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챔피언 돌아온 탕자

나는 수많은 다른 수학 포기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작은사연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초등학교) 초반 일찌기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린시절 비교적 호기심도 있었고 또 보통머리는 되었지만 ‘왜요?’ 라는 질문을 은근히 던지는 천성과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게으름이 결합되어 학교공부에 특히 수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내가 몹시 싫어하게 되었던 수학은 또한 당연히 나를 몹시 싫어하며 오랫동안 내게 큰 괴로움을 주었었어요. 우리는 몸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릴때는 어떤 (물리적으로) 무서운 상황이 악몽의 내용이었다면 이젠 나이가 드니 악몽도 변화 발전하여(?) 무턱대고 무서운 상황보다는 마치 바늘이 손톱밑을 슬쩍 찌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민감한 내용이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면서 그속에서 정말 현실처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차원 다른 악몽을 꾸게 되네요. 짐작하다시피 내가 어쩌다 꾸는 악몽의 내용은, 미루고 미루며 강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당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수학시험에 그나마 지각조차하여 절망속에서 우왕좌왕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런 것들이랍니다. 수학이란 내게 문자 그대로 악몽이 아닐 수가 없네요 🙂

내가 자신을 챔피언급 수포자로 규정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내겐 비극 친구들에겐 코미디’ 였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야기인즉, 대학신입생 시절 낙제했던 필수수학 과목을 복학후 다시 낙제하여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세번째 시도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사귀던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은 나의 이런 딱하고 한심한 사정을 듣고선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수학과목을 같이 수강하며 나를 도우려고 애썼는데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선 예상문제를 몇개 적어 주었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린’ 엉터리 한글 편지처럼,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수학문제의 해답들을 시험지에 ‘그려냈어요’ 🙂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바라는 성과를 내고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꺼에요. 그런 성공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순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가 어렵겠지요. 물론 그 기간의 길이 또 그 대상의 사회적 인정도에 따라서 10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또 1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하겠지요. 인생이란 어쩌면 그 10과 1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그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챔피언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 수학과목 강사께서는 내가 ‘그려낸’ 엉터리 시험 답안을 이해하지도 또 동정하지도 않았어요. 세번째 낙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그 강사의 댁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분 모친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주셨는데요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짧고 어색한 대화가 오갔어요.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는데요 ‘정상적인 학생이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 젊은 수학자를 설득할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직전학기에 저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수학과목이 없었기 때문에요.’ 곧 자신의 일생을 바칠 그 거룩한 수학에 대해서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는 저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믿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어쨋던 그분이 고맙게도 낙제를 겨우 면하게 해주어 나는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이민도 오게 되었어요. 물론 그때 그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과 함께 왔지요. 언젠가 블로그에 등장했었던 그 보살원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성공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왜?’ 그리고 ‘절실함’ 이 두가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실함’이야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왜?’에 대한 대접 혹은 반응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시절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도시설계 스케치 그리고 도면작성에 열을 올릴때 나는 ‘왜 저렇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태동기였던 CAD를 (컴퓨터로 설계도를 만들어 내는 기술) 독학으로 익히게 되었어요. 내 ‘왜?’의 흔적은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CAD를 활용한 도시설계 프로젝트였을 인천 ‘시화(시흥)공업단지’에 남아 있어요. 무슨 인간 승리나 대단한 성취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해답이 한때 세상과 맞물려 거둔 작은 성공의 예로써 해본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조봉한 박사라는 유명한 수학자를 알게 되었어요. 이분은 수학박사인 자신의 딸이 수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선 충격을 받아 초등생 딸을 수렁에서 건져내고서(?) 수학교육사업을 시작하게된 인공지능 전문가 입니다. 이분이 수학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과도 달라 보입니다. 학교측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몇시간씩 평범한 초등학생들에게 서너달 수학을 가르쳤는데요, 이들과 서울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같은 문제를 내어주고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간에 해답을 찾는가 보여주는 짧은 도큐맨트리를 보고선 나도 몹시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 수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초등학생들은 미분적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배우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원리를 배워 꽤뚫고 나서 몇가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그 똑똑한 대학생 형들과 언니들이 엄청난 공식들을 쏟아부어 풀어낸 문제들을 똑같이 풀어 냅니다. 더 빨리. 물론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또 위험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수학자가 부르짖고 또 그 초등학생들이 증명한 것은, 수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부딪치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컴퓨터나 계산기가 할수없는) 인간고유의 정신활동이지, 누군가 이미 찾아 놓은 (공식이라며 존재하는) 해답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워서 출제된 시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내와 저녁때 잠시 수학 이야기를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가 비록 좋은 수학 성적은 받았었지만 (그때 함께 수강했던 수학과목에서도 A를 맞았었어요) 사실은 나는 수학이라는 것 차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아마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공부했던 수학을 전부 잊어버렸지 싶어요.’ 이렇게 아내가 말했어요.

수포자 챔피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대도 나처럼 수학의 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나요?’ 당신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던 공식들을 더 많이 외워 더 빠르게 적용시킨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삶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점점 깨닫고 있지 않나요? 그 수학 덕분에 성공한 삶을 살면서 그대에게 얼마나 그 공식들의 인이 박히게 되었을까요?

내 삶을 통털어 지금처럼 수학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적은 일찌기 없었어요 (써놓고도 ‘어머 놀래라’) 🙂 나는 다시 수학책을 펴렵니다. 내겐 그야말로 돌아온 탕자(?) 입니다. 노스텔지어 일지도 모르겠고 또 아내말처럼 (꼬박꼬박 차려 주었더니) 배가 불러 별짓을 다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때 호기심 많고 ‘왜?’ 라고 물었던 어린 나는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수학선생님이 되어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얘야 왜라고 물었었니?’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김범석 의사선생님의 훌륭한 책에 나온 작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중에서 선생께 ‘십년만 더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간절히 말했던 분이 있었다고 해요. ‘십년 더 사시면 무었을 하실 계획이세요’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다른 삶

2주전 국민투표와 함께 실시되었던, 안락사와 대마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물었던 투표 결과가 방금 발표되었다.

안락사는 65%의 지지를 받아 12개월 이내로 법으로 제정된다고 한다. 아무나 죽겠다면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다수의 의사가 동의하는 6개월 미만의 생존 가능성 밖에는 없는 사람이 적법한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대마초는(마리화나) 안타깝게도(?) 46%의 찬성만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불법으로 여전히 남게 되었다.

최근에 김의신박사의 ‘암 걸리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법’ 주제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분은 단지 세계적인 암전문가로서 좋은 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 최고의 암병원에서 오랜 기간동안 (대부분 다른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다가 안되서 온) 수많은 미국인 암환자들과 또한 돈 보따리를 들고 (치료비가 엄청남) 태평양을 건너 그 병원을 찾은 수많은 부자 한국인 암환자들이, ‘암’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판이한 태도와 자세를 보이는지에 대한 사회인류학적인(?) 고찰을 또한 나누는 내용이라 내겐 큰 흥미가 있었다. 이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수십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나도 이분이 묘사하는 (부족하고 부끄러운) 한국인의 태도와 자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아직 시간이 좀 있을때 자각을 하고서 무언가 개선과 발전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강연은 십여년 전에 촬영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현재에도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신문에 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관련 기사를 보고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540페이지 논문을 대략 읽어 보았는데, 영미권국가들과 공통된 내용들도 물론 있었지만 몇가지 특이한, 다시 말해서 김의신박사가 말씀한 (암과 죽음에 관련하여 미국인들과 비교할때) 한국인들이 보이는 특이한 태도와 일맥상통하거나 어떤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급한다.

일전에 하버드대학교 연구결과를 (‘돈 잘 쓰는법 ‘연구하여 책으로도 발간된 논문) 언급한 글에서도 나왔듯이 이 나라를 비롯한 영미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들은 ‘경험’이나 (자기계발) ‘이타행’과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면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것) 관련된 것들이 상위에 랭크 되는데 반하여, 이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이러한 ‘경험’ ‘개인의 발전’ ‘이타행’ 같은 분야에는 관심이 없고 또한 이런 것들이 자신의 행복을 증신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영미권과 거의 동등한 상위 20%의 부유한 한국인들 조차도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김의신박사의 강연과 이 논문의 (신문기사의) 내용을 동시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우리들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단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동일한 조사를 중국이나 인도 그리고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것 같은가?

[가장 중요한 내용을 요약한 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논문이니 결과에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굳어지면 죽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소위 말하는 클리세인가?

시작하기전에 일단 한마디 하자면, 어떤 사람이 말했다더만 ‘If common sense is that common, why is it so hard to see it?’ ‘상식이 정말 상식이라면 왜 그렇게 상식을 보기가 어려우냐?’.

요즘 드는 생각이, 세상 사람들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아는 것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이런식으로 좀 객관적으로 단순하고 명확히 구분된다면 얼마나 인생이 더 쉽고 덜 복잡하겠는가 싶다.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섞여 있고,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아는지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절대적으로 틀리거나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은 드물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얼마만큼 맞고 얼마만큼은 잘 모르겠고 (혹은 틀리고)’를 좀 객관적으로 심사숙고하기 보다는 (이것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오직 자기가 보기에 맞는 부분만을 내세우는데’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틀린 생각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내서 말하면.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낸 주장만을 보자면… 이러니 세상이 쉽지 않고 복잡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러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덧붙이는 두가지 가르침은, (지금 나의) ‘생각이나 주장은 변한다는 것’과 또 ‘자기 자신이라고 (자아, ego) 그렇게 움켜지고 주장할 그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정말?

다시 굳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되돌아 가보자. 최근 신문에서 읽은 내용중에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것은 고집과 불만이고, 줄어드는 것은 웃음과 인사’라는 말이 있었다. 고집과 불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자기 주장’을 적당한 상황에 적절히 하는 센스를 점점 잃음과 동시에, 그것의 절대적인 양이 많아지니 배우자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똥고집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2차적인 반응이 불만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자기생각 자기주장은 나이가 들면 점점 많아지게 되어 있다. 마치 주름살이나 뱃살처럼. 가만히 두면 저절로 쌓이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자아, ego’ 아닌가? 그것의 표출이 고집이고 불만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어렴풋이 깨달아도 그것과는 상반 힘이 (세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별 소용없이 무너지며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머리만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heart & soul이 (영혼이) 동시에 굳어지는 모습이, 고집과 불만이라는 것을 우리들 모두가 자각하기를 바란다.

몸이 굳어지는 것도 막기 어렵고 또한 위험한 일이지만, 머리와 영혼이 굳어지는 것은 더욱 막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굳어지고 있는지 또 이미 얼마나 굳어졌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고, 종종 굳어지지 않은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에 집중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확신하면 위험하다. ‘이래도 되는가?’ ‘이것이 맞는가?’ 늘 좀 불안해하면서 궁금해하고 또 자연스레 비교도 하고 검증도 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더 낫다. 그러면 굳어지기 어렵다.

그런데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불안한 부드러움 보다는 덜 불안한 굳어짐쪽으로 자꾸 가면서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래도 저래도 좀 안되는 것 처럼 보이지 않나? 그래서 붓다께서는 만족스럽고 여한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하신것이지 싶다.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라고 가르치셨지 아마…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3)

오늘은 세번째로 ‘지나간 삽질의 기록’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초보골퍼 그리고 더 어리석은 군상이었기에, 나도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어떤 비법을 찾으려 시도 했었다. 내가 무슨 잭 니클라우스라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도 없는 코스에서 미친듯이 안되는 클럽을 가지고 연습을 하기도 했었고, 또 몇주 기간 동안 무슨 밤샘 시험공부를 하듯 온몸이 골병이 들어서 뻣어 일어날수 없을 때까지 미친듯이 연습을 했던 적도 몇차례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시도들은 나의 KO패로 끝이 났었다 당연하게도. 골프가 그런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때 나는 병이 나서 끙끙 앓으면서도 잘 깨닫지 못했었다.

차고에 그물망과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매일 저녁 공을 쳤었다. 때때로 잘못 맞아서 튄 드라이버샷이 그물을 벗어나 아찔하게 차고의 벽과 지붕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때 이웃들은 밤마다 옆집에서 들리던 따악~ 따악~ 그 소음을 어떻게 군말없이 참아 주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맙다. 보기플레이어 수준인 주제에 드라이버를 멀리 보내기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양 드로샷을 수개월간 연습하였다. 결과적으로 드로샷을 칠 능력이 생겼고, 그런 나의 드로샷들이 한여름의 굳어진 페어웨이와 죽이 맞으면 250미터씩을, 무슨 전진회전 먹인 당구공처럼, 때굴때굴 굴러서 갈때도 자주 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대다수의 보통수준 골퍼들은 셋업 얼라인먼트의 미숙함으로 목표보다 실제로 훨씬 오른쪽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잘못된 조준이, 공의 5시 지점을 보통 노려서 치는 드로샷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구질) 우연히 어울려 그럭저럭 거리와 방향성을 얻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래위에 쌓은 성이었으니 이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훅보다는 슬라이스성 구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프 코스는 많은 경우 슬라이스에 관대하게 설계되어 있다. 공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향할때 탈이 덜 나도록 오른쪽에 넉넉한 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악성 훅 구질이 나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그대로 오비가 나거나 이상하게(?) 왼쪽편에만 주로 있는 하천 절벽 혹은 기타 접근불가능 지역으로 드라이버샷이 영영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확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긴장하면 나의 드로샷은 쉽게 악성 훅으로 변질되어 라운드를 망쳐 놓기 시작하였다. 함께 백라운드 이상을 치면서도 ‘굿샷’ 이외에는 결코 어떤 말도 조언도 하지 않았던 그 아들이 딱 한번 안타까운 마음에 ‘드라이버 스윙궤도를 가파르게 만들어서 페이드를 치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탁구로 치자면 우회전 전진샷을 좌회전 컷트샷으로 바꾸는 것이랄까. 연습하여 그렇게 되게 하였다. 원래부터 별 볼일 없던 드라이버샷이었지만 이제 때굴때굴 구르는 것을 거의 안하게 되니, 내가 이런저런 드라이버 클럽으로 온갖 짓을 해보아도 줄어든 거리는 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몸부림은 서서히 막을 내렸고 또 골프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욕심대로 안되니까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몇해가 훌쩍 지났다.

그저께 턱걸이를 14개 하면서 올해초에 세웠던 내 기록을 하나 늘였다. 집 마당에 설치된 철봉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혹은 무슨 일로라도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매달려서 한번에 5개 정도씩 턱걸이를 해온지가 오래 되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오가면서 한번에 10개씩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일회 20개를 이루고서 향후 20년을 유지하는 것이 내 희망이다. 년전에 내가 드로샷이니 뭐니 지랄을 떨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턱걸이고 또 갯수다. 물론 턱걸이와 더불어 산을 뛰는 하체운동도 해온지가 수년이 되었다. 직장 근처 산을 400회 이상 뛰어 올랐는데 1,00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이제 장타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달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근력이 강화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면 그래서 내 삶이 행복하다면 그깟 골프 장타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하는 건방진(?)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 콧대 높고 변심을 밥먹듯이 한다는 골프란 뇬은 어쩌면 똑같이 콧대 높고 건방진(?) 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본다. 김헌선생이 말했던 ‘독보다 커야 독이 보인다’는 말씀이 어쩌면 이런 뜻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골프고수가 말했던 ‘간절히 원하지만 그 마음을 감추고, 그저 좀 비슷하게라도 되면 감사하겠다’ 정도로만 바라라던 그 말도 또 ‘너무 표적을 뚫어지게 보면서 조준하지 말고 좀 주변을 흐릿하게 보면서 조준하는 것이 좋다’던 말도 이제 조금씩 의미를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또다른 착각인가?

턱걸이에 필요한 반복된 연습과 결과적으로 변화된 신체는 어떤 묘수나 비법으로도 갈음되어질 수가 없다. 20년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다이어트도 신발도 심신이 변화되고 준비되지 않은 당신을 그 산위로 데려다 줄 수가 없다. 1,000번을 오르고자 하는데. 골프가 턱걸이나 달리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차차 체득하고 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 시간이 걸리며 그 접근방식을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여자탈의실과 골프이론은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훌륭한 말도 최근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

내가 턱걸이를 20개 한들 그리고 그 산을 지금보다 훨씬 빨리 뛰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클럽에는 소위 말하는 싱글핸디가 회원의 15%다. 발에 채이는 것이 싱글이다. 내가 220미터 드라이버를 치건말건 싱글핸디가 되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누구도, 하다못해 클럽멤버들조차도 아무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턱걸이를 하고 산을 뛰며 드라이버 장타를 추구한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 우리?

적선 이야기 3 – 빌 게이츠

어제 본, 1부 ‘똥과의 전쟁’ 그리고 3부 ‘이산화탄소와의 전쟁’에 이어서 오늘은 2부 ‘소아마비와의 전쟁’을 보았어요. 영화 ‘포레스트검프’ 기억나세요? 주인공 포레스트가 어렸을때 다리에 쇠로 만든 보조장치를 하고서 바보처럼 걷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당시 미국에서도 있었던 소아마비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 때문이었지요. 내가 어렸을때도 동네나 학교에 몇 명씩 그런 보조장치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빌 게이츠와 부인 멜린다는 많은 질병중에 왜 하필이면 소아마비를 박멸시키려고 그렇게 많은 돈과 정력을 투자했을까요? 왜냐하면, 주로 가난하고 (백신을 맞지 못하는) 더러운 환경에서 (폴리오 바이러스 전염이 쉬운) 사는 어린 아이들이 소아마비에 걸리는데요, 사지가 멀쩡해도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운 그런 곳에서, 소아마비의 결과로 하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앉은뱅이 혹은 절름발이로 평생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라는 것을 이분들이 가슴 깊이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88올림픽이 열렸던 시기에, 세계적으로 약 40만명의 운명을 그토록 가혹하게 바꾸었던 이 소아마비라는 질병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더불어 빌 게이츠 재단의 헌신적이고 (돈만 쏟아 부은 것이 아니예요) 천문학적인 투자의 결과로 작년에는 약 30명 세계적으로 발병했다고 해요. 도큐멘트리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에서는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발병이 발견되었는데요, 빌 게이츠는 그의 두뇌와 간절함 (마음씀)으로 그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합니다.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나이지리아 각 지역으로 보내서 백신을 맞히는데요, 그들이 사용했던 유일한 지도는 1940년대 영국인들이 만든것이었다고 해요. 그 부정확성으로 인하여 지역의 경계에 있는 마을들에 (이 지역에 속하는지 저 지역에 속하는지 모호한 마을들) 백신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다고 해요. 마치 아주 좋은 총은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타겟이 흐릿한 상황과 비슷한 것이랄까요. 아무리 총의 성능이 좋아도 아무리 많은 탄환을 쏟아부어도 명중시킬 수 없습니다. 빌 게이츠는 위성사진과 첨단 컴퓨팅을 결합하여 (엄청난 돈이 들었겠지요) 정확한 나이지리아 지도를 만들어 냅니다. 이 지도를 활용하여 그 취약한 지역들을 찾아내어 정확하게 작살(?) 냅니다.

이 사람, 자신도 인정하듯이 젊은 시절에 잘못했던 일들도 있었어요. 삼성처럼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항상 100% 합법적이고 윤리적으로’만’ 경영을 할 수가 있었겠어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적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깊은 존경심이 생겼어요. 그냥 돈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의 삶을 바치고 있어요. 아무도 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또 극히 어렵고 힘든 일들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야기 다시 꺼내서 미안한데요 어떤 사람은 노년에 집으로 창녀들이나 불러들여 추잡한 짓이나 하고, 또 그 부인이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을 위해서 유명한 사찰에 가서 중들에게 돈을 주고 큰 행사를 하며 복을 빈다는 것을 뉴스에서 들었어요. 지금은 그 사람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는지 모르지만, 이 부부는 과연 서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할까요? 빌 게이츠가 ‘지금 버스에 치여 죽는다면 한가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무었인가’ 묻는 질문에 거의 울먹이면서 ‘아내에게 고맙다고 한번 더 말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안타까울 것 같다’라고 대답하던데요.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들은 과연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요? 왜 겉으로 보기에 유사한 사람들이, 사는 수준은 이렇게 상이한지 나는 정말 궁금하고 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금 내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돌대가리’라는 것인데요,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이 돌대가리가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나도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진짜 돌대가리’가 분명할테니까요 🙂

1960년대 미국은 자신에 차 있었다고 해요. 곧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질병들을 지구상에서 ‘박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하네요. 지금 들으면 참 기가 막힌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소아마비를 박멸하면 그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더이상 병에 걸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게 될까요? 또 빌 게이츠 아니었으면 걸렸을지도 모를 소아마비를 걸리지 않게 되었다고 알아주고 또 고마워하며 잘 살까요? 아니겠지요. 그런 일은 우리 인간세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는 이것을 모를까요? 물론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왜?

그에 대한 일부의 대답이 이곳에 있어요. 어떤 훌륭한 분이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우리도 새발의 피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내가 덧붙이고 있네요. ‘보살은, 오늘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의심없이 최선을 다하지만, 덧없는 삶의 본질을 꽤뚫어 보기에, 최종적으로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