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일전에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벗꽃나무를 발견했어요. 이제 봄도 다가오고 하니 장차 벗꽃이 피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서 가보았어요.

키가 이미터 좀 넘을것 같고 나무 몸체도 별로 굵지 않아서 그리 오래전에 심은 나무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더니 이곳에서 흔한 플라그가 나무 밑둥지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일본수상 하야토이케다 기념식수 1963년’ 이렇게 씌어 있네요.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아직 살아 있을까? 잠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을 방문하여 바로 이 나무를 심은 그 다음해 쯤에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났으니 이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원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과 좀 떠들썩하게 심었을지도 모를 이 나무를 기억하는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벗꽃나무는,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일본 수상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내가, 이렇게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박인희님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런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남긴 카르마는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쉽게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같은 자리에 서서, 앞서 왔다가 먼저 가버린 이 사람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내가 왔던 흔적 그리고 장차 내가 가고나서 남을 흔적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번에 이곳을 지날때면 봄 기운이 더욱 완연하여 아마 벗꽃이 피겠지요. 그때는 다만 그 순간을 즐기기를 희망합니다.

목련

라벤다를 보고 그 향기를 맡으면, 그 꽃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난다. 골프장에서 날려 먹은 공을 찾아 헤매다가,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보면, 함께 줏어다가 묵 만들던 어머니와의 기억이 늘 새롭다. 목련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오가다 목련을 보면 그 꽃 좋아하는 아내 생각이 난다. 아직 현재형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내가 늘 찾는 식물원에는 사람들이 기증한 벤치들이 많다. 작은 기념동판을 (플라그) 의자에 박아 놓은 경우가 많은데, 자주 읽어 보고 또 몇 개의 의자는 이제 매우 낯익게 되어 인사를 나눈다. 짐작하다시피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것들이다. 내가 자주 찾는 식물원의 어떤 장소에는 2개의 벤치가 있는데, 하나는 채 스물이 되기 전에 죽은 어떤 젊은이를 그 가족들이 기리는 의자다. 이미 죽은지 40년이 넘었으니, 플라그에 세겨진 그 가족들 (그때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그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 이 젊은이의 뒤를 따라간 사람도 있지 싶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다. 또 하나는 비교적 최근에 (한 1-2년 전에) 새로 설치된 벤치인데 ‘이 비밀의 정원을 (이 장소를) 사랑했던 부부’라며 나란히 이름이 적혀 있다. 앉을때마다,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혹시 살아서 우리가 이곳에서 마추쳤던 적은 없었을까 생각하며, 벤치를 고마워하고 또 명복을 빌어드린다.

지금은 플라그를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읽을 플라그가 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이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오늘 점심때는, 철 이르게 피어난 목련 나무를 지나며 사진을 두장 찍어 왔다. 하나는 물론 목련 나무지만 또 하나는 그대에게 아마 흥미 있지 싶다.

‘이 목련은 1935년 8월 28일 심어졌고 1950년 8월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어요’ 이렇게 적혀 있다. 참 그때 우리 뭐하고 있었지 🙂

그리고 ‘인생무상’ (人生無常) 이라는 말은 사실은 불교적 의미를 담은 표현인데, ‘삶이 허무하다’ 라는 뜻 보다는, ‘우리의 삶에는 늘 같은 것 그리고 변치 않는 것은 없다’ 그런 뜻이 되겠다.

JW

밤새 두꺼운 서리가 내려 흡사 눈처럼 온 세상을 뒤덥은 겨울의 이른 아침. 출근길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 늘 그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오늘도 본다. JW (Jehovah’s Witnesses) 팻말 아래로 Watch Tower라고 쓰인 책들이 보인다. 아! 정말 춥겠다. 나도 군대서 보초를 많이 서봐서 아는데 겨울에 해뜨기 직전이 정말 쥐약이다. 추워서 죽음이다. 이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고 또 그 책은, 그 옛날 그 시절 파수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되던 책이다.

이십대 초반, 휴학 후 입대를 기다리던 동안 나도 한때 이 사람들과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었지. 아! 그때 내게 교리를 가르친 그 아가씨 선생님,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그넘의 책에 자꾸 등장하던 ‘할례’가 무었인가 재차 뭇는 내게 (오~ 븅신) 차마 대답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 아가씨. 지금 돌이켜 보아도 괜찮은 여자였다.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지.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금방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땐 인터넷은 커녕 피시도 거의 없었다. 어떻게 처녀가 총각 앞에서 일대일로 그것이 무었인지를 설명하겠나 🙂

그녀와 주변의 좋은 사람들. ‘입영거부’ 아무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를 받아들여주고 또 나에게 그들을 알고 이해할 기회를 주었던 진실했던 사람들. 입대를 위해 떠날때가 왔고 그녀와 마지막 세션 (공부)을 마치던 그날, 우리는 작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악수를 하고 작별하였다. 아마 만년필이었던가를 내가 주었던지 받았던지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함께 모여서 그렇게 가드를 내리고 서로를 잘 대해주면, 사람들이 그렇게 진실하고 착할 수가 없더라. 비록 그들의 믿음을 나는 함께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한결같이 괜찮은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만큼 하기도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면서, ‘지금 뭐하는 짓인가’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이렇게 힐난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침에 이사람들에게 커피라도 한잔씩 사주고 싶지만, 내 마음에서 종교라는 것이 너무나 멀어졌고 또 그 사람들이 내 호의를 오해할까도 두려워 못 본척 지나쳤다.

입대후 나는 81130 특기를(?) 받고 기지교도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새로운 죄수들이(?) 들어 왔다. 문서를 보니 총기수령거부. 아! 이 사람은 여호아의 증인이었던 것이다. 기지교도소에서 육군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얼마간을 이 사람과 나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보냈다. 아마 밤에 시간을 내어 위로도 하고 또 아무도 보지 않으면 잘 대해 주었었지 싶다. 차마 내입으로, 나도 한때 당신들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었던 적이 있었으나, 당신과 같은 믿음과 용기가 없어서 지금 철창 반대쪽에 서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어느날 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리 지역 회중에서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하다가 입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때 그는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군인이 바로 그 사람임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믿기에, 그 처녀 선생님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 그들의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했었을 것이다. 나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 주었을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그때 그자리에 있었더라면 백발백중 인생 종칠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운좋게 제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이곳에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모두 우연이거나 혹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기도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준 좋은 인연 카르마의 결과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눈물이 나는지… 아마 그 사람들의 인간적인 노력과 희생을 보았고 (설령 세상이 그것을 비웃는다 할지라도) 또 지금도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이리라. 그저 돈따라 이익따라 부초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사는 세상에서, 한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따뜻하고 또 굳게 잡아주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던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또 존경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결국은 지푸라기임을 나는 점점 깨닫게 되기에. 우리 모두를 향한 눈물 방울…

종교와 믿음을 떠나서, 내 자식이 진실한 여호와의 증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지 싶다. 세상에 그만큼 하기도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깨닫게 되었기에. 다른 믿음을 가지고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되고 또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살기에. 그리고 우리가 존경하는 친구 노(老)신부님께서 어머니께 말씀하셨듯이 ‘어떤 종교를 가지던 진실하고 훌륭한 삶을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나도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해주고 싶기에. 아름답고 품위있고 착했던 그녀. 지금도 훌륭한 여호와의 증인으로 잘 살고 계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그런 것 물으면서 븅신짓해서 미안했어요. 지금도 종류는 다를지 몰라도 여전히 그 지랄하며 살고 있어요~~~

나이 든다는 증거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하는 편인가 듣는 편인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70%를 이야기 하고 상대방의 말을 30% 들으면, 서로 반반씩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으로 느낀다고 한다.

대화의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의 소재.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도 흥미가 있을 것으로 간주하고 떠들어 대는가 아니면, 공통된 어떤 주제를 찾아서 함께 이야기를 주고 받는가?

대화의 소재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당신 이야기의 주제가 주로 과거 이미 일어났던 것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 혹은 장차 일어날 일, 계획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당신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 떠벌리고, 또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주로 떠들어 댄다면… 이 글 제목이 뭐였더라 🙂

과거에 집작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이상하게 뒤틀릴 것이다. 달라이라마.

열아홉 후안마이의 마지막 편지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도 부인이 기뻐 보이지 않으면 남편이 그 이유를 물어보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남편은 왜 오히려 아내에게 화를 내는지, 당신은 아세요?

남편이 어려운 일 의논해 주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내를 제일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저는 당신의 일이 힘들고 지친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저도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나중에 더 좋은 가정과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당신은 아세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하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는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당신을 기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신이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려 주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을 말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진실된 남편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되요. 물론 부부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상처가 너무 많아 결국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 사람의 감정을 존경하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는 상황들과 원망하게 하는 상황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게 되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자존심이 있고 자신을 ‘정답’에 서게 하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부부가 행복할 수 없고 위험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에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아세요? 제가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는 호치민 시에서 일을 했어요. 당신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 집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저는 가정을 위해서 일을 나가야 했고,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하지만 봉급은 얼마 못 받았지요. 저는 노동이 필요한 일도 했었어요.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그것이 가축을 기르는 일이든, 농작을 하는 일이든. 가족들은 노동일로 벼를 심고 베는 일을 했어요.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입을 것과 먹을 것만 겨우 충당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에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고, 단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을 바랬을 뿐이에요. 저도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하고 또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제가 베트남에 돌아가게 되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당신이 저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당신이 잘 살고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저는 베트남에 돌아가 저를 잘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하여 다시 처음처럼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의 희망은 이제 이것뿐이에요. 당신과 전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뿐이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정말로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그 경위에 어찌 되었던 간에 피고인과 결혼하여 피고인만을 의지하여 말도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온 19세의 피해자를 무참하게 살해한 것으로 그 결과가 지극히 무거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가 남긴 편지 내용을 보자. 피해자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피고인과 서로 이해하고 위해주는 애틋한 부부관계를 이루고, 한국어를 빨리 배워 한국생활에 적응하면서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한국에 와 피고인과 동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의 부족, 어려운 경제적 형편 및 언어문제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의 무관심과 통제로 인하여 피고인과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끝에 피고인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을 것이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와 같은 반응을 보고 피해자가 처음부터 피고인과 결혼할 생각 없이 사기결혼을 하였다고 오해한 것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른 주된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피고인의 피해망상적 사고경향과 음주 중 폭력습벽이 더 해져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사건 범행은 결국 계획적이거나 미리 의도된 범행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피고인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 피해망상적 사고경향 및 음주 중 폭력습벽에 기인한 것으로서 피고인의 이러한 그릇된 성행을 교정하기 위하여서도 상당한 기간동안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의 선고는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시각을 바꾸어 이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돌아보고 싶다. 특히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남성과 제3세계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국제결혼의 명암을 재조명해 보도록 하고 있다. 배우자감을 국내에서 찾을 처지가 되지 못했던 피고인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하여 베트남 현지에 임하여 졸속으로 피해자를 만나게 된 전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은 그저 피해자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단 몇 분만에 피해자를 배우자감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누구 집 자식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 준 바 없었고, 그래서 이를 전혀 알 수 없었을 뿐더러, 또한 스스로 알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 목표는 단 한 가지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일 뿐, 그 이후의 뒷감당에 관하여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지탄을 피고인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혼인은 사랑의 결실로 소중히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아온 피해자 후안마이. 그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일까.

19세 후안마이의 편지는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아니되리라는 소망을 해 보는 것도 이러한 자기반성적 이유 때문이다.

이 법원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사람과 결혼하여 이역만리 땅에 온 후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되어 19세의 짧은 인생을 마친 피해자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싶었다. 그 전제로 피고인이나 결혼을 알선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하여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리려고 하였다.

결혼정보업체는 피해자의 성장배경, 생활환경 및 피해자의 가족들의 소재에 대한 이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관계당국이나 피고인을 통하여서도 피해자의 가족들의 소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릴 길을 찾지 못한 채 이 사건 판결에 이른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피고인으로서도 피해자의 가족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기회를 갖지도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전과관계, 범행의 동기, 경위, 결과 및 범행 이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12년을 선고한 제1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대전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