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어렵고 말이 줄어든다

비난하고 힐난하는 마음은 아마도 그대로지 싶은데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줄어드니 글쓰기가 어렵다.
내세워 자랑하며 잘난체 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지 싶은데
그 다음에는 뭐? 이런 생각을 하게되니 주절주절 말하기가 어렵다.

이곳에서 산 지난 30여년 나는 다른 사람들의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지선다 객관식 보다는, 내 자신의 생각과 자발적 발상을 (inner self) 앞세우는 주관식 답안같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결과야 누가 낫다 못하다 판단하긴 어렵고 또 내가 그럴만한 환경에서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러한 측면도 있었다.

내게 이미 일어났던 일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일어났던 일을 내가 어떻게 해석했었고 또 받아들였던가가)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보이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보아왔던 시각이 달라지며 따라서 그에 대한 나의 반응도 달라짐을 자주 보게 된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지만, 세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부인 사람도 변하고 또 그 일부인 나도 변한다.

비난과 힐난 대신에 침묵을 선택하기가 옛날보다 쉬워졌다. 마치 나이가 들면 단식하기가 쉬워지듯이.

우쭐대며 내세우는 대신에 내 자신을 더 자주 들여다 보는 일이 옛날보다 많아졋다. 마치 무인도에 살고 있는양.

사람은 마땅히 더불어 어울려 살아야 한다. 동시에 떨어져 홀로 살 줄도 알아야 한다.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말 쉽지도 않고 또 흔하지도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오늘날의 나를 가능케 해주신 사랑하는 이들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신에게 당연한 것들

당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은 무었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한번이라도 따로 생각해 본적조차 아마 없었을테니까. 그래야 또 정말 당연한 것인거고. 이번 기회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지.

당신 개인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가족에게도 또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따로 생각조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그야말로 당연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당신이 자라나서 몸담은 사회나 혹은 나라에서도 너무나 당연해서 논의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수십년전 내가 잠시 몸담았던 회사에서, 몇해전부터 우연히 일하게 된 우리아이는 종종 회사주변 바닷가를 점심시간에 달린다고 한다. 지난날 나도 수백번은 족히 달렸던 그 아름다운 바닷가를. 한번도 보여준 적도 이야기를 한적도 없었지 싶은데, 이십년 세월이 흘러 아빠의 족적이 가득한 그곳에 아들의 족적이 겹쳐지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자라날때 우리가족에게 당연했던 것들은 과연 무었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때 나는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매년 그리고 오래 참가했었다. 항상 가족과 함께 갔었다. 그때 아기였던 아이의 눈에 아빠가 산천을 달리며 연습을 하고 또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 멀리 갔다가 한참만에 다시 나타나는 모습들이 반복되어 각인되었지 싶다. 한번은 마라톤을 완주하던 마지막 구간을, 결승선 근처에서 엄마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아이를 불러내 손을 잡고 같이 결승선을 통과했던 적도 있었다. 일부러 무었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자연스레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우리집에서는,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짧은 빤스를 입고 비슷하게 차려입은 다른 무리들과 산천을 그리고 도시의 아름다운 길들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이 ‘그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장성하고나서, 아빠가 했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그것을 자기도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친구분 딸에게 조언을 했던 적이 있다. 키도 크고 눈도 큰 사람들이 (내가) 말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처음에는 위압감을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맞짱을 뜰 자격과 능력이 되기에 그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항상 맞짱을 뜨고 맞먹는다는 마음을 가져라.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맞짱을 뜨고 맞먹게 될테고 그때는 맞짱을 뜬다 맞먹는다 그런 생각조차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런 수준이 되어야 ‘정말로’ 맞짱을 뜰수가 있다. 이런 비슷한 말이었지 싶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던 그 공부 잘한다던 젊은이는 지금 그넘들과 맞짱을 ‘정말’ 뜨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졸리는 눈까풀이라던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은 무었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자기를 정확히 보고 아는 것’도 그중 하나지 싶다.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등 집단속에서 배우며 성장한 구성원이, 그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것들을 넘어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고 또 안다는 것은 극히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교공부나 머리로만 이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상당한 경험으로 여러차례 확인 하였다. 골프를 쳐보면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지? 나는 어쩌다 괜찮은 골프장 회원이 되어, 오선의원 + 장관 + 박사 한꺼번에 한 사람, 육참총장, 국제기업 사장, 의사나 박사는 수도 없이 (은퇴한 사람들 포함) 같이 라운드를 해보고선 깨달은 것이 많다. 후진 삶을 살면서 카르마가 쌓인 넘도 보았지만, 동시에 수십년 지역에 의료봉사를 했던 의사가 그렇게 좋은 일은 하고서도 카르마를 쌓은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세상을 그리고 상대하는 사람들을 시도때도 없이 자기 병원에 찾아온 환자 취급하는 버릇에 인이 밖혔더란 말이다 🙂 그 카르마와 이고로 말미암아 장차 노년에 괴로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이 되더라.

골프를 치면서, 지위고하 성공여부를 막론하고 적어도 그 시간 그 장소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때로 어리석고 쪼잔한 중년들과 노인들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더라. 그리고 아주 지능적으로 속이는 정말 나쁘고 위험한 넘도 보았다. 아빠 따라온 어린 인디언 소년과 클럽에서 주최한 매치플레이를 하는데, 우연을 가장하여 최악의 벙커 라이를 멀쩡하게 개선한 뒤에 벙커샷을 하여 그 홀을 이기고선 결국은 매치플레이에서도 승리하는 꼴을 감명깊게 보면서 인간과 인생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존 지사장이라는 그넘에게는 무었이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게는 또 무었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또 당신에게는?

심사숙고할 주제가 아닐 수가 없다.

종교, 본능, 무식 그리고 한잔 더

나이가 들면서, 인간이 만들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모든 것들은 하물며 종교까지도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는 뗏목이며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이 우연히 타게 된 배를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음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우연히 가지게 된 종교가 그 사람일 수는 없다. 인간이 종교로 말미암아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배에서 우연히 만난 승객들끼리 치고 박는 것이 그 배의 탓이 아님과 같다.

늘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었을 하고 있는가? 이것이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때때로 ‘이것이 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자문해야 한다. 만취하여 배우자를 줘패는 넘이 순간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내게 도움이 되며 내게 행복을 가져오는 것인가?’ 참으로 자문할 수 있다면 그 넘을 결국은 달라지게 된다. 인간이 종교를 이유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어떤 형태로건 싸우고 다툴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상대방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것인가?’ 끊임없이 자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종교가 실패하고 종교가 다투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실천한답시고 언행하는 인간이 실패하는 것이 마치 종교가 실패하고 다투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인간이 실패하는데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둘 다 우리 모두가 극복하고 벗어나기 매우 어려운 것들이다. 첫째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본능과 감정들 때문이다. 숫사자들끼리 암컷들을 차지하기 위해서 벌이는 싸움 그리고 때로 맺는 숫사자끼리의 동맹은,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힘과 지능을 가지고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서로 치고 박는 것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인간의 본능은 인간이 종교를 참으로 (주로 개인 차원에서) 실천하는 최대의 걸림돌이 된다. 때때로 이러한 본능을 콘트롤 하거나 혹은 제압 (?) 하는 것이 마치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듯 보이기까지 하다. 둘째는 무식 때문이다.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나는 ‘무지’는 정말 모르는 것이라 정의한다. 내가 미분적분이나 스웨덴어를 모르는 것은 무지한 것이다. 화성의 표면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인간을 되돌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내가 (기회가 아직 없어서) 무지한 것이다. 무지는 도움이 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집단을 이루어) 직접적인 해를 크게 끼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무식’은 시대나 상황에 걸맞는 인간의 도리 혹은 길을 모르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때 모른다는 의미는 대부분 ‘듣고 보아서 머리로는 아는데 무슨 이유로던지 내게 register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이 그곳으로 향하지 않으며 또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분적분을 잘 알아도, 스웨덴어를 배워서 잘 구사해도, 화성의 표면을 보았어도, 공룡의 화석과 그 과학적 발견을 보고 배웠어도 ‘더 이상 스스로 하는 생각이 없으며 나아가 그것들이 내 삶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 무식의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집단 차원에서 집단의 영향을 받아 일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두가지 즉 인간의 본능과 무식이 종교와 결합하면 그야말로 가관이 된다. 우연히 한배를 탄 넘들끼리 (개인 차원에서) 치고박음은 물론이려니와 주변에 있는 다른 배에까지 기어올라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집단 차원에서) 동참하기까지 한다. 이미 말했듯이 이런 인간의 본능과 무식은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며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가방끈이 길어도 지갑이 터져도 미모가 출중해도 또 큰 모자를 써도 전혀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들이 본능이 더 추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무식이 더 해로운 꼴로 구현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회사로 오가는 언덕길에 매우 고급 주택가가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집들이 즐비하며 성공한 (주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2주에 한번 재활용 병들을 시청에서 마련한 박스에 담아 집앞의 길가에 내놓는데 뚜껑이 없으니 오가며 지나는 길에 자연스레 박스 안이 보이게 된다. 그 큰 박스에 집집마다 한결같이 쌓아 놓은 온갖 술병들을 보면서 (대부분 비싼 와인병이나 고급 술병들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는 인간과 인생을 생각하며 씁쓰레 웃게 된다. 나도 한때 그 만큼 비싼 술들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정말 남부럽지 않게 (?) 마셨었다. 와인 특히 화이트 와인이 세계적인 나라에 사는데 그리고 아주 좋은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가 바로 옆에 있는데 어쩌겠나. 그 정도 크기의 박스에 와인병과 각종 술병들이 그득히 차는 것은 잠깐이다. 맥주병들은 애교라고나 할까. 산소같다는 뇬도 리처드 기알도 딜라이 라말도 그 누구도 그렇게 레드 와인을 들어 부으면 아침에 피똥 비슷한 색깔의 시커면 설사를 줄줄하게 된다. 무슨 와인과 특히 잘 어울린다고 품위있게 함께 드셧던 (아마도 블루) 치즈도 뜨뜻한 뱃속에서 발효가 되어서 그런지 그야말로 모진 (?) 향내를 풍기면서 같이 나온다. 누가 예외일 수 있겠는가?

아침에 밑을 씻고 낮에 술이 깨면 저녁에 다시 반복 그리고 다음 날이 또 오고… 그렇게 술병은 쌓여가고 인생은 흘러가는데 본능과 무식은 늘 그자리…

사는 것이 이 모양이다 🙂

쪼르륵 소리 억울한 마음

지구의 자전시간이 늘 24시간은 아니었고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배워서 일게 되었다. 지구가 탄생했던 아주 오래 전에는 하루가 5시간 정도였었고 (자전주기가 5시간) 그만큼 시간이 더 흐른 먼 미래에는 하루가 1천 시간이 넘을 것이라고 하더라. 우리의 인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가 🙂

한국어와 영어가 다른 줄이야 누구나 알겠지만 혹시 생각해 본적이 있나 한국어에 있고 또 흔히 사용되는 어떤 단어가 영어에는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물건을 지칭하는 단어말고 어떤 상황이나 느낌 혹은 생각을 지칭하는 단어중에서 말이다 (다시말해 그 언어의 배경인 문화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골프를 치다보면 2가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번째야 물론 자신이 좋은 샷을 쳤을때 느끼는 즐거움이겠고, 두번째는 동반자가 나쁜 샷을 쳣을때 ‘은근히 느끼는 일종의’ 즐거움 혹은 기쁨이 있다. 이런 두번째 상황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기쁨을 한마디로 정확히 표현하는 한국어 단어는 없지 싶다. 그런데 독일어에는 있다. Schadenfreude 라는 단어가 정확히 그런 (야비한) 즐거움과 기쁨을 의미한다.

이곳에 오래 살면서 동일한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혹은 영어 표현을 찾아보려고 가장 많이 애를 써보았던 한국어가 ‘억울하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다못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아이에게까지 (아빠 닮아 공부는 못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나왔다) 상세하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상황 예까지 들면서 설명을 해봐도 고개만 갸우뚱거리다가 우리도 아는 일반적인 영어 단어를 나열하지, 위에서 예로 들었던 독일어 Schadenfreude 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억울함’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나 표현은 말하지 못하더라. 아마 없지 싶다.

살 좀 덜 찌고 더 건강 장수 하려면 배에서 나는 ‘쪼로록’ 소리와 가까워지면 된다고 많은 유식한 사람들이 말하더라. 평온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려면 머리에 떠오르는 ‘억울한’ 마음과 가까워지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까워진다는 의미는, 부드럽게 대하여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내치거나 난폭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억울함은 반드시 풀어야만 (상대에게 표현하고 전달하여 내가 아닌 그를 바꿈으로써) 속이 시원해지고 그래야만 결과적으로 내게 행복이나 이익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어에 ‘억울함’을 표현하는 단어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근거없이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착각 아닐까?

영어에는, 한국어처럼 문장 끝을 변형시켜 같은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존대 하대를 실어서 표현하는 것이 없다. 예의 바른 우리 아이도 엄마 아빠한테 ‘헬로’ 라고 하지 ‘헬로까’ 혹은 ‘헬로세요’ 하지 않는다 🙂 ‘억울함’에는 ‘당했다’는 일종의 수동적인 태도와 ‘상하관계’에서 자신이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받아들이는 자세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내게 무언가 잘못을 해도 나는 ‘기분이 나쁘고 성이나지’ (영어 표현에 모두 있다) 아이에게 내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더 배운 사람, 더 높은 사람, 더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항상 저절로 상하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 싶다. 아니 그런 것들이 항상 저절로 상하관계를 만들도록 내 마음에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는 안되지 싶다.

영어를 모국어로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우리 아이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도대체 그 의미조차도 모르는, 하지만 한국인인 그대와 내게는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철썩 붙어 있는, 이 ‘억울함’ 이라는 마음. 그런 기분이나 감정이 들때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자. 무의식 중에 자기 스스로를 ‘당하는 입장’ 그리고 ‘아래인 입장’으로 항상 저절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 유사한 결과나 상황에 처해져서 기분이 나쁘고 성이 나도, 내가 ‘주는 입장’이었다면 (‘저지른’ 입장이었다면) 그리고 서로가 ‘동등한 입장’이었다면 억울한 마음은 없지 않을까? 언어와 문화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구성원들의 생각을 규정 짓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스스로를, 자기도 모르게 구속하고 규정 짓는지도 모른다.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도 위험하고 좋지 않은 카르마를 잉태할 가능성이 있지만, ‘억울한’ 감정이 개입될때 그것이 불러올 위험과 카르마는 아마도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mindfulness 란 어쩌면 이런 것들을 좀 깨닫고 생각해보고 또 조금이나마 자신의 삶에 실천으로 옮겨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해탈이 뭐 별거겠나?

뒤죽박죽 인간 엉망진창 인생

한 이십년 전에 어떤 가족에게 은혜를 (?)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한국인 종교모임에 속하여 자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놀았었는데 (?)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었다. 서로 의지가 되기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민와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찌그러진 상황에서, 에헴 소리도 어쩌다 서로 좀 내보면서 그리운 한국의 맛도 (?) 보고 그랬었다.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며 놀던 한 가족이 한국으로 급히 귀국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부인이 남아 집을 팔고 다른 정리를 마치고 뒤따를 계획이었다.

집은 빨리 안팔리고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이웃중에 변태성욕자가 있어 여자 혼자 사는 줄 알게 되면서 빨래줄에 널어둔 속옷이 자꾸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집 뒷쪽 문들을 드라이버로 쑤셔서 강제로 열고 침입하려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지난날 웃으며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불렀던 나를, 그 부인이 직장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집을 팔고 차를 팔아 송금하겠으니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한국으로 즉시 귀국하라고 하였다. 변호사를 찾아가 법정대리인 절차를 밟은 후, 복도에 알람을 설치하고 몽둥이를 침대머리에 두고서 그 집에서 한두달을 살았다. 오래 안팔렸던 집을 팔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서 집을 씻어내고, 실내를 꾸미고 잔디를 깍아야 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부동산업자들을 연일 상대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집을 팔았다. 그리고 내 차도 아마 그렇게 못했을텐데, 그 사람들 차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이 그 차를 샀었던 딜러에게 찾아가 부족한 영어로 사정하여 팔았다. 집도 차도 예상보다 나은 가격에 팔게 되어 기뻣다.

그 여자의 오빠들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툭 내려와서 돈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내게 말하였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가 같은 도시에 살았는데? 골프 치시느라 너무 바쁘셨구나. 존경스러운 그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해주고 나는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 변태는 늘어진 내 사각빤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몽둥이도 다행히 사용되지 않았다.

그 내외는 나를 잘 알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알았었다. 나는 한장의 편지, 한통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은혜를 입었다. 참으로 고맙다’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 한번이면 난 충분했었을 것이다. 웃으며 작별했었을 것이다. 어차피 떠난 사람들이었고 이미 인연이 다한 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외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여 했던 적선이었다. 아무런 (물질적인)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내 주소도 알고 전화번호도 알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장의 편지, 한번의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고 이곳으로 귀국하는 (관련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선교사 편에 몇가지 물건을 사서 보냈다. 우리 집을 찾아서 그 물건을 전달하던 선교사가 우리 내외에게 말했다 ‘이런 물건들을 전달하게 되어 나는 유감스럽다. 나라면 결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가까운 시장에서 급히 이것저것 보이는데로 사서 넣었던 모양새였다. 물론 사는게 바빳겠지. 귀국하니 힘들었겠지. 그리고 고맙긴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편치 않은 상대에게 어색한 표현을 굳이 하기도 어려워서 차일피일 했었겠지. 나도 차차 살면서 깨닫는데, 흉내 내기는 쉽지만 참으로 사람 노릇하기는 (비록 소소한 상황에서 조차도) 정말 쉽지 않더라.

세월이 흘러서, 그때 그일이 있어났을 당시에 (내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던, 그 소위 형제 자매들과 이 부부가 한국에서 서로 오가며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것을 들었을때 생겨났던 내 마음의 소용돌이를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 난 뭐냐? 도대체 내가 뭘 한거지? 원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가?’ 그 격한 감정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마도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인연은 오묘하게 오가는 것이다. 굳이 내가 받은 상이 (?)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는 하찮은 상이 아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이며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원한도 실망도 별로 없이 지난 그 일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나 역시 예외없이 뒤죽박죽이었고 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좋아하겠나? 하지만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그 실체는 변하지 않고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현명한 스승이 말하였다. 십년 이십년을 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발전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보여 절망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와서, 무슨 호르몬 변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차차 쉬운 상황에서나마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을 좀 더 보게 된다. 내 자신도 흠칫 놀란다. 한편으로는 믿기지도 않고 의구심도 든다. 이래봤자 크고 엄청난 상황에 부닥치면 한방에 훅 날아간다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은근이 올라온다 ‘사람이 백날에 아흔 아홉날은 그저 소소한 것들로 마음을 끓이며 놓았다 들었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데, 백날에 하루 왕창 깨질지 몰라도 아흔 아홉날 나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인간이 뒤죽박죽이고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참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부와 가족들, 아이들도 이제 장성했겠지. 잘 살길 바란다. 서로 마주보며 과거사를 들추어 누가 무었을 했었고 무었을 하지 않았었던가를 따지며 어리석게 엮이지 않는한,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싶다. 용서? 누가 뭘 용서 하겠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나도 마이 바다 무따 아이가. 좀 되돌려 준 것뿐. 아마도 플러스 마이너스 0 이 되었지 싶다.

작년에 내가 집안에 큰 일을 당하고 나서 ‘짐작하고 알면서도 결국은 침묵했었던’ 한때 ‘친구’라 불렀던 그 인간들에게도, 그 부부 그리고 그때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함께 먹고 마시던 그 사람들에게 옛날에 내가 가졌던 그런 감정이 생겨났었다. 더 이상 ‘친구’라 부르지 않으니, 집에서도 무어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 불편할 때가 어쩌다 있다. ‘그 인간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대충 알아 듣는 듯 🙂

이번에는 십년 세월이 흐르지 않고서도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다. 친구라 부르기 싫으면 이름을 그냥 부르면 되지 않겠나 🙂 그리고 그들이 비록, 내가 궁지에 몰릴때 몽둥이 들고 자면서 집과 차를 대신 팔아주진 않을 사람들이지만, 전화 한통 편지 한장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고 한결같이 바쁜 사람들이지만, 그나마 좋은 시절에 꽃놀이는 어울려서 다닐 수 있지 않겠나? 전에도 함께 먹고 마시며 놀았으니 다음에 만나도 그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또 먹고 마시며 꽃놀이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나? 혐오의 마음이나 감추거나 누르는 감정은 별로 없다. 인간이 그러하기에, 사는 것이 원래 이 꼴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기에. 또 나도 꽃놀이 좀 어울려 다니고 싶기에 🙂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좀 더 들리고 더 보이게 된다. 반대로 일단 받아들이지 않고 장막을 쳐버리면 들어야 할 것도 안들리고 봐야 할 것도 안보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막히고 단절되어 양쪽 모두 크게 잃게 된다. 상대방이나 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