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텍스 장갑 같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다양한 상황에서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을 멀찌감치에서 떨어져 바라보는 기회도 더 많아진다.

인간들이 스스로 여기기에, 배웠다고 있다고 그리고 안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힘도 주고 거드럼도 피우며 사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나도 점점 닳아 빠지면서 덜 속게 되니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 배움이, 있음이 그리고 안다는 것이 마치 라텍스 장갑처럼, 끼고 있을때는 안팍 구분이 되긴 하지만, 그 장갑 자체는 너무나 얇고 연약하여 하찮은 변화나 충격에도 쉽께 찢어져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안팎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자식 낳고 몇십년을 살다가도, 마치 영원할 듯한 그 사랑이 얇은 라텍스 장갑처럼 찢어져 남남이 되는 경우도 흔해 빠졌고, 아무리 부유하고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욕망에 사로잡히고 오감에 휘둘리는 인간의 본질 앞에서 단 한치도 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마치 찢어져 속이 훤히 보이는 라텍스 장갑처럼 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안스럽고 또 내심 걱정되기도 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이런 상황이 나아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마치, 젊은뇬은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보기 좋은데 늙은넘은 아무리 발광을 해도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며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인간들이, 지성이니 사랑이니 철학이니 문화니 종교니 ‘이름붙여 드러내 감동받고 지랄떠는 것들’ 중에서 라텍스 장갑처럼 찢어지지 않고 허무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모든 인간들이 점점 ‘level playing field’에 다가 가다가 (강제 평준화 이후에) 종을 치게 된다는 것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어 가는 이야기를 하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도 있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살면 현실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를 이야기 하는 ‘The Age of Adaline’ 라는 영화도 있다. 두 영화의 결론은 ‘둘 다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깨닫게 되는 ‘라텍스 장갑같은 인간’ 이라는 것을 내가 수십년 전에 깨달았었다면 좋았을까? 혹은 죽는날까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 생각에는 ‘역시 둘 다 아니다’ 🙂

늙지 않는 비결?

일단 잠시 젊음을 감상해보자 🙂

이시형선생 말씀데로 ‘설렘’ 혹은 ‘설레임’이 이어지는 삶은 늙지 않는다. 그 설레임의 대상이 무었일지는 그대가 여태껏 살아온 삶이 결정하긴 하겠지만… 어쨌던 그대에게 설렘 있으라!

‘성장하고 있는 것들은 늙지 않는다.’ 성장이 멈추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뭐랬더라? 역시 그 성장의 대상은 한순간 정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 성장 있으라!

수포자 챔피언 돌아온 탕자

나는 수많은 다른 수학 포기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작은사연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초등학교) 초반 일찌기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린시절 비교적 호기심도 있었고 또 보통머리는 되었지만 ‘왜요?’ 라는 질문을 은근히 던지는 천성과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게으름이 결합되어 학교공부에 특히 수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내가 몹시 싫어하게 되었던 수학은 또한 당연히 나를 몹시 싫어하며 오랫동안 내게 큰 괴로움을 주었었어요. 우리는 몸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릴때는 어떤 (물리적으로) 무서운 상황이 악몽의 내용이었다면 이젠 나이가 드니 악몽도 변화 발전하여(?) 무턱대고 무서운 상황보다는 마치 바늘이 손톱밑을 슬쩍 찌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민감한 내용이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면서 그속에서 정말 현실처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차원 다른 악몽을 꾸게 되네요. 짐작하다시피 내가 어쩌다 꾸는 악몽의 내용은, 미루고 미루며 강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당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수학시험에 그나마 지각조차하여 절망속에서 우왕좌왕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런 것들이랍니다. 수학이란 내게 문자 그대로 악몽이 아닐 수가 없네요 🙂

내가 자신을 챔피언급 수포자로 규정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내겐 비극 친구들에겐 코미디’ 였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야기인즉, 대학신입생 시절 낙제했던 필수수학 과목을 복학후 다시 낙제하여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세번째 시도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사귀던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은 나의 이런 딱하고 한심한 사정을 듣고선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수학과목을 같이 수강하며 나를 도우려고 애썼는데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선 예상문제를 몇개 적어 주었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린’ 엉터리 한글 편지처럼,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수학문제의 해답들을 시험지에 ‘그려냈어요’ 🙂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바라는 성과를 내고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꺼에요. 그런 성공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순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가 어렵겠지요. 물론 그 기간의 길이 또 그 대상의 사회적 인정도에 따라서 10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또 1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하겠지요. 인생이란 어쩌면 그 10과 1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그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챔피언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 수학과목 강사께서는 내가 ‘그려낸’ 엉터리 시험 답안을 이해하지도 또 동정하지도 않았어요. 세번째 낙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그 강사의 댁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분 모친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주셨는데요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짧고 어색한 대화가 오갔어요.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는데요 ‘정상적인 학생이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 젊은 수학자를 설득할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직전학기에 저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수학과목이 없었기 때문에요.’ 곧 자신의 일생을 바칠 그 거룩한 수학에 대해서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는 저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믿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어쨋던 그분이 고맙게도 낙제를 겨우 면하게 해주어 나는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이민도 오게 되었어요. 물론 그때 그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과 함께 왔지요. 언젠가 블로그에 등장했었던 그 보살원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성공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왜?’ 그리고 ‘절실함’ 이 두가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실함’이야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왜?’에 대한 대접 혹은 반응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시절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도시설계 스케치 그리고 도면작성에 열을 올릴때 나는 ‘왜 저렇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태동기였던 CAD를 (컴퓨터로 설계도를 만들어 내는 기술) 독학으로 익히게 되었어요. 내 ‘왜?’의 흔적은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CAD를 활용한 도시설계 프로젝트였을 인천 ‘시화(시흥)공업단지’에 남아 있어요. 무슨 인간 승리나 대단한 성취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해답이 한때 세상과 맞물려 거둔 작은 성공의 예로써 해본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조봉한 박사라는 유명한 수학자를 알게 되었어요. 이분은 수학박사인 자신의 딸이 수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선 충격을 받아 초등생 딸을 수렁에서 건져내고서(?) 수학교육사업을 시작하게된 인공지능 전문가 입니다. 이분이 수학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과도 달라 보입니다. 학교측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몇시간씩 평범한 초등학생들에게 서너달 수학을 가르쳤는데요, 이들과 서울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같은 문제를 내어주고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간에 해답을 찾는가 보여주는 짧은 도큐맨트리를 보고선 나도 몹시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 수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초등학생들은 미분적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배우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원리를 배워 꽤뚫고 나서 몇가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그 똑똑한 대학생 형들과 언니들이 엄청난 공식들을 쏟아부어 풀어낸 문제들을 똑같이 풀어 냅니다. 더 빨리. 물론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또 위험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수학자가 부르짖고 또 그 초등학생들이 증명한 것은, 수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부딪치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컴퓨터나 계산기가 할수없는) 인간고유의 정신활동이지, 누군가 이미 찾아 놓은 (공식이라며 존재하는) 해답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워서 출제된 시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내와 저녁때 잠시 수학 이야기를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가 비록 좋은 수학 성적은 받았었지만 (그때 함께 수강했던 수학과목에서도 A를 맞았었어요) 사실은 나는 수학이라는 것 차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아마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공부했던 수학을 전부 잊어버렸지 싶어요.’ 이렇게 아내가 말했어요.

수포자 챔피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대도 나처럼 수학의 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나요?’ 당신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던 공식들을 더 많이 외워 더 빠르게 적용시킨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삶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점점 깨닫고 있지 않나요? 그 수학 덕분에 성공한 삶을 살면서 그대에게 얼마나 그 공식들의 인이 박히게 되었을까요?

내 삶을 통털어 지금처럼 수학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적은 일찌기 없었어요 (써놓고도 ‘어머 놀래라’) 🙂 나는 다시 수학책을 펴렵니다. 내겐 그야말로 돌아온 탕자(?) 입니다. 노스텔지어 일지도 모르겠고 또 아내말처럼 (꼬박꼬박 차려 주었더니) 배가 불러 별짓을 다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때 호기심 많고 ‘왜?’ 라고 물었던 어린 나는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수학선생님이 되어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얘야 왜라고 물었었니?’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김범석 의사선생님의 훌륭한 책에 나온 작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중에서 선생께 ‘십년만 더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간절히 말했던 분이 있었다고 해요. ‘십년 더 사시면 무었을 하실 계획이세요’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허슬러와 재키

‘허슬러’라는 미국의 유명 퇴폐잡지 창간인 ‘래리 플린트’가 며칠 전에 늙어 죽었다. ‘플레이보이’라는 더 유명한(?) 퇴폐잡지의 창간인도 연전에 늙어 죽었다.

인생무상 아닌가? 그 잡지를 그리고 그 맨션을 가득 채우는 뇬들은 그대로인데 (이름만 다르지 거의 무한대로 돌고 도는데), 그 잡지 그 맨션의 주인은 시들어 가는 좌쥐를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그것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말이다 🙂

레리 플린트의 듣보잡 퇴폐잡지가 성공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어떤 파파라치 넘이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오나시스가 나체로 일광욕하는 사진을 여러장 찍은 것을 거금을 주고 사다가 자기 잡지에 대대적으로 실어 완전히 대박을 쳤기 때문이란다. 이 여자의 성이 바뀐 이유는, 남편이 암살 당한 후에 돈 많은 그리스 늙은이와 재혼했기 때문인데, 남편이 암살당하는 순간 이 여자가 외친 ‘Oh no!’라는 비명을, 이 여자가 돈에 팔려 갈때 미국인들이 ‘Oh no!’라면서 다시 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의 5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요샌 하도 세상이 좋아서(?) 인터넷으로 그 사진들을 누구나 볼 수가 있다. 나도 봤다 🙂 무었이 보이던가? 사람들이 환상으로 만들어낸 ‘재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 유명한 여자의 적나라한 모습이, 먹고 싸고 아프다가 늙어 사라지는 인간 삶의 감출 수 없는 진실이 그녀의 나체보다도 내게는 더 선명하게 보이더라. 그야말로 ‘(전에도) 아무것도 없었고 또 (후에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우리 인간 존재의 실상이 잠시나마 보이더라. 탱큐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대도 나도 속으면서 산다. 허상에 속고 만들어낸 이미지를 진짜인줄 착각하고 또 그것들을 믿고 퍼트리고 때로 강화하기도 하면서…

하지만, 세상이 오직 보이는 그것뿐 인줄만 알고 사는 것과, 비록 내가 속고 휘둘리며 살긴 하지만 보이는 수많은 것들은 허상이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만들어낸 이미지며, 그 뒤에는 죽은 재키가 50년 전에 남긴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어떤 의미도 없는) 나체사진과 같은 진실이, 그저 왔다가는 인간 존재의 진면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서 사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뭐가 어떻게 다른가 그대가 따져 물으면 딱히 대답을 할 능력은 없다 🙂

다마네기

사실은 ‘양파처럼 진실이 겹겹인 세상’이라는 글 제목 대신에 그냥 양파만 좀 ‘선정적인’ 언어로 써 보았어요.

이곳에서 꽤 오래 살면서, 나도 이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하거나 당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았는데요, 상대적으로 이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하고 덜 복잡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예를들어, 슈퍼에 과자나 사탕을 사러가면 자주 느끼게 되는데요, 역사가 오십년 백년 이렇게 된 회사들이 그냥 할아버지대에서 잡숫던 과자와 사탕을 손주대에도 그대로 만들어서 같은 상품을 아직도 파는 것을 흔히 볼수 있어요. 파는 사탕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마 1/10 혹은 1/100도 안될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잠시 입에 달콤하자고 먹는 사탕이 뭐 그렇게 다를 수가 있고 또 지난 백년간 뭐 그렇게 달라졌거나 향상이 되었을까요. 얼핏보면 ‘좀 모자라나’ ‘바보들인가’ 싶지만 이 나라 사람들도 좋은 것 알고 고급 다 알아요 🙂

요샌 세상이 좋아서, 유튜브로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한국 티비 선전들을 최근에 보았는데요, 지금이야 한국과 이나라의 경제 수준이 거의 동등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이나라와 한국의 경제 수준은 현재 한국과 말레이지아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래된 한국의 티비 선전을 보면서, 지금 현재의 이나라와 비교해도 너무 종류가 많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한국사람의 시각으로는 ‘이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좀 후지다’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이곳에서 집을 사거나 차를 구입할때 그 과정이 너무 단순해서 ‘이것이 전부냐? 뭐가 빠졌거나 혹시 속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단순함에 길이 들어서 (다른 세상에서의) 복잡한 절차나 과정이 더더욱 복잡해 보이는 쪽으로 나도 변했어요. 돈을 주면 물건을 주고, 댓가를 지불하면 약속한 것을 이행함에 별로 복잡함도 없고 또 사기가 개입될 여지도 없으며 아무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사는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나머지 시간에도 그냥 멍하게 살까요? 아니지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을 많이 하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또한 이나라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마음과 에너지를 쏟을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한국에는 ‘사기’ ‘횡령’ ‘가짜 고소 고발 (그리고 가짜 역고소)’ 같은 ‘거짓’을 동기로 하는 범죄 발생율이 인구비례로 따지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수십배 수백배에 달한다는 많은 증거들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있는데요, 이런말 들으면 더 기분이 나쁘겠지만, 구한말 어떤 선교사가 남긴 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거짓말을 일상속에서 밥먹는듯이 하는데, 자신의 거짓말을 (사기나 속임수) 어떤 특별한 능력처럼 자부심을 가진듯이 말하더라’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충격적이지요 쏘리 🙂

자살한 전 서울 시장에 대한 진실이, 마치 다마네기처럼 까면 깔수록 다른 색깔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남을 보면서, 섣불리 함부로 단정짓고 입을 놀린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복잡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며, 세상을 이렇게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며 제 이익 챙기는 뇬넘들은 (그 바쁜 와중에) 제 정신이 잠시 들때 거울에 비친 제 상판때기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미운 마음과, 또 그들처럼 날래고 잘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뇬넘들이 만든 복잡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지난번 ‘엄마’글에서도 밝혔듯이, 세상사는 복잡하며 인간들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존재들이라고 나는 깨닫고 있습니다. 까지고 또 까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그 ‘가짜 진실들’에도 (?) ‘진짜 진실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그 농도와 빈도를 가지고서 장난을 치면서 세상을 속이고 또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혼란과 혼돈속에서 똑똑한 뇬넘들은 제 몫보다 훨씬 많이 챙기며 웃고 사는 세상이 혹시 내가 떠나온 나라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아닌가 싶어요. 나와 그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헷갈리고 망설일때 멀찌감치 챙겨 달아나고, 그 뛰어난 능력에 자부심을 (?)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 소달구지를 몰던 할아버지 세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대로 발전했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옛노래처럼 보리밥 김치를 쌀밥과 삼겹살로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곳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감자처럼 한겹만 까면 되는 단순한 세상에 사는 단순한 넘이, 다마네기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하는 한탄이에요.

아까 위에서 ‘그런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운 인간의 진면목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데 ‘피부 관리’ 같은 생각이외에는 ‘어떤 철학적이거나 삶에 본질에 관련된 사색을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작년에 ‘설탕의 역사와 그것에 관련된 비극적인 인간의 이야기’에 관한 도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간략히 말해 설탕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요 식민지의 역사며 노예의 역사입니다. 주제를 벗어난 장황한 이야기 대신에 한가지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아프리카 몇곳에는 지금도 유적처럼 남아 있는 ‘원주민을 잡아다가 노예로 (자마이카나 그런 멀고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만들었던 전초기치 / 항구시설’ 들이 있어요. 그중에 규모가 컷던 항구에는 한꺼번에 수백 혹은 수천명의 잡아온 원주민들을 (실어나를 배가 들어올 때까지 감금해 두었던) 지하 토굴 감옥 같은 시설이 있는데요, 그야말로 당신이 지금 기르는 개보다도 훨씬 못한 지옥에서 그들을 임시로 보관 (?) 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런데요 이 이야기의 압권은 그 토굴 바로 위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백인 선원들, 가족들 그리고 노예관련 무역을 하던 백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하던 곳이지요. 지금도 있는데요 멀쩡히 지어진 좋은 교회입니다. 그 백인들이 자신들의 무사 항해를 (노예장사) 그들의 신에게 빌며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에 새로 장만할 가족들의 ‘사랑의 보금자리’ 새 집에 대한 상상등을 그곳에서 할때,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강제로 잡아온) 수백 수천명의 원주민들이 바로 교회 아래 토굴에서 짐승보다도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대소변과 뒤섞여 그저 숨만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뭐가 빠졌을까요? 그 백인들의 머리에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100%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사기꾼은 자신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속이는 뇬넘들이며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인간 말종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 보아도 (걱정스러운 기미나 주름 이상의) 어떤 가책이나 마음의 동요도 없을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며 또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사진은 불과 200년 전에 거룩하신 백인들께서 얼마나 머리를 써서 흑인 노예들을 배로 잘 운반했던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한 1/3이 죽어도 크게 남는 장사였데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습하고 더운 배 밑창에서 아프리카에서 사로잡힌 흑인 원주민들은 한달 두달을 꼼짝 달싹 못하게 묶인채 누워서 대소변을 아래로 줄줄 싸면서 그리고 죽어가면서 운반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 또 있는데요, 현재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들이 바로 이 아프리카 나라들이라고 해요. 과도한 설탕 소비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죽어간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노예로 붙들려 가서 재배한 사탕수수가 되돌아와 손주를 죽이는 그야말로 ‘설탕의 저주’입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무지한채 오래 살아왔어요. 진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눈에 보이는, 백인들이 건설한 선진국 그리고 그들이 이룬 멋있고 아름다운 외형만을 인정하고 또 동경하며 살았었어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능력이 생겼기를 바래요. (개인의) 아름다움에 섞여 있고 공존하는 추함과, (집단의) 축척된 부와 세련된 문화 그리고 선진국이 된 이면에 존재하는 추악함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대들이 사는 그 세상, 오늘 내가 좀 화가 나서 퍼부었던 고국에 대한 마음도 아마 비슷하지 싶네요. 애증의 마음… (나를 포함한) 인간의 한계와 부조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첨부해요 – 나는 이런 센세이셔널리즘을 쫒는 인터넷 방송이나 관련 사람들을 잘 믿지도 또 좋아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 영상과 편지는 (여러군데 확인결과) 틀림 없은 진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