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마차

일전에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일부 보았었다. 그날 내용은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아내를, 남편이 잘 보살피며 그 아내가 오랬동안 원해 온 외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당나귀를 두마리 사서 마차 끄는 훈련을 무려 2년을 해서 결국은 그 꿈을 이룬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된 마비라서 자동차를 극도로 두려워한다던가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 사람들의 외모와 언행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집을 보니, 단지 가난한 시골집이어서 뿐만이 아니라, 잡동사니를 온 천지에 쌓아 놓은 모습, 무질서 그리고 이런 저런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꼴을 보면서, 일단은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부인은 정말 슈렉을 닮았기에 일단 그 상태를 안타까워하는 마음보다는 우스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미안하게도.

방아깨비처럼 바싹 마른 남편이 슈렉처럼 크고 뚱뚱한 아내를 극진히 보살핀다. 그리고 참으로 위해주며 조금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힘들어 하지 않는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보건데 대소변을 모두 받아주며 사는 것 같다. 참으로 대단한 부부애 인간애가 아닐 수가 없다. 내가 아내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나도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또 아내를 사랑하지만, 내가 이 사람과 동일하게 과연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좀 황당하게 보였지만 이 사람은 결국 그 당나귀들을 훈련시켜, 아내가 그토록 바랬던 그 바닷가에 함께 당나귀 마차를 타고 가더라. 리포터의 눈에 살짝 맺히는 눈물을 보면서 나도 눈물이 주루룩 떨어졌다. 아! 이사람 정말 해탈한 사람인가보다. 세상에 무었이 그로 하여금 이런 깊이의 끝없는 사랑과 헌신이 가능케 했을까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그 리포터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록 이런 엄청난 사랑과 헌신에 감동은 하지만, 그 슈렉부인의 자리를, 그리고 그녀를 24시간 간병해야 하는 그 남편의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싶다.

우리 부부를 생각해 보자면, 나 보다 아내가 그렇게 배우자에게 해 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내가 어쩌면 몇권 더 읽었고 몇자 더 안다고, 아내보다 도가 더 튼 사람이라고 결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흔하고 또 누구도 자신이 예외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고고한 인생철학도 탁월한 수행도, 따뜻한 밥 한그릇먹고 괴롭지 않게 배설하고서 좀 편히 하루를 지내는 그런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 또한 우리삶의 적나라한 일면인 것이며, 이것들만 생각하며 살 수는 없겟지만, 동시에 이것들을 우습게 여기고 도외시하면서 건방 떨며 살다가는 장차 크게 부메랑을 얻어 맞지 싶다. 그리고 그때는 결코 아무런 처방도 대책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부족하고 짧으니,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기를 두려워하고 또 그 남편처럼 할 자신이 없는 내 자신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할 뿐이지만, 장차 세월이 흐르며 나도 조금씩 발전하노라면, 두려움도 줄고 또 싫어함과 부끄러움도 줄어들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구두를 닦는다.

아내의 구두를 닦는다. 매일 밤 닦는다.

내일 출근 하면서 신을 신발. 돈도 벌어와서 좋지만, 또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때 신고 있을 그 신발을. 광내는 기준은 그 옛날 군대서 배운대로, 예쁜 여자를 면회소로 안내하면서 군화를 슬쩍 치마 밑에 넣었을때 그것 색깔 구분이 가능해야…

지금 누워 있다는 그자는 사업의 세계에서는 무하마드알리나 황영조였다. 링위에서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존경 드리고 또 드려도 부족할 분이었다. 그리고 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구두를 사다가 배우자에게 선물할 능력도 있었고. 하지만 이자는 배우자의 구두를 닦으며 느끼는 그런 행복을 아마 느껴 본적도 또 결코 느껴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행복이라고 했다. 구두를 액면 그대로 닦으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자의 지금 상태를 비웃는 것도 아니다.

돈으로 모든 것들을 살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오직 스스로만 할 수 있는, 자기자신을 갈고 닦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사노라면,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점점 잃게 되고 죽기 훨씬 이전에 이미 0점을 기록하게 된다. 보다시피.

그자는 그 천문학적인 돈을 선용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들을 불러들여 돈버는 틈틈히 참된 행복의 비밀을 알아내기 보다는, 여러명의 창녀들을 돈으로 사고 불러들여 배우자 몰래 노욕을 채우는 삶을 선택 했었다.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살면, 어떤 돈으로 무슨 짓을 해도 그런 사랑과 존경을 경험할 수가 없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 돈으로 속이고 꾸미고 겁박할 수는 있어도 딱 한사람에게는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아내의 구두를 닦아 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이러한 가치들과는 정반대 쪽에 설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것도 무지 강경한 태도로.

이자보다도 돈이 많은 사람이 세상에 극히 드물지만 있기는 있다. 그들 중 두세명이 말했다. ‘행복과 성공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금슬이라고.’

오늘부터 구두 한번 닦아 보시지. 구두코로 빤스 색깔 구별 못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