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철수 시리즈 1

성공의 요소 – 겁을 상실한 철수씨

가끔 아내와 인생 성공의 요소들은 과연 무었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을때가 있다. 유치원 선생님 경험이 많으니,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유전적 혹은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이야기 할때도 있고 (복잡한 레고등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들의 ‘하늘과 땅만큼 다른’ 태도와 방식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할 예정이다) 우리 아이 친구들의 다양한 삶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이곳에서 한때 인연을 맺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민 유학 왔던 사람들의 삶에서 본 성공과 실패의 공통점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먼저 지금 떠오르는 내 잘났다는 이야기 하나.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지내기 힘들고 어려운 순서가 ‘여행 -> 유학 -> 취업’ 아닌가 싶다. 이 세상 어느나라 어디에서도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상대방 주머니에 넣어 주면’ (합법적인 방법을 나는 말하고 있는데, 설령 불법적인 방법을 당신이 굳이 포함한다고 해도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래도 아마 적용될 듯) 내가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얻을 수가 있다. 여행은 물론이고 유학도 마찬가지. 일부 돈을 내고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극소수의 대학들을 빼면, 상당히 좋은 대학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학들이 당신을 (사실상 당신 주머니에 있는 돈을) 쌍수를 벌여 환영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행지 사람들이나 유학대상기관들은) 당신이 적당히 기존의 맴버들과 어울릴만 하기만 하면 그리고 당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는 동안 별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줄 것이다. 아니 팔 것이다. 그러니 살 수가 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그런데 반대로, 이 세상 어느나라 어디에가도 ‘그곳 사람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 넣기’는 (역시 나는 합법적인 방법을 의미하고 있는데, 혹시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불법적인 방법을 포함해도 내가 말하려는 것이 여전히 적용될 듯) 위에서 말한 그 방향보다 열배 백배는 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외국여행 다녀와서 무슨 대단한 성취를 한것처럼 떠들거나 혹은 유학가서 무슨 학위를 획득했다고 잘난체 하는 것을 약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철수씨가,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는 바로 그 사람, 최근에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책을 냈단다. 이 양반 한국을 떠나 독일 미국 연구소에 잠시 적을 두며 있던 지난 한해 동안에 쓸쓸하고 괴로운 마음에 달리기를 좀 했던 모양인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내게 딱 들었던 생각이 ‘이 양반 또 다시 겁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일년 골프쳐서 보기플레이어 된 사람이 골프에 관한 책을 출판한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 나는 이것이 머리가 좀 돌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짓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양반 몇년전에 처음 정치무대에 등장했을때 사람들이 ‘당신 무언가를 다스리거나 경영하거나 혹은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나라와 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발칙한) 발상을 하는가’ 물었을때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생각에는 어떤 사람이 2미터 깊이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잘 할 능력이 있다면, 태평양을 건너는것도 그 능력을 활용하면 가능하지 싶다’고.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철이 없고 겁을 상실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좀 그랬었고. 이 양반 자신도 어쩌면 그것을 그 이후 몇년 동안 정치판에서 처절하게 당하면서 경험을 했던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부작용이 어쩌면 외국에서 미친듯이 달리기?

아내와 인생 성공의 요소를 이야기 할때 내가 가끔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 ‘겁을 좀 상실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런 객관적으로 증명할 경험도 능력도 전혀 없는 사람이, 술취한 호기 같은 것으로 겁을 상실한 생각을 하고 그런 짓을 잠시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깨면 그런 생각은 싸악~ 사라지고 그런 행동도 쑤욱~ 중지된다. 그런것 말고, 비록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라도 무언가 경험과 능력을 스스로 얻어보고 또 쌓아본 사람 그런 사람들 중에서 좀 겁이 없이 (판을 갈아치우자는) 발칙한 발상을 하는 사람이 크게 성공하고 정말 무언가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귀때기 새파란 나이에 이곳에 올때 겁대가리가 없었다. 세상을 모르고 앞뒤도 모르고 또 잃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배수진? 무슨 배우 이름인가? 그런데 완전 빵점은 면하는 딱 하나를 우연히 가지고 왔었다. 다른 친구들, 지금은 박사도 되고 원장도 되고 사장도 된 내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열심히 전공, 영어 그리고 취업 공부할때, 내가 혼자서 컴퓨터실에서 독학으로 익혔던 CAD기술과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태동기였지만 영어권에서 더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여기에 와서 이렇게 써먹을 것을 예상하고 작정하여 독학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을 열어 오래 또 멀리도 왔다. 이곳 사람들 주머니에 든 돈을 내 주머니로 합법적으로 옮기면서 🙂 물론 CAD는 인연이 다해 오래전에 내 인생에서 멀어졌고 지금은 몇장의 도면만 내게 남아 있지만. 그때, 지금도 가까운 직장 선배와 (아마도) 업계 최초로 CAD를 활용하여 도시설계를 했었던 곳을 구글맵으로 볼수있다. 그곳에 사람들이 정말로 산다더라.

철수씨의 책을 우연히 읽은 아내는 철수씨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쪽은 엄청나게 똑똑하고 부자요 너무나 알려진 사람이고 다른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빼면 🙂 나도 그와 내가, 아니 우리 내외 모두가 닮은점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이 부유하고 똑똑한 사람이 독일에서 한해를 사는 모습을 잘 담고 있는 그의 마라톤 책을 읽고서, 자신의 이민초기 경험도 떠올리면서, 이 사람이 참으로 겸손하고 진심이 있는 훌륭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능력과 성공여부에는 비록 관심이 없지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상한 여자같은 종자들 말고, 그 전후에 그 자리에 계신 훌륭한 인격자분들을 이어서 만약 철수씨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한국은 한 단계 위로 도약할 것이다. 돈? 경제? 그런건 모르겠고. 품격으로 말이다. 사람만 인격이 있고 품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라에도 그런 것이 있다. 한 나라가 노는 수준이 있고 국격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보아 왔다. 어느듯 우리도 이런 기준으로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왈가왈부 해보는 수준에 까지 도달했네! 훌륭하다 대한민국 그리고 철수씨도.

카르마는 당사자가 죽어도 소멸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좀 듣기 싫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저를 알고 좋아하는 그대들, 부디 끝까지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어떤 사람이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행했던 것들의 결과물인 카르마는 (업 혹은 업식은) 설령 그 당사자가 죽고난 후에도 쉽게 그리고 즉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 산 사람들이 휘둘리고 그들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제 자신과 또한 주변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볼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만 되고 나면 혹은 결혼만 하고나면, 그 부모인 내가 여태껏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유롭게 살게 될것으로 생각하세요? 그 아이들 나이의 두배가 훨씬 넘도록 세상을 산 당신이 바로 어제, 지난달 혹은 작년에,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했던 (그리고 또한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언행들이, 이미 돌아가신지가 오래되었거나 혹은 멀리 사시는 연로한 당신 부모님이 만들었던 어떤 카르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당신 생각의 버릇, 반응의 방식 그리고 어떤 결정들 속에 그분들의 그림자와 영향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부모자식관계나 부부관계등 밀접한 인간관계는 카르마가 씨줄날줄로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이것을 마치 날카로운 칼로 단칼에 잘라버린다고, 그 많던 카르마가 동시에 단번에 떨어져 나가고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있던 카르마 위에, 더 풀기 어렵고 복잡한 새로운 카르마를 덧붙이는것 뿐입니다. 결코 당신 곁에서 저절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그 아이들에게서도, 설령 당신이 죽은후에라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씨줄날줄을 한올두올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도 꼭 해야만 한다면 말이예요. 그래야 당신도 상대방도 또한 당신들이 사랑하는 아이들도 자유롭고 장차 행복하게 살수 있을꺼예요. 아니 최소한 당신이 그들의 삶에, 아무도 원치않고 또 아무런 필요도 없는 부당한 카르마를 평생 짐지우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쉽고 빠른 길은 두고두고 부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를 당신 자신만 감당하게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지금 본인도 깨닫듯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모님들께서 당신께 했던 것들 그리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해 보세요. 감사하고 좋았던 것들은 반복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인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좋지 않았던 것들은 당신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로건 물려주지 않으려고, 당신이 죽는날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부모는 이렇게 힘들고 소리없는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뛰어 올라간 산위에서 나는, 나의 부모들이 내게 남긴 카르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은혜를 감사함과 동시에, 내가 내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어떤 카르마를 남기며 살다가 떠나게 될 것인지 생각하며 나 자신의 건투를 빌어 봅니다.

당신도 나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며 또한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지당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방법을 선택하시길 새해 인사를 갈음하여 기원드립니다. 저도 올 한해 노력하겠습니다.

두뇌를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진화 했던 것이 대략 6만년전 쯤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으로 살게 된 기간을 넉넉 잡아 100년이라고 치면, 1/600 그리고 이것을 24시간 스케일로 환산하면 채 3분이 되지 않는다. 200년 이라고 쳐도 5분이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살지 않았던 기간이 23시간 55분이고, 현재와 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아 온 기간은 고작 5분 내외이다.

모택동이 집권하던 시절, 참새를 중국의 적으로 규정하여 온 중국인들이 일제히 참새와의 전쟁을 치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참새를 잡았냐고? 물론 약도 놓고 공기총도 쏘았었겠지 하지만 엄청난 수의 참새는 그냥 날다가 지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쫒아 내서 아무대도 앉지를 못하게 하니까. 우리 조상들은 치이타처럼 빠르지도 못했고 사자같은 무서운 이빨과 앞발도 없었고 다른 동물들처럼 후각이나 청각이 그리 발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을까?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중 대부분은 인간들 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릴 수 없다. 흡사 중국인들이 참새를 맨손으로 땅에 떨어트렸던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수 만년간, 사냥감이 지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뒤쫒아 가서 잡아다가 가족들과 나눠 먹었던 것이다 🙂 아버지만 대표로 뛰었겠나? 그 참새 잡던 시절의 중국인들처럼, 아내도 아이들도 ‘모든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데로 아무거나 들고 뛸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같이 걷고 또 뛰었었겠지. 자주 어쩌면 매일.

당연히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사는 것에 유전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지금 당신이라는 존재 안에, 조상들의 삶이 대대로 녹아 있고, 역사가 들어 있고 또한 인류가 수 만년 혹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쌓아온 본능이 들어 있다. 이것 잊고 살고 무시하며 지내다가 언젠가는 큰 댓가를 치른다.

걷고 뛰고 운동하면 우리 뇌가 행복해지고 우리 몸이 건강해진다. 그 시간에 앉아서 딴짓을 계속하면 뇌가 불행해지고 몸이 아프게 될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진다. 내 경험에 따라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내가 믿는데, 운동 특히 자연속에서 걷고 뛰고 땀흘리는 것을 좋아하며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치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사람치고 그런 운동 좋아하고 즐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는 줄 조차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안 걷고 안 달릴텐가? 머리 맑고 몸 건강하게 잘 산다는데도 🙂

레지나 보따리장사, 매리 레인보우

기차 혹은 기차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근래에 ‘인도 국경을 지나는 기차들’ 이라는 3부작 BBC 도큐멘터리를 보다가, ‘레지나’라는 네팔 여자의 삶을 잠시 옅볼 기회가 있었다.

레지나는 네팔과 인도 국경간 몇 십킬로 구간을 오가는 그 완전 고물 기차의 단골 고객이다. 그녀는 네팔 상점들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인도에서 사다가 기차로 밀반입 해주고 얻는 적은 수수료로 아들 둘과 함께 사는 여자다. 십대 중반에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서는 열아홉 나이에 남편에게 버림 받고 그때부터 두 아이들을 기르며 홀로 살아 왔다. 최빈국에서도 하층 삶을 산다.

비록 국경은 없으나, 때때로 네팔 군경들이 기차가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가 출입구를 막고 밀수를 단속하여 물건들을 압수한다. 관세를 내야만 되찾을 수 있는데, 하루벌어 하루먹는데 무슨 관세를 어떻게 내나… 도큐멘터리 속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데, 레지나는 죽을 힘을 다해 보따리를 지키려고 하고 다만 하나라도 빼돌려 담장 밖으로 아들과 함께 가지고 나가려고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며 슬퍼한다.

레지나는 ‘unshakable spirit’의 소유자다. 달리 좋은 표현을 잘 모르겠다. ‘불굴의 영혼’? 그녀는 보따리장사지만, 가수요 신앙인이며 또한 달변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하버드 옥스포드 박사들이 쓴 그 어떤 책들 보다도 더 많은 훌륭한 가르침을 나는 레지나에게서 받는다.

밀수품 보따리를 잔뜩 실고 가는 고물 기차에서 노래하던 레지나. 무슬렘이면서도 힌두교 큰 축제때 염소 한 마리를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도 바치던 레지나. 그녀가 말한다 ‘그들의 신과 나의 신이 다르지 않다. 오직 인간의 마음이 분별할 뿐이다’. 다음날 떠날 기차를 기다리며 허름한 곳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면서 ‘비록 거적때기지만 (어떤 사람들처럼 몸을 팔지 않고) 내 손으로 벌어서 산 내 것 위에 눕는다’고 말하던 레지나. 자라나는 아들들이 엄마를 위해주고 또 밖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여 작은 돈이라도 벌어 오는데 감동해서 기뻐하던 엄마 레지나. 그때 레지나가 말하더라. ‘내 삶이 하도 힘이 들어서,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꺼졌다는 생각에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었다’고.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이리 잘 해주니 내 영혼이 충만하고 기쁘다’고 (Now my soul is content). 죽기 살기로 보따리 장사를 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하루벌어 하루먹으니. 그 고물 기차가 자기에게는 삶의 터전이요 기쁨이요 신 (god)이라고 하던 레지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이 훌륭한 인간을, 그 불굴의 의지를, 그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고 싶다.

이제 그 고물 기차는 영원히 멈추었고, 협괘는 부서졌으며, 낡은 역건물은 허물어졌다. 중국과 인도의 자본을 들여와, 세 나라를 연결하는 최신식 기차를 네팔 정부가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아! 레지나. 잘 살고 있기를…


아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을 ‘레인보우 매리’라고 명명하였다. 여러가지의 채소를 오븐에 구운 다음에, 한 두가지 소스를 위에 뿌린 것이다. 맛있겠나 🙂 ‘매리 베리’라는 우리 내외가 좋아하는 요리사로부터 티비를 보며 배운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내가 음식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매리의 무지개’.

매리는 84살 할머니 요리사인데, 지금도 현역으로 티비에서 요리를 가르치고 또 책도 쓰고 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알려진 요리사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왼손이, 아마도 류머티스 때문에, 손가락들이 기형이 되어 제 구실을 못한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만 목 아래로는 쪼글쪼글한 상할머니다. 그 연세에 그 손으로, 보통 사람들이 만들기 쉽고 또 좋아할 음식들을 소개하고 또 쉽게 배우도록 도와 준다. 은근한 진짜 유머도 있고 또 멋도 잘 부린다. 우리 내외가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존경한다. 이 분은 끝까지 자신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지켜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태워 촛불을 밝혀 자신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을 그리고 기쁨을 주는 삶을 산다. ‘래인보우 매리’를 함께 먹으면서 아내에게 ‘당신도 아마 저 분처럼 살게 될 것이오’ 덕담을 건넨다. 어떤 사람들은 흡사 그런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똑같이 힘들고 아무것도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레지나 보다 어쩌면 수 백배 더 부유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리 베리 할머니 보다 월등히 젊고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환경이 인간을 좌우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또 인간의 행복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홀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계단,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스스로 알아내어 스스로 올라야 하는, 그 계단이 인간의 품격을 결정짓고, 행과 불행을 좌우하며 또한 해탈 열반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기차에 사람들이 매달리고 지붕에 잔뜩 앉고 또 동물들과 사람들이 섞여 있는 그런 사진을 보면, ‘아! 어떻게 저렇게 사나’ 생각했었다. 마치 그 사람들이, 함께 있는 그 동물들과 비슷한 수준인 것처럼. 레지나를 알게 된 나는 이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와 똑 같은 삶이 그곳에도 있다는, 어쩌면 어처구니 없도록 명백한,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품격은, 그가 무었을 먹고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집에 사는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기에.

레지나 그리고 매리 베리. 두 아름답고 훌륭한 인간을 본다.

미셸 오바마 자서전 ‘Becoming’ 이야기 3

큰 돈이 걸린 투견을 위해 싸움개를 전문으로 기르는 자들이, 장차 돈을 벌어 줄 미래의 챔피언 싸움개를 양성하는데 사용하는 기술을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족보가 좋은 새끼개를 골라서 은퇴한 늙은 싸움개와 장난반 연습반 싸움을 붙이면서 훈련을 시키는데, 잘 지켜 보면서 새끼개가 은퇴한 개로부터 기술은 배우되 절대 진다는 느낌이 들때까지는 놓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런 훈련을 많이 한 다음 큰 돈이 걸린 진짜 투견 대회에 참가 시키는데, 이렇게 체계적으로 훈련된 그 개는 두려움이 무었인지를 모른다고 한다. 단 한 번도 패해본 적이 없으니. 전혀 겁을 내거나 위축되지 않는 상태에서 싸움에 임한다더라. 이게 무슨 뜻일까?

미셸 오바마 여사가 자서전에서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인종차별의 ‘최대 최악의 원인이자 결과’가 미국흑인들로 하여금 ‘시작도 해보기 전에 이미 두렵고 무서워서 정신적으로 패하도록’ 미국사회가 온갖 방법으로 그들에게 패배의식 혹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얼마나 무섭고 나쁜 이야기인 줄,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 대부분은 경험 해본 적이 없을테고 또 나아가 미국의 영부인까지 왜 이런 이야기를 자서전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큰 주제로 다루고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지난번 글에 ‘남의 나라의 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감추는 중년 남자’ 언급을 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블로그에 등장했던 그 보살원장은 나의 아내다. 나는 그녀를 통하여 뉴질랜드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난 십여년간 많이 듣고 또 알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에서 서당개 노릇하느라 내가 좀 바쁘다 🙂 이를 통하여, 이 나라의 국가 1절이 왜 원주민말인 마오리어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또한 왜 국가의 가사에 내가 이전에 말했던 그런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이 나라의 공립 유치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몇 주전에 아내의 유치원이 속해 있는 지역협회에서도 90주년 기념일을 크게 축하 하였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학습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것의 배경이 되는 교육철학적인 측면도 정부와(문교부) 유치원협회들이 함께 개발하고, 실행하며 또 모니터링 한다. 원장이나 선생들 마음대로 (시끄럽다고 보드카를 몰래 먹여 ‘곤히’ 재우거나 하면서) 아무것이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유치원 교육 내용에 반영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서, 뉴질랜드 국민 다수가, 아빠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 아가에게 무었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그 원하는 내용들을, 합의된 교과와 방식 그리고 절차에 따라서 유치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아내가 유아교육과 학생으로 유아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시절부터 십수 년이 지나 큰 공립유치원 원장으로 일하는 지금까지,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또 아무것도 모르던 나 같은 사람도, 이 나라의 유치원 교육에서 원주민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를 얼마나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아이들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성들여 가르치는지, 때때로 이것 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너살된 어린 아가들에게, 일찍부터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알게하고 또 자신과 이질적인 문화를 대할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마치 밥 먹을 때마다 테이블매너를 가르치듯이 지속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장차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버스에서 들리는 외국어 소리, 식당에서 나는 이질적인 음식냄새 그리고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화의 차이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 새끼 싸움개가 패배나 두려움이 무었인지 모르면서 큰 싸움개로 자랐듯이. 비록 목적은 극단적으로 다르나 그 방법은 지혜로우며 또 결과는 같지 않을까?

그냥 개인적으로 내 생각과 비위에 맞지 않다는 것과, 저것들이, 저 인종들이, 저 무리들이 하는 짓이니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지난날 나는 사소하고 어리석은 이유들로 때로 상사나 동료들과 언쟁을 벌였던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건데 한 번도 ‘인종간의 어떤 문제’가 원인이 되었던 기억은 없다. ‘인간간의 어떤 문제로’ 부딪혔었지. 이 두가지가 매우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아마 잘 이해하고 공감 하실 것이다.

나는 이 착하고 훌륭한 국민들, 약자를 보살피고, 쉽게 믿고 또 인간적인 동정을 베풀며, 있다고 별로 거만하지 않고 또 없다고 별로 기죽어 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 피부색 언어 그리고 문화가 다른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화목과 조화를 위하여, 그 좋은 머리와 세금을 아낌없이 쓰고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감동을 느낀다. 서로에 대한 존경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구성원 상호간의 유대와 지원은 이런 과정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돈으로 살 수 없고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조차도 이나라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 되고 싶게끔 만든다. 그래서 이나라 국가를 부를때면 내가 늘 눈물을 몰래 훔치게 되는 것이다.

영어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 A great man shows his greatness by the way he treats little men (Thomas Carlyle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사회도 나라도 그의 위대함을 약자와 소수를 대접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보이지 않을까?

그대가 속해 있는 그 조직, 그 사회와 나라는 어떤 식으로 약자와 소수를 대접하는가? 당신은 그것에서 위대함을 느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