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넓이뛰기 예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로 장차 남게 될 선수가 발판을 잘못 밟아 이미 두차례 실격을 당하고 마지막 시도를 남겨둔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 흑인선수는 당시 넓이뛰기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리안의 우월성을 떠벌리던 히틀러 면전이라 긴장했었나… 이전에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라 몹시 당황한다.

이때 한 독일선수가 다가온다. 그는 당시 나찌독일을 대표하는 올림픽 육상선수이며 최근 벌어진 유럽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넓이뛰기 3위를 차지 했었다. 출발선부터 발판까지를 이 미국인의 보폭으로 재보고서는 발판 훨씬 이전의 한 지점을 가르키며 조용히 말한다. 당신의 평소 기록이라면 발판 훨씬 이전에서 뛰어 올라도 지금 예선 통과기록을 충분히 넘을 수가 있으니 위험을 감수한 무리한 시도를 하지말고 이 지점에서 점프하라…

예선을 통과했다. 둘이 결승에서 다시 만나 겨루었다. 그리고 시상대에 오른다. 나란히. 약간 낮은 곳에 선 그 독일선수가 이 흑인선수를 올려다 보며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함께 시상대에서 내려와 팔짱을 끼고 스타디움을 돌아 퇴장한다. 그 넘이 보고 있는데도.

이 흑인선수는 그때 그 독일인이 보여주었던 스포츠맨쉽, 그 용기와 우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으로 되돌아 가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자식을 둘 남겨두고 이 독일선수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사한다. 죽기전에 부탁하였다. 장차 자기 아들에게, 세상이 전쟁으로 이렇게 쪼게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던지를 꼭 좀 알려주라고.

종전 후에 이 미국인은 독일을 몇차례 방문한다. 그리고 그때 그의 훌륭한 아버지와 함께 겨루었었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아들을 만나 그 약속을 지킨다. 또한 그 아들의 결혼식을 bestman이 되어 축하해 준다. 이들의 우정은 대대로 이어진다.

70년이 지났다. 그때 베를린 올림픽이 열였던 바로 그곳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고, 넓이뛰기 시상식에 그 독일선수의 아들과 손녀 그리고 맨 오른쪽에 그 미국선수의 손녀가 함께 섰다. 중간에 흰 담뇨 뒤집어 쓴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되고.

인간이 이렇게 숭고하고 멋질 수 있다. 인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M은 중견 변호사였다. 남편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를 원하였다. 그녀와 나는, 변호사와 지원부서 말단직원으로 만났다. 불과 석달 남짓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내 발로 기어 나왔던, 나에게는 악몽과 같았던 로펌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아무것도 아니었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무었을 서로에게서 보았던지 우리는 그 인연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직장을 구했고 우리는 서로 오고 갔다. 그녀와 남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스카치 위스키도… 첫 아이를 임신한 그녀에게 배가 터지도록 LA갈비를 구워 먹였다. 알아 듣기 어려운 서로의(?) 영어발음을 넘어 존경과 우정을 아마도 서로에게서 느꼈던가 보다.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다.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변호사 그리고 또한 세 아들을 둔 특별한 엄마가 되었다. 십수년 동안 주고 받은 손편지가 한 박스다 – 가리늦게 왠 펜팔… 매년 잊지 않고 주고 받는 달력도 늘 내 서재에 걸려 있다.

1형 당뇨병으로 평생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산다. 일과 세 아이들 엄마 노릇 하는 그 빠쁜 와중에 틈틈히 운동을 계속 하였다. 얼마 전에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 뉴욕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내가 그녀의 처지였었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인간승리다.

아내와 함께 에딘버러공항에 내릴 날이 올 것이다. 그 특별한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아들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넘들의 대가리를 만져줄 때가 올 것이다.

그 로펌에, 10년이 훨씬 지나 우리 가족 모두가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 로펌의 장학생이 되어 수여식에 온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났다. 이제 아이는 그 옛날 M이 일했었던 그 회사에서 그녀의 옛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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