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지는데

마른잎 굴러 바람에 흩날릴때
생각나는 그사람 오늘도 기다리네

왜 이다지 그리워 하면서
왜 이렇게 잊어야 하나요

낙엽이지면 다시 온다던 당신
어이해서 못오나 낙엽은 지는데.

지금도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왜 이렇게 잊어야 하나요

낙엽이지면 다시 온다던 당신
어이해서 못오나 낙엽은 지는데.

백호빈

시간에 대한 단상

이곳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얻었던 직장의 상사가, 권고사직후 이삼년 지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 도시니 그 사람이 생전에 몰고 다니던 차가 (가족들이 계속 몰았으니)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쇼핑센터나 시내길에 주차된 것을 몇차례 내가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보통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차나 물건들이 왔다가 가는데, 그 경우에는 반대였던 좀 특이한 경우라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사람 생전에 그 차 몰고 다닐때, 자기가 죽고나서 그가 몰던 차는 여전히 거리를 오가는 상상을 해보았을까…

미국에는 플린스톤스라는 우리에게도 알려졌던 만화때문에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물어보면 긴가민가 할것이다. 공룡은 실존했었기에 당연히 화석은 물론 잘 보존된 뼈도 발굴이 되어 왔다. 현재까지 발굴된 공룡의 뼈로서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것은 1990년 미국에서 발굴된 ‘수(Sue)’라고 이름지어진 공룡이라고 한다. 90% 정도 완전한 골격이 그대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 공룡이 생존했던 시기를 포함한 많은 자료들이 연구발표 되었다.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자 – 위 링크에 가서 우측상단의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다.

방금 그대와 내가 인터넷으로 본, 실제로 지구상에 6,700만년 전에 돌아다녔던 이 공룡 수(Sue)의 유골은,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 전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6,000만년 이상의 시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밖으로 나왔으며, 현대문명을 이룬 인간에 의해서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인간이 현대 문명을 이루고 산 기간을 200년이라고 가정하여 이것을 24시간 시계로 비유하자면, 이 공룡이 죽어서 묻혀있던 시간은 23시간59분59초 이상이고, 그 실체를 밝혀낸 현대문명은 약 0.3초 정도의 시간이라 할수 있다. 예수의 탄생부터를 현대문명으로 쳐준다고 해도 약3초 정도의 시간이 되겠다.

이글을 시작할때 죽은 매니져가 몰던 차가 돌아다니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실존했던 공룡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할 꿈도 꾸지 못했던 까마득한 먼 옛날에 살아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사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관련된 시간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 – 20만년 전에 현인류가 (지금인류의 직계조상) 지구상에 탄생했는데, 이 시간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100번 반복한 시간이 되겠다.
  • – 500만년 전에 인류가 침팬지등으로 부터 분리되었다고 하는데 (인류와 유사한 조상의 시초), 이 시간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2,500번 반복한 시간이다.
  • – 6,700만년 전에 이 공룡 ‘수(Sue)’가 살았었는데, 이 공룡이 죽은 이후,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30,000번 이상 반복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위에서 언급한) 침팬지와 인류가 분리되고 인류와 유사한 조상이 지구상에 등장했었던 것이다.
  • – 그리고 현재 인류의 조상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이때로부터 또 다시 3,000번 이상을 더 반복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나? 인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나? 나도 그런 기분이 좀 든다. 또 어떤 생각이 드나? 인간의 역사도 또 한 인간의 삶도 참으로 어처구니 없이 짧고 허무하다는 기분도 들지 않나? 어떤 과학서적에서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천체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평생을 보내고 나서 깨달은 (인간과 과학의 한계에 대한) 내생각을 비유로 표현하자면, 100층짜리 마천루 빌딩의 지하층에 우연히 들어간 바퀴벌레가 지하실 천정을 보면서 벌레의 능력으로 마천루의 구조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려는것 같다는 것이다.”

건방떨며 정신없이 살기보다는, 겸손히 한계를 받아들여 조용히 살아야 할 이유들이 내 생각에는 훨씬 더 많지 싶다. 종교니 과학이니 이념이니 투쟁이니 역사니 발전이니 하는, 우리 인간 삶의 실체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방금 위에서 말했던 그 바퀴벌레 운운하던 과학자, 내 생각에 인간이 위대한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직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바퀴벌레이면서도 또한 결코 바퀴벌레로 남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학자도 자신의 글을 아마 그런 말로 끝맺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무심코 베켜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대 그리고 나. 정신 차리고 살자.

블로그 2년

‘내 선택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이 블로그를 써온지도 이제 2년이 되었네요. 2018년초 블로그를 시작할때 한해의 theme으로 ‘선택’을 선택했었는데, 그해에 정말 좋은 선택을 많이 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예요. ‘왜 기억을 못해요?’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삶에 의미가 있고 영향을 끼치는 그런 선택들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선택과는 달리, 그 결과나 영향이 오랜 시간을 두고서 서서히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잘 알수 없는 것이지요.

이전 theme들중에서 기억나는 것들로는, ‘나는 내가 많이하고 자주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가 있었고요, ‘매일 읽고 써라. 그러면 내 삶이 그쪽으로 가게 된다’도 있었네요. 올해의 theme은 ‘갈등을 줄여 에너지를 내 삶에 집중하라’였는데요, 돌이켜 보건데 약간의 성과는 있었던것 같네요.

새해의 theme은 ‘거룩한 반복’으로 정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일전에 제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했었고 또 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들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꾸 반복해서 듣게 되요. 온갖 좋은 생각과 이론 그리고 종교와 철학들이, 나와 주변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의미있는 도움을 주는가 하는것으로 궁극적인 결판이 난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데요, 그 궁극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거룩한 반복’으로 이루어낸 ‘습관’이라고 확신합니다.

얼마전, 시내에서 일하는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오랜기간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아이를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입과 항문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다’였는데요 (아이가 얼마나 impressed됬겠어요?) 차차 나이를 먹으면서 간경화가 생기는지 (간뎅이가 붓는지), 사람 사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그렇게 ‘이것이 좋다’ ‘저것을 해야한다’ ‘요것은 꼭’ 하면서 살았던 그 시절이, 물론 현재의 삶이 그 시절의 결과임은 부정하지 않지만, 과연 우리 인간의 본성이며 우리가 마땅해 가야만 하는 유일한 길이었던가에는 상당한 의구심과 회의가 들어요. 자타가 공인하는 소위 ‘독고다이’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의구심과 회의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도 들어요. ‘인생은 들판에 핀 풀꽃과 같다’는 한 유명한 스님의 말씀을, 년전에는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 이렇게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년동안 이 블로그에, ‘잘난체 한수 가르치려는 글’을 쓴 적도 있었고, ‘강한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글’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한때 10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썼던 적도 있었네요. 1000일을 희망했었는데 내공이 부족했어요. 저는 이렇게 블로그를 쓰고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것 같아요. 결국은 제 좋자고 하는 일이지요 🙂

이곳은 큰 휴가를 앞둔 조용한 시기입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지난 글들을 다시 되돌아 보며 정리하고 또 앞으로 다가올 한해에 ‘거록한 반복’을 잘 쓰고 읽을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남은 2019년을 잘 마무리하고 좋은 2020년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인연

일전에 공원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벗꽃나무를 발견했어요. 이제 봄도 다가오고 하니 장차 벗꽃이 피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서 가보았어요.

키가 이미터 좀 넘을것 같고 나무 몸체도 별로 굵지 않아서 그리 오래전에 심은 나무는 아니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더니 이곳에서 흔한 플라그가 나무 밑둥지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일본수상 하야토이케다 기념식수 1963년’ 이렇게 씌어 있네요.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시 아직 살아 있을까? 잠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을 방문하여 바로 이 나무를 심은 그 다음해 쯤에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났으니 이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원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과 좀 떠들썩하게 심었을지도 모를 이 나무를 기억하는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벗꽃나무는,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며 조용히 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일본 수상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내가, 이렇게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박인희님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런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남긴 카르마는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쉽게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같은 자리에 서서, 앞서 왔다가 먼저 가버린 이 사람의 흔적을 보면서, 나도 내가 왔던 흔적 그리고 장차 내가 가고나서 남을 흔적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번에 이곳을 지날때면 봄 기운이 더욱 완연하여 아마 벗꽃이 피겠지요. 그때는 다만 그 순간을 즐기기를 희망합니다.

백년 세월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고작 100년전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으며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그때 스페이스셔틀이니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이야기를 티비에서 우연히 보고 있었거든.

장수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아버지대에 처음으로 인간이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것을 목격하고서, 자기대에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이는 인류가 바퀴를 굴리며 그 성능을 향상 시키며 살아 왔던 지난 수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과 비교하면, 실로 그 발전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술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인류가 지난 몇 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축척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발전을 지난 100년 혹은 50년 기간에 이루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런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와 양 모두) 그리고 그 결과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 인류가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할 시간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깜작 놀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종교가, 지난 수십년 기간만을 본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또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복잡한 요리 레서피가 과연 진짜인가 알아 보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는 그 레서피로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어 보고 어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종교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유래없이 급변하는 불안하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언제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행복을 증진시키며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리가 없겠지.

어쩌면 이토록 엄청난 속도로 나르는 (flying) 현대인들에게는, 지난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던, 바퀴 굴리는 시절의 종교는 더 이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가르침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었나? 그 해답은 스스로 알아보고 깨달아야 하지 싶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뜨는 쪽으로 자기 발끝만 보며 오래 오래 걷는다고 히말라야 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뒤늦게,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아무데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미 사라진 옆사람들을 나무래겠나 아니면 불쌍한 내 발을 혼내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