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

옛날에, 국제선교단의 일원으로 이곳에 온 한국분께 우스게 소리로 했던 말이 있었다. ‘여기 사는 한국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예요. 오죽 별나고 제 잘났으면 남들 다 사는 곳 등지고 이런 나라 또 이런 외진 도시까지 왔을까요? 이 사람 하나 상대하는 것이 아마 보통 한국 사람 열명 상대하는 만큼 힘들껄요.’

아내가 일하는 유치원은 그 지역에서는 꽤 크고 오래된 곳이라, 그곳을 거쳐간 아기가 자라서 제 아기 손잡고 입학시키러 오는 것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수백 수천명의 아기와 가족들이 거쳐 지나갔는데 여태껏 한국 아이와 가족은 단 한번도 온적이 없었다더라.

몇 년전에 도시철도 차량을 전부 교체했었는데 한국에서 수입해 왔다. 나도 애용하는 전철에 ‘로템 한국 제조’라고 찍혀 있는 것을 볼 때면 흐뭇하다. 그 철도차량을 기술지원하는 한국직원 소수가 이 도시에 있다고 하는데, 그 직원의 아기를, 엄마가 아내의 유치원에 데리고 왔다. 유치원 소개를 하고 등록 절차를 이야기하려는데, 아기 엄마가 조심스럽게 원장선생님을 좀 만나고 싶다고 하더란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인데요’ 했더니 놀라기도 하고 또 기뻐하더란다. 아이가 말이 통하지 않아서 수줍어하며 적응을 못할까 걱정이 많은데, 엄마는 마음이 많이 놓이는 모양. 아기도 말 안통할까 쫄아서 왔는데, 어떤 한국 아줌마가 익숙한 말로 이야기하니 좋아 하더라고 🙂

이곳에서 직장생활한지도 사반세기가 넘었지만 나 역시 최근까지 한국사람을 만났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지난주에 부엌에서, 서로 가까이 지내는 매니져가 ‘브라이언이 이번주에 입사했는데 한국사람이라고 하더라’ 귀뜸을 해주었다. 그 매니져는 자기의 부하 매니져가 이 한국사람을 뽑았기 때문에 아마도 이력서를 보았거나 보고를 받았던 듯. 딱히 그리워 하지도 않고 또 특별히 만날 이유도 없지만 문득, 새로운 곳에 취직을 해서 모든 것이 낯설텐데 그래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들더라. 내게는 흔히 생기지 않는 마음 🙂

인트라넷으로 찾아내 연락을 해서 교내 커피점에서 만났다. 이런 저런 질문에 성의껏 대답을 해주면서, 초등학생 딸과 아내가 있다는 이 가장에게, 약간의 조언도 곁들여 주었다. ‘이곳에서는 부부가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니,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 다투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여유를 서로에게 주어야 한다’고.

그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아내에게, 내가 그 부인과 아이를 위해서 남편께 했던 그 조언은, 사실은 내 입을 빌어 당신이 그들에게 해주었던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굳이 붓다 예수 따지지 않아도, 사랑과 자비는 이렇게 전달되고 전파되는가 보다 🙂

보디사트바 (보살) 이야기, 네번째

일전에 언급했던 그 암벽등반 도큐멘터리 Dawn Wall 이야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당신이 직접 보는 즐거움을 빼았지 않을 만큼만 이야기 하겠다. 감동적인 장면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이 장면을 선택하지 싶다.

그 암벽 코스 중간쯤에, 백미터 정도의 거리를 옆으로 횡단해야하는 구간이 있었다. 그야말로 손톱도 들어갈 곳이 거의 없는, 흡사 맨손으로 수직 거울을 횡단하는 그런 구간이다. 연습때 수백번 시도했었지만 단 한차례도 성공하지 못했었다. 먼저 주인공 토미가 수차례의 시도 끝에 (한차례의 시도가 몹시 힘이 드니,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시도하고 또 중간에 하루 이틀씩 쉬기도 하면서 시도한다) 그 구간을 기적적으로 통과 하였다. 암벽들은 그 전체 혹은 부분들이 (Dawn Wall처럼 암벽이 엄청나게 큰 경우에는 수십개의 구간들 하나 하나가) 어떤 난이도로 표시 되는데, 내 기억에 바로 이 횡단 구간이 세상에 알려진 암벽중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였다. 이제 토미의 지원을 받으며 케빈이 그 구간을 통과할 차례가 되었다. 일주일 이상을 머물며 수십회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손가락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미 암벽에 올라 온지 2주가 넘었고, 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토미도 남은 구간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토미는 이제 혼자 올라가야만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았던 케빈은, 함께 그토록 꿈꾸었던 정상 등반의 영광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줄 이제 깨달았다. 능력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안다. 토미는 충분히 기다려 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케빈에게 해주었었다. 하지만 케빈은 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암벽 구간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지 못했다.

이제 토미가 케빈의 지원을 받으며 홀로 암벽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준비했고 기다렸던 등반인가. 홀로 오른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제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고 또 결코 여기서 그만 둘 수도 없다. 토미가 몇개의 어려운 구간을 올라 이 거대한 암벽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는, 몸을 누일수 있는 작은 공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 거의 손아귀에 닿을듯 말듯 다가온, 평생을 꿈꾸던, 그 성취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쏟아 부었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땀과 희생을 기억하였다. 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또 원했던 순간이었던가…

그런데 벌떡 일어난 토미가 위로 계속 올라가지 않고 반대로 내려간다. 그리고 케빈에게 말한다. ‘친구여 그대를 남겨두고 나 홀로 갈 수가 없네. 그곳으로 함께 되돌아 가서, 자네 다시 한번 시도해 보게나.’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 도큐멘터리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 작은 공간에 누워서 곧 다가올 엄청난 성공을 상상하던 토미는 그 순간 케빈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이다. 내가 이런데 그는 또 얼마나 간절히 원할까… 그런 마음을 알아주고 또 그런 마음과 함께 하는 것이, 세상의 어떤 성공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토미는 알았고 또 실천한 것이다. 보살행을 할려면 (세상을) 알아야 하고 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않은가?

토미가 하는 말이 무었을 의미인지 케빈은 잘 안다.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자기가 다시 몇차례 실패하면 그때는 두 사람 모두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미 투자했던 시간, 돈, 희생이 너무나도 컷기에. 케빈의 마음을 편히 해주고 오로지 암벽 횡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토미는 그동안 미디어들과 정기적으로 통화를 했던 휴대전화를 ‘실수로’ 암벽 아래에 떨어트렸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는 자네와 함께 이곳에 몇날 몇주를 머물든지 상관이 없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였다. 여때까지는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였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저 아래에서 세상이 뭐라든, 이곳에서는 오직 두사람 뿐인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는 파트너 두사람 뿐. 케빈은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재시도한다. 그리고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그 횡단 코스를 성공적으로 돌파한다. 아! 감동이다. 두 위대한 인간이 만들어낸 인생 드라마…

하지만 산넘어 산이다. 정상을 동반 등정하기 위해서 케빈은, 토미가 이미 도달한 그 높이까지 최대한 빨리 (당연히) 자력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시간을 더 끌면 정상에 다다르기 전에 둘다 지쳐 쓰러진다. 이미 지쳐있다. 토미가 암벽등반가로서는 극히 드물게, 상당한 거리를 아래로 내려와 우회 통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어려운 구간에 이제 케빈이 도달하였다. 토미와 동일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시간도 없고 또 암벽을 자유등반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기보다도 더 어렵다. 이 구간은 중간에 실제로 잡을 것이 전혀 없어서, 2-3미터를 점프해서 쥐꼬리만한 바위틈을 손가락 한두개로 움켜 쥐어야 하는 곳이다. 바로 이 점프때문에 토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회 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어쩌면, 작은 바위타기에 능한 케빈은 점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방법은 없고 무조건 점프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 기적과 같은 점프를, 토미도 하지 못했던 그 점프를, 케빈은 해낸다. 이런 드라마를 거치며 또 그런 희노애락속에서 울고 웃으며, 두 사람은 결국 정상에 선다. 이래서 위대하다는 것이다. 체력이 강해서 또 기술이 좋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결정을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내리며 또 서로를 믿고 도왔던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위대하고 또 그들의 성공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새들은 그곳을 그저 날아서 올라갈테고 어쩌면 훈련된 원숭이나 다른 동물들도 그곳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늘 ‘보살행’이라고 표현하는 바로 이것은 오직 인간들만이 가능하며, 또 토미와 케빈뿐만 아니라 우리도 자신의 삶속에서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계적인 암벽등반가가 아니어도 된다. 인터뷰도 없고 또 상금도 기네스기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룬 이것을 당신과 나도 이룰 수 있다. 그대와 나도,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보살’이 될 수 있다 🙂

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지어 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직장에서 그런 일은 ‘simply doesn’t happen’.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신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

보디사트바 (보살) 이야기, 세번째

나는 전에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아는 스웨덴의 단면들을 가끔 잘난체 이야기 하곤 했었다. 그중에는, 찬반이 극명히 엇갈리는 이민 정책, 너무 집중된 이민자 집단 거주지가 게토화 (getto) 된 것, 주민들이 너무 난폭하고 위험해서 경찰조차 들어가지 못한다는 수십 군데의 ‘No go zone’ (사실이 아닌것,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다양한 경로를 거쳐 배우고 깨닫게 되면서, 이러했던 나의 지난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한국에 그런 이슈들이 없고 그러한 많은 토론과 싸움이 없는 것은, 한국에 이런 문제 자체가 없기 때문이고, 또 한국에 이런 문제 자체가 없는 이유는, 애초에 난민을 그런 규모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아무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흡사 한국이 스웨덴보다 더 큰 능력으로 그런 상황을 더 잘 매니지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 하는 사람들도 있듯이, 나도 어쩌면 ‘넌즈시 내려다 보는 태도’로 이 먼나라의 보살들을 주제 넘게 ‘아는 척’ 이야기 하여 왔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스웨덴에 온 피난민들을 (망명자들) 통해서 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어떤 병이 있다. Resignation Syndrome 이라고 한다. 5-12세 내외의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예를들어 자국에서 벌어진 전쟁, 피란민 수용소의 고초, 제3국으로의 탈출등) 스웨덴에 왔지만, 영구정착이 허용되는 난민심사 과정이 1-2년 걸리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지 않으며 어쩌면 추방되어 자국으로 되돌아 가야만 될지도 모르는 상황등, 그들이 부모들과 함께 겪는 그 힘든 과정속에서 (비록 부모들이 그 사실을 일일이 말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느끼고 또 깨닫게 되는 어떤 ‘에너지 혹은 기운’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이 점점 식음을 전폐하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다가 결국은 의식불명의 완전 식물인간이 되는 신종병이라고 최근에 밝혀졌다. 200-300명 정도의 어린이들에게 스웨덴에서만 발병한 것이 확인 되었고, 최근에는 호주의 피난민격리시설에서도 발병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에게는, 스웨덴이나 호주나, 그저 이런 병도 생기고 (피난민들을 많이 받아 들인다는 이야기 같으니까) 또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선진국이라 알려져 있지만, 이 두나라가 이런 피난민이나 망명자들을 대접하는 실제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인 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언젠가 이웃 호주넘들의 실체를(?) 까발려 주마 🙂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 졸지에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자식들을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돌보는 부모들에게, 스웨덴 극우주의자들은 일부러 꾸며서 하는 짓이니 아이들에게 약을 먹였느니 짖어 댔는데, 여러명의 대학병원 교수들이, 어떤 외부적인 영향이나 악의적인 개입이 없이 생긴 새로운 질병임을 밝혀 주었다. 다행히, 부모들에게 영구정착이 허락되고 또 직장을 가지게 되어 안정을 찾는 좋은 소식들이 생기고 나면, 몇 달 후에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깨어나서 정상으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도큐멘터리에 등장했던 대여섯살 된 여자아기도, 자신이 6개월 이상 식물인간이었던 것을 전혀 기억 못하지만, 멀쩡하게 깨어나 자전거를 타고 랄랄라 돌아 다니는 것을 나도 보았다 (그 아기가 식물인간 시절에 의사들과 부모들이 어떻게 했었던가도 도큐멘터리에서 물론 보았고).

지금 눈에 안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이것 무시하고 살면 안 되지 싶다. ‘잘’ 삽시다들.

보디사트바 (보살) 이야기, 두번째

러시아가 강대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 중국이 강대국임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강대국인 러시아나 중국을 아무도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데 왜 그럴까?

그 나라 사람들도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쓰고 인터넷하고 다한다. 중국도 해외 원조 엄청나게 많이 한다. 아프리카등 후진국에 중점적으로.

같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고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아니듯이, 같은 원조를 베푼다고 같은 수준의 나라들이 아니다. 보살 대인배와 무식 찌질이를 구분하는 차이는, 같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같은 인터넷을 통하여, 무었을 보고 배우고 ‘하는가’는 것이겠지. 골프채가 골퍼를 구분짓는 것이 아니고, 그 골프채로 골퍼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로 구분되어 지겠지. 두 개의 상반된 것들을 동시에 쫓을 수는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왕서방이 베푸는 원조는, 스웨덴 사람들이 아프카니탄이나 시리아 난민들을 다수 받아 들여 온갖 괴로움과 문제를 겪으면서도 (물에서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넘들, 그리고 이런 배은망덕한 넘들을 당장 쫓아 내자는 주인들 등등) 그 정책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왕서방은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국제 사회에서 입지를 굳이려는 (표를 사려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것 흡사 보살행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반대 되는 행위이다. 굳이 악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행위 뒤에는 반드시 karma rebirth가 따른다. 뿌린데로 거두게 된다. 돈을 거두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돈 뒤에 감추었던 ‘의식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했던 자기 행동’의 열매를. 왕서방들 뿐만 아니라, 이런 짓하는 김서방 박서방도 예외없다고 붓다께서 가르치셨다.

스웨덴 사람들이 그 난민들 받아들이고 도와주어서 무었을 얻어오리까? 지난해 스웨덴 총선때 극우당이 (그 야만하고 배은망덕한 욘넘들을 당장 쫓아 내자는 주인들의 모임) 상당한 약진을 했다. 물론 그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한 당들도 더 많은 의석을 차지 했다. 중도파들이 주로 의석을 잃은 것 같고. 그 극우당에 투표했던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스웨덴 사람들이었던가 인터넷에 상세한 자료가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최신 스마트폰 고가 골프채를 ‘주로’ 쫓으며 사는 ‘가난한’ (모자라는=부족한) 사람들이더라.

보살이 되려면, 세상을 잘 알아야 하고 세상을 잘 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에게도 단체에도 나라에도 모두 적용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