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과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넝쿨장미 그늘 속에도 젊음이 넘쳐 흐르네…’ 내가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주면서 어떤 계절을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가 물어보았더니 ‘모르겠다’고 하였다 🙂
너희들 문화에도 여름을 찬미하는 이런 노래가 있는가 물었더니 ‘없다’고 하면서 다만 스코틀랜드에서는 겨울에 대한 노래가 좀 있긴 하다고 하였다.
나도 비발디의 사계 교향곡을 어쩌다보니 수없이 듣게 되었지만 지금 듣는 음률이 사계절 중에서 도대체 어떤 계절을 표현하는 것인지는 항상 모르겠더라고 위로해 주었다.
다음번에 만나면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지난 여름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 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엉클어질때…’ 노래를 다시 불러주면서 이번에는 어떤 계절을 느끼는가 물어 보아야겠다.
음악은 모르는데 잔머리만 늘어서 이번에는 아마도 ‘여름’ 느낌이 난다고 할것 같다 🙂
이 노래를 부르며 보내는 이 여름의 하루가 기분 좋다.
글쓰기가 점점 어렵다
‘회색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건데 참으로 지당하고 또 훌륭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대나 상황을, 경멸하거나 혐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지레 포기하는 의사도 가지지 않으면서, 다만 기대치를 내리는 것이 그 열쇄가 아닌가 싶다. 이것, 일단 되기 시작하면 잘 되고 또 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는 상당히 어렵고 때로 절망적이라고 까지 느끼지 않겠나 싶다.
글쓰기가 점점 어렵다. 굳은 신념을 (?) 가지고 큰소리로 떠들며 사람들과 상황을 나무랬던 (?) 지난날의 시간들이 때때로 그립기 조차하다. 부끄러운 내용의 글들이지만 일부러 내리지 않고 내버려 둔다.
인생의 어떤 시기 이후부터는, 심신의 변화와 여러가지 겪은바로 말미암아, 돌고도는 세상만사, 오가는 계절 그리고 시작과 끝 같은 것들을 자주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며, 일전에 보았던 ‘Being 97’ (‘A 97-Year-Old Philosopher Ponders Life and Death: ‘What Is the Point?’) 라는 도큐멘터리가 여러차례 떠올랐다. 맨아래에서 볼수 있다.
동화를 스스로 지어서 손주들에게 녹음해서 보내주었던 자상한 할아버지. 평생을 철학 그리고 죽음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살았던 미국의 한 학자가 생의 마지막 몇달을 보내는 모습을, 그리고 그의 삶을 지배하던 생각과 언행들을,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라나 이제 영화 도큐멘터리 제작자가 된 손자가 촬영하고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은 매우 특이하고 또 드문 훌륭한 도큐멘터리라는 생각이다.
UCLA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UC Santa Babara 철학과에서 평생을 가르치며 살았던 이 석학, 죽음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던 이 노인이 말한다.
‘노년이 실제로 되어보지 않고서는 노년의 정신세계를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 자신은 오랜 세월 죽음을 연구하고 또 책을 쓰면서, 죽음을 이해했고 나아가 인간은 (자연의 질서속에서)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었지만, 막상 죽음이 몹시 가까운 상황이 되니 혼돈스럽고 두려우며,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What is the point of it all?’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혹은 ‘종말에 가까워 느끼는 이러한 두려움과 회의 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두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이어령 선생의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게 이 도큐멘트리가 왜 그렇게 자주 떠올랐던가 그리고 죽음에 임박한 이 미국 상노인의 일상이 내게는 왜 그렇게 더 와닿았을까 여러차례 생각해 보게 된다.
봄 식물원 그리고 투표
이런 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좋아 보이나? 그래도 내일이면, 바쁜 와중에 먹는듯 마는듯 점심을 먹었을지도 모를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밖으로 나오지 않나. 시작은 다를지 몰라도 끝은… 🙂
봄을 맞은 식물원에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잎들이 가득하다. 그것들을 만끽하며 호사를 한다. 산림욕이니 뭐니 해쌋더만,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리 그리고 내음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심신에 좀 베어들기도 하겠지? 기어 나오자 말자 피톤치드니 치유니 떠들어대며 모조리 뱉어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식물원 옆에 작은 증기기차 박물관이 있는데 마침 한구석에 국민 투표를 미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준비를 해 두었더라. 국회의원 뽑아 다수당이 집권하여 내각을 구성하는 것에는 그대가 흥미 없을 테지만, 이번 투표에 2가지 국민 여론조사가 덧붙어 있더라. 여론 조사 결과로 입법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어쩌면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첫째는 ‘안락사를 동의하는가’ 하는 질문이었고, 둘째는 ‘대마초를 합법화하는데 동의하는가’하는 질문이었다.
언젠가 블로그에 쓴데로 어떤 나라들에서는 00주 이하에 태어나는 미숙아를 살려 주지 않는다. 과학이 증명하기를 (대다수는) 살아도 본인과 가족에게 너무나 큰 고통과 짐을 오랜 세월 지워준다고, 태어나면 한번 엄마품에 안겨 주고선 조용히 데리고 나간단다. 물론 예외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다른 어떤 나라들에서는 00주 밖에 되지 않은 미숙아를 어떻게 살려 냈다고 무슨 의술의 기적을 발휘한 영웅담처럼 알려지곤 하던데, 내 주관적인 생각에는 선무당이 사람 여럿 잡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측면이 더 많지 않은가 싶다. 인간들이 의식적이고 또 조직적으로 하는 모든 행동에는 그 인간과 집단의 의지와 철학이 담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와 철학의 크기와 깊이에 그 인간과 집단의 수준이 드러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나라를 포함한 소위 선진국들에서는 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더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또 그에 따른 법적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은 (당신의) 신이 내려주신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서 내 생명도 네 생명도 결코 인간의 의지가 개입 되어서는 안된다고? 글쎄. 그렇게 떠들어 대다가 나중에 당신 자신이나 가족들이 당신의 부매랑에 맞아 엄청 괴롭게 갈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무료의료보험은 (외국에서 여행 온 사람들까지 치료해 준데요) 많은 나라들에 부러움의 대상이라더라. 특히 노인들을 위한 의료와 복지는 세계에서 손꼽힌다고. 그런데 훌륭한 의료보험이나 평등한 의료시스템은 어떤 것일까? 이나라 사람들 다수가 생각하는 것은 이렇다. 암처럼 시간을 다투거나 사고가 아닌 경우, 더 젊고 더 일을 할 시간이 많이 남은 사람들에게 수술기회나 의료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되는 것이 당연하다. 먼저 등록했다고 먼저 수술해 주는 것이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니까…
대마초는? 이나라 국민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에 차지 하는 비중이 꽤 크단다 🙂 대량으로 사고 팔며 장사를 하거나 다른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개인적인 사용은 경찰도 보통 눈감아 주는 편이라는데, 이것을 합법화하여 부작용도 줄이고 또 실제로 의료용이나 어떤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길을 더 열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많은 선진국에서도 아직 전면적으로 합법화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 옛날에 시골 할배 할매들이 밭 귀퉁이에 양귀비를 심어 두고서 ‘아이고 팔다리 쑤씨네 하나 뽑아서 삶아 먹을까’ 했다더만. 나도 언젠가 나이들어, 항공사진 판독후에 우리집 문을 두드리는 경찰에게 ‘아이고 늙은 내가 뭘 아나. 그저 삼배 옷이나 하나 만들어서 여름에 시원하게 입으려고 대마 몇 그루 심었어’ 오리발 안 내밀어도 되지 싶다 🙂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 전통가요인 Fado 가수였다 (작고한지 오래되었다). 그 나라에서는 아마도 조수미씨와 이선희씨를 합친 정도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옛날 병석에 누운 형님을 위해서 숙부께서 전축을 선물하셨을때 그녀의 음반도 함께 왔었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된 숙부께서는 사업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셨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과는 그리 잘 지내지 못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건데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음반이 우연히 선물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촌께서는 심성이 부드럽고 감수성을 지닌 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표현이 서툴렀거나 표현을 두려워 하셨거나 혹은 어떤 사소한 습관들이 그 좋은 면들을 가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삼촌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베풀어 주신 은혜와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FOI DEUS
Não sei, não sabe ninguém
Porque canto fado, neste tom magoado
De dor e de pranto
E neste momento, todo sofrimento
Eu sinto que a alma cá dentro se acalma
Nos versos que cantoFoi Deus, que deu luz aos olhos
Perfumou as rosas, deu ouro ao sol e prata ao luar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E pôs as estrelas no céu
E fez o espaço sem fim
Deu luto as andorinhas
Ai deu-me esta voz a mimSe canto, não sei porque canto
Misto de ternura, saudade, ventura e talvez de amor
Mas sei que cantando
Sinto o mesmo quando, se tem um desgosto
E o pranto no rosto nos deixa melhorFoi Deus, que deu voz ao vento
Luz ao firmamento
E deu o azul nas ondas do mar
Ai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Fez o poeta o rouxinol
Pôs no campo o alecr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그것은 신이었어요.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라요. 왜 내가 고통과 슬픔에 상처받은 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지 말이예요. 하지만 그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나는 내 노래의 구절들이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느낌을 받아요.
신은, 바람에게는 소리를 하늘에게는 빛을 그리고 바다에게는 파도를 주었고,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신은 새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로즈마리를 들판에 피웠으며, 봄에게는 꽃을 주었지요. 오! 그리고 신은 이 목소리를 내게 주었답니다.
내가 만약 노래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무었을 부를지 모를꺼예요. 갈망 애정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섞인 그 느낌을, 나는 노래를 부를때면 느낀다는 것을 알아요. 누군가 우리 면전에서 찢어진 가슴으로 슬픔을 표현할때 우리는 위로 받을꺼예요.
신은 우리에게 광명을 주었고, 태양에는 황금빛 찬란함을 그리고 달에게는 은빛 아름다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신은,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인연
일전에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벗꽃나무를 발견했어요. 이제 봄도 다가오고 하니 장차 벗꽃이 피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서 가보았어요.
키가 이미터 좀 넘을것 같고 나무 몸체도 별로 굵지 않아서 그리 오래전에 심은 나무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더니 이곳에서 흔한 플라그가 나무 밑둥지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일본수상 하야토이케다 기념식수 1963년’ 이렇게 씌어 있네요.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아직 살아 있을까? 잠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을 방문하여 바로 이 나무를 심은 그 다음해 쯤에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났으니 이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원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과 좀 떠들썩하게 심었을지도 모를 이 나무를 기억하는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벗꽃나무는,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일본 수상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내가, 이렇게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박인희님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런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남긴 카르마는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쉽게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같은 자리에 서서, 앞서 왔다가 먼저 가버린 이 사람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내가 왔던 흔적 그리고 장차 내가 가고나서 남을 흔적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번에 이곳을 지날때면 봄 기운이 더욱 완연하여 아마 벗꽃이 피겠지요. 그때는 다만 그 순간을 즐기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