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그리고

말을 잘하고 또 자기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듣거나 읽고 그 내용에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며 또 자주 그 내용과 저자를 동일시하여 ‘아!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가보다’ 부러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자신의 작은 노력을 포장으로 부풀려 실제 보다 더 비싸게 팔며 세상을 쉽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것 같다. 특히 자기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댓가를 노리며 사는 사람들 중에서. 여기에는 인쇄를 받는다는 직접적이고 금전적인 댓가도 있지만, 간접적인 댓가로 명예나 지위 혹은 영향력을 추구하는 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자기 것이건 자기 것이 아니건, 어떤 생각을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간의 기술이 생기고 경험이 좀 쌓이면 식은죽 먹기보다 쉽다. 그러니 들은 말과 그 말을 한 사람, 읽은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을 섣불리 동일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설령 당신이 그 말과 글에 감동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동일시’에서 이자들이 바라는 ‘댓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베를린필하모니 실황연주를 앞자리에 앉아서 한 번 들으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하는 줄 누구나 안다. 하지만 거의 완벽하게 그 연주를 재생하고 또 내가 원하면 수십 수백번을 들을 수 있는 그 음반은 왜 상대적으로 훨씬 쌀까? 옛날에 아내가 돌봐주던 아기의 엄마가 (시향 첼로 연주자였다) 아내에게 첼로 연주를 코 앞에서 한 번 해 준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소리와 진동이 (연주자의 ‘기’?) 온 몸에 전달되는 것이 음반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고 하더라만… 혹은 미스월드하고 댄스파티 한 번 같이 가는 것과 그녀의 사진을 벽에 걸어 놓고 혼자서 춤추는 차이? 남자 버젼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요 투자가인 워렌 버펫과 점심 한끼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한 두시간 나누는데 수억을 낸다는데 (2018년 점심은 35억에 낙찰 되었다. 몰론 좋은 곳에 기부한다고 한다) 그 사람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다가 밥상위에 붙여 놓고 식은밥 먹으면서 혼자 대화하는 수준?

한 인간이, 자기가 실제로 노력해서 성취하고 또한 그 결과를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에서 안팎으로 증명한 이야기만이, 베를린필하모니의 실황 연주나 워렌 버핏과의 대화처럼 ‘내게’ 참된 가치가 있는 말이고 글인 것이지, 그 이외는, 그녀의 사진을 붙여 놓고 혼자 추는 춤이나, 그의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다가 밥상 머리에 놓고 혼자 먹는 밥 정도의 차원이고 그 정도의 가치밖에는 내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쉬운 일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어려운 일 이야기를 해보자. 이미 짐작했겠지만, 자신이 말하고 쓴대로 ‘상당 기간’ 실천하며 사는 삶이 어려운 일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쓰고 나서도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남들의 생각을 줏어다가 짜집기 하여 말하거나 쓰고 나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동네 언덕에도 잘 올라 가지 않는 사람이 당장 에베레스트산을 무산소 단독 등정한다는 말 만큼, 현실성이 없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 아닐까?

자 이제 위험한 일 이야기.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인 양 말하고 쓰는 행위’ 만큼 위험하고 유해한 일은 별로 없지 싶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카르마가 반드시 따른다. 우리 모두 조심하자! 카르마는 종종 시차가 있다. 그래서 기억력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넘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실제로는 거의 없다. 좋지 않게 얻은 댓가에는 반드시 또 다른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와 내가 하면 좋을 일. 자신의 삶으로, 소리없이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으로, 보이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 바로 당신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듣고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그 실황연주에, 그 댄스파티에, 그 점심에 서로를 좀 끼워 주기도 하면서…

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그리고 하면 좋을 일이 있다.

버디 오선이 그리고 머시쉽

개 좋아하세요? 사진속의 개 두마리가 닮았지요? 레브레도라는 종으로, 개들 중에서 영특하기도 하고 또 성격도 좋아서, 세계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뼈다귀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개가 ‘버디’인데, 우리 아이가 어릴때 와서 오래 함께 지내다가 작년에 뽕~ 지구를 떠났고, 등에 가방을 매고 있는 개가 ‘오선이’인데, 이 신문 기사대로 어떤 미친넘이 납치하여 개소주로 만들어 먹고는, 지금 재판장에 끌려 다니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런 상황이 되겠습니다.

죽은 개들이지만, 난 이 사진들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먼저 나와요. 귀엽기도 하고 또 지난 시절 기억이 나서 그렇겠지요. 개를 키워본 사람들은 이해가 될 듯… 오선이 개주인처럼, 개를 가족의 일부로 여기고 흡사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이 한국에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개를 무슨 아이니 하면서 극성을 떠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개가 개답게 살도록 사회적인 장치도 있고 또 사람들도 대부분 노력하지요.

‘머시쉽’ (Mercy Ships) 혹시 들어 보셨나요? 이전에도 보았었지만, 근래에 BBC도큐멘터리로 아프리카 머시쉽을 방영한 것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곳 사람들은, 작고 외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비로 모든 여행 및 승선경비 지불해야 함. 기간에 따라서 수백에서 수천만원) 이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들어보면 정말 멋지고 또 가슴뭉클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짧은 비데오를 첨부했는데 혹시 영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를 대부분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종기가 흔하더니, 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이렇게 혹이 많이 나네요. 다 가난의 소치겠지요. 그 혹도 가난도 본인들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렇게 훌륭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하건만, 스나미처럼 몰려드는 환자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쁘고 독한 질병들에 비하면, 이 배에서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요 바다물을 양동이로 퍼올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굳이 그 긴 줄, 아픈 사람들이 밤잠 자지 않고 먼길을 와서 마지막 희망으로 기다리건만 대부분은 돌아서야 하는, 그 긴 줄을 확인하지 않고서도 알 수가 있겠지요. 한 의사가 말하고 있군요. ‘우리도 새발의 피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최선을 다한다.’ 이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엑스레이 기사들도 선장도 갑판원들도 또 전산지원자들도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인 줄 알지만, 나는 이들이 훌륭한 보살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보살은, 오늘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의심없이 최선을 다하지만, 덧없는 삶의 본질을 꽤뚫어 보기에, 최종적으로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나는 무슨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이 사람들 인생을 바꿀 100불짜리 수술 보다는 내 입에 들어가는 100불짜리 고급 술이 더 중요한 사람이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또 알고 나니 마음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나도 버디 개주인으로, 그 넘 눈 밑에 난 무슨 종양 수술을 하는데 상당한 돈을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스스럼 없이 썼었지만,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 평생을 이런 큰 혹이나 끔찍한 불구 또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별 희망도 없이 온 가족이 힘들고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그 긴 줄을 보고 나니, 감히 ‘사람들’ 앞에서 ‘개’ 수술 이야기 따위를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 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물론 개 수술도 하고 고급 술도 먹겠지요. 그리고 남의 개 훔쳐다가 개소주 해 먹은 넘을 잡아다 재판도… 하지만 사람의 도리가 무었인지, 나와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었인지, 내가 가진 것은 무었인지 또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었인지, 여러번 곰곰히 생각하게 됩니다.

팔자를 고치고 싶으세요? 그 배에서 한 달만 자원봉사를… 들어 봤나요? 팔자 고치는 비법 중에 첫번째가 적선이라는 것을. 몸으로 때우건 돈으로 때우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To Sir, with Love

데이비드 비서로 부터 이메일 초대가 왔다. 그가 6월 중순에 은퇴한다는 것이다. 그 은퇴식에 초대를 받았다. 지난 한 두해 동안 서로 소식이 좀 뜸했었다. 다시 연락하여 은퇴식 전에 차 한잔 마실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것이 오늘 아침이었다.

25년전 그와 우리내외는, 비유하자면,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젊은 주임교수와 방금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한국어에) 벙어리 젊은 학생부부로, 이곳 빅토리아대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제버릇 개 못준다고, 게으르고 이상한 자존심만 있는 문제(?) 학생이었고, 아내는 당연히 모범생. 데이비드는 나를 포함한 우리들 학생 모두를, ‘영어를 애처럼 하는, 어른 모습을 한 이상한 애들’로서가 아니라, ‘영어는 지금 비록 잘 못하지만, 자존심 있고 교육받은 정상적인 성인들’로 대접해 주었다.

나같은 농땡이 학생도, 이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느낌을 잘 기억한다. 그리고 그러한 ‘존중과 받아들여 줌’이 나를 포함한 그 새로 이민 온 학생들에게 미쳤던 긍정적인 효과와, 그가 말없는 행동으로 우리에게 주었던 용기는, 데이비드의 상상을 초월한 영향을 많은 사람들에게 미쳤을 것이라, 내 경험을 통해서 감히 이야기 한다.

내가 빅토리아대학교 전산부로 옮겨 오고 나서 얼마 후, 사내 신문을 통하여 그가 교육대학 학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신을 소개하며 연락을 하여 우리는 2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선생과 학생이 아닌 직원으로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나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하였다. 그의 핸섬했던 얼굴은 이십년 세월속에 주름이 잡혔지만 그의 멋있는 저음 목소리와, 100% 표준 영어 그리고 좋은 매너는 변치 않았다. 그는 우리의 만남을 참으로 기뻐하며 우리 내외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이후에 데이비드 내외가 나의 생일 파티에도 와서 우리가 함께 ‘익어감’을(?) 한잔 술을 나누며 축하 해주기도 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그가 커피를 샀다.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며 최근 남북한 정세, 은퇴계획, 결혼생활 그리고 자식 이야기등을 나누었다 – 부부농사는 약간 실패하여 새 파트너와 살지만, 자식농사는 성공하여 딸이 의사다. 아직 10명 가까운 박사과정 학생들이 학위를 마칠때까지 주임교수로서 그들을 돌봐야 하고 또 그간 집필했던 언어학 관련 서적을 마무리 하여 출판할 계획으로 당분간 바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많은 친구들이 유럽에 있어, 두 차례 정도 유럽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코펜하겐에도 친구가 있어서, 내가 최근 다녀 온 스웨덴 이야기를 했더니, 어쩌면 스톡홀름에 잠시 갈 수도 있겠다고 하였다. 옛날에 핀란드를 두번 갔었는데 그렇게 평화롭고 좋더라고 하였다.

문득, 내가 최근 스톡홀름 KTH 대학교를 방문했을때 가졌던 느낌과 감정을 이야기 했더니, 100% 알아 듣고, 자기도 그런 경우가 50-60십대에 접어 들면서 있었다고 하면서 (내가 다 알아 듣지 못하는 유려한 영어로) 그 느낌을 공감해 주었다. 20-30대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 줄 생각하면서 살았었는데, 막상 50-60대가 되고 나면 오직 하나의 길을 걸을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그런 감정, 약간의 슬픔 그리고 노스텔지어가 섞인, 그런 느낌이라고 그가 말했던 것 같다. 참, 우리말 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수준이 있겠지요? ‘그 대학에 갔더니 기분이 꿀꿀하더라’ 이렇게 말하는 자도 있고 ‘그 대학에 가서 과거를 회상하며 상념에 잠겼더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도 생각이 나고, 인생의 윤회가 새삼스럽더라’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겠지요? 누가 전자고 누가 후자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헤어지기 전에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은퇴 파티에서 못볼지도 모르니 지금 이 말을 해야겠어요. 당신은 선생으로 지난 수십 년간 단지 영어만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요. 25년 전 당신이 말없는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우리 같이 하찮은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격려가, 우리 내외를 포함한 그 학생들 그 이민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었을지 당신은 잘 모를 것이예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기억하세요. 그대는 참 스승이었음을.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하였다. ‘참으로 감사하오.’

보살은 인간 세상 어디에나 있다.

룰루가 부르는 To Sir, with Love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동네 목욕탕 포스터?

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이, 번식이라는 가장 중요한 의무를 다하고 나면, 그 남은 시간은 ‘덤’으로 (가외로, 공짜로) 사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 하더라. 내 생각에 이것 참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오직 우리 인간이라는 종만이, 이 ‘덤’의 의미가 무었인지 모르거나 혹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덤’ (dumb) 하게 산다 싶다.

국내 대표적인 인권학자요(?) 잘 알려진 한 사회단체의 회장이라는 어떤 ‘덤’이, 여자 세명이 모인 것을 두글자로 육젖이라고, 맨정신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짖은 것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옛날에는 치약이 알루미늄이나 무슨 금속 재질의 용기에 들어 있었는데, 중간을 구부려서 오래 짜서 쓰다보면 찢어져서 내용물이 새 나왔다. 이 ‘덤’의 대가리에 ‘정말로’ 무었이 들어 있었던지 세상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 것이지… 뭐 그리 중요한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난 개인적으로 이자보다 백배는 더 알려진 성직자 치약통에서 새어 나오는 내용물도 직접 본 적이 있다. 오십보 백보… 그리고 그것도 뭐 중요하겠나. 내 인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딱 한가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한참 이성에 이끌려야 할 이삼십대에 칠팔십 영감처럼 이성을 바라본다면 인류는 멸종되고 말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니 정상이 아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면, 몸이 변하고 호르몬이 변하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생각도 마음도 차차 변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성을 대하는 태도를 포함한 삶 전반에 걸쳐. 요새 스스로 도가 텃다고 생각했었다면 미안쏘리 착각이었어요~~~

이렇게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의 섭리를 모르거나 혹은 거부하면서 오래 티를 내면서 살면, 이렇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덤하고 험한꼴이 나는 것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니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원치 않아도, 매일 내 몸을 통해서) 깨닫게 되더만, 도대체 이 넘들은 무었을 먹고 무슨 짓을 하길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가? 어쩌면 거스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도(?) 다만 지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땅히 가야할 길과 때를 알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면 ‘도인’이 되는 것이다. ‘길을 사는 사람’ 혹은 ‘자연의 섭리를 알고 받아들여 그에 맞추어 사는 사람’. 구름을 타는 사람이 아니고… 그것 타서 뭐하게 바람도 차고 안전벨트도 없던데?

나이가 들면 몸도 정신도 기능이 떨어진다. 한 동안은 그래도 이것들에 매달리고 발버둥도 치며 사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제부터는 좀 마음도 갈고 닦는 것이 또한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몸과 정신 기능에 도움도 되고 또 이런 덤한꼴 험한꼴 만들지 않고 살게 도와주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한다고 사랑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한다고 사랑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담배를 끊는다고 건강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약점을 보완한다고 다른 강점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며, 또 보완된 약점이 새로운 강점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 ‘정말’ 커지면 문제가 해결 된다. 어떤 식으로 건. 덮히건 잊혀지건 실제로 함께 해결을 하건.
건강에 ‘참으로’ 신경을 쓰고 크게 투자를 하면, 피우던 담배가 멀어지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은 끊어진다. 저절로.
강점을 더욱 살려서 훨씬 더 강해지면, 약점이 더 이상 그때 그 치명적인 약점으로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러니,

문제에서 시선을 의도적으로 때고, 어떻게 하면 사랑을 더 크게 더 많이 만들 수 있을까 힘껏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더 높다.
담배를 계속 피우라. 그리고 죄책감도 버리고 신경도 뚝. 담배를 물고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를 걸어, 장안 최고의 선남선녀들이 모이는 체육관 / 운동시설 / gym을 찾아 등록하라. 담배를 상으로 스스로에게 걸고서라도, 정성을 다해 옷을 차려 입고 트레이너를 상전 대접하며 형편이 허락하는 최대한 자주 다녀라. 그것뿐. 다른 약속은 필요 없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건강해 질 것이다. 그러면 되지 않았나? 담배를 피건 말건 그때는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노니, 그때는 담배가 그대에게 거의 아무런 영향력이 없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것들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그것들을 당신이 원하는데로 변화 시키기 전에 당신 자신이 그 부정적인 에너지에 의해 부정적으로 변화 당할 가능성이 높다. 효과도 적지만 위험도가 높으니 이 길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 그 부정적인 것과 상극인 긍정적인 그 무었을 찾아내어, 그 긍정적인 대상에만 집중하라. 그러면 그 긍정적인 대상을 노력 끝에 얻게 될 것이요, 또 시간이 지나면 그 부정적인 대상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스스로 줄어 들어 없어지던지, 그것이 더 이상 당신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게 되어 버리던지, 아니면 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법을 깨닫게 되어 해결을 하게 되던지.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반대로 여태까지 하던대로 계속하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도 그냥 계속 그렇게 시도만 하고 앉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일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해롭긴 하지만, 그래서 끊는 것이 정말 좋기는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고 또 제한된 그 시간과 정력을 담배 끊는데만 집중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끊고 나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니까, 그런식으로는 설령 끊어도…

이것 우리들의 삶 여기저기에 활용할 가능성이 좀 있지 않을까요?
뭐요? 나빼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