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첫번째 이야기

한 일년 쯤 전에 피디수첩에서 큰 승려단체 대빵할배가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고 까발렸던 적이 있었다. 무려 두번이나. 그때 이 할배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동시에 깨졌던 승려가 있었는데 ‘현응’이라고 했다. 그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려면 이 승려도 보통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지. 중과 계급장. 대머리와 함께 모두 번쩍번쩍 🙂

이 승려는 좋은 책을 썼던 사람으로서 나도 그 책을 좋아하며 읽었었는데, 피디수첩을 상세히 보고 난 이후에 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 정도 가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리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노는 수준이 너무 하수라, 그런 책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가 있었던지 몹시 의아했으며 또한 그런 출처불명의 책을 한때 좋아했고 그 저자를 존경했던 것에 낙심했었다.

미국의 한 대학교 철학과에 재직중인 한국인 교수 부부가, 바로 이 현응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서 출판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이들의 교분은 여러가지 자료를 볼때 상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았던 바,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 한국인 교수부부, 특히 외부로 더 알려진 남편 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일지 나는 한편으로 궁금했었다. 한참 지나서 우연히 그 남편 교수되는 사람이 기고한 글을 보게 되었다. 한국사람이라면 흔히 말했을 ‘이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같은 수준의 내용이 아니더라. 일견 예상했던 바요 그리고 다행이었다.

이야기 잠시 옆길로 빠져요. 손에 장을 지지느니 큰소리 칠때 조심하세요. 내가 우연히 만났던 이곳 사람은 직업이 신문 스포츠란에 논평을 기고하는 것이었는데, 옛날에 이곳에 스타디움을 새로 지으며 건설비용에 관한 많은 언쟁이 있었을때 ‘그 비용으로 누가 지으면 내가 전화번호부를 뜯어 먹겠다’고 논평에 썼었더란다. 그 당시 이곳 전화번호부는 2권이었고 또 매우 두꺼웠었다. 한 두해가 지나서 실제로 그 비용으로 스타디움 건설을 마쳤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화번호부를 물에 불려서 뜯어 먹었던 것’은 아니고, 공개 사과를 하는 개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 🙂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아직 서로를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상대방의 어떤 좋은 언행이, 마음을 사로잡고 또 마음을 열게하는 경우도 많지 싶다. 그 남편이라는 미국교수는 홍창성박사인데, 그분 이야기인즉 ‘옛날에 내가 현응스님을 한국에서 만났던 적이 몇차례 있었다. 한번은 귀국 선물로 내게 책을 한권 사주었는데, 그때 자신을 위해서 (아마 업무에 관계된) 책을 몇권 동시에 구입하더라. 계산하는 곳에서, 내게 선물하는 그 책은 자신의 카드로 결재하고 나머지는 업무용 카드로 결재를 하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고 또 책 한권쯤 끼워 넣어서 업무용 카드로 결재한들 누가 뭐라겠나만 그는 구태여 그렇게 하더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 박사에 그 스님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비록 그 피디수첩 방영 내용이 전부 날조된 것일 수는 없겠지만 또한 동시에 상당한 오해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밝히자면, 이후에 벌어진 재판에서, 피디수첩의 방영 내용에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은 쪽으로 판결이 나서 현응스님이 승소하였다. 진실은 흑백으로 나누기가 어려울 때가 있겠지만, 어떤 색깔쪽으로 더 가깝거나 멀다는 것을 밝힐 수는 있지 않겠나. 쓰레기통에서 책을 다시 꺼내서 잘 말려 놓았다. 비유로. 요새 모두들 전자책 읽지 않나요?

서론이 무척 길었다. 항상 사서 드시는 그대는 모르겠지만, 원래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많이 기다려 본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 한 술 더 뜨자. 홍창성박사가 옛날에 쓴 어떤 수필 비슷한데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이 수행에 눈을 뜬 것이, 맞벌이 부부인 부인이 첫 아이를 낳고서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쁘게 되는 바람에) 이 양반이 한 일년간 매일 기저귀 갈면서 아기를 힘들게 돌 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 솔찍하며 인간적이요 또한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그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자 이제 쥐꼬리만한 본론을 말할 차례가 왔다. 궁극적으로 내 자랑이 되겠다.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책과 관련하여 저자가 밝힌 수행의 단계는 아래와 같다.

[저자의 단계별 정리]
1. 수행자가 고해에서 벗어나고자 깨달으려는 강한 욕구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2. 깨닫기 위해 경전 공부와 참선에 집념을 갖고 용맹정진한다.
3. 오랜 정진으로 심신이 자연스레 공부와 수행의 습관이 밴다.
4. 깨닫겠다는 의식적 욕구는 점점 줄어들어 아무런 집착 없이 공부와 수행을 계속한다.
5. 심신에 밴 공부와 수행은 자연스레 수행자를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내가 보기에, 외딴섬에서 나 홀로 떠들어대는 바로 그 이야기를 이 양반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학벌 좋고 똑똑하신 교수님께서, 오랜 세월 공부와 연구를 한 결과로 하시는 우아하고 수준있는 이야기를 나도 이 블로그에서 짓어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우하하하 멍멍멍…

다음에 더 이야기 하자. 기대하시라. 이렇게 올라 갔으니 다음번에는 내려갈 차례 아니겠어요 🙂

André Rieu

André Rieu 아세요? 한국 웹사이트에는 ‘앙드레 류’ 라고 쓰고 있던데, 그렇게 썻다가는 혹시 ‘앙드레 김’처럼 약간 특이한 한국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일부러 네덜란드어로 된 이름을 썼어요.

아이가, 이 사람 고향에서 7월말에 하는 공연 실황 중계를, 우리 동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줬어요. 주말에 부부가 한 세시간 즐거웠네요. 안드레 리우는 자기가 이끄는 80인조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와 함께 전세계를 순회하며 매년 거의 100회 가까운 공연을 해요. 우리 내외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한번은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희망해요. 참 실황 생중계는 유럽 몇나라에서만 가능했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며칠이 지난 후에 극장에서 볼 수 있었어요. 아마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지 싶은데요.

아이는, 이 사람의 대표적 시디인 ‘Dreaming’ 을 어릴때 늘 들으면서 잠이 들었어요. 아마 일이천번은 족히 들었을꺼예요. 아이의 머리에 인이 밖혀 있겠지요 🙂 나도 어쩌면 수백번은 들었을 아주 아름다운 클레식 모음이니 한번 들어 보세요.

어제 산길에서 문득, 주말에 본 이 아름다운 공연을, 붓다께서도 보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좀 황당한 상상을 했어요. 생소한 악기와 음악들 그리고 매우 다른 모습의 사람들 속에서 과연 그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상상해 보았어요.

비록 음악과 옷과 음식 그리고 술처럼, 외향은 달랐어도, 붓다께서는 사람들이 오감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기쁘고 좋은 눈으로 보셨을 꺼예요. 그리고 공연장을 빠져 나가시면서는 아마 싹 잊으셨을 것 같아요. 나중에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지 싶은데요 ‘지나치게 세련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는 카르마가 따른다. 우리 삶의 실체는 이렇게 세련되지도 또 아름답지도 않다. 이 카르마의 결과로, 그대는 바로 이러한 삶의 실체를 받아들이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이예요.

한참 멋있고 기분 좋은데 찬물 끼얹어서 죄송 🙂

담배 연기 자욱한 노름판

불과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국은 인구의 다수가 농사를 지어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사는 농업국이었다.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이모작 삼모작을 할 수 있는 기후여건이 되지 못하니,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나면 소위 농한기라는 것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 너무 추워서 아무런 농사일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나마 조금 남은 것을 가지고 근근히 넘기던 그 기간에, 우리 선대들께서는 군불 땐 뜨거운 방에 모여 앉아서 화투등 노름을 하시며 소일하는 경우도 많았다더라.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하지. 그런데 술 자주 많이 마셔 봤나?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장난이 아닌 상황으로 급변한다. 지난 여름내내 힘들게 농사지어, 가족들과 먹으려고 모아 놓았던 그 곡식, 내년에 모심기 할때 쓸려고 남겨 두었던 종자 할것없이 모조리 노름판에 판돈으로 걸게 된다. 그 다음은 집문서 논문서 그런 순서로. 그 담배 연기 자욱했던 노름판, 며칠씩 자지도 먹지도 않고 시뻘건 눈으로 밤을 세던 그 열기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면, 남은것은 훨씬 더 춥고 긴 겨울. 몇몇 아비들은 죄책감과 후회에 떡이 되도록 빚술을 마시고는 왼손 검지 손가락을 낫으로 잘랐단다. 다시는 화투장을 그 손가락으로 쪼이지 못하게. 지옥이 따로 없다. 그리고 그때 또 대를 잇는 비극들이 얼마나 많이 잉태되었을까…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니, 지금 고층 아파트에서 살며, 쌀은 동네 슈퍼에서 생산되는 줄 알며 사는 우리들의 DNA에 아직 남아 있을껄 🙂

그 왼손 검지 짤랐던 아비들, 손가락이 아물때 쯤이면 다시 농한기가 찾아오고, 그 아비들 대부분은 왼손 ‘중지’로 화투장을 쪼이고 앉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 아마 왼손목을 자른 사람들도 있었다지. 그러면 나중에는 왼팔을 왼쪽 가슴에 붙여서 화투장을 쪼이며 노름을 했다더만… 그렇게 그 사람들은 괴로움의 바다를 헤매다가 죽고 또 그들 때문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던 부인들과 가족들도 다 죽고 또 뿔뿔이 흩어졌겠지. 암진단을 받도 나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 50%가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일전에 신문에 좋은 글 쓰는 분이, 남편이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아마 음주와 관련된 암) 그렇게 술을 마시고 싶어해서, 결국은 서로 평화를 찾고 (술사다 드리고) 좋다고 웃는 얼굴 보고서 나중에 임종을 했다고 쓴 글도 읽었다. 나 역시 이런면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공감을 한다.

아주 많이 도를 닦은 승려나 다른 종교인들을, 만약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노름하던 그 담배 연기 자욱한 방, 그 상황, 그 입장에 처하게 만든다면 그들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내 생각에는 아니올시다. 맛가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거나 하는 짓이 좀 덜 극단적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그들과 똑같은 언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면 수행이란 무었일까? 소위 말하는 도를 닦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었일까? 아무 소용 없지 않은가 결국 똑 같은 짓을 하게 된다면?

최근에 니르바나 이야기를 하면서, 붓다께서도 강조하셨고 또 스스로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실천 하셨던 것처럼, 매일 매순간 그렇게 수행을 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니르바나의 또 다른 본질이 아닐까 말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수행이란 그리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깨달아, 담배연기 자욱한 노름판에 앉아 있는 자신을 장차 발견하지 않도록, 미리 매순간 깨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마 ‘뻥치기 좋아하는 왕서방과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김서방’이 만나서 만들어 낸 엉터리 이야기들이지 싶은데, 인간의 생물학적 물리적 정신적 한계를 무슨 신비한 능력을 얻어서 극복한 어떤 상상속의 모습을 마치 수행의 이상 (혹은 도인의 진면목) 처럼 그려낸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많지 않았던가? 어쩌면 좀 스토리는 달라졌고 더 세련되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아직도 주변에 그런 황당무계한 발상들이 남아 있지 않은가? 내가 잘 알고 존경하는 스님들 그리고 성직자들 중에서, 돈을 쫓는 (명예 등을 포함한 ‘세상의 가치’라는 의미)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또한 그들중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솔찍하고 적나라하게 (적절한 이유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드러내지 않는 분도 없었다. 신비한 능력? 인간이 무르익고 성숙해진 결과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어떤 저의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되고 또 그것들과 기꺼이 공존하게 된 이것이야말로 신비한 능력 아닌가?

‘섹스엔시티’라는 시트콤이 (연재드라마) 있었는데 나도 옛날에 가끔 보았다. 뉴욕에 사는 돈많고 예쁜뇬들의 허리띠 아래 잡담을 소재로 하는 코매디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는데, 사만다라는 여자가 (약간 덜 평범한 섹스를 좋아하던 케랙터?) 어떤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귀게 된 상황이었다. 사만다는 이 남자의 중후한 멋 그리고 원숙한 매력에 이끌려, 자기보다 나이가 두배 혹은 그 이상이 되는 남자와 섹스를 원하게 되었다. 아마 이 부유한 늙은이의 크고 화려한 침실이었겠지. 이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화장실로 걸어가는 뒷 모습을 사만다가 우연히 보게 된 거라. 그 중후하고 원숙한 매력과 대비되는 쭈글쭈글하고 축 쳐진 늙은 영감의 엉덩이를. 그 순간 사만다의 환상은 깨지고 급격하게(?) 정신을 차린 사만다는, 그 남자가 아직 화장실에 있는 틈을 타서 그 방을 몰래 빠져나와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섹스는 무슨 🙂

아! 나이가 들면 스큇을 해서 엉덩이를 최대한 빵빵하게… 그런 개 풀 뜯어 먹는 이야기가 아니라, 방금 말했던 ‘인간의 생물학적 물리적 정신적 한계를’ 알고 깨닫고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것 위에서 (환상이 아닌) 현실의 집을 지어야 자신도 주변도 모두들 행복하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붓다께서 가르치시는 잘 사는 길, 행복을 찾는 길, 그리고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명상 – 네번째 이야기

집근처에 있다는 그 사찰에 가면, 어떨때는 주말을 이용해서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 중에서 ‘종람’ (아마도 팔리어) 이라고 하던가 ‘걸으면서 하는 명상’을 할때도 있어요. 한 십미터 정도의 거리나 혹은 사찰의 어떤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발끝의 센세이션도 느끼고 또 마음을 집중해서 명상을 한다고 해요. 직접 해 본적은 없어요. 하는 꼴이 좀 우습거든요. 무슨 좀비들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계속해요 🙂 한번은 그것 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한 방문객들이 약간 소란하게 했어요. 그랫더니 글쎄 그중 한넘이 ‘조용히 하라’고 좀 성을 내는 거예요. 이 녀석 지금 뭐하나 싶었어요.

일전에 내가 몇차례 언급한 티라다모 큰스님 기억하시지요? 이분이 태국에 아마 한 10년 가까이 계셨다고 해요. 그 ‘아잔차’라는 분의 사찰, 전세계에서 많은 서구인들이 수행하러 온다던 그곳에서요. 그런 사람들을 수백명 혹은 더 많이 보면서 발견한 것이 있대요. 작심하고 온 사람치고 (즉 해탈하겠다고 시작하는 사람치고) 오래 가는 사람 못 봤대요. 스님께서 보신 최고 (최악) 기록은 어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수행자인데요, 많이 알고 배운 사람인데 정말 작심하고 왔대요. 그런데 2주만에 때려치우고 돌아 갔는데요, 그 이유가 ‘개가 너무 시끄럽게 짖어대서’ 였대요 🙂 그리고 스님 본인처럼, 그저 한 몇주 한 몇달 ‘맛이나 좀 볼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신 분들이 결국은 오래 남아서 스님이 되신 경우가 훨씬 많대요. 나도 한국을 떠나서 살고 있는지가 오래 됬는데요, 이 말에 매우 동의 합니다. ‘원샷밖에 없다’ (한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혹은 그런 문화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고 또 생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말 장기전 무언가 가치있고 중요한 것을 진득히 노력해서 익히고 불려서 길고 크게 성취하는 데에는 전혀 유리하지 않다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원샷밖에’ 없게 된 이유가, 사실은 가난함이고 또 소수의 나쁜넘들이 너무 많이 쳐먹은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명상에 대해서 ‘반농담’처럼 하신 ‘좋은 힌트’들을 나는 직접 여러번 들었는데요, (실제로 자주 하시던) 사찰 주변 산길을 구슬땀을 흘리며 정비하며 (노동 명상), 쇼핑하면서 (쇼핑 명상), 부엌에서 식기 씻으며 (부엌 명상) 이런 말씀을 웃으면서 자주 하셨더랬어요. 태국 불교가 명상을 크게 중요시 하는데요 (붓다께서 중요시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스님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서 어떤분은 ‘집중 명상’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분은 ‘위빠사나 명상’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고, 또 티라다모 큰스님같은 분은 지나치게 정형화된 어떤 형태의 명상 (예를 들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다리가 마비될 때까지 버티며 죽기살기로 명상하거나, 혹은 시끄럽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내면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명상) 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기회가 될때마다 자기 마음을 딱 보면서 소위 ‘mindfulness’ 명상을 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좀 아껴둔 비밀인데요. 나는 앉아서 뭐 좀 폼잡고 명상하려고 하면 잠이 와요. 그래서 집중 명상은 잘 안하고요, 대신에 조용한 산길을 땀을 흘리면서 달리며, 여러가지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혹은 일어났던 일들을, 붓다의 가르침에 (내가 아는 만큼이나마) 대입시키면서 조용히 되세겨 보는 일종의 위빠사나 명상을 자주해요. 전에 달리면 두되가 핑핑 잘 작동된다고 했었지요? 약간 그런 느낌도 있어요. 착각인가 🙂 혹시 주변에 조용한 어떤 산책로나 운동할 장소가 있으면, 좀 빨리 걷거나 혹은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좀 뛰면서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걷거나 뛰면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집중명상도 할 수 있겠지요. 숨 쉬면서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싶어지는데요 (자꾸 집중이 흐트러지니까), 그것보다는 그냥 숨쉬는 것을 바라보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저 다시 좋게 마음을 불러 오는 정도로 하면 더 좋대요.

자, 오늘 저녁부터는 부엌에서 설거지 하면서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가? 내 팔자야…’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채우지 말고, 집중 명상 혹은 위빠사나 명상을 한번 시도해 보심이 어떨런지요? 그 나쁜(?) 가족들보다 먼저 해탈 하시지 싶은데요 🙂

독수리처럼 보려면 독수리의 두뇌를 가져야 한다

좋은 이야기가 자주 ‘One Strange Rock’ 도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것 같네요 🙂 몽고에서는 독수리를 훈련시켜, 말타고 거대한 평원에 데리고 나가서 여우 사냥을 하는 풍습이 오래 내려 온다고 해요. 그 도큐멘터리에도 실제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기억에 그 context는 (스토리의 주제는) ‘3킬로 떨어진 여우를 즉각적으로 볼 수 있는 독수리의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독수리의 눈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독수리의 두뇌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왜 하고 있었던가 하면, 인간만이 가진 유일하고 독창적인 능력들도 모두 인간의 발달된 ‘두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예요.

어제 니르바나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했었어요. 내가 했던 이야기에 따르면,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위 ‘불을 끄고 목마름을 없애는’ 꾸준한 과정이 필요하며 (붓다께서 가르치신 8가지 훌륭한 길을 따라서), 그 과정이 흡사 태권도처럼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지, 흑과 백의 이분법 처럼 ‘끄진 사람과 끄지지 않은 사람’ 이렇게 단순히 나눌 수가 없다고 했었어요. 불과 목마름을 줄여가는 수행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는 지당한 말이지 싶고 또 여러분도 동의하지 싶어요.

하지만 ‘불이 50% 꺼지면, 50점 짜리 니르바나를 경험한다’ 이런식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붓다와 훌륭한 제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니르바나는 오직 스스로 realise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시기 때문이예요. 이 ‘realise’라는 말에 정말 정확히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는 아마 없지 싶어요. ‘Tommy’s realised his life-long dream’ 이런식으로 사용하는데, 이 뜻은 대략 ‘토미가 평생을 꿈꾸던 그것을 (구태여 말로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혹은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이) 스스로 이루어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좀 이런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내가 왜 처음에 독수리 눈과 두뇌 이야기를 했을까요? 만약 당신에게 어떤 괴이한 기적이 일어나서 독수리의 눈과 독수리의 두뇌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독수리처럼 ‘보게’ (사실은 ‘독수리처럼 두뇌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독수리의 눈도 또 독수리의 두뇌도 없는데 말이예요? 오직 그 사람만이, 다만 그렇게 그저 체험하며 살 뿐이지 싶이요.

이야기가 조금 빗나가는데요, 니르바나가 어떤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어떤 것 혹은 어떤 상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머리 깍고 단 하루만이라도 승려로서 수행하는 것이 일반 대중으로 평생을 수행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도 했어요. 종교를 업으로 삼아, 사람들을 ‘가르치며 밥 벌어 먹고 산다’는 이들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건방떠는 것과 돈벌이 하는 것’이예요. 왜냐하면 이 두가지 만큼, 가르치려는 자가 가르칠 자격이 없는 넘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반증하는 것은 없다고 나는 확신하거든요.

우리는 이 정도만 니르바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싶어요. 우주 끝에는 뭐가 있나요? 니르바나 다음에는 어떤 상태가 있나요? 이런 질문들에는 붓다께서 결코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또한 니르바나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주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하지 않으셨고, 단지 몇 차례 간접적인 비유를 들거나, 혹은 이러저러한 것은 니르바나가 아니다 이런식으로 말씀을 하신 경우는 있다고 하는군요. 참 그리고 붓다께서 ‘(수백명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니르바나를 reslise 했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대요. 기분 좋지요 🙂

우리 모두 기억해요. 지금 우리에게는 니르바나가 흡사 독수리의 눈과 그 보는 능력처럼 다만 이야기 거리요 상상일 뿐이지만, 우리들 중에서 누군가는 언젠가 니르바나를 realise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예요. 그리고 그때, 그 사람의 학벌, 피부색, 성별 그리고 머리 카락의 길이는 결코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