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갈굼

일전에 좀 특이한 도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때 나왔던 어떤 장면이 충격적이라 요즘도 때때로 생각이 난다. 그 일본사람들이 만든 도큐멘터리는 세계 여러나라의 ‘특이한 환경이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무었을 어떻게 먹는가?’ 그런 주제였다. 예를들면 미국의 갱들은 무었을 어떻게 먹는가? 남미에서 반정부 운동하는 게릴라들은 무었을 어떻게 먹는가? 이렇게 좀 황당하긴 해도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뭐 그냥 이것 저것 먹더라’ 🙂

‘아프리카에 사는 에이즈 걸린 사람들은 무었을 어떻게 먹는가’도 직접 찾아 가서 사람을 만나서 촬영을 했는데 내가 그것 보고서 좀 충격을 받았다. 물론 결론은 ‘식당에서 밥 사먹는다’. 그런데 그 밥을 사게 되는 과정, 밥을 파는 환경, 무었으로 만든 어떤 밥인지, 그리고 전반적인 상황을 그 도큐멘터리를 통해서 보게 되있는데…

나도 옛날에 군대에서 보초를 서다가, 먹는 것에 대한 ‘갈애’를 (눈먼 목마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잠시 돌아서 (단지 못먹어서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그때만 하여도 우리 동료 군인들이 안먹고 버리는 쌀밥이 매일 돼지사료로 처분되던 가난하지 않은 군대였다) 같은 기지에 근무하는 미군들이 사용하는 빈 버스안에 들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먹다 버린 핫도그를 ‘찾아내서’ 먹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잠시 정신이 돈다는 것, 눈이 휘리릭 돈다는 것 좀 무섭다. 깨긴 하더라만. 사람이 그럴만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우습게 그리고 쉽게 미치기도 하는가 보더라. 나 혼자만 그런가 🙂

그런데 이정도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 같은 상황이더라. 그 아프리카라는 곳이 그리고 그넘의 가난이. 에이즈에 감염 되었어도 치료는 커녕, 그 성치 못한 몸으로 하루벌어 하루먹어야 하는데, 그 척박한 땅 그 가난한 나라에서, 가진것 없고 병든 여자가 무었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있을까? 그 병들고 꼬질꼬질 마른 몸을 ‘그래도’ 사러오는 남자들에게 작은 돈을 받고 팔더라. 그 몇 푼 몸 팔아 받은 돈으로 깜깜한 밤길을 걸어 (사람들이 많은 시내인데 가로등이 없어요) 식당에 밥을 사먹으러 가더라. 밥 사먹고 돈이 조금 남으면 마약 살 예정. 촬영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래도 내가 벌어서 먹는다’고 말하는데 그 표정을 보면서 도대체 인간이 뭐고 삶이 뭔가 싶더라. 같은 시대에 같은 지구에서 태어나 살면서… 어쨋던 오래 걸어서 식당에 갔는데, 무슨 식당이 아무런 불빛이 없어서 칠흑처럼 깜깜해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밥을 먹고 있더라만. 카메라 조명으로 비춰보니, 아마도 무슨 험한 쌀처럼 보이는 곡물을 쪄서 접시 위에 많이 담았고 무슨 채소나 식물뿌리를 갈아 양념한 것을 그냥 좀 얹어 비벼 손으로 먹더라. 하루에 한끼밖에 못먹는다며 그 큰 접시에 가득찬 밥을 다 먹더라. 그 일본넘들 내가 좀 존경스럽던데, 그 여자가 먹던 중간에 ‘너도 한번 먹어볼래?’ 권하니까 덥석 떠서 같이 먹더라. 센 넘.

내가 직장생활 하면서 비건을 (vegan, 완전한 채식주의자) 몇넘 만났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인데, 다 자기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고 또 일리가 있더라. 그런데 내가, 몸 팔아서 하루에 한끼, 불도 없는 깜깜한 식당에서 겨우 먹고 연명하는 그 가난한 사람을 보면서 왜 그 비건넘들의 상판이 떠올랐을까?

니가 빨간색 바지가 좋다는데 내가 뭐라겠나? 니 취향을 누가 뭐라나? 혼자서 샛빨갛게 하고 사세요. 그런데 슬그머니 빨간색이 ‘더’ 좋다고 이야기를 해대더니 나중에는 ‘원래’ 빨간색이었어야 한다는 투로 멍멍이 소리를 하니… 그 아프리카 나라에 가서, 불도 없이 깜깜한 식당에 앉아서 하루에 한끼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한 동안 살아 봐라. 그래도 비건 타령이 나오는지. 그 사람들하고 우리하고 다르지 않다. 우연히 주어진 환경이 다를 뿐이지 사람은 똑 같다.

빨강이니 파랑이니 하는 것은 물감 살 돈 있는 넘들이 다 만들어 낸거여. 비건 타령도 마찬가지고 🙂

인경씨

인경씨는 서른이 넘은 프로골퍼예요. 전에 세계에서 유일한 도마 (뜀틀) 기술인 ‘양1’을 창조했다고 소개했던 체조선수 양학선 선수처럼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인경씨는 키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며 또 나이도 많은 축에 속하는 골퍼예요. 온갖 스폰서들의 이름이 붙은 옷을 잘 차려입고서 섹시하게 배꼽을 드러내며 스윙을 날리는 상품성(?) 있는 골퍼는 아니랍니다. 인경씨 보면, 다른 골퍼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한복을 잘 차려 입은 북조선 미녀를 보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 인경씨는 언제나 열심히 스스로 훈련을 하는 골퍼였고 또 재능도 있었어요. 그래서 한 5년쯤 전에 미국에서 열린 아주 큰 경기에서 (‘매이저’라고 해요)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어요.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었던가 하면 30센티 앞에 두고 있었어요. 이것을 굴려서 넣으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못 넣었답니다. 결과적으로 연장전이 벌어졌고, 그렇게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 어떻게 잘 칠 수가 있었겠어요? 졌답니다. 유튜브에, 골프 최악의 순간, 비운의 골퍼 이런 종류의 영상에 나오게 되는 치욕과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다시 마음을 추스려 잘 해볼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다음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우승은 커녕 상위권에도 들지 못하며 점점 잊혀졌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그 30센티 퍼팅을 실패한 직후의 모습입니다. 차마 인경씨 얼굴을 보기가 어렵내요.
인경씨는 순례여행도 홀로 다녀 보고 또 법륜스님이 계시는 정토회에도 나가서 수행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그때 그 고통을 딪고 일어나려고 무척 많은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칠흑같이 깜깜한 절망의 밤이 아마도 한 3-4년은 계속되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포기했지 싶어요. 그렇지만 인경씨는 포기하지 않고, 그 부러진 날개로 다시 날아 볼려고 열심히 노력을 계속 했대요.

30센티 퍼팅을 실패했던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인경씨는 영국에서 벌어진, 가장 권위있다는 브리티쉬오픈에서 (‘매이저’ 입니다) 우승을 하게 됩니다. 참 잘했어요. 그야말로 골퍼의 해탈 열반이 아니겠어요? 부활한 인경씨의 모습입니다. 오른손에 챔피언 트로피를 들고 훨훨 날고 있군요 🙂
인경씨는 이제 서른이 갓 넘었는데요. 앞으로도 오래 선수생활을 하길 바라지만 또 장차 은퇴를 하더라도 참 행복하게 살지 싶어요. 한 훌륭한 인간으로, 좋은 배우자 좋은 엄마 노릇을 하며, 인생의 많은 행복을 누릴 조건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녀가 벌어들인 돈때문이 물론 아니예요.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또 어떤 사람도 대신 찾아 줄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을, 행복의 열쇄를, 인경씨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찾은 것 같은 느낌이 그녀를 볼때면 들어요. 그 길고 절망적이었던 어둠을 인내와 노력으로 몰아내고 그 자리를 빛으로 다시 채운 인경씨. 한 인간이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무르익고 여물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참 훌륭하고 또 존경스럽습니다.

누가 내게 ‘어떤 프로선수와 한라운드를 함께 해보고 싶은가’ 묻는다면, 나는 섹시한 미녀골퍼도 또 300미터 티샷 날리는 괴물골퍼도 아니고, 물론 인경씨와 함께 하고 싶다고 하겠지요.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인경씨와 한 라운드를 함께 한다면, 그녀가 부러진 날개로 더 높이 나르게 된 그 힘들고 외로웠던 과정을, 그리고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사는 그녀의 품위 있는 삶을 이야기 듣고 싶어요.

인경씨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지 싶네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더 로즈’ 베티 미들러가 불러요. 그리고 내 나름대로 번역을 덧붙였어요.

The Rose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the tender reed.
Some say love it is a razor
That leaves your soul to bleed.

Some say love it is a hunger
An endless, aching need
I say love it is a flower,
And you it’s only seed.

It’s the heart afraid of breaking
That never learns to dance
It’s the dream afraid of waking
That never takes the chance

It’s the one who won’t be taken,
Who cannot seem to give
And the soul afraid of dying
That never learns to live.

And the night has been too lonely
And the road has been too long.
And you think that love is only
For the lucky and the strong.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어떤 이는, 사랑은 연약한 갈대를 익사 시키는 강물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이 그대의 영혼을 피흘리게 하는 면도날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이는, 사랑이 끝없이 아픈 갈망이며 굶주림이라고도 말하는데
나는, 사랑은 꽃이며 당신은 그 사랑의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상처 받기 두려워 하는 마음이 결코 춤을 새로 배우지 못하게 막고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까 두려워 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결코 시도하지 못하게 막아요.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은 베풀지 못하는 법이며
죽는것을 두려워 하는 영혼은 정말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해요.

밤이 너무 외롭고 또 갈 길은 너무 멀 때
사랑이란 운이 좋은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만의 것인가 당신은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한겨울 차가운 눈 아래 묻혀 있는 그 씨앗이
봄이 오면 따스한 햇님의 사랑으로 장미로 피어나리라는 것을.

우리를 니르바나로 향하게 하는 7가지

지난번에 위빠사나 명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우선 ‘두카에 관한 4가지 진실’을 가지고 각자 형편과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위빠사나 명상을 한번 시도해 보자고 했어요. 그리고 다른 좋은 명상의 소재를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오늘은 ‘우리를 니르바나로 향하게 하는 7가지’의 요소 혹은 요인을 아래에 옮겨 보았어요.

1. Mindfulness

2. Investigation of Dhamma

3. Energy

4. Joy

5. Tranquility (평온 혹은 고요함이라는 의미인데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가 내린 곳이 ‘고요의 바다’라고 명명된 곳이라고 해요. 영어로는 ‘the sea of tranquility’.)

6. Concentration

7. Equanimity (평정 혹은 정서적 안정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요, ‘숨쉬는 것이 고르다’라는 두개의 말이 합쳐져서 생긴 단어라고 해요. 또 다른 설명은 ‘평정이란 마음의 균형을 잃을 수있는 경험에 노출 되어도 흔들리지 않고 또 방해받지 않는 심리적 안정과 평온의 상태라고도 하네요.)

이 7가지를 붓다의 제자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또 수행하는지, 하나 하나씩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아요.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 두번째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하고서 시간이 좀 흘렀다.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작년말 말레이지아에서 설법하면서 말씀하신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는, 스님에 따르면 자신의 50년 수행의 결론이라고 하신다. 이것을 옛날에 몰랐던 것이 아니니, 먼 길을 돌고 돌아 원래 출발했던 그 자리로 온 것 같다고 한다.

어떤 서구의 유명한 종교학자의 말씀을 빌어 표현하시기를 ‘신은, 인간이 자아와 이기심을 버린 그 공간 만큼만 인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담마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버린 그 빈 공간 만큼만 수행자에게 채워질 수 있다’.

To change from ‘Self-centered to Dhamma-centred’ one needs to surrender and let go of. The more you surrender, the more you would be enlightened. The more you let go of, the more you would realise the ultimate truth. ‘자기중심에서 담마중심’으로 변화하려면, 버리고 (포기하고) 또 내려 놓아야 한다. 더 포기하고 버릴수록 더 해탈할 것이며, 더 내려 놓을수록 더 열반에 가까워질 것이다.

무었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는 각자마다 다르지 않겠나.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데.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공부요, 또 알게된 것들을 행동으로 반복해서 습관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수행 아닐까? 그리고 조심스레 짐작하건데, 바로 이렇게 수행 하며 사는 현재의 삶에서 어쩌면 니르바나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두번째 이야기

옛날에 한국이 미국원조를 많이 받을때 ‘교육원조’의 일환으로, 서울대 사람들이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많이 받았었다. 한때 서울대 교수들 중에서 이 대학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미네소타 주립대’ 하면 지명도가 아직도 상당하지 싶다. 이 미네소타 주립대는 영어로 ‘The University of Minnesota, Twin Cities’ 라고 하며 세계 50대 대학, 미국내 톱20, 재학생 숫자 5만에 가까운, 실제로 유명하고 좋은 대학이다.

미네소타주에는 대학교가 많다. 그리고 주립대학교도. 1995년 경에 미네소타 지역의 칼리지 (전문대) 그리고 교육대등을 합쳐서 ‘미네소타 주립대학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 이전까지 ‘Moorehead State University’ 그리고 ‘Mankato State University’ 등의 독자적인 이름과 역사를 가진 미네소타 지역 소규모 전문대 혹은 교육대들이 이 시스템 일부가 되면서 현재 알려진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무어헤드)’ 그리고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맨카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책의 저자 홍교수께서 재직중인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는 재학생 6천명 정도의 소규모 지방 대학교로서, 세계 대학 랭킹에 나타날 수준은 아닌 community college 혹은 미국내에서 중하위권 수준의 지방 대학교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홍교수께서 가르치는 철학과의 경우 학사과정만 개설되어 있으며, 또한 이 대학에는 (불교등 종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학과는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일하는 대학교는 종교학과가 있는데, 학부생 커리큘럼을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그런 내용과 수준의 과정들이 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분이, 미국 정규대학에서, 그것도 이공계통이 아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드문일이고 또 이분의 불교관련 연구 내용도 물론 훌륭하겠지만, ‘미네소타주립대학’ 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이분의 책과 이야기들이, 한국불교(인)의 모자람을 되돌아보고 또 좋은 발전 계기로 삼는 것을 넘어서, 무슨 엄청나고 새로운 권위로 받아들여질까 해서 하는 말이다. 한번 물어 봅시다. 우리나라 대학전체에서 100위권 혹은 그 아래 수준인 작은 지방대학교에서, 학부생 3,4학년들을 가르치며 사용한 철학 혹은 종교학 교재를 어떤 교수가 출판했다고 한다면, 그대가 서점에 갔을때 혹은 전자책을 구매할때 거들떠 보기라도 하겠나? 그런데 이 책은? 미국 지방대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했던 내용은 무언가 차원이 다르고 거룩한가? 나도 영어권 대학 그리고 대학생들 좀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들이 허우대가 크고 우리나라 또래들보다 좀 더 독립적인 것은 맞지만, 무슨 대단한 지적수준의 소유자들거나 한국 대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는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에게 홍교수께서 해준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물론 출판하면서 가감이 있었겠지만,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홍창성교수 본인이 책 타이틀을 그렇게 하자고 했을까. 돈벌이 하자고 출판사 뇬넘들이 잔대가리 굴린 것이지. 참고로, 홍교수는 이력을 밝힐때 분명히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 라고 밝히는 분이며, 도를 많이 닦은 분이니, 실력과 글의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어할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탁구 치지? 나도 치는데, 지나가는 사람 열명하고 붙으면 아마 9명에게는 이기지 싶은데. 물론 그래봐야 어릴때부터 제멋대로 친 동네탁구 수준이지만. 최근에 부서 사람들 여러명이 수요일마다 체육관에서 탁구 치는 모임을 조직해서, 나도 가끔 비가 오거나 해서 산에 가기 어려울때에 끼어서 뚝딱거리며 쳤었더랬다. 요새야 밥주걱처럼 생긴 채로 (양면 모두 사용), 놀부 마누라가 흥부 빰 때릴때 쥐던 모양으로 채를 잡고 치는 것이 대중적이지만, 내 세대만 하여도, 탁구채가 펜홀더라고 형태도 다르고 (앞면만 사용) 또 쥐는 법도 다른 채 밖에는 없었다. 몇번 치면서 어울리다 보니 재미도 있고, 또 게임을 하면, 다 이기는데 한사람에게만은 이기기가 어려워서 연구도 하게 되면서 좀 엮이게 되었다.

혹시 상상이 될란가 모르겠는데, 앞면밖에 사용할 수 없는 이 펜홀더 라켓으로 몸 왼쪽으로 오는 공을 치려면, 팔을 돌려서 손바닥이 상대방을 향하게 비틀어 쳐야만 한다. 점점 젊어지니 이렇게 하는데 부담이 생기고 또 괜스래 어려운 느낌이 들더라 (연장 나무래는 목수?) 그래서 소위 이면타법이라고 펜홀더 라켓 뒷면에도 고무를 붙여서 (‘중국펜홀더’처럼) 쳐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남편이 탁구치는 시간에 부엌에서 ‘명상하면서’ (일전에 권장했던데로) 일하고 있을 그대를 위하여 설명 드리자면, 오른손잡이인 놀부 마누라가 밥 좀 달라는 시동생 흥부의 빰을 밥주걱으로 일딴 한번 때리고 (마주선 흥부의 왼쪽빰에 작렬) 팔이 되돌아 오는 길에 흥부의 오른쪽빰을 밥주걱의 반대면으로 두번째로 강타하는 바로 그 모습이 되겠다. 이때 손등이 상대방을 향하고 있다 🙂 여러가지 노력을 들여서 라켓을 바꾸고, 유튜브도 많이 보면서 연구 그리고 집에 있는 탁구대에서 연습도 했었더랬다. 어제 실전에서 해봤는데 그야말로 0점 전혀 안통하더라. 이면으로 치기도 어렵고 또 수십년 쳐온 습관대로, 왼편으로 공이오면 팔이 저절로 돌아가니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더라.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옷으며 고백을 하고서는 뒷면에 붙였던, 이제는 무겁기만 한 고무를 떼서 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탁구 초보자도 아니고 또 나름 연구에 연습을 했음에도,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무용지물 그야말로 0점이라는 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특별히 가벼운 고무를 사오고 나무를 깍고 생쑈를 했던 그 짓이 비록 허무하고 우습게 끝이 났지만, 어쩌면 탁구 시합에서 한두점 더 따는 것 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체험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현실을 깨닫고 제자리로 되돌아 온 내 자신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일본의 한 야구감독이 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몇번 해 본 것 가지고는 시합때는 택도 없고, 수백번 수천번을 실수없이 확실히 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될까말까 하다’고. 그리고 산속에서 독학으로 바둑을 연마하여 바둑의 도가 텃다고 생각하며 하산한 형제가, 시내 기원에 가서 참패를 당하고서 자신들의 수준이 고작 아마추어 몇급 정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나도 블로그 쓰면서 조심하려고 하지만, 한번 입을 열면 제 잘난 맛에 입 다물기가 어렵다 🙂 어디서 누구에겐가 선생 노릇하려 들때 조심해야 한다. 대가리로 생각해 본 것 혹은 그저 몇 번 해본 것 가지고는 실전에서는 택도 없다니까. 그리고 바로 그 실전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쓰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심정 이해하면 함부로 입 놀리기 어렵고 또 장사를? 이런 종자들에게 마땅한 표현을 내가 일전에 했었다 ‘딸 팔아서 술 받아 쳐먹는 애비 꼴’이라고. 쉽고 쿨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세상 참 허무하고 어렵게 사는 꼴이다. 삶은 실전이고 인생은 현실입니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