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 Win – 가야금과 고토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

기념 –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

내가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던 식물원에는 플라그(기념동판) 붙은 장소나 벤치가 많다. 그중에는 매우 오래된 플라그도 있는데, 몇개가 기억이 난다. ‘에니가 앉던 곳’ (Annie’s Seat) 이라는 플라그가 붙은 벤치는, 지금부터 백년도 훨씬 전에 이곳에서 일하던 조경사의 아내가, 식물원에서 일하던 남편을 이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곤 했었다고 동판에 기록되어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다.

130년쯤 전에, 물에 빠진 동생을 구출하려다가 익사한 10살 형을 기리는 동판이 박힌 벤치도 있다. 아름답고 좋은 장소에 있어서, 나도 그 벤치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출퇴근때 자주 지나치는데 ‘아우는 잘 살다가 죽었을까?’ ‘자기를 구하려다가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했었을까?’ 그런 생각이 뜬금없이 떠오르곤 했었다.

옛날에, 조선시대 종교 박해에 관한 책자를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라에서 믿지 말라는 종교를 믿는다고 신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얼마나 나쁘게하고 또 심하게 고문을 했었던지 그 묘사들을 읽으면서 진절머리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가지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이야기는, 힘이 장사이던 좀 무식한 시골청년 신자가, 때리고 주리를 트는 악랄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겠노라고 잘 버티고선 감방으로 되돌아 와서 많은 신도들에게 귀감도 되고 또 칭찬을 받았었다고 하는데, 이 젊은이는 ‘때리는 것은 참겠는데 배고픈 것은 정말 참기가 어렵다’면서 감옥 바닥에 깔아 놓은 그 더럽고 오래된 가마니를 (짚으로 만든) 뜯어서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죽고 없는 먹새 버둑이 (레브레도리트리버 종) 녀석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지금도 퍼먹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 ‘정말 배고프면 죽는 것보다 괴롭구나’ 이해가 된다.

오늘 우연히 신문에서 ‘절두산성지’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그 책자를 읽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목을 자르던 산. 150여년 전에 병인박해라는 종교 탄압 시기에, 약 8,000명의 어떤 종교의 신도들이 참수를 당했었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 들으면, 그때는 정말 무식하고 무시무시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자주 있는데, 이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종교를 믿었었네. 참고로, 무조건 잡아다가 죽인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버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고문을 견디다가 결국은 목이 잘리는 것을 기꺼이 ‘선택’했던 신도들의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이렇게 다른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또 종교나 신념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머리로 알지만, 이런 실화들은 늘 우리 가슴에 무언가 뭉글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이 원래부터 이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회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어떤 부산물적인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들을 붓다께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고 어떤 가르침을 주십사 한다면 과연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 오늘, 내가 가끔 언급하는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가르치는 녹음된 설법을 한두개 들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자신을 포함한 붓다를 따르는 사람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자신이 진전을 이루고 또 어떤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때, 바로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정작 수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것 참 어려운 이야기 아니냐? 목표를 정하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죽기 살기로 이루어 나가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가 무척 어렵지 않겠나 싶은데, 목표나 과정에 정력을 쏟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니… 그럼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합니까? 만약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수행은 삶 자체요 과정이지, 그것으로 도달할 목표도 결과적으로 획득할 대상도 사실은 없다’ 이 비슷한 (계속 모호한) 대답을 듣게 되지 싶다.

한 이십여년 전에, 어떤 종교의 수장을 (말그대로, 한국에서는 그 종교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이곳에서 며칠 모시면서 가까이에서 보았던 적이 있었다. 이분이 그 연세에도 여러모로 열리고 또 깨인 분이라는 것을 자주 옅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 이분이 떠나기 전에, 여기에 있는 한국대사가 이분을 위해서 만찬을 열었었다. 나도 참석 했었다. 만찬이 끝나고 잠시 오락(?) 시간이 있었다. 마침 어떤 젊은 여성 공무원도 우연히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 연세 높은 어떤 종교의 수장께서 가라오케를 하시며, 이 젊은 여성의 팔과 어깨등의 신체부위를 성추행으로 보일만큼 이리저리  만져대는 것을 나는 바로 옆에서 보았다. 내가 좀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지금이면 아무도 그렇게 못하고, 만약 그랬다가는 성추행으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한 특정인의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그 종교 전체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한 그런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와 나 그리고 당신, 우리 모두는 한계가 많은 ‘다 같은’ 인간이기에…

요새처럼 일본과 어르렁거릴 때,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순신장군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좀 많지 싶다. 그런데 그분과 앉아서 대일본관, 해군작전, 군민협동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면 현대의 한국 그리고 한국해군에도 도움이 될 훌륭한 말씀들을 듣게 되지 싶다. 하지만, 그분과 여성관, 가족관, 평등한사회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내 짐작에 거의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 싶다. 이순신장군을 폄하하는 이야기 아니다.

그대에게 종교란 무었인가? 무었을 기대하며 또 무었을 얻고자 하는가? 어떤 변치 않는 가치나 도전 받지 않는 절대적인 무었이 거기에 있고, 또 그것을 배워 자신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건 구현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왜?’ 라는 질문에서 붓다의 구도가 시작 되었고, 그 질문에 대한 최고의 대답이 붓다의 가르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가 아니다.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직업삼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과 또한 그들을 추종하는 ‘좀 무지한’ 사람들이 떼지어 하는 짓이 그 가르침을 ‘종교’로 만들었던 것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띠게 만들었겠지.

잘 해보세요. 나는 관심 없어요 🙂

리디아 고

일전에 ‘인경씨’이야기 하면서 한국계 뉴질랜드 교포골퍼 ‘리디아 고’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다.

리디아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때 뉴질랜드로 이민온, 지금은 이십대 초반이 된, 뉴질랜드인 프로골퍼다. 불과 일이년전만 하여도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고수했던 그야말로 세계최고의 여자 골퍼였다. 아내와 나도 LPGA골프 중계를 종종 보았었는데, 아내는 리디아의 팬이었다.

리디아의 아버지가 뛰어난 아마추어 골퍼인 연유로 어릴때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정확한 샷들과 좋은 숏게임으로 매이져를 비롯한 수많은 LPGA챔피언쉽에서 우승을 하였다. 스물이 덜 된 나이에 아마 백억은 벌었지 싶다.

뉴질랜드에서는 ‘우리의 리디아’ 하면서 누구나 그녀를 좋아하고 (플레이하는 태도도 좋고 또 티비에 인터뷰할때도 어른스럽고 튀지 않아서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았다) 그녀의 추락을 모두들 안타까워 한다.

나는 그녀의 경이로운 성공을 놀라워하면서도, 티비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때면,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완벽하고 성숙한 대답’을 늘 ‘비슷한 내용과 톤’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무언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 아내는 괜히 샘내고 깍아 내린다고 하더라마는 🙂

한번은 티비에서 좀 특집으로 ‘리디아 고’에 대한 도큐멘터리 같은 것을 방영했던 적이 있었다. 수많은 훌륭한 성취와 몇 차례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참고로, 그녀는 14세 되는 시절에 LPGA 캐나다오픈을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 등장하여, 17세에 세계랭킹 1위 그리고 18세에 매이저 챔피언쉽에 우승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 시절이 그녀의 ‘프로골프’ 전성기였던 셈이다. 인터뷰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뭐 특별히 좋아 하는 음식이나 잘 먹는 것이 있니?’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고 해주시는 것 다 잘먹어요. 그런데 한달에 한번 아이스크림 한 개를 먹을 수 있는데요 좋아해요. 하지만 어떤 달은 안먹고 그냥 넘어가는 달도 있어요’.

내가 이말을 듣는 순간에 ‘오잉 이게 무슨 말이냐?’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넌 무슨 기계 아니면 수도승 할아버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부모와 가까운 친척등이 소위 ‘리디아 군단’을 조직해서 (사실상 작은 회사와 같지 않나? 그 수익이) 그녀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단지 골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관리’하신다고 하더라. 그런 ‘관리’의 결과로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저 리디아 하고 싶은데로 놓아두었었더라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가 없었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 이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순종적이고 착한 한국소녀’ 리디아에게 지긋이 붙어 있는 캐디가 없는거라. 그야말로 캐디 갈아치우기를 밥 먹듯이 하더라. 그 다음에는 코치 갈아치우기. 이 기사를 쓴 데이비드 리더베트라는 코치는, 내 기억에 타이거 우즈 같은 사람도 코치한 세계적인 코치인데, 이 사람을 갈아치우는 것은 물론이요 그 뒤로도 수 많은 세계적인 그리고 또 듣도보도 못한 코치들이 왔다가 가는거라. 이상하지 않나? 리디아의 어두운 뒷면? 아니지. 리디아 뒤에서 누군가가 하는 짓이었지. 캐디, 코치 바꾸기를 밥먹듯이 하고난 다음에는 장비 바꾸기에 돌입.

나의 아내, 자칭 ‘나를 알고 또 내 수준에 맞는 유일하고 무료인 골프 코치’께서도 이야기 하기를 ‘골프는 일관성의 운동이니 제발 이랫다 저랫다 쥐랄을 좀 하지말고 지긋이 해보라’는 골프 최고의 진리를 힘주어 여러번 말씀하셨다. 핸디도 없는 내 아내도 아는 진리를 리디아 뒤에 있는 그 사람들은 왜 ‘더 이상’ 모르는 것일까? 이전에는 ‘아이스크림 한달에 한개’처럼 극단적으로 일관성을 추구 하더만.

리디아 성공의 요인이, ‘리디아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그 과정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하는 바람’에 이제 리디아 실패의 요인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순종적인 ‘아이’ 리디아. 스물이 넘었는데도,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허락하지도 않고 또 도와주지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왜요? 눈이 잘 안보여요 🙂 내가 사이비 도인으로 리디아의 추락을 보면서 딱 한마디 했었다. ‘그녀가 이제 girl에서 woman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 세상 그 무었도 이 과정을 세우거나 변화 시킬 수가 없다’.

이 기사에서, 세계적인 코치라는 데이비드 리더베터는, 그녀의 부모를 비난하며 ‘그 무지함이 실로 상상하기 어렵다’고 표현했었다. 영어권에서는 정말 심한 비난이다. 물론 전에 코치하다가 잘렸으니 사심도 좀 있겠지, 하지만 데이비드 리더베터의 표현에 따르면 ‘부모의 무지가 리디아를 세계최고의 골퍼에서 이제는 평범한 골퍼로 추락시킨 요인’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리디아를 관리하여 큰 성공을 이루어 냈던 그 똑똑한 사람들이 한가지 못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어떻게 내려 오는가’ ‘어떻게 놓아 주는가’ ‘어떻게 그녀가 행복하게 살게 도와 주는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 아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또 알려고 한 적도 없지 싶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것들에 대한 해답은, 그런 ‘관리 잘하는 사람들’로부터 결코 나올 수가 없다. 바로 이게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한 인간이 두가지 상반된 것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누군가를 ‘관리’하면서 오래 살다보면 세상을 ‘관리의 시각’으로 보게 되고 흡사 인간의 삶이 ‘관리의 대상’으로 착각하여 보이게 되는 것이다.

‘관리’하면 떠오르는, ‘스카이 케슬’이라는 드라마를 한두편 본 적이 있다. 인기도 좋고 또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훌륭하십니다. 계속 그렇게 사세요… 그런 사람들이 들으면, 내 행색을 아래위로 흩어 보면서, 콧웃음을 치거나 펄쩍 뛰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다 가난을 면치 못한 꼴이다. 부유함이 무었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110원 가지면 100원 가진 것보다 부유하다고 일차원적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바로 그것이 가난인 줄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인의 카르마인가 싶다. 카르마에 좌지우지 되고 있을때는 당사자가 그 카르마를 자각하기가 정말 힘들다.

리디아가 인터뷰하는 말을 들으며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린 것이 참 성숙하다’ 좋게 생각했었을 것이다. 같은 한국인인 내가 그때 느끼기에는 ‘저것 누가 써 준 것을 외워서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말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녀 뒤에 있는, 그녀를 관리하는 그 자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던 것이라 짐작했었다. 어리버리한 리디아. 아니 어리버리하게 만들어진 리디아. 정말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녀도 예외없이 겪어야 하는데, 그 뒤에 있는 ‘취한’ (술만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요) 부모와 관리전문가들 덕분에 그 과정이 험난해 보인다.

‘마이 해뭇다 아이가? 가가 고마 대학 가서 연애도 하고 술도 퍼묵고 공부에도 시달리고 하면서 정상적으로 커구로 이제라도 좀 나조라.’ 이것 지금 안하면 장차 그 백억을 다 써도 행복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결국은 행복하자고 모두들 이런 쥐랄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행복이 또 다시 트로피를 ‘당장’ 들어 올리는데에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카르마가 카르마인 것은, 카르마에 휘둘리고 있을때 그 당사자가 그것이 카르마인 줄을 깨닫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지만, 만약 깨닫는다면, 그 순간부터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덴마크영화 Lykke-Per, 네번째 이야기

페르가 파탄에 이르는 장면,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역시 카르마가 주제입니다. 그 유대인 가족과 매우 가깝게 된 페르. 아름답고 이지적인 딸 야코버와는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고, 돈 많은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등은 페르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페르가 꿈에도 그리던 그 프로젝트를 이제 시작할 단계에 이르렀어요.

그 당시 덴마크에서는, 이런 대규모의 토목프로젝트들이 정부기관의 검토를 거쳐 사전 승인을 얻어야 했어요. 그 유대인 가족이 손을 써서 그 과정을 쉽고 빨리 끝내게 도와주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장기적인 엄청난 이윤을 위해, 사람과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는 큰 사업가들입니다. 페르는 그들의 소개에 따라서, 정부기관에서 이런 일을 맡아서 하는 그 고위 공무원을 만나러 갔어요. 딱 한사람이 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아!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하필이면 이 공무원이 군인장교 출신으로 ‘권위나 위계질서’ 같이 페르가 너무도 상처받고 싫어하는 그런 것들을 따지는 인물이었던 거예요.

약속한 두번째 방문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 고위 공무원. 듣자하니 자기를 끼워줘야만 승인을 고려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것 같군요. 자존심 강한 페르는 (사실은 ‘상처가 큰 페르’가 더 맞는 표현이겠지요) 이 고위 공무원의 태도에 불쾌해하며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받았다고 느낀 그 모욕의 몇배를 절대적으로 도움을 받아야만할 이 인물에게 되돌려 주고서 사무실을 나옵니다. 큰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업가와 주변 사람들은 경험도 많고 연줄도 많고 또 돈도 많습니다. 다시 한번 페르를 위해서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이번에는 모든 투자자들을 전부 초대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그 고위 공무원이 오기로 되어 있어요. 몰론 돈을 좀 주었겠지요. 한가지 조건이면 이 프로젝트를 그자리에서 승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즉시 컨소시움을 만들어 페르의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게 되는 거지요. 그 한가지 조건은, 페르가 지난번에 했던 모욕적인 말에 사과를 하는 것이예요. 갑자기 이런 사실을 듣게 된 페르는 당황합니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면, 이제 그의 엄청난 행운이 어마어마한 행복으로 바뀔 절대적으로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 고위 공무원이 약속한 시간에 방으로 들어 옵니다. 사과의 시간. 페르가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 순간 그를 평생 따라 다니던 망령이 다시 그를 에워싸며 지배합니다. 페르의 머리가 휘리릭 돌아 버리는군요. 더 심한 모욕을 그 공무원에게 퍼붓고는 페르는 그 자리를 뜹니다. 어쩌면 아버지(같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하고 싶었던 그런 반항의 말이었던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오고 말았어요. 아무도, 어떤 돈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모두 떠나고 그 돈 많은 유대인 가족도 이제는 ‘아! 이 사람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함께 이런 일을 도모할 상대가 아니다’ 깨닫게 되고 손을 듭니다.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었네요. 그 엄청난 행운을, 페르는 자기손으로, 마치 유리병을 콘크리트 바닥에 있는 힘껏 내던져 산산조각 내듯이, 송두리채 박살 내고야 말았습니다. 페르 나름대로는 할 말이 많겠지요. 하지만 원래 세상 돌아가는 것이 그렇답니다. 이곳에서 하는 말이 있어요. ‘백가지의 성공은 한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지만, 백가지의 실패는 백가지의 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다’.

야코버도 떠나고 말았을까요? 아름답고 품위있는 야코버는 일편단심 페르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또 그 결과로 성공의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렸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나의 페르입니다. 돈은 내게도 있어요. 그리고 나에겐 페르만 있으면 됩니다. 야코버는 페르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둘만의 영국여행을 계획합니다. 그 계획을 의논하던 카페에서, 페르는 야코버에게 갑자기 (약혼의) 파혼과 결별을 선언합니다. 페르의 마음이 변했을까요? 아닙니다. 야코버를 사랑하지만, 페르의 ‘카르마가 속삭이는 바’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야코버에게서 받는 사랑은 동정이며, 또 이런 비참한 자신에게 야코버를 묶어 두는 것은 자신에게는 참기 어려운 모욕이 되는 것이겠지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가 살아온 삶이, 그가 성장하고 자라며 (어떤 환경이나 이유로 말미암아) 생긴 ‘마음을 쓰는 습관’이 그로 하여금 이런식으로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럴때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그래서 ‘습관이 카르마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카르마가 팔자를 바꾼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파혼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 하던 야코버는 이제 (모든) 결혼을 포기합니다. 그녀는 이미 페르와 영원한 가약을 맺었었습니다. 페르와 사이에서 임신한 아기를 (그에게 말해 줄 기회조차 없이 그는 떠나고 말았어요) 아무도 모르게 유산시킵니다. 되돌아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부탁을 합니다. ‘제가 물려 받을 몫의 재산을 미리 좀 주시면 안되겠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싶습니다.’ 야코버는 교장선생님이 되어 큰 heart로 수많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큰 엄마가 됩니다.

오늘 이 영화 이야기를 마치는 것이 좋겠네요. 계속합니다. 페르는 자기의 카르마와 그로 말미암아 한계 지어진 자신의 삶을 차차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의 삶에 더 이상 자신의 카르마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그들로부터 멀리 떠나 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사는 삶을 선택합니다. 참 안타까운 운명이지요? 마음 아프군요. 하지만 그는 이런 삶에서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페르와 야코버. 파혼한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만, 서로의 소식은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이제 세월이 흘러서 두 사람 모두 많이 늙었습니다. 페르가 야코버의 학교에 편지를 보내 그녀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페르는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어요. 야코버는 먼 길을 달려 페르가 홀로 사는 그 외딴 집으로 찾아옵니다. 페르는 야코버를 위해서 차를 끓여 떨리는 손으로 부어 줍니다. 그리고 오랬동안 조금씩 저축했던 작은 유산을 야코버의 학교에 기부합니다. 그의 풍차 모델과 설계도도 함께요.

내가 당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가 묻는 페르에게 야코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과 더불어 나누었던 기쁨과 슬픔이 나의 삶을 영글게 했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어요. 내 인생에 일어난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알게 되서 좋았습니다.’  자코바는 그 돈을 받고나서 페르의 손을 잡으며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말합니다. ‘그 학교는 당신과 내가 함께 세운 것이나 다를바가 없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당신과 나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아요’ 이렇게 말이예요. 영화는 이쯤에서 끝이 납니다.

이 영화와 관련된 몇 가지 단상들은 다른 기회에 이야기 하지요.

덴마크영화 Lykke-Per, 세번째 이야기

먼저, 영화 후반부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요. 페르는 결국은 자신의 카르마로 말미암아 (상세한 내용은 다음편에) 그 큰 행운을 모두 잃고서 아무런 행복도 찾지 못하고 고향 시골마을로 거의 폐인이 되어서 되돌아 옵니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 가셨어요. 하나 있는 형과는 지난 충돌속에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좀 떨어진 마을에 어떤 성직자 가족이 있는데요. 순박한 시골처녀 딸이 있어요. 그녀는 페르가 누군지 어떤 화려한 과거가 있는지 들어서 알고 있어요. 자신에게는 언감생심이기도 하고 또 무언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하지만 절망에 빠진 페르를 동정하기도 하고 또 페르의 적극적인 구애에 결국은 마음을 주고 결혼을 합니다. 순박하지만 들꽃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부인입니다. 아름다운 딸들과 사랑스러운 아들이 생기고, 가난하지만 함께 오손도손 살아요. 부인이 생활력이 강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데요. 개미 부인과 베짱이 남편 🙂


페르는 아이들이 차차 자라남에 따라, 자신의 아들을, 자기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린시절 자신을 대하던 바로 그런 식으로 대하는 자신을 점점 발견하게 되요. 아! 슬프고도 힘든 카르마입니다. 페르는 마음이 아프지만 동시에 어떻게 달리 해보지도 못하는 자신을 안타까워 합니다. 한번은 어린 아들이, 아빠가 만든 풍차 모형을 (엔지니어링 모델입니다. 장난감이 아니고) 좀 심하게 돌리며 가지고 놀다가 그만 부수고 말았어요. 페르는, 흡사 자신에게 싫은 것을 오랫동안 늘 강요했었고 또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던 자신에게 빰을 때렸던 그의 아버지처럼, 아이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며 폭발합니다.

어쨋던 아이 엄마, 그 순박하지만 아름다운 심성의 부인이 아이를 달래서 아빠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하게 합니다. 엄마가 조언한데로, 아이는 작은 나무가지등으로 나름대로 힘껏, 부서진 ‘아빠의 풍차’를 대체할 ‘아가의 풍차’를 만들어 아빠의 서재에 들고 갑니다. 페르는 그 아가의 풍차를 보는 순간, 모든 의미와 상황을 깨닫고서 아이를 안으며 마음속으로 크게 슬퍼 합니다.

얼마 지나서 어린 아들의 생일날이 왔어요.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가족 모두가 케잌도 먹으며 파티를 합니다. 페르는 이때 불현듯 자리를 뜹니다. 일전에 아내에게 말했었어요. ‘당신과 아이들은, 내 카르마를 따라서 나와 함께 침몰하면 안된다’고. 페르는 깨달은 것 같아요. ‘아! 사랑하는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 이제 내가 떠날때가 왔구나’ 말이예요.

떠나기 전에 페르는 아버지 묘지를 찾아갑니다. ‘아버지 이것이 당신이 원했던 것인가요? 이제 속이 시원하세요…’ 하면서 마음속으로 오열합니다. 나도 참 슬펏어요. 나도 애비고, 나도 아버지가 있었고, 우리 모두 인간적인 한계와 카르마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니, 나 역시 이런 잘못과 카르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문득 ‘아빠가 잊었다’라는 글이 기억이 났어요 (아래에, 원문과 내가 그 의미를 전달하려고 나름대로 의역한 것이 있어요).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에게 편지를 썻어요. 지난 시절 아이에게 내가 저질렀던 잘못과 어리석음에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어요. 그리고 아내에게는, 그대의 사랑으로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다며 감사했어요.


FATHER FORGETS  by W. Livingston Larned

Listen, son: I am saying this as you lie asleep, one little paw crumpled under your cheek and the blond curls stickily wet on your damp forehead. I have stolen into your room alone. Just a few minutes ago, as I sat reading my paper in the library, a stifling wave of remorse swept over me.
Guiltily I came to your bedside. There are the things I was thinking, son: I had been cross to you. I scolded you as you were dressing for school because you gave your face merely a dab with a towel. I took you to task for not cleaning your shoes. I called out angrily when you threw some of your things on the floor. At breakfast I found fault, too. You spilled things. You gulped down your food. You put your elbows on the table. You spread butter too thick on your bread. And as you started off to play and I made for my train, you turned and waved a hand and called, ‘Goodbye, Daddy!’ and I frowned, and said in reply, ‘Hold your shoulders back!’ Then it began all over again in the late afternoon. As I came up the road I spied you, down on your knees, playing marbles. There were holes in your stockings. I humiliated you before your boyfriends by marching you ahead of me to the house. Stockings were expensive – and if you had to buy them you would be more careful! Imagine that, son, from a father!
Do you remember, later, when I was reading in the library, how you came in timidly, with a sort of hurt look in your eyes? When I glanced up over my paper, impatient at the interruption, you hesitated at the door. ‘What is it you want?’ I snapped. You said nothing, but ran across in one tempestuous plunge, and threw your arms around my neck and kissed me, and your small arms tightened with an affection that God had set blooming in your heart and which even neglect could not wither. And then you were gone, pattering up the stairs. Well, son, it was shortly afterwards that my paper slipped from my hands and a terrible sickening fear came over me. What has habit been doing to me? The habit of finding fault, of reprimanding – this was my reward to you for being a boy. It was not that I did not love you; it was that I expected too much of youth. I was measuring you by the yardstick of my own years.
And there was so much that was good and fine and true in your character. The little heart of you was as big as the dawn itself over the wide hills. This was shown by your spontaneous impulse to rush in and kiss me good night. Nothing else matters tonight, son. I have come to your bedside in the darkness, and I have knelt there, ashamed! It is a feeble atonement; I know you would not understand these things if I told them to you during your waking hours.
But tomorrow I will be a real daddy! I will chum with you, and suffer when you suffer, and laugh when you laugh. I will bite my tongue when impatient words come. I will keep saying as if it were a ritual: ‘He is nothing but a boy – a little boy!’ I am afraid I have visualized you as a man. Yet as I see you now, son, crumpled and weary in your cot, I see that you are still a baby. Yesterday you were in your mother’s arms, your head on her shoulder. I have asked too much, too much.

아빠가 잊었다.  W. Livingston Larned 지음

아가야, 네가 곤히 잠든 방에 잠시 들어와, 네게 마음으로나마 전해 보려는 아빠의 이야기란다. 잠시전에 서재에서 신문을 읽다가 후회막급한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네 머리맡에 왔단다. 깨닫건데, 나는 네게 자주 성을 냈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때, 신발을 잘 닦지도 않고 또 무언가를 흘리는 모습을 볼때마다. 그리고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도, 음식을 흘리거나 식탁에 팔을 올리고선 마구 퍼먹는 모습등을 나무랫었지.
내가 출근하려고 나설때, 너는 뒤돌아서 손을 흔들며 ‘아빠 잘 다녀와’ 인사를 했었다. 나는 그때조차도 ‘어깨 펴라’고만 말했었다. 이런 일이 오후에도 반복되었지. 내가 퇴근하는 길에, 친구들과 놀고 있는 너를 잠시 지켜보다가 구멍난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때, 나는 네 동무들 앞에서, ‘이 비싼 양말을… 네 돈으로 사면 그렇게 함부로 신겠어?’ 이렇게 망신을 주면서 내 뒤를 따라서 집으로 되돌아 오게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빠로서 해야할 짓들이 아니었던 것 같구나.
기억하니? 내가 서재에 앉아 있는데, 네가 상심한 눈빛으로 슬그머니 다가 왔을때, 나는 신문너머로 너를 보고서 또 무슨 방해를 하려는가 생각하면서 ‘뭘 원하니?’ 이렇게 짜증을 냈단다. 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서 내 목을 감싸 안고서 내 빰에 뽀뽀를 해주었어. 내 목을 꼭 감싼 네 작은 팔에서 나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흡사 신이 네 마음에 심어 놓은 꽃과 같은, 너의 애정과 사랑을 느꼈었단다. 네가 서재를 나가 계단 손잡이를 두드리며 네 방으로 올라 갔을때, 나는 신문을 손에서 떨어트리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는 것을 느꼈단다. 내가 도대체 왜 너의 작은 잘못들에 그렇게 지나치게 반응하며 크게 꾸짖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었던지. 그것이 아빠가, 아직 어린 아이인 네게 준 상이었던 것인지… 아가야,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단다. 아빠가 아직 어린 네게, ‘내 자신의 어른 기준’을 들이대며 너무나 많은 것을 어리석게도 기대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단다.
네가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빠는 안단다. 네 작은 가슴속에, 흡사 대지를 밝히는 새벽의 태양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심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 아까 네가 서재에 달려와 내게 뽀뽀하며 말없이 행동으로 표현했던 ‘아빠 잘자’에서도 나는 그것을 보았지.
다른 아무것도 이밤에는 중요하지 않단다 아가야. 나는 어둠속에서 네 침대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가 네게 했던 짓들을 뉘우치며 후회하고 있단다. 네게 이런 이야기를 설령 말로 한다고 해도 어린 너는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아. 그렇지만 또 내가 지금 이렇게 한다고, 네게 저질렀던 나의 어리석은 짓들에 대한 합당한 속죄가 될지는 아빠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아가야 아빠가 약속하마, 내일부터 네게 진짜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마. 너의 좋은 동무가 되어주고, 네가 괴로울때 나도 괴로워하고, 네가 웃을때 나도 웃으마. 그리고 내가 늘 뱉었던 그런 꾸짓는 말들이 입안을 맴돌때 나는 혀를 깨물고 참으마. 그리고 나는 주문처럼 외우도록 하마.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가, 다만 어린 아이’라는 것을. 지금 작은 침대에서 곤히 잠자는 너를 보며, 내가 너를 장성한 어른으로 착각했던 그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있단다. 어제 네가 엄마품에 안겨 머리를 엄마 어깨에 기대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너무도 많은 것을 기대했었고 또 요구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