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링컨대통령의 부치지 않은 편지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요? 미국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지휘를 맡았던 최고사령관이, 남군을 요절내고 노예를 해방시키며 전쟁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수긍할만한 이유없이 미루고 또 이해할수 없는 이유로 회피하다가 그만 놓치고 난 이후에, 극도로 화가났던 링컨대통령께서 (자신의 지휘를 받던) 그 장군에게 쓴 편지인데요, 대통령께서 사망한 이후에 서재에서 부치지 않은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나도 읽어 보았어요. 영미문화권에서는 비록 상하관계가 명백한 경우라 하더라도 심한말로 나무래는 경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요, 상대방의 위치나 권위등을 존중해 주려는 배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욕이나 심한말의 인플레이션이 적은 곳에서는 조금만 억양이나 톤을 바꾸어 말해도 그 의미가 잘 전달되기 때문에 굳이 쌍욕이나 상대방을 모욕하는 나쁜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링컨대통령께서 쓰신 그 편지는 이런 문화적차이를 이해하고 읽기에도, 비록 자제하며 말하고는 있지만 극도의 실망감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드러내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대통령께서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도 쓸 때에도 그리고 쓰고 나서도 몹시 괴로워했을것임을 저는 짐작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랍에 넣어 두고 일부러 부치치 않으신것 같다고 해요. 물론 역사속에서 그 장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북군은 이미 무능한 사령관들을 수도 없이 교체하며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 사람도 이전 사령관들이 갔던 길을 따라 갔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북군이 승리했고 노예는 해방되었으며 링컨대통령은 미국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남을 훌륭한 위인으로 남게 되신것이지요.

그대도 쓰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링컨대통령처럼 종이에 잉크를 묻힌 펜으로 쓴 편지는 아니고, 비록 컴퓨터에 저장된 워드파일로된 편지들이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대통령께 배운 면도 있겠지만, 제 자신이 가끔씩 글로 저의 폭발하는 감정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되었는지 제가 쓴 부치치 않은 편지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부칠 의사가 거의 없던 편지들로서 그 취지가 약간은 변색된 면이 있겠네요.

어쨋던 저는 그 편지들을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읽어봐요.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 혹은 몇년이 지나서 읽어보는 저의 부치지 않은 편지들은 제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부끄러움입니다. 놀라셨나요? 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장 많이 느꼈어요. 내가 그 당시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수준의 편지를 썼던가? 무었이 나로 하여금 지금 보기에는 내가 쓴 것이라고 차마 믿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 그리고 나아가 그 편지의 발단이 되었을 사건이나 상황을 극히 유치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글들을 쓰게 만들었던가 자문하게 됩니다. 부치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만약 부쳤더라면 내쪽에서 문제를 훨씬 크게 확대하고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았을것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내가 격정에 사로잡혀 있을때 얼마나 더 어리석게 되고 눈이 더 멀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횟수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통한 저의 깨달음은 어쩌면 제 자신에게, 설령 제가 이런 상황속에 빠져 있을때라고 할지라도 바로 이런 기억을 불러와, 저로 하여금 이전에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했었을 그런 언행들에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저의 잘못된 확신을 무너트리고 제 입을 다물게 하며 저의 사나운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싶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다른사람들을 통해서 배우고, 보통사람은 자기자신을 통해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것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도 보통사람들 끝에라도, 이런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좀 끼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괴로운 그대, 오늘밤 부치지 않을 편지를 한번 써보시지 않으렵니까?

명상 – 현대판 만병통치약?

일전에, 그 옛날 박카스병에 넣어 팔던 ‘가짜 만병통치약’ 이야기를 했었지? 설탕물에 아스피린을 좀 갈아 넣었던지, 아니면 시골에서 양귀비를 몰래 키우던 넘들이었다면, 그것 이파리라도 삶은 물을 좀 섞었던지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내 생각에는, 정말 센 넘들 무리에 속해서 주류들과 함께 잘 나가는 사람들은, 밖에서 들릴만한 잡음도 만들지 않고 또 무슨 재미있거나 신기한 이야기 거리도 별로 만들지 않지 싶어. 문제아들, 주류에서 튕겨 나왔거나 쫒겨 나온 넘들이 꼭 소란하고 시끄러운 것 같더만. 나도 그런가? 내가 보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때로 지나치게 돈돈돈 하면서 돌아가는 것 같고 (물론 돈이 많으니 전에 말했듯이 훌륭한 일도 하고 그렇겠지만) 어떤 미국사람들은 머리가 좀 ‘돈’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 미국사람들 중에서 태국등 아시아 나라에서 수행하다가 중노릇이 너무 힘이 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그만 두고서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던 사람들도 많았어. 그리고 그 중에서 원래 머리가 좀 ‘돈’사람들도 있었겠지. 가서 뭐 했을까? 붓다장사 명상장사 🙂

내가 본 이런 사람들은 일단 공통적으로 박사학위를 사요. 왜 산다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통신과정 혹은 인터넷과정 뭐 이런식으로 돈을 갖다 주고 받는 그런 박사학위라는 냄새가 풀풀 나거든. 태국에서 아잔차 스님 아래서 수행하던 1세대 서구인 승려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에 명상센터를 차리고 (미국과 서구에) 명상을 알린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 이 사람도 박사학위가 있는데, 무슨 임상심리학 박사인가 그래. 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미국대학원 185개 중에서 ‘173번째로 좋다’고 알려진 대학원에서 취득한 것으로 나와 있어. 또 다른 유명한 명상 장사꾼이 임상심리학 (인기 좋네) 박사학위를 취득한 대학원은 그런 통계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 곳이야.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박사학위를 사려고 할까? 미국에서 발행되는 자기계발 서적들 표지 봤나? 그런책들 대부분에는 저자 ‘누구누구 박사’라고 크게 박혀 있어. 그래야 장사가 되고 돈을 벌수가 있으니까. 이런 거룩한 박사님들이 하시는 명상 과정들도 또 매우 비싸. 인터넷으로 한번 등록 안내를 봐. 내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대동강 물팔아 먹은 봉이김선달’이 따로 없지 안그래? 무슨 재료를 어떻게 투자해서 무었을 만들어 팔았고 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냈는데?

일전에 이곳에서도 이런 사람이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무슨 비영리 단체인 것처럼 가장을 해서 이곳에서 제일 큰 인터넷 일간지에 버젓히 자기 사업 선전을 했던 것을 봤어. 나도 처음에는 좋은 느낌으로 읽어 보고, 좀 더 알아 볼려고 그 기사에 제공된 링크를 따라가 보았는데, 허… 붓다 팔아 (명상 비데오를 온라인으로 팔았던 것으로 기억해) 돈벌이 하는 곳이더라니까. 내가 마음에 상처를 좀 받았어. 그런데 이 사람 뒷조사를 좀 해 봤더니, 글쎄 다행히도(?) 그 ‘돈’나라에서 이곳에 와서 사는 사람이었던 거라. 그 버릇 어디 가겠어? 내가 정말 드물게 댓글을 하나 남겼어. ‘당신 말대로 당신 자신도 그렇게 명상을 좀 해 봐라. 이런 것 팔아서 돈벌이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그리고 당신이 파는 것들 중에서 당신 자신이 발견했거나 혹은 만들었던 것이 무었이 있는지’. 좀 야비했지만 내가 상당히 기분이 상했었어. 붓다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진실하게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좀 들어 보고 알아 볼 기회를 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저절로 들게 되지만, 이것 팔아서 돈을 좀 벌어 봐야겠다는 생각은 ‘머리가 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게 돼’. 이런 종자들을 보면, 흡사 딸자식 팔아 술 받아 마시는 애비 꼴을 보는 그런 느낌이 들어.

그러니 혹시 그대가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는 여정에서,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존경하게 되거나 혹은 따르게 될때,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확실히 알아 봐야 하는 것은, 그들이 ‘돈을 노리는’ 넘들인가 아닌가야 (‘권위’처럼 무형의 것을 노리는 넘들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돈으로 환산 귀결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고, 어쩌면 더 나쁜 넘일 가능성이 커). 한계가 많은 우리 인간이, 사심없이 성심껏 최선을 다해도 무었 하나 제대로 이루기가 참 어려운데, 하물며 제것도 아닌 것을 팔아 돈벌이 할 궁리를 하는 넘들로부터 도대체 무슨 가치 있는 것이 나올 수가 있겠나? 선생님 이것 잘 기억하시길 바래요 🙂

이렇게 명상 팔아서 돈벌이 하는 넘들이 남긴 공적이라면, 명상을 세상에 많이 알린 것이겠지. 그리고 부정적인 면이라면, 명상이 흡사 무슨 대단한 이론과 습득의 과정이 필요하고, 또 자기들이 시키는데로 하면 어떤 엄청난 효과나 이익을 보게 되는, 현대판 ‘박카스병에 넣은 만병통치약’처럼 포장을 했다는 것이야.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장사가 되겠어? 맨 위에서 내가 그 만병통치약 성분이 뭐랬더라?

이제 명상의 진실을 좀 밝혔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상이 무었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리고 왜 하면 좋은지, ‘자타가 공인하는 명상 전문가들과 더불어 반세기 가까이 명상을 해 오신 분들이, 십원 한장 달라는 말씀없이 가르쳐 주신데로’ 내가 전해 볼께. 먼저 웃기는 이야기 하나. 법륜스님 알지? 때때로 좀 심하다 싶기도 하고 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현존하는 한국의 승려들중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분이 아닌가 싶어. 그대도 들어보았을 ‘즉문즉설’ 시간에, 어떤 사람이 약간 멋있게 질문을 했어 ‘명상’에 대해서. 아마 좀 쿨한 대답을 기대했었겠지. 스님 왈 ‘명상하면 무슨 일이 생겨 아무일도 안 생겨.’ 우하하하 내가 이래서 스님을 존경한다니까 🙂 낙심했나? 그대를 위해서 조금 더 친절한 버젼으로 말해볼께. ‘명상을 하면 당장은 아무일도 안 생겨요. 그런데 이상한 욕심내지 않고 오래 그리고 자주하면, 더 크고 훌륭한 수행을 위한 기본을 (운동으로 치자면 ‘몸’을) 만들게 되요’ 이것 중요하지 않을까요?

붓다의 가르침을 좀 달리 표현하자면 ‘생각하며 살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싶어. 다시말하면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살다가 죽지는 말자’는 말이야. 내가 무슨 거창한 이야기 하는 것 아니니 긴장 하지 말고. 그런데 뭐가 되었던 간에 ‘생각하며 살려면’ 좀 의식을 가지고 해야 되. 예를 들면, 우리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일때 그냥 자동적으로 하지 않나? 그것을 자기가 라면 끓이는 것을 딱 지켜 보면서 끓여 보라는 거야. 뭘 보라고?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고, 물을 담고 가스를 켜고 파를 썰고, 다 끓이고 나면 조심해서 불위에서 내리고 가스를 잠그고 탁자로 들고 오는 이 과정을 ‘자신이 딱 지켜보면서’ 해보라는 거지. 왜? 좋잖아 안전하고 또 맛잇게 잘 끓이고 🙂 아니고, 이렇게 하면 ‘라면을 먹고 나서 꽃비씨를 만나러 가는데 오늘은 어디가서 무었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라면을 끓이지 않고, 오직 라면 끓이는데에만 집중하게 되겠지. 이것을 훈련하자는 거야. 왜? 당신 골프 정말 잘 치고 싶지? 내가 거리 늘이고 점수 줄이는 확실한 비법을 알려주께. 양심적인 도사급들이 이미 하신 말씀을 내가 그냥 옮기는 것이니 너무 고마뭐 하지 말고. 팔굽혀펴기를 하루에 백개 그리고 턱걸이를 오십개씩 매일,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한두해 하면 되십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 방금 위에서 말한 집중 훈련, 즉 ‘마음을 가라 앉히는 명상’이 바로 수행에 있어서, 팔굽혀펴기 그리고 턱걸이랍니다.

내가 좋아 한다던 Luang Por Tiradhammo 스님께서 최근에 어디선가 설법을 대중들에게 하셨어. 그리고선 질문과 대답 시간이 되었는데, 어떤 훌륭한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하나 했어. ‘저 같은 보통 사람이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고 또 시간도 없는 중생이) 매일 무었을 좀 하면 (수행으로) 좋겠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셨어 한 마디로. ‘매일 10분만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숨쉬는 모습을 지켜보는 명상을 하세요’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한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

오늘은 요까지만. 명상 이야기 좀 더 있는데 다음에 또.

스위스뇬과 라오스넘, 깨달음과 습관

직원중에 라오스계 넘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아마 어렸을때 와서 자란 듯하다. 볼때마다, 내게는, 더럽고 게으르며 어글리한 느낌을 준다. 팀원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일 이외는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늘 헤헤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큰 소리로 낸다. 그넘 참… 사무실에서 손톱을 깍으며, 신발을 벗고 왔다 갔다 한다 (자기 이외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짓들을 하면서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 그 부모의 영향이며 또 그 부모를 길러준 그 나라의 영향일 것이다.

직원중에 스위스계 뇬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던지 아주 어릴때 와서 자랐던지. 건데 생김새도 언행도 이곳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있다. 팔등신 미녀에 똑똑하며 일을 딱 부러지게 한다. 회사 근처 공원에서 가끔 점심시간에 홀로 운동하는 모습을 본다. 그뇬 참… 이뇬은 신발을 벗는데서 한 수 더 떠서 아예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물론 이뇬 이외에 그 누구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방면에 본좌다.

그 넘을 볼때는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고, 이 뇬을 볼때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옛날 만화속에서 어쩌면 맨발로 잔디위를 뛰어 다녔을 그 예쁜 하이디가.


내가 일하는 이 대학에는,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을 위한 학사학위 특별 과정이 있다. 교육대학을 마쳤거나 졸업반인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이 이곳에서 1년 과정을 마치면서 TESOL 영어교육학사 학위를 받는 협력과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출퇴근때 그 건물을 자주 지나니, 소위 말해서 ‘대가리에 보자기 쓴’ 인도네시아 여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25년전 그 건물에서 잠시 영어를 배울때, 같은 코스를 공부하던 터키인인가 그 근처 나라에서 왔던 무슬램 여자, 보자기 쓴 그 여자가 전혀 건방지지 않은 태도로 ‘당신들이 이슬람 종교를 모르며 일생을 산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좋은 의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가리에는…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EBS방송의 연재 도큐맨터리를 본 적이 있나?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외국 문화와 그 결과물인 외국인 아내들이, 한국의 문화와 만나서 부딪치고 갈등하는 가운데, 인간 삶의 어떤 진실 혹은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였다. 모든 문화는 (개인들은) 상대적이며 그 환경의 소산이고, 한국문화 (한국인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득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속에서 혹은 알 필요가 없다는 교만속에서 사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것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나는 살아 왔다. 세상에 그런것들이 정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꽤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있다. 무지와 어리석음이 있는 곳에, 그 바탕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거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다문화 고부열전’을 통하여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또 소위 후진국에서 자랐지만, 나의 수준이나 내공을 월등히 능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처했었던 어떤 상황보다 열악하고 힘든 여건속에서, 내가 해낼 능력이 없고 또 깜양이 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좋은 태도로 힘껏 해내는 그 사람들을 보고 나서, 나는 더 이상 ‘후진국’이니 ‘대가리에 보자기 쓴 뇬들’이니 하는 말들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깨달음을 잠시 맛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을 며느리로 삼고 싶거나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흡사 그 ‘다문화 고부열전’의 모든 결말이 이해와 화해로 끝은 나지만, 그것이 앞으로 갈등없고 행복하기만한 고부관계나 가족생활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 머리로 부터 오는 것이요, 습관은 오랜 삶 속에서 굳어져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때문이다. 습관이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자명하듯, 깨닫음이 저절로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깨달음은 다만 첫번째 문을 여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첫번째 문조차도 열지 못한채 흘러 간다. 하지만 첫번째 문 뒤에 첩첩히 닫힌 문들이 습관 혹은 카르마라는 빗장을 걸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 빗장들을 풀며 그 첩첩히 닫힌 문들을 열기 위해서는, 그 머리로 깨달은 바가 가슴으로 흘러 내려가 내 몸의 새로운 습관이 되고 새로운 카르마가 되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친구의 급사에 크게 충격받은 배불뚝이 중년이, 새다리처럼 가는 팔로 턱걸이 20개를 목표로 철봉에 매달리는 그 손바닥 찢어지는 고통의 과정이며,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첫 몇 킬로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헉헉 억지로 뛰기 시작하는 그 물리적인 과정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10% 덴트의 법칙’ 이라고 내가 명명한 법칙이 있다. 오래 지속된 습관 카르마를 참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과거에 지속되었던 기간의 10분의 1 기간이라도 최소한 시도를 해야 덴트(dent) 즉 ‘이빨이라도 약간 먹힌다’는 법칙이다. 운동 안한지 얼마나 되었나? 보자기 쓴 뇬들이라고 싸잡아 무시하며 산지는? 20년? 그러면 최소한 2년은 노력을 해야 이빨이라도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내 일천한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전에는 잠시 반짝한다고 까불다가 훅간다.

팀 미팅을 하면, 뒤쪽에 서 있는 내 눈에 그넘의 검은 양말이 흘낏 보인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앉아 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맨발을 본다. 그리고 소리없이 웃는다. 내 습관 내 카르마를 생각하면서.

보살 원장 vs 프로페셔널 원장

주말아침 가족과 함께 동네카페에 왔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인도인 부부가 어린딸을 데리고 와서 바깥 테이블에 앉는다. 체육복 바지에 슬리퍼 질질.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고 휴지는 널부러지고 설탕하나 제대로 커피잔에 넣지 못하고 상위에 줄줄 흘리고 치울 줄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또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만드는 이 사회는 장차 어떤 모습일까…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다.

그 공립 유치원에도 최근 들어 인도나 중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이민온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거의 오분의 일이나 된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그 부모는 그들의 부모들과 그들이 이전에 속했던 그 사회의 수준을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나는 다양하고 오랜 경험을 통해 보아왔다. 도대체 몇 세대가 지나야 자연스러운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아니 그런 것이 도대체 무었을 의미하는지…

보기 드문 어쩌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동양인 원장이니, 말도 잘 안통하고 이 새로운 사회의 물정도 잘 모르는 그 부모들이 대부분 의지하고 싶어 한다. 어떤 부모들에게는 이 유치원을 선택했던 이유였기도 하고.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디 누군들 다르랴.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동양인 원장은 자주 뒷골이 땡긴다고 했다. 대다수의 다른 학부모들 눈에는 이전에 본 적도 없고 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쩌면 원치도 않는 이질적인 장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금발의 이전 원장은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능력으로 수십 년간 너무도 잘 알려졌던 사람이었다. 내가 묻는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것 같은가? 프로페셔널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다. 다른 부모들이나 원생들과 똑같이. 하지만 아마도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는 못했을 것이고, 당신이 지금 창밖의 인도인 가족을 보며 느끼는 그런 감정을 숨기며 이런 부모들과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십년 넘도록 같이 일했었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동양인 원장은 지금 이순간 그리고 오늘을 사는 보살이다. 물론 프로페셔널하다. 충분히 배웠고 모두들 인정하는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음식을 한 그릇 만들어 팔아도 마음이 들어가고 혼이 베어난다고 하는 세상인데, 이 소중한 어린 사람들을 가르쳐 어쩌면 평생을 좌우할 몸과 마음의 습관을 만들어 주는데 단지 프로페셔널 하다고 될까? 모든 관계는 서로의 기를 나누는 행위이며 이 어린 것들도 귀신처럼 알아챈다고 하더만…

이 동양인 원장이 그 어린것들을, 때로 측은한 마음을 숨기면서 스스럼없이 안아주고 또 지나가며 엉클어진 대가리라도 한번 더 만져 주고, 그 버벅거리는 영어하는 부모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조언 해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그 결과로 이 아이들은 내가 오늘 조롱하는 그런 짱께나 카레로만 남지 않을 어떤 기회를 장차 조금이라도 더 가지게 되리라. 보살행은 때로 은밀하며 자주 어려움을 부른다. 다른 길을 선택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며 또한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살은 선택하지 않는 듯 선택한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처럼 보며 피해 왔고 또 이런 사람들 때문에 뒷골 땡기는 것은 더욱 더 싫다. 이 보살원장은 말이 없고 나는 말이 많다. 중생은 선택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인가…

목련을 좋아 한다는 이 보살원장께, 그 모자라고 힘없고 후진 부모들을 대신하여 올리는 감사의 노래다. 소프라노 김주연님이 그 아가들과 함께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