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영화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고단한 여행길, 수천미터 상공을 떠가는 조각배 안에서 다시 본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오래전에 보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같은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또 받아들이는지 궁금한 생각에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

사람마다 그리고 처한 환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를 것이며 또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륜에 촛점을 맞출 것이요,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 또 어떤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는 삶의 본질에 촛점을 맞출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는 스토리 전개 끝에, 주인공 프란체스카가 장성한 아이들에게 남긴 유서가 마지막에 등장한다. 프란체스카가 이제 어른이 된 남매에게 말한다. ‘Do whatever you have to do to find happiness in your life. There’re so many beauties.’ ‘아이들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너희들 자신의 행복을 너희들의 삶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보거라.’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원작을 쓴 사람이) 전하고자 했던 매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각자가 태어나서 자란 사회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물리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대부분의 인생이 그리고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지배하에서 보내다가 죽게 된다. 태어난 환경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옵션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상대적으로 (옆사람들 보다) 낫고 유리한 것들을 고르려고 애쓰며 살다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옆사람들 보다 낫다고 내가 저절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행복을 찾기 보다는 내가 참된 행복을 느끼는 그 무었을 스스로 찾아보라’는 것이다.

주어진 것들 중에서 최적의 선택을 해 온 사람들, 사지선다에 능한 인생들에게는, B학점이 가능하고 또 노력하면 얻게 될 것이다. B학점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B학점 못 받는 사람이 대다수고 또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A학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B학점과는 다른 무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사지선다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떻게 찾느냐고? 사지선다가 아니라니까…

낮에는 미치고 밤에는 되돌아 보고

미치지 않고서는 이루기 어렵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니 적당한 대상을 찾고 적절한 목표를 향해 미쳐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낮에는.

하지만 밤이 오면, 내가 미쳐 있었던 그 낮시간을 되돌아 보는 것이 좋다. 나홀로. 이 시간에도 취해 있거나 (그 대상이 무었이건), 혹은 아직도 어울려 떠들썩하다면, 삶이 좋지 않은 쪽으로 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밤낮으로 미쳐 있어도 좋지 않고, 밤낮으로 되돌아 보기만 하여도 또한 좋지 않다. 전자는 쉬지 않고 매운 음식을 잔뜩 퍼먹어 늘 배 아픈 꼴이요, 후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 메뉴만 죽어라 바라 보며 굶주려 있는 꼴이라 비유할 수 있다. 잘 살고 잘 죽는 것, 둘 다 어려워진다.

미친 대상이나 미쳐 이룬 목표는, 떠가는 구름과 같고 오가는 파도와 같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우리의 현실이 오직 그 위에서만 가능하기에, 사람구실 하며 살려면, 구름을 쫓고 파도를 움켜 쥐려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애쓰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주 보고 또 똑똑히 아는 것이 좋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간이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매긴 그 어떤 것들도, 크고 길게 보면 헛된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내가 지금 온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나의 생로병사 이외에는, 어떤 이상도 가치도 의미도 믿음도, 그 본질은 구름과 같고 파도와 같다.

사랑하는 이의 겨울과 밤을 지켜보며, 내 인생의 사계절 그리고 내 삶의 낮과 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