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 인간과 폭력 1

베트남에서 수입되는(?) 수많은 신부들, 천문학적인 규모의 한국-베트남간의 경제협력 그리고 우리세대만 하여도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상당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베트남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했던 형님뻘 되는 베트남 친구도 있었고 또 직장에서는 매주 탁구를 치는, 보트피플로 이곳에 정착한 베트남인 동료도 있다.

이 훌륭한 도큐멘터리를 보기전까지 나는 내 자신이 베트남전쟁에 대한 상당한 그리고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였었다. Ken Burns라는 그야말로 ‘위대한 감독’이 연출한 이 탁월한 베트남전쟁 도큐멘트리를 나는 2년전에 처음 보았었다. 10부작인데 약 15시간에 걸친 대작이다. 이번 여름 좀 한가한 시기에 10부작 전체를 다시 시청하였다. 2주에 결쳐서 보았는데 오늘 오전에야 끝이 났다.

언젠가 베트남을 한번 방문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무언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그런데 한국측에서 베트남정부에 어떤식으로건 사과의사를 (전쟁범죄와 관련하여) 표명 하려고 하면, 베트남정부는 ‘경제협력을 강화하면 좋겠다’면서 늘 직접적인 응대를 피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는 것을 듣고서 의아해 했었다. 지금도 베트남에 수없이 남아있는 ‘우리 부모형제를 학살한 한국군을 대대손손 결코 잊지 않겠다’는 원한 맺힌 비석들과는 대조적인 반응이 아닌가?

얼마전 한 베트남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이 한국정부를 (국방부) 상대로, 자신의 부모도 희생된 구체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일이 있었다. 그 수많은 증거들과 확인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그 유족에게 보였던 반응은, 일본 전범들과 합사되어 있는 한국인의 영령을 분리해 달라는 소송에서 최근 일본정부가 보였던 반응과 매우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송결과를 발표한 일본인 판사는 딱 한마디 ‘기각한다’고 했다던가. 한국정부는 그 베트남 유족에게 ‘증거 불충분’ 이라고 말했다더만.

어쨋던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인데, 승전국인 베트남은 말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패배한 나라, 특히 전쟁의 주체도 아니며 용병을 파견했었던 한국측으로 부터의 사과 따위는 좀 웃기는 이야기로 치부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승리한 이 전쟁에 관한한, 한국은 왈가왈부할 대상조차 못된다는 태도다. 듣고보면 일리가 있기도 하고 더 쪽팔리는 기분도 든다.

그 도큐멘터리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것을 보기 전에는 나는 나름대로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국민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존중 혹은 존경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 2 나라를 상대로 이십년 전쟁을 치루어, 프랑스군대도 또 미국군대도 힘으로 박살내고 자기들의 영토에서 쫓아낸 자존심의 나라요 국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두번째로 도큐멘터리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고 또 느끼게 된 것은, 미국과의 십년전쟁은 사실상 ‘미국이 개입했던 베트남 내전’이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끼리 공산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면서 편을 갈라, 백만 이백만 서로를 죽이는 그 미친 내전에, 미국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참전했었고 그들 자신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으로 패전하고 쫒겨났던 전쟁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도큐멘트리 마지막에, 물론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지났기에 할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 당시 참전했었고 또 승리했던 북베트남 군인들과 베트콩들 중에서 이런말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건데, 그런 엄청난 희생을 치룰만큼 그 전쟁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무척 공감이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또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 되돌아 보는 지난 역사, 특히 이렇게 인간들의 의지가 충돌했던 큰 갈등과 폭력의 기록들은, 내게 와닿는 바가 이전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단지 살생이나 폭력을 하지말라는 도덕책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음편에…

JW

밤새 두꺼운 서리가 내려 흡사 눈처럼 온 세상을 뒤덥은 겨울의 이른 아침. 출근길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 늘 그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오늘도 본다. JW (Jehovah’s Witnesses) 팻말 아래로 Watch Tower라고 쓰인 책들이 보인다. 아! 정말 춥겠다. 나도 군대서 보초를 많이 서봐서 아는데 겨울에 해뜨기 직전이 정말 쥐약이다. 추워서 죽음이다. 이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고 또 그 책은, 그 옛날 그 시절 파수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되던 책이다.

이십대 초반, 휴학 후 입대를 기다리던 동안 나도 한때 이 사람들과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었지. 아! 그때 내게 교리를 가르친 그 아가씨 선생님,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그넘의 책에 자꾸 등장하던 ‘할례’가 무었인가 재차 뭇는 내게 (오~ 븅신) 차마 대답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 아가씨. 지금 돌이켜 보아도 괜찮은 여자였다.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지.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금방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땐 인터넷은 커녕 피시도 거의 없었다. 어떻게 처녀가 총각 앞에서 일대일로 그것이 무었인지를 설명하겠나 🙂

그녀와 주변의 좋은 사람들. ‘입영거부’ 아무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를 받아들여주고 또 나에게 그들을 알고 이해할 기회를 주었던 진실했던 사람들. 입대를 위해 떠날때가 왔고 그녀와 마지막 세션 (공부)을 마치던 그날, 우리는 작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악수를 하고 작별하였다. 아마 만년필이었던가를 내가 주었던지 받았던지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함께 모여서 그렇게 가드를 내리고 서로를 잘 대해주면, 사람들이 그렇게 진실하고 착할 수가 없더라. 비록 그들의 믿음을 나는 함께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한결같이 괜찮은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만큼 하기도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면서, ‘지금 뭐하는 짓인가’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이렇게 힐난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침에 이사람들에게 커피라도 한잔씩 사주고 싶지만, 내 마음에서 종교라는 것이 너무나 멀어졌고 또 그 사람들이 내 호의를 오해할까도 두려워 못 본척 지나쳤다.

입대후 나는 81130 특기를(?) 받고 기지교도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새로운 죄수들이(?) 들어 왔다. 문서를 보니 총기수령거부. 아! 이 사람은 여호아의 증인이었던 것이다. 기지교도소에서 육군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얼마간을 이 사람과 나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보냈다. 아마 밤에 시간을 내어 위로도 하고 또 아무도 보지 않으면 잘 대해 주었었지 싶다. 차마 내입으로, 나도 한때 당신들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었던 적이 있었으나, 당신과 같은 믿음과 용기가 없어서 지금 철창 반대쪽에 서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어느날 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리 지역 회중에서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하다가 입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때 그는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군인이 바로 그 사람임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믿기에, 그 처녀 선생님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 그들의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했었을 것이다. 나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 주었을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그때 그자리에 있었더라면 백발백중 인생 종칠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운좋게 제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이곳에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모두 우연이거나 혹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기도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준 좋은 인연 카르마의 결과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눈물이 나는지… 아마 그 사람들의 인간적인 노력과 희생을 보았고 (설령 세상이 그것을 비웃는다 할지라도) 또 지금도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이리라. 그저 돈따라 이익따라 부초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사는 세상에서, 한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따뜻하고 또 굳게 잡아주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던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또 존경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결국은 지푸라기임을 나는 점점 깨닫게 되기에. 우리 모두를 향한 눈물 방울…

종교와 믿음을 떠나서, 내 자식이 진실한 여호와의 증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지 싶다. 세상에 그만큼 하기도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깨닫게 되었기에. 다른 믿음을 가지고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되고 또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살기에. 그리고 우리가 존경하는 친구 노(老)신부님께서 어머니께 말씀하셨듯이 ‘어떤 종교를 가지던 진실하고 훌륭한 삶을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나도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해주고 싶기에. 아름답고 품위있고 착했던 그녀. 지금도 훌륭한 여호와의 증인으로 잘 살고 계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그런 것 물으면서 븅신짓해서 미안했어요. 지금도 종류는 다를지 몰라도 여전히 그 지랄하며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