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다고 쌓이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니 채우는 것과 쌓이는 것은 별개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직도 청춘이지만, 더 어렸던(?) 시절에는 그저 남들따라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얻고 줏고 벌고 빼았아(?) 채우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준이나 인생의 승패는 그렇게 채우는 능력으로 매겨지는 줄 알았었다.

살다보니 채우는 능력과 쌓이는 결과가 딴판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야 부모를 잘 만났거나 책상에 오래 앉았던 사람들이 당연히 더 있겠지. 그런데 채운것들이 쌓이려면 그릇이 번듯하게 크기도 좀 있고 또 깨지거나 구멍이 뚫리지 않아야 되는데, 이 그릇의 크기와 온전함은 부모 주머니에서 떨어진 돈이나 공부 머리와는 별로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그것들로 말미암아 달라지기도 어려운 것임을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는 큰데 그릇이 작거나 깨져 있으면 밖으로 흘러 넘치고 줄줄 새게 된다. 흘러 넘치는 것이 돈이면 돈지랄하는 인간말종이 되고, 줄줄 새는 것이 권력이면 사람들 못살게 하는 미친개가 되고, 흘러 넘치는 것이 정력이면(?) 가정파탄 아니면 감옥행. 줄줄 새는 것이 지식이면 사람들이 면전에서 다투지는 못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 외로운 늙은이로 종치게 되겠고 또 흘러 넘치는 것이 ego 라면 해탈 열반이나 천국행은 날샛겠지 🙂

인생 초기 대량 실점한 삶을 살아온 내가 대량 득점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가까이서 또 멀리서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세상 참 공평하다’ 그리고 ‘행복은 얼마나 채우는가 보다는 얼마나 쌓이는가에 있다’.

수포자 챔피언 돌아온 탕자

나는 수많은 다른 수학 포기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작은사연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초등학교) 초반 일찌기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린시절 비교적 호기심도 있었고 또 보통머리는 되었지만 ‘왜요?’ 라는 질문을 은근히 던지는 천성과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게으름이 결합되어 학교공부에 특히 수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내가 몹시 싫어하게 되었던 수학은 또한 당연히 나를 몹시 싫어하며 오랫동안 내게 큰 괴로움을 주었었어요. 우리는 몸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릴때는 어떤 (물리적으로) 무서운 상황이 악몽의 내용이었다면 이젠 나이가 드니 악몽도 변화 발전하여(?) 무턱대고 무서운 상황보다는 마치 바늘이 손톱밑을 슬쩍 찌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민감한 내용이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면서 그속에서 정말 현실처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차원 다른 악몽을 꾸게 되네요. 짐작하다시피 내가 어쩌다 꾸는 악몽의 내용은, 미루고 미루며 강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당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수학시험에 그나마 지각조차하여 절망속에서 우왕좌왕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런 것들이랍니다. 수학이란 내게 문자 그대로 악몽이 아닐 수가 없네요 🙂

내가 자신을 챔피언급 수포자로 규정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내겐 비극 친구들에겐 코미디’ 였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야기인즉, 대학신입생 시절 낙제했던 필수수학 과목을 복학후 다시 낙제하여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세번째 시도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사귀던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은 나의 이런 딱하고 한심한 사정을 듣고선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수학과목을 같이 수강하며 나를 도우려고 애썼는데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선 예상문제를 몇개 적어 주었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린’ 엉터리 한글 편지처럼,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수학문제의 해답들을 시험지에 ‘그려냈어요’ 🙂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바라는 성과를 내고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꺼에요. 그런 성공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순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가 어렵겠지요. 물론 그 기간의 길이 또 그 대상의 사회적 인정도에 따라서 10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또 1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하겠지요. 인생이란 어쩌면 그 10과 1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그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챔피언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 수학과목 강사께서는 내가 ‘그려낸’ 엉터리 시험 답안을 이해하지도 또 동정하지도 않았어요. 세번째 낙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그 강사의 댁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분 모친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주셨는데요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짧고 어색한 대화가 오갔어요.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는데요 ‘정상적인 학생이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 젊은 수학자를 설득할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직전학기에 저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수학과목이 없었기 때문에요.’ 곧 자신의 일생을 바칠 그 거룩한 수학에 대해서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는 저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믿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어쨋던 그분이 고맙게도 낙제를 겨우 면하게 해주어 나는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이민도 오게 되었어요. 물론 그때 그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과 함께 왔지요. 언젠가 블로그에 등장했었던 그 보살원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성공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왜?’ 그리고 ‘절실함’ 이 두가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실함’이야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왜?’에 대한 대접 혹은 반응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시절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도시설계 스케치 그리고 도면작성에 열을 올릴때 나는 ‘왜 저렇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태동기였던 CAD를 (컴퓨터로 설계도를 만들어 내는 기술) 독학으로 익히게 되었어요. 내 ‘왜?’의 흔적은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CAD를 활용한 도시설계 프로젝트였을 인천 ‘시화(시흥)공업단지’에 남아 있어요. 무슨 인간 승리나 대단한 성취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해답이 한때 세상과 맞물려 거둔 작은 성공의 예로써 해본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조봉한 박사라는 유명한 수학자를 알게 되었어요. 이분은 수학박사인 자신의 딸이 수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선 충격을 받아 초등생 딸을 수렁에서 건져내고서(?) 수학교육사업을 시작하게된 인공지능 전문가 입니다. 이분이 수학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과도 달라 보입니다. 학교측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몇시간씩 평범한 초등학생들에게 서너달 수학을 가르쳤는데요, 이들과 서울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같은 문제를 내어주고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간에 해답을 찾는가 보여주는 짧은 도큐맨트리를 보고선 나도 몹시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 수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초등학생들은 미분적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배우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원리를 배워 꽤뚫고 나서 몇가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그 똑똑한 대학생 형들과 언니들이 엄청난 공식들을 쏟아부어 풀어낸 문제들을 똑같이 풀어 냅니다. 더 빨리. 물론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또 위험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수학자가 부르짖고 또 그 초등학생들이 증명한 것은, 수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부딪치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컴퓨터나 계산기가 할수없는) 인간고유의 정신활동이지, 누군가 이미 찾아 놓은 (공식이라며 존재하는) 해답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워서 출제된 시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내와 저녁때 잠시 수학 이야기를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가 비록 좋은 수학 성적은 받았었지만 (그때 함께 수강했던 수학과목에서도 A를 맞았었어요) 사실은 나는 수학이라는 것 차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아마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공부했던 수학을 전부 잊어버렸지 싶어요.’ 이렇게 아내가 말했어요.

수포자 챔피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대도 나처럼 수학의 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나요?’ 당신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던 공식들을 더 많이 외워 더 빠르게 적용시킨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삶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점점 깨닫고 있지 않나요? 그 수학 덕분에 성공한 삶을 살면서 그대에게 얼마나 그 공식들의 인이 박히게 되었을까요?

내 삶을 통털어 지금처럼 수학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적은 일찌기 없었어요 (써놓고도 ‘어머 놀래라’) 🙂 나는 다시 수학책을 펴렵니다. 내겐 그야말로 돌아온 탕자(?) 입니다. 노스텔지어 일지도 모르겠고 또 아내말처럼 (꼬박꼬박 차려 주었더니) 배가 불러 별짓을 다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때 호기심 많고 ‘왜?’ 라고 물었던 어린 나는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수학선생님이 되어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얘야 왜라고 물었었니?’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김범석 의사선생님의 훌륭한 책에 나온 작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중에서 선생께 ‘십년만 더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간절히 말했던 분이 있었다고 해요. ‘십년 더 사시면 무었을 하실 계획이세요’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는 것 하는 것?

지난번 블로그 글을 읽고 난 아내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훈계조의 글로써 쓴 사람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이라는 혹평을 하였어요. 밥상을 뒤엎으며 대판 싸우려다가 (요샌 스스로 차려서 바닥에 놓고 먹기도 하니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고) ‘그렇게 보여질 소지가 있으며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한 내 한계’라고 쿨하게 말을 하고선 내 방으로 꺼져서 혼자 한잔 하면서 울분을 삭였어요. 나이가 들면서 가정의 헤게모니도 생체 호르몬 구성비의 역전과 더불어 반전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요 🙂

오늘은 새해맞이 시리즈로, 지난 글에 이어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지만 훈계조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말투도 좀 덜 건방지게 써보려고 해요. 잠시라도 그대들께 즐거움을 주기를 바래요.

우리가 어릴때 말을 못하는 사람을 벙어리 혹은 버버리라고 불렀어요. 그들은 왜 말을 못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소리를 내는 입이나 성대에 문제가 있어 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많은 경우에 말을 못하게 된 주된 이유는 (청각기능의 문제로)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흉내를 낼 수가 없고 또 소리를 어떻게 낸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들을 수가 없으니 자신이 내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해요. 마치 태어나면서 장님인 사람이 색깔을 전혀 상상할 방법이 없는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네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부닥치게 되어 생각을 하게 되면, 예를 들면 ‘지금 그녀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저 떠나려는 버스에 지금 뛰어가면 놓치고 괜히 망신만 당할까 아니면 탈 수 있을까’ ‘앞에 고약한 호수가 공 내놓아라 하면서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는데 다음 샷을 어떻게 칠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머리속으로 생각을 하는데요,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모국어로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을 하게 되지요 (내면의 대화). ‘지금 고백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괜히 잘 되고 있는 관계를 망칠지도 몰라 그만 두자’ ‘지난번에 버스 세워서 잘 탓는데 뛰어가 보자’ ‘힘을 빼면 된다던데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말이에요. 나는 물론 한국어로 내면의 말을 하고 꿈도 한국어로 꾸는데요, 드물게 영어로 꿈을 꿀 때도 있어요. 꿈속에서 영어로 말을 술술 잘하고 또 어려운 단어를 쓰는 꿈을 꾸다가 내 자신이 (그것에) 놀라서 이게 왠일 하면서 꿈꾸는 자신을 놀라워하는 꿈을 꾸는 (이상한 상황에 빠지는) 일도 있었어요. 자기가 꿈속에서 사용하는 영어단어들을 자기가 이해를 못하는 웃기는 경우지요. 이민와서 힘들게 살다보니 별일이 다 생기네요 🙂

옛날에는 의사 과학자들이 벙어리들에게 (소리내어) 말을 하게 교육을 시킨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조금이라도 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좋은 뜻이었겠지요. 자신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목이나 혀의 감각등 만을 (센세이션) 기억하면서 내야하는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자연히 수화를 (손으로 말하는 사인렝귀지) 덜 배웠거나 안 배웠을 가능성이 높았겠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의사와 과학자들이 차차 깨닫게 된 것이 있어요. 어떤 이유로던지 수화를 배웠던 사람들보다 이렇게 말을 했던 벙어리들이 지능이 더 낮고 사회생활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요. 왜 그랬을까요?

입으로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벙어리지만 수화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만약에 골프를 치면서 앞에 물이 딱 버티고 있는 고약한 상황에 부딪치면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어떤 내면의 말을 할까요) 수화를 통해서, 우리가 음성언어로 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내면의 말을 ‘저넘의 물에 안빠지려면 왼쪽으로 힘을 좀 빼고 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할 수가 있다고 해요. 꿈도 수화로 꾸며, 약간 중국어처럼 한 글자에 많은 의미가 주어진 그런 방식으로 꿈을 꾸기도 하고 또 상황극 비슷하게도 꿈을 꾼다고 연구한 사람들이 말하네요. 그런데 수화를 전혀 모르면서 다만 보통 사람의 음성 언어를 흉내낸 사람들은 이렇게 하기가 훨씬 힘들거나 할 수가 없어서 결과적으로 지능발달도 더디고 또 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고 하네요.

왜 이런 벙어리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나는 전산기술자로 오래 일을 해왔는데요, 내가 전문적으로 일해 온 분야는 ‘utilising management infrastructure such as Microsoft Configuration Manager to centrally manage large scale Standard Operating Environment’ 이렇게 요약을 할 수가 있는데요 이것을 한국어로 잘 옮겨서 한국에 있는 (전산을 전혀 모르는) 나이든 친척분들에게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아주 풀어서 말을 많이 하면서 장시간 설명을 하면 대략 머리속에서 이 비슷한 일을 하는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학창시절 수학을 아주 못했는데요 물론 머리가 나쁜 것도 큰 이유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습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 부분에 나오는 개념들을 (수학적 약속들) 이해하지도 또 외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이론들을 점점 발전시켜나가는 중반 이후에 가면 무슨 외국어인 듯 단어의 소리 그 자체는 들리는데 의미는 전혀 알지 못하는 괴이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선생님들로 하여금 낙심한 마음에 주변에 우연히 놓여 있던 몽둥이를 손에 들게 만들었던 나쁜 학생이 되었던 것이지요. 비록 학창시절 수학의 언어를 익히는데는 실패했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주신 능력을 다른쪽에는 사용하여, 예를 들자면 전산의 언어를 스스로 익히는데는 실패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내 자랑 이야기가 아닌 줄 알지요?

사람이 왜 나이가 들면 수학 영어 말고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명상등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또 내면의 대화를 자주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내가 조금이나마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여러분들께 이야기하려는 것이지요.

내면의 소리에는 두 종류가 있지 싶어요. 사자가 팀웤을 통해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사냥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냥 로보트처럼 초원에 지나가는 아무 작은 동물이나 앞발로 퍽쳐서 이빨로 물어 띁어 잡아 먹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들도 (비록 본능에 기인한 것이지만) ‘일종의’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며 서로 신호를 보내서 공동의 목표를 협업을 통해서 달성합니다. 이때 사자의 머리속에 어떤 ‘내면의 언어’가 존재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위에서 말했던 (벙어리 꿈꾸는 예에서) 어떤 상황이나 이미지는 떠오르지 싶어요. 물소때를 혼자 쫒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위험을 감지하면, 어쩌면 지난날 겪었거나 보았던 어떤 상황에 대한 기억으로 말미암아) 몇번 해보다가 뒤돌아 섭니다. 잘못하다가 죽는 줄 알아요.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서 좀 미안한데요 (좀 씹혀도 싸다는 생각도 약간은 있네요) 그 전 서울 시장이 젊은 비서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냄새를 맡고 싶다’ 이런 종류의 성추행의 말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요? 짐작컨데 아마 사자처럼 ‘본능을 따르는’ (그런쪽으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는) 그런 생각을 했었을 꺼에요.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접근을 하고 시도를 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획득할 수가 있을까’ 바로 이러한 사자가 사냥할 때와 유사한 내면의 대화를 자신과 (사자와는 다른 고도의 인간 언어를 이용하여) 했었겠지요. 육신을 가지고 욕망의 지배를 죽는날까지 받는 그대들과 나는 이런 것들에서 결코 (아마 죽는 그날까지)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하지만 위에서 말한 ‘수학 영어 말고 어른이 되어서 하는 다른 공부’를 통해서, 그것과는 수준이 좀 다른 ‘내면의 대화를 나눌 능력 또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나요?

전에도 말했지만, 소위 도를 많이 닦으면, 사람 육신으로 말미암은 (정상적인) 욕망이나 욕구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해요. 만약 늙은 승려나 성직자 혹은 철학자가 그런말을 하면 나이가 들어서 밥맛도 좀 없고 또 그곳이 작동이 잘 안되는 것을 어쩌면 득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세상에 알려진 반증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요.

도를 많이 닦는다는 것을 현대적인 의미로 좀 다시 표현하자면 아마도 ‘인간과 삶에 대한 연구 / 공부를 하고 (수학 물리등과 마찬가지로 그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또 관련된 내면의 대화를 (reflection) 좀 많이 해 보았다’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이것을 많이 하면 무슨일이 생길까요? 내가 배운 바로는 ‘생각의 기술 그리고 삶의 기술’이 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뭐요?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인간의 육신에 기인한 원초적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했는데요 그런데 뭐가 나아진다는 것일까요? (상대적으로) 그것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수는 있지는 않을까요? 먹고 마시고 그리고 으음… 뭐하고 등등에 ‘덜 집중하고 덜 휘둘리게 되고 나아가 그것들을 좀 더 지혜롭게 매니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더 많이 먹고 더 비싼 것들을 마시고 더 많은 이성과… 이런 궁리만 사자처럼 만날천날 하면서 사는 대신에, 자기에게 길게 보아 더 나은 선택들을 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학교때 배웠던, 청각장애를 (아마 시각장애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극복하고 훌륭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미국인 헬렌 켈러를 기억하세요? 그분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남긴 이야기에 ‘나는 나이들어 수화를 (아마 점자도) 배우고 세상과 소통하기 이전에는, 사람으로서 의식은 있었지만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시말해 그 당시에 나는 (사람으로 누구나 가지는) 의식은 있었으되 아무도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사자와 같이)’ 라는 말이 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수학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우리가,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것들이 차원을 달리하는 어떤 것으로 진화 발전하여, 자신의 현재 삶을 그리고 다가올 죽음을 우리가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산중에서 수행을 오래하여 득도했다는 사람에게 시장에 가서 한 두해 생선장사를 하면서 그 득도 수행의 효과를 한번 증명해 보라고 하면 생선장수로서의 성공이 별다른 노력없이 저절로 가능할까요? 수십년 성직자 노릇을 한 사람에게 한 일년 룸싸롱 매니저로 일하면서, 오래 닦은 도를 그 현실에서 한번 직접 적용하고 활용해 보라고 하면 과연 별 어려움이 없이 잘 될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저 한때 수학에 능했었고, 어떤 시험에 합격했었고 다만 어떤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해왔을 뿐이지 싶어요. 그것들이 우리가 나이들어 자신의 삶을 잘 경영하며 행복한 중년 노년을 누리다가 흙으로 (혹은 천국으로) 잘 되돌아 가는데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수도나 수행을 몇십년 해도 삶의 현실에 직면하면 (육체적 욕망 감각 고통, 정신적 고뇌, 관계속에서의 이해의 충돌등) 저절로 되는 것은 없지 싶은데요?

지난 글에 골프 이야기를 좀 했었는데요, 그것 골프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던 줄 알고 있었지요? 그래도 조금만 더 할까봐요 🙂 위 항공사진에 보이는 파5는 내가 회원인 골프장의 소위 시그너쳐 홀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또 사람들이 훌륭하게 설계했다고 생각하는 홀). 드라이버를 200미터 이상 날리면 작은 개천을 건너 점 두개가 찍힌 장소에서 세컨 샷을 하게 됩니다 (점 세개를 향하여) 혹은 아이언으로 짧게 끊어쳐서 점 한개가 찍힌 장소에서 셋컨 샷을 하기도 합니다. 드라이버의 난조와 더불어 전술골프를 시도하는 요새는 주로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여 점이 한개 찍힌 장소에서 (비교적 자신있어 하는) 우드로 세컨샷을 점 세개쪽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개의 점이 찍힌 장소에서 앞 개울까지는 몇십미터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건너서 멀리 있는 두번째 벙커와 큰 호수까지는 거리와 방향도 넉넉하여 거의 문제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수차례 그것도 연속적으로 공의 대가리를 까면서 (탑핑) 세컨샷을 개울에 쳐박았습니다. 아무도 내 샷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또 라이도 좋았으며 (또 내게는 너무나 놀랍고 또 억울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내가 그자리에서 세켠샷을 어드레스 하면서 100% 모든 상황을 명백히 의식하고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찬찬히 생각하고 나서 (내면의 대화 후에 충분한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서) 샷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울로 풍덩 빠지는 꼴을 연속적으로 당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절망했어요. 그리고 무슨 대책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마치 그 작은 개울이 악마처럼 두려워졌습니다. 해답이 없는 기분이었어요. 지난 글에 골프를 잘 치지 못하는 내게도 한가지 강점이 있다고 했지요? 바로 이런샷을 치고도 성을 별로 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마음에 (이고에) 상처를 받긴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깨닫게 되었어요. ‘수행자가 생선장사를 잘 하려면 생선을 팔면서 (그와 관련된 희노애락에 시달리면서) 배우는 수 밖에 없지 다른 방법은 없으며, 100% 상황을 의식할 능력이 있고 또 충분한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100% 된다고 기대하거나 확신하는 것은 (때때로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라는 내게는 중요한 교훈이었어요. 아무리 정신을 바싹 차리고 최선을 다해서 가진 능력을 전부 발휘해도 (결과적으로는) 생각대로 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인생이 아닌가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궁금하지요? 어떻게 끝이 났는지 무슨 발전이 있었는지 🙂

우드클럽을 잘 다루어 160-200미터를 직선으로 쳐내던 ‘어제가’ 항상 지금의 내 실력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마치 수행자가 생선장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초보로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에요. ‘그 순간 그 장소 그 상황에서 나의 우드 실력은 50미터 앞 개울에 연속적으로 쳐박는 수준’이라는 것을 아픔과 혼란을 겪으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다시 그 자리에 몇차례 서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목표를 바꾸어 마치 초보 생선장수처럼 (이윤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몇 마리 팔고보자는 심정처럼) ‘무조건 공을 띄우기만 하겠다. 저 50미터 앞 개천 주변에 있는 우거진 잡풀을 넘기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공이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나는 성공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진심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이것 속이다가는 심하게 혼나게 된다고 지난번에 말했지요?

그때부터 작은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 세켠샷이 개울에 빠지지 않고 멀리 멀리 하염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요새는 자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요. 내가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골프의 여신은 뒤돌아서 나를 보게 될 것이며, 내 공은 (마치 마술과 같이) 다시 그 개천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이 웃기는 골프가 나를 겸손하게 하네요. 탁구나 마라톤을 빌어 이야기 했었어도 전달하려는 내용은 다를 바가 없었을꺼예요. 혹시 골프 이야기를 자꾸 한다고 기분이 언짢았었다면 미안합니다. 이곳에선 누구나 하는 평범한 스포츠일 뿐이에요. 다른사람 말의 본질을 잘 이해 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며, 이때 발생하는 자신의 반응을 자각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은 기술이라는 생각인데요 🙂

아는 것과 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과 또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오늘은 이만 줄여요. 또 만나요.

어제의 성공 오늘의 행복?

우연한 기회에 꽤 좋은 골프클럽의 회원이 되다보니, 어제 잘 나갔던 사람들과 (상당수는 현재도 잘 나가고 있는) 함께 라운드를 할 기회들이 종종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함께 여행을 해보면, 바둑을 두어보면, 도박을 해보면 그리고 골프를 쳐보면 그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고 하더라. 내 작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런 것 같다.

이 나라 전직 육군총장과 한 라운드를 했었는데, 물론 속으로야 한 가닥이 아직 있겠지만 겉으로는 (내가 느끼기에는) 겸손하고 조용한 중늙은이였다.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다만 내가 묻는 말에만 좋게 대답을 해주었다. 어깨에 아무런 계급장도 달려 있지 않아서 들어올리는 골프채가 가벼워 보였다. 내세우지 않고 바라지 않으며 위에 서려하지 않아 보이니, 종종 무지랭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또 때때로 아래에 서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무리없이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이 보였다. 한때 별들이 어깨 위에서 번쩍였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클럽의 멤버로 다만 골프를 함께 칠 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멋있고 또 부러웠다.

최근에는 아주 대단한 사람과 두어 라운드를 우연히 치게 되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장관 그리고 대단한 변호사로서 이나라 원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엄청나게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던 존경받는 정치인 법률가라고 하였다. 우리 아이도 한두 차례 만났었다고 하며 이 사람의 명성은 그 분야에서는 전설이라고 하였다. 첫라운드를, 내가 잘 아는 노부부와 더불어 4명이 함께 치면서 이 사람과 내가 골프 수준도 비슷하니 앞으로 종종 함께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면들을 보게 되었다. 클럽 회원 대부분이 이 사람이 누구인줄 알고 또 보기플레이어 수준이니 어떤 회원들과도 어울릴 수가 있을텐데, 이 사람은 거의 대부분의 라운드를 오직 한 사람, 어떤 한국이름의 회원과만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회원들의 온라인 예약 시스템에 훤히 드러난다. 그날은 아주 예외적으로 노부부와 내가 함께 치게 되었던 것이고.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했고 또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최근에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는등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차례 하였다. 어떤 것을 내게 물었는데 결국은 그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자주 기울었고 정작 내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럴수도 있겠지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 그는 이날 88을 치면서 자신의 최고 기록이라고 기뻐하며 한잔 하자고 하였다. 노부부는 먼저 떠나고 나만 함께 클럽하우스로 갔는데, 이 사람이 자신의 음료와 음식을 주문하고선 쓱 테이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보통은 한잔 산다. 굳이 최고 기록을 세운 날이 아니라도 그저 함께 클럽 하우스에 오면 보통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함께 음료와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 먹을래 인사치례 조차없이 혼자서 그냥 먹는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어 이사람 좀 이상하다. 왜 다른 회원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때 이 사람 혹시 게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위키피디아를 보니 스스로 고백하는 동성연애자라고 쓰여 있더라. ‘그러면 어때 우린 골퍼로서 필드에서 만나서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낼뿐인데… 어쩌면 이 클럽에도 게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있나? 내가 파트너가 좀 되주지 뭐 그래’ 이런 좋은 마음으로 두번째 라운드를 함께 하였다.

그 한국 사람이 같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열서너살 된 한국 남자 중학생 아이였다. 좀 놀랬다. 이 아이와 자주 그리고 오직 이 아이 하고만 골프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환갑이 훨씬 지난 사람과 그 남자 중학생이 친구처럼 같은 수준으로 노는 것이다. 아주 편하게 서로가. 내가 좀 더 놀랬다. 그는 첫홀에서 칩샷 실패를 하였다. 그런데 나와 다른 동반자가 퍼팅을 아직 끝내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그 자리로 되돌아가서 그린 한복판으로 칩샷 연습을 하는거라. 내가 몹시 놀랬다. 그리 길지 않은 내 골프경험에 그래도 수백명의 사람들과 수백 라운드를 했었는데 이런 짓을 하는 골퍼는 처음 보았다. 우아…

몇 홀을 계속하면서 이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어 조금씩 떨어져 걷던지 (이곳에선 카트 거의 안탄다) 아니면 일부 이야기를 못들은 척하게 되었다. 조금씩 불편해지는데… 가장 어려운 홀에 함께 도착했다. 그 아이에게 그저께 자신이 이곳에서 파를 했노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게 ‘그가 파를 했던 것이 맞다’는 말을 직접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때까지도 그저 좀 수다스러운 사람 정도로 느꼇기에 스스럼없이 ‘그렇다 이 사람은 그저께 라운드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이 홀에서 파를 기록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내게 다시 그 말을 반복하라고 하는거라. 내가 순간적으로 빡쳐서 ‘that’s enough’ 이라고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때 아마 이 사람이 좀 삐졌던가보다. 라운드 끝까지 그리 좋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하더만 별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그 아이와.

나중에 우리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 사람과 일어났던 이야기를 했더니 ‘워낙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고 또 지금도 대단한 변호사기 때문에, 설령 아빠가 본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매우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지 싶다’ (그러니 아빠는 괜히 배 아파 하지 마시라)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짧게 ‘인생이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행복하다. 한쪽이 비대하다고 인생의 다른면들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만 말하고는 더 이상 아이와의 설전을 피했다. 나와 아내는 안다. 학창시절 수많은 고객들에게 자동차를 팔며 억센 차도매상들과 상대하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던 아이. 수많은 다양한 친구들과 좋은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아이. 후진국들을 친구들과 오래 여행하며 그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좋아했던 아이. 그리고 킥복싱 트레이너로 또 수련자로 가르치며 얻어 터지며 사는 우리 아이는 (자기 나이에) ‘삶의 균형 잡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 수준에서 더 이상 가르치거나 말할 것이 없다 🙂

그 대단한 정치가 변호사, 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 과연 행복할까? 그 아이와 골프치고 큰 집으로 되돌아가 혼자서 밥먹고 무슨 훌륭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던데 그렇게 글 쓰면서 살면 과연 좋을까? 이 좋은 골프장에서 나같은 무지랭이, 100만원도 안하는 순고물차를 명차들이 즐비한 그 주차장 한쪽 구석에 아무도 안보게 살며시 황송하게 주차하고 다니는, 생긴것도 다르고 말귀도 잘 못알아 듣는 (청력의 문제만이 아닌) 내가, 클럽 챔피언부부 부터 카레먹는 넘들 그리고 골프에 미친 까칠이들과도 별 스스럼 없이 코스에서 어울려 희노애락을 나눌때 이 사람은 그런 자유가 없지 않은가? 그 명성과 돈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과연 골프에만 소용이 없는 것일까?

그저께는 어떤 전직군인과 한 라운드를 했는데 그는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게 무언가를 물으면 내 대답을 듣고서 그는 내게도 대답을 자발적으로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가 이렇게 물어서 내가 대답을 해주면 내 말 끝에 자신의 아이들은 몇인지 몇살인지 부연하여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 대부분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인데 참으로 중요한 예절이다. 물론 나는 늘 그렇게 해왔지 🙂 지금도 국방부에서 민간인 문관으로 일한다고 하였다. 아들 하나가 군인인데 올해말에 유엔군의 일부로 한국 비무장지대에 근무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입에 발린 감사의 말은 영어의 한계로 일단 뒤로 미루었다. 제대하기 전에 중국에 몇해 있었는데 그때 서울에도 몇차례 왔었다며, 중국 일본 한국의 오묘한 관계와 역학에 대해서 짧게 코맨트하며 관심을 보이더라. 나도 비록 의무였지만 한때 군인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어쩌다 우연히 좋은 샷을 날릴때 큰소리로 칭찬하며 인정해 주는 모습에 ‘이 사람 신사구나’ 싶었다.

집에와서 인터넷을 보니 고위장교로 예편하였고 주중국 대사관 무관으로 있었던 것 같았다. 짱께 장교(장군)들과 찍은 멋진 사진이 인터넷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의 계급이나 업적 그리고 경험을 내게 떠벌리지 않았다. 아마 내가 묻지 않으면 그는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중립적인 (한국에 관한) 주제에만 관심을 적절히 표명할 것이다. 그도 어깨가 가벼운 사람인듯 하였다. 어제의 계급으로 살지 않는 사람. 겸손하고 열린 그리고 외교관처럼 멋진 매너의 소유자라 내 적성에 딱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라운드가 기다려진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행복과 관련이 있나?
1. 관련이 있다 – 어제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해 오늘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2. 관련이 적다 – 어제의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오늘의 삶에서 (지금 속한) 시간과 장소에 적절한 언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은 아마 더 힘들게 될껄 🙂
3.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 어제에만 사는 사람들에게는.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오늘도 없고 내일은 더욱 없을 것이니. 이미 죽은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초보 골퍼지만 글을 마치면서 한마디 부연 하지 않을 수 없다. 넣으면 당연한데 못넣으면 기분이 뭐같은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되면 내 수준의 골퍼들은 ‘안들어가면 어쩌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며 좋지 않은 결과와 그에 따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골프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한가지 좀 잘하는 것이 있다. 나쁜 샷을 치고도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이 나빠서 짧은 퍼팅이 (핀에 맞고 튀어 나오든지) 들어가지 않아도 조용히 줏어들고 다음 홀로 걸어 가지 아쉬워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무언가를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냥 내 실력으로 받아 들인다. 물론 나중에 연습하는 정보로는 활용한다. 골프의 신은 아주 감정적이고 섬세한 여신이다.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나중에 돌려 준다. 황송하게 더 많이 줄 때도 있다. 하지만 건방을 떨면 금세 눈치 채고 처절한 보복을 가하는 무자비한 여신이다. 그저께 내 동반자가 첫 2홀을 버디로 시작하였다.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그때 그 동반자 머리에 어떤 생각이 오고 갔을까? 골프의 여신이 눈치 채고 그녀의 본색을 드러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절하고 비참한 보복을 당한 끝에 100을 넘겨 스코어 카드를 찢어 버리고 (더불어 찢어진 가슴을 감추며) 그는 클럽 문을 나서더라.

나는 요새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오면 ‘안들어갈 수도 있다. 안들어 갔던 적도 많았다. 들어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들어가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40펏 이상을 밥먹듯이 하던 (내게는 무척 어려운) 그 그린에서 요샌 심심찮게 20대 후반 펏으로 라운드를 마무리 한다. 물론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여신이 혹시 마음을 바꾸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

그저께 내가 중매하여 20년 이상을 잘 사는 친구부부에게 초대받아 저녁을 함께 하였다. 어떤 나이를 넘게 되니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더라. 이 글을 빌어 연배 많은 그 친구에게 한마디 하련다. 혹시 위에서 말한 짧은 퍼팅하는 생각을 하면 어떨까? ‘잘 안될 수도 있다. 잘 안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되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을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 그리고 나는 좋은 미래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면 탄수화물을 멀리하기가 어쩌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더 나은 무었들로 채우기가 쉬워질지도 모른다. 성공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오는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인생에서도 골프에서도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 확신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친구, 그대와 내가 보통 인연은 아닌듯 한데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래요.

굳어지면 죽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소위 말하는 클리세인가?

시작하기전에 일단 한마디 하자면, 어떤 사람이 말했다더만 ‘If common sense is that common, why is it so hard to see it?’ ‘상식이 정말 상식이라면 왜 그렇게 상식을 보기가 어려우냐?’.

요즘 드는 생각이, 세상 사람들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아는 것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이런식으로 좀 객관적으로 단순하고 명확히 구분된다면 얼마나 인생이 더 쉽고 덜 복잡하겠는가 싶다.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섞여 있고,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아는지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절대적으로 틀리거나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은 드물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얼마만큼 맞고 얼마만큼은 잘 모르겠고 (혹은 틀리고)’를 좀 객관적으로 심사숙고하기 보다는 (이것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오직 자기가 보기에 맞는 부분만을 내세우는데’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틀린 생각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내서 말하면.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낸 주장만을 보자면… 이러니 세상이 쉽지 않고 복잡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러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덧붙이는 두가지 가르침은, (지금 나의) ‘생각이나 주장은 변한다는 것’과 또 ‘자기 자신이라고 (자아, ego) 그렇게 움켜지고 주장할 그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정말?

다시 굳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되돌아 가보자. 최근 신문에서 읽은 내용중에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것은 고집과 불만이고, 줄어드는 것은 웃음과 인사’라는 말이 있었다. 고집과 불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자기 주장’을 적당한 상황에 적절히 하는 센스를 점점 잃음과 동시에, 그것의 절대적인 양이 많아지니 배우자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똥고집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2차적인 반응이 불만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자기생각 자기주장은 나이가 들면 점점 많아지게 되어 있다. 마치 주름살이나 뱃살처럼. 가만히 두면 저절로 쌓이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자아, ego’ 아닌가? 그것의 표출이 고집이고 불만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어렴풋이 깨달아도 그것과는 상반 힘이 (세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별 소용없이 무너지며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머리만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heart & soul이 (영혼이) 동시에 굳어지는 모습이, 고집과 불만이라는 것을 우리들 모두가 자각하기를 바란다.

몸이 굳어지는 것도 막기 어렵고 또한 위험한 일이지만, 머리와 영혼이 굳어지는 것은 더욱 막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굳어지고 있는지 또 이미 얼마나 굳어졌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고, 종종 굳어지지 않은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에 집중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확신하면 위험하다. ‘이래도 되는가?’ ‘이것이 맞는가?’ 늘 좀 불안해하면서 궁금해하고 또 자연스레 비교도 하고 검증도 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더 낫다. 그러면 굳어지기 어렵다.

그런데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불안한 부드러움 보다는 덜 불안한 굳어짐쪽으로 자꾸 가면서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래도 저래도 좀 안되는 것 처럼 보이지 않나? 그래서 붓다께서는 만족스럽고 여한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하신것이지 싶다.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라고 가르치셨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