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에게

강원도 ‘정선’ 🙂 카지노 도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듯이, 카지노 근처에는 전재산을 도박에 탕진하고 나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혹은 떠나지 않고) 수년을 노숙자 생활을 하며 터무니 없는 ‘미래의 한방’을 꿈꾸며 사는 ‘오늘의 폐인’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십년 가까이 소형자동차 안에서 숙식하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도박을 연구하며 사는 어떤 남자가 기억이 난다. 그 좁고 불편한 차안에서 노구를 누이기 전에 그는 바이얼린을 조용히 연주하였다.

우리 인생의 부조리와 불완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되어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도 한때는 괜찮은 사람,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상한 아빠였을 것이다. 그 나이에 바이얼린을 켜려면 그리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니 가능한 것은 그런 폐인의 삶을 지루하고 우울하게 지속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운명뿐이 아닌가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정면에서 걸어오는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를 지나쳤다. 순간적으로 두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제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혹한 운명을 바꾸기에 그가 지금 가진 카드는 (상황은) 너무나 좋지 않다. 그는 아마도 그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온갖 병고를 겪으며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내가 비교적 건강하다고 교만에서 비롯된 저주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전에 했던 선택들이 장차 우리가 하게 될 선택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며 또한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가의 이야기, 나아가 너와 나는 과연 이런 운명의 노예일뿐인가 잠시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그런 도큐멘트리를 티비에 보여주는 이유도 그리고 내가 아침에 스쳐지나간 초고도 비만의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들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며 지금 살고 있는가?’ ‘내가 가진 (남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초고도 비만의 정체는 무었이며 그 실체는 어떤 것인가?’

어제 너에게, 그 아름답게 가꾼 멋있는 몸매를 가지고서 이제부터는 숨이 차고 땀을 흘리는 달리기나 빠르게 걷기를 하라고 권했었다. 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한결같이 달리기의 최대 수혜자는 (잘 돌아가는) 두뇌이며 (안정된) 마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훌륭한 스승들도 ‘일단 몸과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너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자랑할 충분한 외향적인 아름다움을 이미 가지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내면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운동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길 권한다. 일단 심신이 안정이 되고 더 균형이 잡히게 되면 어떤 것에 빠져서 노예가 되기가 훨씬 어렵게 된다. 보약이며 백신인 것이다. 세상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네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한 것이니 이것을 지키고 향상시키는데에 가진 돈과 시간과 정력을 우선적으로 투자해라.

‘사람들이 다 배워서 하는 것’이라고 어제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은,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고 따라서 하는 것이고 또 누구에게선가 배워서 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배워서 따라 하다가 습관이 되고 인이 밖히면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술을 마시는 것이건, 도박을 하는 것이건, 운동을 하는 것이건, 좋은 습관이건 나쁜 버릇이건 간에. 일단 노예로 전락하고 나면 그것에서 헤어나기가 너무나 어렵게 된다. 아침에 스쳐지나간 그 초고도 비만의 젊은이처럼. 그렇게까지 되기 이전에 막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좋은 운동을 통한) 보약과 백신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공급하면서 동시에 네가 정녕 바라지 않는 것에 노예가 되는 것을 막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 노력의 최대의 무기가 어제 말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쓴 검증된 좋은 책들을 꾸준히 많이 자주 읽는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산물이요 결국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운명의 노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제한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유용한) 자유 또한 가지고 있다. 마음이 괴롭고 혼란할때, 좋은 책을 펴는 것이다. 그 이상 무언가를 자신에게 요구하거나 강권하거나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 말했듯이, 어떤 한국최고의 골프코치가 발견했다던 ‘(아마추어들이) 골프를 잘치는 최고 최대의 비결은 오래 자주 치는 것’이라는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말이다. 네 자신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네 자신에게 어둠과 대항할 힘과 무기를 ‘자꾸만 손에 쥐어 주면서 스스로를 응원’해야 한다. 그러면 서서히 그리고 언젠가는 변화된 너를 놀라며 발견하게 되리라. 그때 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요, 과거에 일어났던 동일한 일들에 대한 너의 해석과 생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지마라. 세상에 무릇 좋은 것은 때가 와야 하고 무르익어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잊지 마라.

골프를 ‘오래 자주 치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터무니 없는 기대를 스스로 하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낏하여) 또한 이랬다 저랬다 마음을 바꾸면서 스스로 좌절하기 때문이다. 손에 물집이 생겨서도 아니고 시간이나 돈이 갑자기 없어져서가 아니다. 제 열정으로 화다닦 시작했다가 제 풀에 서서히 망하는 것이다. 어떤 지름길도 감추어진 기적의 비법도 없으니, ‘그저 좀 안되도 가고, 좀 실망해도 붙어 있고, 좀 시시해도 버리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 마음의 회의와 업엔다운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만두면서 망하는 것’이다. 종국에는 초고도 비만 혹은 카지노 폐인으로 (문자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의미상으로) 인생을 종치게 된다.

그래도 뭐 그만이긴 하다. 결국은 모두 왔다가 가는데.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더라. 늙었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되지 못한 노화에 동반된 심신의 고통이 괴로운 것이라고. 어떻게 살아도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손에 든 카드가 그리 나쁘지 않은 너와 내가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이렇게 초고도 비만이 된 것이 아무렇지도 않나요? 댁은 이렇게 카지노 폐인으로 차에서 사는 삶이 어떤가요? 아마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지 싶다. 만약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이런 비참한 꼴이 되기 훨씬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젊고 아름다운 촌닭. 아직 시간이 있을때, 아직 그렇게 끔찍하게 되돌리지 않으면 안될 현실에 직면하지 않았을때 우리 조금씩이라도 애써 보자.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정과 평온이 장차 많이 생기고 나면, 그때는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을 하건 삭발을 하건, 엄마에게 돈받아 등산 다니며 백수로 살건 투잡을 뛰건, 결혼을 하건 말건 더 이상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네 엄마는 네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시게 되고 나면, 네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해주실 것이다. ‘자식의 참된 행복을 바라는 마음’ 부모의 바램은 이것뿐이다. 네가 엄마가 원하시는 것을 먼저 드린다면 엄마는 얼마나 네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 싶어 하시겠니? 밤에 부산 바닷가에서 하늘에 올라 별을 모두 따다 주실 것이다.

네 자신의 것이건 그 누구의 것이건 지나간 과거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도록 노력해라. 꾸준히 시도하고 넘어지고 패하면 다시 일어나 또 시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 보거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어쩌면 그런 눈물로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애쓰다가 보면 차차 그런쪽에 낭비될 네 삶의 에너지를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오롯히 사용할 날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나도 뒤늦게 나마 그렇게 노력했고 또 일부는 성공한 듯이 보인다. 너도 노력하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그리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저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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