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에게

강원도 ‘정선’ 🙂 카지노 도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듯이, 카지노 근처에는 전재산을 도박에 탕진하고 나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혹은 떠나지 않고) 수년을 노숙자 생활을 하며 터무니 없는 ‘미래의 한방’을 꿈꾸며 사는 ‘오늘의 폐인’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십년 가까이 소형자동차 안에서 숙식하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도박을 연구하며 사는 어떤 남자가 기억이 난다. 그 좁고 불편한 차안에서 노구를 누이기 전에 그는 바이얼린을 조용히 연주하였다.

우리 인생의 부조리와 불완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되어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도 한때는 괜찮은 사람,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상한 아빠였을 것이다. 그 나이에 바이얼린을 켜려면 그리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니 가능한 것은 그런 폐인의 삶을 지루하고 우울하게 지속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운명뿐이 아닌가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정면에서 걸어오는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를 지나쳤다. 순간적으로 두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제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혹한 운명을 바꾸기에 그가 지금 가진 카드는 (상황은) 너무나 좋지 않다. 그는 아마도 그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온갖 병고를 겪으며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내가 비교적 건강하다고 교만에서 비롯된 저주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전에 했던 선택들이 장차 우리가 하게 될 선택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며 또한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가의 이야기, 나아가 너와 나는 과연 이런 운명의 노예일뿐인가 잠시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그런 도큐멘트리를 티비에 보여주는 이유도 그리고 내가 아침에 스쳐지나간 초고도 비만의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들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며 지금 살고 있는가?’ ‘내가 가진 (남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초고도 비만의 정체는 무었이며 그 실체는 어떤 것인가?’

어제 너에게, 그 아름답게 가꾼 멋있는 몸매를 가지고서 이제부터는 숨이 차고 땀을 흘리는 달리기나 빠르게 걷기를 하라고 권했었다. 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한결같이 달리기의 최대 수혜자는 (잘 돌아가는) 두뇌이며 (안정된) 마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훌륭한 스승들도 ‘일단 몸과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너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자랑할 충분한 외향적인 아름다움을 이미 가지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내면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운동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길 권한다. 일단 심신이 안정이 되고 더 균형이 잡히게 되면 어떤 것에 빠져서 노예가 되기가 훨씬 어렵게 된다. 보약이며 백신인 것이다. 세상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네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한 것이니 이것을 지키고 향상시키는데에 가진 돈과 시간과 정력을 우선적으로 투자해라.

‘사람들이 다 배워서 하는 것’이라고 어제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은,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고 따라서 하는 것이고 또 누구에게선가 배워서 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배워서 따라 하다가 습관이 되고 인이 밖히면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술을 마시는 것이건, 도박을 하는 것이건, 운동을 하는 것이건, 좋은 습관이건 나쁜 버릇이건 간에. 일단 노예로 전락하고 나면 그것에서 헤어나기가 너무나 어렵게 된다. 아침에 스쳐지나간 그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처럼. 그렇게까지 되기 이전에 막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좋은 운동을 통한) 보약과 백신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공급하면서 동시에 네가 정녕 바라지 않는 것에 노예가 되는 것을 막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 노력의 최대의 무기가 어제 말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쓴 검증된 좋은 책들을 꾸준히 많이 자주 읽는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산물이요 결국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운명의 노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제한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유용한) 자유 또한 가지고 있다. 마음이 괴롭고 혼란할때, 좋은 책을 펴는 것이다. 그 이상 무언가를 자신에게 요구하거나 강권하거나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 말했듯이, 어떤 한국최고의 골프코치가 발견했다던 ‘(아마추어들이) 골프를 잘치는 최고 최대의 비결은 오래 자주 치는 것’이라는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말이다. 네 자신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네 자신에게 어둠과 대항할 힘과 무기를 ‘자꾸만 손에 쥐어 주면서 스스로를 응원’해야 한다. 그러면 서서히 그리고 언젠가는 변화된 너를 놀라며 발견하게 되리라. 그때 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요, 과거에 일어났던 동일한 일들에 대한 너의 해석과 생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지마라. 세상에 무릇 좋은 것은 때가 와야 하고 무르익어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잊지 마라.

골프를 ‘오래 자주 치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터무니 없는 기대를 스스로 하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낏하여) 또한 이랬다 저랬다 마음을 바꾸면서 스스로 좌절하기 때문이다. 손에 물집이 생겨서도 아니고 시간이나 돈이 갑자기 없어져서가 아니다. 제 열정으로 화다닦 시작했다가 제 풀에 서서히 망하는 것이다. 어떤 지름길도 감추어진 기적의 비법도 없으니, ‘그저 좀 안되도 가고, 좀 실망해도 붙어 있고, 좀 시시해도 버리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 마음의 회의와 업엔다운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만두면서 망하는 것’이다. 종국에는 초고도 비만 혹은 카지노 폐인으로 (문자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의미상으로) 인생을 종치게 된다.

그래도 뭐 그만이긴 하다. 결국은 모두 왔다가 가는데.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더라. 늙었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되지 못한 노화에 동반된 심신의 고통이 괴로운 것이라고. 어떻게 살아도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손에 든 카드가 그리 나쁘지 않은 너와 내가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이렇게 초고도 비만이 된 것이 아무렇지도 않나요? 댁은 이렇게 카지노 폐인으로 차에서 사는 삶이 어떤가요? 아마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지 싶다. 만약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이런 비참한 꼴이 되기 훨씬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젊고 아름다운 촌닭. 아직 시간이 있을때, 아직 그렇게 끔찍하게 되돌리지 않으면 안될 현실에 직면하지 않았을때 우리 조금씩이라도 애써 보자.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정과 평온이 장차 많이 생기고 나면, 그때는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을 하건 삭발을 하건, 엄마에게 돈받아 등산 다니며 백수로 살건 투잡을 뛰건, 결혼을 하건 말건 더 이상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네 엄마는 네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시게 되고 나면, 네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해주실 것이다. ‘자식의 참된 행복을 바라는 마음’ 부모의 바램은 이것뿐이다. 네가 엄마가 원하시는 것을 먼저 드린다면 엄마는 얼마나 네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 싶어 하시겠니? 밤에 부산 바닷가에서 하늘에 올라 별을 모두 따다 주실 것이다.

네 자신의 것이건 그 누구의 것이건 지나간 과거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도록 노력해라. 꾸준히 시도하고 넘어지고 패하면 다시 일어나 또 시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 보거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어쩌면 그런 눈물로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애쓰다가 보면 차차 그런쪽에 낭비될 네 삶의 에너지를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오롯히 사용할 날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나도 뒤늦게 나마 그렇게 노력했고 또 일부는 성공한 듯이 보인다. 너도 노력하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그리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저씨가 🙂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6)

훗날의 장타

장타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가 되겠다. 지난번 글을 골프여신께서 우연히 보셨나보나. 좀 마음이 편치 않은 동반자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주말 아침 라운드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 하지 않는 3종 세트가 딱 구비되어 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가 자처한 라운드였다. 누구를 원망하리오 🙂

뿌리가 깊지 못하고 기초가 부실한데도 여기저기 뻗은 가지들이 있다 보니 강풍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딱하고 기가 막힌 것은, 우리 인생의 다른 비극적인 상황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 무너지는 한가운데 있게되면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를 써도 그런 상황을 바꾸거나 혹은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 제발 좀 이런 상황을 앞으로는 처음부터 만들지를 말고 애초에 피해주세요~~~

한번의 4펏을 포함 여덟번의 3펏을 하고서 완전한 백돌이로 환생하고 말았다. 동반자 부부는, 친절하지만 까칠한 남편은 (?? 특이한 조합) 아무렇치도 않다는 듯이 싱글스코어 기록 그리고 실제 싱글핸디캡 골퍼임에도 10미터 떨어진 개울에 공을 3회 연속 빠트리는등 백돌이처럼 한참을 철퍼덕거리던 부인은 갑자기 부활하여 후반 파3에서 홀인원을 치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하였다. 겉으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듯 보였지만, 내 마음에는 ‘such is golf’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골프’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저녁에 함께 티비를 보던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밤 늦게 내가 혼자서 무슨짓을 할지 정확히 한마디로 알아 맞추면 용돈을 두둑히 주겠어요.’ 나를 알고 골프를 아는 아내는 ‘차고에 내려간다’면서 반은 맞추었지만 100% 정답을 말하지는 못했다. 정답은 ‘차고에 내려가 고물 골프채를 닦으며 혼자서 조용히 운다’ 🙂 한국은 주택의 절반이 아파트라지만 이곳은 아직도 90%는 단독주택이니 ‘차고에 내려간다’는 것에 다른 뜻은 없다.

인간의 의지가 카르마를 만들며 흔히 비극의 씨앗이 된다고 말했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의지 – 몸부림 – 좌절 – 성취’의 반복되는 과정을 (붓다께서 ‘윤회’라고 표현하셨다) 거치지 않고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을, 다시말해서 장타니 스코어니 동반자가 어떠니 하는 것들을 초월하여 자신만의 잔잔한 즐거움을 골프에서도 또한 인생에서도 찾아서 만끽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르려니와 이런 뼈저런 (?) 경험을 하고나면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가 어쩌면 이렇게 돌고도는 윤회를 피할 길은 정녕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었으며 또한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훗날의 장타? ‘장타를 노력하지만 전혀 연연하지 않는것’ 바로 이것이 내가 원하는 궁극적인 비거리가 아닐까 🙂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5)

지금의 장타

1만명에 가까운 골퍼들과 2천회 이상의 라운드 경험이 있다는 어떤 캐디의 말에 따르면, 평지에서 드라이버를 치면 남자들은 평균 180미터 여자들은 140미터 정도 그리고 규칙대로 점수를 매길 경우 스코어는 평균 100타 정도라고 한다. 평지에서 200미터 이상 드라이버를 치면 꽤 멀리 친다고 볼수 있다고 하며 진짜로 90정도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보기플레이어들과 함께 라운드를 하면 캐디노릇 하기가 무척 쉽다고 한다.

빈약한 신체로 조금이라도 더 멀리 쳐보겠다고 이전에는 몸을 많이 쓰는 드라이버 스윙을 했었다. 요새 인터넷 골프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김국진씨 같은 스윙, 몸과 팔을 휘리릭 돌리며 드라이버 스윙 스피드를 높여 보려는 그런 종류의 스윙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자라 이전에 언급했듯이 드로우샷을 (탁구 드라이버와 유사한, 그래서 땅에 떨어지면 굴러서 더 전진하는) 구사하려고 했었다.

평범한 아마추어 골퍼가 (연습량은 적고 신체 능력은 별로며 뒤늦게 골프를 시작한 사람들이) 이렇게 온몸을 쓰면서 스윙을 하고 또 특정 구질의 드라이버를 만들겠다고 시도하는 행위는, 심신의 끝없는 고통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나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이야기들인데,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무시했고 또 생각조차 않았었던지 모르겠다. 아마 욕심에 눈이 멀고 이상한 고집에 좀 미쳐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보장도 없으니 단정하기도 어렵다 🙂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것보다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활을 쏘는 것이 훨씬 명중율이 높을 것이고, (이상한 발상으로) 포물선을 구태여 크게 그리면서 궤도를 변화시키며 쏘는 것보다 최대한 직선에 가깝게 화살을 쏘는 것이 명중율이 높을 것이며 또한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향상되면 구태여 반동을 가하거나 끙끙대며 용을 쓰지 않고서도 활시위를 천천히 조용히 당길 수가 있을 것이다.

요샌 말도 안타고 포물선도 중지하고 또 휘리릭 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신 발과 하체를 최대한 고정한 채로 복근 (코어) 동력으로 드라이버 클럽이 일정한 궤도를 따라서 오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탁구에서 내가 경험으로 명백하게 깨달은 ‘10% 가벼운 채가 상상보다 훨씬 큰 샷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골프에도 적용하여, 서구인들 체격을 기준으로 만든 내게는 무거운 드라이버 대신에 10% 이상 가벼운 아시안 스펙의 드라이버와 더 부드러운 샤프트를 사용한다.

최근 라운드에서 드라이버샷이 80% 페어웨이를 지키며 적절한 거리를 내는 바람에 좋은 스코어를 두어번 기록하였다. 보기플레이어들은 드라이버가 안정된 라운드에서는 어렵지 않게 80대를 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틀린말은 아닌 듯하다. 좋은 스코어를 함께 유지하던 동반자와 라운드 후반 무렵, 가장 어려운 스트로크 1홀에서 티샷을 하게 되었다. 396미터 파4 홀인데 전체적으로 오르막 경사다. 내가 먼저 친 드라이버가 운좋게 잘맞아 160미터 내외의 세컨샷을 남기게 되었다. 평소에 나보다 20미터는 더 보내는 내 동반자는 이것을 보고서 너무 감동(?)했던지 2번의 연속 드라이버 오비를 내면서 그만…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그냥 어쩌다 한번 잘 맞았어요. 골프의 여신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

아까 위에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이야기들인데 그 당시에는 왜…’ 이런 말을 했는데 어쩌면 그 해답이 ‘몸과 마음은 동시에 변화되는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흥준 선생이 조선시대 어떤 글에서 인용하여 유명하게 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내 미천한 경험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몸이 변화하면 마음도 따라 변화하리니, 그때 마음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몸과 마음은 동전의 앞뒷면이며 하나의 대상에 대한 두가지의 표현일 뿐임을 잊지 말아요~~

기질 습관 그리고 운명

어떤 산부의과 의사의 말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직후에 의사들이 아기 입을 벌려 이물질을 제거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어떤 아기는 입을 좀 눌러서 벌려도 그냥 아~ 쉽게 벌려주면서 멀뚱멀뚱한(?) 아기도 있고 또 어떤 아기는 자지러질듯이 울고불고 하는 아기도 있다고 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어떤 외부적인 영향도 없는데 이렇듯 반응이 다른 것을 보고서 그 의사는, 아마도 이것은 아기들이 부모들로부터 유전적으로 받아서 가지고 태어나는 어떤 기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했어요.

몇달 전에 유치원을 시작한 한국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가 했어요. 오랜 세월 유치원에 재직하면서 수천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아 왔지만 한국아이는 이 아이가 처음이라고 해요. 서로 말이 통한다는 잇점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아내가 어떻게 이 아이의 유치원 생활과 적응 과정을 표내지 않고 잘 도와주는지 나는 전부터 들어와 알고 있어요. 그 부모는 어쩌면 ‘아! 한국인 원장이라 다행이다’ 그 이상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잖아요. 이 아이는 공부를 많이하고 능력이 있는 부모가 이곳 회사에 파견을 오는 바람에 함께 와서 몇년을 지내게 되었다고 해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당연하겠지요) 3살이 조금 넘은 이 사내 아이는 처음에는 아침에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곤 했었지만, 지난 몇달간 아내와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울지도 않고 점점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과도 더 어울리며 잘 놀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영어는 아직도 한마디도 못해요. 아니 ‘결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 유치원에는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 아이도 한명이 있다는데요, 이 두아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영어를 알아 듣긴 해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둘 다 매우 영특한 편이라고 해요. 그리고 뚜렷한 개성 혹은 자아가 있어 보인다고 하네요 (유치원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이 아이들은 ‘잘 하지 못할까봐’ 혹은 어쩌면 ‘잘 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의식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내는 생각한다고 해요. 타고난 기질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이런 특이한 상황에서 얻게 된 어떤 습관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기질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습관으로 드러난 것일까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아이들도… 언젠가 아내가 말해 주었던 그 수줍은 이나라 아이. 그렇게 좋아하는 소방차가 유치원에 왔는데도 너무 부끄럽고 무서워서 친구들처럼 차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먹였다던 그 아이. 아내가 제안을 하면서 약속을 했다고 해요. ‘네가 스스로 올라가면 나는 네 뒤에 꼭 서 있겠다’. 아이는 자신의 결정으로 올라갔고 참 기쁘고 좋아했다고 해요. 그 기뻐하는 아이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나요? 나는 이렇게 아이들의 습관을 바꾸어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돌려주는 아내의 직업이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때 유치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또 이런 프로페셔널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믿어요)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저를 길러주신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자신의 기질 그리고 습관과의 힘겨루기가 만만치 않은 경우도 있어요.

다시 ‘결코 말하지 않는 그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아내와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과 또 이곳의 좋은 교육 시스템의 도움으로 입을 열게 될꺼예요. 그리고 신나게 떠들고 싸우고 울고 불다가 만 5살이 되면, 바람에 흩어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자기의 인연을 따라서 멀리 떠나갈 꺼예요. 좀 웃기는 이야기는, 이렇게 떠나간 아이들이 장차 부모가 되어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이 유치원에 되돌아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해요. 자기를 돌보아 주셨던, 자기의 모든 것을 보았던 그 선생님들이 아직 있어요 하하하 🙂

때대로 나는 아내에게 ‘당신은 제자없는 스승이다’ 이렇게 놀리는 말을 할때가 있는데요, 진심으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자들이 감사해 하고 또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도 물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만, 아내의 손을 거쳐 지나간 아이들이 아내와 다른 선생님들의 지혜와 사랑으로, 어쩌면 성인이 된 자신의 인생을 어둡게 하고 또 망칠지도 모를 습관들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세상에 나간다면, 이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참으로 큰 적선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요. 이런 종류의 괴로움을 직면하여 발버둥을 쳐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지 싶네요.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가격을 매기거나 사고 팔수가 없지 싶어요. 참으로 큰 적선은 준 사람도 모르고 받은 사람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크고 작다’는 것도 없고 ‘주고 받았다’는 것도 없지만 그 실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나는 봅니다. 어쩌면 이미 성인이 된 인간들의 구원은(?) 바로 이런 것들을 깨닫고 의식하는 바탕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마치 어른이 되어 배우는 골프는, 어릴때 아무 생각없이 아빠 따라가서 놀면서 저절로 익힌 골프와는 그 과정도 차원도 다를수 밖에 없듯이 말이예요.

세살 아기들도 이렇게 뚜렷하게 보여주는 자아 (ego).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할 무거운 등짐 혹은 두꺼운 외투처럼, 나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고 또 내게 이익이 되라고 자연의 섭리로 주어졌지만, 마치 양날의 칼처럼, 이토록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조차도 짐과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까? 붓다께서 해탈 열반을 만드셨나요? 아닙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마치 나이든 배뿔뚝이 중년에게 골프를 가르치듯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바로 이 자아가 아무런 실체가 없음을, 단지 기질과 습관의 덩어리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자아를 만들고 또 강화하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줄이고 또 지우면서 열반을 (니르바나) 향해 노력하며 살다가 가면 좋다 말씀하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소방차 위를 스스로의 결정으로 올랐던  그 아기는 장차 어른이 되면, 소방차를 아직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고, 자신이 어릴때부터 존중 받았듯이 타인을 자연스레 존중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며 또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힘이 센 사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는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요? 아니면 주변 사람들 모두 맹목적으로 쫓는 것들 중에서 더 비싸고 더 크고 더 멋져 보이는 것들을 획득하여, 이차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 노병들의 군복에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들처럼 ‘여기 봐요. 나 좀 봐요’ 하다가 나중에는 플라스틱 줄이나 주렁주렁 매달고선 졸지에 허무하게 떠나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나요? 어떤 어린 시절을 통해 어떤 몸과 마음의 습관을 길러 오늘을 살고 있나요?

길에 떨어진 사금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

알려진 골프코치들 중에서 김헌이라는 분이 있다. PGA니 KPGA 선수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무슨 미국 티칭프로 자격을 내세우는 분도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이분만큼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을 지도한 실전 경험을 가진분은 (5,000명 이상)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것이다.

이분이 왜 그렇게 유명하신가, 그런데 왜 돈은 엄청 못버셨는가 하면 🙂 소위 말해서 도가 튼 분이기 때문 아닌가 한다. 이분의 강의를 들으면 진심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김없이 그리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분이라는 것을 자주 그리고 분명히 볼 수가 있다.

아마 이분의 그런 점들이 (가식없이 꾸미고 포장하지 않으며 또 자신의 것이라고 움켜쥐고서 돈 내놓아라 하지 않는 것등) 이분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한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받는 존경과 또 스스로 느끼는 진정한 만족감과 재미를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한다. 돈과 권력으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게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뒤돌아서 침뱃는 그런 가짜를 사고 팔아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짜 보물도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판에 그런 가짜를 왕창 모아 가지고서 뭘 하려나?

내가 지금껏 골프에 버벅거리며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과 글과 책을 보았지만, 김헌선생의 가르침 만한 것을 동서양 어디서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공짜로 나누어주신, 자신의 골프경험 30년을 농축한 이 2시간짜리 강의만큼의 가치를 지닌 가르침을 나는 아마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보지 못하지 싶다. 이분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기에 이렇게 내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혹시 그대도 관심이 있으면 보기를 권한다. 그 훌륭한 강연은 여기를 클릭.

이분이 어떤 강좌에서 하신 말씀중에서 내가 늘 기억하며 골프뿐만 아니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있다. ‘수천명의 아마추어를 가르쳐 보았지만 골프의 즐거움 아니 인생의 행복이, 땀을 흘리며 지루하게 길을 가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으면서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에서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이나 금광을 찾으면서 사는것 같다. 세상에 그런 금맥이나 금광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설령 그것을 찾았다손 치더라도 금맥이나 금광이 참된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분의 가르침, 공짜 좋아하는 ‘가난한’ 내게 무료로 주시는 이 훌륭한 가르침들을 가지고서 나는 ‘반드시’ 싱글이 되고 또 득도하리라 🙂

그대는 길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우며 오늘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금맥을 찾아 헤매며 내일의 행복을 쫓는 사는 사람인가? 혹은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이번 홀에서 돈만 따면 되는 사람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