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삶의 원동력?

친구 최군 이야기를 하면서 내 자신을 ‘화를 잘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랬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상에 크게 그리고 깊이 화를 냈었다. 유감스럽게 지금도 별로 향상된 것이 없다.

친구들보다 더 노력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대신에, ‘대학을 나와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자존심 있는 기술자에게 반지하방이나 강요하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어떻게 정상이냐’ 하면서 크게 화를 냈었다. 그래서 그런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니어 전산기술자들이 주동이 되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회의시간에 이야기만 들으면서, ‘나는 왜 기회가 없는가? 나도 너희들만큼 할 수 있다’ 또한 깊이 화를 냈었다. 그래서 그런 프로젝트들을 내손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장들을 찾아 떠났다.

그 나라와 그 사회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통하여 최소한 내 자신에게는 증명하였다. 시니어 기술자라고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10배 크기의 프로젝트를 내 손으로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며, 너희들만큼 아니 너희들보다 더 잘 할수 있다는 것을 또한 스스로에게 증명하였다.

화는 이토록 엄청난 에너지가 되어 인간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팔자를 바꾼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동안에 내 마음에도 화에 대한 인이 박히고 굳은 살이 생겨났을 것이다.

오늘, 집 부근 내가 좋아하는 산길을 뛰어 오르며 길 양쪽에 우거진 숲에서 풍기는 진한 소나무 향기에 취했었다. 나즈막히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동요를 부르는 순간 깨달았다. 내 삶의 에너지 원천이 더 이상 화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양날 선 위험한 칼을 던져 버릴 때가 왔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좋은 에너지를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사는 것이 좋다. 외부나 타인에 대한 반발력이 아닌, 그야말로 내 자신에게서 우러나는 힘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상생의 길이요, 장수의 길이며 해탈의 길인지도 모른다.

이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처럼, 이제 그만둘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 온 것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

링컨대통령의 부치지 않은 편지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요? 미국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지휘를 맡았던 최고사령관이, 남군을 요절내고 노예를 해방시키며 전쟁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수긍할만한 이유없이 미루고 또 이해할수 없는 이유로 회피하다가 그만 놓치고 난 이후에, 극도로 화가났던 링컨대통령께서 (자신의 지휘를 받던) 그 장군에게 쓴 편지인데요, 대통령께서 사망한 이후에 서재에서 부치지 않은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나도 읽어 보았어요. 영미문화권에서는 비록 상하관계가 명백한 경우라 하더라도 심한말로 나무래는 경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요, 상대방의 위치나 권위등을 존중해 주려는 배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욕이나 심한말의 인플레이션이 적은 곳에서는 조금만 억양이나 톤을 바꾸어 말해도 그 의미가 잘 전달되기 때문에 굳이 쌍욕이나 상대방을 모욕하는 나쁜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링컨대통령께서 쓰신 그 편지는 이런 문화적차이를 이해하고 읽기에도, 비록 자제하며 말하고는 있지만 극도의 실망감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드러내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대통령께서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도 쓸 때에도 그리고 쓰고 나서도 몹시 괴로워했을것임을 저는 짐작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랍에 넣어 두고 일부러 부치치 않으신것 같다고 해요. 물론 역사속에서 그 장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북군은 이미 무능한 사령관들을 수도 없이 교체하며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 사람도 이전 사령관들이 갔던 길을 따라 갔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북군이 승리했고 노예는 해방되었으며 링컨대통령은 미국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남을 훌륭한 위인으로 남게 되신것이지요.

그대도 쓰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링컨대통령처럼 종이에 잉크를 묻힌 펜으로 쓴 편지는 아니고, 비록 컴퓨터에 저장된 워드파일로된 편지들이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대통령께 배운 면도 있겠지만, 제 자신이 가끔씩 글로 저의 폭발하는 감정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되었는지 제가 쓴 부치치 않은 편지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부칠 의사가 거의 없던 편지들로서 그 취지가 약간은 변색된 면이 있겠네요.

어쨋던 저는 그 편지들을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읽어봐요.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 혹은 몇년이 지나서 읽어보는 저의 부치지 않은 편지들은 제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부끄러움입니다. 놀라셨나요? 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장 많이 느꼈어요. 내가 그 당시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수준의 편지를 썼던가? 무었이 나로 하여금 지금 보기에는 내가 쓴 것이라고 차마 믿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 그리고 나아가 그 편지의 발단이 되었을 사건이나 상황을 극히 유치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글들을 쓰게 만들었던가 자문하게 됩니다. 부치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만약 부쳤더라면 내쪽에서 문제를 훨씬 크게 확대하고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았을것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내가 격정에 사로잡혀 있을때 얼마나 더 어리석게 되고 눈이 더 멀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횟수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통한 저의 깨달음은 어쩌면 제 자신에게, 설령 제가 이런 상황속에 빠져 있을때라고 할지라도 바로 이런 기억을 불러와, 저로 하여금 이전에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했었을 그런 언행들에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저의 잘못된 확신을 무너트리고 제 입을 다물게 하며 저의 사나운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싶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다른사람들을 통해서 배우고, 보통사람은 자기자신을 통해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것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도 보통사람들 끝에라도, 이런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좀 끼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괴로운 그대, 오늘밤 부치지 않을 편지를 한번 써보시지 않으렵니까?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 두번째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하고서 시간이 좀 흘렀다.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작년말 말레이지아에서 설법하면서 말씀하신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는, 스님에 따르면 자신의 50년 수행의 결론이라고 하신다. 이것을 옛날에 몰랐던 것이 아니니, 먼 길을 돌고 돌아 원래 출발했던 그 자리로 온 것 같다고 한다.

어떤 서구의 유명한 종교학자의 말씀을 빌어 표현하시기를 ‘신은, 인간이 자아와 이기심을 버린 그 공간 만큼만 인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담마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버린 그 빈 공간 만큼만 수행자에게 채워질 수 있다’.

To change from ‘Self-centered to Dhamma-centred’ one needs to surrender and let go of. The more you surrender, the more you would be enlightened. The more you let go of, the more you would realise the ultimate truth.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 변화하려면, 버리고 (포기하고) 또 내려 놓아야 한다. 더 포기하고 버릴수록 더 해탈할 것이며, 더 내려 놓을수록 더 열반에 가까워질 것이다.

무었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는 각자마다 다르지 않겠나.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데.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공부요, 또 알게된 것들을 행동으로 반복해서 습관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수행 아닐까? 그리고 조심스레 짐작하건데, 바로 이렇게 수행 하며 사는 현재의 삶에서 어쩌면 니르바나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낮에는 미치고 밤에는 되돌아 보고

미치지 않고서는 이루기 어렵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니 적당한 대상을 찾고 적절한 목표를 향해 미쳐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낮에는.

하지만 밤이 오면, 내가 미쳐 있었던 그 낮시간을 되돌아 보는 것이 좋다. 나홀로. 이 시간에도 취해 있거나 (그 대상이 무었이건), 혹은 아직도 어울려 떠들썩하다면, 삶이 좋지 않은 쪽으로 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밤낮으로 미쳐 있어도 좋지 않고, 밤낮으로 되돌아 보기만 하여도 또한 좋지 않다. 전자는 쉬지 않고 매운 음식을 잔뜩 퍼먹어 늘 배 아픈 꼴이요, 후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 메뉴만 죽어라 바라 보며 굶주려 있는 꼴이라 비유할 수 있다. 잘 살고 잘 죽는 것, 둘 다 어려워진다.

미친 대상이나 미쳐 이룬 목표는, 떠가는 구름과 같고 오가는 파도와 같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우리의 현실이 오직 그 위에서만 가능하기에, 사람구실 하며 살려면, 구름을 쫓고 파도를 움켜 쥐려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애쓰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주 보고 또 똑똑히 아는 것이 좋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간이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매긴 그 어떤 것들도, 크고 길게 보면 헛된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내가 지금 온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나의 생로병사 이외에는, 어떤 이상도 가치도 의미도 믿음도, 그 본질은 구름과 같고 파도와 같다.

사랑하는 이의 겨울과 밤을 지켜보며, 내 인생의 사계절 그리고 내 삶의 낮과 밤을 생각한다.

6언더파

지난 한 두해 중단 했었던 골프를 최근에 다시 시작하였다. 새로 가입한 클럽에서 주선해 준 회원들과 주말에 한 라운드를 함께 했다. 간략히 나를 소개하고 싸구려 중고공을 많이 가지고 왔으니 폐를 끼치지 않겠노라 좋게 부탁 말을 하였다.

그저 평범한 라운드였다. 각자의 능력대로 각자의 골프를 치며 모였다 흩어졌다를 18번 반복하였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라운드였다. 그리고 아무도 특별하게 생기지도 또 행동하지도 않았다. 배가 조금 나온 중년 남자들 그리고 중년 여자 한명. 그들은 친절하게 남은 거리를 내게 알려주며,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괜찮은 샷이 나오면 ‘굳샷’이라고 외치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나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힘들었지만 라운드를 마치고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음료수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좋더라.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활동 하던 ‘마이클’이라는 필명의 골퍼가 있었다. 마음골프 김헌선생에 버금갈 만큼 좋은 글을 쓰고 또 내게도 도움이 된 많은 골프 팁을 나누어 준 고마운 분이다. 이 재미교포 분의 글 중에서 ‘내가 이븐을 치던 날’ 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처절(?) 했던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잘 기억할 뿐만 아니라 또한 골프의 공포를 내게 선명하게 부각 시켜준 흥미로운 글이었다. 아마추어가 이븐파를 한 번이라도 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줄 나는 그때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수 년에 걸친 그의 처철했던 노력을 읽고나서.

음료수를 마시며 내가 묻는다. 오늘 스코어가 어땟어요? 아! 오늘 6언더파 66을 쳤어요. 좋은 라운드였네요. 그래요… 그것뿐이었다. 이상한 골프장이었나? 한 두해 전에 아시아퍼시픽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쉽이 열렸던 코스다.

이렇게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있더라. 아무것도 심각해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또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해탈이란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붓다께서도 말씀하셨다. ‘너무 (해탈에) 광분하지 마라’ 🙂


한 파트너가 6언더파를 칠때 또 다른 파트너는 1언더파를 쳤다. 한 사람은 공무원 다른 사람은 전산직에 종사한다고 했다. 1언더파 친 사람의 부인은 핸디가 3이라는데 그녀도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날 따라 나처럼 이리저리 헤매면서 뒤땅에 뱀샷을 날려 대길래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내심 흐뭇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80대 초반의 스코어를 기록했더라…

어떤 사람에게 쓰레기통에 바로 넣고 싶은 스코어카드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나도 한번이라도 해봤으면 꿈꾸는 스코어카드일 수도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며, 또한 (최고 수준의 아마추어 골퍼들인) 이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느끼는 불만족과 괴로움은, 백돌이인 내가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