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How you Perceive and How you Respond’

이 두가지가 내가 여태껏 살면서 깨달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되겠다.

내 영어는 아직도 엉터리지만,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몇십년 영어를 사용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좀 깊이 있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때로는 중국어에서 빌어온 한국어 (한자) 보다는 영어단어가 더 수월하고 정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착각인가 🙂

‘당신이 세상을 (당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당신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Perceive 하는지는, 부모로부터 우리가 아주 어릴때 물려 받은 ‘습관’ (양육) 그리고 ‘기질’ (유전) 에 좌우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Respond 하는지는, 물론 습관과 기질의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가 나이들어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 기억한 것들에 좌우되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매일 일상속에서 수없이 크고 작은 판단들을 내리고 또 그 판단의 결과로 어떤 언행을 하면서 살고 있다. 어떤 판단은 드러내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언행은 표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지만 매우 강한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판단과 언행이 쌓이고 모여 인생의 방향과 수준이 결정된다.

금수저가 물려받은 돈다발이 인생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학벌이나 계급장도 물론 아니다. 별의 겉보기 등급이 그 별의 진짜 크기와 밝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것과 같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는 거리에 따라 겉보기 등급이 좌우되는데, 한가지 정말 무서운 진실은 사람은 무슨짓을 하고 어떤 방법을 써도 자기자신에게서 한순간 한치도 멀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안된다는 말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인생초기에 물려받고 또 형성된 습관과 기질이, 우리가 장차 살면서 무었을 경험하고 배워서 기억할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이 진실을 깨달을만할 쯤이면 ‘땡’ 종치며 링에서 내려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습관과 기질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나중에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 기억한 그것들이 또한 자신의 습관과 기질을 되돌아 볼 능력을 주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 그것들을 변화시킬 힘을 주기도 한다.

일단은 지혜로운 부모를 만나면 시작이 좋다. 물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겠지. 그래도 세상은 공평하다. 우리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무었을 경험하게 할지 어떤 것을 배우게 할지 또 무었을 기억하게 할지 상당부분 결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선택해서 쌓은 경험과 배운것 그리고 기억한 것들이, 자신의 습관과 기질에 서서히 재갈을 물려 마치 마부가 말을 부드럽지만 능숙하게 다루듯이, 우리가 보다 나은 판단과 언행을 하도록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이끌어 준다. 그 결과로 우리 인생의 방향과 수준이 달라지게 된다.

인생의 봄이나 여름은 이렇게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진다고 오는 봄이나 여름은 없다. 아마 당신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

석별

잘 가오 그대 행복하시오
축복의 노래로 그대 보내오리다
신의 손길 따뜻이
그대위에 머물리
아름다운님 그대 위에
신의 손길 머물리
내 노래 나래달고 그대 곁 날으리라
내 마음 등불 밝혀 그대 앞길 비추오리
우리님 가시는 길
꽃비단비 내리소서
발자욱 자욱마다
행복 넘쳐흐르소서.

잘 가오 그대 행복하시오
축복의 노래로 그대 보내오리다
우리님 가시는 길
꽃비단비 내리소서
아름다운님 발자욱마다
행복 넘쳐흐르소서
웃으며 함께 머문 기쁨의 이시간이
영원히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오리
설운님 가시오니 내 마음은 울고파라
설운님 가시오니 내 마음은 울고파라.

(작사 유승자수녀 작곡 이종철신부)

늙지 않는 비결?

‘설렘’ 혹은 ‘설레임’이 이어지는 삶은 늙지 않는다. 그 설레임의 대상이 무었일지는 그대가 여태껏 살아온 삶이 결정하긴 하겠지만… 어쨌던 그대에게 설렘 있으라!

‘성장하고 있는 것들은 늙지 않는다.’ 성장이 멈추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뭐랬더라? 역시 그 성장의 대상은 한순간 정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 성장 있으라!

라텍스 장갑 같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다양한 상황에서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을 멀찌감치에서 떨어져 바라보는 기회도 더 많아진다.

인간들이 스스로 여기기에, 배웠다고 있다고 그리고 안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힘도 주고 거드럼도 피우며 사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나도 점점 닳아 빠지면서 덜 속게 되니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 배움이, 있음이 그리고 안다는 것이 마치 라텍스 장갑처럼, 끼고 있을때는 안팍 구분이 되긴 하지만, 그 장갑 자체는 너무나 얇고 연약하여 하찮은 변화나 충격에도 쉽께 찢어져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안팎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자식 낳고 몇십년을 살다가도, 마치 영원할 듯한 그 사랑이 얇은 라텍스 장갑처럼 찢어져 남남이 되는 경우도 흔해 빠졌고, 아무리 부유하고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욕망에 사로잡히고 오감에 휘둘리는 인간의 본질 앞에서 단 한치도 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마치 찢어져 속이 훤히 보이는 라텍스 장갑처럼 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안스럽고 또 내심 걱정되기도 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이런 상황이 나아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마치, 젊은뇬은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보기 좋은데 늙은넘은 아무리 발광을 해도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며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인간들이, 지성이니 사랑이니 철학이니 문화니 종교니 ‘이름붙여 드러내 감동받고 지랄떠는 것들’ 중에서 라텍스 장갑처럼 찢어지지 않고 허무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모든 인간들이 점점 ‘level playing field’에 다가 가다가 (강제 평준화 이후에) 종을 치게 된다는 것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어 가는 이야기를 하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도 있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살면 현실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를 이야기 하는 ‘The Age of Adaline’ 라는 영화도 있다. 두 영화의 결론은 ‘둘 다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깨닫게 되는 ‘라텍스 장갑같은 인간’ 이라는 것을 내가 수십년 전에 깨달았었다면 좋았을까? 혹은 죽는날까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 생각에는 ‘역시 둘 다 아니다’ 🙂

수포자 챔피언 돌아온 탕자

나는 수많은 다른 수학 포기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작은사연으로(?) 말미암아 국민학교 (초등학교) 초반 일찌기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린시절 비교적 호기심도 있었고 또 보통머리는 되었지만 ‘왜요?’ 라는 질문을 은근히 던지는 천성과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게으름이 결합되어 학교공부에 특히 수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내가 몹시 싫어하게 되었던 수학은 또한 당연히 나를 몹시 싫어하며 오랫동안 내게 큰 괴로움을 주었었어요. 우리는 몸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릴때는 어떤 (물리적으로) 무서운 상황이 악몽의 내용이었다면 이젠 나이가 드니 악몽도 변화 발전하여(?) 무턱대고 무서운 상황보다는 마치 바늘이 손톱밑을 슬쩍 찌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민감한 내용이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면서 그속에서 정말 현실처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차원 다른 악몽을 꾸게 되네요. 짐작하다시피 내가 어쩌다 꾸는 악몽의 내용은, 미루고 미루며 강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담당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수학시험에 그나마 지각조차하여 절망속에서 우왕좌왕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런 것들이랍니다. 수학이란 내게 문자 그대로 악몽이 아닐 수가 없네요 🙂

내가 자신을 챔피언급 수포자로 규정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내겐 비극 친구들에겐 코미디’ 였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언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야기인즉, 대학신입생 시절 낙제했던 필수수학 과목을 복학후 다시 낙제하여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세번째 시도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사귀던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은 나의 이런 딱하고 한심한 사정을 듣고선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수학과목을 같이 수강하며 나를 도우려고 애썼는데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선 예상문제를 몇개 적어 주었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린’ 엉터리 한글 편지처럼,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수학문제의 해답들을 시험지에 ‘그려냈어요’ 🙂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바라는 성과를 내고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꺼에요. 그런 성공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순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가 어렵겠지요. 물론 그 기간의 길이 또 그 대상의 사회적 인정도에 따라서 10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또 1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하겠지요. 인생이란 어쩌면 그 10과 1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그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챔피언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나와 연배가 비슷했던 그 수학과목 강사께서는 내가 ‘그려낸’ 엉터리 시험 답안을 이해하지도 또 동정하지도 않았어요. 세번째 낙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그 강사의 댁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분 모친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주셨는데요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짧고 어색한 대화가 오갔어요.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는데요 ‘정상적인 학생이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 젊은 수학자를 설득할 요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직전학기에 저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수학과목이 없었기 때문에요.’ 곧 자신의 일생을 바칠 그 거룩한 수학에 대해서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는 저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믿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어쨋던 그분이 고맙게도 낙제를 겨우 면하게 해주어 나는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이민도 오게 되었어요. 물론 그때 그 예쁘고 성실한 여학생과 함께 왔지요. 언젠가 블로그에 등장했었던 그 보살원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간 특정 대상에 성공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왜?’ 그리고 ‘절실함’ 이 두가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실함’이야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나 공통된 것이겠지만 ‘왜?’에 대한 대접 혹은 반응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시절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도시설계 스케치 그리고 도면작성에 열을 올릴때 나는 ‘왜 저렇게 해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태동기였던 CAD를 (컴퓨터로 설계도를 만들어 내는 기술) 독학으로 익히게 되었어요. 내 ‘왜?’의 흔적은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CAD를 활용한 도시설계 프로젝트였을 인천 ‘시화(시흥)공업단지’에 남아 있어요. 무슨 인간 승리나 대단한 성취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해답이 한때 세상과 맞물려 거둔 작은 성공의 예로써 해본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조봉한 박사라는 유명한 수학자를 알게 되었어요. 이분은 수학박사인 자신의 딸이 수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선 충격을 받아 초등생 딸을 수렁에서 건져내고서(?) 수학교육사업을 시작하게된 인공지능 전문가 입니다. 이분이 수학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과도 달라 보입니다. 학교측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몇시간씩 평범한 초등학생들에게 서너달 수학을 가르쳤는데요, 이들과 서울대 수학과 신입생들에게 같은 문제를 내어주고선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간에 해답을 찾는가 보여주는 짧은 도큐맨트리를 보고선 나도 몹시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 수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초등학생들은 미분적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배우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원리를 배워 꽤뚫고 나서 몇가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그 똑똑한 대학생 형들과 언니들이 엄청난 공식들을 쏟아부어 풀어낸 문제들을 똑같이 풀어 냅니다. 더 빨리. 물론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또 위험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수학자가 부르짖고 또 그 초등학생들이 증명한 것은, 수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부딪치는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컴퓨터나 계산기가 할수없는) 인간고유의 정신활동이지, 누군가 이미 찾아 놓은 (공식이라며 존재하는) 해답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워서 출제된 시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내와 저녁때 잠시 수학 이야기를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가 비록 좋은 수학 성적은 받았었지만 (그때 함께 수강했던 수학과목에서도 A를 맞았었어요) 사실은 나는 수학이라는 것 차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아마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공부했던 수학을 전부 잊어버렸지 싶어요.’ 이렇게 아내가 말했어요.

수포자 챔피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대도 나처럼 수학의 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나요?’ 당신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던 공식들을 더 많이 외워 더 빠르게 적용시킨다고 내 삶의 문제들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삶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점점 깨닫고 있지 않나요? 그 수학 덕분에 성공한 삶을 살면서 그대에게 얼마나 그 공식들의 인이 박히게 되었을까요?

내 삶을 통털어 지금처럼 수학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적은 일찌기 없었어요 (써놓고도 ‘어머 놀래라’) 🙂 나는 다시 수학책을 펴렵니다. 내겐 그야말로 돌아온 탕자(?) 입니다. 노스텔지어 일지도 모르겠고 또 아내말처럼 (꼬박꼬박 차려 주었더니) 배가 불러 별짓을 다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때 호기심 많고 ‘왜?’ 라고 물었던 어린 나는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수학선생님이 되어 수포자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얘야 왜라고 물었었니?’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김범석 의사선생님의 훌륭한 책에 나온 작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중에서 선생께 ‘십년만 더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간절히 말했던 분이 있었다고 해요. ‘십년 더 사시면 무었을 하실 계획이세요’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