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챔피언 돌아온 탕자

나는 수많은 다른 수학 포기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작은사연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초등학교) 초반 일찌기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린시절 비교적 호기심도 있었고 또 보통머리는 되었지만 ‘왜요?’ 라는 질문을 은근히 던지는 천성과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게으름이 결합되어 학교공부에 특히 수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내가 몹시 싫어하게 되었던 수학은 또한 당연히 나를 몹시 싫어하며 오랫동안 내게 큰 괴로움을 주었었어요. 우리는 몸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릴때는 어떤 (물리적으로) 무서운 상황이 악몽의 내용이었다면 이젠 나이가 드니 악몽도 변화 발전하여(?) 무턱대고 무서운 상황보다는 마치 바늘이 손톱밑을 슬쩍 찌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민감한 내용이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면서 그속에서 정말 현실처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차원 다른 악몽을 꾸게 되네요. 짐작하다시피 내가 어쩌다 꾸는 악몽의 내용은, 미루고 미루며 강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당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수학시험에 그나마 지각조차하여 절망속에서 우왕좌왕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런 것들이랍니다. 수학이란 내게 문자 그대로 악몽이 아닐 수가 없네요 🙂

내가 자신을 챔피언급 수포자로 규정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내겐 비극 친구들에겐 코미디’ 였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야기인즉, 대학신입생 시절 낙제했던 필수수학 과목을 복학후 다시 낙제하여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세번째 시도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사귀던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은 나의 이런 딱하고 한심한 사정을 듣고선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수학과목을 같이 수강하며 나를 도우려고 애썼는데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선 예상문제를 몇개 적어 주었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린’ 엉터리 한글 편지처럼,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수학문제의 해답들을 시험지에 ‘그려냈어요’ 🙂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바라는 성과를 내고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꺼에요. 그런 성공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순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가 어렵겠지요. 물론 그 기간의 길이 또 그 대상의 사회적 인정도에 따라서 10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또 1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하겠지요. 인생이란 어쩌면 그 10과 1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그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챔피언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 수학과목 강사께서는 내가 ‘그려낸’ 엉터리 시험 답안을 이해하지도 또 동정하지도 않았어요. 세번째 낙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그 강사의 댁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분 모친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주셨는데요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짧고 어색한 대화가 오갔어요.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는데요 ‘정상적인 학생이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 젊은 수학자를 설득할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직전학기에 저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수학과목이 없었기 때문에요.’ 곧 자신의 일생을 바칠 그 거룩한 수학에 대해서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는 저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믿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어쨋던 그분이 고맙게도 낙제를 겨우 면하게 해주어 나는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이민도 오게 되었어요. 물론 그때 그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과 함께 왔지요. 언젠가 블로그에 등장했었던 그 보살원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성공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왜?’ 그리고 ‘절실함’ 이 두가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실함’이야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왜?’에 대한 대접 혹은 반응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시절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도시설계 스케치 그리고 도면작성에 열을 올릴때 나는 ‘왜 저렇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태동기였던 CAD를 (컴퓨터로 설계도를 만들어 내는 기술) 독학으로 익히게 되었어요. 내 ‘왜?’의 흔적은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CAD를 활용한 도시설계 프로젝트였을 인천 ‘시화(시흥)공업단지’에 남아 있어요. 무슨 인간 승리나 대단한 성취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해답이 한때 세상과 맞물려 거둔 작은 성공의 예로써 해본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조봉한 박사라는 유명한 수학자를 알게 되었어요. 이분은 수학박사인 자신의 딸이 수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선 충격을 받아 초등생 딸을 수렁에서 건져내고서(?) 수학교육사업을 시작하게된 인공지능 전문가 입니다. 이분이 수학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과도 달라 보입니다. 학교측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몇시간씩 평범한 초등학생들에게 서너달 수학을 가르쳤는데요, 이들과 서울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같은 문제를 내어주고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간에 해답을 찾는가 보여주는 짧은 도큐맨트리를 보고선 나도 몹시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 수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초등학생들은 미분적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배우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원리를 배워 꽤뚫고 나서 몇가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그 똑똑한 대학생 형들과 언니들이 엄청난 공식들을 쏟아부어 풀어낸 문제들을 똑같이 풀어 냅니다. 더 빨리. 물론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또 위험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수학자가 부르짖고 또 그 초등학생들이 증명한 것은, 수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부딪치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컴퓨터나 계산기가 할수없는) 인간고유의 정신활동이지, 누군가 이미 찾아 놓은 (공식이라며 존재하는) 해답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워서 출제된 시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내와 저녁때 잠시 수학 이야기를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가 비록 좋은 수학 성적은 받았었지만 (그때 함께 수강했던 수학과목에서도 A를 맞았었어요) 사실은 나는 수학이라는 것 차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아마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공부했던 수학을 전부 잊어버렸지 싶어요.’ 이렇게 아내가 말했어요.

수포자 챔피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대도 나처럼 수학의 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나요?’ 당신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던 공식들을 더 많이 외워 더 빠르게 적용시킨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삶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점점 깨닫고 있지 않나요? 그 수학 덕분에 성공한 삶을 살면서 그대에게 얼마나 그 공식들의 인이 박히게 되었을까요?

내 삶을 통털어 지금처럼 수학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적은 일찌기 없었어요 (써놓고도 ‘어머 놀래라’) 🙂 나는 다시 수학책을 펴렵니다. 내겐 그야말로 돌아온 탕자(?) 입니다. 노스텔지어 일지도 모르겠고 또 아내말처럼 (꼬박꼬박 차려 주었더니) 배가 불러 별짓을 다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때 호기심 많고 ‘왜?’ 라고 물었던 어린 나는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수학선생님이 되어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얘야 왜라고 물었었니?’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김범석 의사선생님의 훌륭한 책에 나온 작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중에서 선생께 ‘십년만 더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간절히 말했던 분이 있었다고 해요. ‘십년 더 사시면 무었을 하실 계획이세요’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간말종 변호사

혹시 이사람 누군지 아세요? 루디 줄리아니라는 미국변호사인데요 뭐하는 사진일까요?

이 사람은 일전에 말한 그 인간말종의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선거소송들을 대리하는 미국에서는 매우 알려진 변호사랍니다. 얼마전에 언론들을 모아놓고 부정선거소송에 관한 모종의 중대발표를 한답시고 인터뷰를 자처했었는데요, 그 물에 그 밥이라고, 그 인간말종과 똑같이 아무런 내용도 없는 황당한 인터뷰였다고 하네요. 아마 그때 머리에 발랐던 염색약이 땀에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별로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닌데 더욱 괴이한 모습이 되었군요 🙂

그저께는 하원의원들이 모인 어떤 청문회에 답변을 하러 갔는데, 생방송 중에 2차례에 걸쳐 방귀를 끼는 소리가 생생히 전파를 탓다는 소식도 있군요. 참 가지가지 하네요 그리고 말년에 도대체 왜 저렇게 살까 싶지요?

그런데 혹시 아세요 이 사람 루디 줄리아니는 오래전 뉴욕시장이었어요. 그때 9.11 이라고 미국이 큰 테러 공격을 당했을때 이 사람은 시장으로서 아주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당시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중 한명이었다고 해요. 어느정도였었나 하면, 이 사람이 뉴욕의 식당에 식사를 하러 들어가면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멈추지를 않았었다고 해요. 상상이 됩니까?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어쩌면 가장 큰 명예를 아마도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정당하게 획득해서 누렸던 것이 아니었던가 해요. 멋진 사람이었지요?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왜 그 인간말종이나 대변하며 이런 개망신을 당하면서 다니는 것일까요? 두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네요.

이 사람은 뉴욕시장 이후에 상원의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요. 미국 상원의원은 정말 엄청난 명예와 권력의 자리입니다. 숫자도 몇명 안되요.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루디 줄리아니는 그 인간말종 편에 섰어요. 그러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나이를 먹어 노망이 난 것이지요. 더 이상 가지 말아야 할 곳과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이제는 구분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과거의 영광이 그립겠지요. 하지만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기립박수가 멈추지를 않았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간 오랜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따라 이미 이리저리 오고 갔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그때 그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겠지요. 그렇기에 내려오지를 못하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그 인간말종 편에 서서, 어쩌면 4년 후에 다시 한번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서 미친 짓을 하고 있지 싶네요. 4년 후에 그 인간말종은 감옥에 있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데요.

여담이지만, 영미권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또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한국의 식자들과 언론들이 (미국서 힘들게 따오신 박사학위? 이방면에는 별 소용 없지 싶은데요…) 그 인간말종의 황당무계한 부정선거 발언에 마치 무슨 진실이 담겨 있거나 혹은 어떤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선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가 없었어요.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지 자발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저 미국 신문 잡지 이곳 저곳에 난 선정적인 기사들을 옮기는 수준인 듯한 모습을 보면서, 몇년 전에 그 인간말종과 김정은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서로를 협박하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 났어요. 당시 나는 한국방문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의 주류 언론뿐만 아니라, 그 주류언론에 의견과 정보를 제공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매일 읽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었어요. 미국에도 한반도 정세에 매우 정통한 교수들이나 소수 언론 매체들이 있어요. 그때도 그저 미국 주류 언론에 난 선정적인 기사들을 이것 저것 뽑아 번역하거나 인용하는 수준의 한국 언론들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인재가 없고 자원이 없나’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차차 깨닫게 되었어요 ‘어떤 종류의 정보나 분석은, 그야말로 오래오래 그속에 살아서 그들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요. 나 잘났다 소리처럼 들린다고요? 그런 의사는 없었지만 그렇게 들렸다면 쏘리 🙂

두어가지 덧붙이는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첫번째는, 나이가 들면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한발을 들고서 양말을 신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니까요.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혹시 내가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대답이 불분명하면 일단 중지 하는 것이 좋겠지요. 유명한 재벌이나, 정치가 혹은 스타 변호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해당되고 말고요. 최근 사망한 유명한 재벌, 일전에 블로그에도 한두차례 비극적으로 등장했던 그 사람도 자신이 가졌던 그 엄청난 돈으로 ‘내가 내 스스로의 삶에 균형을 더 잡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필요한 시간이나 공간을 사면서) 살고 있는가’ 자문할 능력이 참으로 있었다면, 어쩌면 더 멋지고 존경받는 모습으로 아직도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두번째는, 우리 아이가 어릴때 쓰던 표현에 따르면 ‘올라간 모든 것은 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 붓다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으뜸인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어쩌면 루디 줄리아니도 그저 모든것을 내려놓고 좋은 곳에 가서 올리브 농사나 지으며 평온하게 살다 죽게 될지도 모르지 싶네요. 누가 알아요 젊은뇬들 중에서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나이든 영감에게 끌리는 것들도 있지 않겠어요 🙂 건데요, 인간이 이게 안되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안된다니까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몬시뇰’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지금은 죽은, 그 수퍼맨이 (Christopher Reeve) 주연했던 멋진 영화입니다. 언젠가 이 영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네요. 어쨋던, 죽음을 앞둔 마피아 두목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입니다) 오랜 ‘합법적’ 사업파트너였던 주인공 추기경에게 죽기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부탁합니다. 주인공 추기경은 어렵게 허락을 해요. 이 마피아 두목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짓을 했었던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최근 두 사람의 사업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잠적한 추기경의 부랄친구를 찾아내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서 승락을 합니다. 그때 death bed에서 그 마피아 두목은 추기경의 눈을 마주보며 (이 사람은 눈을 마주보고 했던 모든 약속을, 설령 엄청난 손해가 있었더라도 여태껏 전부 지켰어요) 십자가에 맹세를 합니다. 친구를 죽이지 않겠다고요 그리고는 고백성사를 해요. 장면이 살짝 바뀌면서 이제는 말기암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그 마피아 두목이, 죽기전 마피아 패밀리에 대한 마지막 책임을 (손에 피를 묻히며 배신자를 응징하는 일을) 다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추기경의 친구는 조직원들에 의해서 이미 발각되어 호텔 구석에 몰려 있어요. 그는 추기경과 했던 약속을 되풀이하며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 마피아 두목이 소음권총을 머리에 발사하면서 말합니다 ‘그래 너도 나도 이제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겠구나. 하지만 어쩌겠니…’ 인간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이런 평범한 인간들의 한계와 고통을 (그 속에서 허덕이다가 가는 중생들의 삶을) 그렇게 안타까워 하신 것이겠지요. 오늘은 이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많은 제약회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미친듯이 개발하고 있어요. 상업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거대 제약회사로서 인류에 대한 책무를 다한다는 측면도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전 글에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가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자선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분도 빨리 효과적인 백신이 만들어져서 싼값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급될 수가 있도록, 큰 돈을 기부하여 백신을 몇천원 수준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분이 지난 몇달간 효과적인 백신을 가장 빨리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 제약회사로 지속적으로 언급해 온 회사는 우리도 들어본 ‘화이자’라는 제약회사 입니다.

오늘 이 화이자 제약회사에서, 90%에 가까운 매우 놀라운 효과를 보이는 백신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는 발표를 했어요. 여러분이 혹시 아실지도 모르지만 빌 게이츠는 그동안 곧 백악관에서 쫒겨날 ‘노랑머리 인간말종’이 미국 전체에게 큰 화를 초래하는 무책임한 짓들을 하는데에 반대해 왔어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매우 잘못된 대응을 여러차례 직접적으로 질타했어요. 한 신문에서 오늘 화이자의 백신발표를 언급하면서 ‘참으로 오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가 없다’고 했어요. 백신개발이 며칠안에 되는 것이 아니니 아마 일주일 전에 발표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상상이 되나요?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존 멕케인은 미국 ‘아리주나’주의 상원의원이었어요. 해군제독의 (아마 4스타) 아들이며 젊은 시절에는 공군에서 유명한 ‘문제아 파일럿’이었다고 해요.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비행기를 사고로 불태워 먹었다던가 항공모함에서 출격하기 전에 ‘우연히’ 미사일을 함상에서 발사한다던가 그런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근래에 암으로 사망한 이분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던 용감한 미국의 군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인들이 군인과 경찰의 노고에 얼마나 감사하며, 특히 참전 군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여러분들도 알고 있나요? 어디서든 줄을 서 있는 군인들을 가장 앞으로 보내서 편의를 봐주는 것은 미국에서는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합니다.

존 맥케인은 북베트남 상공에서 피격당해 낙하산 탈출을 합니다. 뼈가 심하게 부러진 채로 붙잡혀 북베트남군 병원을 거쳐 감옥에서 수년간 갖혀 있었어요. 이 사람이 누구의 아들인지 아는 북베트남군들이 가만히 두었겠어요? 물론 몽둥이로 패거나 고문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온갖 방법으로 절망감과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기들이 시키는데로 하도록 만들었겠지요. 지금도 존재하는 비데오를 보면 이 사람이 병원에서 붕대에 칭칭 감긴채로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약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전쟁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강제로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요. 전쟁이 끝나고 이 분도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되돌아 왔어요. 미국은 이 사람을 ‘화냥년’ 대접하며 천대하기는 커녕 나라에 봉사한 참전 영웅으로 대접합니다. 그래서 정계에 진출하여 상원의원도 오래하고 대통령 후보도 되었었지요.

이야기가 옆길로 좀 세는데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되었지만 예전에는 처신이 좋지 않은 여자를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 화냥년이라고도 표현했었어요. 이 표현의 어원은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이 많은 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쳤는데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어떻게 고향으로 되돌아 왔을때 (‘환향녀’ 즉 고향으로 되돌아온 여자) 우리 조상님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더러운 여자라고 그렇게 천대를 했다고 해요. 임금까지 나서서 그들이 우물에 목욕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기만 하면 차별하지 말고 대해주라고 했는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지요. 이 표현의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후로 살펴보건데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그녀들이 자기 발로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나라에 갔나요? 누가 그 처녀들을 짱께들에게 붙들려가게 만들었나요? 아마도 이런 못난 남자들의 전통이 유구하게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자기는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며 지랄을 떠는 넘들이, 바로 헬조선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당신과 나는 예외겠지요 🙂

다시 그 인간말종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자는 군대를 가지 않았어요. 베트남전쟁때 (무작위 추첨을 통한) 강제징집을 교묘한 방법으로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라를 위해서 한번도 총을 잡아보지 않은 자가 참전 조종사였던 존 맥케인에게 ‘포로로 잡혔던 군인에게 무슨 명예가 있는가’ 이런식의 극히 모욕적이고 치명적인 악담을 합니다. 당연히 존 맥케인의 장례식에도 초대를 받지 못해요. 두 사람은 같은 정당 소속의 정치인들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존 맥케인의 부인은 여러차례 직간접적으로 (반대 정당의)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표현을 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 존 맥케인이 상원의원을 오래 했던 이 아리조나 주에서, 인간말종이 쉽게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던 그곳에서, 근소한 표차이로 바이든이 승리 합니다. ‘죽은 존 맥케인이 산 트럼프를 작살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존 루이스는 흑인 인권운동을 오래 했던 존경받는 하원의원이었습니다. ‘조지아’라는, 짐작컨데 옛날 흑인 노예들이 목화를 땃던 그런 미국 남부 주의 (state) 하원의원을 수십년 지내다가 근래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이 사람도 존 맥케인처럼 자기 주에서는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이 사람이 죽었을때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그 인간말종에게 언론들이 인터뷰를 했어요. ‘이분의 죽음과 업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몰라.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뭘 믿겠어?’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언론들이 다시 물었어요 ‘흑인들의 인권신장에 근래에 가장 기여한 분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은 존 루이스를 떠올렸겠지요. 그 인간말종이 대답했어요 ‘응… 나. 내가 흑인들의 인권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기고 있지’. 이 언론의 인터뷰는 많은 미국인들의 공분을 샀어요. 특히 죽은 존 루이스의 고향인 조지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상상할 수 있겠지요. 미국 대통령 투표결과가 발표되었는데요, 보수적인 조지아 주에서도 그 인간말종은 근소한 차이로 바이든 후보에게 지고 맙니다. 역시 ‘죽은 존 루이스가 산 트럼프를 작살냈다’는 기사가 뜹니다.

당신과 나도 여태껏 살면서 비록 그 정도나 횟수는 다를지언정 얼마나 이와 비슷한 짓들을 했었을까요? 내가 언제 원수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었던지 또 내가 어떻게 앙갚음을 당했었던지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보복은 있었으되 어리석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던 언행의 결과는 부매랑처럼 언젠가는 그리고 어떤 형태로건 내 자신에게 되돌아 옵니다. 그것이 남들에게 했던 것이건 자신에게 했던 것이건 혹은 무었이었건 말이예요. 오늘 밧줄을 얽히고설키게 만들면 언젠가 그것에 내가 걸려 크게 넘어지는 순간이 올꺼예요. 그 순간은 내가 예상하지도 또 원하지도 않는 때일 것이며,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너무 늦겠지요. 지금 덜 얽히고설키게 만들며 또 하나라도 더 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이미 수천년 전에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어요.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다른 삶

2주전 국민투표와 함께 실시되었던, 안락사와 대마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물었던 투표 결과가 방금 발표되었다.

안락사는 65%의 지지를 받아 12개월 이내로 법으로 제정된다고 한다. 아무나 죽겠다면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다수의 의사가 동의하는 6개월 미만의 생존 가능성 밖에는 없는 사람이 적법한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대마초는(마리화나) 안타깝게도(?) 46%의 찬성만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불법으로 여전히 남게 되었다.

최근에 김의신박사의 ‘암 걸리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법’ 주제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분은 단지 세계적인 암전문가로서 좋은 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 최고의 암병원에서 오랜 기간동안 (대부분 다른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다가 안되서 온) 수많은 미국인 암환자들과 또한 돈 보따리를 들고 (치료비가 엄청남) 태평양을 건너 그 병원을 찾은 수많은 부자 한국인 암환자들이, ‘암’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판이한 태도와 자세를 보이는지에 대한 사회인류학적인(?) 고찰을 또한 나누는 내용이라 내겐 큰 흥미가 있었다. 이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수십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나도 이분이 묘사하는 (부족하고 부끄러운) 한국인의 태도와 자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아직 시간이 좀 있을때 자각을 하고서 무언가 개선과 발전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강연은 십여년 전에 촬영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현재에도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신문에 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관련 기사를 보고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540페이지 논문을 대략 읽어 보았는데, 영미권국가들과 공통된 내용들도 물론 있었지만 몇가지 특이한, 다시 말해서 김의신박사가 말씀한 (암과 죽음에 관련하여 미국인들과 비교할때) 한국인들이 보이는 특이한 태도와 일맥상통하거나 어떤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급한다.

일전에 하버드대학교 연구결과를 (‘돈 잘 쓰는법 ‘연구하여 책으로도 발간된 논문) 언급한 글에서도 나왔듯이 이 나라를 비롯한 영미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들은 ‘경험’이나 (자기계발) ‘이타행’과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면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것) 관련된 것들이 상위에 랭크 되는데 반하여, 이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이러한 ‘경험’ ‘개인의 발전’ ‘이타행’ 같은 분야에는 관심이 없고 또한 이런 것들이 자신의 행복을 증신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영미권과 거의 동등한 상위 20%의 부유한 한국인들 조차도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김의신박사의 강연과 이 논문의 (신문기사의) 내용을 동시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우리들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단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동일한 조사를 중국이나 인도 그리고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것 같은가?

[가장 중요한 내용을 요약한 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논문이니 결과에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굳어지면 죽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소위 말하는 클리세인가?

시작하기전에 일단 한마디 하자면, 어떤 사람이 말했다더만 ‘If common sense is that common, why is it so hard to see it?’ ‘상식이 정말 상식이라면 왜 그렇게 상식을 보기가 어려우냐?’.

요즘 드는 생각이, 세상 사람들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아는 것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이런식으로 좀 객관적으로 단순하고 명확히 구분된다면 얼마나 인생이 더 쉽고 덜 복잡하겠는가 싶다.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섞여 있고,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아는지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절대적으로 틀리거나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은 드물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얼마만큼 맞고 얼마만큼은 잘 모르겠고 (혹은 틀리고)’를 좀 객관적으로 심사숙고하기 보다는 (이것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속에서 오직 자기가 보기에 맞는 부분만을 내세우는데’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틀린 생각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내서 말하면.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딱 때어낸 주장만을 보자면… 이러니 세상이 쉽지 않고 복잡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러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하는 생각이나 주장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덧붙이는 두가지 가르침은, (지금 나의) ‘생각이나 주장은 변한다는 것’과 또 ‘자기 자신이라고 (자아, ego) 그렇게 움켜지고 주장할 그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정말?

다시 굳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되돌아 가보자. 최근 신문에서 읽은 내용중에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것은 고집과 불만이고, 줄어드는 것은 웃음과 인사’라는 말이 있었다. 고집과 불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자기 주장’을 적당한 상황에 적절히 하는 센스를 점점 잃음과 동시에, 그것의 절대적인 양이 많아지니 배우자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똥고집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2차적인 반응이 불만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자기생각 자기주장은 나이가 들면 점점 많아지게 되어 있다. 마치 주름살이나 뱃살처럼. 가만히 두면 저절로 쌓이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자아, ego’ 아닌가? 그것의 표출이 고집이고 불만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어렴풋이 깨달아도 그것과는 상반 힘이 (세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별 소용없이 무너지며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머리만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heart & soul이 (영혼이) 동시에 굳어지는 모습이, 고집과 불만이라는 것을 우리들 모두가 자각하기를 바란다.

몸이 굳어지는 것도 막기 어렵고 또한 위험한 일이지만, 머리와 영혼이 굳어지는 것은 더욱 막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남들도 얼마나 굳어지고 있는지 또 이미 얼마나 굳어졌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고, 종종 굳어지지 않은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에 집중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확신하면 위험하다. ‘이래도 되는가?’ ‘이것이 맞는가?’ 늘 좀 불안해하면서 궁금해하고 또 자연스레 비교도 하고 검증도 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더 낫다. 그러면 굳어지기 어렵다.

그런데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불안한 부드러움 보다는 덜 불안한 굳어짐쪽으로 자꾸 가면서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래도 저래도 좀 안되는 것 처럼 보이지 않나? 그래서 붓다께서는 만족스럽고 여한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하신것이지 싶다.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라고 가르치셨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