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 오늘

이곳은 어제부터 공식적인 겨울이다. 월요일 휴일을 낀 긴주말, 아니나 다를까 차가운 비가 주말 내내 쏟아지고 있다. 문득 일년 전 오늘이 생각났다.

일년 전 오늘, 나는 낯선 스톡홀름의 거리를 절룩거리며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눈에 뜨이는 전봇대란 전봇대는 모두 끌어 안고 스트레칭을 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다리 근육경련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당시 스칸디나비아를 강타했던 이상난동 기후는 (heat wave) 6월 초순 스톡홀름의 한낮 기온을 평년보다 10-15도 높은 섭시 30도 이상으로 끌어 올려, 혹시 너무 추울까 하여 정오에 시작하는 이 스톡홀름 마라톤을 무더위와의 싸움으로 바꾸어 놓았었다.

풀코스 마라톤은 어쩌면 인간의 기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내야 하는 좀 잔인한 면도 있는 것 같다. 30시간 이상이 걸렸던 여행과 더불어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시차로 인해 마라톤 전 사흘 동안 총 5시간 정도 밖에는 못잤던 상황, 지난 수차례의 마라톤 여행들처럼 음식을 준비해 주고 보살펴 주는 가족이 없이 홀로 하는 여행, 그리고 시내를 계속 달리는 코스에 스톡홀름 시민들이 곳곳에서 엄청나게 응원을 한다는 이야기에 혹시라도 난처한 상황이 생길까봐 출발전에 거의 마시지 않았던 물… 이런 조건들이 모여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풀코스 마라톤 준비는, 매 주말에 하는 하프마라톤 혹은 30킬로 내외의 장거리 훈련을 5-10회 정도 보통 포함한다. 나 역시 최대 35킬로 거리의 장거리 훈련을 수차례 하고 떠났었다. 하지만 그날, 약 10킬로를 지나는 순간부터 불쾌하고 이상한 느낌으로 찾아온 근육경련.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난리를 쳐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장딴지에서 시작된 근육경련은 허벅지를 타고 거의 사타구니까지 올라와 한발짝을 한발짝을 떼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반쯤은 정신이 없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물이란 물은 모두 퍼마시고 눈에 뜨이는 샤워란 샤워에는 모조리 뛰어 들어가 물을 뒤집어 쓴 몰골로 그 아름다운 도시의 거리를 몇 시간이나 헤맨 끝에(?) 스톡홀름 올림픽이 열렸던 그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올 무렵 겨우 정신이 되돌아 왔었던 것 같다. 중간 중간에 서있던 구급차들 (조용히 걸어 들어가면 조용히 마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병원 천막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스타디움 트랙에서 사진 찍히는 줄 알며 폼 잡았던 사진들 말고, 마라톤 중간 중간에 찍혔던 사진들을 나중에 가족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무척 놀라워 했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은 생소 하였다 🙂 하지만 나는 5시간의 사투끝에 결승선을 내발로 뛰어 통과했고, 완주 기념 티셔츠를 입고 매달을 목에 걸었다.

어제 있었던 41회 스톡홀름 마라톤 영상을 보면서 눈에 익은 거리들과 건물들 그리고 그 분위기를 기억하며 그날이 몹시 그리웠다. 아! 가고 싶다.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스톡홀름의 거리를 마음껏 신나게 달려 보았으면… 그날, 가슴에 적힌 내 이름을 불러주며 내 손에 물을 쥐어 주던 그 이름 모를 스웨덴 사람, 잘 살고 있으려나…

그 당시에 썼던 블로그 글에, 나는 땀 흘리는 봄 여름과 추수하는 가을을 이야기 했었다. 한가지 더 배웠던 것이 있다. 땀 흘리는 봄 여름이 반드시 추수하는 가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어떤 추수의 결과도 내가 땀 흘리며 행복했던 지난 봄 여름을 퇴색 시키거나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도.

일년 전 그때 나는 행복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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