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모르면 결과라도 따라해본다?

중국의 전설적인 미인이라던 월나라 서씨 이야기를 아세요? 이 미녀가 아파서 찡그린 표정까지도 아름다워서 주변 여자들이 그 표정을 따라했다고 하네요.

사무실 내 뒷쪽편에 앉아서 일하는 젊은이는 한눈에 보아도 선하게 생긴 퉁퉁한 녀석인데요 (동물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꿈이라네요. 지금은 전산일을 하고 있지만서도), 하루종일 양발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어요. 한쪽 발을 떠는 넘은 가끔 보았어도 이렇게 양발을 하루 종일 쉼없이 일하면서 떠는 넘은 나도 처음 🙂 그런데 덧붙여서 하루 종일 기지게를 켜요. 아마 나름대로는 어떤 실내체조랍시고 (혹은 마이크로포즈?) 의도적으로 하는것 같아요. 이런말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기분이 좀 안좋겠지만, 나는 이 젊은이가 세상에 산 기간보다도 더 오랜 기간동안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컴퓨터앞에서 일을 해왔어요. 물론 오래전에 한때 손목이 아팠던 적이 있었고 (아마도 손목수근관증후군 Carpal tunnel syndrome) 또 눈도 불편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지금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일하고 또 이 젊은이가 이미 끼고 있는 안경도 쓰지 않아요. 자주 단것과 기름진 것들을 사먹는 이 녀석의 버릇을 보면서 ‘야! 이넘아 나가서 좀 뛰고 운동을 해라. 하루 종일 양다리나 달달 떨고 기지게 켜면서 운동이랍시고 쥐랄하지 말고’ 이런 생각이 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요.

아마 한국이었다면, 소위 말하는 꼰대 고참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No no! 절대 그런말 하면 안되요. 개인적으로 반발할 뿐만 아니라 좀 못된 넘이라면 매니저나 인사부를 통해서 공식항의를 할수도 있어요. 이곳은 그만큼 개인주의가 발달한 곳이랍니다. 며칠전에 말했던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그런 끈끈한 직장생활은 (어떨때는 너무 끈적끈적?)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아요. 일 마치고 한잔? 어쩌다 그런 분위기의 직장도 드물게 있긴 한데요 (젊은이들이 위주인 환경 혹은 매니져가 술꾼인 직장등) 대부분은 ‘일 마치고 문 나서면 남남’이며 인생은 ‘집에서 개인적으로 찾는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예요.

한가지 이야기를 더 할까요. 혹시 짐바브웨란 나라의 무가베란 독재자를 기억하세요? 이 넘이 짐바브웨라는 나라에 끼친 해악을 들으면서 (나도 짐바브웨 사람 2명을 친구로 또 직장동료로 옛날에 알고 있었어요. 물론 이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서도요) 와! 이넘은 왜 이렇게 죽지 않고 장수를 하는 것인가? 언제 이넘이 죽어서 짐바브웨 사람들이 숨을 쉬고 정상적인 삶을 살수가 있을까 이렇게 늘 저주를(?) 퍼부었어요. 이 나쁜 넘은 100살에서 몇살 빠지는 천수를 누리다가 죽은지가 얼마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 이넘이 죽고 나서부터 짐바브웨에 평화와 번영이 왔을까요? 아니, 오기 시작했을까요? 썩은 이빨을 빼고 나면 건강이 저절로 오는 것일까요? 왜 썩은 이빨이 처음부터 생긴 것일까요? 그 썩은 이빨을 허락했던 구강환경과 생활습관이 발치로 말미암아 저절로 달라질까요? 담배를 끊는다고 저절로 건강해질까요? 대통령을 잘 뽑기만 하면, 아니면 지도층의 잘못을 끊임없이 크게 비난하고 그 사람들을 갈아치우면 세상이 정말 달라질까요?

무가베나, 지금 감옥에 있는 극히 함량미달인 전직 여자 대통령같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년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친구들 중에서 이 여자를 크게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나는 속으로, 국민의 투표로 뽑은 한 나라의 수장을 이런식으로 막말하고 조롱해도 되는가 반발심이 많이 들었었어요. 이 여자의 실체가 차마 그렇게까지 골때리는 줄은 나도 상상을 못했었던 것이었지요), 내가 생각하건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잘하면 70점 못해도 60점’ 정도가 아닐까요? 우리는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생물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또 비슷한 문화와 환경의 산물입니다. 아무리 날아도 100미터를 보통 사람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뛸수가 없고 마라톤을 절반보다 더 빨리 완주할 수가 없어요. 그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길고 오래 크게 본다면 말이지요. 자기가 못하는 것을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강요하면서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 이제 본론으로 🙂

현대에 들어와서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 중에서 집단주의나 독재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없습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이전에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개인주의가 발달해 있습니다. 사무실 뒤에 앉은 젊은이가 직무와 관련된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개인적인 버릇이나 취향 혹은 선택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는것이 ‘보다 더’ 정상이라는 것이지요.

언젠가 우연히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영국인 미녀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어요. 그녀도 나도 스톡홀름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야기를 몇시간 나누게 되었는데요, 이 멋있는 30대의 여자를 통해서 영국에서 벌어지는 ‘브렉싯’에 대해서 듣게 되었어요. 아니 Brexit이 얼마나 평범한 영국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듣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이렇게 정치에 좀 미친 상황도 어쩌다 있지만, 내가 알기에는 대부분의 경우,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Brexit도, 자기들 일자리에 그리고 삶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영국사람들이 광분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축구만큼도 영국인들의 관심을 끌지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진국 사람들이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은 첫째로는, 정치가 사람들의 삶을 현저하게 발전시키거나 크게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겠고 둘째로는, 그렇게 자기와는 별로 그리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곳에 (다른 사람들에게 왈가왈부할)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 싶네요.

무가베가 죽어도 짐바브웨는 당장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아니, 짐바브웨의 발전을 크고 길게 보면 무가베는 그저 일어날만한, 이빨을 오랫동안 닦지 않고 좋지 않은 것을 먹는 버릇을 가진 사람의 이빨이 썩는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일이었지 무슨 결정적인 일이나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예요. 히틀러가 일차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해서 부상당했을때 우연히 어떤 영국군인이 자비를 베풀어 죽이지 않았다는데요, 그때 히틀러가 죽었다고 그 다음에는 세상이 평화롭고 전쟁이 없었을까요? 어금니가 썩을 상황이 지속된다면, 오른쪽 어금니가 이미 빠져버린 상태에서 왼쪽 어금니가 썩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썩은 이빨 아프게 빼면서, 구강 관리하지 않고 나쁜 버릇을 가졌던 자신을 깨닫고 구강관리의 전기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테고요. 담배를 힘들게 끊어서 만암의 근원을 멀리했지만, 금연이 다이어트와 운동에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못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꼰대짓을 하는 것이 왜 바보짓인지 너무 길게 이야기 했나요? 왜 지나치게 오지랖 넓은 짓을 하면서 자신의 에너지와 삶을 낭비하는 것이 길고 크게 보면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리석은 짓인지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 했나요? 가진 것이 별로 없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어쩌면 월나라 서씨의 찡그린 얼굴이라도 따라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훨씬 더 이익이 아닐까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

혹시라도 이 글의 의미를 ‘무기력 무책임 무감각’ 이런쪽으로 해석했다면, 이글들을 읽어 보면 좋겠어요. 비행기 타봤지요? 이륙직후 승무원들이 비상착륙 교육할때 뭐라고 합니까?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확실하게 착용을 하고난 이후에 주변의 가족과 다른 승객을 도우라’고 하지요. 내 경험에 따르면,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단지 비상착륙뿐 아니라 일상 사회전반의 모든 일들이 바로 이러한 상식을 근거로 (이러한 상식을 인정하며)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같은 한계와 수준을 공유하는, 어떤 주어진 시간과 공간속에서 잠시 있다가 가는,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바꾼, 역사에 남을,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영웅이나 성인은 거의 없어요. 내 주변에는 확실히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 주변에도 거의 없을꺼예요. 그러니 그런것 될려고도 하지말고 찾으려고도 하지말고 애먼사람 등떠밀어 그렇게 억지로 만들려고도 하지 마세요.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확실하게 착용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주는 것’ 이것이 보살행이며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존 그리고 개인 행복 추구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옛날에 아내가 멋을 좀 부릴때면 ‘월나라 서씨 몸종’ 운운 하면서 야비하게 놀렸던 적이 있었는데요, 어쩌면 아내는, 내가 오늘에서야 깨닫는 이 진실을 이미 그 옛날부터 알고서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지도 모르겠어요 🙂

미생, 삼매 그리고 몰입

드라마 ‘미생’을 여름휴가때 마다 본지가 몇해 되었다. 이번이 세번째 어쩌면 네번째. 25시간 내외가 걸리는 전체 20편을 연달아 모두 보려면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중노동이다. 물론 한방에 끝내기는 불가능하다. 며칠 걸리는데, 그 기간동안에는 일체의 일상적 활동이 중단되며, 그나마 최소한의 활동은 드라마를 더 잘 보는데 집중된다. 예를들면 음식준비나 식사시간을 최소화 하면서 중간 중간에 운동을 한다 🙂

신심 깊은 기독교신자가 휴가기간에 성경을 완독하거나, 열성 불교도가 경전들을 필사하는 것에 견줄만한, 우리 내외에게는 일종의 연례 행사라 하겠다. 내게는, 어떤 유명한 경전들보다도 훨씬 더 내 삶에 관련이 있는, 내게 와닿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지혜를 얻는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삼매경에 빠진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깨닫게 된것은, 해를 거듭하여 보면 볼수록 동일한 드라마에 대하여 그 중요성을 느끼는 장면들과 또 강하게 와닿는 내용들이 (배우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다.

방금 ‘삼매’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삼매의 의미가 아마 황농문박사께서 가르치고 있는 ‘몰입’과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할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리고 드라마 미생에서도 ‘샤를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하여, 한 결정적인 장면에 바로 이 ‘삼매’ 혹은 ‘몰입’을 (삶에 대한, 일상에 대한, 일에 대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시 전문을 아래에 실었다. 읽어보기 전에, 미생에서 이 시가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바로 오늘을 지금 이순간을 사는 그런 상황을 묘사한 장면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직접 이 장면을 보고나서 읽으면 더욱 좋지만 아니라도 그만.


항상 취해있어야 한다.
모든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속으로 꼬부라지게하는 가증스런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세없이 취해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었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미덕이든 그 어느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쨋던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위에서 혹은 당신방의 음울한 고독가운데서 당신은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이 몇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를 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취하라. 술이든 시든 미덕이든 그 어떤것이든 당신 마음대로.’
(샤를 보들레르)


일부 번역에서는 마지막 문장이 생략된 경우를 보았다. 드라마 미생에서 사용된 번역도 마지막 문장이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에서 끝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휴가기간에 미생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오늘에 몰입해서 그 취함속에서 그 삼매경에 빠져서 살던지, 아니면 내일에 몰입해서 오늘 취하지 못하고 삼매에 빠지지 못하며 엉거주춤하게 살던지 둘중 하나지, 둘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주고 받는 거래도 어쩌면 이런 불문율 속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미생의 오과장처럼 혹은 장그레처럼 뜨겁게 살면 그 하루 하루는 행복하겠지만 길게 보아서 소위 출세를 하긴 어렵고, 반대로 잔머리 굴리며 라인타고 줄서는데 정신빠져서 살면 어쩌면 장차 출세는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다음에 뒤돌아 보면 텅빈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을 살게되지 싶다는 말이다. ‘출세해서 돈이 남고 지위가 남지 않는가?’ 당신이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굳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면? 밖에도 삶이 있고, 당신도 가족들도 밖에서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이것 지위나 돈보다 어쩌면 훨씬 더 심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신은 빼고 🙂

Est-ce que tu parles français? 나는 불어를 못하니 실제로 샤를 보들레르가 드라마 미생에서 인용된 바로 그 의미로 이 시를 썼던가 직접 그리고 확실히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로 된 자료를 몇가지 보니 이 요절한 시인이 그야말로 술과 여자 마약 기타등등에 쩔어서 살다가 일찍 가버린 사람,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그의 시들이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상황인듯 하더라. 드라마 미생 만든 사람들이 적절하게 인용해서 나 같은 사람까지도 소름이 쫙 돋게 만들었지만, 어쩌면 ‘표본실에서 해부한 청개구리에서 김이 모락모락’이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삼매에 대해서도 조금 아는체를 하자면, 이글에서 내가 말했던 Samatha 혹은 Samadhi를 (영어로는 calm meditation 혹은 concentration meditation) 중국인들이 한자로 옮긴것이 바로 ‘삼매(三昧)’인데, 붓다께서는 물론이고 내가 이전에 몇차례 언급했었던 티라다모 스님께서도 ‘그것으로 해탈 열반을 증득할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일부 사람들이 그야말로 ‘삼매 삼매경’에 빠져 (혹은 ‘명상 삼매경’에 빠져) 숨쉬는 느낌이건, 공학연구건, 무역프로젝트건간에 완전히 몰입하고 그것에 빠지는 것이 마치 삶의 궁극적인 해결책이양, 혹은 삶의 최고 최상의 경지인양 말하는 듯하지만 (명상이나 몰입이 훌륭하고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다시 말하건데, 붓다께서도 그리고 바로 이 삼매와 몰입을 평생 밥먹듯이 해오신 티라다모 스님께서도, 그 자체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인간이 다다를수 있는 최고 최상의 경지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뭐?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우연히 바로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말했다 ‘흡사 운동화 끈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잘 매는 연습을 밤낮으로 오래하여 그것에 도사가 됨과 같다. 하지만 아무리 운동화 끈을 잘 매고 아름답게 매도 오직 그것만으로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다.’ 아내는 조용히 식사 계속 🙂

‘그럼 뭐?’에 대한 대답들을, 내가 듣고 보고 배운데로 블로그에 써왔는데 올해도 계속할 작정이다. 당신이 못찾으면 내 블로그가 개판이요, 찾아서 읽고나서도 무슨말인지 모르겠으면 내가 확실히 몰라서 그렇다. 둘다 차차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새해복 많이 받으시라.

부치지 않은 편지

링컨대통령의 부치지 않은 편지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요? 미국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지휘를 맡았던 최고사령관이, 남군을 요절내고 노예를 해방시키며 전쟁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수긍할만한 이유없이 미루고 또 이해할수 없는 이유로 회피하다가 그만 놓치고 난 이후에, 극도로 화가났던 링컨대통령께서 (자신의 지휘를 받던) 그 장군에게 쓴 편지인데요, 대통령께서 사망한 이후에 서재에서 부치지 않은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나도 읽어 보았어요. 영미문화권에서는 비록 상하관계가 명백한 경우라 하더라도 심한말로 나무래는 경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요, 상대방의 위치나 권위등을 존중해 주려는 배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욕이나 심한말의 인플레이션이 적은 곳에서는 조금만 억양이나 톤을 바꾸어 말해도 그 의미가 잘 전달되기 때문에 굳이 쌍욕이나 상대방을 모욕하는 나쁜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링컨대통령께서 쓰신 그 편지는 이런 문화적차이를 이해하고 읽기에도, 비록 자제하며 말하고는 있지만 극도의 실망감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드러내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대통령께서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도 쓸 때에도 그리고 쓰고 나서도 몹시 괴로워했을것임을 저는 짐작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랍에 넣어 두고 일부러 부치치 않으신것 같다고 해요. 물론 역사속에서 그 장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북군은 이미 무능한 사령관들을 수도 없이 교체하며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 사람도 이전 사령관들이 갔던 길을 따라 갔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북군이 승리했고 노예는 해방되었으며 링컨대통령은 미국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남을 훌륭한 위인으로 남게 되신것이지요.

그대도 쓰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링컨대통령처럼 종이에 잉크를 묻힌 펜으로 쓴 편지는 아니고, 비록 컴퓨터에 저장된 워드파일로된 편지들이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대통령께 배운 면도 있겠지만, 제 자신이 가끔씩 글로 저의 폭발하는 감정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되었는지 제가 쓴 부치치 않은 편지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부칠 의사가 거의 없던 편지들로서 그 취지가 약간은 변색된 면이 있겠네요.

어쨋던 저는 그 편지들을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읽어봐요.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 혹은 몇년이 지나서 읽어보는 저의 부치지 않은 편지들은 제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부끄러움입니다. 놀라셨나요? 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장 많이 느꼈어요. 내가 그 당시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수준의 편지를 썼던가? 무었이 나로 하여금 지금 보기에는 내가 쓴 것이라고 차마 믿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 그리고 나아가 그 편지의 발단이 되었을 사건이나 상황을 극히 유치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글들을 쓰게 만들었던가 자문하게 됩니다. 부치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만약 부쳤더라면 내쪽에서 문제를 훨씬 크게 확대하고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았을것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내가 격정에 사로잡혀 있을때 얼마나 더 어리석게 되고 눈이 더 멀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횟수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통한 저의 깨달음은 어쩌면 제 자신에게, 설령 제가 이런 상황속에 빠져 있을때라고 할지라도 바로 이런 기억을 불러와, 저로 하여금 이전에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했었을 그런 언행들에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저의 잘못된 확신을 무너트리고 제 입을 다물게 하며 저의 사나운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싶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다른사람들을 통해서 배우고, 보통사람은 자기자신을 통해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것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도 보통사람들 끝에라도, 이런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좀 끼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괴로운 그대, 오늘밤 부치지 않을 편지를 한번 써보시지 않으렵니까?

술권하는 사회 탁구권하는 친구

한국 단편 소설중에 ‘술권하는 사회’라는 것을 옛날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신식교육받은 새신랑이 날마다 술에 떡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착한 시골 새색시가 어느날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보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렇게 술을 먹인단 말이오?’ 신랑이 대답하였다. ‘사회가 먹이네…’ 색시는 부엌에서 술국을 끓이며 혼자말로 원망한다 ‘그 사회란 뇬 참으로 못되고 고약한 뇬이로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탁구장이나 들락거리며 학창시절을 허송세월 하였다. 어머니께 탁구란, 머리좋은(?) 자식을 망쳐서 좋은 대학 못가게 만든 원흉의 하나로 아마 영구히 기억되어 있을것이다. 탁구가 무슨 죄 그리고 머리는 무슨 머리 🙂

영호, 대환이, 화섭이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넷은 탁구단짝들이었다. 유도 유단자였던 영호는 운동을 원래 잘하고 또 머리도 있는 모범생이었는데, 드라이브에 이은 렐리로 게임을 했었으니, 쪼무래기였던 그 당시에 이미 지금 생활체육으로 치면 아마 4부나 5부는 되었을 것이다. 대환이와 화섭이도 잘쳤고. 나야 일관되게 공부도 꼴찌 탁구도 꼴찌…

오랜 세월이 지나, 올해 후반부터 다시 탁구를 규칙적으로 치기 시작하였다. 회사 동료들이 수요일마다 대학교 체육관에 모이는 곳에도 가서 치고 또 클럽에도 가서 동호인들과도 쳐보았다. 마라톤과 골프를 오래 해오면서 나는, 탁구는 그 스케일이나 운동량이 그저 조그만 탁자 주변에서 시끄럽게 따닥따닥 거리는 놀이정도라 생각하며 무시했었다. 막상 지난 서너달을 규칙적으로 연습을 해보니, 좋은 추억도 떠오르지만 나름대로 묘미가 있고 또 운동량도 만만치가 않다. 예를 들자면 하회전으로 오는 공을 루프드라이브로 회전을 주어 반구하는 훈련을 하면 맥박이 거의 160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내가 흘린 땀으로 차고바닥이 (뻥을 좀 치자면) 물바다가 될때가 많다. 내가 산을 뛰어 오를때 보통 그 정도 맥박이 되고, 정상부근에서 최대한 밀어부쳐 풍력발전기가 있는 정상에 올라가고 나면 맥박이 180정도가 되니 이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힘든게 장난이 아니다.

탁구를 이렇게 다시 치면서, 몹시 유사한 모양과 크기의 공을 사용하는 이 골프와 탁구라는 스포츠가 또한 몹시 상이한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딱 정지해 있는 공을 내가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움직임을 시작하여 멀리 또 바로 쳐보내고자 하는 운동인데 반해서 (이넘의 운동은 내가 원수?) 다른 하나는 결코 정지하지 않고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며 변화무쌍하게 회전되는 공을 내가 따라서 움직이며 정신없이 쳐서 상대방에게 보내는 운동이라는 것이 (니가 원수?) 우습기도 하고 또 흥미 있기도 하다. 흡사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자신이 초래한 문제들로 괴로워하고 또 어떨때는 남들이 초래한 문제들로 괴로워하는 그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 나이가 들면서 운동도 다양화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굳은날도 있고 햇볕이 쨍한날도 있을테니…

블로그 2년

‘내 선택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이 블로그를 써온지도 이제 2년이 되었네요. 2018년초 블로그를 시작할때 한해의 theme으로 ‘선택’을 선택했었는데, 그해에 정말 좋은 선택을 많이 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예요. ‘왜 기억을 못해요?’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삶에 의미가 있고 영향을 끼치는 그런 선택들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선택과는 달리, 그 결과나 영향이 오랜 시간을 두고서 서서히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잘 알수 없는 것이지요.

이전 theme들중에서 기억나는 것들로는, ‘나는 내가 많이하고 자주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가 있었고요, ‘매일 읽고 써라. 그러면 내 삶이 그쪽으로 가게 된다’도 있었네요. 올해의 theme은 ‘갈등을 줄여 에너지를 내 삶에 집중하라’였는데요, 돌이켜 보건데 약간의 성과는 있었던것 같네요.

새해의 theme은 ‘거룩한 반복’으로 정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일전에 제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했었고 또 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들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꾸 반복해서 듣게 되요. 온갖 좋은 생각과 이론 그리고 종교와 철학들이, 나와 주변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의미있는 도움을 주는가 하는것으로 궁극적인 결판이 난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데요, 그 궁극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거룩한 반복’으로 이루어낸 ‘습관’이라고 확신합니다.

얼마전, 시내에서 일하는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오랜기간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아이를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입과 항문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다’였는데요 (아이가 얼마나 impressed됬겠어요?) 차차 나이를 먹으면서 간경화가 생기는지 (간뎅이가 붓는지), 사람 사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그렇게 ‘이것이 좋다’ ‘저것을 해야한다’ ‘요것은 꼭’ 하면서 살았던 그 시절이, 물론 현재의 삶이 그 시절의 결과임은 부정하지 않지만, 과연 우리 인간의 본성이며 우리가 마땅해 가야만 하는 유일한 길이었던가에는 상당한 의구심과 회의가 들어요. 자타가 공인하는 소위 ‘독고다이’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의구심과 회의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도 들어요. ‘인생은 들판에 핀 풀꽃과 같다’는 한 유명한 스님의 말씀을, 년전에는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 이렇게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년동안 이 블로그에, ‘잘난체 한수 가르치려는 글’을 쓴 적도 있었고, ‘강한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글’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한때 10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썼던 적도 있었네요. 1000일을 희망했었는데 내공이 부족했어요. 저는 이렇게 블로그를 쓰고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것 같아요. 결국은 제 좋자고 하는 일이지요 🙂

이곳은 큰 휴가를 앞둔 조용한 시기입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지난 글들을 다시 되돌아 보며 정리하고 또 앞으로 다가올 한해에 ‘거록한 반복’을 잘 쓰고 읽을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남은 2019년을 잘 마무리하고 좋은 2020년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