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 깨달음에 이르는 길, 첫번째 이야기

최근에 집중명상과 소위 ‘삼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글의 마지막에 ‘그럼 뭐?’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은 (내가 보고 들은데로) 좀 해보려고 한다.

먼저 그 글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다. 붓다께서도 집중명상의 (팔리언어로는 Samatha 혹은 Samadhi그리고 영어로는 calm meditation 혹은 concentration meditation으로 번역) 도사였으며 그것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을 남기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붓다께서 강조하신 집중명상은, 고요함 속에서 어떤 규칙적인 움직임에 (예를 들자면 자신의 호흡)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지, 어떤 일이나 문제해결등에 몰입하는 행위를 의미하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과 관련된 집중명상은, 산업공학자가 반도체불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오랜 기간 밤낮없이 몰입하는 것아니 바둑이나 만화 삼매경에 빼지는 것과는 다르고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한 어떤 복잡한 문제를 손쉽게 단 한번에 해결하는 ‘silver bullet’은 없다. 일전에 언급했지 싶은데,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한두줄의 식으로 혹은 한두마디 요약으로 설령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나 관련도 없고 또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싶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것으로, 예를들자면 GPS처럼, 보통사람들의 삶에 관련이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서 우리와 관련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또 누군가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면 우리가 그속에서 상대성원리를 발견하던지 느끼든지 그렇지도 못한다는데에 딜레마가 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쨋던.

그렇게 ‘한줄’ ‘단번에’ ‘당장’되는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대도 나도 ‘때로는’ 이런 것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는 보통 사람들이기에 오늘은 그 비슷한 해결책을 한번 말해보려고 한다.

이전 글에서 말했던 ‘그럼 뭐?’에 대한 단 한줄의 대답은 ‘집중명상으로 고요해진 마음으로 위빠사나 명상을 하라’이다. 이게 무슨 말? ‘위빠사나 명상’은 지혜를 구하는 명상이라고 한다. 무슨 지혜를 어떻게 구하는데? 위빠사나 명상에 무슨 거창한 비밀이나 엄청난 방법이 감추어진 것이 아니고, ‘위빠사나 명상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생성과 소멸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또 지켜보는 마음의 훈련(수련)’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당신이 어제 산 번쩍이는 새 승용차도 당연히 들어 있고, 올해 승진한 당신의 직업, 지금 당신 머리속을 오가는 생각들 그리고 하다못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달’ 이렇게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물론 처음에는 이미 과거에 발생한 어떤 생성과 소멸을 떠올리며 생각하게 되겠지만, 차차 생방송으로 발전하여 바로 지금 당신 마음속에서 그리고 머리속에서 생멸하는 그 욕심 (혹은 욕망), 혐오 그리고 환상 (혹은 착각), 이 세가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겠다. 이렇게 오래 잘하면 당신도 해탈하고 열반에 도달한다고 붓다께서 가르치셨으니, 이제 목표와 그에 도달하는 길이 한줄로 정리가 되셨나 🙂

이 직접적인 가르침은 한두해 전에 티라다모 스님께서 호주에서 하신 설법에 매우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목록 위에서 대여섯째 줄에 등장하는 ‘Calm meditation and observing greed hatred and delusion’이 바로 그 설법이 되겠다.


작년말에 탁구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동영상 몇개를 관심있어 하는 친구를 위해서 올렸었다. 탁구를 아마도 많이 해보지 않은 그 친구가 보기에는 로봇을 상대로 드라이브도 걸고 스매시도 하는 내 모습이 좀 괜찮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탁구를 좀 치는 사람들은 알지 (동네탁구 수준을 넘는 정도라면), 저렇게 로봇이 규칙적으로 보내주는 스피드와 구질과 낙하지점이 일정한 공을 신나게 치는 것과 실제 경기는 하늘과 땅차이며, 그렇게 로봇으로 연습한 내용을 실전에서는 아마 십분의 일 혹은 백분의 일도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어제 신년들어 처음으로 클럽에 가서 나보다 한두수 위인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사람들과 게임을 했었다. 최근들어 백핸드 스매싱을 꽤 연습했었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수천번 백핸드 스매싱 그리고 어중간하게 뜬 커트볼에 대한 포핸드 스매싱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었다. 실전에서는 어떻게 쓰일까 약간의 기대는 있었는데 금세 그 대답을 들었다. 12-15 게임 정도를 4-5명의 다른 사람들과 붙었는데, 백핸드 스매싱을 단 한차례도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차례 어중간하게 뜬 커트볼 스매싱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하였다. 전부 넷트에 걸리고 말았다. 당신이 탁구를 좀 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참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스포츠 이야기.

MMA라고 들어봤나? Mixed Martial Arts의 머리글로 아마 ‘종합격투기’ 정도로 변역되지 싶다. 쉬샤오동이라는 중국인 종합격투기 선수가 있다. 나이가 마흔정도로 지긋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물론 실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중국 전통 무술의 실전성’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온몸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상당히 잘 알려진 사람이다. 자기 잘난체 하거나 돈을 벌려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닌듯 하고, 중국인들에게 ‘엉터리 전통에 매달려 눈뜬 장님으로 21세기를 살지 말고, 현실을 자각하고 장차 실제로 더 부강한 중국 더 강한 중국 무술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당히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중국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물의를(?) 일으키는지 당신은 혹시 알았었나?

우리나라 태권도와 비슷한 혹은 더 큰 위상을 지닌 전통무술이 중국에는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이소룡을 통해서 보게된, 빠른 팔놀림을 위주로 상대를 공격하는, 영춘권 그리고 타이치 라고 불리면서 무슨 요가처럼 서구에 퍼진 태극권등은 중국인들이 크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중국 전통 무술의 대가들과 이 사람이 수차례 대결을 벌렸는데 (물론 공식적인 시합들이었다) 모든 상대를 KO로 박살 냈다. 일단 그중에서 압권인 경기 하나를 감상하시겠다. 이 두사람이 우연히 갑자기 이렇게 붙게 된 것이 전혀 아니다. 압도적인 기득권층인 전통무술하는 사람들이 온갖 비난과 비방 그리고 ‘이런 종합격투기 한다는 넘은 순식간에 한방에 날려버린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를 치고나서 성사된 경기라는 것을 알고 보시라.

압권인 장면은 코뼈가 부러지도록 얻어 터지고 KO패 당한 그 전통무술의 대가가 승부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13분15초 부근의 장면이다. 그야말로 무술에서도 쓰레기요 인간으로서도 전혀 수양이 안된 말종이라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나는 생각된다. 어떤 사람이 이런 댓글을 붙였더라. (이 전통 무술의 고수라는) ‘맞는 선수도 실제로 자기가 고수일거라고 착각을 했을것임. 주위에서 하도 떠받들어 주고 실전이란걸 경험 못해봤으니.’ 참으로 예리한 분석이요 명언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소소한 탁구경험과 이 중국인 MMA 종합격투기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었나?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과 위빠사나 명상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럼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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