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비록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공직에서, 이런 하층민에게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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