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리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혹시 들어봤어요? 나는 펜인데요, 오랜 세월 하도 즉문즉설을 많이 보고 또 그분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질문만 딱봐도 해답이 저절로 줄줄 나와요. 그리고 모범답안을 들어보면 내가 미리 낸 해답이 대부분 맞아요 🙂 그래서 그런지 요샌 좀 재미가 (?) 덜해서 별로 안보게 되네요.

우연히 보니 오늘 질문 제목이 ‘아이가 고집이 센대요 사랑으로 대해야 하나요 아니면 엄하게 대해서 고쳐줘야 하나요’ 이런 것이었어요. 아! 해답을 모르는 문제가 오랫만에 등장했네요. 아주 짧은 동영상인데요 모범답안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이 양반이 무슨 황당무계한 (내가 느끼기에 그런적도 있었어요)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봤어요.

사랑으로 대해줘야 하나 엄하게 고쳐줘야 하나 그런 생각일랑 하지말고, 사랑스러운 내자식이 고집을 피울때 ‘아! 이 아이의 고집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로구나. 어른인 내가 이런 언행을 했을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딱하고 가관이었겠나’ 스스로 돌이켜 깨달으며, 아이에게 빙그레 미소 지을수 있으면 된다 이런 맥락의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덧붙여 ‘엄마가 그렇게 미소 지을만한 수준이 되면 아이도 엄마를 따라서 저절로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여태껏 보고 듣고 배운, 그 어떤 박사 도사 노벨상 무슨상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훌륭한, 삶의 진리를 단 몇마디로 함축한,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에 고개숙이며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또 그것을 지속하고 반복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지 나는 조금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내 수준의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 인생에 더 이상 뭐가 있겠어요 🙂

무지와 지혜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현상의 일부를 보고서 (혹은 알고서) 전체를 미루어 판단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런 줄을 알면서 내리는 판단은 조심스럽고 또 쉽게 물러나거나 수정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사람들에게 강요할 가능성이 적다.

이런 줄을 모르거나 잊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내리는 판단은 (자신과 타인들에게) 난폭하고 강압적이며 또 스스로 물러나거나 수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사람이나 사물 혹은 현상의 일부만을 보는 것을 (혹은 아는 것을) ‘무지’ 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무지에 근거한 판단에 집착하는 것을 ‘고집’ 이라고 한다.

듣고 보고 배워야 하나라도 더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덜 무지하게 되고 나아가 좀 덜 고집스러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귀찮은 (그리고 남들도 하지 않는) 과정을 지속하고 반복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그냥 지금 아는 것, 지금 가진 것이 ‘모두’ 이고 또 ‘전부’ 라고 자신과 남들에게 떠들며 주장하게 된다. 나이가 많거나 상대적으로 가방끈이 길거나 돈이 많으면 이런 짓을 점점 더 강하게 또 드러내 놓고 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더 고집스럽게 되는데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그냥 고집인 것을 가지고) 신념이니 철학이니 하면서 무슨 특별하고 괜찮은 것처럼 포장을 하여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며 또 나아가 그것을 팔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무지로 시작된 고집은 인간의 삶을 ‘겉으로는 좋아 보이는데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치매인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장차 그 꼴로 인생을 종치게 만든다. 자신도 비참하지만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고난 다음에.

무지의 반대는 ‘지혜’ 라고 한다. 지혜는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현상의 ‘전모’ 즉 전체 모습을 보고 또 아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수준에는 결코 도달하게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발 양보해서 ‘지금 내가 보는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현상에는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다양한 측면들이 존재하니 나는 무슨 판단을 내리건 그것을 기억하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또 자주 시도만 해도, 지혜를 좀 가진 사람으로 그래서 덜 고집부리는 사람 덜 완고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겠다 🙂

배울만큼 배운, 가질만큼 가진 그리고 나이들만큼 든 사람이 ‘고집부리는 모습’ 만큼 스스로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자신을 깊이 초라하게 만들고 또 장차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징표는 별로 없다.

일전에 언급했던, 내가 즐겨 뛰어 올라간다는 그 산꼭대기에 오르면 내가 사는 아름다운 수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고 남쪽에서 바람이 부는 어떤날에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저 멀리 아름다운 도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 오는 냄새다. 그냥 쓰레기 냄새가 아니다. 이곳은 한국과는 달리 오수를 (똥물을)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모아 하수처리시설에서 일괄 처리한 다음에 바다 멀리로 내보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고형물을 (똥덩어리를) 걸러내서 수분을 제거하고 눌러 납작하게 만든 다음에 그 쓰레기 매립장으로 운반하여 땅에 묻는다. 그 똥냄새가 이토록 아름다운 산위로 때때로 올라오는 것이다. 내 발아래 펼쳐진 이 아름다운 도시 그 높고 화려한 사무실과 해변가의 아름다운 집들에서 선남선녀들이 입으로 넣었다가 항문으로 밀어낸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진실 덩어리를 나는 때때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

하늘아래 어떤 인간도 이 진실에서 한치도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 그대의 똥과 나의 똥만 뒤섞여 바다로 흘러가고 함께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것을 자주 기억하는 만큼 그리고 어떤 판단을 내릴때 하나의 측면으로 고려하게 되는 만큼 우리는 지혜로워 지리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자주 상기한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향상시키려 하지 ‘고집’으로 상대를 이기고 주변을 어지럽히려고 하겠나? 그래서 무었하게? 더 멀리 더 빨리 바다로 흘러가고 매립장 더 위에 묻히게?

나이들며 스스로 경계해야할 첫째는 고집이고 사람만나며 멀리해야할 첫째 부류는 ‘어떤 이유로든지’ 고집스러운 인간이다. 고집은 다양한 이유와 형태가 있겠지만 그 뿌리는 오직 하나 그리고 언제나 ‘무지’ 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고집스럽게 말했나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How you Perceive and How you Respond’

이 두가지가 내가 여태껏 살면서 깨달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되겠다.

내 영어는 아직도 엉터리지만,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몇십년 영어를 사용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좀 깊이 있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때로는 중국어에서 빌어온 한국어 (한자) 보다는 영어단어가 더 수월하고 정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착각인가 🙂

‘당신이 세상을 (당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당신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Perceive 하는지는, 부모로부터 우리가 아주 어릴때 물려 받은 ‘습관’ (양육) 그리고 ‘기질’ (유전) 에 좌우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Respond 하는지는, 물론 습관과 기질의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가 나이들어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 기억한 것들에 좌우되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매일 일상속에서 수없이 크고 작은 판단들을 내리고 또 그 판단의 결과로 어떤 언행을 하면서 살고 있다. 어떤 판단은 드러내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언행은 표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지만 매우 강한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판단과 언행이 쌓이고 모여 인생의 방향과 수준이 결정된다.

금수저가 물려받은 돈다발이 인생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학벌이나 계급장도 물론 아니다. 별의 겉보기 등급이 그 별의 진짜 크기와 밝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것과 같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는 거리에 따라 겉보기 등급이 좌우되는데, 한가지 정말 무서운 진실은 사람은 무슨짓을 하고 어떤 방법을 써도 자기자신에게서 한순간 한치도 멀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안된다는 말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인생초기에 물려받고 또 형성된 습관과 기질이, 우리가 장차 살면서 무었을 경험하고 배워서 기억할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이 진실을 깨달을만할 쯤이면 ‘땡’ 종치며 링에서 내려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습관과 기질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나중에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 기억한 그것들이 또한 자신의 습관과 기질을 되돌아 볼 능력을 주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 그것들을 변화시킬 힘을 주기도 한다.

일단은 지혜로운 부모를 만나면 시작이 좋다. 물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겠지. 그래도 세상은 공평하다. 우리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무었을 경험하게 할지 어떤 것을 배우게 할지 또 무었을 기억하게 할지 상당부분 결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선택해서 쌓은 경험과 배운것 그리고 기억한 것들이, 자신의 습관과 기질에 서서히 재갈을 물려 마치 마부가 말을 부드럽지만 능숙하게 다루듯이, 우리가 보다 나은 판단과 언행을 하도록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이끌어 준다. 그 결과로 우리 인생의 방향과 수준이 달라지게 된다.

인생의 봄이나 여름은 이렇게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진다고 오는 봄이나 여름은 없다. 아마 당신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

수포자 챔피언 돌아온 탕자

나는 수많은 다른 수학 포기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작은사연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초등학교) 초반 일찌기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린시절 비교적 호기심도 있었고 또 보통머리는 되었지만 ‘왜요?’ 라는 질문을 은근히 던지는 천성과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게으름이 결합되어 학교공부에 특히 수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내가 몹시 싫어하게 되었던 수학은 또한 당연히 나를 몹시 싫어하며 오랫동안 내게 큰 괴로움을 주었었어요. 우리는 몸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릴때는 어떤 (물리적으로) 무서운 상황이 악몽의 내용이었다면 이젠 나이가 드니 악몽도 변화 발전하여(?) 무턱대고 무서운 상황보다는 마치 바늘이 손톱밑을 슬쩍 찌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민감한 내용이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면서 그속에서 정말 현실처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차원 다른 악몽을 꾸게 되네요. 짐작하다시피 내가 어쩌다 꾸는 악몽의 내용은, 미루고 미루며 강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당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수학시험에 그나마 지각조차하여 절망속에서 우왕좌왕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런 것들이랍니다. 수학이란 내게 문자 그대로 악몽이 아닐 수가 없네요 🙂

내가 자신을 챔피언급 수포자로 규정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내겐 비극 친구들에겐 코미디’ 였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야기인즉, 대학신입생 시절 낙제했던 필수수학 과목을 복학후 다시 낙제하여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세번째 시도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사귀던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은 나의 이런 딱하고 한심한 사정을 듣고선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수학과목을 같이 수강하며 나를 도우려고 애썼는데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선 예상문제를 몇개 적어 주었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린’ 엉터리 한글 편지처럼,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수학문제의 해답들을 시험지에 ‘그려냈어요’ 🙂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바라는 성과를 내고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꺼에요. 그런 성공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순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가 어렵겠지요. 물론 그 기간의 길이 또 그 대상의 사회적 인정도에 따라서 10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또 1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하겠지요. 인생이란 어쩌면 그 10과 1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그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챔피언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 수학과목 강사께서는 내가 ‘그려낸’ 엉터리 시험 답안을 이해하지도 또 동정하지도 않았어요. 세번째 낙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그 강사의 댁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분 모친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주셨는데요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짧고 어색한 대화가 오갔어요.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는데요 ‘정상적인 학생이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 젊은 수학자를 설득할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직전학기에 저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수학과목이 없었기 때문에요.’ 곧 자신의 일생을 바칠 그 거룩한 수학에 대해서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는 저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믿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어쨋던 그분이 고맙게도 낙제를 겨우 면하게 해주어 나는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이민도 오게 되었어요. 물론 그때 그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과 함께 왔지요. 언젠가 블로그에 등장했었던 그 보살원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성공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왜?’ 그리고 ‘절실함’ 이 두가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실함’이야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왜?’에 대한 대접 혹은 반응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시절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도시설계 스케치 그리고 도면작성에 열을 올릴때 나는 ‘왜 저렇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태동기였던 CAD를 (컴퓨터로 설계도를 만들어 내는 기술) 독학으로 익히게 되었어요. 내 ‘왜?’의 흔적은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CAD를 활용한 도시설계 프로젝트였을 인천 ‘시화(시흥)공업단지’에 남아 있어요. 무슨 인간 승리나 대단한 성취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해답이 한때 세상과 맞물려 거둔 작은 성공의 예로써 해본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조봉한 박사라는 유명한 수학자를 알게 되었어요. 이분은 수학박사인 자신의 딸이 수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선 충격을 받아 초등생 딸을 수렁에서 건져내고서(?) 수학교육사업을 시작하게된 인공지능 전문가 입니다. 이분이 수학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과도 달라 보입니다. 학교측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몇시간씩 평범한 초등학생들에게 서너달 수학을 가르쳤는데요, 이들과 서울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같은 문제를 내어주고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간에 해답을 찾는가 보여주는 짧은 도큐맨트리를 보고선 나도 몹시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 수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초등학생들은 미분적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배우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원리를 배워 꽤뚫고 나서 몇가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그 똑똑한 대학생 형들과 언니들이 엄청난 공식들을 쏟아부어 풀어낸 문제들을 똑같이 풀어 냅니다. 더 빨리. 물론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또 위험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수학자가 부르짖고 또 그 초등학생들이 증명한 것은, 수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부딪치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컴퓨터나 계산기가 할수없는) 인간고유의 정신활동이지, 누군가 이미 찾아 놓은 (공식이라며 존재하는) 해답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워서 출제된 시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내와 저녁때 잠시 수학 이야기를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가 비록 좋은 수학 성적은 받았었지만 (그때 함께 수강했던 수학과목에서도 A를 맞았었어요) 사실은 나는 수학이라는 것 차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아마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공부했던 수학을 전부 잊어버렸지 싶어요.’ 이렇게 아내가 말했어요.

수포자 챔피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대도 나처럼 수학의 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나요?’ 당신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던 공식들을 더 많이 외워 더 빠르게 적용시킨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삶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점점 깨닫고 있지 않나요? 그 수학 덕분에 성공한 삶을 살면서 그대에게 얼마나 그 공식들의 인이 박히게 되었을까요?

내 삶을 통털어 지금처럼 수학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적은 일찌기 없었어요 (써놓고도 ‘어머 놀래라’) 🙂 나는 다시 수학책을 펴렵니다. 내겐 그야말로 돌아온 탕자(?) 입니다. 노스텔지어 일지도 모르겠고 또 아내말처럼 (꼬박꼬박 차려 주었더니) 배가 불러 별짓을 다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때 호기심 많고 ‘왜?’ 라고 물었던 어린 나는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수학선생님이 되어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얘야 왜라고 물었었니?’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김범석 의사선생님의 훌륭한 책에 나온 작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중에서 선생께 ‘십년만 더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간절히 말했던 분이 있었다고 해요. ‘십년 더 사시면 무었을 하실 계획이세요’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간말종 변호사

혹시 이사람 누군지 아세요? 루디 줄리아니라는 미국변호사인데요 뭐하는 사진일까요?

이 사람은 일전에 말한 그 인간말종의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선거소송들을 대리하는 미국에서는 매우 알려진 변호사랍니다. 얼마전에 언론들을 모아놓고 부정선거소송에 관한 모종의 중대발표를 한답시고 인터뷰를 자처했었는데요, 그 물에 그 밥이라고, 그 인간말종과 똑같이 아무런 내용도 없는 황당한 인터뷰였다고 하네요. 아마 그때 머리에 발랐던 염색약이 땀에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별로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닌데 더욱 괴이한 모습이 되었군요 🙂

그저께는 하원의원들이 모인 어떤 청문회에 답변을 하러 갔는데, 생방송 중에 2차례에 걸쳐 방귀를 끼는 소리가 생생히 전파를 탓다는 소식도 있군요. 참 가지가지 하네요 그리고 말년에 도대체 왜 저렇게 살까 싶지요?

그런데 혹시 아세요 이 사람 루디 줄리아니는 오래전 뉴욕시장이었어요. 그때 9.11 이라고 미국이 큰 테러 공격을 당했을때 이 사람은 시장으로서 아주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당시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중 한명이었다고 해요. 어느정도였었나 하면, 이 사람이 뉴욕의 식당에 식사를 하러 들어가면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멈추지를 않았었다고 해요. 상상이 됩니까?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어쩌면 가장 큰 명예를 아마도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정당하게 획득해서 누렸던 것이 아니었던가 해요. 멋진 사람이었지요?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왜 그 인간말종이나 대변하며 이런 개망신을 당하면서 다니는 것일까요? 두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네요.

이 사람은 뉴욕시장 이후에 상원의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요. 미국 상원의원은 정말 엄청난 명예와 권력의 자리입니다. 숫자도 몇명 안되요.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루디 줄리아니는 그 인간말종 편에 섰어요. 그러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나이를 먹어 노망이 난 것이지요. 더 이상 가지 말아야 할 곳과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이제는 구분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과거의 영광이 그립겠지요. 하지만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기립박수가 멈추지를 않았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간 오랜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따라 이미 이리저리 오고 갔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그때 그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겠지요. 그렇기에 내려오지를 못하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그 인간말종 편에 서서, 어쩌면 4년 후에 다시 한번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서 미친 짓을 하고 있지 싶네요. 4년 후에 그 인간말종은 감옥에 있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데요.

여담이지만, 영미권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또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한국의 식자들과 언론들이 (미국서 힘들게 따오신 박사학위? 이방면에는 별 소용 없지 싶은데요…) 그 인간말종의 황당무계한 부정선거 발언에 마치 무슨 진실이 담겨 있거나 혹은 어떤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선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가 없었어요.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지 자발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저 미국 신문 잡지 이곳 저곳에 난 선정적인 기사들을 옮기는 수준인 듯한 모습을 보면서, 몇년 전에 그 인간말종과 김정은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서로를 협박하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 났어요. 당시 나는 한국방문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의 주류 언론뿐만 아니라, 그 주류언론에 의견과 정보를 제공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매일 읽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었어요. 미국에도 한반도 정세에 매우 정통한 교수들이나 소수 언론 매체들이 있어요. 그때도 그저 미국 주류 언론에 난 선정적인 기사들을 이것 저것 뽑아 번역하거나 인용하는 수준의 한국 언론들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인재가 없고 자원이 없나’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차차 깨닫게 되었어요 ‘어떤 종류의 정보나 분석은, 그야말로 오래오래 그속에 살아서 그들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요. 나 잘났다 소리처럼 들린다고요? 그런 의사는 없었지만 그렇게 들렸다면 쏘리 🙂

두어가지 덧붙이는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첫번째는, 나이가 들면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한발을 들고서 양말을 신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니까요.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혹시 내가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대답이 불분명하면 일단 중지 하는 것이 좋겠지요. 유명한 재벌이나, 정치가 혹은 스타 변호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해당되고 말고요. 최근 사망한 유명한 재벌, 일전에 블로그에도 한두차례 비극적으로 등장했던 그 사람도 자신이 가졌던 그 엄청난 돈으로 ‘내가 내 스스로의 삶에 균형을 더 잡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필요한 시간이나 공간을 사면서) 살고 있는가’ 자문할 능력이 참으로 있었다면, 어쩌면 더 멋지고 존경받는 모습으로 아직도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두번째는, 우리 아이가 어릴때 쓰던 표현에 따르면 ‘올라간 모든 것은 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 붓다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으뜸인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어쩌면 루디 줄리아니도 그저 모든것을 내려놓고 좋은 곳에 가서 올리브 농사나 지으며 평온하게 살다 죽게 될지도 모르지 싶네요. 누가 알아요 젊은뇬들 중에서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나이든 영감에게 끌리는 것들도 있지 않겠어요 🙂 건데요, 인간이 이게 안되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안된다니까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몬시뇰’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지금은 죽은, 그 수퍼맨이 (Christopher Reeve) 주연했던 멋진 영화입니다. 언젠가 이 영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네요. 어쨋던, 죽음을 앞둔 마피아 두목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입니다) 오랜 ‘합법적’ 사업파트너였던 주인공 추기경에게 죽기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부탁합니다. 주인공 추기경은 어렵게 허락을 해요. 이 마피아 두목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짓을 했었던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최근 두 사람의 사업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잠적한 추기경의 부랄친구를 찾아내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서 승락을 합니다. 그때 death bed에서 그 마피아 두목은 추기경의 눈을 마주보며 (이 사람은 눈을 마주보고 했던 모든 약속을, 설령 엄청난 손해가 있었더라도 여태껏 전부 지켰어요) 십자가에 맹세를 합니다. 친구를 죽이지 않겠다고요 그리고는 고백성사를 해요. 장면이 살짝 바뀌면서 이제는 말기암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그 마피아 두목이, 죽기전 마피아 패밀리에 대한 마지막 책임을 (손에 피를 묻히며 배신자를 응징하는 일을) 다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추기경의 친구는 조직원들에 의해서 이미 발각되어 호텔 구석에 몰려 있어요. 그는 추기경과 했던 약속을 되풀이하며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 마피아 두목이 소음권총을 머리에 발사하면서 말합니다 ‘그래 너도 나도 이제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겠구나. 하지만 어쩌겠니…’ 인간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이런 평범한 인간들의 한계와 고통을 (그 속에서 허덕이다가 가는 중생들의 삶을) 그렇게 안타까워 하신 것이겠지요.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