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시간

인간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한가지를 꼽으라면 무었일까? 어떤 뛰어난 사람이 ‘시간’이라고 하던데 나도 동감한다.

‘인간과 시간’에 대한 좋은 영화들이 여러편 있는데, 오늘은 ‘About Time’이라는 영국영화를 보았다.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상영되었다고 한다.

‘인간과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매세지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설령 타임머신을 타고 마음대로 과거로 되돌아가 자신의 (그리고 자신과 관계된) 과거를 무한정 바꿀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참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보고 나면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별 의미도 없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그리고 주변의) 행복을 증대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바로 지금, 오늘, 현재’에 딱 한 번만 가능한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제목을 잊었는데 언젠가 꽤 재미있게 보았던, ‘인간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다룬 또 다른 영화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천국에 있던 사람들이 결국은 자발적으로 평화로운 종말을 (죽음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유머러스하게 그렇지만 정확히 설명하였다. 흔히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천국의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 영화가 잘 (그리고 과학적으로) 묘사한데로, (예를들어)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전부 다 여러차례 읽고 나서도, 이 세상의 모든 곳을 수차례 여행하고 나서도, 이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통달하여 올림픽 금매달을 모조리 따고 나서도, 그 ‘영원’이라는 시간의 극히 일부도 사용하지 못한 꼴이니, 나중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게 되어 결국은 천국이 처음 생각하던 그 천국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리며, 이것을 깨닫게 된 천국 입주자들은 결국에는 스스로의 종말을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자발적이며 평화롭고 좋은 죽음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 하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인데… 하지만 이런 영화들이 던지는 매세지를 무시하지 않고 잘 생각해 볼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짐작하건데 ‘인간과 시간’에 대한 좀 다른 (좀 더 정확한) 인식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2023년을 시작하며 ‘인간과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적절하다 싶다.

여름 노래

국적과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넝쿨장미 그늘 속에도 젊음이 넘쳐 흐르네…’ 내가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주면서 어떤 계절을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가 물어보았더니 ‘모르겠다’고 하였다 🙂

너희들 문화에도 여름을 찬미하는 이런 노래가 있는가 물었더니 ‘없다’고 하면서 다만 스코틀랜드에서는 겨울에 대한 노래가 좀 있긴 하다고 하였다.

나도 비발디의 사계 교향곡을 어쩌다보니 수없이 듣게 되었지만 지금 듣는 음률이 사계절 중에서 도대체 어떤 계절을 표현하는 것인지는 항상 모르겠더라고 위로해 주었다.

다음번에 만나면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지난 여름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 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엉클어질때…’ 노래를 다시 불러주면서 이번에는 어떤 계절을 느끼는가 물어 보아야겠다.

음악은 모르는데 잔머리만 늘어서 이번에는 아마도 ‘여름’ 느낌이 난다고 할것 같다 🙂

이 노래를 부르며 보내는 이 여름의 하루가 기분 좋다.

그래도

처음엔 그저 마음이 그리로 흘러 갔었다
마음을 쏟아 우정을 사랑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을 쫒았다

다음엔 그저 마음이 그렇게 멀어 졌었다
마음을 쏟을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없었다

나중엔 다시 마음이 어쩌면 돌아 오리라
마음을 비워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어쩌면

지금은 그저 조용히 내버려 두자 바란다
나중에 찾을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그대로

그대로 남겨 두고파 혹시나 알아 언젠가
사람의 마음 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무었으로 홱 변할런지 뉘아나

하지만 지금 멀어진 내맘을 난들 어쩌리
세상이 모두 그런줄 이꼴이 우리들 수준인줄 왜 모를까만 그래도

채운다고 쌓이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니 채우는 것과 쌓이는 것은 별개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직도 청춘이지만, 더 어렸던(?) 시절에는 그저 남들따라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얻고 줏고 벌고 빼았아(?) 채우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준이나 인생의 승패는 그렇게 채우는 능력으로 매겨지는 줄 알았었다.

살다보니 채우는 능력과 쌓이는 결과가 딴판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야 부모를 잘 만났거나 책상에 오래 앉았던 사람들이 당연히 더 있겠지. 그런데 채운것들이 쌓이려면 그릇이 번듯하게 크기도 좀 있고 또 깨지거나 구멍이 뚫리지 않아야 되는데, 이 그릇의 크기와 온전함은 부모 주머니에서 떨어진 돈이나 공부 머리와는 별로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그것들로 말미암아 달라지기도 어려운 것임을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는 큰데 그릇이 작거나 깨져 있으면 밖으로 흘러 넘치고 줄줄 새게 된다. 흘러 넘치는 것이 돈이면 돈지랄하는 인간말종이 되고, 줄줄 새는 것이 권력이면 사람들 못살게 하는 미친개가 되고, 흘러 넘치는 것이 정력이면(?) 가정파탄 아니면 감옥행. 줄줄 새는 것이 지식이면 사람들이 면전에서 다투지는 못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 외로운 늙은이로 종치게 되겠고 또 흘러 넘치는 것이 ego 라면 해탈 열반이나 천국행은 날샛겠지 🙂

인생 초기 대량 실점한 삶을 살아온 내가 대량 득점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가까이서 또 멀리서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세상 참 공평하다’ 그리고 ‘행복은 얼마나 채우는가 보다는 얼마나 쌓이는가에 있다’.

석별

잘 가오 그대 행복하시오
축복의 노래로 그대 보내오리다
신의 손길 따뜻이
그대위에 머물리
아름다운님 그대 위에
신의 손길 머물리
내 노래 나래달고 그대 곁 날으리라
내 마음 등불 밝혀 그대 앞길 비추오리
우리님 가시는 길
꽃비단비 내리소서
발자욱 자욱마다
행복 넘쳐흐르소서.

잘 가오 그대 행복하시오
축복의 노래로 그대 보내오리다
우리님 가시는 길
꽃비단비 내리소서
아름다운님 발자욱마다
행복 넘쳐흐르소서
웃으며 함께 머문 기쁨의 이시간이
영원히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오리
설운님 가시오니 내 마음은 울고파라
설운님 가시오니 내 마음은 울고파라.

(작사 유승자수녀 작곡 이종철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