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성공 오늘의 행복?

우연한 기회에 꽤 좋은 골프클럽의 회원이 되다보니, 어제 잘 나갔던 사람들과 (상당수는 현재도 잘 나가고 있는) 함께 라운드를 할 기회들이 종종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함께 여행을 해보면, 바둑을 두어보면, 도박을 해보면 그리고 골프를 쳐보면 그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고 하더라. 내 작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런 것 같다.

이 나라 전직 육군총장과 한 라운드를 했었는데, 물론 속으로야 한 가닥이 아직 있겠지만 겉으로는 (내가 느끼기에는) 겸손하고 조용한 중늙은이였다.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다만 내가 묻는 말에만 좋게 대답을 해주었다. 어깨에 아무런 계급장도 달려 있지 않아서 들어올리는 골프채가 가벼워 보였다. 내세우지 않고 바라지 않으며 위에 서려하지 않아 보이니, 종종 무지랭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또 때때로 아래에 서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무리없이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이 보였다. 한때 별들이 어깨 위에서 번쩍였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클럽의 멤버로 다만 골프를 함께 칠 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멋있고 또 부러웠다.

최근에는 아주 대단한 사람과 두어 라운드를 우연히 치게 되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장관 그리고 대단한 변호사로서 이나라 원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엄청나게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던 존경받는 정치인 법률가라고 하였다. 우리 아이도 한두 차례 만났었다고 하며 이 사람의 명성은 그 분야에서는 전설이라고 하였다. 첫라운드를, 내가 잘 아는 노부부와 더불어 4명이 함께 치면서 이 사람과 내가 골프 수준도 비슷하니 앞으로 종종 함께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면들을 보게 되었다. 클럽 회원 대부분이 이 사람이 누구인줄 알고 또 보기플레이어 수준이니 어떤 회원들과도 어울릴 수가 있을텐데, 이 사람은 거의 대부분의 라운드를 오직 한 사람, 어떤 한국이름의 회원과만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회원들의 온라인 예약 시스템에 훤히 드러난다. 그날은 아주 예외적으로 노부부와 내가 함께 치게 되었던 것이고.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했고 또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최근에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는등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차례 하였다. 어떤 것을 내게 물었는데 결국은 그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자주 기울었고 정작 내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럴수도 있겠지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 그는 이날 88을 치면서 자신의 최고 기록이라고 기뻐하며 한잔 하자고 하였다. 노부부는 먼저 떠나고 나만 함께 클럽하우스로 갔는데, 이 사람이 자신의 음료와 음식을 주문하고선 쓱 테이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보통은 한잔 산다. 굳이 최고 기록을 세운 날이 아니라도 그저 함께 클럽 하우스에 오면 보통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함께 음료와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 먹을래 인사치례 조차없이 혼자서 그냥 먹는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어 이사람 좀 이상하다. 왜 다른 회원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때 이 사람 혹시 게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위키피디아를 보니 스스로 고백하는 동성연애자라고 쓰여 있더라. ‘그러면 어때 우린 골퍼로서 필드에서 만나서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낼뿐인데… 어쩌면 이 클럽에도 게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있나? 내가 파트너가 좀 되주지 뭐 그래’ 이런 좋은 마음으로 두번째 라운드를 함께 하였다.

그 한국 사람이 같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열서너살 된 한국 남자 중학생 아이였다. 좀 놀랬다. 이 아이와 자주 그리고 오직 이 아이 하고만 골프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환갑이 훨씬 지난 사람과 그 남자 중학생이 친구처럼 같은 수준으로 노는 것이다. 아주 편하게 서로가. 내가 좀 더 놀랬다. 그는 첫홀에서 칩샷 실패를 하였다. 그런데 나와 다른 동반자가 퍼팅을 아직 끝내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그 자리로 되돌아가서 그린 한복판으로 칩샷 연습을 하는거라. 내가 몹시 놀랬다. 그리 길지 않은 내 골프경험에 그래도 수백명의 사람들과 수백 라운드를 했었는데 이런 짓을 하는 골퍼는 처음 보았다. 우아…

몇 홀을 계속하면서 이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어 조금씩 떨어져 걷던지 (이곳에선 카트 거의 안탄다) 아니면 일부 이야기를 못들은 척하게 되었다. 조금씩 불편해지는데… 가장 어려운 홀에 함께 도착했다. 그 아이에게 그저께 자신이 이곳에서 파를 했노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게 ‘그가 파를 했던 것이 맞다’는 말을 직접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때까지도 그저 좀 수다스러운 사람 정도로 느꼇기에 스스럼없이 ‘그렇다 이 사람은 그저께 라운드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이 홀에서 파를 기록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내게 다시 그 말을 반복하라고 하는거라. 내가 순간적으로 빡쳐서 ‘that’s enough’ 이라고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때 아마 이 사람이 좀 삐졌던가보다. 라운드 끝까지 그리 좋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하더만 별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그 아이와.

나중에 우리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 사람과 일어났던 이야기를 했더니 ‘워낙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고 또 지금도 대단한 변호사기 때문에, 설령 아빠가 본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매우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지 싶다’ (그러니 아빠는 괜히 배 아파 하지 마시라)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짧게 ‘인생이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행복하다. 한쪽이 비대하다고 인생의 다른면들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만 말하고는 더 이상 아이와의 설전을 피했다. 나와 아내는 안다. 학창시절 수많은 고객들에게 자동차를 팔며 억센 차도매상들과 상대하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던 아이. 수많은 다양한 친구들과 좋은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아이. 후진국들을 친구들과 오래 여행하며 그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좋아했던 아이. 그리고 킥복싱 트레이너로 또 수련자로 가르치며 얻어 터지며 사는 우리 아이는 (자기 나이에) ‘삶의 균형 잡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 수준에서 더 이상 가르치거나 말할 것이 없다 🙂

그 대단한 정치가 변호사, 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 과연 행복할까? 그 아이와 골프치고 큰 집으로 되돌아가 혼자서 밥먹고 무슨 훌륭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던데 그렇게 글 쓰면서 살면 과연 좋을까? 이 좋은 골프장에서 나같은 무지랭이, 100만원도 안하는 순고물차를 명차들이 즐비한 그 주차장 한쪽 구석에 아무도 안보게 살며시 황송하게 주차하고 다니는, 생긴것도 다르고 말귀도 잘 못알아 듣는 (청력의 문제만이 아닌) 내가, 클럽 챔피언부부 부터 카레먹는 넘들 그리고 골프에 미친 까칠이들과도 별 스스럼 없이 코스에서 어울려 희노애락을 나눌때 이 사람은 그런 자유가 없지 않은가? 그 명성과 돈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과연 골프에만 소용이 없는 것일까?

그저께는 어떤 전직군인과 한 라운드를 했는데 그는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게 무언가를 물으면 내 대답을 듣고서 그는 내게도 대답을 자발적으로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가 이렇게 물어서 내가 대답을 해주면 내 말 끝에 자신의 아이들은 몇인지 몇살인지 부연하여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 대부분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인데 참으로 중요한 예절이다. 물론 나는 늘 그렇게 해왔지 🙂 지금도 국방부에서 민간인 문관으로 일한다고 하였다. 아들 하나가 군인인데 올해말에 유엔군의 일부로 한국 비무장지대에 근무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입에 발린 감사의 말은 영어의 한계로 일단 뒤로 미루었다. 제대하기 전에 중국에 몇해 있었는데 그때 서울에도 몇차례 왔었다며, 중국 일본 한국의 오묘한 관계와 역학에 대해서 짧게 코맨트하며 관심을 보이더라. 나도 비록 의무였지만 한때 군인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어쩌다 우연히 좋은 샷을 날릴때 큰소리로 칭찬하며 인정해 주는 모습에 ‘이 사람 신사구나’ 싶었다.

집에와서 인터넷을 보니 고위장교로 예편하였고 주중국 대사관 무관으로 있었던 것 같았다. 짱께 장교(장군)들과 찍은 멋진 사진이 인터넷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의 계급이나 업적 그리고 경험을 내게 떠벌리지 않았다. 아마 내가 묻지 않으면 그는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중립적인 (한국에 관한) 주제에만 관심을 적절히 표명할 것이다. 그도 어깨가 가벼운 사람인듯 하였다. 어제의 계급으로 살지 않는 사람. 겸손하고 열린 그리고 외교관처럼 멋진 매너의 소유자라 내 적성에 딱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라운드가 기다려진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행복과 관련이 있나?
1. 관련이 있다 – 어제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해 오늘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2. 관련이 적다 – 어제의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오늘의 삶에서 (지금 속한) 시간과 장소에 적절한 언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은 아마 더 힘들게 될껄 🙂
3.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 어제에만 사는 사람들에게는.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오늘도 없고 내일은 더욱 없을 것이니. 이미 죽은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초보 골퍼지만 글을 마치면서 한마디 부연 하지 않을 수 없다. 넣으면 당연한데 못넣으면 기분이 뭐같은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되면 내 수준의 골퍼들은 ‘안들어가면 어쩌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며 좋지 않은 결과와 그에 따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골프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한가지 좀 잘하는 것이 있다. 나쁜 샷을 치고도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이 나빠서 짧은 퍼팅이 (핀에 맞고 튀어 나오든지) 들어가지 않아도 조용히 줏어들고 다음 홀로 걸어 가지 아쉬워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무언가를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냥 내 실력으로 받아 들인다. 물론 나중에 연습하는 정보로는 활용한다. 골프의 신은 아주 감정적이고 섬세한 여신이다.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나중에 돌려 준다. 황송하게 더 많이 줄 때도 있다. 하지만 건방을 떨면 금세 눈치 채고 처절한 보복을 가하는 무자비한 여신이다. 그저께 내 동반자가 첫 2홀을 버디로 시작하였다.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그때 그 동반자 머리에 어떤 생각이 오고 갔을까? 골프의 여신이 눈치 채고 그녀의 본색을 드러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절하고 비참한 보복을 당한 끝에 100을 넘겨 스코어 카드를 찢어 버리고 (더불어 찢어진 가슴을 감추며) 그는 클럽 문을 나서더라.

나는 요새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오면 ‘안들어갈 수도 있다. 안들어 갔던 적도 많았다. 들어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들어가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40펏 이상을 밥먹듯이 하던 (내게는 무척 어려운) 그 그린에서 요샌 심심찮게 20대 후반 펏으로 라운드를 마무리 한다. 물론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여신이 혹시 마음을 바꾸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

그저께 내가 중매하여 20년 이상을 잘 사는 친구부부에게 초대받아 저녁을 함께 하였다. 어떤 나이를 넘게 되니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더라. 이 글을 빌어 연배 많은 그 친구에게 한마디 하련다. 혹시 위에서 말한 짧은 퍼팅하는 생각을 하면 어떨까? ‘잘 안될 수도 있다. 잘 안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되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을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 그리고 나는 좋은 미래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면 탄수화물을 멀리하기가 어쩌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더 나은 무었들로 채우기가 쉬워질지도 모른다. 성공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오는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인생에서도 골프에서도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 확신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친구, 그대와 내가 보통 인연은 아닌듯 한데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래요.

노엘

출근길 버스, 막 떠나려는 참에 어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아주 힘겹게 버스에 천천히 오른다. 반신을 잘 쓰지 못하는 듯. 빈의자에도 간신히 걸터 앉는다. 허름한 옷차림에 가방을 등에 맨 흰머리 흰수염이 더부룩한 상늙은이…

가만있자 저 사람 혹시 노엘이 아닌가? 뒤쪽에 앉아 있던 내가 자세히 보니 맞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두세 정거장 가서 시내에 내린다. 이번에도 힘겹게 버턴을 누르고 겨우겨우 걸음을 옮겨 앞문으로 내렸는데, 내리고서도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좀 엉거주춤 서 있다. 운전수는 친절하게 기다렸다가 버스를 서서히 출발시킨다.

이 시간에 이곳에서 내리는 것을 보면 그는 놀러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런 몸과 행색으로 이 사람은 지금 무었을 하는 것일까? 그때 내가 그곳을 떠나면서 본것이 마지막이었으니 15년 세월이 흘렀다. 출근후 자리에 앉자말자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비록 오래전의 일이었으나 나는 그때의 에피소드를 생생히 기억할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도 성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단번에 찾을 수가 있다. 아! 한국으로 치면 국회사무처 비슷한 국회 지원 기관에서 매니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좀 정신이 멍하고 충격을 받아서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같은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그 당시에 그는 그곳에서 최고위급 매니져였었다. 그리고 그 당시 (죽었다 살아난) 뇌졸증의 여파로 반신이 불구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다녔으니, 지난 15년 이상을 이런 몸으로 계속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오십이 넘었었지 싶고 또 머리가 하옛었다. 15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말할것도 없고.

내가 상당한 근거로 짐작컨데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람 어쩌면 의지의 사나이 조용한 인간승리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라면 그런 몸상태로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려움들과 도전들에 직면할때 노엘처럼 꾿꾿히 견디며 가혹한 운명에 대응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동안 그를 잊지 않았으며 때때로 기억했었는데 앞으로는 힘겹게 버스를 타고 내리던 그의 모습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내 삶에서 내가 직면해 있는 어려움과 도전들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한때 나는 어려움에 빠진 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져 이유없는 호의를 베풀었었다. 그는 그때 멋지게 그것을 되갚았을뿐만 아니라, 이토록 세월이 흐른 후에 자신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더 많은 호의를 다시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인연이 흘러가는 모습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때 한순간 그런 자비의 마음을 내지 않았었더라면 그와 나는 아무런 인연없이 헤어졌을 것이고 아무것도 서로 주고 받지도 또 남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작은 자비가 15년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내게로 되돌아 온다. 신기하기도 하고 또 좀 무섭기도 한것이 인연 카르마가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비가 오는 바람에 버스를 타게 되었다. 막 버스에 오르려는데 줄 반대쪽에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서있길래 손짓으로 먼저 타라고 하였다. 괜찮다며 사양하는 사람과 문득 눈이 마주쳤는데 노엘이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듯 하였다.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뒤쪽 자리에 앉아 내릴때까지 그를 물끄럼히 바라보면서 그의 삶에 행복과 기쁨을 기원하였다.

가혹한 시련이 지난날 이유없이 그를 덥쳤었다. 비록 그는 쓰러졌었지만 다시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는 집에서 안락하게 서서히 죽어가는 삶보다는, 일어나서 쪽팔리고 힘이 들지만 정상적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였고 15년이 지난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다. 확실히. 나의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그의 건투를 빈다.

내가 나의 작고 가벼운 십자가마저도 불평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들때 나는 그를 기억하리라. 힘들게 지팡이를 짚고서 천천히 버스를 오르내리던 그의 모습을 잊지 않으리라.

당신과 나 사이가 너무도 멀어

당신은 나를 몰랐습니다
나도 당신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없이 떠났습니다
그후에 나는 알았습니다
그후에 당신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머나먼 타국에 계신 것도 아니건만
당신과 나 사이가 너무도 멀어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면서
이 슬픔 그대는 모르리
돌아서는 내 마음을

촌닭에게

강원도 ‘정선’ 🙂 카지노 도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듯이, 카지노 근처에는 전재산을 도박에 탕진하고 나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혹은 떠나지 않고) 수년을 노숙자 생활을 하며 터무니 없는 ‘미래의 한방’을 꿈꾸며 사는 ‘오늘의 폐인’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십년 가까이 소형자동차 안에서 숙식하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도박을 연구하며 사는 어떤 남자가 기억이 난다. 그 좁고 불편한 차안에서 노구를 누이기 전에 그는 바이얼린을 조용히 연주하였다.

우리 인생의 부조리와 불완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되어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도 한때는 괜찮은 사람,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상한 아빠였을 것이다. 그 나이에 바이얼린을 켜려면 그리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니 가능한 것은 그런 폐인의 삶을 지루하고 우울하게 지속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운명뿐이 아닌가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정면에서 걸어오는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를 지나쳤다. 순간적으로 두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제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혹한 운명을 바꾸기에 그가 지금 가진 카드는 (상황은) 너무나 좋지 않다. 그는 아마도 그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온갖 병고를 겪으며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내가 비교적 건강하다고 교만에서 비롯된 저주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전에 했던 선택들이 장차 우리가 하게 될 선택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며 또한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가의 이야기, 나아가 너와 나는 과연 이런 운명의 노예일뿐인가 잠시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그런 도큐멘트리를 티비에 보여주는 이유도 그리고 내가 아침에 스쳐지나간 초고도 비만의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들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며 지금 살고 있는가?’ ‘내가 가진 (남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초고도 비만의 정체는 무었이며 그 실체는 어떤 것인가?’

어제 너에게, 그 아름답게 가꾼 멋있는 몸매를 가지고서 이제부터는 숨이 차고 땀을 흘리는 달리기나 빠르게 걷기를 하라고 권했었다. 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한결같이 달리기의 최대 수혜자는 (잘 돌아가는) 두뇌이며 (안정된) 마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훌륭한 스승들도 ‘일단 몸과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너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자랑할 충분한 외향적인 아름다움을 이미 가지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내면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운동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길 권한다. 일단 심신이 안정이 되고 더 균형이 잡히게 되면 어떤 것에 빠져서 노예가 되기가 훨씬 어렵게 된다. 보약이며 백신인 것이다. 세상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네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한 것이니 이것을 지키고 향상시키는데에 가진 돈과 시간과 정력을 우선적으로 투자해라.

‘사람들이 다 배워서 하는 것’이라고 어제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은,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고 따라서 하는 것이고 또 누구에게선가 배워서 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배워서 따라 하다가 습관이 되고 인이 밖히면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술을 마시는 것이건, 도박을 하는 것이건, 운동을 하는 것이건, 좋은 습관이건 나쁜 버릇이건 간에. 일단 노예로 전락하고 나면 그것에서 헤어나기가 너무나 어렵게 된다. 아침에 스쳐지나간 그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처럼. 그렇게까지 되기 이전에 막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좋은 운동을 통한) 보약과 백신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공급하면서 동시에 네가 정녕 바라지 않는 것에 노예가 되는 것을 막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 노력의 최대의 무기가 어제 말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쓴 검증된 좋은 책들을 꾸준히 많이 자주 읽는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산물이요 결국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운명의 노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제한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유용한) 자유 또한 가지고 있다. 마음이 괴롭고 혼란할때, 좋은 책을 펴는 것이다. 그 이상 무언가를 자신에게 요구하거나 강권하거나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 말했듯이, 어떤 한국최고의 골프코치가 발견했다던 ‘(아마추어들이) 골프를 잘치는 최고 최대의 비결은 오래 자주 치는 것’이라는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말이다. 네 자신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네 자신에게 어둠과 대항할 힘과 무기를 ‘자꾸만 손에 쥐어 주면서 스스로를 응원’해야 한다. 그러면 서서히 그리고 언젠가는 변화된 너를 놀라며 발견하게 되리라. 그때 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요, 과거에 일어났던 동일한 일들에 대한 너의 해석과 생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지마라. 세상에 무릇 좋은 것은 때가 와야 하고 무르익어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잊지 마라.

골프를 ‘오래 자주 치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터무니 없는 기대를 스스로 하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낏하여) 또한 이랬다 저랬다 마음을 바꾸면서 스스로 좌절하기 때문이다. 손에 물집이 생겨서도 아니고 시간이나 돈이 갑자기 없어져서가 아니다. 제 열정으로 화다닦 시작했다가 제 풀에 서서히 망하는 것이다. 어떤 지름길도 감추어진 기적의 비법도 없으니, ‘그저 좀 안되도 가고, 좀 실망해도 붙어 있고, 좀 시시해도 버리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 마음의 회의와 업엔다운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만두면서 망하는 것’이다. 종국에는 초고도 비만 혹은 카지노 폐인으로 (문자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의미상으로) 인생을 종치게 된다.

그래도 뭐 그만이긴 하다. 결국은 모두 왔다가 가는데.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더라. 늙었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되지 못한 노화에 동반된 심신의 고통이 괴로운 것이라고. 어떻게 살아도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손에 든 카드가 그리 나쁘지 않은 너와 내가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이렇게 초고도 비만이 된 것이 아무렇지도 않나요? 댁은 이렇게 카지노 폐인으로 차에서 사는 삶이 어떤가요? 아마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지 싶다. 만약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이런 비참한 꼴이 되기 훨씬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젊고 아름다운 촌닭. 아직 시간이 있을때, 아직 그렇게 끔찍하게 되돌리지 않으면 안될 현실에 직면하지 않았을때 우리 조금씩이라도 애써 보자.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정과 평온이 장차 많이 생기고 나면, 그때는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을 하건 삭발을 하건, 엄마에게 돈받아 등산 다니며 백수로 살건 투잡을 뛰건, 결혼을 하건 말건 더 이상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네 엄마는 네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시게 되고 나면, 네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해주실 것이다. ‘자식의 참된 행복을 바라는 마음’ 부모의 바램은 이것뿐이다. 네가 엄마가 원하시는 것을 먼저 드린다면 엄마는 얼마나 네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 싶어 하시겠니? 밤에 부산 바닷가에서 하늘에 올라 별을 모두 따다 주실 것이다.

네 자신의 것이건 그 누구의 것이건 지나간 과거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도록 노력해라. 꾸준히 시도하고 넘어지고 패하면 다시 일어나 또 시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 보거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어쩌면 그런 눈물로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애쓰다가 보면 차차 그런쪽에 낭비될 네 삶의 에너지를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오롯히 사용할 날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나도 뒤늦게 나마 그렇게 노력했고 또 일부는 성공한 듯이 보인다. 너도 노력하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그리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저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