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날의 이야기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지난 여름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 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헝클어질 때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여름날의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헝클어질 때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여름날의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현역으로 죽는다

이 분 누군지 혹시 아세요? 신중현님입니다. 올해로 여든이 넘으셨다고 하네요. 아침에 이 사진을 보고 충격을 좀 받았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한 두해 전에, 우리내외도 좋아하는 박인희님이 티비에 (아마 수 십년 만에) 등장하셨어요. 그분이 노래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듣고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었어요. ‘아! 이분은 나오지 않으셨어야 했다. 그 청아하고 고왔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영원히 남아 있었던 것이 훨씬 나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오늘 이 사진을 보고서 내가 생각이 바뀌었어요.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기타를 평생치며 사랑하였으니 당연히 죽을때까지 기타를 치는 것이지요. 기타를 치다가 죽는 것이지요. 가수라면 당연히 노래를 부르다가 현역으로 ‘가는’ 것이지요.

하춘화박사님이 일전에 인터뷰에 나오셨는데, 지금도 당연히 노래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 할려고 노력하고 또 한 번이라도 더 무대에 서려고 애쓰신다면서, ‘내 직업은 가수요 내 삶은 (의미는) 노래하는데에 있다’고 하셨어요. 그분이 적선을 베풀어 기부한 금액이 200억이 넘는다는데, 돈만 따지자면 얼마나 부자시겠어요? 그런데 왜 그 연세에 이렇게 하실까요? 나는 훌륭한 스님들 말씀도 귀담아 듣지만 이런분의 말씀은 더욱 귀담아 들어요. 이분 형제가 5분인데 하춘화박사님을 포함해서 모두 박사인줄 혹시 아세요? 짐작에 이분이 매우 지혜로운 분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요 🙂

박인희님을 티비에서 봤던 올드팬들 중에서 어쩌면 우리내외와 같은 생각을 했던 분들도 있었지 싶어요. 이제 그분들과 또 우리내외 자신에게 말해 봅니다. ‘우리의 그 아름다운 기억을 (환상을) 위해서라면 그분이 티비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분 본인의 삶을 (현실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노래를 부르고 또 기회가 된다면 티비에 나오는 것이 좋다’고.

우리들 자신의 삶을 살아요. 우리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을 위해서 하면서 살아요. 남들이 무었을 어떻게 말하건 간에. 그리고 그들도 세월이 흐르노라면 왜 남들을 향한 신경을 끄고 자기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기에.

신중현님께서 반세기도 훨씬 전에 부르셨던, 나도 좋아했었고 지금도 흥얼거리는 노래 ‘빗속의 여인’ 함께 들어 봐요. 그리고 단지, 지난 과거의 그 아름다웠던 빗속의 여인을 떠올리며 사는 삶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 아름다운 빗속의 여인으로 사는 거예요. 인생의 모든 단계와 모든 시기에는 그에 맞는 아름다움이 언제나 있기에.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서 아름다운 삶을 사는 ‘열쇄’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이미 존재 하기에…

명상 – 현대판 만병통치약?

일전에, 그 옛날 박카스병에 넣어 팔던 ‘가짜 만병통치약’ 이야기를 했었지? 설탕물에 아스피린을 좀 갈아 넣었던지, 아니면 시골에서 양귀비를 몰래 키우던 넘들이었다면, 그것 이파리라도 삶은 물을 좀 섞었던지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내 생각에는, 정말 센 넘들 무리에 속해서 주류들과 함께 잘 나가는 사람들은, 밖에서 들릴만한 잡음도 만들지 않고 또 무슨 재미있거나 신기한 이야기 거리도 별로 만들지 않지 싶어. 문제아들, 주류에서 튕겨 나왔거나 쫒겨 나온 넘들이 꼭 소란하고 시끄러운 것 같더만. 나도 그런가? 내가 보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때로 지나치게 돈돈돈 하면서 돌아가는 것 같고 (물론 돈이 많으니 전에 말했듯이 훌륭한 일도 하고 그렇겠지만) 어떤 미국사람들은 머리가 좀 ‘돈’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 미국사람들 중에서 태국등 아시아 나라에서 수행하다가 중노릇이 너무 힘이 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그만 두고서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던 사람들도 많았어. 그리고 그 중에서 원래 머리가 좀 ‘돈’사람들도 있었겠지. 가서 뭐 했을까? 붓다장사 명상장사 🙂

내가 본 이런 사람들은 일단 공통적으로 박사학위를 사요. 왜 산다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통신과정 혹은 인터넷과정 뭐 이런식으로 돈을 갖다 주고 받는 그런 박사학위라는 냄새가 풀풀 나거든. 태국에서 아잔차 스님 아래서 수행하던 1세대 서구인 승려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에 명상센터를 차리고 (미국과 서구에) 명상을 알린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 이 사람도 박사학위가 있는데, 무슨 임상심리학 박사인가 그래. 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미국대학원 185개 중에서 ‘173번째로 좋다’고 알려진 대학원에서 취득한 것으로 나와 있어. 또 다른 유명한 명상 장사꾼이 임상심리학 (인기 좋네) 박사학위를 취득한 대학원은 그런 통계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 곳이야.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박사학위를 사려고 할까? 미국에서 발행되는 자기계발 서적들 표지 봤나? 그런책들 대부분에는 저자 ‘누구누구 박사’라고 크게 박혀 있어. 그래야 장사가 되고 돈을 벌수가 있으니까. 이런 거룩한 박사님들이 하시는 명상 과정들도 또 매우 비싸. 인터넷으로 한번 등록 안내를 봐. 내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대동강 물팔아 먹은 봉이김선달’이 따로 없지 안그래? 무슨 재료를 어떻게 투자해서 무었을 만들어 팔았고 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냈는데?

일전에 이곳에서도 이런 사람이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무슨 비영리 단체인 것처럼 가장을 해서 이곳에서 제일 큰 인터넷 일간지에 버젓히 자기 사업 선전을 했던 것을 봤어. 나도 처음에는 좋은 느낌으로 읽어 보고, 좀 더 알아 볼려고 그 기사에 제공된 링크를 따라가 보았는데, 허… 붓다 팔아 (명상 비데오를 온라인으로 팔았던 것으로 기억해) 돈벌이 하는 곳이더라니까. 내가 마음에 상처를 좀 받았어. 그런데 이 사람 뒷조사를 좀 해 봤더니, 글쎄 다행히도 그 ‘돈’나라에서 이곳에 와서 사는 사람이었던 거라. 그 버릇 어디 가겠어? 내가 정말 드물게 댓글을 하나 남겼어. ‘당신 말대로 당신 자신도 그렇게 명상을 좀 해 봐라. 이런 것 팔아서 돈벌이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그리고 당신이 파는 것들 중에서 당신 자신이 발견했거나 혹은 만들었던 것이 무었이 있는지’. 좀 야비했지만 내가 상당히 기분이 상했었어. 붓다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진실하게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좀 들어 보고 알아 볼 기회를 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저절로 들게 되지만, 이것 팔아서 돈을 좀 벌어 봐야겠다는 생각은 ‘머리가 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게 돼’. 이런 종자들을 보면, 흡사 딸자식 팔아 술 받아 마시는 애비 꼴을 보는 그런 느낌이 들어.

그러니 혹시 그대가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는 여정에서,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존경하게 되거나 혹은 따르게 될때,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확실히 알아 봐야 하는 것은, 그들이 ‘돈을 노리는’ 넘들인가 아닌가야 (‘권위’처럼 무형의 것을 노리는 넘들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돈으로 환산 귀결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고, 어쩌면 더 나쁜 넘일 가능성이 커). 한계가 많은 우리 인간이, 사심없이 성심껏 최선을 다해도 무었 하나 제대로 이루기가 참 어려운데, 하물며 제것도 아닌 것을 팔아 돈벌이 할 궁리를 하는 넘들로부터 도대체 무슨 가치 있는 것이 나올 수가 있겠나? 선생님 이것 잘 기억하시길 바래요 🙂

이렇게 명상 팔아서 돈벌이 하는 넘들이 남긴 공적이라면, 명상을 세상에 많이 알린 것이겠지. 그리고 부정적인 면이라면, 명상이 흡사 무슨 대단한 이론과 습득의 과정이 필요하고, 또 자기들이 시키는데로 하면 어떤 엄청난 효과나 이익을 보게 되는, 현대판 ‘박카스병에 넣은 만병통치약’처럼 포장을 했다는 것이야.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장사가 되겠어? 맨 위에서 내가 그 만병통치약 성분이 뭐랬더라?

이제 명상의 진실을 좀 밝혔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상이 무었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리고 왜 하면 좋은지, ‘자타가 공인하는 명상 전문가들과 더불어 반세기 가까이 명상을 해 오신 분들이, 십원 한장 달라는 말씀없이 가르쳐 주신데로’ 내가 전해 볼께. 먼저 웃기는 이야기 하나. 법륜스님 알지? 때때로 좀 심하다 싶기도 하고 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현존하는 한국의 승려들중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분이 아닌가 싶어. 그대도 들어보았을 ‘즉문즉설’ 시간에, 어떤 사람이 약간 멋있게 질문을 했어 ‘명상’에 대해서. 아마 좀 쿨한 대답을 기대했었겠지. 스님 왈 ‘명상하면 무슨 일이 생겨 아무일도 안 생겨.’ 우하하하 내가 이래서 스님을 존경한다니까 🙂 낙심했나? 그대를 위해서 조금 더 친절한 버젼으로 말해볼께. ‘명상을 하면 당장은 아무일도 안 생겨요. 그런데 이상한 욕심내지 않고 오래 그리고 자주하면, 더 크고 훌륭한 수행을 위한 기본을 (운동으로 치자면 ‘몸’을) 만들게 되요’ 이것 중요하지 않을까요?

붓다의 가르침을 좀 달리 표현하자면 ‘생각하며 살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싶어. 다시말하면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살다가 죽지는 말자’는 말이야. 내가 무슨 거창한 이야기 하는 것 아니니 긴장 하지 말고. 그런데 뭐가 되었던 간에 ‘생각하며 살려면’ 좀 의식을 가지고 해야 되. 예를 들면, 우리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일때 그냥 자동적으로 하지 않나? 그것을 자기가 라면 끓이는 것을 딱 지켜 보면서 끓여 보라는 거야. 뭘 보라고?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고, 물을 담고 가스를 켜고 파를 썰고, 다 끓이고 나면 조심해서 불위에서 내리고 가스를 잠그고 탁자로 들고 오는 이 과정을 ‘자신이 딱 지켜보면서’ 해보라는 거지. 왜? 좋잖아 안전하고 또 맛잇게 잘 끓이고 🙂 아니고, 이렇게 하면 ‘라면을 먹고 나서 꽃비씨를 만나러 가는데 오늘은 어디가서 무었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라면을 끓이지 않고, 오직 라면 끓이는데에만 집중하게 되겠지. 이것을 훈련하자는 거야. 왜? 당신 골프 정말 잘 치고 싶지? 내가 거리 늘이고 점수 줄이는 확실한 비법을 알려주께. 양심적인 도사급들이 이미 하신 말씀을 내가 그냥 옮기는 것이니 너무 고마뭐 하지 말고. 팔굽혀펴기를 하루에 백개 그리고 턱걸이를 오십개씩 매일,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한두해 하면 되십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 방금 위에서 말한 집중 훈련, 즉 ‘마음을 가라 앉히는 명상’이 바로 수행에 있어서, 팔굽혀펴기 그리고 턱걸이랍니다.

내가 좋아 한다던 Luang Por Tiradhammo 스님께서 최근에 어디선가 설법을 대중들에게 하셨어. 그리고선 질문과 대답 시간이 되었는데, 어떤 훌륭한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하나 했어. ‘저 같은 보통 사람이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고 또 시간도 없는 중생이) 매일 무었을 좀 하면 (수행으로) 좋겠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셨어 한 마디로. ‘매일 10분만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숨쉬는 모습을 지켜보는 명상을 하세요’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한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

오늘은 요까지만. 명상 이야기 좀 더 있는데 다음에 또.

이웃넘들 이야기

언젠가 이웃 호주넘들의 실체를 까발려(?) 주겠다는 말을 했었기에 오늘은 그런 이야기 조금.

‘아잔차’ 이제 누군지 알지? 이분이 서구인 스님도 수 백명 배출했던 걸출한 태국 테라바다불교의 고승이셨다고 설명했던 기억나나? 그 서구인 스님들 중에서 물론 호주인 스님들도 있지.

이곳에서 하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어 ‘나쁜 개주인은 있어도 나쁜 개는 없다’고. 전적으로 100% 동의하기는 좀 어렵지만 상당한 진실을 포함한 말이라고 나도 ex-개주인으로 생각해. 이것 사람에게 갖다 붙이기는 약간 어색하긴 한데 내가 만약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한다면 이게 그냥 다만 헛소리일까?

언젠가 법륜스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원래 성격이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중이 되고 나서도 따지는 쪽의 일을 혹은 짓을 하고, 원래 성격이 원만한 사람은 중이 되어도 원만한 중이 된다’고 했던 말이 있는데, 참 맞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호주인 스님중에서 상당히 높히 올라간 분들도 있었어.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서 승려들은 위계질서가 딱 잡혀 있어. 소위 말해 짠밥을 엄청나게 따진다는 것이지. 사실 따지기야 하겠나, 그보다는 그것으로 질서를 세운다는 의미지. 모여서 사니까. 승려들의 짠밥은 매년 하기에 하는 석달의 안거를 (‘Vassa’ Rains Retreat라고 영역) 몇 번 했던가로 딱 정해지는데, 붓다께서 생전에 사시던 그곳에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땅이 질어서, 늘상 하듯이 동네로 나가서 밥을 받아와 드시고 숲속을 거닐기가 어려웠다고 해. 그래서 붓다께서 비오는 석달 동안은 실내에서 함께 명상하고 수행하면서 지내라고 하셨는데, 좁은 구석에 많은 중들을 가두어 놓으니(?) 맨날 언쟁 다툼을 하고 이게 좀 잘 안 되는거라. 그래서 붓다께서 후속 초치들을 몇가지 하셔서 훗날 비구들이 (스님들이)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지. 그 안에는 ‘석달간 입을 닥칠 것’도 들어 있데요. 제발 좀 싸우지 않게 🙂

이렇게 짠밥이 많이 쌓이면 어떤 특권 혹은 권리가 주어지는데, 붓다께서 직접 정하신 이후에 쭉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것들도 있다고 해. 예를 들어, 새로 어떤 사람을 비구가 (스님) 되도록 의식을 하고 계를 내리는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우리 똑똑하셨고 또 현실적이셨던 붓다께서 다 정해주고 직접 운영하시다가 돌아가셨어. 안그러면 치고 박고 대가리 깨지고 하니까.

승단이 (‘붓다’,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의 모음을 뜻하는 ‘승단’ 이 세가지를 불교에서 제일 중요시 여겨. Buddha, Dhamma, Sanga 이렇게 말해.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 들어 보았나? 그 세가지 보배가 바로 이것들) 혹시 어떤 불상사로 대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적절한 숫자의 승려들이 여러군데 지역(나라)에서 그런 특권을 가지고 있도록 하셨는데, 붓다가 살아 계실때는 여자스님들도 (비구니) 물론 있었어. 붓다의 부인 ‘야소다라’도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성불했다고 내가 이미 말했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난리통에 그만 다른 여자분들께 비구니계를 줄 특권을 가진 여자스님들의 대가 끊어지고 말았던 거야. 매우 오래전에.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지금 한국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은 무면허 운전이십니다 🙂 그래서 또 태국에는 여자 스님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무슨 여성차별을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잔차의 제자였던 한 호주인 스님이 (다시말해, 태국 테라바다 불교 비구) 짠밥이 무척 많아져서 비구 수계를 주는 권위를 가지게 되었어. 자격이 되는 호주인들이 이분을 통해서 태국에 가지 않고서도 스님이 되었고 또 이 분의 유튜브 설법들도 인기 짱! 잘 나갔어요. 건데 이 사람 국적이 뭐랬더라? 호주! 어떤 여자분에게 비구니의 계를 자기 마음데로 준거라. 그러고는 승단에서 쫒겨났데요~~~ 이 사람들이 원래 좀 그렇다니까. 이 글 시작하면서 내가 뭐라고 했었더라 🙂

내가 옛날에 또 어떤 책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테레사회 수녀가 되려다가 뛰쳐 나온 여자가 쓴 무슨 인사이드 스토리 같은 내용이었어. (갑자기 주제를 바꾸고 또 주제넘게 말해서 미안한데) 영어를 좀 시간 내서 공부 하세요. 아니 영어가 싫으면 일어, 불어, 독어를 하시든지. 한국어로 씌어진 서적이나 정보의 10배 아니 100배를 듣고 보고 알 수가 있게 되요. 그리고 또 자신을 상대적으로 볼 능력도 동시에 생기고. 이것 중요합니다 선생님 득도 하시는데에.

다시 원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테레사 수녀는 천주교에서 성녀로 추앙받지만, 또 시각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혹은 어떤 한계가 있는 언행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네. 아마 교회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전혀 배재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분의 전체 모습을 보고 판단하여 성녀의 반열에 올린 것이 아닌가 싶어. 완벽함만이 성녀나 성인의 조건일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인간적인 한계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주 훌륭한 업적, 인간이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쌓았으니 그렇게 존경하고 기리자는 것이 아니겠나. 이 여자는 그 수녀회에서 수련중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다가 결국은 수녀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뛰쳐 나오게 돼. 건데 왜 그런 책을 썼겠어? 돈 벌려고? 어쩌면. 하지만 그것 보다는 ‘내가 이상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상해서 그랬다’는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어 내게는.

이렇게 자의식 혹은 자기주장이 강한 것이 어떤 힘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지함 혹은 나약함의 증거이기도 하지 싶어. 컨텍스트나 상황에 따라서. 어쨋던 이 여자 이야기를 내가 왜 하는 것일까? 그 여자도 또한 호주인이었기 때문이지 🙂

우리 이웃 넘들 이야기였어요. 난민들에게 야비하게 하는 이야기는 센스티브하기 때문에 나중에 합시다요.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 – 첫번째 이야기

노자 도덕경에 이런 뜻의 구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큰 길은 길처럼 보이지 않고 너무 큰 진리는 하찮게 느껴진다’ (확인결과, 제 41장에 나오는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지며,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모양은 형태가 없다’의 내 나름대로의 기억이었음).

‘티라다모스님’은 내가 일찌기 말했던, 내가 잘 알고 또 존경하는, 두 분의 태국 테라바다 불교 고승 중의 한 분이다. ‘아잔차’께서 (법륜’스님’처럼 태국에서는 승려를 존경해서 부르는 호칭이 ‘아잔 Ajahn’ 그러므로 우리말로는 ‘차스님’ 정도의 호칭. 장차 많이 언급될 분이니 이름을 기억해 두자. 우리나라 성씨 ‘차’씨 아님. Ajahn Chah. 태국어 존칭은 Phra Bodhiñāṇathera. พระโพธิญาณเถร. ‘태국 테라바다 불교’ 즉 ‘태국 소승불교’를 전세계에 전파하고, 수많은 태국 승려들 그리고 수백명의 서구인 승려를 배출한, 현대 태국 최고의 승려. 1918-1992) 전세계에 세운 사찰들이 미국, 영국, 스위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도 많은데, 이 분 살아 생전에 직접 가르침을 받은 2세대 혹은 3세대 큰스님 중 한 분이 바로 이 ‘티라다모스님’이다. 일전에 밝혔듯이 캐나다인이며, 스님이 되신지는 거의 50년이 되었다. 태국인들이 최고의 고승에게 붙이는 존칭인 ‘Luang Por’라는 타이틀로 불리시니 ‘Luang Por Tiradhammo’ 즉 ‘티라다모 큰스님’ 정도가 되겠다. 태국에서 오래 수행을 하셨는데 그중에서 약 6년을 아잔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작년말에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찬차 출생 100주년 기념 법회가 크게 열렸었다. 그 분의 2세대 3세대 서양인 제자들도 십여명 (그 분이 서양에 세운 사찰들의 주지들) 참석해서 좋은 설법을 들려주셨는데, 티라다모 큰스님도 그 중 한 분이셨다. ‘이 분을 내가 좀 안다’고 내가 전에 떠들었다 🙂 모친을 모시고 주말에 이 분이 주지였던 사찰에 가서, 그 반들반들한 대머리와 헤헤헤~~~ 교활하게(?) 웃는 모습으로 설법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 아마 수백번은 되지 싶다. 시리즈로 발행된 좋은 책들과 녹음된 설법들도 많은데 이미 그대들과 간접적으로 나누고 있지만, 또 언젠가 구체적으로 소개할 때가 오기를 바란다.

이분이 이번에 정말 ‘큰것 한방(?)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렇게 설법을 시작하시더라. ‘내가 중 노릇을 꽤 오래 하면서 이런저런 수행도 해보았고 듣고 배운것도 좀 있고 또 나름 노력도 했었다 (그래도 해탈은 요원하다만), 지금와서 되돌이켜 볼때 붓다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것 좀 귀가 솔낏한 이야기 아닌가?

다음 이시간에… 나도 연속극 좀 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