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반구에서는

아이가 며칠 스키 휴가를 다녀왔단다.

어릴때부터 늘 함께 스키를 탓던 best friend 와 같이. 이 친구 녀석은 회사를 그만두고, 1-2년 캐나다 휘슬러라는 곳에서 스키장 잡일을 하며 실컷 스키를 탈려고 곧 캐나다로 떠난단다. 휘슬러 들어봤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스키 리조트 중의 하나인데, 한 시즌에 2백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스키의 메카라고 한다.

휘슬러도 아름답겠지만, 아이가 친구넘과 다녀온 이곳의 스키장도, 내게는 그야말로 장관이며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리프트 타고 왔다 갔다하는 ‘양의 스키’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고, 아무도 발길이 닿지 않은, 사진에서 보이는 그런 산 정상을 걸어 올라간 다음, 활강하는 ‘질의 스키’를 요즘은 즐긴다나 🙂

내가 그들의 나이였을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자연과 환경이 그런 자유로운 영혼들을 허락하는가 싶다.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두번째 이야기

옛날에 한국이 미국원조를 많이 받을때 ‘교육원조’의 일환으로, 서울대 사람들이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많이 받았었다. 한때 서울대 교수들 중에서 이 대학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미네소타 주립대’ 하면 지명도가 아직도 상당하지 싶다. 이 미네소타 주립대는 영어로 ‘The University of Minnesota, Twin Cities’ 라고 하며 세계 50대 대학, 미국내 톱20, 재학생 숫자 5만에 가까운, 실제로 유명하고 좋은 대학이다.

미네소타주에는 대학교가 많다. 그리고 주립대학교도. 1995년 경에 미네소타 지역의 칼리지 (전문대) 그리고 교육대등을 합쳐서 ‘미네소타 주립대학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 이전까지 ‘Moorehead State University’ 그리고 ‘Mankato State University’ 등의 독자적인 이름과 역사를 가진 미네소타 지역 소규모 전문대 혹은 교육대들이 이 시스템 일부가 되면서 현재 알려진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무어헤드)’ 그리고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맨카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책의 저자 홍교수께서 재직중인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는 재학생 6천명 정도의 소규모 지방 대학교로서, 세계 대학 랭킹에 나타날 수준은 아닌 community college 혹은 미국내에서 중하위권 수준의 지방 대학교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홍교수께서 가르치는 철학과의 경우 학사과정만 개설되어 있으며, 또한 이 대학에는 (불교등 종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학과는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일하는 대학교는 종교학과가 있는데, 학부생 커리큘럼을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그런 내용과 수준의 과정들이 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분이, 미국 정규대학에서, 그것도 이공계통이 아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드문일이고 또 이분의 불교관련 연구 내용도 물론 훌륭하겠지만, ‘미네소타주립대학’ 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이분의 책과 이야기들이, 한국불교(인)의 모자람을 되돌아보고 또 좋은 발전 계기로 삼는 것을 넘어서, 무슨 엄청나고 새로운 권위로 받아들여질까 해서 하는 말이다. 한번 물어 봅시다. 우리나라 대학전체에서 100위권 혹은 그 아래 수준인 작은 지방대학교에서, 학부생 3,4학년들을 가르치며 사용한 철학 혹은 종교학 교재를 어떤 교수가 출판했다고 한다면, 그대가 서점에 갔을때 혹은 전자책을 구매할때 거들떠 보기라도 하겠나? 그런데 이 책은? 미국 지방대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했던 내용은 무언가 차원이 다르고 거룩한가? 나도 영어권 대학 그리고 대학생들 좀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들이 허우대가 크고 우리나라 또래들보다 좀 더 독립적인 것은 맞지만, 무슨 대단한 지적수준의 소유자들거나 한국 대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는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에게 홍교수께서 해준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물론 출판하면서 가감이 있었겠지만,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홍창성교수 본인이 책 타이틀을 그렇게 하자고 했을까. 돈벌이 하자고 출판사 뇬넘들이 잔대가리 굴린 것이지. 참고로, 홍교수는 이력을 밝힐때 분명히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 라고 밝히는 분이며, 도를 많이 닦은 분이니, 실력과 글의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어할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탁구 치지? 나도 치는데, 지나가는 사람 열명하고 붙으면 아마 9명에게는 이기지 싶은데. 물론 그래봐야 어릴때부터 제멋대로 친 동네탁구 수준이지만. 최근에 부서 사람들 여러명이 수요일마다 체육관에서 탁구 치는 모임을 조직해서, 나도 가끔 비가 오거나 해서 산에 가기 어려울때에 끼어서 뚝딱거리며 쳤었더랬다. 요새야 밥주걱처럼 생긴 채로 (양면 모두 사용), 놀부 마누라가 흥부 빰 때릴때 쥐던 모양으로 채를 잡고 치는 것이 대중적이지만, 내 세대만 하여도, 탁구채가 펜홀더라고 형태도 다르고 (앞면만 사용) 또 쥐는 법도 다른 채 밖에는 없었다. 몇번 치면서 어울리다 보니 재미도 있고, 또 게임을 하면, 다 이기는데 한사람에게만은 이기기가 어려워서 연구도 하게 되면서 좀 엮이게 되었다.

혹시 상상이 될란가 모르겠는데, 앞면밖에 사용할 수 없는 이 펜홀더 라켓으로 몸 왼쪽으로 오는 공을 치려면, 팔을 돌려서 손바닥이 상대방을 향하게 비틀어 쳐야만 한다. 점점 젊어지니 이렇게 하는데 부담이 생기고 또 괜스래 어려운 느낌이 들더라 (연장 나무래는 목수?) 그래서 소위 이면타법이라고 펜홀더 라켓 뒷면에도 고무를 붙여서 (‘중국펜홀더’처럼) 쳐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남편이 탁구치는 시간에 부엌에서 ‘명상하면서’ (일전에 권장했던데로) 일하고 있을 그대를 위하여 설명 드리자면, 오른손잡이인 놀부 마누라가 밥 좀 달라는 시동생 흥부의 빰을 밥주걱으로 일딴 한번 때리고 (마주선 흥부의 왼쪽빰에 작렬) 팔이 되돌아 오는 길에 흥부의 오른쪽빰을 밥주걱의 반대면으로 두번째로 강타하는 바로 그 모습이 되겠다. 이때 손등이 상대방을 향하고 있다 🙂 여러가지 노력을 들여서 라켓을 바꾸고, 유튜브도 많이 보면서 연구 그리고 집에 있는 탁구대에서 연습도 했었더랬다. 어제 실전에서 해봤는데 그야말로 0점 전혀 안통하더라. 이면으로 치기도 어렵고 또 수십년 쳐온 습관대로, 왼편으로 공이오면 팔이 저절로 돌아가니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더라.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옷으며 고백을 하고서는 뒷면에 붙였던, 이제는 무겁기만 한 고무를 떼서 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탁구 초보자도 아니고 또 나름 연구에 연습을 했음에도,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무용지물 그야말로 0점이라는 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특별히 가벼운 고무를 사오고 나무를 깍고 생쑈를 했던 그 짓이 비록 허무하고 우습게 끝이 났지만, 어쩌면 탁구 시합에서 한두점 더 따는 것 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체험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현실을 깨닫고 제자리로 되돌아 온 내 자신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일본의 한 야구감독이 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몇번 해 본 것 가지고는 시합때는 택도 없고, 수백번 수천번을 실수없이 확실히 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될까말까 하다’고. 그리고 산속에서 독학으로 바둑을 연마하여 바둑의 도가 텃다고 생각하며 하산한 형제가, 시내 기원에 가서 참패를 당하고서 자신들의 수준이 고작 아마추어 몇급 정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나도 블로그 쓰면서 조심하려고 하지만, 한번 입을 열면 제 잘난 맛에 입 다물기가 어렵다 🙂 어디서 누구에겐가 선생 노릇하려 들때 조심해야 한다. 대가리로 생각해 본 것 혹은 그저 몇 번 해본 것 가지고는 실전에서는 택도 없다니까. 그리고 바로 그 실전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쓰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심정 이해하면 함부로 입 놀리기 어렵고 또 장사를? 이런 종자들에게 마땅한 표현을 내가 일전에 했었다 ‘딸 팔아서 술 받아 쳐먹는 애비 꼴’이라고. 쉽고 쿨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세상 참 허무하고 어렵게 사는 꼴이다. 삶은 실전이고 인생은 현실입니다요 🙂

직장생활의 어려움

그저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곳에서는 한번 ‘정해진대로 늘 하듯이’ 해보고 안되면 ‘안되는가보다’ 하며 지나가거나, 내버려 두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나중에 찾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젠가 듣고서 나도 상당히 공감했는데, 영국과 일본에서는 무슨 새로운 일이나 혹은 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 또 일전에 한국군 공병으로 미군 공병들과 작전을 많이 해본 분의 이야기에서, 미군 공병들은 정해진 교본에 따라서, 못 하나 나무 한쪽도 곧이 곧대로 따라서 하기 때문에, 같은 시설을 완공하는데 한국군 공병보다 시간도 더 걸리지만 정말 큰 차이는, 교본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더라는 것이 (따라서 문제 해결을 자기 윗선으로 돌린다) 기억이 난다. ‘전혀 모른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이곳에서 예전에, 많이 배우고 성공한 중국인들과 가끔 일을 같이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방식은, 위에서 묘사한 영국 일본의 회의 문화 (머리를 함께 모아서 새로운 것에 대처하자) 혹은 미국의 교본 따라하기 (자기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것을 따라서 하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절차에 따른다)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기업에서 함께 일했던 어떤 중국인 매니져가 이런 말을 내게 직접 하기도 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서구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어. 자기가 좀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저렇게 꾸물거리며 의논을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니 머리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

그때는 나도 공감했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우를 경험했던 일도 많았고 또 지금도 경험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세상의 다양한 면들을, 흡사 양파의 껍질처럼 여러 겹의 그리고 여러 수준의 진실들을 차차 보게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

그렇게 개인적으로 똑똑한 중국인들 그리고 인도인들의 역량을, 적재적소에서 잘 발휘하게 해서 결국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강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그 영국 일본 미국인들이고,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내고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절차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개인 차원에서 동일한 시간에 벽돌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데는 이 사람들이 아마 그 중국인 매니져 같은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 벽돌의 질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벽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오랜 기간에 걸쳐서 큰 건물들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짓는데는 이 사람들이 더 뛰어 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머리를 모아서 함께 계획을 하고 합의를 하고, 그 합의된 절차와 방법을 시스템을 만들어서 적용시키고 또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는 그런 능력에는, 개인의 뛰어남 보다는, 개미처럼 조직의 일부로 개인이 따르는 그런 능력이 좀 더 필요하지 싶고, 내가 만났던 그 중국인들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어떤 시스템이나 절차와 방법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따르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싶다. 이것이 모이고 쌓이고 지속되면 한 나라의 국민성 그리고 어떤 집단의 특성이 되는 것이리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얼마나 뿌리가 깊고 또 직장생활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아내와 내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느꼈고 또 지금도 느끼고 있다. 이것 자각하기도 어렵고 또 자각하더라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붓다께서 가르치신 아상과 (我相 ‘스스로가 가지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 –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실체가 없는 허구라고 한다. 중요한 가르침이다)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로 알고 나서도 자기 생각의 습관 그리고 마음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요새도 헬조선이니 하면서 이민이니 무슨 스칸디나비아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하던데, 이렇게 잘 살게 된 한국 사람들이 옛날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서 혹은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렇게 떠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 ‘자아실현’ 그리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꿈꾸는데로 그곳에 가서 살게 되더라도 바로 위에서 말한 이런 차이 때문에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곳에서 직장도 다니며 상당한 정착을 이룬 후의 이야기다. 다시말해 세탁소나 구멍가게 하며 사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퍼런 눈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과, 이해관계 속에서 다투고 따지고 조정하면서 매니지를 하기도 하고 매니지를 받기도 하며 사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오늘날의 당신을 만들어 준, 그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언행들이, 그곳에서는 특이하거나 혹은 괴이한, 다시 말해 문제성 언행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이것 깨닫기도 어렵고 또 깨닫고 나서도 바꾸기는 더 어렵다. 우리의 DNA에 ingrained 되어 있다. 세포에 각인되어 있고 또 그것이 대를 잇는다. 그래서 머리 좋은 이민 2세 3세 중에서 의사나 공학박사는 많지만 성공한 변호사는 찾기가 좀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좀 사는 곳에서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인간과 인간의 이해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한 충돌’이고 (혹은 인간들이 만든 집단끼리의 충돌) 그 해결책이 미분적분이나 화학구성의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도둑을 잡으려면 경찰이 더 세야 하듯이, 그런 충돌을 해결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할려면, 그들보다 그 방면에서 한 두 수 더 높아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거라. 돈을 많이 벌게 되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이민와서 어려워 하는 그 게임을, 부모를 대신해서 종결 짓고 한을 풀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물론 아이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을 상상해 본적조차 없겠지. 어제 밤에 이 이야기를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무슨 클라이언트 대하듯이, 예의바른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지키더라 🙂 지금 생각하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이런 것인가 상상하며 쓴웃음이 지어진다. 해탈이 무었인지도 모르고 해탈에 대한 생각조차 아예 없는, 그래서 얻을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고 또 그 주체도 없고 헐…

생일선물

휴식기의 평균심박수가 어떻게 되나? 나는 1분에 60회 내외인데 내 연령대에서는,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바로 아래 수준이라고 하더라. 최대심박수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장소까지 뛰어 올라 간 직후에 재면 175-180정도. 혹시 의사인 그대가 걱정할까봐 말하는데, 이렇게 한지 이십년 넘었다. 이 두가지의 수치가 우리의 건강 그리고 수명과 관련이 적지 않다는 연구들이 있다. 한 번 관심을 가져 보시라. 이런 것들 아는체 떠들다가 달리기 중에 심장마비로 죽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만 뚝!

그곳에 오늘도 다녀 왔다. 보기만큼 엄청나게 높지는 않고 400미터 정도,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기 시작했는데 아마 350번 정도 갔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1,000번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한때는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자갈을 갈때마다 하나씩 줏어다가 모았었는데 이제는 안한다.

아래의 사진은, 그곳에서 오늘 내려다 본 도시 그리고 올려다 본 풍력발전기. 상당히 험한 코스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오래된 전화를 늘 가지고 다닌다. 위치가 시내 부근이라서, 발전기는 그곳에 하나만 시범으로 옛날에 설치했고 실제 풍력발전기들은 (wind turbine) 조금 더 떨어진, 바닷가 높은 산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다.

오늘 자연이 아름다운 겨울 오후를 내게 선물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포장한 다음에 내 자신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 그곳까지 뛰어갔다 오는 한시간을. 물론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경치, 바람, 소리, 향기 모두 너무 좋아서 오늘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는 그대가, 결혼한지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를 혹은 그녀를 보면 늘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다. 이제 이해가 되나 🙂 10년 후 오늘, 다시 이자리에 오늘과 마찬가지로 뛰어와서 서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되돌아 오는 방향에, 우리 내외가 이 나라에 와서 첫 석달을 살았던 대학교 기혼자 기숙사 건물이 (독립가옥들) 있는 가파른 거리를 가끔 지나기도 하는데, 사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때 내가 앉아서 맥주를 마셨던 그 방 그 창문 모든 것이 그대로다. 물론 수많은 학생들이 그 집 그 방에서 울고 웃으며 왔다 갔겠지. 언젠가 그길을 뛰어 올라오면서, 장차 다시 사반세기가 지났을때, 이길을 아내와 손잡고 걸어 오르겠노라 희망하였다. 그때 이길을 뛰기는 좀 무리지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너무 좋겠고. 내가 이 두가지 희망을 이룰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10년 그리고 25년은, 나에게 땀흘리는 좋은 여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들 모두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계획이 있고, 또 좀 나이든 사람들은 소위 bucket list 라고 죽기전에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일찌기, 비싼 온동화와 고급 골프채가,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또 골프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는데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상당한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따라서 나의 목록에는 ‘구입’ 가능한 것은 들어 있지 않다.

내가 최근들어 점점 깨닫는 것은, 오늘 내가 누린 이 소박한 즐거움조차도 나의 손으로 이룬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또 일부 노력을 기울였던 면은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그 좋은 한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실로 많은 것들이 필요했고 또 많은 조건들이 맞았어야 했다. 그것들 대부분은 내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개입할 능력도 없으며 따라서 어떻게 해볼 대상도 아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거나 혹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한껏 누리되 내것이 아님을,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의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음을 나는 늘 기억하리라.

오늘 참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선물 – 그 찬란한 태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옛날에 심었을 아름드리 소나무들, 누군가가 관리하는 트랙, 자유를 허락한 직장 그리고 동료들, 편안하고 따뜻한 신발과 옷을 만든이들, 스트레칭과 샤워를 했던 체육관을 돌보는 사람들, 안전을 도운 전화기등등 – 이 모든 것들이 적재적소에서 어울려 만들어 낸 실로 최대 최고의 생일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기쁘고 감사하다 🙂

두뇌를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진화 했던 것이 대략 6만년전 쯤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으로 살게 된 기간을 넉넉 잡아 100년이라고 치면, 1/600 그리고 이것을 24시간 스케일로 환산하면 채 3분이 되지 않는다. 200년 이라고 쳐도 5분이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살지 않았던 기간이 23시간 55분이고, 현재와 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아 온 기간은 고작 5분 내외이다.

모택동이 집권하던 시절, 참새를 중국의 적으로 규정하여 온 중국인들이 일제히 참새와의 전쟁을 치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참새를 잡았냐고? 물론 약도 놓고 공기총도 쏘았었겠지 하지만 엄청난 수의 참새는 그냥 날다가 지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쫒아 내서 아무대도 앉지를 못하게 하니까. 우리 조상들은 치이타처럼 빠르지도 못했고 사자같은 무서운 이빨과 앞발도 없었고 다른 동물들처럼 후각이나 청각이 그리 발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을까?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중 대부분은 인간들 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릴 수 없다. 흡사 중국인들이 참새를 맨손으로 땅에 떨어트렸던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수 만년간, 사냥감이 지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뒤쫒아 가서 잡아다가 가족들과 나눠 먹었던 것이다 🙂 아버지만 대표로 뛰었겠나? 그 참새 잡던 시절의 중국인들처럼, 아내도 아이들도 ‘모든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데로 아무거나 들고 뛸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같이 걷고 또 뛰었었겠지. 자주 어쩌면 매일.

당연히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사는 것에 유전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지금 당신이라는 존재 안에, 조상들의 삶이 대대로 녹아 있고, 역사가 들어 있고 또한 인류가 수 만년 혹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쌓아온 본능이 들어 있다. 이것 잊고 살고 무시하며 지내다가 언젠가는 큰 댓가를 치른다.

걷고 뛰고 운동하면 우리 뇌가 행복해지고 우리 몸이 건강해진다. 그 시간에 앉아서 딴짓을 계속하면 뇌가 불행해지고 몸이 아프게 될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진다. 내 경험에 따라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내가 믿는데, 운동 특히 자연속에서 걷고 뛰고 땀흘리는 것을 좋아하며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치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사람치고 그런 운동 좋아하고 즐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는 줄 조차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안 걷고 안 달릴텐가? 머리 맑고 몸 건강하게 잘 산다는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