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 다른 생각 다른 삶

2주전 국민투표와 함께 실시되었던, 안락사와 대마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물었던 투표 결과가 방금 발표되었다.

안락사는 65%의 지지를 받아 12개월 이내로 법으로 제정된다고 한다. 아무나 죽겠다면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다수의 의사가 동의하는 6개월 미만의 생존 가능성 밖에는 없는 사람이 적법한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대마초는(마리화나) 안타깝게도(?) 46%의 찬성만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불법으로 여전히 남게 되었다.

최근에 김의신박사의 ‘암 걸리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법’ 주제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분은 단지 세계적인 암전문가로서 좋은 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 최고의 암병원에서 오랜 기간동안 (대부분 다른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다가 안되서 온) 수많은 미국인 암환자들과 또한 돈 보따리를 들고 (치료비가 엄청남) 태평양을 건너 그 병원을 찾은 수많은 부자 한국인 암환자들이 ‘암’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다른 태도와 자세를 보이는지에 대한 사회인류학적인(?) 고찰을 또한 나누는 내용이라 내겐 큰 흥미가 있었다. 이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수십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나도, 이분이 묘사하는 그런 한국인의 태도와 자세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아직 시간이 좀 있을때 자각을 하고서 무언가 개선과 발전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강연은 2011년 경에 촬영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현재에도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신문에 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관련 기사를 보고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540페이지 논문을 대략 읽어 보았는데, 영미권국가들과 공통된 내용들도 물론 있었지만 몇가지 특이한, 다시 말해서 김의신박사가 말씀한 (암과 죽음에 관련하여 미국인들과 비교할때) 한국인들이 보이는 특이한 태도와 일맥상통하거나 어떤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 언급한다.

일전에 하버드대학교 연구결과를 (‘돈 잘 쓰는법 ‘연구하여 책으로도 발간된 논문) 언급한 글에서도 나왔듯이 이 나라를 비롯한 영미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들은 ‘경험’이나 (자기계발) ‘이타행’과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면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것) 관련된 것들이 상위에 랭크 되는데 반하여, 이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이러한 ‘경험’ ‘개인의 발전’ ‘이타행’ 같은 분야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또한 이런 것들이 자신의 행복을 증신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영미권과 거의 동등한 상위 20%의 부유한 한국인들 조차도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김의신박사의 강연과 이 논문의 (신문기사의) 내용을 동시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우리들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장 중요한 내용을 요약한 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논문이니 결과에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굳어지면 죽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소위 말하는 클리세인가?

시작하기전에 일단 한마디 하자면, 어떤 사람이 말했다더만 ‘If common sense is that common, why is it so hard to see it?’ ‘상식이 정말 상식이라면 왜 그렇게 상식을 보기가 어려우냐?’.

요즘 드는 생각이, 세상 사람들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아는 것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이런식으로 좀 객관적으로 단순하고 명확히 구분된다면 얼마나 인생이 더 쉽고 덜 복잡하겠는가 싶다.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섞여 있고,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아는지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절대적으로 틀리거나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은 드물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얼마만큼 맞고 얼마만큼은 잘 모르겠고 (혹은 틀리고)’를 좀 객관적으로 심사숙고하기 보다는 (이것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오직 자기가 보기에 맞는 부분만을 내세우는데’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틀린 생각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내서 말하면.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낸 주장만을 보자면… 이러니 세상이 쉽지 않고 복잡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러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덧붙이는 두가지 가르침은, (지금 나의) ‘생각이나 주장은 변한다는 것’과 또 ‘자기 자신이라고 (자아, ego) 그렇게 움켜지고 주장할 그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정말?

다시 굳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되돌아 가보자. 최근 신문에서 읽은 내용중에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것은 고집과 불만이고, 줄어드는 것은 웃음과 인사’라는 말이 있었다. 고집과 불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자기 주장’을 적당한 상황에 적절히 하는 센스를 점점 잃음과 동시에, 그것의 절대적인 양이 많아지니 배우자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똥고집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2차적인 반응이 불만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자기생각 자기주장은 나이가 들면 점점 많아지게 되어 있다. 마치 주름살이나 뱃살처럼. 가만히 두면 저절로 쌓이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자아, ego’ 아닌가? 그것의 표출이 고집이고 불만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어렴풋이 깨달아도 그것과는 상반 힘이 (세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별 소용없이 무너지며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머리만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heart & soul이 (영혼이) 동시에 굳어지는 모습이, 고집과 불만이라는 것을 우리들 모두가 자각하기를 바란다.

몸이 굳어지는 것도 막기 어렵고 또한 위험한 일이지만, 머리와 영혼이 굳어지는 것은 더욱 막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굳어지고 있는지 또 이미 얼마나 굳어졌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고, 종종 굳어지지 않은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에 집중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확신하면 위험하다. ‘이래도 되는가?’ ‘이것이 맞는가?’ 늘 좀 불안해하면서 궁금해하고 또 자연스레 비교도 하고 검증도 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더 낫다. 그러면 굳어지기 어렵다.

그런데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불안한 부드러움 보다는 덜 불안한 굳어짐쪽으로 자꾸 가면서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래도 저래도 좀 안되는 것 처럼 보이지 않나? 그래서 붓다께서는 만족스럽고 여한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하신것이지 싶다.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라고 가르치셨지 아마…

히나코 시부노, 루이 우스테이즌

들어본 이름들인가요? 이 사람들은 유명한 골프 선수들입니다. 한사람은 일본 여자고 한사람은 남아공화국 남자인데요, 두 사람 모두 소위 말하는 ‘major championship’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는 아주 훌륭한 골퍼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골프는 아닙니다. 이 두사람, 연령대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었’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저는 루이 우스테이즌 선수는 오래전부터 알고 좋아했었지만, 사실 히나코 시부노 선수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김인경 선수 이야기 하면서 언급했던 그 ‘브리티시 오픈’이라는 최고의 여자 골프 대회에서 히나코 시부노 선수는 2019년에 일본인으로서는 아마도 처음으로 우승을 했었습니다. 그 장면을 우연히 유튜브로 보는 중에 무언가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년전에 루이 우스테이즌 선수의 ‘마스터스’ 대회 장면을 보고서 놀랐던 것과 비슷한 바로 그 ‘무었’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골프에서는 원래 정해진 홀의 타수보다 3타를 적게 치는 것을 (홀아웃) ‘더불 이글’ 혹은 ‘알바트로스’ 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홀인원’ 보다 훨씬 더 (천문학적으로)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12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루이 우스테이즌 선수는 바로 이 더불 이글을 쳤는데요, 저도 생방송으로 경기를 보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선 매우 놀라고 흥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파5 홀에서 두번째로 친 아이언샷이 그대로 홀에 들어간 경우였습니다. 물론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 두번째 아이언 샷도 훌륭한 것이었어요. 관중들로부터 엄청난 박수를 받으면서 홀에 도착한 루이 우스테이즌 선수는 인사를 하고 홀컵에서 공을 꺼내 입을 맞추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공을 관중석에 서스럼 없이 선물로 던져 주고 다음 홀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어요. 얼마나 의미가 있고 또 고마운 골프공이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공으로 계속 경기를 하거나 아니면 잘 넣어 가서 오래 보관하려고 하지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루이 우스테이즌 선수는 2012년 마스터스에서 연장전 끝에 패하여 그만 준우승에 머물고 맙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우승했던 버바 왓슨 선수보다는 이렇게 스스럼 없고 그야말로 무심하게 골프를, 그 엄청난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도 웃으며 즐기던 루이 우스테이즌 선수를 늘 오래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별명이 슈렉인데요 아래 사진을 보면 닮았지요? 성격이 참 좋은 선수로 원래 잘 알려져 있는데요, 경기를 하는 태도를 보면 그것이 진실임을 잘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히나코 시부노 선수의 브리티시오픈 마지막날 모습입니다. (그녀와) 동점을 기록한 선수들 한두명이 조금 전에 마지막 72번째 홀을 끝내고 경기를 마무리 하면서, 이제 히나코 시부노 선수가 마지막 18번 홀로 이동하는 모습이 여기에 나옵니다. 길지 않은 비데오니 전체를 한번 보시길 바라지만, 원하면 2분40초 경부터 보세요. 저도 많은 LPGA 그리고 PGA 결승전을 보았는데요, 물론 매이져 챔피언쉽도 포함해서 입니다, 이렇게 극도로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히나코 시부노선수와 유사한 행동을 하던 선수를, 제 기억으로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여자분은 (20대 초반이지만 ‘여자분’이라는 존칭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대회 마지막날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도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며 웃고 친절했지만, 이제 결승전 마지막 홀을 향해서 이동하는 그 지극히 중요하고 또 어쩌면 일생을 살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도, 주변 관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손바닥을 마주치며 웃는 얼굴로 그들의 성원에 감사하고 있어요. 히나코 시부노 선수의 얼굴에는 어떤 긴장도 보이지 않지만 동시에 꾸미는 모습이나 가장하는 태도도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그녀는 참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저도 볼수가 있네요. 어쩌면 동양의 일개 무명선수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녀가 침착히 샷을 합니다. 이제 홀에서 몇 미터 떨어진 자리까지 온 그녀의 공. 이것을 퍼팅으로 넣으면 우승하지만 아니면 연장전을 가야 합니다. 상대는 경험도 많고 또 우승도 했었던 노련한 노장선수들입니다. 그 짧지 않은 퍼팅을 하면서 히나코 시부노 선수가 만약 이런 것들을 생각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침착하고 용감한 퍼팅으로 그녀는 일본 골프는 몰론 세계 골프사에 길이 남을 매이저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김인경 선수의 ‘로즈’ 노래 같은 부활도 너무 훌륭하지만, 동시에 히나코 시부노 선수의 우승 또한 매우 훌륭합니다. 세상은 이런 두가지 종류의 놀라운 성공들이 공존하지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 골프장에 갈때 늘 이 두사람의 멋진 모습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매우 훌륭한 골퍼고 또 우승을 하고 성공을 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온몸으로 보여준 ‘골프를 대하는 자세’ 아니 어쩌면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보았고 또 크게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사람도, 그들에게 보고 배운 ‘자세’로, 제 자신의 골프를 대하고 또 제 자신의 삶을 대하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3)

오늘은 세번째로 ‘지나간 삽질의 기록’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초보골퍼 그리고 더 어리석은 군상이었기에, 나도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어떤 비법을 찾으려 시도 했었다. 내가 무슨 잭 니클라우스라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도 없는 코스에서 미친듯이 안되는 클럽을 가지고 연습을 하기도 했었고, 또 몇주 기간 동안 무슨 밤샘 시험공부를 하듯 온몸이 골병이 들어서 뻣어 일어날수 없을 때까지 미친듯이 연습을 했던 적도 몇차례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시도들은 나의 KO패로 끝이 났었다 당연하게도. 골프가 그런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때 나는 병이 나서 끙끙 앓으면서도 잘 깨닫지 못했었다.

차고에 그물망과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매일 저녁 공을 쳤었다. 때때로 잘못 맞아서 튄 드라이버샷이 그물을 벗어나 아찔하게 차고의 벽과 지붕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때 이웃들은 밤마다 옆집에서 들리던 따악~ 따악~ 그 소음을 어떻게 군말없이 참아 주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맙다. 보기플레이어 수준인 주제에 드라이버를 멀리 보내기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양 드로샷을 수개월간 연습하였다. 결과적으로 드로샷을 칠 능력이 생겼고, 그런 나의 드로샷들이 한여름의 굳어진 페어웨이와 죽이 맞으면 250미터씩을, 무슨 전진회전 먹인 당구공처럼, 때굴때굴 굴러서 갈때도 자주 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대다수의 보통수준 골퍼들은 셋업 얼라인먼트의 미숙함으로 목표보다 실제로 훨씬 오른쪽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잘못된 조준이, 공의 5시 지점을 보통 노려서 치는 드로샷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구질) 우연히 어울려 그럭저럭 거리와 방향성을 얻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래위에 쌓은 성이었으니 이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훅보다는 슬라이스성 구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프 코스는 많은 경우 슬라이스에 관대하게 설계되어 있다. 공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향할때 탈이 덜 나도록 오른쪽에 넉넉한 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악성 훅 구질이 나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그대로 오비가 나거나 이상하게(?) 왼쪽편에만 주로 있는 하천 절벽 혹은 기타 접근불가능 지역으로 드라이버샷이 영영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확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긴장하면 나의 드로샷은 쉽게 악성 훅으로 변질되어 라운드를 망쳐 놓기 시작하였다. 함께 백라운드 이상을 치면서도 ‘굿샷’ 이외에는 결코 어떤 말도 조언도 하지 않았던 그 아들이 딱 한번 안타까운 마음에 ‘드라이버 스윙궤도를 가파르게 만들어서 페이드를 치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탁구로 치자면 우회전 전진샷을 좌회전 컷트샷으로 바꾸는 것이랄까. 연습하여 그렇게 되게 하였다. 원래부터 별 볼일 없던 드라이버샷이었지만 이제 때굴때굴 구르는 것을 거의 안하게 되니, 내가 이런저런 드라이버 클럽으로 온갖 짓을 해보아도 줄어든 거리는 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몸부림은 서서히 막을 내렸고 또 골프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욕심대로 안되니까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몇해가 훌쩍 지났다.

그저께 턱걸이를 14개 하면서 올해초에 세웠던 내 기록을 하나 늘였다. 집 마당에 설치된 철봉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혹은 무슨 일로라도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매달려서 한번에 5개 정도씩 턱걸이를 해온지가 오래 되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오가면서 한번에 10개씩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일회 20개를 이루고서 향후 20년을 유지하는 것이 내 희망이다. 년전에 내가 드로샷이니 뭐니 지랄을 떨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턱걸이고 또 갯수다. 물론 턱걸이와 더불어 산을 뛰는 하체운동도 해온지가 수년이 되었다. 직장 근처 산을 400회 이상 뛰어 올랐는데 1,00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이제 장타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달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근력이 강화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면 그래서 내 삶이 행복하다면 그깟 골프 장타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하는 건방진(?)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 콧대 높고 변심을 밥먹듯이 한다는 골프란 뇬은 어쩌면 똑같이 콧대 높고 건방진(?) 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본다. 김헌선생이 말했던 ‘독보다 커야 독이 보인다’는 말씀이 어쩌면 이런 뜻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골프고수가 말했던 ‘간절히 원하지만 그 마음을 감추고, 그저 좀 비슷하게라도 되면 감사하겠다’ 정도로만 바라라던 그 말도 또 ‘너무 표적을 뚫어지게 보면서 조준하지 말고 좀 주변을 흐릿하게 보면서 조준하는 것이 좋다’던 말도 이제 조금씩 의미를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또다른 착각인가?

턱걸이에 필요한 반복된 연습과 결과적으로 변화된 신체는 어떤 묘수나 비법으로도 갈음되어질 수가 없다. 20년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다이어트도 신발도 심신이 변화되고 준비되지 않은 당신을 그 산위로 데려다 줄 수가 없다. 1,000번을 오르고자 하는데. 골프가 턱걸이나 달리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차차 체득하고 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 시간이 걸리며 그 접근방식을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여자탈의실과 골프이론은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훌륭한 말도 최근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

내가 턱걸이를 20개 한들 그리고 그 산을 지금보다 훨씬 빨리 뛰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클럽에는 소위 말하는 싱글핸디가 회원의 15%다. 발에 채이는 것이 싱글이다. 내가 220미터 드라이버를 치건말건 싱글핸디가 되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누구도, 하다못해 클럽멤버들조차도 아무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턱걸이를 하고 산을 뛰며 드라이버 장타를 추구한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 우리?

적선 이야기 3 – 빌 게이츠

어제 본, 1부 ‘똥과의 전쟁’ 그리고 3부 ‘이산화탄소와의 전쟁’에 이어서 오늘은 2부 ‘소아마비와의 전쟁’을 보았어요. 영화 ‘포레스트검프’ 기억나세요? 주인공 포레스트가 어렸을때 다리에 쇠로 만든 보조장치를 하고서 바보처럼 걷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당시 미국에서도 있었던 소아마비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 때문이었지요. 내가 어렸을때도 동네나 학교에 몇 명씩 그런 보조장치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빌 게이츠와 부인 멜린다는 많은 질병중에 왜 하필이면 소아마비를 박멸시키려고 그렇게 많은 돈과 정력을 투자했을까요? 왜냐하면, 주로 가난하고 (백신을 맞지 못하는) 더러운 환경에서 (폴리오 바이러스 전염이 쉬운) 사는 어린 아이들이 소아마비에 걸리는데요, 사지가 멀쩡해도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운 그런 곳에서, 소아마비의 결과로 하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앉은뱅이 혹은 절름발이로 평생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라는 것을 이분들이 가슴 깊이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88올림픽이 열렸던 시기에, 세계적으로 약 40만명의 운명을 그토록 가혹하게 바꾸었던 이 소아마비라는 질병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더불어 빌 게이츠 재단의 헌신적이고 (돈만 쏟아 부은 것이 아니예요) 천문학적인 투자의 결과로 작년에는 약 30명 세계적으로 발병했다고 해요. 도큐멘트리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에서는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발병이 발견되었는데요, 빌 게이츠는 그의 두뇌와 간절함 (마음씀)으로 그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합니다.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나이지리아 각 지역으로 보내서 백신을 맞히는데요, 그들이 사용했던 유일한 지도는 1940년대 영국인들이 만든것이었다고 해요. 그 부정확성으로 인하여 지역의 경계에 있는 마을들에 (이 지역에 속하는지 저 지역에 속하는지 모호한 마을들) 백신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다고 해요. 마치 아주 좋은 총은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타겟이 흐릿한 상황과 비슷한 것이랄까요. 아무리 총의 성능이 좋아도 아무리 많은 탄환을 쏟아부어도 명중시킬 수 없습니다. 빌 게이츠는 위성사진과 첨단 컴퓨팅을 결합하여 (엄청난 돈이 들었겠지요) 정확한 나이지리아 지도를 만들어 냅니다. 이 지도를 활용하여 그 취약한 지역들을 찾아내어 정확하게 작살(?) 냅니다.

이 사람, 자신도 인정하듯이 젊은 시절에 잘못했던 일들도 있었어요. 삼성처럼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항상 100% 합법적이고 윤리적으로’만’ 경영을 할 수가 있었겠어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적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깊은 존경심이 생겼어요. 그냥 돈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의 삶을 바치고 있어요. 아무도 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또 극히 어렵고 힘든 일들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야기 다시 꺼내서 미안한데요 어떤 사람은 노년에 집으로 창녀들이나 불러들여 추잡한 짓이나 하고, 또 그 부인이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을 위해서 유명한 사찰에 가서 중들에게 돈을 주고 큰 행사를 하며 복을 빈다는 것을 뉴스에서 들었어요. 지금은 그 사람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는지 모르지만, 이 부부는 과연 서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할까요? 빌 게이츠가 ‘지금 버스에 치여 죽는다면 한가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무었인가’ 묻는 질문에 거의 울먹이면서 ‘아내에게 고맙다고 한번 더 말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안타까울 것 같다’라고 대답하던데요.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들은 과연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요? 왜 겉으로 보기에 유사한 사람들이, 사는 수준은 이렇게 상이한지 나는 정말 궁금하고 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금 내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돌대가리’라는 것인데요,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이 돌대가리가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나도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진짜 돌대가리’가 분명할테니까요 🙂

1960년대 미국은 자신에 차 있었다고 해요. 곧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질병들을 지구상에서 ‘박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하네요. 지금 들으면 참 기가 막힌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소아마비를 박멸하면 그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더이상 병에 걸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게 될까요? 또 빌 게이츠 아니었으면 걸렸을지도 모를 소아마비를 걸리지 않게 되었다고 알아주고 또 고마워하며 잘 살까요? 아니겠지요. 그런 일은 우리 인간세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는 이것을 모를까요? 물론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왜?

그에 대한 일부의 대답이 이곳에 있어요. 어떤 훌륭한 분이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우리도 새발의 피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내가 덧붙이고 있네요. ‘보살은, 오늘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의심없이 최선을 다하지만, 덧없는 삶의 본질을 꽤뚫어 보기에, 최종적으로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