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인간 엉망진창 인생

한 이십년 전에 어떤 가족에게 은혜를 (?)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한국인 종교모임에 속하여 자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놀았었는데 (?)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었다. 서로 의지가 되기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민와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찌그러진 상황에서, 에헴 소리도 어쩌다 서로 좀 내보면서 그리운 한국의 맛도 (?) 보고 그랬었다.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며 놀던 한 가족이 한국으로 급히 귀국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부인이 남아 집을 팔고 다른 정리를 마치고 뒤따를 계획이었다.

집은 빨리 안팔리고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이웃중에 변태성욕자가 있어 여자 혼자 사는 줄 알게 되면서 빨래줄에 널어둔 속옷이 자꾸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집 뒷쪽 문들을 드라이버로 쑤셔서 강제로 열고 침입하려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지난날 웃으며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불렀던 나를, 그 부인이 직장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집을 팔고 차를 팔아 송금하겠으니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한국으로 즉시 귀국하라고 하였다. 변호사를 찾아가 법정대리인 절차를 밟은 후, 복도에 알람을 설치하고 몽둥이를 침대머리에 두고서 그 집에서 한두달을 살았다. 오래 안팔렸던 집을 팔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서 집을 씻어내고, 실내를 꾸미고 잔디를 깍아야 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부동산업자들을 연일 상대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집을 팔았다. 그리고 내 차도 아마 그렇게 못했을텐데, 그 사람들 차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이 그 차를 샀었던 딜러에게 찾아가 부족한 영어로 사정하여 팔았다. 집도 차도 예상보다 나은 가격에 팔게 되어 기뻣다.

그 여자의 오빠들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툭 내려와서 돈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내게 말하였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가 같은 도시에 살았는데? 골프 치시느라 너무 바쁘셨구나. 존경스러운 그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해주고 나는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 변태는 늘어진 내 사각빤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몽둥이도 다행히 사용되지 않았다.

그 내외는 나를 잘 알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알았었다. 나는 한장의 편지, 한통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은혜를 입었다. 참으로 고맙다’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 한번이면 난 충분했었을 것이다. 웃으며 작별했었을 것이다. 어차피 떠난 사람들이었고 이미 인연이 다한 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외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여 했던 적선이었다. 아무런 (물질적인)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내 주소도 알고 전화번호도 알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장의 편지, 한번의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고 이곳으로 귀국하는 (관련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선교사 편에 몇가지 물건을 사서 보냈다. 우리 집을 찾아서 그 물건을 전달하던 선교사가 우리 내외에게 말했다 ‘이런 물건들을 전달하게 되어 나는 유감스럽다. 나라면 결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가까운 시장에서 급히 이것저것 보이는데로 사서 넣었던 모양새였다. 물론 사는게 바빳겠지. 귀국하니 힘들었겠지. 그리고 고맙긴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편치 않은 상대에게 어색한 표현을 굳이 하기도 어려워서 차일피일 했었겠지. 나도 차차 살면서 깨닫는데, 흉내 내기는 쉽지만 참으로 사람 노릇하기는 (비록 소소한 상황에서 조차도) 정말 쉽지 않더라.

세월이 흘러서, 그때 그일이 있어났을 당시에 (내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던, 그 소위 형제 자매들과 이 부부가 한국에서 서로 오가며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것을 들었을때 생겨났던 내 마음의 소용돌이를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 난 뭐냐? 도대체 내가 뭘 한거지? 원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가?’ 그 격한 감정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마도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인연은 오묘하게 오가는 것이다. 굳이 내가 받은 상이 (?)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는 하찮은 상이 아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이며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원한도 실망도 별로 없이 지난 그 일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나 역시 예외없이 뒤죽박죽이었고 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좋아하겠나? 하지만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그 실체는 변하지 않고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현명한 스승이 말하였다. 십년 이십년을 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발전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보여 절망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와서, 무슨 호르몬 변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차차 쉬운 상황에서나마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을 좀 더 보게 된다. 내 자신도 흠칫 놀란다. 한편으로는 믿기지도 않고 의구심도 든다. 이래봤자 크고 엄청난 상황에 부닥치면 한방에 훅 날아간다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은근이 올라온다 ‘사람이 백날에 아흔 아홉날은 그저 소소한 것들로 마음을 끓이며 놓았다 들었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데, 백날에 하루 왕창 깨질지 몰라도 아흔 아홉날 나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인간이 뒤죽박죽이고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참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부와 가족들, 아이들도 이제 장성했겠지. 잘 살길 바란다. 서로 마주보며 과거사를 들추어 누가 무었을 했었고 무었을 하지 않았었던가를 따지며 어리석게 엮이지 않는한,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싶다. 용서? 누가 뭘 용서 하겠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나도 마이 바다 무따 아이가. 좀 되돌려 준 것뿐. 아마도 플러스 마이너스 0 이 되었지 싶다.

작년에 내가 집안에 큰 일을 당하고 나서 ‘짐작하고 알면서도 결국은 침묵했었던’ 한때 ‘친구’라 불렀던 그 인간들에게도, 그 부부 그리고 그때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함께 먹고 마시던 그 사람들에게 옛날에 내가 가졌던 그런 감정이 생겨났었다. 더 이상 ‘친구’라 부르지 않으니, 집에서도 무어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 불편할 때가 어쩌다 있다. ‘그 인간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대충 알아 듣는 듯 🙂

이번에는 십년 세월이 흐르지 않고서도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다. 친구라 부르기 싫으면 이름을 그냥 부르면 되지 않겠나 🙂 그리고 그들이 비록, 내가 궁지에 몰릴때 몽둥이 들고 자면서 집과 차를 대신 팔아주진 않을 사람들이지만, 전화 한통 편지 한장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고 한결같이 바쁜 사람들이지만, 그나마 좋은 시절에 꽃놀이는 어울려서 다닐 수 있지 않겠나? 전에도 함께 먹고 마시며 놀았으니 다음에 만나도 그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또 먹고 마시며 꽃놀이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나? 혐오의 마음이나 감추거나 누르는 감정은 별로 없다. 인간이 그러하기에, 사는 것이 원래 이 꼴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기에. 또 나도 꽃놀이 좀 어울려 다니고 싶기에 🙂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좀 더 들리고 더 보이게 된다. 반대로 일단 받아들이지 않고 장막을 쳐버리면 들어야 할 것도 안들리고 봐야 할 것도 안보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막히고 단절되어 양쪽 모두 크게 잃게 된다. 상대방이나 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삶의 진리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혹시 들어봤어요? 나는 펜인데요, 오랜 세월 하도 즉문즉설을 많이 보고 또 그분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질문만 딱봐도 해답이 저절로 줄줄 나와요. 그리고 모범답안을 들어보면 내가 미리 낸 해답이 대부분 맞아요 🙂 그래서 그런지 요샌 좀 재미가 (?) 덜해서 별로 안보게 되네요.

우연히 보니 오늘 질문 제목이 ‘아이가 고집이 센대요 사랑으로 대해야 하나요 아니면 엄하게 대해서 고쳐줘야 하나요’ 이런 것이었어요. 아! 해답을 모르는 문제가 오랫만에 등장했네요. 아주 짧은 동영상인데요 모범답안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이 양반이 무슨 황당무계한 (내가 느끼기에 그런적도 있었어요)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봤어요.

사랑으로 대해줘야 하나 엄하게 고쳐줘야 하나 그런 생각일랑 하지말고, 사랑스러운 내자식이 고집을 피울때 ‘아! 이 아이의 고집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로구나. 어른인 내가 이런 언행을 했을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딱하고 가관이었겠나’ 스스로 돌이켜 깨달으며, 아이에게 빙그레 미소 지을수 있으면 된다 이런 맥락의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덧붙여 ‘엄마가 그렇게 미소 지을만한 수준이 되면 아이도 엄마를 따라서 저절로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여태껏 보고 듣고 배운, 그 어떤 박사 도사 노벨상 무슨상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훌륭한, 삶의 진리를 단 몇마디로 함축한,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에 고개숙이며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또 그것을 지속하고 반복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지 나는 조금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내 수준의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 인생에 더 이상 뭐가 있겠어요 🙂

기질 습관 그리고 운명

어떤 산부의과 의사의 말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직후에 의사들이 아기 입을 벌려 이물질을 제거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어떤 아기는 입을 좀 눌러서 벌려도 그냥 아~ 쉽게 벌려주면서 멀뚱멀뚱한(?) 아기도 있고 또 어떤 아기는 자지러질듯이 울고불고 하는 아기도 있다고 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어떤 외부적인 영향도 없는데 이렇듯 반응이 다른 것을 보고서 그 의사는, 아마도 이것은 아기들이 부모들로부터 유전적으로 받아서 가지고 태어나는 어떤 기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했어요.

몇달 전에 유치원을 시작한 한국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가 했어요. 오랜 세월 유치원에 재직하면서 수천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아 왔지만 한국아이는 이 아이가 처음이라고 해요. 서로 말이 통한다는 잇점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아내가 어떻게 이 아이의 유치원 생활과 적응 과정을 표내지 않고 잘 도와주는지 나는 전부터 들어와 알고 있어요. 그 부모는 어쩌면 ‘아! 한국인 원장이라 다행이다’ 그 이상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잖아요. 이 아이는 공부를 많이하고 능력이 있는 부모가 이곳 회사에 파견을 오는 바람에 함께 와서 몇년을 지내게 되었다고 해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당연하겠지요) 3살이 조금 넘은 이 사내 아이는 처음에는 아침에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곤 했었지만, 지난 몇달간 아내와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울지도 않고 점점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과도 더 어울리며 잘 놀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영어는 아직도 한마디도 못해요. 아니 ‘결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 유치원에는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 아이도 한명이 있다는데요, 이 두아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영어를 알아 듣긴 해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둘 다 매우 영특한 편이라고 해요. 그리고 뚜렷한 개성 혹은 자아가 있어 보인다고 하네요 (유치원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이 아이들은 ‘잘 하지 못할까봐’ 혹은 어쩌면 ‘잘 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의식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내는 생각한다고 해요. 타고난 기질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이런 특이한 상황에서 얻게 된 어떤 습관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기질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습관으로 드러난 것일까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아이들도… 언젠가 아내가 말해 주었던 그 수줍은 이나라 아이. 그렇게 좋아하는 소방차가 유치원에 왔는데도 너무 부끄럽고 무서워서 친구들처럼 차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먹였다던 그 아이. 아내가 제안을 하면서 약속을 했다고 해요. ‘네가 스스로 올라가면 나는 네 뒤에 꼭 서 있겠다’. 아이는 자신의 결정으로 올라갔고 참 기쁘고 좋아했다고 해요. 그 기뻐하는 아이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나요? 나는 이렇게 아이들의 습관을 바꾸어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돌려주는 아내의 직업이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때 유치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또 이런 프로페셔널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믿어요)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저를 길러주신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자신의 기질 그리고 습관과의 힘겨루기가 만만치 않은 경우도 있어요.

다시 ‘결코 말하지 않는 그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아내와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과 또 이곳의 좋은 교육 시스템의 도움으로 입을 열게 될꺼예요. 그리고 신나게 떠들고 싸우고 울고 불다가 만 5살이 되면, 바람에 흩어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자기의 인연을 따라서 멀리 떠나갈 꺼예요. 좀 웃기는 이야기는, 이렇게 떠나간 아이들이 장차 부모가 되어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이 유치원에 되돌아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해요. 자기를 돌보아 주셨던, 자기의 모든 것을 보았던 그 선생님들이 아직 있어요 하하하 🙂

때대로 나는 아내에게 ‘당신은 제자없는 스승이다’ 이렇게 놀리는 말을 할때가 있는데요, 진심으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자들이 감사해 하고 또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도 물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만, 아내의 손을 거쳐 지나간 아이들이 아내와 다른 선생님들의 지혜와 사랑으로, 어쩌면 성인이 된 자신의 인생을 어둡게 하고 또 망칠지도 모를 습관들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세상에 나간다면, 이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참으로 큰 적선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요. 이런 종류의 괴로움을 직면하여 발버둥을 쳐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지 싶네요.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가격을 매기거나 사고 팔수가 없지 싶어요. 참으로 큰 적선은 준 사람도 모르고 받은 사람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크고 작다’는 것도 없고 ‘주고 받았다’는 것도 없지만 그 실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나는 봅니다. 어쩌면 이미 성인이 된 인간들의 구원은(?) 바로 이런 것들을 깨닫고 의식하는 바탕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마치 어른이 되어 배우는 골프는, 어릴때 아무 생각없이 아빠 따라가서 놀면서 저절로 익힌 골프와는 그 과정도 차원도 다를수 밖에 없듯이 말이예요.

세살 아기들도 이렇게 뚜렷하게 보여주는 자아 (ego).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할 무거운 등짐 혹은 두꺼운 외투처럼, 나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고 또 내게 이익이 되라고 자연의 섭리로 주어졌지만, 마치 양날의 칼처럼, 이토록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조차도 짐과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까? 붓다께서 해탈 열반을 만드셨나요? 아닙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마치 나이든 배뿔뚝이 중년에게 골프를 가르치듯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바로 이 자아가 아무런 실체가 없음을, 단지 기질과 습관의 덩어리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자아를 만들고 또 강화하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줄이고 또 지우면서 열반을 (니르바나) 향해 노력하며 살다가 가면 좋다 말씀하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소방차 위를 스스로의 결정으로 올랐던  그 아기는 장차 어른이 되면, 소방차를 아직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고, 자신이 어릴때부터 존중 받았듯이 타인을 자연스레 존중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며 또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힘이 센 사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는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요? 아니면 주변 사람들 모두 맹목적으로 쫓는 것들 중에서 더 비싸고 더 크고 더 멋져 보이는 것들을 획득하여, 이차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 노병들의 군복에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들처럼 ‘여기 봐요. 나 좀 봐요’ 하다가 나중에는 플라스틱 줄이나 주렁주렁 매달고선 졸지에 허무하게 떠나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나요? 어떤 어린 시절을 통해 어떤 몸과 마음의 습관을 길러 오늘을 살고 있나요?

길에 떨어진 사금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

알려진 골프코치들 중에서 김헌이라는 분이 있다. PGA니 KPGA 선수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무슨 미국 티칭프로 자격을 내세우는 분도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이분만큼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을 지도한 실전 경험을 가진분은 (5,000명 이상)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것이다.

이분이 왜 그렇게 유명하신가, 그런데 왜 돈은 엄청 못버셨는가 하면 🙂 소위 말해서 도가 튼 분이기 때문 아닌가 한다. 이분의 강의를 들으면 진심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김없이 그리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분이라는 것을 자주 그리고 분명히 볼 수가 있다.

아마 이분의 그런 점들이 (가식없이 꾸미고 포장하지 않으며 또 자신의 것이라고 움켜쥐고서 돈 내놓아라 하지 않는 것등) 이분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한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받는 존경과 또 스스로 느끼는 진정한 만족감과 재미를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한다. 돈과 권력으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게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뒤돌아서 침뱃는 그런 가짜를 사고 팔아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짜 보물도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판에 그런 가짜를 왕창 모아 가지고서 뭘 하려나?

내가 지금껏 골프에 버벅거리며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과 글과 책을 보았지만, 김헌선생의 가르침 만한 것을 동서양 어디서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공짜로 나누어주신, 자신의 골프경험 30년을 농축한 이 2시간짜리 강의만큼의 가치를 지닌 가르침을 나는 아마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보지 못하지 싶다. 이분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기에 이렇게 내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혹시 그대도 관심이 있으면 보기를 권한다. 그 훌륭한 강연은 여기를 클릭.

이분이 어떤 강좌에서 하신 말씀중에서 내가 늘 기억하며 골프뿐만 아니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있다. ‘수천명의 아마추어를 가르쳐 보았지만 골프의 즐거움 아니 인생의 행복이, 땀을 흘리며 지루하게 길을 가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으면서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에서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이나 금광을 찾으면서 사는것 같다. 세상에 그런 금맥이나 금광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설령 그것을 찾았다손 치더라도 금맥이나 금광이 참된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분의 가르침, 공짜 좋아하는 ‘가난한’ 내게 무료로 주시는 이 훌륭한 가르침들을 가지고서 나는 ‘반드시’ 싱글이 되고 또 득도하리라 🙂

그대는 길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우며 오늘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금맥을 찾아 헤매며 내일의 행복을 쫓는 사는 사람인가? 혹은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이번 홀에서 돈만 따면 되는 사람인가 🙂

원인을 모르면 결과라도 따라해본다?

중국의 전설적인 미인이라던 월나라 서씨 이야기를 아세요? 이 미녀가 아파서 찡그린 표정까지도 아름다워서 주변 여자들이 그 표정을 따라했다고 하네요.

사무실 내 뒷쪽편에 앉아서 일하는 젊은이는 한눈에 보아도 선하게 생긴 퉁퉁한 녀석인데요 (동물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꿈이라네요. 지금은 전산일을 하고 있지만서도), 하루종일 양발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어요. 한쪽 발을 떠는 넘은 가끔 보았어도 이렇게 양발을 하루 종일 쉼없이 일하면서 떠는 넘은 나도 처음 🙂 그런데 덧붙여서 하루 종일 기지게를 켜요. 아마 나름대로는 어떤 실내체조랍시고 (혹은 마이크로포즈?) 의도적으로 하는것 같아요. 이런말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기분이 좀 안좋겠지만, 나는 이 젊은이가 세상에 산 기간보다도 더 오랜 기간동안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컴퓨터앞에서 일을 해왔어요. 물론 오래전에 한때 손목이 아팠던 적이 있었고 (아마도 손목수근관증후군 Carpal tunnel syndrome) 또 눈도 불편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지금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일하고 또 이 젊은이가 이미 끼고 있는 안경도 쓰지 않아요. 자주 단것과 기름진 것들을 사먹는 이 녀석의 버릇을 보면서 ‘야! 이넘아 나가서 좀 뛰고 운동을 해라. 하루 종일 양다리나 달달 떨고 기지게 켜면서 운동이랍시고 쥐랄하지 말고’ 이런 생각이 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요.

아마 한국이었다면, 소위 말하는 꼰대 고참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No no! 절대 그런말 하면 안되요. 개인적으로 반발할 뿐만 아니라 좀 못된 넘이라면 매니저나 인사부를 통해서 공식항의를 할수도 있어요. 이곳은 그만큼 개인주의가 발달한 곳이랍니다. 며칠전에 말했던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그런 끈끈한 직장생활은 (어떨때는 너무 끈적끈적?)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아요. 일 마치고 한잔? 어쩌다 그런 분위기의 직장도 드물게 있긴 한데요 (젊은이들이 위주인 환경 혹은 매니져가 술꾼인 직장등) 대부분은 ‘일 마치고 문 나서면 남남’이며 인생은 ‘집에서 개인적으로 찾는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예요.

한가지 이야기를 더 할까요. 혹시 짐바브웨란 나라의 무가베란 독재자를 기억하세요? 이 넘이 짐바브웨라는 나라에 끼친 해악을 들으면서 (나도 짐바브웨 사람 2명을 친구로 또 직장동료로 옛날에 알고 있었어요. 물론 이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서도요) 와! 이넘은 왜 이렇게 죽지 않고 장수를 하는 것인가? 언제 이넘이 죽어서 짐바브웨 사람들이 숨을 쉬고 정상적인 삶을 살수가 있을까 이렇게 늘 저주를(?) 퍼부었어요. 이 나쁜 넘은 100살에서 몇살 빠지는 천수를 누리다가 죽은지가 얼마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 이넘이 죽고 나서부터 짐바브웨에 평화와 번영이 왔을까요? 아니, 오기 시작했을까요? 썩은 이빨을 빼고 나면 건강이 저절로 오는 것일까요? 왜 썩은 이빨이 처음부터 생긴 것일까요? 그 썩은 이빨을 허락했던 구강환경과 생활습관이 발치로 말미암아 저절로 달라질까요? 담배를 끊는다고 저절로 건강해질까요? 대통령을 잘 뽑기만 하면, 아니면 지도층의 잘못을 끊임없이 크게 비난하고 그 사람들을 갈아치우면 세상이 정말 달라질까요?

무가베나, 지금 감옥에 있는 극히 함량미달인 전직 여자 대통령같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년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친구들 중에서 이 여자를 크게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나는 속으로, 국민의 투표로 뽑은 한 나라의 수장을 이런식으로 막말하고 조롱해도 되는가 반발심이 많이 들었었어요. 이 여자의 실체가 차마 그렇게까지 골때리는 줄은 나도 상상을 못했었던 것이었지요), 내가 생각하건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잘하면 70점 못해도 60점’ 정도가 아닐까요? 우리는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생물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또 비슷한 문화와 환경의 산물입니다. 아무리 날아도 100미터를 보통 사람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뛸수가 없고 마라톤을 절반보다 더 빨리 완주할 수가 없어요. 그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길고 오래 크게 본다면 말이지요. 자기가 못하는 것을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강요하면서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 이제 본론으로 🙂

현대에 들어와서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 중에서 집단주의나 독재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없습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이전에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개인주의가 발달해 있습니다. 사무실 뒤에 앉은 젊은이가 직무와 관련된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개인적인 버릇이나 취향 혹은 선택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는것이 ‘보다 더’ 정상이라는 것이지요.

언젠가 우연히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영국인 미녀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어요. 그녀도 나도 스톡홀름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야기를 몇시간 나누게 되었는데요, 이 멋있는 30대의 여자를 통해서 영국에서 벌어지는 ‘브렉싯’에 대해서 듣게 되었어요. 아니 Brexit이 얼마나 평범한 영국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듣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이렇게 정치에 좀 미친 상황도 어쩌다 있지만, 내가 알기에는 대부분의 경우,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Brexit도, 자기들 일자리에 그리고 삶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영국사람들이 광분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축구만큼도 영국인들의 관심을 끌지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진국 사람들이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은 첫째로는, 정치가 사람들의 삶을 현저하게 발전시키거나 크게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겠고 둘째로는, 그렇게 자기와는 별로 그리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곳에 (다른 사람들에게 왈가왈부할)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 싶네요.

무가베가 죽어도 짐바브웨는 당장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아니, 짐바브웨의 발전을 크고 길게 보면 무가베는 그저 일어날만한, 이빨을 오랫동안 닦지 않고 좋지 않은 것을 먹는 버릇을 가진 사람의 이빨이 썩는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일이었지 무슨 결정적인 일이나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예요. 히틀러가 일차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해서 부상당했을때 우연히 어떤 영국군인이 자비를 베풀어 죽이지 않았다는데요, 그때 히틀러가 죽었다고 그 다음에는 세상이 평화롭고 전쟁이 없었을까요? 어금니가 썩을 상황이 지속된다면, 오른쪽 어금니가 이미 빠져버린 상태에서 왼쪽 어금니가 썩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썩은 이빨 아프게 빼면서, 구강 관리하지 않고 나쁜 버릇을 가졌던 자신을 깨닫고 구강관리의 전기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테고요. 담배를 힘들게 끊어서 만암의 근원을 멀리했지만, 금연이 다이어트와 운동에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못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꼰대짓을 하는 것이 왜 바보짓인지 너무 길게 이야기 했나요? 왜 지나치게 오지랖 넓은 짓을 하면서 자신의 에너지와 삶을 낭비하는 것이 길고 크게 보면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리석은 짓인지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 했나요? 가진 것이 별로 없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어쩌면 월나라 서씨의 찡그린 얼굴이라도 따라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훨씬 더 이익이 아닐까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

혹시라도 이 글의 의미를 ‘무기력 무책임 무감각’ 이런쪽으로 해석했다면, 이글들을 읽어 보면 좋겠어요. 비행기 타봤지요? 이륙직후 승무원들이 비상착륙 교육할때 뭐라고 합니까?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확실하게 착용을 하고난 이후에 주변의 가족과 다른 승객을 도우라’고 하지요. 내 경험에 따르면,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단지 비상착륙뿐 아니라 일상 사회전반의 모든 일들이 바로 이러한 상식을 근거로 (이러한 상식을 인정하며)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같은 한계와 수준을 공유하는, 어떤 주어진 시간과 공간속에서 잠시 있다가 가는,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바꾼, 역사에 남을,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영웅이나 성인은 거의 없어요. 내 주변에는 확실히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 주변에도 거의 없을꺼예요. 그러니 그런것 될려고도 하지말고 찾으려고도 하지말고 애먼사람 등떠밀어 그렇게 억지로 만들려고도 하지 마세요.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확실하게 착용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주는 것’ 이것이 보살행이며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존 그리고 개인 행복 추구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옛날에 아내가 멋을 좀 부릴때면 ‘월나라 서씨 몸종’ 운운 하면서 야비하게 놀렸던 적이 있었는데요, 어쩌면 아내는, 내가 오늘에서야 깨닫는 이 진실을 이미 그 옛날부터 알고서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지도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