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kha 두번째 이야기

붓다께서 안락함을 버리고 출가 수행 하신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괴롭고 고통스럽고 허무한 (평생을 허덕이다가 죽는), 그 ‘만족하기 어려운’ (‘두카’) 삶을 목격하고 어떤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보통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되신 직후 사람들에게 주신 첫 가르침이 그 해결책이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후세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각색되고 제멋대로 가감된 붓다의 모습 속에서, 전지전능한 신으로 묘사된 모습 이외의 어떤 일관된 훌륭한 성인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옛날, 사람들이 큰 돌이나 큰 나무 그리고 달과 별에 기도하던 시대에는 그런 것들이 필요했었고 또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21세기 인터넷의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 허블망원경의 시대이니, 가장 인간적이고 전혀 가감없는 붓다의 진실한 이야기만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이 그나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붓다께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무었이었을까? 유튜브 혹은 블로그? 아니고, ‘고민’이었다. 무슨 고민?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울텐데, 내가 굳이 왜 그 힘든 것을 해야만 할까. 그냥 나 혼자 이대로 살다 죽으면 편하고 좋은데’ 바로 이런 고민이었다. 붓다를 신으로 만들고 그가 하늘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구원하기) 위해서 내려온 존재라고, 상업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말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후대의 학자들이 밝혀 낸 사실이다.

내가 21세기 인터넷이니 어쩌니 했는데, 지금 강원도 깊은 산꼴에서 화전민으로 평생을 산 80 노인을 만난다고 상상해 보자. 같은 말을 쓰니 함께 일상생활을 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인터넷 전문가가 이 노인에게, 복잡한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쳐 최근에 개발된 어떤 인터넷 기술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일전에 내가 좋아 하는 나무위키에서 이런 표현을 보았는데 적절한 표현이지 싶어서 이곳에 옮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무런 바탕 지식이 없는 사람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라는 책을 읽으면, 단어 하나하나의 뜻은 알지만 그 전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그 전문가가 ‘인터넷 서치 엔진 최적화의 알고리듬이 이러저러하면, 마치 할아버지께서 개울에서 낚시하실때 그물망이 찢어져서 물고기가 빠져나가고 도망가듯이, 서치 결과에 이런 저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해 본들 며칠 지나고 나면 그 할아버지 ‘그 사람 그때 내 물고기 잡는 이야기 했는데…’ 이렇게 밖에는 기억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알고리듬 자체에 대한 설명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래서 붓다께서 고민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두가지 희소식이 있다. 첫째는, 몇 일 몇 주간의 고민 끝에 붓다께서는 ‘그래도 가르치겠다’고 마음을 잡수셨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런 잡문이라도 붓다의 가르침에 관해서 써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둘째는, 붓다의 가르침이 그런 과학기술 이야기 만큼 복잡하지 않고 (많은 선행지식이 필요한 그런 것이 아니고) 또 현대인들은 2,600년 전의 사람들에 비해 교육 수준과 지성 수준이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발달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배워서 삶에서 한번 시도해 볼 최고의 타이밍이 아닌가 한다. 다만 한가지, 지난 수천년간 덧칠한 그 가짜 그림들과 엉터리 페인팅들을 없애고 지워내고 나서, 우리가 흡사 붓다와 같은 자리에 앉아서 그분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배우고 따라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에서 시도해야 되지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고 내가 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지성과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여하튼 그대에게도 내게도 좋은 소식이다. 기뻐하자 천국이 가까이 있다 🙂

덧붙이는 잡담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는데, 어떤 사람이 이러한 붓다의 인간적인 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면을 ‘자신과 조금도 다름없는 인간으로써의 나약함’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것을 보았다. 많이 배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수천년 전 달보고 절하던 그의 조상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어떤 절대적이고 거대한 것 결코 도전받지 않고 비교될 수 없으며 따라서 가까이 하면 거룩해지고 또 안심이 되는 그런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붓다께서 2,600년 전에 이미 명백히 말씀하셨던 것 뿐만 아니라, 현대의 과학기술 그리고 그것들에 가장 근접해 있었던 수많은 솔찍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고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또 말하고 있는데도.

우리 안에 수만년 혹은 수십만년 인류진화가 들어 있고 조상들의 역사가 들어 있는 것이 축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주이기도 한 것이다. 당신이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 미스월드 그 예쁜 아이돌 미녀들이, 당신과 똑 같은 생리구조를 가지고 있고 똑 같은 대소변을 보며 산다는 그 진실이 우리 인간에게는 축복이기도 하고 또 저주(?) 이기도 하다고 말한다면, 기분 나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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