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

철봉에 100초 매달리기

철봉에 ‘100초 매달리면 100달러’ 준다는 영상 본적이 있나?

온 나라가 가택연금 상태인지라, 오늘 오후에는 그나마 허락된 달리기를 하고 집에 되돌아와서, 재미삼아 철봉에 매달리면서 시간을 재보았다. 그야말로 아무생각도 준비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나도 정확히 100초간 매달려 있었다 🙂

물론 체중이 가벼우니 쉬웠을테고 영상에 등장하는 거구들에 비하면 절대적인 악력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철봉에 매달린 ‘내 몸을 내 손으로’ 100초 동안 버티며 잡고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고작 100초? 아주 크고 얇은 종이를 반으로 계속 접는다면 몇번 정도를 접을수 있을까? 100번? 2,000번? 세계기록, 아마 앞으로 깨지기 거의 불가능한 현재의 기록이 12번이다.

한번 직접 매달려 보시지 그래? 악력과 건강수명이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테고.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세번째 이야기

이전 글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은 ‘out of proportion’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영훈선생은 ‘반일 종족주의’ 책에서 한국인 위안부의 숫자가 3,6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어요. 그대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서 살해된 베트남 양민의 숫자는 9,000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어요.

우리가 위안부문제와 징용문제를 국내외적으로 아주 큰 이슈로 만들고 또 일본정부에 지속적으로 완전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요구할때, 그와 ‘동시에’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큰 잘못에도 완전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우리 국력수준 국가수준에 맞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우리가 존중 받으며, 우리가 하는 말에 힘이 생기고 또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고 떳떳한 것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스스로의 언행이 앞뒤가 맞지 않고 또 그것을 세상이 알고 있다면, 우리는 존중 받을 수 없으며, 하는 말에 힘이 실릴 수 없으며 또 그 요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지 않겠어요? 다만 때쓰고 어거지를 쓰는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게 되지 싶네요. 사람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라들 사이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베트남전쟁시 벌어진 양민학살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국민정서는,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고 또 그들로부터 받아 내고자 하는 것들과 큰 차이가 있어 보여요. ‘전쟁통에 민간인이 죽을 수도 있다. 그들이 베트콩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어디 있는가. 다른나라는 그런 짓 안했나. 이미 반세기도 지난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자는 것인가’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여요. 베트남전쟁 보다도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또 사람을 학살한 것도 아닌 이 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정부와 일본인들은 그동안 여러차례 성의를 보이고 노력을 했어요. 수차례에 걸쳐 정부(최고) 차원의 사과와 금전적 보상이 직간접적으로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 속이 후련하지 않고 또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고요? 그러면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베트남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왜 그들에게 후련하고 진정성 있는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단지 돈이 아깝거나 사과의 말을 할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그 이면에 매우 복잡한 국내외의 이슈들이 묻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국민 대다수는 오래 묻혀 있던 부끄러운 과거사를 끄집어 내고 파헤치기를 바라지 않겠지요. 우리 선대 아버지들 삼촌들이 했던 짓이잖아요. 일본은 다를까요?

정상적으로 살려면 그리고 좀 잘 살려면 앞뒤가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은 물론이지만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소리를 내고 더 힘으로 밀어부치기 전에, 과연 무었이 지금 우리들에게 좀 더 앞뒤가 맞는 것인지 생각하면 좋지 싶어요.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베트남 여러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중에서 비교적 알려진 2곳에 씌어 있는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아래에 옮겼어요.


“디엔즈엉은 예전에 강과 바다가 있던 곳으로, 신성한 이곳에서 락과 홍의 자손이 호앙선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땅을 열고 500년 전 나라를 세웠다. 사람들은 하미, 하깡, 하방, 하록, 지아록 등 마을을 세웠고, 이곳은 예로부터 평화롭게 살면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땅이었다.

먹구름과 천둥, 번개가 치고 적이 마구 몰려와 평탄한 땅에 파도를 일으키고 마을 사람을 한데 모아 마을을 버리게 하고 고향을 버리게 했다. 칼로 끊는 듯 내장이 찢기는 아픔으로 주민들은 땅을 잃고 강을 잃고 바다를 잃고 농사일을 잃고 낚시일을 잃었다. 악독하고 끔찍하여라. 떨어진 목에서 흐르는 피, 경악으로 야자수 숲은 마른 머리카락이 떨어지듯 흩날리고 강은 휘어져 돌고 눈물은 고여서 늪이 되고 만이 된다. 거기에는 단두대가 있었고 교회는 갑자기 잿더미가 되었고 하지아 숲은 마른 뼈들로 흰색이 되었고 케롱 해변에는 시체가 쌓여 있었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스무 넷째 날 청룡부대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흉포하게도 양민들을 미친 듯이 학살하였다. 하미 마을은 30가옥이 불에 타고 주민 135명의 시체는 산산이 흩어지고 태워졌다. 그 지역은 붉은 피로 덮였고 모래는 뼈와 섞이고 집들은 사람과 함께 불태워졌다. 탄 고기와 비린 피를 탐하는 개미들, 화염이 지나간 후 더욱 짙어진 어둠을 생각한다.

늙은 어머니와 병든 아버지가 툇마루에 머리를 떨구고 쓰러져 있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이 있겠는가. 아이들이 신음하고 시체가 서로 포개져 쌓여 있다. 아직도 죽은 사람의 피가 말라서 고여 있고 아이는 엄마 배 위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젖을 찾는다. 어린아이는 입을 다쳐서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가 없다. 더 처참한 것은 그 후에 탱크가 무덤들을 짓뭉갠 것이다. 악마의 그림자가 드리운 대지 위의 메마른 뼈, 무고한 영혼의 외침이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진다.

하늘은 어두울 때도 밝을 때도 있는 법. 지난 25년간 고향은 평화롭게 다시 세워지고 디엔즈엉 땅은 다시 비옥해지고 감자와 쌀이 잘 자라고 강의 물색도 좋아져 물고기와 새우도 많다. 당이 갈 길을 인도하여 거친 땅을 개간하였다. 과거 전쟁터의 아픔도 줄었다. 이 깊은 상처를 남긴 그때의 한국인은 지금 찾아와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하여 용서 위에 비석을 세우고 고향 발전을 위한 인도적 협력의 길을 열고 있다. 모래와 소나무는 하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향불은 저세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함이다. 천 년의 흰 구름은 마을의 번영과 평안을 기원한다.”

2000년 8월 디엔즈엉 당, 정부, 주민

출처 참고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1966년 12월 5일 정확히 새벽 5시, 출라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남조선 청룡여단 1개 대대가 이곳으로 행군을 해왔다. 그들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 죽였다. 다음날인 12월 6일, 그들은 계속해서 꺼우안푹 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명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했다.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군대가 저지른 죄악을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기고 인민들의 마음을 진동토록 할 것이다. 그들은 비단 양민학살 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도우저를 갖고 들어와 모든 생태계를 말살했고, 모든 집을 깨끗이 불태웠고, 우리 조상들의 묘지까지 갈아엎었다. 건강불굴의 이 땅을 그들은 폭탄과 고엽제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로 만들었다.”

출처 참고


출처

가야금과 고토 – Win Win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두번째 이야기

해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대학은 한동안 온갖 행사등으로 왁자지껄 활기를 띠게 되요. 서양여자들이 10대 후반에 활짝 꽃 핀 모습을 실제로 많이 본 적이 없지요? 나는 이곳에 살아서 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 대학이고 또 사무실이 중앙도서관에 위치한 이유로 아주 많이 보았어요. 값싼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쳤지만 어떤 여학생들의 외향적인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넋을 잃게 하는 신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때가 많아요. Dirty old man?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많은 경우에 자연스러운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그 스케일이나 수준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압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예요.

기분이 좀 나빠졌을지도 모를 당신을 위해 덧붙이자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여성이 일생을 통해서 누리는 아름다움의 양은 어쩌면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마치 코스모스와 장미를 비교하는 것처럼, 이런 서양여성들의 아름다움은 장미처럼 활짝 피었다가 금세 시들어서, 이르면 20대 후반 혹은 30대만 되어도 급격히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아요. 유전적인 면도 있을 것이고 또 육식을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식생활과도 관계가 있지 싶네요 🙂

‘있는 그대로 이미 충분히 아름다우며 인공미를 덧붙이는 것이 그 아름다움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많은 경우에 치명적이다’ 라는 나의 생각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싶은데요. 요새는 하도 성형기술이 발달을 해서 성형을 했는지 않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만큼 자연스럽게 성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고 또 그중에는 (개인적으로는) 설득력이 있는 이유들도 있을꺼예요. 하지만 ‘미용성형천국’이라는 이 표현이 내게는 ‘참되지 않다’ 그리고 ‘속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영어표현에 ‘out of proportion’ 이라는 말이 있어요. (큰 그림에서 볼때 각각 요소들의) ‘비율이 서로 맞지 않는다’ 이렇게 번역되겠지만, 어쩌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는 우리표현에 더 잘 대응하지 싶네요. 참된 아름다움, 큰 힘등 세상의 가치있고 좋은 것들은 ‘앞뒤가 맞는’ 경우가 많지 싶네요. 내 자신만 돌이켜 보아도 ‘out of proportion’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았을때’ 여러가지 어려움과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때때로 proportion이 좀 적절해지고 앞뒤가 더 맞았을때 평안했던 것 같아요.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안중근의사 어머니의 편지’라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여러가지 조사를 통해서 이 글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께서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가 아님이 밝혀졌어요.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지어낸 이 글이, 어쩌면 안중근의사의 뜻을 더욱 기리고 그 가족의 훌륭함을 세상에 알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만들어낸 가짜가, 사람들의 입에 이리저리 오르내리다가 어느듯 신문방송에 까지도 인용되는 ‘사실’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내가 보기에는, 안의사와 안의사의 어머니를 크게 모욕하는 나쁜짓이며 사기인데요, 어쩌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뭐 어때서’ ‘안중근 의사는 위대하니까 이정도야’ 이렇게 생각하지 싶어요. 없는 것을 가짜로 만들어 있다고 속이는 것은 거짓이며 사기입니다. 만들어 내는 사람의 어리석음 욕심과 교만의 결과입니다. 그 사람도 또 그 대상도 (이런 거짓을 통하여) 결코 더 나아지거나 의미있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바로 이런 짓들을 저지르는 정신상태가, 미용성형천국의 예로 표현했던 ‘참되지 않고 속이 비어 있음’ ‘out of proportion’ ‘앞뒤가 맞지 않음’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어리석음이 지속되는 것은 첫째로는 그것이 어리석음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둘째로는 비난을 당하면 그 좋은 머리와 정력을 동원해서 극렬하게 반발하며 온갖 변명들을 찾아내기 때문이지 싶어요. 그래서 바뀌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겠지요.

이책에서 이영훈박사께서, 위안부문제와 그 전면에 나서 있는 정치단체인 ‘정대협’에 (지금은 단체 이름이 바뀌었어요) 대하여 가지는 생각에 나도 많이 공감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고 또 참되지 않고 속이 비어 있으면, 잠시 반짝할지는 모르지만, 정말 힘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참된 힘은 자연스러움 그리고 진실함에서만 비롯된다고 나는 믿습니다. 나는 이런 정치단체의 거창한 구호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업적들 보다도, 그 이면에 가려지고만 사람들의 진실된 이야기들에 더 관심이 많아요. ‘정치행위’는 일종의 ‘허구’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떤 에너지입니다. 마치 자기장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지지 않나요? 하지만 그 정치행위의 대상이 되었던, 예를 들자면 그 위안부 여성들의 삶은 허구가 아닙니다. 현실이었고 실재였지요.

한국에서 두번째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혔던 문할머니. 일흔 전후해서 돌아가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분이 친구분을 통해서 책으로 남긴 진실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 속에서 행복을 맛보기도 했었다던 그 다사다난 했던 삶이, 이분이 위안부였던 몇년 그리고 정치적인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에 좋다’고 이리저리 끄집어 내서 세상에 까발린 어떤 것들 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고 (듣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고 또 감동적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대가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일본 사람의 이름 ‘치바 도이치’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할까 해요. 그는 안중근 의사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로 있었던, 그 악명 높았다던 일본군 헌병이었어요. 정말 무서운 넘들이었겠지요.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자기들의 영웅을 (이토오 히로부미는 일본 지폐에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살해한 테러범 안중근을 다루었을까요. 상상만 하여도 몸서리쳐질 일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젊은 일본넘이 이순신장군을 암살한 후에 한국 감옥에 갖혀 있는 경우라고 하겠지요. 안중근의사는 훌륭한 어머니의 (그리고 아버지의) 교육을 받은 아주 훌륭한 인격자셨고 또 글에도 뛰어난 분이었어요. 치바 도이치는 차차 대화를 통해 (내가 감옥 안팎에 있어 봐서 좀 아는데요 -오잉?- 이야기 나눌 시간이 참 많아요. 쌍방이 할 일이 거의 없는데 뭘 하겠어요?) 인간 안중근을 존경하게 되고, 또한 서로의 입장은 다르지만 안의사가 왜 자기들의 영웅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것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안의사께서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기 때문이지만, 이 사람 치바 도이치 또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지 싶어요. 안의사께서 대략 서른 그리고 치바 도이치는 이십대 중반이었다고 하는군요.

안의사께서 사형당하던 그날, 문득 치바 도이치가 ‘글을 하나 남겨 달라’고 이전에 부탁했었던 것을 기억하시고 써 주신 것을, 장차 치바 도이치는 가보로 간직하며 매일 안의사의 명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차차 마을에도 알려져서, 마을 절에도 안의사의 영정을 모시게 되었고 또 기념석도 세웠다고 해요. 비유하자면, 이순신 장군을 암살한 어떤 일본 젊은이의 위패를 한국의 사찰에서 모시고 또 비석을 세워서 그 정신을 기린 것인데요. 이것 감동적이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되요. 바로 이런 인간의 진심과 진실이 일본의 힘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하기가 그래도 무척 어렵겠지요? 왜냐하면 ‘그깟 왜넘들’이니까요. 한쪽에서는 가짜 편지나 만들어서 반짝 ‘lip service’ 하는 동안에, 다른쪽에서는 매일 그분의 명복을 대를 이어 빌어 드리고 또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분을 기리고 있어요… 진심의 힘 그리고 진실의 힘.


치바 도이치 선생의 후손들이 한국정부에 기증하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국보로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안의사께서, 마음에 큰 괴로움을 가지게 된 그 일본 헌병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이 글귀에 담겨 있네요. 안의사께서는 참으로 크고 훌륭한 분이셨지요?

혹시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인간 삶의 진실 그리고 참된 힘은 무었일까요?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모두들 평화를 추구하며 평화롭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고의로 그렇게 되지 못하게 안팎으로 못살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것이 ‘정말 가난한 꼴’이 아니면 도대체 무었일까요?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에서 개탄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일본 대림사입구에 설치된, 안중근의사와 치바도이치선생을 기리는 추모비입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라고 씌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