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첫번째 이야기

한 일년 쯤 전에 피디수첩에서 큰 승려단체 대빵할배가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고 까발렸던 적이 있었다. 무려 두번이나. 그때 이 할배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동시에 깨졌던 승려가 있었는데 ‘현응’이라고 했다. 그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려면 이 승려도 보통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지. 중과 계급장. 대머리와 함께 모두 번쩍번쩍 🙂

이 승려는 좋은 책을 썼던 사람으로서 나도 그 책을 좋아하며 읽었었는데, 피디수첩을 상세히 보고 난 이후에 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 정도 가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리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노는 수준이 너무 하수라, 그런 책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가 있었던지 몹시 의아했으며 또한 그런 출처불명의 책을 한때 좋아했고 그 저자를 존경했던 것에 낙심했었다.

미국의 한 대학교 철학과에 재직중인 한국인 교수 부부가, 바로 이 현응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서 출판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이들의 교분은 여러가지 자료를 볼때 상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았던 바,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 한국인 교수부부, 특히 외부로 더 알려진 남편 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일지 나는 한편으로 궁금했었다. 한참 지나서 우연히 그 남편 교수되는 사람이 기고한 글을 보게 되었다. 한국사람이라면 흔히 말했을 ‘이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같은 수준의 내용이 아니더라. 일견 예상했던 바요 그리고 다행이었다.

이야기 잠시 옆길로 빠져요. 손에 장을 지지느니 큰소리 칠때 조심하세요. 내가 우연히 만났던 이곳 사람은 직업이 신문 스포츠란에 논평을 기고하는 것이었는데, 옛날에 이곳에 스타디움을 새로 지으며 건설비용에 관한 많은 언쟁이 있었을때 ‘그 비용으로 누가 지으면 내가 전화번호부를 뜯어 먹겠다’고 논평에 썼었더란다. 그 당시 이곳 전화번호부는 2권이었고 또 매우 두꺼웠었다. 한 두해가 지나서 실제로 그 비용으로 스타디움 건설을 마쳤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화번호부를 물에 불려서 뜯어 먹었던 것’은 아니고, 공개 사과를 하는 개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 🙂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아직 서로를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상대방의 어떤 좋은 언행이, 마음을 사로잡고 또 마음을 열게하는 경우도 많지 싶다. 그 남편이라는 미국교수는 홍창성박사인데, 그분 이야기인즉 ‘옛날에 내가 현응스님을 한국에서 만났던 적이 몇차례 있었다. 한번은 귀국 선물로 내게 책을 한권 사주었는데, 그때 자신을 위해서 (아마 업무에 관계된) 책을 몇권 동시에 구입하더라. 계산하는 곳에서, 내게 선물하는 그 책은 자신의 카드로 결재하고 나머지는 업무용 카드로 결재를 하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고 또 책 한권쯤 끼워 넣어서 업무용 카드로 결재한들 누가 뭐라겠나만 그는 구태여 그렇게 하더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 박사에 그 스님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비록 그 피디수첩 방영 내용이 전부 날조된 것일 수는 없겠지만 또한 동시에 상당한 오해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밝히자면, 이후에 벌어진 재판에서, 피디수첩의 방영 내용에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은 쪽으로 판결이 나서 현응스님이 승소하였다. 진실은 흑백으로 나누기가 어려울 때가 있겠지만, 어떤 색깔쪽으로 더 가깝거나 멀다는 것을 밝힐 수는 있지 않겠나. 쓰레기통에서 책을 다시 꺼내서 잘 말려 놓았다. 비유로. 요새 모두들 전자책 읽지 않나요?

서론이 무척 길었다. 항상 사서 드시는 그대는 모르겠지만, 원래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많이 기다려 본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 한 술 더 뜨자. 홍창성박사가 옛날에 쓴 어떤 수필 비슷한데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이 수행에 눈을 뜬 것이, 맞벌이 부부인 부인이 첫 아이를 낳고서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쁘게 되는 바람에) 이 양반이 한 일년간 매일 기저귀 갈면서 아기를 힘들게 돌 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 솔찍하며 인간적이요 또한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그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자 이제 쥐꼬리만한 본론을 말할 차례가 왔다. 궁극적으로 내 자랑이 되겠다.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책과 관련하여 저자가 밝힌 수행의 단계는 아래와 같다.

[저자의 단계별 정리]
1. 수행자가 고해에서 벗어나고자 깨달으려는 강한 욕구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2. 깨닫기 위해 경전 공부와 참선에 집념을 갖고 용맹정진한다.
3. 오랜 정진으로 심신이 자연스레 공부와 수행의 습관이 밴다.
4. 깨닫겠다는 의식적 욕구는 점점 줄어들어 아무런 집착 없이 공부와 수행을 계속한다.
5. 심신에 밴 공부와 수행은 자연스레 수행자를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다음에 더 이야기 하자. 기대하시라. 이렇게 올라 갔으니 다음번에는 내려갈 차례 아니겠어요 🙂

담배 연기 자욱한 노름판

불과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국은 인구의 다수가 농사를 지어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사는 농업국이었다.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이모작 삼모작을 할 수 있는 기후여건이 되지 못하니,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나면 소위 농한기라는 것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 너무 추워서 아무런 농사일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나마 조금 남은 것을 가지고 근근히 넘기던 그 기간에, 우리 선대들께서는 군불 땐 뜨거운 방에 모여 앉아서 화투등 노름을 하시며 소일하는 경우도 많았다더라.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하지. 그런데 술 자주 많이 마셔 봤나?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장난이 아닌 상황으로 급변한다. 지난 여름내내 힘들게 농사지어, 가족들과 먹으려고 모아 놓았던 그 곡식, 내년에 모심기 할때 쓸려고 남겨 두었던 종자 할것없이 모조리 노름판에 판돈으로 걸게 된다. 그 다음은 집문서 논문서 그런 순서로. 그 담배 연기 자욱했던 노름판, 며칠씩 자지도 먹지도 않고 시뻘건 눈으로 밤을 세던 그 열기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면, 남은것은 훨씬 더 춥고 긴 겨울. 몇몇 아비들은 죄책감과 후회에 떡이 되도록 빚술을 마시고는 왼손 검지 손가락을 낫으로 잘랐단다. 다시는 화투장을 그 손가락으로 쪼이지 못하게. 지옥이 따로 없다. 그리고 그때 또 대를 잇는 비극들이 얼마나 많이 잉태되었을까…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니, 지금 고층 아파트에서 살며, 쌀은 동네 슈퍼에서 생산되는 줄 알며 사는 우리들의 DNA에 아직 남아 있을껄 🙂

그 왼손 검지 짤랐던 아비들, 손가락이 아물때 쯤이면 다시 농한기가 찾아오고, 그 아비들 대부분은 왼손 ‘중지’로 화투장을 쪼이고 앉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 아마 왼손목을 자른 사람들도 있었다지. 그러면 나중에는 왼팔을 왼쪽 가슴에 붙여서 화투장을 쪼이며 노름을 했다더만… 그렇게 그 사람들은 괴로움의 바다를 헤매다가 죽고 또 그들 때문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던 부인들과 가족들도 다 죽고 또 뿔뿔이 흩어졌겠지. 암진단을 받도 나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 50%가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일전에 신문에 좋은 글 쓰는 분이, 남편이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아마 음주와 관련된 암) 그렇게 술을 마시고 싶어해서, 결국은 서로 평화를 찾고 (술사다 드리고) 좋다고 웃는 얼굴 보고서 나중에 임종을 했다고 쓴 글도 읽었다. 나 역시 이런면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공감을 한다.

아주 많이 도를 닦은 승려나 다른 종교인들을, 만약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노름하던 그 담배 연기 자욱한 방, 그 상황, 그 입장에 처하게 만든다면 그들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내 생각에는 아니올시다. 맛가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거나 하는 짓이 좀 덜 극단적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그들과 똑같은 언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면 수행이란 무었일까? 소위 말하는 도를 닦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었일까? 아무 소용 없지 않은가 결국 똑 같은 짓을 하게 된다면?

최근에 니르바나 이야기를 하면서, 붓다께서도 강조하셨고 또 스스로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실천 하셨던 것처럼, 매일 매순간 그렇게 수행을 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니르바나의 또 다른 본질이 아닐까 말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수행이란 그리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깨달아, 담배연기 자욱한 노름판에 앉아 있는 자신을 장차 발견하지 않도록, 미리 매순간 깨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마 ‘뻥치기 좋아하는 왕서방과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김서방’이 만나서 만들어 낸 엉터리 이야기들이지 싶은데, 인간의 생물학적 물리적 정신적 한계를 무슨 신비한 능력을 얻어서 극복한 어떤 상상속의 모습을 마치 수행의 이상 (혹은 도인의 진면목) 처럼 그려낸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많지 않았던가? 어쩌면 좀 스토리는 달라졌고 더 세련되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아직도 주변에 그런 황당무계한 발상들이 남아 있지 않은가? 내가 잘 알고 존경하는 스님들 그리고 성직자들 중에서, 돈을 쫓는 (명예 등을 포함한 ‘세상의 가치’라는 의미)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또한 그들중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솔찍하고 적나라하게 (적절한 이유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드러내지 않는 분도 없었다. 신비한 능력? 인간이 무르익고 성숙해진 결과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어떤 저의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되고 또 그것들과 기꺼이 공존하게 된 이것이야말로 신비한 능력 아닌가?

‘섹스엔시티’라는 시트콤이 (연재드라마) 있었는데 나도 옛날에 가끔 보았다. 뉴욕에 사는 돈많고 예쁜뇬들의 허리띠 아래 잡담을 소재로 하는 코매디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는데, 사만다라는 여자가 (약간 덜 평범한 섹스를 좋아하던 케랙터?) 어떤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귀게 된 상황이었다. 사만다는 이 남자의 중후한 멋 그리고 원숙한 매력에 이끌려, 자기보다 나이가 두배 혹은 그 이상이 되는 남자와 섹스를 원하게 되었다. 아마 이 부유한 늙은이의 크고 화려한 침실이었겠지. 이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화장실로 걸어가는 뒷 모습을 사만다가 우연히 보게 된 거라. 그 중후하고 원숙한 매력과 대비되는 쭈글쭈글하고 축 쳐진 늙은 영감의 엉덩이를. 그 순간 사만다의 환상은 깨지고 급격하게(?) 정신을 차린 사만다는, 그 남자가 아직 화장실에 있는 틈을 타서 그 방을 몰래 빠져나와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섹스는 무슨 🙂

아! 나이가 들면 스큇을 해서 엉덩이를 최대한 빵빵하게… 그런 개 풀 뜯어 먹는 이야기가 아니라, 방금 말했던 ‘인간의 생물학적 물리적 정신적 한계를’ 알고 깨닫고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것 위에서 (환상이 아닌) 현실의 집을 지어야 자신도 주변도 모두들 행복하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붓다께서 가르치시는 잘 사는 길, 행복을 찾는 길, 그리고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명상 – 네번째 이야기

집근처에 있다는 그 사찰에 가면, 어떨때는 주말을 이용해서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 중에서 ‘종람’ (아마도 팔리어) 이라고 하던가 ‘걸으면서 하는 명상’을 할때도 있어요. 한 십미터 정도의 거리나 혹은 사찰의 어떤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발끝의 센세이션도 느끼고 또 마음을 집중해서 명상을 한다고 해요. 직접 해 본적은 없어요. 하는 꼴이 좀 우습거든요. 무슨 좀비들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계속해요 🙂 한번은 그것 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한 방문객들이 약간 소란하게 했어요. 그랫더니 글쎄 그중 한넘이 ‘조용히 하라’고 좀 성을 내는 거예요. 이 녀석 지금 뭐하나 싶었어요.

일전에 내가 몇차례 언급한 티라다모 큰스님 기억하시지요? 이분이 태국에 아마 한 10년 가까이 계셨다고 해요. 그 ‘아잔차’라는 분의 사찰, 전세계에서 많은 서구인들이 수행하러 온다던 그곳에서요. 그런 사람들을 수백명 혹은 더 많이 보면서 발견한 것이 있대요. 작심하고 온 사람치고 (즉 해탈하겠다고 시작하는 사람치고) 오래 가는 사람 못 봤대요. 스님께서 보신 최고 (최악) 기록은 어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수행자인데요, 많이 알고 배운 사람인데 정말 작심하고 왔대요. 그런데 2주만에 때려치우고 돌아 갔는데요, 그 이유가 ‘개가 너무 시끄럽게 짖어대서’ 였대요 🙂 그리고 스님 본인처럼, 그저 한 몇주 한 몇달 ‘맛이나 좀 볼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신 분들이 결국은 오래 남아서 스님이 되신 경우가 훨씬 많대요. 나도 한국을 떠나서 살고 있는지가 오래 됬는데요, 이 말에 매우 동의 합니다. ‘원샷밖에 없다’ (한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혹은 그런 문화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고 또 생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말 장기전 무언가 가치있고 중요한 것을 진득히 노력해서 익히고 불려서 길고 크게 성취하는 데에는 전혀 유리하지 않다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원샷밖에’ 없게 된 이유가, 사실은 가난함이고 또 소수의 나쁜넘들이 너무 많이 쳐먹은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명상에 대해서 ‘반농담’처럼 하신 ‘좋은 힌트’들을 나는 직접 여러번 들었는데요, (실제로 자주 하시던) 사찰 주변 산길을 구슬땀을 흘리며 정비하며 (노동 명상), 쇼핑하면서 (쇼핑 명상), 부엌에서 식기 씻으며 (부엌 명상) 이런 말씀을 웃으면서 자주 하셨더랬어요. 태국 불교가 명상을 크게 중요시 하는데요 (붓다께서 중요시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스님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서 어떤분은 ‘집중 명상’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분은 ‘위빠사나 명상’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고, 또 티라다모 큰스님같은 분은 지나치게 정형화된 어떤 형태의 명상 (예를 들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다리가 마비될 때까지 버티며 죽기살기로 명상하거나, 혹은 시끄럽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내면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명상) 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기회가 될때마다 자기 마음을 딱 보면서 소위 ‘mindfulness’ 명상을 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좀 아껴둔 비밀인데요. 나는 앉아서 뭐 좀 폼잡고 명상하려고 하면 잠이 와요. 그래서 집중 명상은 잘 안하고요, 대신에 조용한 산길을 땀을 흘리면서 달리며, 여러가지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혹은 일어났던 일들을, 붓다의 가르침에 (내가 아는 만큼이나마) 대입시키면서 조용히 되세겨 보는 일종의 위빠사나 명상을 자주해요. 전에 달리면 두되가 핑핑 잘 작동된다고 했었지요? 약간 그런 느낌도 있어요. 착각인가 🙂 혹시 주변에 조용한 어떤 산책로나 운동할 장소가 있으면, 좀 빨리 걷거나 혹은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좀 뛰면서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걷거나 뛰면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집중명상도 할 수 있겠지요. 숨 쉬면서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싶어지는데요 (자꾸 집중이 흐트러지니까), 그것보다는 그냥 숨쉬는 것을 바라보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저 다시 좋게 마음을 불러 오는 정도로 하면 더 좋대요.

자, 오늘 저녁부터는 부엌에서 설거지 하면서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가? 내 팔자야…’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채우지 말고, 집중 명상 혹은 위빠사나 명상을 한번 시도해 보심이 어떨런지요? 그 나쁜(?) 가족들보다 먼저 해탈 하시지 싶은데요 🙂

8개의 훌륭한 길 – 네번째 이야기

이 8개의 훌륭한 길을 (방법을),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난번에 이야기 했지요.

‘지혜’ (머리로 하는 앎), ‘덕행’ (몸으로 하는 실천) 그리고 ‘집중’ (마음으로 하는 수행) 이렇게 3개의 그룹으로 나누며, ‘머리’ ‘몸’ 그리고 ‘마음’을 대상으로, ‘알고’ ‘실천하며’ ‘수행하라’고 붓다께서 가르치셨어요.

맨 아래에, 이렇게 나뉘어진 3개의 그룹이 적혀 있지요? 이미 세가지 정도는 이야기 나누었는데, 나머지는 (특히 ‘덕행’에 관련된 것들은) 특별한 설명이 따로 필요가 없을 듯 해요. 어쩌면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집중’에 관계된 3가지 길은 조금 더 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더 읽고 배워서 다시 이야기해요.

이렇게 수행하여 얻고자 하고 또 얻을수 있는 결과가 ‘니르바나’입니다. 영어로 Nirvana라고 쓰며, 팔리어로는 nibbana 혹은 nibbāna로, 그리고 한자로는 열반(涅槃)으로 씁니다. 붓다께서는 니르바나를 ‘불이 꺼진 상태’ 그리고 ‘목마름이 사라진 상태’라고도 표현하셨어요. 이렇게 ‘마음속에 어지러움이 없는, 자유롭고 평안한 경지’를 인간의 이상으로 제시하고 계셔요. 열반은 나이 많은 스님이 죽어서 드시는 (가시는) 곳이 아니랍니다. 그대와 나 우리 누구나, 이 8개의 훌륭한 길을 따라서 노력하면, 살아 있을때, 각자의 능력과 그릇에 따라서 증득할 수 있는 (얻을 수 있는) 어떤 경지 혹은 상태가 ‘니르바나’입니다. 너무 좋지요 🙂 아닌가? 혹시 무었인가 엄청난(?) 한방을(?) 기대했다가 실망 했나요? 그 엄청난 한방이 그리고 또 그런 한방을 찾는 그 마음이 바로 ‘불 타는 상태’ 그리고 ‘목 마른 상태’라고 내가 말한다면, 다만 말장난이라고 하겠어요?

태권도가 9급도 있고 9단도 있지만 그 중간에 또 많은 급과 단이 있듯이, 그리고 또한 설령 5단이었었다고 하더라도 수련하지 않고 술퍼먹고 놀다가는 5급에게도 대련하면 얻어 터질 수가 있듯이, 니르바나도, 얻은 사람과 얻지 못한 사람 그렇게 두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이 좀 더 꺼진 사람 혹은 목마름이 좀 더 사라진 사람처럼 다양한 수준이 (차원이 혹은 레벨이) 있겠지요. 또 분명한 것은, 한번 획득하면 그 사람에게 철썩 들러 붙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 결코 아니라, 붓다께서도 매일 몸소 실천 하셨듯이, 죽는날까지 수행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렇게 수행을 할 수 있는 그 ‘습관’을 참으로 기르게 되는 것이 또한 니르바나의 본질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Wisdom (Paññā) ‘The head’
Right Understanding
Right Aspiration

Morality (Sīla) ‘The body’
Right Speech
Right Action
Right Livelihood

Concentration (Samādhi) ‘The mind’
Right Effort
Right Mindfulness
Right Concentration

목련

라벤다를 보고 그 향기를 맡으면, 그 꽃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난다. 골프장에서 날려 먹은 공을 찾아 헤매다가,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보면, 함께 줏어다가 묵 만들던 어머니와의 기억이 늘 새롭다. 목련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오가다 목련을 보면 그 꽃 좋아하는 아내 생각이 난다. 아직 현재형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내가 늘 찾는 식물원에는 사람들이 기증한 벤치들이 많다. 작은 기념동판을 (플라그) 의자에 박아 놓은 경우가 많은데, 자주 읽어 보고 또 몇 개의 의자는 이제 매우 낯익게 되어 인사를 나눈다. 짐작하다시피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것들이다. 내가 자주 찾는 식물원의 어떤 장소에는 2개의 벤치가 있는데, 하나는 채 스물이 되기 전에 죽은 어떤 젊은이를 그 가족들이 기리는 의자다. 이미 죽은지 40년이 넘었으니, 플라그에 세겨진 그 가족들 (그때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그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 이 젊은이의 뒤를 따라간 사람도 있지 싶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다. 또 하나는 비교적 최근에 (한 1-2년 전에) 새로 설치된 벤치인데 ‘이 비밀의 정원을 (이 장소를) 사랑했던 부부’라며 나란히 이름이 적혀 있다. 앉을때마다,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혹시 살아서 우리가 이곳에서 마추쳤던 적은 없었을까 생각하며, 벤치를 고마워하고 또 명복을 빌어드린다.

지금은 플라그를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읽을 플라그가 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이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오늘 점심때는, 철 이르게 피어난 목련 나무를 지나며 사진을 두장 찍어 왔다. 하나는 물론 목련 나무지만 또 하나는 그대에게 아마 흥미 있지 싶다.

‘이 목련은 1935년 8월 28일 심어졌고 1950년 8월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어요’ 이렇게 적혀 있다. 참 그때 우리 뭐하고 있었지 🙂

그리고 ‘인생무상’ (人生無常) 이라는 말은 사실은 불교적 의미를 담은 표현인데, ‘삶이 허무하다’ 라는 뜻 보다는, ‘우리의 삶에는 늘 같은 것 그리고 변치 않는 것은 없다’ 그런 뜻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