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봉에 100초 매달리기

철봉에 ‘100초 매달리면 100달러’ 준다는 영상 본적이 있나?

온 나라가 가택연금 상태인지라, 오늘 오후에는 그나마 허락된 달리기를 하고 집에 되돌아와서, 재미삼아 철봉에 매달리면서 시간을 재보았다. 그야말로 아무생각도 준비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나도 정확히 100초간 매달려 있었다 🙂

물론 체중이 가벼우니 쉬웠을테고 영상에 등장하는 거구들에 비하면 절대적인 악력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철봉에 매달린 ‘내 몸을 내 손으로’ 100초 동안 버티며 잡고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고작 100초? 아주 크고 얇은 종이를 반으로 계속 접는다면 몇번 정도를 접을수 있을까? 100번? 2,000번? 세계기록, 아마 앞으로 깨지기 거의 불가능한 현재의 기록이 12번이다.

한번 직접 매달려 보시지 그래? 악력과 건강수명이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테고.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세번째 이야기

이전 글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은 ‘out of proportion’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영훈선생은 ‘반일 종족주의’ 책에서 한국인 위안부의 숫자가 3,6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어요. 그대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서 살해된 베트남 양민의 숫자는 9,000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어요.

우리가 위안부문제와 징용문제를 국내외적으로 아주 큰 이슈로 만들고 또 일본정부에 지속적으로 완전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요구할때, 그와 ‘동시에’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큰 잘못에도 완전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우리 국력수준 국가수준에 맞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우리가 존중 받으며, 우리가 하는 말에 힘이 생기고 또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고 떳떳한 것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스스로의 언행이 앞뒤가 맞지 않고 또 그것을 세상이 알고 있다면, 우리는 존중 받을 수 없으며, 하는 말에 힘이 실릴 수 없으며 또 그 요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지 않겠어요? 다만 때쓰고 어거지를 쓰는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게 되지 싶네요. 사람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라들 사이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베트남전쟁시 벌어진 양민학살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국민정서는,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고 또 그들로부터 받아 내고자 하는 것들과 큰 차이가 있어 보여요. ‘전쟁통에 민간인이 죽을 수도 있다. 그들이 베트콩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어디 있는가. 다른나라는 그런 짓 안했나. 이미 반세기도 지난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자는 것인가’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여요. 베트남전쟁 보다도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또 사람을 학살한 것도 아닌 이 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정부와 일본인들은 그동안 여러차례 성의를 보이고 노력을 했어요. 수차례에 걸쳐 정부(최고) 차원의 사과와 금전적 보상이 직간접적으로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 속이 후련하지 않고 또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고요? 그러면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베트남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왜 그들에게 후련하고 진정성 있는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단지 돈이 아깝거나 사과의 말을 할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그 이면에 매우 복잡한 국내외의 이슈들이 묻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국민 대다수는 오래 묻혀 있던 부끄러운 과거사를 끄집어 내고 파헤치기를 바라지 않겠지요. 우리 선대 아버지들 삼촌들이 했던 짓이잖아요. 일본은 다를까요?

정상적으로 살려면 그리고 좀 잘 살려면 앞뒤가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은 물론이지만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소리를 내고 더 힘으로 밀어부치기 전에, 과연 무었이 지금 우리들에게 좀 더 앞뒤가 맞는 것인지 생각하면 좋지 싶어요.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베트남 여러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중에서 비교적 알려진 2곳에 씌어 있는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아래에 옮겼어요.


“디엔즈엉은 예전에 강과 바다가 있던 곳으로, 신성한 이곳에서 락과 홍의 자손이 호앙선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땅을 열고 500년 전 나라를 세웠다. 사람들은 하미, 하깡, 하방, 하록, 지아록 등 마을을 세웠고, 이곳은 예로부터 평화롭게 살면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땅이었다.

먹구름과 천둥, 번개가 치고 적이 마구 몰려와 평탄한 땅에 파도를 일으키고 마을 사람을 한데 모아 마을을 버리게 하고 고향을 버리게 했다. 칼로 끊는 듯 내장이 찢기는 아픔으로 주민들은 땅을 잃고 강을 잃고 바다를 잃고 농사일을 잃고 낚시일을 잃었다. 악독하고 끔찍하여라. 떨어진 목에서 흐르는 피, 경악으로 야자수 숲은 마른 머리카락이 떨어지듯 흩날리고 강은 휘어져 돌고 눈물은 고여서 늪이 되고 만이 된다. 거기에는 단두대가 있었고 교회는 갑자기 잿더미가 되었고 하지아 숲은 마른 뼈들로 흰색이 되었고 케롱 해변에는 시체가 쌓여 있었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스무 넷째 날 청룡부대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흉포하게도 양민들을 미친 듯이 학살하였다. 하미 마을은 30가옥이 불에 타고 주민 135명의 시체는 산산이 흩어지고 태워졌다. 그 지역은 붉은 피로 덮였고 모래는 뼈와 섞이고 집들은 사람과 함께 불태워졌다. 탄 고기와 비린 피를 탐하는 개미들, 화염이 지나간 후 더욱 짙어진 어둠을 생각한다.

늙은 어머니와 병든 아버지가 툇마루에 머리를 떨구고 쓰러져 있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이 있겠는가. 아이들이 신음하고 시체가 서로 포개져 쌓여 있다. 아직도 죽은 사람의 피가 말라서 고여 있고 아이는 엄마 배 위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젖을 찾는다. 어린아이는 입을 다쳐서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가 없다. 더 처참한 것은 그 후에 탱크가 무덤들을 짓뭉갠 것이다. 악마의 그림자가 드리운 대지 위의 메마른 뼈, 무고한 영혼의 외침이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진다.

하늘은 어두울 때도 밝을 때도 있는 법. 지난 25년간 고향은 평화롭게 다시 세워지고 디엔즈엉 땅은 다시 비옥해지고 감자와 쌀이 잘 자라고 강의 물색도 좋아져 물고기와 새우도 많다. 당이 갈 길을 인도하여 거친 땅을 개간하였다. 과거 전쟁터의 아픔도 줄었다. 이 깊은 상처를 남긴 그때의 한국인은 지금 찾아와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하여 용서 위에 비석을 세우고 고향 발전을 위한 인도적 협력의 길을 열고 있다. 모래와 소나무는 하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향불은 저세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함이다. 천 년의 흰 구름은 마을의 번영과 평안을 기원한다.”

2000년 8월 디엔즈엉 당, 정부, 주민

출처 참고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1966년 12월 5일 정확히 새벽 5시, 출라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남조선 청룡여단 1개 대대가 이곳으로 행군을 해왔다. 그들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 죽였다. 다음날인 12월 6일, 그들은 계속해서 꺼우안푹 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명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했다.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군대가 저지른 죄악을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기고 인민들의 마음을 진동토록 할 것이다. 그들은 비단 양민학살 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도우저를 갖고 들어와 모든 생태계를 말살했고, 모든 집을 깨끗이 불태웠고, 우리 조상들의 묘지까지 갈아엎었다. 건강불굴의 이 땅을 그들은 폭탄과 고엽제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로 만들었다.”

출처 참고


출처

개가 당신의 자식?

인연은 소중합니다. 설령 개와 맺은 인연일지라도, 십년 넘는 세월을 함께 살다 보면, 특별하고 애틋하고 또 잃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우리와 함께 12년 세월을 살았었던 버둑이 녀석이 죽은지도 이제 2년이 되었어요. 뒷산에 온 가족이 울면서 묻어 주었는데 요새는 자주 가지 않게 되네요. 하지만 출퇴근길에, 버둑이가 다니던 그 가축병원을 지나면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처음 우리집에 데리고 올때 안고 왔던 사람도 나였었고 또 안락사 시키러 마지막으로 그 가축병원을 함께 걸어 갔던 사람도 나였어요. 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었는데요, 그 어리버리하고 먹을 것만 밝이며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잘 자던 븅신개 (내 나름의 유머러스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버둑이는 내게 좋은 교훈도 남겨주고 떠나 갔어요. 지금도 그 븅신개를 생각하니 븅신주인이 눈물 나네요.

몇년전에 호주에서 인도네시아로 수출한 도축용 소를 (어떤 이유로 소고기를 수입하는 대신에, 살아 있는 소를 수입하여 자기들이 직접 도축. 호주 북부와 인도네시아는 가까운 거리) 인도네시아인들이 비인도적으로 다루는 장면을, 아마도 호주동물보호단체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 도축장에서 몰래 찍어서 호주 전체에 방송을 하면서 크게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혹시 여러분도 봤을지도 모르는 ’60 Minutes’라는 프로그램에, 이 내용이 방영되는 것을 나도 보았어요.

그 나라의 수준을 보려면, 사람들이 장애인들과 동물들을 어떻게 대접하는가를 보라는 말이 있어요. 지당한 말이지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들의 수준에 맞게 도축하려는 소들을 대접합디다. 그 사람들이 다른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대접할 것 같아요? 가난하고 무식하면, 더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당연하고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인도네시아도 차차 호주처럼 부유해지고 또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도축장 환경도 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방식도 나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방식도 민주화되고 더 선진화되겠지요. 지금 선진국인 나라들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겠지요.

그런데 방송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돈받고 판 소들이 인도네시아 도축장에서 얻어 맞는 것을 보는 호주인들이 그만 흥분하여 그 소들과 자신들을 동일시 하기 시작했어요. 동물애호협회나 그런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지 싶은데요, 몰래 찍은 필름에 등장하는, 얻어 맞고 나쁘게 대접 받는 호주소들을 설명하면서 사람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저 앞줄에서 맞고 있는 소는 ‘John’ 그 뒤에 쓰러져 있는 암소는 ‘Jenny’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이름을 듣는 호주 사람들은 기분이 어땟을까요? 마치 내 친구 ‘John’을 혹은 내 이웃 ‘Jenny’를 야만한 동양인 새끼들이 마구 팬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단번에 생기지 않았을까요? 이것을 노렸겠지요, 그리고 성공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소수출 금지).

그때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딱 들었어요. 그 ‘John’과 ‘Jenny’를 호주에서도 죽여서 스테이크로 만들어서 방송전에 당신도 먹고 왔잖아요? 아니 채식하라는 말이 아니고, 식용으로 길러서 판 소가 비록 도축되는 과정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마치 사람처럼 감정이입을 할 수가 있나요? 그리고 그 일부 호주인들이 자기들의 (정치적인) 목적은 달성했을지 몰라도, 이런 발상 자체가,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극히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몰랐거나 아니면 알고도 무시했을 꺼예요.

작년에 버디와 오선이 이야기 하면서 ‘개는 개로 대접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 있는, 개 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면서 사는 동족 인간들에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 개라고) 나오는데로 지껄이고 하고 싶은데로 하면, 당신 자신에게도 그리고 개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했었어요.

이번주에 우연히 개와 관련된 몇개의 기사를 읽으면서, 기사를 쓴 개인도 단체도 개를 ‘아이들’ ‘우리아들’ 같은 말로 공식적인 매체에서조차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참 왜 이러나 싶네요. 일전에 말했던 ‘out of proportion’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나와 인연이 있다고 개를 아이니 아들이니 부르면서 마치 사람처럼 대접하면서, 나와 인연이 아직 없거나 혹은 내가 그 인연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개보다 못한 상태로 살고 있는 것에 털끗만큼의 관심도 없이 살면, 삶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요? 사람이 사람의 도리가 있듯이, 개나 짐승도 (특히 사람들과 비교할때면) 그들의 위치와 받아 마땅한 대접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호주넘들이, 잡아 먹으려고 키워서 돈 받고 판 소를 ‘John’이니 ‘Jenny’니 부르는 꼴이나, 어떤 자들이 자기 개를 ‘아이’니 ‘아들’이니 부르는 꼴이나 참 가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내가 호주인들이 어떤 특징이 있다고 했었지요? 두 나라가 닮아가나요? 점점 선진국이 되어가는 모습인가요 🙂

타이슨과 투이2

원래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이곳은 전세제도가 없는데요, 매 2주마다 내는 집세가 상당히 비쌉니다 (수입대비). 겨울동안 일거리가 많이 없었겠지요. 또 새로운 도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했을 겁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동안 일을 가지 않았어요. 트럭이 며칠씩 그냥 주차되어 있던것을 보았거든요. 우리 내외는 좀 염려가 되었어요. 하루벌어 하루사는데 어떻게 하려나… 한 이주쯤 전에 우연히 마주쳤을때 타이슨이 내게 말했어요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이사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 하겠어요.’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말에, 그리고 좋은 일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에, 무어라 대답을 할지 몰라서 다만 잘 알았다고만 말했어요.

그날 저녁 아내와 식사를 하면서 타이슨과 투이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어요. 나도 아내도 그 남자와 여자에게 앞으로 펼져질 삶을 짐작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오고가면서 오래 살았어요. 그래서 이 정도는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아내가 말합니다. 투이는 자신이 원하는데로 대학에서 심리학공부를 마치고 제대로된 직업을 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녀는 여태껏 우리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그저 등뜨시고 배부르게 하루하루 사는 쪽으로 삶이 향하게 될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부부중 한명만 벌어서는 그저 현상유지만 하기도 급급한 실정입니다. 이 부부는 집세를 내고나면 아무것도 저축 할 수 없고 그저 사람도 트럭도 아이도 별 탈이 없기만을 바라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체인을 벗어나 굴레를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아내도 이빨을 악물고 공부를 해서 직업을 찾아도 될까말까한 그런 상황입니다. 남자는 아마도 그들의 문화와 부모의 영향으로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던 사람일꺼예요. 좋은 성품과 정말 근면한 태도를 타고 났지만, 이 나라에서 오직 그것을 바탕으로 노동만을 팔아서는 가족 모두가 살기에 너무 힘이 듭니다.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이 적습니다. 안타깝네요. 대학이 아니었더라도 배관이나 다른 어떤 기술을 배웠었어도 이나라에서는 자기 하기에 따라서 잘 살수 있습니다. 아무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코스를 다시 시작할 여력이 없어 보여요. 이미 아기도 태어났습니다. 아! 가족들이 좀 도와주면 좋을텐데요. 아기를 좀 돌봐주면서 아기 엄마가 대학을 가게 도와주고, 좀 얹혀살게 해주면서 남자가 기술을 배울 기회가 있다면 이 부부는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변에 이런 상황을 알고 먼저 도움을 줄 가족도 없고 또 자신들도 이런 상황을 잘 자각하고 못하고 있지 싶어요. 그래서 변화와 발전이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외부적인 도움을 작은 자본삼아 상당한 고통과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는 수년의 과정이 없이는 어떤 의미있는 변화나 발전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내와 나는 다만 이 커플이 잘 살기만을 마음으로 기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령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하고 싶어도 이런 조언을 이 나라에서는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말을 한다고 무언가가 저절로 변화되는 것도 아니겠지요. 오직 스스로 느끼고 깨닫고 또 열망해야 하겠지요. 남자는 머리가 있어요. 정직한 노력이 허무하게 자꾸만 끝이 나고, 자신도 모르는 과거의 카르마에 휘둘리며 살다가 크게 절망에 빠지면, 그는 좋지 않을 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지 싶습니다. 안타깝군요.

이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군요.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와 나는, 어쩌면 타이슨과 투이처럼 생계를 걱정할 입장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공통점이 있지 않나요? 지난 시절, 선대들이 그리고 자신이 멋모르고 했던 일들의 결과로 오늘날 내 삶을 짓누르게 된 카르마,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에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나요? 나와 아내가, 타이슨과 투이 커플을 보면서 깨닫은 것을 내 자신의 카르마를 줄여 자유를 증득하고 또 나의 괴로움을 몰아내어 내 처지에 맞는 행복을 찾는데에 적용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랍니다. 내가 타이슨과 투이의 좋은 면과 강점을 보고 또 인정하듯이, 내 자신의 좋은 면과 강점을 알고 좋아하고 또 인정해 주렵니다.

타이슨과 투이는 떠났지만, 아직도 물청소로 깨끗한 드라이브웨이를 지나면서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들의 안녕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행복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