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마칸 –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그 인연

오랜만이다. 시간도 많았고 생각도 있었지만 쓰기가 어려웠다. 한 수 가르치려는 내용, 비난하는 내용, 그리고 나 잘났네 하는 내용, 이 세가지를 빼고 나니 쓸것이 없더라.

타클라마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두 바닥 인생이, 각자의 인연속에서 살아 오다가 우연히 엮이게 되고,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데, 그 결말이 각자가 지나온 삶에서 지은 인연이 결국은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잔인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그 남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한때 건설업쪽에서 잘 나갔었지만 부도를 냈고, 배우자로부터 멸시와 냉담 속에서 이혼을 당했고, 십대초반의 아들이 하나 있으며 (엄마와 살지만 아빠를 좋아 한다) 노모와 둘이 산다. 노모가 싸주는 도시락과 보온병을 가지고, 봉고차를 몰며 고물을 사서 (혹은 때때로 훔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어쩌면 괜찮은 대학을 나왔을 것이다.

그 여자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외모도 나쁘지 않고 성격도 좋다. 네일아트를 하고 싶어 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다리의 한 계단도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비슷한 수준의 여자를 (나이 많은 거리의 통기타 노래꾼 –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 우연히 만나서 동성애로 발전하며 함께 잠시 낭만을 나누기도 하지만, 현실의 무게를 견딜 방법이 없어, 노래방 도우미 노릇을 하다가 장차 몸을 팔게 된다. 그 첫번째 그리고 생의 마지막 손님이 바로 그 남자.

늘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우연의 장난으로, 초보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화대를 주지 않고 도망쳤던 그 남자를 (아침에 잠든 그 여자를 보며 돈을 손에 들고 망설이다가, 돈을 기다리는 가족 생각에 도망을 쳤다만, 돈이 있었더라면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마치 타클라마칸 사막처럼 황량하고 우울한 곳에서 조우하였다. 각자의 과거, 그 가난과 우울의 시간속에서 쌓여온, 좌절과 배신의 기억들 그래서 이제는 악만 남은 두 사람의 마음이, 바로 그 곳 그 시간 그 인연속에서 부딛친다. 결국은 두 사람 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그 타클라마칸 사막속으로,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살인.

우리 삶의 인연도, 그 실타래가, 단 두개의 실마리만 존재하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닥의 실타래가 얽키고 설키어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따라서 우리가 살면서 크고 작은 인연을 만들며 이런 저런 일들을 겪을때에도, 설령 잘 보지 못하고 즉시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여러 차례 다양한 실마리를 보게 되고 수 차례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술을 입에 대지 않았었더라면, 평소에 술마시고 운전대 잡는 버릇을 들이지 않았었더라면, 그날 한잔으로 중지했었더라면, 그때 잘난체 우기지 말고 대리운전을 불렀었더라면, 그때 너무 늦게 마치지 않아서 좀 돌아가는 한적한 길을 선택했었더라면, 내일 해야 할 산더미 같은 회사일을 떠올리며 그때 과속하지 않았었더라면… 무단횡단 하던 그 사람을 치어 죽이지 않고, 어쩌면 서로에게 욕이나 퍼붙고는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 갔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끔찍한 인연으로 엮이게 된다. 그 수차례의 기회들을, 그 실마리들을, 쌍방 모두, 하나도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다가, 결국은 그 인연의 결과를 크게 후회하면서 깨닫게 된다. 하지만 너무 늦다.

짧게 보면 우연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필연이고, 짧은 시간에는 우연의 역할이 커 보이지만 긴 시간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그 타클라마칸 사막속으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만 인연이었지만,

그 남자가 만약 부도가 나지 않았었더라면?
이돈철 회장도 ‘운7기3’ 이라던 사업이 자기만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나. 그리고 돈은 악연을 더 많이 만들 가능성이 크다, 어떤 곳 어떤 사람들에게는. 따라서 이를 통해서 그 인연의 끝에 다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은 10%.

그 남자가 만약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더라면?
그런 장소에서 그런식으로 어울릴 친구들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그런 상황에 놓여진다고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 오기전에 맨정신으로 기회를 하나라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인연을 피했을 가능성 50%.

그 남자와 아내가 만약 금실이 좋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였다면?
마지막 기회, 즉 그 여자의 극한 비난을 듣고 있던 그 남자가 손에 든 헤머를 위로 들어 올릴지 (살인) 혹은 아래로 내려 놓을지를 (사과나 도망) 결정지은 것은, 어쩌면 그에게 아무런 희망도 갈곳도 의지할 곳도 없다는 절망감이었으리라. 만일 집에 따뜻한 저녁을 해 놓고 그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더라면, 그는 아마도 마지막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그 인연을 피했을 가능성 70%.

그 남자가 만약 그런 어리석고 질 나쁜 친구들과 엮이지 않았었더라면?
좋지 않은 곳을 들락거릴 기회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그런 상황에 빠진다고 하여도, 거짓말로 함께 가짜 사장노릇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녀와 조우했을때 그런 최악의 모욕적인 비난을 당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헤머로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거짓말로 가짜 사장노릇을 했기에 반대 급부로 받은 극단적인 모욕이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그냥 별 볼일 없는 바닥인생이라는 것을 서로 속이지 않고 그 인연이 시작되었다면 어쩌면 하나 정도의 기회는 잡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인연을 피했을 가능성 30%.

그 남자가 만약 아내와 금실도 좋고, 술도 전혀 마시지 않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부도가 났지만 열심히 하루하루 일하면서 살았었더라면?
그런 인연에 처음부터 엮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그런 상황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마지막에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은 거의 전무. 이들 모두의 조합으로 그 인연과 그 결과를 피했을 가능성 90% 이상.

그 여자가 만약 현실을 참아 견디며 미래를 위해서 투자했었더라면? 현실이 억울하고 답답하고 암울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네일아트에 투자 하고 노력을 했었더라면? 아마도 노래방 도우미 노릇은 하지 않았지 싶고 또 나아가 몸을 팔지도 않았지 싶다. 소위 흙수저의 현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지금 한국 수준이 밥 굶고 기본 생활비를 벌지 못해서 몸을 팔아야 하는 사회는 아니지 않는가? 이로인해 그 인연을 피했을 가능성 80%.

그 여자에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비록 레즈비언 파트너라 하더라도 그래서 ‘미래’와 ‘희망’을 진심으로 나눌 사람이 있었더라면?
몸을 팔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런 인연에 그 남자와 엮이게 되었더라도, 극단적인 모욕을 퍼부어, 모든 기회를 쌍방에게서 빼았고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데 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인연을 피했을 가능성 60%.

그 여자가 만약 ‘남들 다하는데 나는 왜 못해?’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억울해 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혹은 ‘남들 보기에 이게 무슨꼴?’ 이렇게 남들을 신경 쓰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노래방 도우미나 혹은 몸을 팔지 않으면서도 생존하고 또 생활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다리 위로 올라갈 생각 혹은 올라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아득함도 절망감도 슬픔도 적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좋은 네일아티스트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로 말미암아 그 인연을 피했을 가능성 70%.

그 여자가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완벽한 외형적인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 영화 속에서 그 여자는 (그리고 사실상 그 남자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인연의 끝에 타클라마칸 사막속으로, 젊은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현실속에서 비록 상대적으로 좋은 외형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지와 무명속에서 그저 본능에 따라 눈에 뜨이는데로 큰 무리를 쫓아 다니다가 늙게 되면, 타클라마칸 사막속으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 그 인연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외부적인 조건으로 궁극적인 인연과보를 바꿀 가능성 10%.

그대는 어떤 괴로움을 안고 살고 있나?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들이라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이 아닐까? 주로 가까운 사람들?

인연의 실타래, 여러개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 낸 그대의 현재 삶. 다양한 모습의 다수의 실마리가 존재하건만, 어쩌면 그대는 밖을 보느라 혹은 남들을 탓하느라 너무 바빠서,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그 중 단 하나의 실마리도 붙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대의 종착역은 타클라마칸 사막이 될 (위구르어로 ‘되돌아 나올 수 없다’는 뜻) 가능성이 크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되건 얼마나 좋은 옷을 걸치고 가건 간에, 그 사막에는 홀로 간다. 그리고 나올 수 없다.

안을 보자. 지난 날에는 오직 생존과 발전을 위해 정열과 노력을 쏟았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쌓아온 그 인연의 실타래를 보는데에, 그리고 실마리를 찾고 붙잡아 푸는데에 정열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지 않겠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면 혹은 어떤 관계로 부터 괴로움을 당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지난 날 알게 모르게 만들었던 인연에 의해서 왔고 또 생겨난 것이다. 바로 지금, 과거의 인연을 일시에 바꾸어 현재의 괴로움을 소멸시키고 또 미래의 괴로움을 막을 방법이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어떤 속임수로도 피할 수 없다.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돈도 속임수도 필요 없고 또 다행히 상당히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방법이다. 이미 예를 들면서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있거든, 지난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면 더 많은 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도 나도, 행복의 길을 찾고 또 그 길을 걷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심연 – 요약표

한두 해 전에 친구 이군이 배철현 선생의 ‘심연’이라는 책을 보내 주었다. 좋은 책을 잘 읽고 나서, 배선생님께 감사의 이매일을 드렸더니 도반이라 부르며 회신을 보내 주셨다. 아래 요약표는 이군이 그 책을 읽고 만들어서 최근에 내게 보내준 것이다.

이런 좋은 책을 쓰는 배선생님도 대단하시고, 한 중소기업의 대표로 그 바쁜 와중에 이런 요약표를 만들어 스스로 공부하고 또 나누는 이군도 대단하다. 최고의 적선은 다른 사람들이 지혜를 깨우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던데, 두 분께 감사드린다.

고독, 혼자만의 시간 갖기
순간, 봄의 약동으로 싹이 트는 찰나의 시간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탈레스
생각, 인생이라는 집을 짓도록 도와주는 설계도 저는 누구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생각하게 만들 뿐입니다. 소크라테스
현관, 진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이 변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프 톨스토이
인내, 열정과 몰입을 안겨주는 선물 만일 당신이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아픔은 그 일 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서 옵니다. 당신은 당장 그것을 무효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침묵,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 기도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실패,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내게 보여주세요. 내가 그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줄게요. 조앤 콜린스
동굴, 환상과 공포가 함께 존재하는 매혹적인 공간 당신이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그 동굴에 당신이 찾는 보화가 가득 차 있습니다. 조셉 캠벨

 

관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기
묵상,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제 3의 눈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단절, 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 행복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당신 행동에서 나옵니다. 달라이 라마 14세
숭고,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는 삶의 태도 모든 인간은 실수를 합니다. 유일한 범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만심입니다. 소크라테스
사유,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거룩한 선물 감히 당신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요. 볼테르
관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연습 당신의 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믿지 마십시요. 그것들은 한계를 보여줄 뿐입니다. 당신의 이해를 통해 세상을 보십시요. 리처드 바크
오만,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 바보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
심연, 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 인류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파스칼

 

자각, 비로소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
괴물, 나를 조정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저는 신에게 올바른 질문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엘리 위젤
임시 치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바꿀 유일한 무기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인간의 본성이나 운명 탓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실수와 약함의 메아리일 뿐입니다. 데모크리토스
가면, Show Yourself!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주십시요 당신 자체이기 때문에 미움받는 것이 당신이 아닌 것이 당신인 척하여 사랑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앙드레 지드
갈림길, 내가 선택한 그 길에는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았다 여러분은 걸어야 합니다. 걸음을 통해 길을 만드십시오.
그 길은 이미 존재하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하늘과 같습니다. 그곳에서 새들은 날아다니지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발자국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쇼 라즈니쉬
멘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스승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당신을 수많은 총알로 무장시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사람과, 당신의 등을 살짝 밀어 당신을 창공으로 뛰어내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진부, 나에게 찾아오는 새로움을 막는 훼방꾼 사람들은 높은 산, 바다의 넘실대는 파고, 강물의 드넓은 조류, 별들의 운행들을 감탄하기 위해 외국에 갑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가진 신비를 생각없이 지나쳐버립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자립, 당신 자신과 무관한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힐렐

 

용기, 자기다운 삶을 향한 첫걸음
몫,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인생은 두 가지 길뿐이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이다. 아인슈타인
열정,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힘 인생은, 자기 자신을 찾는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조지 버나드 쇼
믿음,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 인생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살려내야 합니다. 당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을 묻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조셉 캠벨
아우라, 당신의 아우라(오라)는 얼마나 숭고한가 모든 사람의 끝은 같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 디테일이 사람을 구분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착함,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인내로써 지켜내는 행위 오늘은 또 흘러가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날입니다. 오늘은 선물입니다. 루이 슈워츠버그
옮음, 양심을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당신이 이 세상에서 보길 바라는 그 변화가 되십시요. 마하트마 간디
빛의 축제, 자기 자신이 곧 별이다 당신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교통사고의 어떤 결말

양로원 앞에서 길을 건너던 할머니를 치여 숨지게 한 트럭 운전자가 5천불의 배상금을 물다.

트럭에 치여 숨진 그 할머니의 유가족들은 그 운전자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을 나서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알프레드 프라이스’라는 그 트럭 운전자는, 어쨋던, 자기 트럭에 치인 마가렛 스튜어트 할머니가 뉴질랜드 해밀턴시의 한 도로에서 사망하던 순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프라이스씨는 트레일러가 달린 큰 트럭을 운전하여 배달장소에 도착한 후에 입구를 찾는 중에 잠시 한눈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91세의 스튜어트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프라이스씨가 정신을 차려 횡단보도를 보았을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할머니는 트럭에 치인 후였습니다.

프라이스씨는 지난 목요일 해밀턴법원에서 과실치사에 대한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케시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에게, 할머니 유족들에게 5천불의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언도 했습니다.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의 변호사가 제출한, 운전면허 유지를 위한 청원서를 받아 들여 허가 했습니다. 프라이스씨는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지난 2017년 12월에 일어났던 이 사고는 그 트럭 전방에 설치된 카메라에 녹화되었습니다. 그 영상에 따르면 프라이스씨는 시속 약 30킬로미터로 서행하고 있었으며, 또한 경찰도 밝히기를, 초록색 신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트럭을 운전했었던 것으로 영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라이스씨와 그의 부인은, 지난 5월, 법무부가 마련한 만남의 장소에서,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의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주저없이 돌아가신 분과 나의 자리를 바꾸겠다’고 하며 사죄하였습니다. 프라이스씨가 써 온 편지를 돌아가신 할머니의 조카딸이, 할머니의 오빠, 즉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 읽어 주었습니다.

경찰은 운전면허취소를 하지 않겠다면 징역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법원에 권고하였지만, 윌슨판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윌슨판사는, 운전자 프라이스씨의 무과실 운전경력, 사람들이 증언하는 그의 인간됨, 그가 처음부터 유죄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지난 5월에 있었던 스튜어트 할머니 유가족과의 만남의 결과를 모두 고려하였습니다.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는 면허정지 처벌을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사고로 크게 고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물론 유가족까지도 당신을 돕고 싶어 합니다. 어쩔수 없는 사고였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그 62세의 트럭운전자에게 처음있는 사고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 가족들과 프라이스씨 가족이 서로 알게 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두 가족들은 법정에 나란히 앉아서 판사의 선고를 기다렸습니다. 유가족들은 (할머니의 오빠, 시누이 그리고 두 조카) 판사에게 운전자 프라이스씨가 운전면허를 정지 당하거나 감옥에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법정을 빠져 나오니, 프라이스씨가 밖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에서 가족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도 기꺼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우린 그를 용서했어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어요.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한 조카가 말합니다. ‘그가 잘못했던 것이 아니예요. 내가 바로 지금 차를 주차하다가도 이런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또 다른 조카의 말입니다. ‘할머니는 체구가 조그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분이었어요.’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는 미혼에 자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늙은 부친을 돌아가실 때까지 뒷바라지 했었던 딸이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의 죽음을 가지고도, 그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어떤 선택이 가능했었고 또한 그들은, 돌아가신 할머니도 기꺼이 받아 들이실 훌륭한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그런식으로 일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물론 않으셨겠지만, 어쩌면 사랑하는 남은 가족들과 또한 다른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할 그 가해자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받아들이고 잘 마무리 하기를 바라셨으리라 짐작해요.

그 할머니의 바램을, 남은 사람들이 (피해자, 가해자, 그 가족들, 법원 그리고 경찰까지도) 훌륭한 방식으로 실행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었더라면 무슨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날까지, 이미 지나버린 그리고 아무도 되돌릴 수 없는 그 과거의 일에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 다니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의 무덤을 찾을때마다 사람들은 원망과 비통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겠지요. 자주 찾기도 어려워질 것이고요. 그리고 감옥을 나온 그 운전자는 더 이상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어쩌면 흠뻑 뒤집어 썻던 그 차가운 원망과 비난의 소나기 속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뒤늦게 이혼 당하고 쓸쓸히 병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할머니가 기뻐했을까요?

그 벌금으로 유가족들은 아마도 할머니의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드렸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주 찾아가서 꽃을 놓으며 할머니의 예뻣던 과거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떠올리며 ‘아! 그 운전자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싶어요. 이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또 조금만 지나면 까맣게 잊혀질 이 사람들이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있지 싶어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우리가 익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당신이 지금 이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어쩌면 지난 과거에 어떤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요?

오늘 그대와 나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 놓여질까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 운전자가 그리고 유가족들이, 그 사고 전에, 아무렇게나 트럭을 몰며 또 서로 함부로 다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이었었다면, 그 할머니의 바램을, 듣지도 또 실행할 힘도 능력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 선택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이미 쌓여 있는 과거의 카르마를 조금이라도 줄일 선택을 하세요. 그래야 가볍게 왔다가 가볍게 갈 수가 있을꺼예요. 길가에 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처럼…

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그리고

말을 잘하고 또 자기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듣거나 읽고 그 내용에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며 또 자주 그 내용과 저자를 동일시하여 ‘아!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가보다’ 부러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자신의 작은 노력을 포장으로 부풀려 실제 보다 더 비싸게 팔며 세상을 쉽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것 같다. 특히 자기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댓가를 노리며 사는 사람들 중에서. 여기에는 인쇄를 받는다는 직접적이고 금전적인 댓가도 있지만, 간접적인 댓가로 명예나 지위 혹은 영향력을 추구하는 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자기 것이건 자기 것이 아니건, 어떤 생각을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간의 기술이 생기고 경험이 좀 쌓이면 식은죽 먹기보다 쉽다. 그러니 들은 말과 그 말을 한 사람, 읽은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을 섣불리 동일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설령 당신이 그 말과 글에 감동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동일시’에서 이자들이 바라는 ‘댓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베를린필하모니 실황연주를 앞자리에 앉아서 한 번 들으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하는 줄 누구나 안다. 하지만 거의 완벽하게 그 연주를 재생하고 또 내가 원하면 수십 수백번을 들을 수 있는 그 음반은 왜 상대적으로 훨씬 쌀까? 옛날에 아내가 돌봐주던 아기의 엄마가 (시향 첼로 연주자였다) 아내에게 첼로 연주를 코 앞에서 한 번 해 준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소리와 진동이 (연주자의 ‘기’?) 온 몸에 전달되는 것이 음반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고 하더라만… 혹은 미스월드하고 댄스파티 한 번 같이 가는 것과 그녀의 사진을 벽에 걸어 놓고 혼자서 춤추는 차이? 남자 버젼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요 투자가인 워렌 버펫과 점심 한끼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한 두시간 나누는데 수억을 낸다는데 (2018년 점심은 35억에 낙찰 되었다. 몰론 좋은 곳에 기부한다고 한다) 그 사람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다가 밥상위에 붙여 놓고 식은밥 먹으면서 혼자 대화하는 수준?

한 인간이, 자기가 실제로 노력해서 성취하고 또한 그 결과를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에서 안팎으로 증명한 이야기만이, 베를린필하모니의 실황 연주나 워렌 버핏과의 대화처럼 ‘내게’ 참된 가치가 있는 말이고 글인 것이지, 그 이외는, 그녀의 사진을 붙여 놓고 혼자 추는 춤이나, 그의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다가 밥상 머리에 놓고 혼자 먹는 밥 정도의 차원이고 그 정도의 가치밖에는 내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쉬운 일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어려운 일 이야기를 해보자. 이미 짐작했겠지만, 자신이 말하고 쓴대로 ‘상당 기간’ 실천하며 사는 삶이 어려운 일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쓰고 나서도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남들의 생각을 줏어다가 짜집기 하여 말하거나 쓰고 나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동네 언덕에도 잘 올라 가지 않는 사람이 당장 에베레스트산을 무산소 단독 등정한다는 말 만큼, 현실성이 없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 아닐까?

자 이제 위험한 일 이야기.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인 양 말하고 쓰는 행위’ 만큼 위험하고 유해한 일은 별로 없지 싶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카르마가 반드시 따른다. 우리 모두 조심하자! 카르마는 종종 시차가 있다. 그래서 기억력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넘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실제로는 거의 없다. 좋지 않게 얻은 댓가에는 반드시 또 다른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와 내가 하면 좋을 일. 자신의 삶으로, 소리없이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으로, 보이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 바로 당신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듣고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그 실황연주에, 그 댄스파티에, 그 점심에 서로를 좀 끼워 주기도 하면서…

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그리고 하면 좋을 일이 있다.

버디 오선이 그리고 머시쉽

개 좋아하세요? 사진속의 개 두마리가 닮았지요? 레브레도라는 종으로, 개들 중에서 영특하기도 하고 또 성격도 좋아서, 세계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뼈다귀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개가 ‘버디’인데, 우리 아이가 어릴때 와서 오래 함께 지내다가 작년에 뽕~ 지구를 떠났고, 등에 가방을 매고 있는 개가 ‘오선이’인데, 이 신문 기사대로 어떤 미친넘이 납치하여 개소주로 만들어 먹고는, 지금 재판장에 끌려 다니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런 상황이 되겠습니다.

죽은 개들이지만, 난 이 사진들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먼저 나와요. 귀엽기도 하고 또 지난 시절 기억이 나서 그렇겠지요. 개를 키워본 사람들은 이해가 될 듯… 오선이 개주인처럼, 개를 가족의 일부로 여기고 흡사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이 한국에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개를 무슨 아이니 하면서 극성을 떠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개가 개답게 살도록 사회적인 장치도 있고 또 사람들도 대부분 노력하지요.

‘머시쉽’ (Mercy Ships) 혹시 들어 보셨나요? 이전에도 보았었지만, 근래에 BBC도큐멘터리로 아프리카 머시쉽을 방영한 것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곳 사람들은, 작고 외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비로 모든 여행 및 승선경비 지불해야 함. 기간에 따라서 수백에서 수천만원) 이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들어보면 정말 멋지고 또 가슴뭉클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짧은 비데오를 첨부했는데 혹시 영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를 대부분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종기가 흔하더니, 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이렇게 혹이 많이 나네요. 다 가난의 소치겠지요. 그 혹도 가난도 본인들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렇게 훌륭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하건만, 스나미처럼 몰려드는 환자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쁘고 독한 질병들에 비하면, 이 배에서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요 바다물을 양동이로 퍼올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굳이 그 긴 줄, 아픈 사람들이 밤잠 자지 않고 먼길을 와서 마지막 희망으로 기다리건만 대부분은 돌아서야 하는, 그 긴 줄을 확인하지 않고서도 알 수가 있겠지요. 한 의사가 말하고 있군요. ‘우리도 새발의 피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최선을 다한다.’ 이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엑스레이 기사들도 선장도 갑판원들도 또 전산지원자들도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인 줄 알지만, 나는 이들이 훌륭한 보살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보살은, 오늘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의심없이 최선을 다하지만, 덧없는 삶의 본질을 꽤뚫어 보기에, 최종적으로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나는 무슨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이 사람들 인생을 바꿀 100불짜리 수술 보다는 내 입에 들어가는 100불짜리 고급 술이 더 중요한 사람이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또 알고 나니 마음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나도 버디 개주인으로, 그 넘 눈 밑에 난 무슨 종양 수술을 하는데 상당한 돈을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스스럼 없이 썼었지만,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 평생을 이런 큰 혹이나 끔찍한 불구 또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별 희망도 없이 온 가족이 힘들고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그 긴 줄을 보고 나니, 감히 ‘사람들’ 앞에서 ‘개’ 수술 이야기 따위를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 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물론 개 수술도 하고 고급 술도 먹겠지요. 그리고 남의 개 훔쳐다가 개소주 해 먹은 넘을 잡아다 재판도… 하지만 사람의 도리가 무었인지, 나와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었인지, 내가 가진 것은 무었인지 또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었인지, 여러번 곰곰히 생각하게 됩니다.

팔자를 고치고 싶으세요? 그 배에서 한 달만 자원봉사를… 들어 봤나요? 팔자 고치는 비법 중에 첫번째가 적선이라는 것을. 몸으로 때우건 돈으로 때우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