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며칠전 신문에 도종환 시인에 (지금은 정치가) 대한 기사가 난 것을 보고서 책을 한 두권 사서 읽게 되었어요.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 (혹은 시집)으로 유명한 분이라는 것 알고 있지요? 젊은 시절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집이라고 하는데요, 엄청나게 팔렸다가 시인이 5년 후인가 재혼을 하면서, 배신감에 성난 독자들이 내다 팔아 중고서점에 그 시집이 흘러 넘쳤다는 일화가 있다지요 🙂

그분의 최근 수필집에 어떤 친구 분이 대학을 중퇴한 이야기가 있네요. 그저께 읽었을 때도 찡했는데 방금 읽으면서 나도 비슷한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슬펐습니다. 그 친구분이 대학을 때려치운 이유는,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데서 시골 사람들이 보따리에 싸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받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또 아들자식 대학공부를 시키던 엄마가 (아마 어떤 시비로) 버스 차장에게 발로 차여 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이 아들이 우연히 목격하고선 ‘이렇게 번 돈으로 내가 과연 대학을 다닐 수가 있는가’ 하는 아픈 마음에 대학을 중퇴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어렸을때 엄마는 작은 빵집을 혼자서 운영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였습니다. 내가 국민학교 (초등학교) 신입생이 되어 학교에서 백점 받은 시험지를 가지고 오면 (그땐 모두 다 백점 받았었어요) 엄마는 빵집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중요한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서) 내 손을 잡고 큰길 신호등을 건너 시장에 같이 가서 내가 좋아하는 천도복숭아 한개를 사서 상으로 주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에는 천도복숭아 같은 과일은 아마 꽤 비싸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개도 팔았었다니까요. 나는 지금도 천도복숭아를 매우 좋아하는데요, 연전에 어머니가 상태가 좋을때 이 이야기를 꺼내보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대답을 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는 학창시절 엄마의 이런 큰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열등생이었는데요 그 당시에도 안팎으로 괴로웠지만, 지금 부모가 된 입장에서도 돌이켜보면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또 괴로웠을까 이해가 됩니다. 이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어머니가 바라셨던 좋은 대학교도 못가고 또 좋은 직업도 못얻었지만, 그때 어머니가 궁극적으로 원하셧던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비록 기대하셨던 길은 아니라도 나는 비교적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또 혹시라도 마음에 남아 있을지 모를 한을 풀기를 바래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어 버렸어요.

세월은 빨간 자동차의 페인트 색깔만 퇴색시키는 것이 아닌것 같네요. 흘러간 희노애락에 대한 기억도 퇴색시키고 또 때로 좋은쪽으로 중화도 좀 시켜서 덜 아프고 덜 한스러운 쪽으로 바꾸어 놓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 어려운 시절, 힘들고 고달픈 삶에서 자식의 성공을 그토록 기원하던 어머니는 물론 내게 천도복숭아만을 사주고 그치지는 않으셨겠지요 🙂 오랜세월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로 남았던 그 옛날의 기억들도 세월이 흐르고 또 나도 부모가 되며 변하다보니 이제는 퇴색되고 좋은쪽으로 승화되어 잔잔한 호수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떤 입장에 자신이 직접 처해보지 않고서는 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삶에는 무척 많은 것 같아요. 이것을 그리 많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나마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고 또 머리로나마 일부 받아들이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요.

인간이 언어를 빌어 표현하는 그런 고순도의 (?) 무었들은 우리 현실의 삶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들면서 차차 더 깨닫게 됩니다. ‘오직 사랑하는 사이’에도 증오와 다툼의 요소들이 더불어 존재하며, ‘행복’의 뒷면에는 불행이 딱 붙어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 사랑이 좀 잘못되었나 혹은 그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었나 의심했었지만 지금은 이러한 혼재된 (혼합된) 그래서 성에 차지 않고 마치 100%가 아닌것 처럼 보이는 그런 진실을 받아들이는 쪽이 되네요.

엄마도 사람이었어요. 지금 나와 똑같이 삶의 희노애락에 시달리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늙지도 않고 죽을때까지도 아름다울 것만 같은 환상을 만들고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그 산소 같다는 여자나, 도덕 교과서에 나오던 신사임당 같은 완벽한 어머니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도종환 시인 친구의 어머니도 (차장에게 발로 채이면서까지 자식 대학공부를 시켰다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판 나쁜 상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전체로 보면 우리가 인간의 언어를 빌어 정의하는 그런 순도 100%의 이미지들은 (상들은)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기억들을 더듬어 어떤 한가지 색깔뿐인 삶도 실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순간 아들은 엄마가 사랑으로 손에 쥐어주었던 그 천도복숭아를 기억합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엄마의 손을 잡고선 맛있게 그 복숭아를 먹습니다. 빰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엄마 고마워… 그대의 어머니께도 내가 대신 말씀드릴께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모든 것들은 왔다가 갑니다.

봄 식물원 그리고 투표

이런 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좋아 보이나? 그래도 내일이면, 바쁜 와중에 먹는듯 마는듯 점심을 먹었을지도 모를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밖으로 나오지 않나. 시작은 다를지 몰라도 끝은… 🙂

봄을 맞은 식물원에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잎들이 가득하다. 그것들을 만끽하며 호사를 한다. 산림욕이니 뭐니 해쌋더만,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리 그리고 내음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심신에 좀 베어들기도 하겠지? 기어 나오자 말자 피톤치드니 치유니 떠들어대며 모조리 뱉어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식물원 옆에 작은 증기기차 박물관이 있는데 마침 한구석에 국민 투표를 미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준비를 해 두었더라. 국회의원 뽑아 다수당이 집권하여 내각을 구성하는 것에는 그대가 흥미 없을 테지만, 이번 투표에 2가지 국민 여론조사가 덧붙어 있더라. 여론 조사 결과로 입법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어쩌면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첫째는 ‘안락사를 동의하는가’ 하는 질문이었고, 둘째는 ‘대마초를 합법화하는데 동의하는가’하는 질문이었다.

언젠가 블로그에 쓴데로 어떤 나라들에서는 00주 이하에 태어나는 미숙아를 살려 주지 않는다. 과학이 증명하기를 (대다수는) 살아도 본인과 가족에게 너무나 큰 고통과 짐을 오랜 세월 지워준다고, 태어나면 한번 엄마품에 안겨 주고선 조용히 데리고 나간단다. 물론 예외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다른 어떤 나라들에서는 00주 밖에 되지 않은 미숙아를 어떻게 살려 냈다고 무슨 의술의 기적을 발휘한 영웅담처럼 알려지곤 하던데, 내 주관적인 생각에는 선무당이 사람 여럿 잡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측면이 더 많지 않은가 싶다. 인간들이 의식적이고 또 조직적으로 하는 모든 행동에는 그 인간과 집단의 의지와 철학이 담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와 철학의 크기와 깊이에 그 인간과 집단의 수준이 드러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나라를 포함한 소위 선진국들에서는 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더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또 그에 따른 법적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은 (당신의) 신이 내려주신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서 내 생명도 네 생명도 결코 인간의 의지가 개입 되어서는 안된다고? 글쎄. 그렇게 떠들어 대다가 나중에 당신 자신이나 가족들이 당신의 부매랑에 맞아 엄청 괴롭게 갈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무료의료보험은 (외국에서 여행 온 사람들까지 치료해 준데요) 많은 나라들에 부러움의 대상이라더라. 특히 노인들을 위한 의료와 복지는 세계에서 손꼽힌다고. 그런데 훌륭한 의료보험이나 평등한 의료시스템은 어떤 것일까? 이나라 사람들 다수가 생각하는 것은 이렇다. 암처럼 시간을 다투거나 사고가 아닌 경우, 더 젊고 더 일을 할 시간이 많이 남은 사람들에게 수술기회나 의료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되는 것이 당연하다. 먼저 등록했다고 먼저 수술해 주는 것이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니까…

대마초는? 이나라 국민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에 차지 하는 비중이 꽤 크단다 🙂 대량으로 사고 팔며 장사를 하거나 다른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개인적인 사용은 경찰도 보통 눈감아 주는 편이라는데, 이것을 합법화하여 부작용도 줄이고 또 실제로 의료용이나 어떤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길을 더 열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많은 선진국에서도 아직 전면적으로 합법화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 옛날에 시골 할배 할매들이 밭 귀퉁이에 양귀비를 심어 두고서 ‘아이고 팔다리 쑤씨네 하나 뽑아서 삶아 먹을까’ 했다더만. 나도 언젠가 나이들어, 항공사진 판독후에 우리집 문을 두드리는 경찰에게 ‘아이고 늙은 내가 뭘 아나. 그저 삼배 옷이나 하나 만들어서 여름에 시원하게 입으려고 대마 몇 그루 심었어’ 오리발 안 내밀어도 되지 싶다 🙂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 전통가요인 Fado 가수였다 (작고한지 오래되었다). 그 나라에서는 아마도 조수미씨와 이선희씨를 합친 정도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옛날 병석에 누운 형님을 위해서 숙부께서 전축을 선물하셨을때 그녀의 음반도 함께 왔었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된 숙부께서는 사업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셨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과는 그리 잘 지내지 못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건데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음반이 우연히 선물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촌께서는 심성이 부드럽고 감수성을 지닌 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표현이 서툴렀거나 표현을 두려워 하셨거나 혹은 어떤 사소한 습관들이 그 좋은 면들을 가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삼촌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베풀어 주신 은혜와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FOI DEUS

Não sei, não sabe ninguém
Porque canto fado, neste tom magoado
De dor e de pranto
E neste momento, todo sofrimento
Eu sinto que a alma cá dentro se acalma
Nos versos que canto

Foi Deus, que deu luz aos olhos
Perfumou as rosas, deu ouro ao sol e prata ao luar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E pôs as estrelas no céu
E fez o espaço sem fim
Deu luto as andorinhas
Ai deu-me esta voz a mim

Se canto, não sei porque canto
Misto de ternura, saudade, ventura e talvez de amor
Mas sei que cantando
Sinto o mesmo quando, se tem um desgosto
E o pranto no rosto nos deixa melhor

Foi Deus, que deu voz ao vento
Luz ao firmamento
E deu o azul nas ondas do mar
Ai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Fez o poeta o rouxinol
Pôs no campo o alecr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그것은 신이었어요.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라요. 왜 내가 고통과 슬픔에 상처받은 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지 말이예요. 하지만 그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나는 내 노래의 구절들이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느낌을 받아요.

신은, 바람에게는 소리를 하늘에게는 빛을 그리고 바다에게는 파도를 주었고,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신은 새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로즈마리를 들판에 피웠으며, 봄에게는 꽃을 주었지요. 오! 그리고 신은 이 목소리를 내게 주었답니다.

내가 만약 노래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무었을 부를지 모를꺼예요. 갈망 애정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섞인 그 느낌을, 나는 노래를 부를때면 느낀다는 것을 알아요. 누군가 우리 면전에서 찢어진 가슴으로 슬픔을 표현할때 우리는 위로 받을꺼예요.

신은 우리에게 광명을 주었고, 태양에는 황금빛 찬란함을 그리고 달에게는 은빛 아름다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신은,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인연

일전에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벗꽃나무를 발견했어요. 이제 봄도 다가오고 하니 장차 벗꽃이 피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서 가보았어요.

키가 이미터 좀 넘을것 같고 나무 몸체도 별로 굵지 않아서 그리 오래전에 심은 나무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더니 이곳에서 흔한 플라그가 나무 밑둥지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일본수상 하야토이케다 기념식수 1963년’ 이렇게 씌어 있네요.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아직 살아 있을까? 잠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을 방문하여 바로 이 나무를 심은 그 다음해 쯤에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났으니 이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원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과 좀 떠들썩하게 심었을지도 모를 이 나무를 기억하는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벗꽃나무는,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일본 수상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내가, 이렇게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박인희님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런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남긴 카르마는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쉽게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같은 자리에 서서, 앞서 왔다가 먼저 가버린 이 사람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내가 왔던 흔적 그리고 장차 내가 가고나서 남을 흔적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번에 이곳을 지날때면 봄 기운이 더욱 완연하여 아마 벗꽃이 피겠지요. 그때는 다만 그 순간을 즐기기를 희망합니다.

목련

라벤다를 보고 그 향기를 맡으면, 그 꽃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난다. 골프장에서 날려 먹은 공을 찾아 헤매다가,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보면, 함께 줏어다가 묵 만들던 어머니와의 기억이 늘 새롭다. 목련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오가다 목련을 보면 그 꽃 좋아하는 아내 생각이 난다. 아직 현재형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내가 늘 찾는 식물원에는 사람들이 기증한 벤치들이 많다. 작은 기념동판을 (플라그) 의자에 박아 놓은 경우가 많은데, 자주 읽어 보고 또 몇 개의 의자는 이제 매우 낯익게 되어 인사를 나눈다. 짐작하다시피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것들이다. 내가 자주 찾는 식물원의 어떤 장소에는 2개의 벤치가 있는데, 하나는 채 스물이 되기 전에 죽은 어떤 젊은이를 그 가족들이 기리는 의자다. 이미 죽은지 40년이 넘었으니, 플라그에 세겨진 그 가족들 (그때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그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 이 젊은이의 뒤를 따라간 사람도 있지 싶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다. 또 하나는 비교적 최근에 (한 1-2년 전에) 새로 설치된 벤치인데 ‘이 비밀의 정원을 (이 장소를) 사랑했던 부부’라며 나란히 이름이 적혀 있다. 앉을때마다,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혹시 살아서 우리가 이곳에서 마추쳤던 적은 없었을까 생각하며, 벤치를 고마워하고 또 명복을 빌어드린다.

지금은 플라그를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읽을 플라그가 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이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오늘 점심때는, 철 이르게 피어난 목련 나무를 지나며 사진을 두장 찍어 왔다. 하나는 물론 목련 나무지만 또 하나는 그대에게 아마 흥미 있지 싶다.

‘이 목련은 1935년 8월 28일 심어졌고 1950년 8월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어요’ 이렇게 적혀 있다. 참 그때 우리 뭐하고 있었지 🙂

그리고 ‘인생무상’ (人生無常) 이라는 말은 사실은 불교적 의미를 담은 표현인데, ‘삶이 허무하다’ 라는 뜻 보다는, ‘우리의 삶에는 늘 같은 것 그리고 변치 않는 것은 없다’ 그런 뜻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