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인간 엉망진창 인생

한 이십년 전에 어떤 가족에게 은혜를 (?)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한국인 종교모임에 속하여 자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놀았었는데 (?)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었다. 서로 의지가 되기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민와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찌그러진 상황에서, 에헴 소리도 어쩌다 서로 좀 내보면서 그리운 한국의 맛도 (?) 보고 그랬었다.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며 놀던 한 가족이 한국으로 급히 귀국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부인이 남아 집을 팔고 다른 정리를 마치고 뒤따를 계획이었다.

집은 빨리 안팔리고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이웃중에 변태성욕자가 있어 여자 혼자 사는 줄 알게 되면서 빨래줄에 널어둔 속옷이 자꾸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집 뒷쪽 문들을 드라이버로 쑤셔서 강제로 열고 침입하려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지난날 웃으며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불렀던 나를, 그 부인이 직장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집을 팔고 차를 팔아 송금하겠으니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한국으로 즉시 귀국하라고 하였다. 변호사를 찾아가 법정대리인 절차를 밟은 후, 복도에 알람을 설치하고 몽둥이를 침대머리에 두고서 그 집에서 한두달을 살았다. 오래 안팔렸던 집을 팔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서 집을 씻어내고, 실내를 꾸미고 잔디를 깍아야 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부동산업자들을 연일 상대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집을 팔았다. 그리고 내 차도 아마 그렇게 못했을텐데, 그 사람들 차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이 그 차를 샀었던 딜러에게 찾아가 부족한 영어로 사정하여 팔았다. 집도 차도 예상보다 나은 가격에 팔게 되어 기뻣다.

그 여자의 오빠들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툭 내려와서 돈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내게 말하였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가 같은 도시에 살았는데? 골프 치시느라 너무 바쁘셨구나. 존경스러운 그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해주고 나는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 변태는 늘어진 내 사각빤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몽둥이도 다행히 사용되지 않았다.

그 내외는 나를 잘 알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알았었다. 나는 한장의 편지, 한통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은혜를 입었다. 참으로 고맙다’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 한번이면 난 충분했었을 것이다. 웃으며 작별했었을 것이다. 어차피 떠난 사람들이었고 이미 인연이 다한 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외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여 했던 적선이었다. 아무런 (물질적인)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내 주소도 알고 전화번호도 알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장의 편지, 한번의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고 이곳으로 귀국하는 (관련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선교사 편에 몇가지 물건을 사서 보냈다. 우리 집을 찾아서 그 물건을 전달하던 선교사가 우리 내외에게 말했다 ‘이런 물건들을 전달하게 되어 나는 유감스럽다. 나라면 결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가까운 시장에서 급히 이것저것 보이는데로 사서 넣었던 모양새였다. 물론 사는게 바빳겠지. 귀국하니 힘들었겠지. 그리고 고맙긴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편치 않은 상대에게 어색한 표현을 굳이 하기도 어려워서 차일피일 했었겠지. 나도 차차 살면서 깨닫는데, 흉내 내기는 쉽지만 참으로 사람 노릇하기는 (비록 소소한 상황에서 조차도) 정말 쉽지 않더라.

세월이 흘러서, 그때 그일이 있어났을 당시에 (내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던, 그 소위 형제 자매들과 이 부부가 한국에서 서로 오가며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것을 들었을때 생겨났던 내 마음의 소용돌이를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 난 뭐냐? 도대체 내가 뭘 한거지? 원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가?’ 그 격한 감정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마도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인연은 오묘하게 오가는 것이다. 굳이 내가 받은 상이 (?)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는 하찮은 상이 아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이며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원한도 실망도 별로 없이 지난 그 일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나 역시 예외없이 뒤죽박죽이었고 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좋아하겠나? 하지만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그 실체는 변하지 않고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현명한 스승이 말하였다. 십년 이십년을 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발전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보여 절망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와서, 무슨 호르몬 변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차차 쉬운 상황에서나마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을 좀 더 보게 된다. 내 자신도 흠칫 놀란다. 한편으로는 믿기지도 않고 의구심도 든다. 이래봤자 크고 엄청난 상황에 부닥치면 한방에 훅 날아간다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은근이 올라온다 ‘사람이 백날에 아흔 아홉날은 그저 소소한 것들로 마음을 끓이며 놓았다 들었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데, 백날에 하루 왕창 깨질지 몰라도 아흔 아홉날 나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인간이 뒤죽박죽이고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참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부와 가족들, 아이들도 이제 장성했겠지. 잘 살길 바란다. 서로 마주보며 과거사를 들추어 누가 무었을 했었고 무었을 하지 않았었던가를 따지며 어리석게 엮이지 않는한,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싶다. 용서? 누가 뭘 용서 하겠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나도 마이 바다 무따 아이가. 좀 되돌려 준 것뿐. 아마도 플러스 마이너스 0 이 되었지 싶다.

작년에 내가 집안에 큰 일을 당하고 나서 ‘짐작하고 알면서도 결국은 침묵했었던’ 한때 ‘친구’라 불렀던 그 인간들에게도, 그 부부 그리고 그때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함께 먹고 마시던 그 사람들에게 옛날에 내가 가졌던 그런 감정이 생겨났었다. 더 이상 ‘친구’라 부르지 않으니, 집에서도 무어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 불편할 때가 어쩌다 있다. ‘그 인간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대충 알아 듣는 듯 🙂

이번에는 십년 세월이 흐르지 않고서도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다. 친구라 부르기 싫으면 이름을 그냥 부르면 되지 않겠나 🙂 그리고 그들이 비록, 내가 궁지에 몰릴때 몽둥이 들고 자면서 집과 차를 대신 팔아주진 않을 사람들이지만, 전화 한통 편지 한장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고 한결같이 바쁜 사람들이지만, 그나마 좋은 시절에 꽃놀이는 어울려서 다닐 수 있지 않겠나? 전에도 함께 먹고 마시며 놀았으니 다음에 만나도 그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또 먹고 마시며 꽃놀이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나? 혐오의 마음이나 감추거나 누르는 감정은 별로 없다. 인간이 그러하기에, 사는 것이 원래 이 꼴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기에. 또 나도 꽃놀이 좀 어울려 다니고 싶기에 🙂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좀 더 들리고 더 보이게 된다. 반대로 일단 받아들이지 않고 장막을 쳐버리면 들어야 할 것도 안들리고 봐야 할 것도 안보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막히고 단절되어 양쪽 모두 크게 잃게 된다. 상대방이나 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