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당연한 것들

당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은 무었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한번이라도 따로 생각해 본적조차 아마 없었을테니까. 그래야 또 정말 당연한 것인거고. 이번 기회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지.

당신 개인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가족에게도 또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따로 생각조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그야말로 당연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당신이 자라나서 몸담은 사회나 혹은 나라에서도 너무나 당연해서 논의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수십년전 내가 잠시 몸담았던 회사에서, 몇해전부터 우연히 일하게 된 우리아이는 종종 회사주변 바닷가를 점심시간에 달린다고 한다. 지난날 나도 수백번은 족히 달렸던 그 아름다운 바닷가를. 한번도 보여준 적도 이야기를 한적도 없었지 싶은데, 이십년 세월이 흘러 아빠의 족적이 가득한 그곳에 아들의 족적이 겹쳐지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자라날때 우리가족에게 당연했던 것들은 과연 무었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때 나는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매년 그리고 오래 참가했었다. 항상 가족과 함께 갔었다. 그때 아기였던 아이의 눈에 아빠가 산천을 달리며 연습을 하고 또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 멀리 갔다가 한참만에 다시 나타나는 모습들이 반복되어 각인되었지 싶다. 한번은 마라톤을 완주하던 마지막 구간을, 결승선 근처에서 엄마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아이를 불러내 손을 잡고 같이 결승선을 통과했던 적도 있었다. 일부러 무었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자연스레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우리집에서는,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짧은 빤스를 입고 비슷하게 차려입은 다른 무리들과 산천을 그리고 도시의 아름다운 길들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이 ‘그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장성하고나서, 아빠가 했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그것을 자기도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친구분 딸에게 조언을 했던 적이 있다. 키도 크고 눈도 큰 사람들이 (내가) 말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처음에는 위압감을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맞짱을 뜰 자격과 능력이 되기에 그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항상 맞짱을 뜨고 맞먹는다는 마음을 가져라.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맞짱을 뜨고 맞먹게 될테고 그때는 맞짱을 뜬다 맞먹는다 그런 생각조차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런 수준이 되어야 ‘정말로’ 맞짱을 뜰수가 있다. 이런 비슷한 말이었지 싶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던 그 공부 잘한다던 젊은이는 지금 그넘들과 맞짱을 ‘정말’ 뜨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졸리는 눈까풀이라던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은 무었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자기를 정확히 보고 아는 것’도 그중 하나지 싶다.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등 집단속에서 배우며 성장한 구성원이, 그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것들을 넘어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고 또 안다는 것은 극히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교공부나 머리로만 이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상당한 경험으로 여러차례 확인 하였다. 골프를 쳐보면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지? 나는 어쩌다 괜찮은 골프장 회원이 되어, 오선의원 + 장관 + 박사 한꺼번에 한 사람, 육참총장, 국제기업 사장, 의사나 박사는 수도 없이 (은퇴한 사람들 포함) 같이 라운드를 해보고선 깨달은 것이 많다. 후진 삶을 살면서 카르마가 쌓인 넘도 보았지만, 동시에 수십년 지역에 의료봉사를 했던 의사가 그렇게 좋은 일은 하고서도 카르마를 쌓은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세상을 그리고 상대하는 사람들을 시도때도 없이 자기 병원에 찾아온 환자 취급하는 버릇에 인이 밖혔더란 말이다 🙂 그 카르마와 이고로 말미암아 장차 노년에 괴로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이 되더라.

골프를 치면서, 지위고하 성공여부를 막론하고 적어도 그 시간 그 장소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때로 어리석고 쪼잔한 중년들과 노인들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더라. 그리고 아주 지능적으로 속이는 정말 나쁘고 위험한 넘도 보았다. 아빠 따라온 어린 인디언 소년과 클럽에서 주최한 매치플레이를 하는데, 우연을 가장하여 최악의 벙커 라이를 멀쩡하게 개선한 뒤에 벙커샷을 하여 그 홀을 이기고선 결국은 매치플레이에서도 승리하는 꼴을 감명깊게 보면서 인간과 인생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존 지사장이라는 그넘에게는 무었이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게는 또 무었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또 당신에게는?

심사숙고할 주제가 아닐 수가 없다.

쪼르륵 소리 억울한 마음

지구의 자전시간이 늘 24시간은 아니었고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배워서 일게 되었다. 지구가 탄생했던 아주 오래 전에는 하루가 5시간 정도였었고 (자전주기가 5시간) 그만큼 시간이 더 흐른 먼 미래에는 하루가 1천 시간이 넘을 것이라고 하더라. 우리의 인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가 🙂

한국어와 영어가 다른 줄이야 누구나 알겠지만 혹시 생각해 본적이 있나 한국어에 있고 또 흔히 사용되는 어떤 단어가 영어에는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물건을 지칭하는 단어말고 어떤 상황이나 느낌 혹은 생각을 지칭하는 단어중에서 말이다 (다시말해 그 언어의 배경인 문화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골프를 치다보면 2가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번째야 물론 자신이 좋은 샷을 쳤을때 느끼는 즐거움이겠고, 두번째는 동반자가 나쁜 샷을 쳣을때 ‘은근히 느끼는 일종의’ 즐거움 혹은 기쁨이 있다. 이런 두번째 상황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기쁨을 한마디로 정확히 표현하는 한국어 단어는 없지 싶다. 그런데 독일어에는 있다. Schadenfreude 라는 단어가 정확히 그런 (야비한) 즐거움과 기쁨을 의미한다.

이곳에 오래 살면서 동일한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혹은 영어 표현을 찾아보려고 가장 많이 애를 써보았던 한국어가 ‘억울하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다못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아이에게까지 (아빠 닮아 공부는 못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나왔다) 상세하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상황 예까지 들면서 설명을 해봐도 고개만 갸우뚱거리다가 우리도 아는 일반적인 영어 단어를 나열하지, 위에서 예로 들었던 독일어 Schadenfreude 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억울함’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나 표현은 말하지 못하더라. 아마 없지 싶다.

살 좀 덜 찌고 더 건강 장수 하려면 배에서 나는 ‘쪼로록’ 소리와 가까워지면 된다고 많은 유식한 사람들이 말하더라. 평온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려면 머리에 떠오르는 ‘억울한’ 마음과 가까워지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까워진다는 의미는, 부드럽게 대하여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내치거나 난폭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억울함은 반드시 풀어야만 (상대에게 표현하고 전달하여 내가 아닌 그를 바꿈으로써) 속이 시원해지고 그래야만 결과적으로 내게 행복이나 이익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어에 ‘억울함’을 표현하는 단어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근거없이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착각 아닐까?

영어에는, 한국어처럼 문장 끝을 변형시켜 같은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존대 하대를 실어서 표현하는 것이 없다. 예의 바른 우리 아이도 엄마 아빠한테 ‘헬로’ 라고 하지 ‘헬로까’ 혹은 ‘헬로세요’ 하지 않는다 🙂 ‘억울함’에는 ‘당했다’는 일종의 수동적인 태도와 ‘상하관계’에서 자신이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받아들이는 자세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내게 무언가 잘못을 해도 나는 ‘기분이 나쁘고 성이나지’ (영어 표현에 모두 있다) 아이에게 내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더 배운 사람, 더 높은 사람, 더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항상 저절로 상하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 싶다. 아니 그런 것들이 항상 저절로 상하관계를 만들도록 내 마음에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는 안되지 싶다.

영어를 모국어로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우리 아이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도대체 그 의미조차도 모르는, 하지만 한국인인 그대와 내게는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철썩 붙어 있는, 이 ‘억울함’ 이라는 마음. 그런 기분이나 감정이 들때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자. 무의식 중에 자기 스스로를 ‘당하는 입장’ 그리고 ‘아래인 입장’으로 항상 저절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 유사한 결과나 상황에 처해져서 기분이 나쁘고 성이 나도, 내가 ‘주는 입장’이었다면 (‘저지른’ 입장이었다면) 그리고 서로가 ‘동등한 입장’이었다면 억울한 마음은 없지 않을까? 언어와 문화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구성원들의 생각을 규정 짓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스스로를, 자기도 모르게 구속하고 규정 짓는지도 모른다.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도 위험하고 좋지 않은 카르마를 잉태할 가능성이 있지만, ‘억울한’ 감정이 개입될때 그것이 불러올 위험과 카르마는 아마도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mindfulness 란 어쩌면 이런 것들을 좀 깨닫고 생각해보고 또 조금이나마 자신의 삶에 실천으로 옮겨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해탈이 뭐 별거겠나?

뒤죽박죽 인간 엉망진창 인생

한 이십년 전에 어떤 가족에게 은혜를 (?)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한국인 종교모임에 속하여 자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놀았었는데 (?)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었다. 서로 의지가 되기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민와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찌그러진 상황에서, 에헴 소리도 어쩌다 서로 좀 내보면서 그리운 한국의 맛도 (?) 보고 그랬었다.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며 놀던 한 가족이 한국으로 급히 귀국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부인이 남아 집을 팔고 다른 정리를 마치고 뒤따를 계획이었다.

집은 빨리 안팔리고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이웃중에 변태성욕자가 있어 여자 혼자 사는 줄 알게 되면서 빨래줄에 널어둔 속옷이 자꾸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집 뒷쪽 문들을 드라이버로 쑤셔서 강제로 열고 침입하려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지난날 웃으며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불렀던 나를, 그 부인이 직장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집을 팔고 차를 팔아 송금하겠으니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한국으로 즉시 귀국하라고 하였다. 변호사를 찾아가 법정대리인 절차를 밟은 후, 복도에 알람을 설치하고 몽둥이를 침대머리에 두고서 그 집에서 한두달을 살았다. 오래 안팔렸던 집을 팔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서 집을 씻어내고, 실내를 꾸미고 잔디를 깍아야 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부동산업자들을 연일 상대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집을 팔았다. 그리고 내 차도 아마 그렇게 못했을텐데, 그 사람들 차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이 그 차를 샀었던 딜러에게 찾아가 부족한 영어로 사정하여 팔았다. 집도 차도 예상보다 나은 가격에 팔게 되어 기뻣다.

그 여자의 오빠들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툭 내려와서 돈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내게 말하였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가 같은 도시에 살았는데? 골프 치시느라 너무 바쁘셨구나. 존경스러운 그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해주고 나는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 변태는 늘어진 내 사각빤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몽둥이도 다행히 사용되지 않았다.

그 내외는 나를 잘 알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알았었다. 나는 한장의 편지, 한통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은혜를 입었다. 참으로 고맙다’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 한번이면 난 충분했었을 것이다. 웃으며 작별했었을 것이다. 어차피 떠난 사람들이었고 이미 인연이 다한 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외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여 했던 적선이었다. 아무런 (물질적인)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내 주소도 알고 전화번호도 알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장의 편지, 한번의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고 이곳으로 귀국하는 (관련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선교사 편에 몇가지 물건을 사서 보냈다. 우리 집을 찾아서 그 물건을 전달하던 선교사가 우리 내외에게 말했다 ‘이런 물건들을 전달하게 되어 나는 유감스럽다. 나라면 결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가까운 시장에서 급히 이것저것 보이는데로 사서 넣었던 모양새였다. 물론 사는게 바빳겠지. 귀국하니 힘들었겠지. 그리고 고맙긴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편치 않은 상대에게 어색한 표현을 굳이 하기도 어려워서 차일피일 했었겠지. 나도 차차 살면서 깨닫는데, 흉내 내기는 쉽지만 참으로 사람 노릇하기는 (비록 소소한 상황에서 조차도) 정말 쉽지 않더라.

세월이 흘러서, 그때 그일이 있어났을 당시에 (내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던, 그 소위 형제 자매들과 이 부부가 한국에서 서로 오가며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것을 들었을때 생겨났던 내 마음의 소용돌이를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 난 뭐냐? 도대체 내가 뭘 한거지? 원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가?’ 그 격한 감정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마도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인연은 오묘하게 오가는 것이다. 굳이 내가 받은 상이 (?)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는 하찮은 상이 아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이며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원한도 실망도 별로 없이 지난 그 일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나 역시 예외없이 뒤죽박죽이었고 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좋아하겠나? 하지만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그 실체는 변하지 않고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현명한 스승이 말하였다. 십년 이십년을 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발전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보여 절망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와서, 무슨 호르몬 변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차차 쉬운 상황에서나마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을 좀 더 보게 된다. 내 자신도 흠칫 놀란다. 한편으로는 믿기지도 않고 의구심도 든다. 이래봤자 크고 엄청난 상황에 부닥치면 한방에 훅 날아간다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은근이 올라온다 ‘사람이 백날에 아흔 아홉날은 그저 소소한 것들로 마음을 끓이며 놓았다 들었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데, 백날에 하루 왕창 깨질지 몰라도 아흔 아홉날 나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인간이 뒤죽박죽이고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참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부와 가족들, 아이들도 이제 장성했겠지. 잘 살길 바란다. 서로 마주보며 과거사를 들추어 누가 무었을 했었고 무었을 하지 않았었던가를 따지며 어리석게 엮이지 않는한,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싶다. 용서? 누가 뭘 용서 하겠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나도 마이 바다 무따 아이가. 좀 되돌려 준 것뿐. 아마도 플러스 마이너스 0 이 되었지 싶다.

작년에 내가 집안에 큰 일을 당하고 나서 ‘짐작하고 알면서도 결국은 침묵했었던’ 한때 ‘친구’라 불렀던 그 인간들에게도, 그 부부 그리고 그때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함께 먹고 마시던 그 사람들에게 옛날에 내가 가졌던 그런 감정이 생겨났었다. 더 이상 ‘친구’라 부르지 않으니, 집에서도 무어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 불편할 때가 어쩌다 있다. ‘그 인간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대충 알아 듣는 듯 🙂

이번에는 십년 세월이 흐르지 않고서도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다. 친구라 부르기 싫으면 이름을 그냥 부르면 되지 않겠나 🙂 그리고 그들이 비록, 내가 궁지에 몰릴때 몽둥이 들고 자면서 집과 차를 대신 팔아주진 않을 사람들이지만, 전화 한통 편지 한장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고 한결같이 바쁜 사람들이지만, 그나마 좋은 시절에 꽃놀이는 어울려서 다닐 수 있지 않겠나? 전에도 함께 먹고 마시며 놀았으니 다음에 만나도 그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또 먹고 마시며 꽃놀이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나? 혐오의 마음이나 감추거나 누르는 감정은 별로 없다. 인간이 그러하기에, 사는 것이 원래 이 꼴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기에. 또 나도 꽃놀이 좀 어울려 다니고 싶기에 🙂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좀 더 들리고 더 보이게 된다. 반대로 일단 받아들이지 않고 장막을 쳐버리면 들어야 할 것도 안들리고 봐야 할 것도 안보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막히고 단절되어 양쪽 모두 크게 잃게 된다. 상대방이나 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블링블링? 엉망진창?

어제 이야기 했던 티비드라마 ‘결혼계약’에서 주인공 혜수씨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직전에 묻는 말이 있어요. (나의 병으로) 앞으로 나는 ‘엉망진창’이 될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묻습니다.

엉망의 ‘엉’은 큰 숫자를 의미하는 ‘억’이 변화된 것이에요. 그리고 ‘망’은 그물이라는 뜻인데요,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 그물처럼’ 이런 의미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물이 엄청나게 많이 얽히고 섥히면 그 겉으로 드러난 (표면의) 모습은 어떨까요? 몹시 우둘투둘하고 보기에 징그럽겠지요. 진창은 천연두나 종기의 자국 혹은 흉터를 의미합니다. 네 글자를 합친 의미는, 천연두나 종기의 흉터가 마치 수없이 많은 그물 모양처럼 피부를 징그럽게 뒤덮은 꼴 이런 정도입니다. 징그럽고 보기싫고 무섭고 괴롭고 가까이 하기싫고 아무도 원치않는 그런 꼴이 바로 ‘엉망진창’입니다.

오래 떠나 살면서 한국어가 변화하고 변천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로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의미도 알수 없는 단어들을 사람들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새롭게 듣게된 단어는 ‘블링블링’ 입니다. 물론 한국어는 아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인 듯 합니다. 알아보니 자마이카 출신의 어떤 래퍼가 (가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퍼져, 한국뿐만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슬랭처럼 사용되는 듯 합니다. 한국어 ‘반짝반짝’과 대응하는 자마이카 말인듯 하네요.

그대에게 삶은 ‘블링블링’ 인가요 ‘엉망진창’ 인가요? 아니면 지금은 엉망진창인 느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블링블링을 꿈꾸며 살고 있나요?

붓다께서는 삶은 ‘두카’라고 하셨어요. 짱께들이 ‘고’ 즉 괴로움이라 번역하였고, 코쟁이들도 ‘suffering’ 역시 ‘괴로움 혹은 고통’이라고 번역하였는데요, 사실은 둘 다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두카’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는’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다시말해 ‘항상 불만족스럽고 늘 불완전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셨습니다. 목이 정말 마를때 시원한 물을 들이키면 행복해지나요? 갈증이라는 일종의 괴로움이 사라짐은 분명하고 잠시 어떤 기분 좋음이 (행복이라고 굳이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금새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다음번 목마름’ 뿐이 아니겠어요? 마시고 돌아서면 또 마셔야 하고, 잠시 기분이 좋더만 돌아서고 나면 잘 해야 본전 아니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바로 이러한 우리 인생의 ‘멈추지 않는 갈증과 그것이 끝없이 빙글빙글 도는 윤회’를 표현하신 말이 ‘두카’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런 두카에서 해방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예를 들자면) 목이 마를때 마신 물이 주는 그 쾌감 혹은 일종의 행복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아니면 한번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는 목마름이 애초에 생기지 조차 않는 상태? 하지만 이런 상태들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함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혹은 제정신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겠어요? 목마름이라는 예를 떠나서 다른 어떤 것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도 ‘한번 얻어진 어떤 것이 (행복처럼 추상적인 대상이건 돈처럼 구체적인 것이건)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혹은 ‘한번만 얻고 나면 다시는 더 얻을 필요가 없이 만족한 상태가 지속 되는 상황’이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도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도 하고 또 일종의 희망을 (?) 가지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예요. 나는 좀 비범한 (?)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런 신데렐라 이야기의 뒷조사를 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가 알아본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속 결말은 ‘두카’입니다. 종종 상황이 정반대로 뒤집어져 처음의 행복을 나중에 모조리 토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길게보면 이 세상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란 없어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참 모습은 ‘블링블링’ 보다는 ‘엉망진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네요. 물론 괜찮은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 할지도 모를 삶을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각자 각자의 처지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목마름은 (비유적으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며, 오로지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두카’가 동전의 뒷면처럼 우리의 삶에 찰싹 들어 붙어있다는 것뿐 아닌가 하는데서, ‘삶은 엉망진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이 ‘두카’이며 ‘엉망진창’에 가까울진데,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인간의 노력들도 (해탈의 과정도) 엉망진창의 과정일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랬다 저랬다, 됐다가 안됐다가, 저녁에 왔다가 아침이면 가버리는, 그야말로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불안정함, 불만족함, 불완전함. 이런 고약한 up & down의 반복이 해탈의 과정이 아니겠어요? 붓다께서는 80세가 넘어 돌아가셨어요. 현대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아마 120세쯤 장수하셨지 싶네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분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알려진 이분의 또 다른 위대함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다른 사람들 그리고 수행자들과 더불어 매일 매주 매달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똑같이 함께 (정해진) 수행에 정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만 먹고나면 영원히 배부른 밥이 없듯이, 한번만 성취하고나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해탈 열반도 세상에 없다는 진실을, 몸소 웅변으로 똑똑히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분만은 예외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내게는 많은 것을 무언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어요.

잘 먹고 입고 편해서 얼굴에 기름이 졸졸 흐르는 모양새로 (그렇게 먹고 입고 자도록 땀흘려 제공해 주었던 사람들 고마운 줄은 모르고)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입을 놀리는 성직자나 도사같은 가짜들을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또 따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

어쩌다 한번씩 청소를 하면서, 예를들면 밀대로 부엌바닥을 닦으면서, 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청소란 사실은 (더러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만 희석시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요. ‘줄이는 행위가 청소’ 입니다. 희석시켜 줄이는 것이지 결코 전부 없앨 수도 없고 또 설령 어떻게 한번 거의 없앤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되돌아 오지 않겠어요? 인생도,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해탈이니 사랑도 결국은 이와 같지 않을까요? 더러움을, 어두움을, 어리석음을 좀 닦아내서 줄이고 또 뒤돌아서 다시 좀 닦아내고 줄이면서 세월이 흐르고 장차 종착역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언가 명백하고 확실한 그래서 내 손에 꼭 쥘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도, 닦아내고 또 닦아내는 땀 흘리는 과정만 존재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실체이며 또한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선 한동안 망설이셨다고 합니다. 이것 가르쳐서 뭐하나? 누가 알아 듣겠나? 이런 마음이셨다고 하지요. 하지만 붓다께서는 마음을 바꿔 잡수셨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우리도 두카니 해탈이니 배워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왜 마음을 바꾸셧을까요? 무었이 그분의 마음을 돌렸을까요? 내가 듣기로는, 그분이 보시기에 ‘인간들이 불쌍해서’ ‘사람들이 사는게 슬퍼서’ 그러셨다고 해요. 측은한 마음.

계절 탓인지, 돌아가신 사랑하던 이들의 삶을 되돌아 보아도, 내가 사는 꼴을 보아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아도 인생은 참 애잔하다는 마음입니다. 애처롭고 애틋한 마음. 일종의 슬픔.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다시 전철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회사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스쳐가는 사람들에게는 알게뭐야 불친절, 그리고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는 야비한 언행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겠지요. 그럼 그때 또 만나요 🙂

다른 시각에서 보는 내로남불

한국사람들이 (영어권) 선진국에서 보게 되면 놀라는 장면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줄이 아무리 길어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무언가 서두르거나 더 빨리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싶어요. 그리고 줄 선 사람들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어떤 압력을 (?) 가하거나 불평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도요.

이전 글에서도, 중국이나 한국 문화에서는 개인기 혹은 개인차원의 스턴트를 중요시 여기거나 기대하지만, 이곳처럼 다른 문화에서는 그런 것들은 오히려 별로 환영받지 못하며 대부분의 경우 구조적이거나 환경적인 변화를 통해서 개선을 추구하는 경향이 훨씬 크다는 말을 했어요.

붓다의 가르침 그리고 함께 그려진 붓다의 모습도, 원래 붓다의 제자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진실이나 19세기부터 서양학자들이 찾아내고자 했던 진실과,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전달 받아서 더 키우고 강화한 그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여요. 상이한 문화들이 동일한 대상을 오랜세월에 걸쳐 어떻게 해석하고 또 덧칠 하는가를 볼수 있는데요, 한쪽으로는 그렇게 그려진 붓다의 가르침과 그분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또한 반대쪽으로는 그렇게 해석하고 덧칠한 그 문화의 진면목이 또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 자리에 있으니 이 정도는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 자격증을 가졌으니 이 정도는 기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이런류의 상(像)을 그려놓고선 다른 사람들을 그 상에 제멋대로 맞추어 이러니 저러니 기대하고 나무래고 성내거나 좋아하고 하는 모습들이 중화문화권과 한국에서는 더 흔한 것 같아요. 물론 그리스철학등의 영향을 받은 영어권에서도 ‘idea’ 라면서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두 문화권 모두 줄을 잘 서긴 하는데 그 줄선 사람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종사자의 태도는 상당히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이 바로 이곳에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중국인들이 그려놓은 붓다의 모습을 대승경전에서 본 서양학자들은 ‘어리둥절’했다고 해요. 두 문화를 접해본 나로서는 이 어리둥절했다 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한 표현같아요. 마치 이 나라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 종업원이 미친듯이 그리고 미안해 하면서 일을 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지 싶어요. 그리고 반대로 이나라 사람 종업원이 한국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성난 눈초리로 그렇게 밖에 못하니 하면서 성을 낸다면 또한 ‘어리둥절’하지 싶네요. 중국으로 부터 내려와 우리나라에 전파된 대승불교에서는 성불한 붓다를 신격화하지요? 완벽한 존재. 일단 성불하고 나면 (어떤 자리에 앉거나 자격증을 따고 나면) 그 성불한 붓다께서 인간적인 고뇌와 의심으로 괴로워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극히 어려워하는 문화가 아닌가 싶네요. 반대로 독일, 영국 그리고 일본의 학자들이 지난 100여년 연구하여 밝혀낸 보다 진실된 붓다의 가르침과 모습을 보면, 붓다께서는 성불후에도 인간적인 근심과 의심 그리고 괴로움으로 시달렸던 때가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잘 극복하시고 또 현명하게 처리하셨겠지요.

이 나라에서는, 어떤 자리에 있는 무슨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좀 잘못을 해도 일단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구조적인 개선을 시도하지 그 개인을 지나치게 까발려 공격하고 나무래지는 않아요. 그래서 바깥에서 온 사람들의 눈에는 물렁하고 어리버리하게 보일때도 있어요. 하지만 두 상이한 문화에 오래 살아본 나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아요. 이 나라에는 전국민 산재보험이 있는데요 (보험료를 따로 내지는 않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합니다)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난 모든 사고의 책임을 (설령 외국 여행자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하여도) 개인에게 묻지 않고 일단 나라가 먼저 책임을 져줍니다. 나라가 일단 먼저 치료를 해주고 또 봉급도 계속 대신 주면서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나중에 나라가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형사상의 책임을 묻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은 거의 없어요. 이게 왜 훌륭한가 하면, 사람들이 싸우고 다툴 여지의 90%를 애초에 없애버리는 아주 인도적인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관련되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서로 내가 맞네 네가 틀리네, 죽이네 살리네, 네 잘못이네 아니네로 크게 다툴 가능성이 훨씬 적기 때문이이에요. 물론 여기도 약점은 있습니다. 보복이나 징벌을 가하여 속이 시원하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아요. 그래서 어어없고 어리석은 짓의 결과로 큰 사고를 내고도 별 죄책감없이 그냥 기어나가서 (?) 사는 넘들도 있어요. 짧게 보면 속이 상하지만 길게 보면 아마도 모두에게 이로운 면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차차 나이가 들면서, 국민학교때 배웠던 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의건 악의건 지어낸 어떤 상(像)들을 더 이상 잘 믿지 않아요. 여러번 교차검증 해보고 확인되지 않으면 믿지 않아요. 붓다에 대한 어떤 신격화된 이야기도 신화도 전혀 믿지 않아요. 머리에 뿔이난 괴물이므로 우리가 단단히 힘을 합쳐서 몰아내야 된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나는 더 이상 듣지도 믿지도 않아요. 더 크고 더 위대해야 내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망상보다는, 나와 더 유사한 면이 많고 나와 똑같은 인간적인 조건인데 나보다 더 잘 했던 분의 진실한 (그리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내게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힘이 되요.

언젠가 말했는데요, 가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자기도 못할거면서 왜 다른사람이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증을 땄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잘못을 나무래고 인간적인 모욕을 가하는가 ‘어리둥절’할때가 종종 있어요. 물론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줄 알아요 그 자리에 앉았던 그 넘이 그 자리 때문에 또 그 자격증을 가지고 당신들 위에 군림했었고 또 쥐어짜서 가지고 갔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난 해답을 몰라요. 어떻게 해야 나아질지. 하지만 그냥 이런 이야기는 해봅니다. 세상에는 그런 방식 이외의 다른방식으로 어울려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내 시각으로 본 내로남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