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네번째 이야기

집근처에 있다는 그 사찰에 가면, 어떨때는 주말을 이용해서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 중에서 ‘종람’ (아마도 팔리어) 이라고 하던가 ‘걸으면서 하는 명상’을 할때도 있어요. 한 십미터 정도의 거리나 혹은 사찰의 어떤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발끝의 센세이션도 느끼고 또 마음을 집중해서 명상을 한다고 해요. 직접 해 본적은 없어요. 하는 꼴이 좀 우습거든요. 무슨 좀비들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계속해요 🙂 한번은 그것 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한 방문객들이 약간 소란하게 했어요. 그랫더니 글쎄 그중 한넘이 ‘조용히 하라’고 좀 성을 내는 거예요. 이 녀석 지금 뭐하나 싶었어요.

일전에 내가 몇차례 언급한 티라다모 큰스님 기억하시지요? 이분이 태국에 아마 한 10년 가까이 계셨다고 해요. 그 ‘아잔차’라는 분의 사찰, 전세계에서 많은 서구인들이 수행하러 온다던 그곳에서요. 그런 사람들을 수백명 혹은 더 많이 보면서 발견한 것이 있대요. 작심하고 온 사람치고 (즉 해탈하겠다고 시작하는 사람치고) 오래 가는 사람 못 봤대요. 스님께서 보신 최고 (최악) 기록은 어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수행자인데요, 많이 알고 배운 사람인데 정말 작심하고 왔대요. 그런데 2주만에 때려치우고 돌아 갔는데요, 그 이유가 ‘개가 너무 시끄럽게 짖어대서’ 였대요 🙂 그리고 스님 본인처럼, 그저 한 몇주 한 몇달 ‘맛이나 좀 볼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신 분들이 결국은 오래 남아서 스님이 되신 경우가 훨씬 많대요. 나도 한국을 떠나서 살고 있는지가 오래 됬는데요, 이 말에 매우 동의 합니다. ‘원샷밖에 없다’ (한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혹은 그런 문화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고 또 생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말 장기전 무언가 가치있고 중요한 것을 진득히 노력해서 익히고 불려서 길고 크게 성취하는 데에는 전혀 유리하지 않다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원샷밖에’ 없게 된 이유가, 사실은 가난함이고 또 소수의 나쁜넘들이 너무 많이 쳐먹은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명상에 대해서 ‘반농담’처럼 하신 ‘좋은 힌트’들을 나는 직접 여러번 들었는데요, (실제로 자주 하시던) 사찰 주변 산길을 구슬땀을 흘리며 정비하며 (노동 명상), 쇼핑하면서 (쇼핑 명상), 부엌에서 식기 씻으며 (부엌 명상) 이런 말씀을 웃으면서 자주 하셨더랬어요. 태국 불교가 명상을 크게 중요시 하는데요 (붓다께서 중요시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스님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서 어떤분은 ‘집중 명상’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분은 ‘위빠사나 명상’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고, 또 티라다모 큰스님같은 분은 지나치게 정형화된 어떤 형태의 명상 (예를 들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다리가 마비될 때까지 버티며 죽기살기로 명상하거나, 혹은 시끄럽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내면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명상) 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기회가 될때마다 자기 마음을 딱 보면서 소위 ‘mindfulness’ 명상을 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좀 아껴둔 비밀인데요. 나는 앉아서 뭐 좀 폼잡고 명상하려고 하면 잠이 와요. 그래서 집중 명상은 잘 안하고요, 대신에 조용한 산길을 땀을 흘리면서 달리며, 여러가지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혹은 일어났던 일들을, 붓다의 가르침에 (내가 아는 만큼이나마) 대입시키면서 조용히 되세겨 보는 일종의 위빠사나 명상을 자주해요. 전에 달리면 두되가 핑핑 잘 작동된다고 했었지요? 약간 그런 느낌도 있어요. 착각인가 🙂 혹시 주변에 조용한 어떤 산책로나 운동할 장소가 있으면, 좀 빨리 걷거나 혹은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좀 뛰면서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걷거나 뛰면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집중명상도 할 수 있겠지요. 숨 쉬면서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싶어지는데요 (자꾸 집중이 흐트러지니까), 그것보다는 그냥 숨쉬는 것을 바라보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저 다시 좋게 마음을 불러 오는 정도로 하면 더 좋대요.

자, 오늘 저녁부터는 부엌에서 설거지 하면서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가? 내 팔자야…’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채우지 말고, 집중 명상 혹은 위빠사나 명상을 한번 시도해 보심이 어떨런지요? 그 나쁜(?) 가족들보다 먼저 해탈 하시지 싶은데요 🙂

명상 – 세번째 이야기

‘위빠사나’ 명상을 영어로 ‘insight meditation’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지요? 먼저 insight는 understanding 혹은 think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내가 직장에서 기술관련 이매일을 주고 받을때 understand나 think라는 말은 서로 흔히 사용하고 또 그 뜻은 우리가 아는 그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매일을 쓰면서 insight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기술이나 수학등의 세계에서는, 특히 나 정도의 수준에서는 insight가 나오기가 어렵다는 의미인가 🙂

지난번에, 붓다께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신 그 다섯분의 훌륭한 고수들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했던 말 중에서 이런 말이 있었어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도 일가견이 있다고 확신하는…’. 바로 이것이 어쩌면 insight와 관련이 있지 싶어요. Insight는 머리에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몸에서 우러 나오는 거라고 해요. 어떤 큰 원리나 깊은 이론이, 때로 말로 설명하거나 구체적으로 증명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오랜 경험과 쌓아온 지식을 통해서 저절로 우러 나와서 굳이 의식적으로 확신하려 들지 않아도 그냥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그런 것을 insight라고 한다고 해요.

언젠가 내가 10% 덴트의 법칙이라는 말을 하면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속되어온 기간의 최소한 10분의 1은 시도를 해봐야 어떻게 이빨이라도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을 했었어요. 어제 부부싸움 하고서 ‘위빠사나 명상’하는 예를 들었는데, 전에 말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는 ‘집중명상’과 마찬가지로, 몇 번 한다고 아무일도 생기지 않아요. 어쩌면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요 🙂 겨자씨가 아주 작다고 하지요. 그것을 한두개 정도 겨우 땅에 떨어트리는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좀 많이 떨어트리고 또 몇개라도 싹이 트면 자주 찾아가고 물도 주면서 또 오가는 길에 씨도 더 뿌리고 하며 시간이 좀 지나야 해요. 그러니 ‘이상한 기대’는 하지 말되 동시에 ‘괜한 낙심’도 하지 마세요. 세상에 가치 있고 좋은 것이 그저 되고 빨리 되는 것은 없어요.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지난번에 두뇌를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고 했었지요? 위빠사나도, 주변의 기운이 좋고 조용한 곳에서, 혹은 고요한 시간에 좋은 등산로나 산책로등을 찾아서 걸으면서 해도 좋지 싶어요. 일단 몸도 기분도 좀 좋아야 마음도 머리도 기분 좋게 씽씽 아니겠어요?

명상 – 두번째 이야기

지난번에 우리는 ‘마음을 가라 앉히는 명상’ 혹은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 보았어요. 이런 명상을 팔리말 (Pali language) 로는 Samatha 혹은 Samadhi 라고 하며, 영어로는calm meditation 혹은 concentration meditation 라고 말해요. 이 명상을 많이 하신 스님들의 말씀이, 밥맛도 좋아지고 잠도 잘오고 심신이 편하고 건강해진다고 해요. 많이 해봐요 🙂 하지만 이런 명상은 불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예요. 다른 종교에서도 하고 또 붓다가 살아 계시던 고대 인도지역에도 흔히 어떤 수행의 한 방편 (방법)으로 쓰였다고 해요.

이제 불교에서만 하는 명상에 대해서 말할 차례예요. 붓다께서 직접 가르치신 명상입니다. 이런 명상을 팔리어로는 Vipassana 라고 하며 영어로는 insight meditation이라고 말해요. ‘비파사나’ 보다는 ‘위빠사나’ 정도로 발음되는 것 같아요. 무었을 명상하는 것일까요? 이 명상의 대상은 무었일까요? 바로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붓다의) 지혜를 (wisdom) 증득하는 것이 되겠어요. 그 분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고 되세겨 보고 또 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또 수긍하면서 깨달음을 서서히 얻게 되는 과정이 이 명상의 목표라고 해요. 그러니 이 명상을 할려면 우선 붓다의 가르침을 좀 알아야 하겠지요. 예를 들면,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두카에 (Dukkha) 관한 붓다의 네가지 가르침도, 이 명상의 아주 좋은 대상이 되겠어요. 이런데 요긴한, 몇가지로 잘 정리 요약된 붓다의 (다른 종류의) 가르침들을 차차 전달해 드리겠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런 명상을 할 대상이 더 많아지겠지요.

혹시 궁금해 할까봐 이야기하는데, 붓다의 가르침을 보면 (원본 경전들에 따르면) 가르침 X는 1,2,3,4 가르침 Y는 첫째는 무었 둘째는 무었 셋재는 무었… 이렇게 되어 있는 경우가 참 많아요. 붓다께서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 주시는 훌륭한 선생님인 것이 이유겠지만, 후세의 제자 비구들께서 혹시나 붓다의 소중한 가르침이 한마디 한자라도 제대로 전달이 안되고 와전 될까봐 이렇게 딱 정리해서 우리가 어릴때 구구단 외우듯이 수십년을 달달달달 외워서 전달하고 또 전달했던 것이 또 다른 이유가 되겠어요 (세상에 언어는 너무 많지만 문자는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붓다께서 사용하셨던 그 팔리 언어도 문자가 없어서 이렇게 구전된 후대에 문자화 되었어요. 세종대왕님과 관련학자들께 경례!) 인간의 한계를 알았기에, 건방짐이나 가벼움없이 그저 최선을 다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가감없이 전달해 주고자 했었던 그 분들의 마음이 실려 있는 것이지요. 또 눈물이 나는군요. 좀 잘 살아 보고 싶어서, 좀 덜 괴롭게 좀 덜 시달리며 살아보고 싶어서, 행복을 찾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려고, 이렇게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인간적으로 애쓰고 난리치고 하다가, 이런 경전 문구들만 남겨 놓고 다 가셨잖아요. 애잔한 마음이 들어요. 어떤 훌륭한 연세 많은 불교학자도 말했어요. 붓다의 가르침을 알면 알아 갈수록, 애잔한 마음 짠한 마음이 자꾸 느껴진다고. 붓다를 향해서, 자신을 향해서 그리고 주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말이예요. 나도 좀 그런 기분이 드는군요.

셋길로 빠졌내요. 자 한가지만 예를 들고서 오늘은 마무리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해요. 아침에 배우자와 다투셨어요? 기분이 안 좋으시군요. 자 바로 이 상황을 붓다의 Dukkha 가르침에 대입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담배 한대? 웃기는 실화로, 동남아 절에 가면 스님들이 식사후에, 어리거나 늙었거나 한 자리에 모여 앉아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요. 외국인들이 보면 놀라고 기급할 일인데요, 붓다가 살았던 시절에는 담배가 없어서 그에 대한 가르침이 없어요. 물론 선진국에서 온 교육받은 스님들이야 그 폐해를 알고 또 한국분이라면 사회적 예절을 아니 (고승의 면전에서) 담배를 빡빡 피우지는 않겠지요. 어쨋던 필요하면 한대 피세요 🙂 (술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생각을 해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바로 그 기능이 정상 작동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생각을 해보자는 거지요.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나? 그렇다.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지? 그렇다. 지난번 다투고 1달이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 됬더라? 다시 손잡고 뽀뽀도하고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좋더나? 그렇더라. 그렇다면 그 좋은 것을 당장 하지? 그 1달을 혹시 1주일 아니면 이틀로 줄일 가능성이 있겠나? 있지만 상대방이 태도를 먼저 바꿔야 한다. 혹시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겠지. 그렇다면 내가 그래도 나이도 많고 또 여러가지로 강자인데 (착각인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더 쿨하지 않을까… 이런식으로 말이예요.

투카가 있고 (배우자와 다투고 괴로운 상태) 두카가 있게 된 원인이 있고 (표면적으로는 다툼 언쟁, 기저에 깔린 보다 큰 이유, 어떤 것에 반응하는 내 자신의 카르마, 버턴을 누르는 어떤 언행을 자신도 모르게 하는 상대방등등) 두카가 없어질 수가 있고 (이해, 화해, 시간이 지남, 망각) 그리고 그렇게 두카를 없게 할 길이 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좀 더 이해, 술이 상황을 증폭 악화 시킨다면 술을 이런 상황에서 피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던지 아니면 아예 끊던가, 자신의 카르마를 들여다 보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등등. 참 다음에 또 먼저 싸우기 시작하면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 주겠다고 각서를 써주는 것은 소용 없어요.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로 안 받아 줌. 헤헤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됬을까 🙂 ) 이렇게 차근 차근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여태껏 배운 (비록 쥐꼬리 만큼이라고 해도) 붓다의 가르침에 ‘실제 상황’을 대입을 시켜 보면서 좀 생각을 조용히 해보는 것. 바로 이것이 일종의 ‘위빠사나’ 명상입니다. 할 수 있겠지요? 보니까 자주 싸우는것 같더만 기회 많겠네 🙂 오늘은 이만.

명상 – 현대판 만병통치약?

일전에, 그 옛날 박카스병에 넣어 팔던 ‘가짜 만병통치약’ 이야기를 했었지? 설탕물에 아스피린을 좀 갈아 넣었던지, 아니면 시골에서 양귀비를 몰래 키우던 넘들이었다면, 그것 이파리라도 삶은 물을 좀 섞었던지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내 생각에는, 정말 센 넘들 무리에 속해서 주류들과 함께 잘 나가는 사람들은, 밖에서 들릴만한 잡음도 만들지 않고 또 무슨 재미있거나 신기한 이야기 거리도 별로 만들지 않지 싶어. 문제아들, 주류에서 튕겨 나왔거나 쫒겨 나온 넘들이 꼭 소란하고 시끄러운 것 같더만. 나도 그런가? 내가 보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때로 지나치게 돈돈돈 하면서 돌아가는 것 같고 (물론 돈이 많으니 전에 말했듯이 훌륭한 일도 하고 그렇겠지만) 어떤 미국사람들은 머리가 좀 ‘돈’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 미국사람들 중에서 태국등 아시아 나라에서 수행하다가 중노릇이 너무 힘이 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그만 두고서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던 사람들도 많았어. 그리고 그 중에서 원래 머리가 좀 ‘돈’사람들도 있었겠지. 가서 뭐 했을까? 붓다장사 명상장사 🙂

내가 본 이런 사람들은 일단 공통적으로 박사학위를 사요. 왜 산다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통신과정 혹은 인터넷과정 뭐 이런식으로 돈을 갖다 주고 받는 그런 박사학위라는 냄새가 풀풀 나거든. 태국에서 아잔차 스님 아래서 수행하던 1세대 서구인 승려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에 명상센터를 차리고 (미국과 서구에) 명상을 알린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 이 사람도 박사학위가 있는데, 무슨 임상심리학 박사인가 그래. 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미국대학원 185개 중에서 ‘173번째로 좋다’고 알려진 대학원에서 취득한 것으로 나와 있어. 또 다른 유명한 명상 장사꾼이 임상심리학 (인기 좋네) 박사학위를 취득한 대학원은 그런 통계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 곳이야.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박사학위를 사려고 할까? 미국에서 발행되는 자기계발 서적들 표지 봤나? 그런책들 대부분에는 저자 ‘누구누구 박사’라고 크게 박혀 있어. 그래야 장사가 되고 돈을 벌수가 있으니까. 이런 거룩한 박사님들이 하시는 명상 과정들도 또 매우 비싸. 인터넷으로 한번 등록 안내를 봐. 내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대동강 물팔아 먹은 봉이김선달’이 따로 없지 안그래? 무슨 재료를 어떻게 투자해서 무었을 만들어 팔았고 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냈는데?

일전에 이곳에서도 이런 사람이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무슨 비영리 단체인 것처럼 가장을 해서 이곳에서 제일 큰 인터넷 일간지에 버젓히 자기 사업 선전을 했던 것을 봤어. 나도 처음에는 좋은 느낌으로 읽어 보고, 좀 더 알아 볼려고 그 기사에 제공된 링크를 따라가 보았는데, 허… 붓다 팔아 (명상 비데오를 온라인으로 팔았던 것으로 기억해) 돈벌이 하는 곳이더라니까. 내가 마음에 상처를 좀 받았어. 그런데 이 사람 뒷조사를 좀 해 봤더니, 글쎄 다행히도 그 ‘돈’나라에서 이곳에 와서 사는 사람이었던 거라. 그 버릇 어디 가겠어? 내가 정말 드물게 댓글을 하나 남겼어. ‘당신 말대로 당신 자신도 그렇게 명상을 좀 해 봐라. 이런 것 팔아서 돈벌이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그리고 당신이 파는 것들 중에서 당신 자신이 발견했거나 혹은 만들었던 것이 무었이 있는지’. 좀 야비했지만 내가 상당히 기분이 상했었어. 붓다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진실하게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좀 들어 보고 알아 볼 기회를 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저절로 들게 되지만, 이것 팔아서 돈을 좀 벌어 봐야겠다는 생각은 ‘머리가 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게 돼’. 이런 종자들을 보면, 흡사 딸자식 팔아 술 받아 마시는 애비 꼴을 보는 그런 느낌이 들어.

그러니 혹시 그대가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는 여정에서,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존경하게 되거나 혹은 따르게 될때,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확실히 알아 봐야 하는 것은, 그들이 ‘돈을 노리는’ 넘들인가 아닌가야 (‘권위’처럼 무형의 것을 노리는 넘들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돈으로 환산 귀결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고, 어쩌면 더 나쁜 넘일 가능성이 커). 한계가 많은 우리 인간이, 사심없이 성심껏 최선을 다해도 무었 하나 제대로 이루기가 참 어려운데, 하물며 제것도 아닌 것을 팔아 돈벌이 할 궁리를 하는 넘들로부터 도대체 무슨 가치 있는 것이 나올 수가 있겠나? 선생님 이것 잘 기억하시길 바래요 🙂

이렇게 명상 팔아서 돈벌이 하는 넘들이 남긴 공적이라면, 명상을 세상에 많이 알린 것이겠지. 그리고 부정적인 면이라면, 명상이 흡사 무슨 대단한 이론과 습득의 과정이 필요하고, 또 자기들이 시키는데로 하면 어떤 엄청난 효과나 이익을 보게 되는, 현대판 ‘박카스병에 넣은 만병통치약’처럼 포장을 했다는 것이야.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장사가 되겠어? 맨 위에서 내가 그 만병통치약 성분이 뭐랬더라?

이제 명상의 진실을 좀 밝혔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상이 무었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리고 왜 하면 좋은지, ‘자타가 공인하는 명상 전문가들과 더불어 반세기 가까이 명상을 해 오신 분들이, 십원 한장 달라는 말씀없이 가르쳐 주신데로’ 내가 전해 볼께. 먼저 웃기는 이야기 하나. 법륜스님 알지? 때때로 좀 심하다 싶기도 하고 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현존하는 한국의 승려들중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분이 아닌가 싶어. 그대도 들어보았을 ‘즉문즉설’ 시간에, 어떤 사람이 약간 멋있게 질문을 했어 ‘명상’에 대해서. 아마 좀 쿨한 대답을 기대했었겠지. 스님 왈 ‘명상하면 무슨 일이 생겨 아무일도 안 생겨.’ 우하하하 내가 이래서 스님을 존경한다니까 🙂 낙심했나? 그대를 위해서 조금 더 친절한 버젼으로 말해볼께. ‘명상을 하면 당장은 아무일도 안 생겨요. 그런데 이상한 욕심내지 않고 오래 그리고 자주하면, 더 크고 훌륭한 수행을 위한 기본을 (운동으로 치자면 ‘몸’을) 만들게 되요’ 이것 중요하지 않을까요?

붓다의 가르침을 좀 달리 표현하자면 ‘생각하며 살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싶어. 다시말하면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살다가 죽지는 말자’는 말이야. 내가 무슨 거창한 이야기 하는 것 아니니 긴장 하지 말고. 그런데 뭐가 되었던 간에 ‘생각하며 살려면’ 좀 의식을 가지고 해야 되. 예를 들면, 우리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일때 그냥 자동적으로 하지 않나? 그것을 자기가 라면 끓이는 것을 딱 지켜 보면서 끓여 보라는 거야. 뭘 보라고?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고, 물을 담고 가스를 켜고 파를 썰고, 다 끓이고 나면 조심해서 불위에서 내리고 가스를 잠그고 탁자로 들고 오는 이 과정을 ‘자신이 딱 지켜보면서’ 해보라는 거지. 왜? 좋잖아 안전하고 또 맛잇게 잘 끓이고 🙂 아니고, 이렇게 하면 ‘라면을 먹고 나서 꽃비씨를 만나러 가는데 오늘은 어디가서 무었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라면을 끓이지 않고, 오직 라면 끓이는데에만 집중하게 되겠지. 이것을 훈련하자는 거야. 왜? 당신 골프 정말 잘 치고 싶지? 내가 거리 늘이고 점수 줄이는 확실한 비법을 알려주께. 양심적인 도사급들이 이미 하신 말씀을 내가 그냥 옮기는 것이니 너무 고마뭐 하지 말고. 팔굽혀펴기를 하루에 백개 그리고 턱걸이를 오십개씩 매일,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한두해 하면 되십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 방금 위에서 말한 집중 훈련, 즉 ‘마음을 가라 앉히는 명상’이 바로 수행에 있어서, 팔굽혀펴기 그리고 턱걸이랍니다.

내가 좋아 한다던 Luang Por Tiradhammo 스님께서 최근에 어디선가 설법을 대중들에게 하셨어. 그리고선 질문과 대답 시간이 되었는데, 어떤 훌륭한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하나 했어. ‘저 같은 보통 사람이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고 또 시간도 없는 중생이) 매일 무었을 좀 하면 (수행으로) 좋겠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셨어 한 마디로. ‘매일 10분만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숨쉬는 모습을 지켜보는 명상을 하세요’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한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

오늘은 요까지만. 명상 이야기 좀 더 있는데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