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지는데

마른잎 굴러 바람에 흩날릴때
생각나는 그사람 오늘도 기다리네

왜 이다지 그리워 하면서
왜 이렇게 잊어야 하나요

낙엽이지면 다시 온다던 당신
어이해서 못오나 낙엽은 지는데.

지금도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왜 이렇게 잊어야 하나요

낙엽이지면 다시 온다던 당신
어이해서 못오나 낙엽은 지는데.

백호빈

라팔로마

고교시절, 일주일에 한번 있었던 음악시간을 늘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유명 음대에서 플룻을 전공하셨다던 그 멋쟁이 중년신사 음악선생님은 대입이니 시험이니 찌든 제자들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이나마 노래와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려고 노력하셨던 좋은 선생님이셨다.

시험은 실기로 🙂 한번은 우리반 친구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일어나서 ‘라팔로마’ 노래를 불렀다. 웃고 떠들며 노래부르고 또 서로를 놀리던 그 실기시험 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한 뚱뚱이 급우가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 가사 대신에 ‘배를 사고 아바나를…’ 하고 불렀다고 놀려댔었는데,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때면 그때 그 기억이 나고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아바나를 떠나서 지금은 어디서 무었을 하며 살고 있을까… 들어보고 싶지? 한번 싫컷 들어보자.

맨 처음은, 프랑스 가수 미레이유 마띠유가 독일어로 부른다. 그녀는 1,200여 곡의 노래를 11개의 언어로 불러 1억 5천만장의 앨범을 전세계에 판 가수다.

두번째는, 역시 미레이유 마띠유가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부른다.

세번째는, 우리의 조수미씨가 오리지날 스페인어로 부른다. 노래가 끝나도 박수가 그치지를 않는다.

네번째는, 그 인간 말종이 부르는데, 가수로서는 나도 박수를 치고 존경을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 전통가요인 Fado 가수였다 (작고한지 오래되었다). 그 나라에서는 아마도 조수미씨와 이선희씨를 합친 정도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옛날 병석에 누운 형님을 위해서 숙부께서 전축을 선물하셨을때 그녀의 음반도 함께 왔었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된 숙부께서는 사업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셨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과는 그리 잘 지내지 못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건데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음반이 우연히 선물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촌께서는 심성이 부드럽고 감수성을 지닌 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표현이 서툴렀거나 표현을 두려워 하셨거나 혹은 어떤 사소한 습관들이 그 좋은 면들을 가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삼촌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베풀어 주신 은혜와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FOI DEUS

Não sei, não sabe ninguém
Porque canto fado, neste tom magoado
De dor e de pranto
E neste momento, todo sofrimento
Eu sinto que a alma cá dentro se acalma
Nos versos que canto

Foi Deus, que deu luz aos olhos
Perfumou as rosas, deu ouro ao sol e prata ao luar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E pôs as estrelas no céu
E fez o espaço sem fim
Deu luto as andorinhas
Ai deu-me esta voz a mim

Se canto, não sei porque canto
Misto de ternura, saudade, ventura e talvez de amor
Mas sei que cantando
Sinto o mesmo quando, se tem um desgosto
E o pranto no rosto nos deixa melhor

Foi Deus, que deu voz ao vento
Luz ao firmamento
E deu o azul nas ondas do mar
Ai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Fez o poeta o rouxinol
Pôs no campo o alecr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그것은 신이었어요.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라요. 왜 내가 고통과 슬픔에 상처받은 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지 말이예요. 하지만 그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나는 내 노래의 구절들이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느낌을 받아요.

신은, 바람에게는 소리를 하늘에게는 빛을 그리고 바다에게는 파도를 주었고,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신은 새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로즈마리를 들판에 피웠으며, 봄에게는 꽃을 주었지요. 오! 그리고 신은 이 목소리를 내게 주었답니다.

내가 만약 노래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무었을 부를지 모를꺼예요. 갈망 애정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섞인 그 느낌을, 나는 노래를 부를때면 느낀다는 것을 알아요. 누군가 우리 면전에서 찢어진 가슴으로 슬픔을 표현할때 우리는 위로 받을꺼예요.

신은 우리에게 광명을 주었고, 태양에는 황금빛 찬란함을 그리고 달에게는 은빛 아름다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신은,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짝궁 최군

‘분홍 립스틱’ 노래를 들으면 학창시절 짝궁 최군 생각이 난다.

엄청 두꺼운 영한 사전, 앞뒤로 수십페이지씩 찢어져 달아난 손때 묻은 그책을 베게 삼아 잠시 눈을 붙이곤 하던 최군. 흘린 침으로 사전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 열심히 공부했던데로 지금은 누구나 알만한 큰병원의 장이 되었다.

두 친구가 참 달랐다. 시험결과를 확인할때 정반대 방향에서 찾기 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똑같이 극히 짧았다. 뚱뚱이와 훌쭉이가 살아온 삶도 이런 차이들 만큼이나 매우 달랐을 것이다.

만나면 특별한 일도 특별한 말도 없지만 그래도 먼길을, 어떨때는 차가 막혀 종일 운전을 해서 나를 찾아 주는 고마운 최군. 길고 짧은 것을 늘 비교하고 따지면서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인 나에게, 길고 짧은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친구다.

현격한 체급의 차이로, 학창시절 당구도 (무슨 체급?) 맨날 깨지고 테니스도 상대가 안되었는데, 골프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탁구와 마라톤쪽으로 종목 전환을 제안을 해봐야겠다 🙂

인연

일전에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벗꽃나무를 발견했어요. 이제 봄도 다가오고 하니 장차 벗꽃이 피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서 가보았어요.

키가 이미터 좀 넘을것 같고 나무 몸체도 별로 굵지 않아서 그리 오래전에 심은 나무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더니 이곳에서 흔한 플라그가 나무 밑둥지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일본수상 하야토이케다 기념식수 1963년’ 이렇게 씌어 있네요.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아직 살아 있을까? 잠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을 방문하여 바로 이 나무를 심은 그 다음해 쯤에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났으니 이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원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과 좀 떠들썩하게 심었을지도 모를 이 나무를 기억하는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벗꽃나무는,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일본 수상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내가, 이렇게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박인희님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런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남긴 카르마는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쉽게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같은 자리에 서서, 앞서 왔다가 먼저 가버린 이 사람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내가 왔던 흔적 그리고 장차 내가 가고나서 남을 흔적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번에 이곳을 지날때면 봄 기운이 더욱 완연하여 아마 벗꽃이 피겠지요. 그때는 다만 그 순간을 즐기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