의 운행들을 감탄하기 위해 외국에 갑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가진 신비를 생각없이 지나쳐버립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자립, 당신 자신과 무관한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힐렐

 

용기, 자기다운 삶을 향한 첫걸음
몫,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인생은 두 가지 길뿐이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이다. 아인슈타인
열정,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힘 인생은, 자기 자신을 찾는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조지 버나드 쇼
믿음,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 인생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살려내야 합니다. 당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을 묻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조셉 캠벨
아우라, 당신의 아우라(오라)는 얼마나 숭고한가 모든 사람의 끝은 같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 디테일이 사람을 구분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착함,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인내로써 지켜내는 행위 오늘은 또 흘러가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날입니다. 오늘은 선물입니다. 루이 슈워츠버그
옮음, 양심을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당신이 이 세상에서 보길 바라는 그 변화가 되십시요. 마하트마 간디
빛의 축제, 자기 자신이 곧 별이다 당신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