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꽤 좋은 골프클럽의 회원이 되다보니, 어제 잘 나갔던 사람들과 (상당수는 현재도 잘 나가고 있는) 함께 라운드를 할 기회들이 종종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함께 여행을 해보면, 바둑을 두어보면, 도박을 해보면 그리고 골프를 쳐보면 그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고 하더라. 내 작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런 것 같다.
이 나라 전직 육군총장과 한 라운드를 했었는데, 물론 속으로야 한 가닥이 아직 있겠지만 겉으로는 (내가 느끼기에는) 겸손하고 조용한 중늙은이였다.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다만 내가 묻는 말에만 좋게 대답을 해주었다. 어깨에 아무런 계급장도 달려 있지 않아서 들어올리는 골프채가 가벼워 보였다. 내세우지 않고 바라지 않으며 위에 서려하지 않아 보이니, 종종 무지랭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또 때때로 아래에 서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무리없이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이 보였다. 한때 별들이 어깨 위에서 번쩍였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클럽의 멤버로 다만 골프를 함께 칠 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멋있고 또 부러웠다.
최근에는 아주 대단한 사람과 두어 라운드를 우연히 치게 되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장관 그리고 대단한 변호사로서 이나라 원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엄청나게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던 존경받는 정치인 법률가라고 하였다. 우리 아이도 한두 차례 만났었다고 하며 이 사람의 명성은 그 분야에서는 전설이라고 하였다. 첫라운드를, 내가 잘 아는 노부부와 더불어 4명이 함께 치면서 이 사람과 내가 골프 수준도 비슷하니 앞으로 종종 함께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면들을 보게 되었다. 클럽 회원 대부분이 이 사람이 누구인줄 알고 또 보기플레이어 수준이니 어떤 회원들과도 어울릴 수가 있을텐데, 이 사람은 거의 대부분의 라운드를 오직 한 사람, 어떤 한국이름의 회원과만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회원들의 온라인 예약 시스템에 훤히 드러난다. 그날은 아주 예외적으로 노부부와 내가 함께 치게 되었던 것이고.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했고 또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최근에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는등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차례 하였다. 어떤 것을 내게 물었는데 결국은 그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자주 기울었고 정작 내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럴수도 있겠지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 그는 이날 88을 치면서 자신의 최고 기록이라고 기뻐하며 한잔 하자고 하였다. 노부부는 먼저 떠나고 나만 함께 클럽하우스로 갔는데, 이 사람이 자신의 음료와 음식을 주문하고선 쓱 테이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보통은 한잔 산다. 굳이 최고 기록을 세운 날이 아니라도 그저 함께 클럽 하우스에 오면 보통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함께 음료와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 먹을래 인사치례 조차없이 혼자서 그냥 먹는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어 이사람 좀 이상하다. 왜 다른 회원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때 이 사람 혹시 게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위키피디아를 보니 스스로 고백하는 동성연애자라고 쓰여 있더라. ‘그러면 어때 우린 골퍼로서 필드에서 만나서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낼뿐인데… 어쩌면 이 클럽에도 게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있나? 내가 파트너가 좀 되주지 뭐 그래’ 이런 좋은 마음으로 두번째 라운드를 함께 하였다.
그 한국 사람이 같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열서너살 된 한국 남자 중학생 아이였다. 좀 놀랬다. 이 아이와 자주 그리고 오직 이 아이 하고만 골프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환갑이 훨씬 지난 사람과 그 남자 중학생이 친구처럼 같은 수준으로 노는 것이다. 아주 편하게 서로가. 내가 좀 더 놀랬다. 그는 첫홀에서 칩샷 실패를 하였다. 그런데 나와 다른 동반자가 퍼팅을 아직 끝내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그 자리로 되돌아가서 그린 한복판으로 칩샷 연습을 하는거라. 내가 몹시 놀랬다. 그리 길지 않은 내 골프경험에 그래도 수백명의 사람들과 수백 라운드를 했었는데 이런 짓을 하는 골퍼는 처음 보았다. 우아…
몇 홀을 계속하면서 이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어 조금씩 떨어져 걷던지 (이곳에선 카트 거의 안탄다) 아니면 일부 이야기를 못들은 척하게 되었다. 조금씩 불편해지는데… 가장 어려운 홀에 함께 도착했다. 그 아이에게 그저께 자신이 이곳에서 파를 했노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게 ‘그가 파를 했던 것이 맞다’는 말을 직접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때까지도 그저 좀 수다스러운 사람 정도로 느꼇기에 스스럼없이 ‘그렇다 이 사람은 그저께 라운드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이 홀에서 파를 기록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내게 다시 그 말을 반복하라고 하는거라. 내가 순간적으로 빡쳐서 ‘that’s enough’ 이라고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때 아마 이 사람이 좀 삐졌던가보다. 라운드 끝까지 그리 좋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하더만 별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그 아이와.
나중에 우리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 사람과 일어났던 이야기를 했더니 ‘워낙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고 또 지금도 대단한 변호사기 때문에, 설령 아빠가 본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매우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지 싶다’ (그러니 아빠는 괜히 배 아파 하지 마시라)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짧게 ‘인생이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행복하다. 한쪽이 비대하다고 인생의 다른면들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만 말하고는 더 이상 아이와의 설전을 피했다. 나와 아내는 안다. 학창시절 수많은 고객들에게 자동차를 팔며 억센 차도매상들과 상대하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던 아이. 수많은 다양한 친구들과 좋은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아이. 후진국들을 친구들과 오래 여행하며 그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좋아했던 아이. 그리고 킥복싱 트레이너로 또 수련자로 가르치며 얻어 터지며 사는 우리 아이는 (자기 나이에) ‘삶의 균형 잡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 수준에서 더 이상 가르치거나 말할 것이 없다 🙂
그 대단한 정치가 변호사, 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 과연 행복할까? 그 아이와 골프치고 큰 집으로 되돌아가 혼자서 밥먹고 무슨 훌륭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던데 그렇게 글 쓰면서 살면 과연 좋을까? 이 좋은 골프장에서 나같은 무지랭이, 100만원도 안하는 순고물차를 명차들이 즐비한 그 주차장 한쪽 구석에 아무도 안보게 살며시 황송하게 주차하고 다니는, 생긴것도 다르고 말귀도 잘 못알아 듣는 (청력의 문제만이 아닌) 내가, 클럽 챔피언부부 부터 카레먹는 넘들 그리고 골프에 미친 까칠이들과도 별 스스럼 없이 코스에서 어울려 희노애락을 나눌때 이 사람은 그런 자유가 없지 않은가? 그 명성과 돈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과연 골프에만 소용이 없는 것일까?
그저께는 어떤 전직군인과 한 라운드를 했는데 그는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게 무언가를 물으면 내 대답을 듣고서 그는 내게도 대답을 자발적으로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가 이렇게 물어서 내가 대답을 해주면 내 말 끝에 자신의 아이들은 몇인지 몇살인지 부연하여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 대부분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인데 참으로 중요한 예절이다. 물론 나는 늘 그렇게 해왔지 🙂 지금도 국방부에서 민간인 문관으로 일한다고 하였다. 아들 하나가 군인인데 올해말에 유엔군의 일부로 한국 비무장지대에 근무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입에 발린 감사의 말은 영어의 한계로 일단 뒤로 미루었다. 제대하기 전에 중국에 몇해 있었는데 그때 서울에도 몇차례 왔었다며, 중국 일본 한국의 오묘한 관계와 역학에 대해서 짧게 코맨트하며 관심을 보이더라. 나도 비록 의무였지만 한때 군인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어쩌다 우연히 좋은 샷을 날릴때 큰소리로 칭찬하며 인정해 주는 모습에 ‘이 사람 신사구나’ 싶었다.
집에와서 인터넷을 보니 고위장교로 예편하였고 주중국 대사관 무관으로 있었던 것 같았다. 짱께 장교(장군)들과 찍은 멋진 사진이 인터넷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의 계급이나 업적 그리고 경험을 내게 떠벌리지 않았다. 아마 내가 묻지 않으면 그는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중립적인 (한국에 관한) 주제에만 관심을 적절히 표명할 것이다. 그도 어깨가 가벼운 사람인듯 하였다. 어제의 계급으로 살지 않는 사람. 겸손하고 열린 그리고 외교관처럼 멋진 매너의 소유자라 내 적성에 딱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라운드가 기다려진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행복과 관련이 있나?
1. 관련이 있다 – 어제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해 오늘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2. 관련이 적다 – 어제의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오늘의 삶에서 (지금 속한) 시간과 장소에 적절한 언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은 아마 더 힘들게 될껄 🙂
3. 관련이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 어제에만 사는 사람들에게는.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오늘도 없고 내일은 더욱 없을 것이니. 이미 죽은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초보 골퍼지만 글을 마치면서 한마디 부연 하지 않을 수 없다. 넣으면 당연한데 못넣으면 기분이 뭐같은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되면 내 수준의 골퍼들은 ‘안들어가면 어쩌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며 좋지 않은 결과와 그에 따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골프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한가지 좀 잘하는 것이 있다. 나쁜 샷을 치고도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이 나빠서 짧은 퍼팅이 (핀에 맞고 튀어 나오든지) 들어가지 않아도 조용히 줏어들고 다음 홀로 걸어 가지 아쉬워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무언가를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냥 내 실력으로 받아 들인다. 물론 나중에 연습하는 정보로는 활용한다. 골프의 신은 아주 감정적이고 섬세한 여신이다.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나중에 돌려 준다. 황송하게 더 많이 줄 때도 있다. 하지만 건방을 떨면 금세 눈치 채고 처절한 보복을 가하는 무자비한 여신이다. 그저께 내 동반자가 첫 2홀을 버디로 시작하였다.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그때 그 동반자 머리에 어떤 생각이 오고 갔을까? 골프의 여신이 눈치 채고 그녀의 본색을 드러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절하고 비참한 보복을 당한 끝에 100을 넘겨 스코어 카드를 찢어 버리고 (더불어 찢어진 가슴을 감추며) 그는 클럽 문을 나서더라.
나는 요새 짧은 퍼팅을 하는 순간이 오면 ‘안들어갈 수도 있다. 안들어 갔던 적도 많았다. 들어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들어가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40펏 이상을 밥먹듯이 하던 (내게는 무척 어려운) 그 그린에서 요샌 심심찮게 20대 후반 펏으로 라운드를 마무리 한다. 물론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여신이 혹시 마음을 바꾸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
그저께 내가 중매하여 20년 이상을 잘 사는 친구부부에게 초대받아 저녁을 함께 하였다. 어떤 나이를 넘게 되니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더라. 이 글을 빌어 연배 많은 그 친구에게 한마디 하련다. 혹시 위에서 말한 짧은 퍼팅하는 생각을 하면 어떨까? ‘잘 안될 수도 있다. 잘 안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되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을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 그리고 나는 좋은 미래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면 탄수화물을 멀리하기가 어쩌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더 나은 무었들로 채우기가 쉬워질지도 모른다. 성공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오는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인생에서도 골프에서도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 확신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친구, 그대와 내가 보통 인연은 아닌듯 한데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