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리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혹시 들어봤어요? 나는 펜인데요, 오랜 세월 하도 즉문즉설을 많이 보고 또 그분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질문만 딱봐도 해답이 저절로 줄줄 나와요. 그리고 모범답안을 들어보면 내가 미리 낸 해답이 대부분 맞아요 🙂 그래서 그런지 요샌 좀 재미가 (?) 덜해서 별로 안보게 되네요.

우연히 보니 오늘 질문 제목이 ‘아이가 고집이 센대요 사랑으로 대해야 하나요 아니면 엄하게 대해서 고쳐줘야 하나요’ 이런 것이었어요. 아! 해답을 모르는 문제가 오랫만에 등장했네요. 아주 짧은 동영상인데요 모범답안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이 양반이 무슨 황당무계한 (내가 느끼기에 그런적도 있었어요)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봤어요.

사랑으로 대해줘야 하나 엄하게 고쳐줘야 하나 그런 생각일랑 하지말고, 사랑스러운 내자식이 고집을 피울때 ‘아! 이 아이의 고집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로구나. 어른인 내가 이런 언행을 했을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딱하고 가관이었겠나’ 스스로 돌이켜 깨달으며, 아이에게 빙그레 미소 지을수 있으면 된다 이런 맥락의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덧붙여 ‘엄마가 그렇게 미소 지을만한 수준이 되면 아이도 엄마를 따라서 저절로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여태껏 보고 듣고 배운, 그 어떤 박사 도사 노벨상 무슨상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훌륭한, 삶의 진리를 단 몇마디로 함축한,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에 고개숙이며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또 그것을 지속하고 반복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지 나는 조금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내 수준의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 인생에 더 이상 뭐가 있겠어요 🙂

그래도

처음엔 그저 마음이 그리로 흘러 갔었다
마음을 쏟아 우정을 사랑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을 쫒았다

다음엔 그저 마음이 그렇게 멀어 졌었다
마음을 쏟을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없었다

나중엔 다시 마음이 어쩌면 돌아 오리라
마음을 비워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어쩌면

지금은 그저 조용히 내버려 두자 바란다
나중에 찾을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그대로

그대로 남겨 두고파 혹시나 알아 언젠가
사람의 마음 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무었으로 홱 변할런지 뉘아나

하지만 지금 멀어진 내맘을 난들 어쩌리
세상이 모두 그런줄 이꼴이 우리들 수준인줄 왜 모를까만 그래도

채운다고 쌓이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니 채우는 것과 쌓이는 것은 별개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직도 청춘이지만, 더 어렸던(?) 시절에는 그저 남들따라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얻고 줏고 벌고 빼았아(?) 채우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준이나 인생의 승패는 그렇게 채우는 능력으로 매겨지는 줄 알았었다.

살다보니 채우는 능력과 쌓이는 결과가 딴판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야 부모를 잘 만났거나 책상에 오래 앉았던 사람들이 당연히 더 있겠지. 그런데 채운것들이 쌓이려면 그릇이 번듯하게 크기도 좀 있고 또 깨지거나 구멍이 뚫리지 않아야 되는데, 이 그릇의 크기와 온전함은 부모 주머니에서 떨어진 돈이나 공부 머리와는 별로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그것들로 말미암아 달라지기도 어려운 것임을 보게 된다.

채우는 재주는 큰데 그릇이 작거나 깨져 있으면 밖으로 흘러 넘치고 줄줄 새게 된다. 흘러 넘치는 것이 돈이면 돈지랄하는 인간말종이 되고, 줄줄 새는 것이 권력이면 사람들 못살게 하는 미친개가 되고, 흘러 넘치는 것이 정력이면(?) 가정파탄 아니면 감옥행. 줄줄 새는 것이 지식이면 사람들이 면전에서 다투지는 못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 외로운 늙은이로 종치게 되겠고 또 흘러 넘치는 것이 ego 라면 해탈 열반이나 천국행은 날샛겠지 🙂

인생 초기 대량 실점한 삶을 살아온 내가 대량 득점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가까이서 또 멀리서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세상 참 공평하다’ 그리고 ‘행복은 얼마나 채우는가 보다는 얼마나 쌓이는가에 있다’.

무지와 지혜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현상의 일부를 보고서 (혹은 알고서) 전체를 미루어 판단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런 줄을 알면서 내리는 판단은 조심스럽고 또 쉽게 물러나거나 수정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사람들에게 강요할 가능성이 적다.

이런 줄을 모르거나 잊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내리는 판단은 (자신과 타인들에게) 난폭하고 강압적이며 또 스스로 물러나거나 수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사람이나 사물 혹은 현상의 일부만을 보는 것을 (혹은 아는 것을) ‘무지’ 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무지에 근거한 판단에 집착하는 것을 ‘고집’ 이라고 한다.

듣고 보고 배워야 하나라도 더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덜 무지하게 되고 나아가 좀 덜 고집스러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귀찮은 (그리고 남들도 하지 않는) 과정을 지속하고 반복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그냥 지금 아는 것, 지금 가진 것이 ‘모두’ 이고 또 ‘전부’ 라고 자신과 남들에게 떠들며 주장하게 된다. 나이가 많거나 상대적으로 가방끈이 길거나 돈이 많으면 이런 짓을 점점 더 강하게 또 드러내 놓고 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더 고집스럽게 되는데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그냥 고집인 것을 가지고) 신념이니 철학이니 하면서 무슨 특별하고 괜찮은 것처럼 포장을 하여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며 또 나아가 그것을 팔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무지로 시작된 고집은 인간의 삶을 ‘겉으로는 좋아 보이는데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치매인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장차 그 꼴로 인생을 종치게 만든다. 자신도 비참하지만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고난 다음에.

무지의 반대는 ‘지혜’ 라고 한다. 지혜는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현상의 ‘전모’ 즉 전체 모습을 보고 또 아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수준에는 결코 도달하게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발 양보해서 ‘지금 내가 보는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현상에는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다양한 측면들이 존재하니 나는 무슨 판단을 내리건 그것을 기억하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또 자주 시도만 해도, 지혜를 좀 가진 사람으로 그래서 덜 고집부리는 사람 덜 완고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겠다 🙂

배울만큼 배운, 가질만큼 가진 그리고 나이들만큼 든 사람이 ‘고집부리는 모습’ 만큼 스스로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자신을 깊이 초라하게 만들고 또 장차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징표는 별로 없다.

일전에 언급했던, 내가 즐겨 뛰어 올라간다는 그 산꼭대기에 오르면 내가 사는 아름다운 수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고 남쪽에서 바람이 부는 어떤날에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저 멀리 아름다운 도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 오는 냄새다. 그냥 쓰레기 냄새가 아니다. 이곳은 한국과는 달리 오수를 (똥물을)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모아 하수처리시설에서 일괄 처리한 다음에 바다 멀리로 내보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고형물을 (똥덩어리를) 걸러내서 수분을 제거하고 눌러 납작하게 만든 다음에 그 쓰레기 매립장으로 운반하여 땅에 묻는다. 그 똥냄새가 이토록 아름다운 산위로 때때로 올라오는 것이다. 내 발아래 펼쳐진 이 아름다운 도시 그 높고 화려한 사무실과 해변가의 아름다운 집들에서 선남선녀들이 입으로 넣었다가 항문으로 밀어낸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진실 덩어리를 나는 때때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

하늘아래 어떤 인간도 이 진실에서 한치도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 그대의 똥과 나의 똥만 뒤섞여 바다로 흘러가고 함께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것을 자주 기억하는 만큼 그리고 어떤 판단을 내릴때 하나의 측면으로 고려하게 되는 만큼 우리는 지혜로워 지리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자주 상기한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향상시키려 하지 ‘고집’으로 상대를 이기고 주변을 어지럽히려고 하겠나? 그래서 무었하게? 더 멀리 더 빨리 바다로 흘러가고 매립장 더 위에 묻히게?

나이들며 스스로 경계해야할 첫째는 고집이고 사람만나며 멀리해야할 첫째 부류는 ‘어떤 이유로든지’ 고집스러운 인간이다. 고집은 다양한 이유와 형태가 있겠지만 그 뿌리는 오직 하나 그리고 언제나 ‘무지’ 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고집스럽게 말했나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How you Perceive and How you Respond’

이 두가지가 내가 여태껏 살면서 깨달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되겠다.

내 영어는 아직도 엉터리지만,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몇십년 영어를 사용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좀 깊이 있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때로는 중국어에서 빌어온 한국어 (한자) 보다는 영어단어가 더 수월하고 정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착각인가 🙂

‘당신이 세상을 (당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당신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Perceive 하는지는, 부모로부터 우리가 아주 어릴때 물려 받은 ‘습관’ (양육) 그리고 ‘기질’ (유전) 에 좌우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Respond 하는지는, 물론 습관과 기질의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가 나이들어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 기억한 것들에 좌우되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매일 일상속에서 수없이 크고 작은 판단들을 내리고 또 그 판단의 결과로 어떤 언행을 하면서 살고 있다. 어떤 판단은 드러내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언행은 표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지만 매우 강한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판단과 언행이 쌓이고 모여 인생의 방향과 수준이 결정된다.

금수저가 물려받은 돈다발이 인생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학벌이나 계급장도 물론 아니다. 별의 겉보기 등급이 그 별의 진짜 크기와 밝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것과 같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는 거리에 따라 겉보기 등급이 좌우되는데, 한가지 정말 무서운 진실은 사람은 무슨짓을 하고 어떤 방법을 써도 자기자신에게서 한순간 한치도 멀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안된다는 말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인생초기에 물려받고 또 형성된 습관과 기질이, 우리가 장차 살면서 무었을 경험하고 배워서 기억할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이 진실을 깨달을만할 쯤이면 ‘땡’ 종치며 링에서 내려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습관과 기질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나중에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 기억한 그것들이 또한 자신의 습관과 기질을 되돌아 볼 능력을 주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 그것들을 변화시킬 힘을 주기도 한다.

일단은 지혜로운 부모를 만나면 시작이 좋다. 물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겠지. 그래도 세상은 공평하다. 우리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무었을 경험하게 할지 어떤 것을 배우게 할지 또 무었을 기억하게 할지 상당부분 결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선택해서 쌓은 경험과 배운것 그리고 기억한 것들이, 자신의 습관과 기질에 서서히 재갈을 물려 마치 마부가 말을 부드럽지만 능숙하게 다루듯이, 우리가 보다 나은 판단과 언행을 하도록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이끌어 준다. 그 결과로 우리 인생의 방향과 수준이 달라지게 된다.

인생의 봄이나 여름은 이렇게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진다고 오는 봄이나 여름은 없다. 아마 당신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