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제자

탁구제자가 생겼다. 이름이 좀 특이한데 ‘내 왼쪽’이라고 🙂

작년중순부터 오랜 공백뒤에 재개한 탁구에 재미를 붙여, 규칙적으로 집에서 로봇으로 연습을 하고 회사에서 동료들 매주 시합을 그리고 또 클럽에도 간간히 가서 모르는 고수들과도 한번씩 붙어 본지가 이제 반년이 되었다. 나는 소위말하는 구식탁구라, 요즘은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펜홀더 채를 사용한다. 백핸드에 (특히 아마추어들은) 큰 약점이 있지만 동시에 포핸드 드라이브나 스매쉬를 강하게 구사하기 수월한 강점도 있다더라.

탁구가, 한쪽 팔과 어깨 손목을 (그리고 허리까지도 한쪽 방향으로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편방향 운동인지라, 나도 규칙적으로 치게 되면서 몸에 도움이 되는 면도 많지만 또한 전부터 늘 좋지 않았던 오른쪽 어깨에 상당한 무리가 가해지고 자주 통증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펜홀더 라켓을 쥐고 자주 장시간 탁구를 치면 (라켓 뒷면을 받치는) 중지 첫째 마디가 휘면서 통증을 느끼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러면 남들 다하는 쉐이크핸드 채로 (밥주걱처럼 생긴 채를 손바닥 전체로 감싸 쥐는) 바꾸면 되지 않는가 생각하겠지만, 그게 또 해본 사람들 말에 따르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고 한다. 시간도 길게는 수년 걸리기도 하고. 평생 익숙해진 수저사용 버릇을 여간해서 고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작년에 탁구에 재미 붙이면서, 집에서 연습할 상대로 중고로봇을 하나 싸게 장만했었다. 이것이 사람과 달라서, 내가 공을 개판으로 쳐도 성을 내거나 다음에 만나면 슬그머니 피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잇점이 있다 🙂 어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왼손으로 쉐이크핸드 채를 들고 로봇을 상대로 탁구연습을 해보았다. 내가 이글을 시작하면서 말했던 새로운 제자.

골프 코치중에서 유튜브 활동등을 통해서 오래동안 잘 알려진 ‘숀 글레멘트’라는 PGA코치가 있다. Shawn Clement’s Wisdom in Golf 내가 보기에 아주 좋은 골프레슨이 거의 무료로 제공되니 그의 유투브 채널을 한번 보시라. 거의 5-10년 진행해온 레슨들이, 내용도 좋지만 또 양도 엄청나서 어쩌면 당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뜬금없이 이 골프코치 이야기를? 왜냐하면 이 사람은 (원래 오른손잡이면서) 왼손으로도 골프를 거의 오른손과 같은 수준으로 치는 사람이거든. 처음봤을때는 입이 딱 벌어지더라. 이것 정말 어렵지 않겠나? 내가 아는 어떤 골프코치가, 옛날에 자기가 코치스쿨에 처음 들어갔을때 (초보자들이 골프 배우는 애로를 이해하라고) 학교에서 왼손으로 골프를 몇시간 치게 했었단다. 그만큼 어색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쉐이크핸드 탁구채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일본 펜홀더 채보다 대략 1/3정도가 더 무겁다. 고무가 양면에 모두 부착되기 때문이다. 말이 그깟 1/3인데 실제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엄청나다. 같은 채라도 고무를 바꾸면서 채전체 무게가 10%만 늘어도 (1/3은 커녕) 단번에 느낄수 있고, 게임 지구력은 물론 부상에도 크게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 나도 그런 경험을 약간 하기도 했고. 내 왼팔. 왼손목. 왼어께 그리고 복근을 (위에서 볼때)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것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신상품, 새것들이다. 이 새것들을 어제 처음 사용해 보았다. 무거운 쉐이크핸드 채를 들고서도 신나게 씽씽 🙂

여태까지 오른쪽 어깨나 중지에서 심한 통증을 느낄때면 그저 마사지를 하면서 이삼일 탁구를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하체를 쓰는 다른 운동을 하긴 했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내 왼팔’ 제자와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이라 겨우 공을 뚝딱 퍼드득 넘기는 수준이지만, 간혹 시도해본 포핸드 백핸드 드라이브가 신나게 들어갈 때도 있더라. 어제 이 새로운 제자와 탁구를 치면서 땀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고서 내심 기뻣다. 새로운, 어쩌면 좀 웃기는 도전이지만, 내가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운동의 옵션이 하나 더 생기고 또 조금씩 늘고 이루어 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누릴 기회도 주지 않을까 한다. 그렇치 않아도 내게 매번 깨져서 성이 나 있는 직장 동료들에게, 어느날 쉐이크핸드 채를 왼손에 들고서 한판 붙어 볼래 하면서 약올릴 계획은 전혀 없다.

아! 철수 시리즈 1

성공의 요소 – 겁을 상실한 철수씨

가끔 아내와 인생 성공의 요소들은 과연 무었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을때가 있다. 유치원 선생님 경험이 많으니,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유전적 혹은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이야기 할때도 있고 (복잡한 레고등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들의 ‘하늘과 땅만큼 다른’ 태도와 방식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할 예정이다) 우리 아이 친구들의 다양한 삶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이곳에서 한때 인연을 맺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민 유학 왔던 사람들의 삶에서 본 성공과 실패의 공통점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먼저 지금 떠오르는 내 잘났다는 이야기 하나.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지내기 힘들고 어려운 순서가 ‘여행 -> 유학 -> 취업’ 아닌가 싶다. 이 세상 어느나라 어디에서도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상대방 주머니에 넣어 주면’ (합법적인 방법을 나는 말하고 있는데, 설령 불법적인 방법을 당신이 굳이 포함한다고 해도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래도 아마 적용될 듯) 내가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얻을 수가 있다. 여행은 물론이고 유학도 마찬가지. 일부 돈을 내고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극소수의 대학들을 빼면, 상당히 좋은 대학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학들이 당신을 (사실상 당신 주머니에 있는 돈을) 쌍수를 벌여 환영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행지 사람들이나 유학대상기관들은) 당신이 적당히 기존의 맴버들과 어울릴만 하기만 하면 그리고 당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는 동안 별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줄 것이다. 아니 팔 것이다. 그러니 살 수가 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그런데 반대로, 이 세상 어느나라 어디에가도 ‘그곳 사람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 넣기’는 (역시 나는 합법적인 방법을 의미하고 있는데, 혹시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불법적인 방법을 포함해도 내가 말하려는 것이 여전히 적용될 듯) 위에서 말한 그 방향보다 열배 백배는 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외국여행 다녀와서 무슨 대단한 성취를 한것처럼 떠들거나 혹은 유학가서 무슨 학위를 획득했다고 잘난체 하는 것을 약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철수씨가,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는 바로 그 사람, 최근에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책을 냈단다. 이 양반 한국을 떠나 독일 미국 연구소에 잠시 적을 두며 있던 지난 한해 동안에 쓸쓸하고 괴로운 마음에 달리기를 좀 했던 모양인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내게 딱 들었던 생각이 ‘이 양반 또 다시 겁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일년 골프쳐서 보기플레이어 된 사람이 골프에 관한 책을 출판한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 나는 이것이 머리가 좀 돌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짓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양반 몇년전에 처음 정치무대에 등장했을때 사람들이 ‘당신 무언가를 다스리거나 경영하거나 혹은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나라와 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발칙한) 발상을 하는가’ 물었을때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생각에는 어떤 사람이 2미터 깊이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잘 할 능력이 있다면, 태평양을 건너는것도 그 능력을 활용하면 가능하지 싶다’고.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철이 없고 겁을 상실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좀 그랬었고. 이 양반 자신도 어쩌면 그것을 그 이후 몇년 동안 정치판에서 처절하게 당하면서 경험을 했던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부작용이 어쩌면 외국에서 미친듯이 달리기?

아내와 인생 성공의 요소를 이야기 할때 내가 가끔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 ‘겁을 좀 상실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런 객관적으로 증명할 경험도 능력도 전혀 없는 사람이, 술취한 호기 같은 것으로 겁을 상실한 생각을 하고 그런 짓을 잠시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깨면 그런 생각은 싸악~ 사라지고 그런 행동도 쑤욱~ 중지된다. 그런것 말고, 비록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라도 무언가 경험과 능력을 스스로 얻어보고 또 쌓아본 사람 그런 사람들 중에서 좀 겁이 없이 (판을 갈아치우자는) 발칙한 발상을 하는 사람이 크게 성공하고 정말 무언가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귀때기 새파란 나이에 이곳에 올때 겁대가리가 없었다. 세상을 모르고 앞뒤도 모르고 또 잃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배수진? 무슨 배우 이름인가? 그런데 완전 빵점은 면하는 딱 하나를 우연히 가지고 왔었다. 다른 친구들, 지금은 박사도 되고 원장도 되고 사장도 된 내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열심히 전공, 영어 그리고 취업 공부할때, 내가 혼자서 컴퓨터실에서 독학으로 익혔던 CAD기술과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태동기였지만 영어권에서 더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여기에 와서 이렇게 써먹을 것을 예상하고 작정하여 독학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을 열어 오래 또 멀리도 왔다. 이곳 사람들 주머니에 든 돈을 내 주머니로 합법적으로 옮기면서 🙂 물론 CAD는 인연이 다해 오래전에 내 인생에서 멀어졌고 지금은 몇장의 도면만 내게 남아 있지만. 그때, 지금도 가까운 직장 선배와 (아마도) 업계 최초로 CAD를 활용하여 도시설계를 했었던 곳을 구글맵으로 볼수있다. 그곳에 사람들이 정말로 산다더라.

철수씨의 책을 우연히 읽은 아내는 철수씨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쪽은 엄청나게 똑똑하고 부자요 너무나 알려진 사람이고 다른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빼면 🙂 나도 그와 내가, 아니 우리 내외 모두가 닮은점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이 부유하고 똑똑한 사람이 독일에서 한해를 사는 모습을 잘 담고 있는 그의 마라톤 책을 읽고서, 자신의 이민초기 경험도 떠올리면서, 이 사람이 참으로 겸손하고 진심이 있는 훌륭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능력과 성공여부에는 비록 관심이 없지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상한 여자같은 종자들 말고, 그 전후에 그 자리에 계신 훌륭한 인격자분들을 이어서 만약 철수씨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한국은 한 단계 위로 도약할 것이다. 돈? 경제? 그런건 모르겠고. 품격으로 말이다. 사람만 인격이 있고 품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라에도 그런 것이 있다. 한 나라가 노는 수준이 있고 국격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보아 왔다. 어느듯 우리도 이런 기준으로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왈가왈부 해보는 수준에 까지 도달했네! 훌륭하다 대한민국 그리고 철수씨도.

위빠사나 – 깨달음에 이르는 길, 첫번째 이야기

최근에 집중명상과 소위 ‘삼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글의 마지막에 ‘그럼 뭐?’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은 (내가 보고 들은데로) 좀 해보려고 한다.

먼저 그 글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다. 붓다께서도 집중명상의 (팔리언어로는 Samatha 혹은 Samadhi그리고 영어로는 calm meditation 혹은 concentration meditation으로 번역) 도사였으며 그것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을 남기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붓다께서 강조하신 집중명상은, 고요함 속에서 어떤 규칙적인 움직임에 (예를 들자면 자신의 호흡)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지, 어떤 일이나 문제해결등에 몰입하는 행위를 의미하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과 관련된 집중명상은, 산업공학자가 반도체불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오랜 기간 밤낮없이 몰입하는 것아니 바둑이나 만화 삼매경에 빼지는 것과는 다르고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한 어떤 복잡한 문제를 손쉽게 단 한번에 해결하는 ‘silver bullet’은 없다. 일전에 언급했지 싶은데,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한두줄의 식으로 혹은 한두마디 요약으로 설령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나 관련도 없고 또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싶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것으로, 예를들자면 GPS처럼, 보통사람들의 삶에 관련이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서 우리와 관련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또 누군가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면 우리가 그속에서 상대성원리를 발견하던지 느끼든지 그렇지도 못한다는데에 딜레마가 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쨋던.

그렇게 ‘한줄’ ‘단번에’ ‘당장’되는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대도 나도 ‘때로는’ 이런 것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는 보통 사람들이기에 오늘은 그 비슷한 해결책을 한번 말해보려고 한다.

이전 글에서 말했던 ‘그럼 뭐?’에 대한 단 한줄의 대답은 ‘집중명상으로 고요해진 마음으로 위빠사나 명상을 하라’이다. 이게 무슨 말? ‘위빠사나 명상’은 지혜를 구하는 명상이라고 한다. 무슨 지혜를 어떻게 구하는데? 위빠사나 명상에 무슨 거창한 비밀이나 엄청난 방법이 감추어진 것이 아니고, ‘위빠사나 명상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생성과 소멸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또 지켜보는 마음의 훈련(수련)’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당신이 어제 산 번쩍이는 새 승용차도 당연히 들어 있고, 올해 승진한 당신의 직업, 지금 당신 머리속을 오가는 생각들 그리고 하다못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달’ 이렇게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물론 처음에는 이미 과거에 발생한 어떤 생성과 소멸을 떠올리며 생각하게 되겠지만, 차차 생방송으로 발전하여 바로 지금 당신 마음속에서 그리고 머리속에서 생멸하는 그 욕심 (혹은 욕망), 혐오 그리고 환상 (혹은 착각), 이 세가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겠다. 이렇게 오래 잘하면 당신도 해탈하고 열반에 도달한다고 붓다께서 가르치셨으니, 이제 목표와 그에 도달하는 길이 한줄로 정리가 되셨나 🙂

이 직접적인 가르침은 한두해 전에 티라다모 스님께서 호주에서 하신 설법에 매우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목록 위에서 대여섯째 줄에 등장하는 ‘Calm meditation and observing greed hatred and delusion’이 바로 그 설법이 되겠다.


작년말에 탁구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동영상 몇개를 관심있어 하는 친구를 위해서 올렸었다. 탁구를 아마도 많이 해보지 않은 그 친구가 보기에는 로봇을 상대로 드라이브도 걸고 스매시도 하는 내 모습이 좀 괜찮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탁구를 좀 치는 사람들은 알지 (동네탁구 수준을 넘는 정도라면), 저렇게 로봇이 규칙적으로 보내주는 스피드와 구질과 낙하지점이 일정한 공을 신나게 치는 것과 실제 경기는 하늘과 땅차이며, 그렇게 로봇으로 연습한 내용을 실전에서는 아마 십분의 일 혹은 백분의 일도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어제 신년들어 처음으로 클럽에 가서 나보다 한두수 위인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사람들과 게임을 했었다. 최근들어 백핸드 스매싱을 꽤 연습했었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수천번 백핸드 스매싱 그리고 어중간하게 뜬 커트볼에 대한 포핸드 스매싱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었다. 실전에서는 어떻게 쓰일까 약간의 기대는 있었는데 금세 그 대답을 들었다. 12-15 게임 정도를 4-5명의 다른 사람들과 붙었는데, 백핸드 스매싱을 단 한차례도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차례 어중간하게 뜬 커트볼 스매싱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하였다. 전부 넷트에 걸리고 말았다. 당신이 탁구를 좀 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참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스포츠 이야기.

MMA라고 들어봤나? Mixed Martial Arts의 머리글로 아마 ‘종합격투기’ 정도로 변역되지 싶다. 쉬샤오동이라는 중국인 종합격투기 선수가 있다. 나이가 마흔정도로 지긋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물론 실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중국 전통 무술의 실전성’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온몸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상당히 잘 알려진 사람이다. 자기 잘난체 하거나 돈을 벌려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닌듯 하고, 중국인들에게 ‘엉터리 전통에 매달려 눈뜬 장님으로 21세기를 살지 말고, 현실을 자각하고 장차 실제로 더 부강한 중국 더 강한 중국 무술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당히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중국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물의를(?) 일으키는지 당신은 혹시 알았었나?

우리나라 태권도와 비슷한 혹은 더 큰 위상을 지닌 전통무술이 중국에는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이소룡을 통해서 보게된, 빠른 팔놀림을 위주로 상대를 공격하는, 영춘권 그리고 타이치 라고 불리면서 무슨 요가처럼 서구에 퍼진 태극권등은 중국인들이 크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중국 전통 무술의 대가들과 이 사람이 수차례 대결을 벌렸는데 (물론 공식적인 시합들이었다) 모든 상대를 KO로 박살 냈다. 일단 그중에서 압권인 경기 하나를 감상하시겠다. 이 두사람이 우연히 갑자기 이렇게 붙게 된 것이 전혀 아니다. 압도적인 기득권층인 전통무술하는 사람들이 온갖 비난과 비방 그리고 ‘이런 종합격투기 한다는 넘은 순식간에 한방에 날려버린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를 치고나서 성사된 경기라는 것을 알고 보시라.

압권인 장면은 코뼈가 부러지도록 얻어 터지고 KO패 당한 그 전통무술의 대가가 승부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13분15초 부근의 장면이다. 그야말로 무술에서도 쓰레기요 인간으로서도 전혀 수양이 안된 말종이라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나는 생각된다. 어떤 사람이 이런 댓글을 붙였더라. (이 전통 무술의 고수라는) ‘맞는 선수도 실제로 자기가 고수일거라고 착각을 했을것임. 주위에서 하도 떠받들어 주고 실전이란걸 경험 못해봤으니.’ 참으로 예리한 분석이요 명언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소소한 탁구경험과 이 중국인 MMA 종합격투기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었나?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과 위빠사나 명상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럼 다음에 계속 🙂

카르마는 당사자가 죽어도 소멸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좀 듣기 싫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저를 알고 좋아하는 그대들, 부디 끝까지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어떤 사람이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행했던 것들의 결과물인 카르마는 (업 혹은 업식은) 설령 그 당사자가 죽고난 후에도 쉽게 그리고 즉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 산 사람들이 휘둘리고 그들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제 자신과 또한 주변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볼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만 되고 나면 혹은 결혼만 하고나면, 그 부모인 내가 여태껏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유롭게 살게 될것으로 생각하세요? 그 아이들 나이의 두배가 훨씬 넘도록 세상을 산 당신이 바로 어제, 지난달 혹은 작년에,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했던 (그리고 또한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언행들이, 이미 돌아가신지가 오래되었거나 혹은 멀리 사시는 연로한 당신 부모님이 만들었던 어떤 카르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당신 생각의 버릇, 반응의 방식 그리고 어떤 결정들 속에 그분들의 그림자와 영향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부모자식관계나 부부관계등 밀접한 인간관계는 카르마가 씨줄날줄로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이것을 마치 날카로운 칼로 단칼에 잘라버린다고, 그 많던 카르마가 동시에 단번에 떨어져 나가고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있던 카르마 위에, 더 풀기 어렵고 복잡한 새로운 카르마를 덧붙이는것 뿐입니다. 결코 당신 곁에서 저절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그 아이들에게서도, 설령 당신이 죽은후에라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씨줄날줄을 한올두올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도 꼭 해야만 한다면 말이예요. 그래야 당신도 상대방도 또한 당신들이 사랑하는 아이들도 자유롭고 장차 행복하게 살수 있을꺼예요. 아니 최소한 당신이 그들의 삶에, 아무도 원치않고 또 아무런 필요도 없는 부당한 카르마를 평생 짐지우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쉽고 빠른 길은 두고두고 부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를 당신 자신만 감당하게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지금 본인도 깨닫듯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모님들께서 당신께 했던 것들 그리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해 보세요. 감사하고 좋았던 것들은 반복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인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좋지 않았던 것들은 당신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로건 물려주지 않으려고, 당신이 죽는날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부모는 이렇게 힘들고 소리없는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뛰어 올라간 산위에서 나는, 나의 부모들이 내게 남긴 카르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은혜를 감사함과 동시에, 내가 내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어떤 카르마를 남기며 살다가 떠나게 될 것인지 생각하며 나 자신의 건투를 빌어 봅니다.

당신도 나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며 또한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지당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방법을 선택하시길 새해 인사를 갈음하여 기원드립니다. 저도 올 한해 노력하겠습니다.

원인을 모르면 결과라도 따라해본다?

중국의 전설적인 미인이라던 월나라 서씨 이야기를 아세요? 이 미녀가 아파서 찡그린 표정까지도 아름다워서 주변 여자들이 그 표정을 따라했다고 하네요.

사무실 내 뒷쪽편에 앉아서 일하는 젊은이는 한눈에 보아도 선하게 생긴 퉁퉁한 녀석인데요 (동물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꿈이라네요. 지금은 전산일을 하고 있지만서도), 하루종일 양발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어요. 한쪽 발을 떠는 넘은 가끔 보았어도 이렇게 양발을 하루 종일 쉼없이 일하면서 떠는 넘은 나도 처음 🙂 그런데 덧붙여서 하루 종일 기지게를 켜요. 아마 나름대로는 어떤 실내체조랍시고 (혹은 마이크로포즈?) 의도적으로 하는것 같아요. 이런말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기분이 좀 안좋겠지만, 나는 이 젊은이가 세상에 산 기간보다도 더 오랜 기간동안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컴퓨터앞에서 일을 해왔어요. 물론 오래전에 한때 손목이 아팠던 적이 있었고 (아마도 손목수근관증후군 Carpal tunnel syndrome) 또 눈도 불편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지금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일하고 또 이 젊은이가 이미 끼고 있는 안경도 쓰지 않아요. 자주 단것과 기름진 것들을 사먹는 이 녀석의 버릇을 보면서 ‘야! 이넘아 나가서 좀 뛰고 운동을 해라. 하루 종일 양다리나 달달 떨고 기지게 켜면서 운동이랍시고 쥐랄하지 말고’ 이런 생각이 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요.

아마 한국이었다면, 소위 말하는 꼰대 고참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No no! 절대 그런말 하면 안되요. 개인적으로 반발할 뿐만 아니라 좀 못된 넘이라면 매니저나 인사부를 통해서 공식항의를 할수도 있어요. 이곳은 그만큼 개인주의가 발달한 곳이랍니다. 며칠전에 말했던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그런 끈끈한 직장생활은 (어떨때는 너무 끈적끈적?)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아요. 일 마치고 한잔? 어쩌다 그런 분위기의 직장도 드물게 있긴 한데요 (젊은이들이 위주인 환경 혹은 매니져가 술꾼인 직장등) 대부분은 ‘일 마치고 문 나서면 남남’이며 인생은 ‘집에서 개인적으로 찾는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예요.

한가지 이야기를 더 할까요. 혹시 짐바브웨란 나라의 무가베란 독재자를 기억하세요? 이 넘이 짐바브웨라는 나라에 끼친 해악을 들으면서 (나도 짐바브웨 사람 2명을 친구로 또 직장동료로 옛날에 알고 있었어요. 물론 이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서도요) 와! 이넘은 왜 이렇게 죽지 않고 장수를 하는 것인가? 언제 이넘이 죽어서 짐바브웨 사람들이 숨을 쉬고 정상적인 삶을 살수가 있을까 이렇게 늘 저주를(?) 퍼부었어요. 이 나쁜 넘은 100살에서 몇살 빠지는 천수를 누리다가 죽은지가 얼마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 이넘이 죽고 나서부터 짐바브웨에 평화와 번영이 왔을까요? 아니, 오기 시작했을까요? 썩은 이빨을 빼고 나면 건강이 저절로 오는 것일까요? 왜 썩은 이빨이 처음부터 생긴 것일까요? 그 썩은 이빨을 허락했던 구강환경과 생활습관이 발치로 말미암아 저절로 달라질까요? 담배를 끊는다고 저절로 건강해질까요? 대통령을 잘 뽑기만 하면, 아니면 지도층의 잘못을 끊임없이 크게 비난하고 그 사람들을 갈아치우면 세상이 정말 달라질까요?

무가베나, 지금 감옥에 있는 극히 함량미달인 전직 여자 대통령같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년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친구들 중에서 이 여자를 크게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나는 속으로, 국민의 투표로 뽑은 한 나라의 수장을 이런식으로 막말하고 조롱해도 되는가 반발심이 많이 들었었어요. 이 여자의 실체가 차마 그렇게까지 골때리는 줄은 나도 상상을 못했었던 것이었지요), 내가 생각하건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잘하면 70점 못해도 60점’ 정도가 아닐까요? 우리는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생물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또 비슷한 문화와 환경의 산물입니다. 아무리 날아도 100미터를 보통 사람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뛸수가 없고 마라톤을 절반보다 더 빨리 완주할 수가 없어요. 그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길고 오래 크게 본다면 말이지요. 자기가 못하는 것을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강요하면서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 이제 본론으로 🙂

현대에 들어와서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 중에서 집단주의나 독재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없습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이전에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개인주의가 발달해 있습니다. 사무실 뒤에 앉은 젊은이가 직무와 관련된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개인적인 버릇이나 취향 혹은 선택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는것이 ‘보다 더’ 정상이라는 것이지요.

언젠가 우연히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영국인 미녀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어요. 그녀도 나도 스톡홀름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야기를 몇시간 나누게 되었는데요, 이 멋있는 30대의 여자를 통해서 영국에서 벌어지는 ‘브렉싯’에 대해서 듣게 되었어요. 아니 Brexit이 얼마나 평범한 영국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듣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이렇게 정치에 좀 미친 상황도 어쩌다 있지만, 내가 알기에는 대부분의 경우,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Brexit도, 자기들 일자리에 그리고 삶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영국사람들이 광분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축구만큼도 영국인들의 관심을 끌지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진국 사람들이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은 첫째로는, 정치가 사람들의 삶을 현저하게 발전시키거나 크게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겠고 둘째로는, 그렇게 자기와는 별로 그리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곳에 (다른 사람들에게 왈가왈부할)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 싶네요.

무가베가 죽어도 짐바브웨는 당장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아니, 짐바브웨의 발전을 크고 길게 보면 무가베는 그저 일어날만한, 이빨을 오랫동안 닦지 않고 좋지 않은 것을 먹는 버릇을 가진 사람의 이빨이 썩는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일이었지 무슨 결정적인 일이나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예요. 히틀러가 일차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해서 부상당했을때 우연히 어떤 영국군인이 자비를 베풀어 죽이지 않았다는데요, 그때 히틀러가 죽었다고 그 다음에는 세상이 평화롭고 전쟁이 없었을까요? 어금니가 썩을 상황이 지속된다면, 오른쪽 어금니가 이미 빠져버린 상태에서 왼쪽 어금니가 썩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썩은 이빨 아프게 빼면서, 구강 관리하지 않고 나쁜 버릇을 가졌던 자신을 깨닫고 구강관리의 전기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테고요. 담배를 힘들게 끊어서 만암의 근원을 멀리했지만, 금연이 다이어트와 운동에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못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꼰대짓을 하는 것이 왜 바보짓인지 너무 길게 이야기 했나요? 왜 지나치게 오지랖 넓은 짓을 하면서 자신의 에너지와 삶을 낭비하는 것이 길고 크게 보면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리석은 짓인지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 했나요? 가진 것이 별로 없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어쩌면 월나라 서씨의 찡그린 얼굴이라도 따라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훨씬 더 이익이 아닐까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

혹시라도 이 글의 의미를 ‘무기력 무책임 무감각’ 이런쪽으로 해석했다면, 이글들을 읽어 보면 좋겠어요. 비행기 타봤지요? 이륙직후 승무원들이 비상착륙 교육할때 뭐라고 합니까?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확실하게 착용을 하고난 이후에 주변의 가족과 다른 승객을 도우라’고 하지요. 내 경험에 따르면,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단지 비상착륙뿐 아니라 일상 사회전반의 모든 일들이 바로 이러한 상식을 근거로 (이러한 상식을 인정하며)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같은 한계와 수준을 공유하는, 어떤 주어진 시간과 공간속에서 잠시 있다가 가는,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바꾼, 역사에 남을,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영웅이나 성인은 거의 없어요. 내 주변에는 확실히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 주변에도 거의 없을꺼예요. 그러니 그런것 될려고도 하지말고 찾으려고도 하지말고 애먼사람 등떠밀어 그렇게 억지로 만들려고도 하지 마세요.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확실하게 착용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주는 것’ 이것이 보살행이며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존 그리고 개인 행복 추구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옛날에 아내가 멋을 좀 부릴때면 ‘월나라 서씨 몸종’ 운운 하면서 야비하게 놀렸던 적이 있었는데요, 어쩌면 아내는, 내가 오늘에서야 깨닫는 이 진실을 이미 그 옛날부터 알고서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지도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