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언급했던 그 암벽등반 도큐멘터리 Dawn Wall 이야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당신이 직접 보는 즐거움을 빼았지 않을 만큼만 이야기 하겠다. 감동적인 장면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이 장면을 선택하지 싶다.
그 암벽 코스 중간쯤에, 백미터 정도의 거리를 옆으로 횡단해야하는 구간이 있었다. 그야말로 손톱도 들어갈 곳이 거의 없는, 흡사 맨손으로 수직 거울을 횡단하는 그런 구간이다. 연습때 수백번 시도했었지만 단 한차례도 성공하지 못했었다. 먼저 주인공 토미가 수차례의 시도 끝에 (한차례의 시도가 몹시 힘이 드니,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시도하고 또 중간에 하루 이틀씩 쉬기도 하면서 시도한다) 그 구간을 기적적으로 통과 하였다. 암벽들은 그 전체 혹은 부분들이 (Dawn Wall처럼 암벽이 엄청나게 큰 경우에는 수십개의 구간들 하나 하나가) 어떤 난이도로 표시 되는데, 내 기억에 바로 이 횡단 구간이 세상에 알려진 암벽중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였다. 이제 토미의 지원을 받으며 케빈이 그 구간을 통과할 차례가 되었다. 일주일 이상을 머물며 수십회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손가락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미 암벽에 올라 온지 2주가 넘었고, 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토미도 남은 구간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토미는 이제 혼자 올라가야만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았던 케빈은, 함께 그토록 꿈꾸었던 정상 등반의 영광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줄 이제 깨달았다. 능력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안다. 토미는 충분히 기다려 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케빈에게 해주었었다. 하지만 케빈은 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암벽 구간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지 못했다.
이제 토미가 케빈의 지원을 받으며 홀로 암벽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준비했고 기다렸던 등반인가. 홀로 오른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제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고 또 결코 여기서 그만 둘 수도 없다. 토미가 몇개의 어려운 구간을 올라 이 거대한 암벽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는, 몸을 누일수 있는 작은 공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 거의 손아귀에 닿을듯 말듯 다가온, 평생을 꿈꾸던, 그 성취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쏟아 부었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땀과 희생을 기억하였다. 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또 원했던 순간이었던가…
그런데 벌떡 일어난 토미가 위로 계속 올라가지 않고 반대로 내려간다. 그리고 케빈에게 말한다. ‘친구여 그대를 남겨두고 나 홀로 갈 수가 없네. 그곳으로 함께 되돌아 가서, 자네 다시 한번 시도해 보게나.’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 도큐멘터리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 작은 공간에 누워서 곧 다가올 엄청난 성공을 상상하던 토미는 그 순간 케빈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이다. 내가 이런데 그는 또 얼마나 간절히 원할까… 그런 마음을 알아주고 또 그런 마음과 함께 하는 것이, 세상의 어떤 성공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토미는 알았고 또 실천한 것이다. 보살행을 할려면 (세상을) 알아야 하고 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않은가?
토미가 하는 말이 무었을 의미인지 케빈은 잘 안다.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자기가 다시 몇차례 실패하면 그때는 두 사람 모두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미 투자했던 시간, 돈, 희생이 너무나도 컷기에. 케빈의 마음을 편히 해주고 오로지 암벽 횡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토미는 그동안 미디어들과 정기적으로 통화를 했던 휴대전화를 ‘실수로’ 암벽 아래에 떨어트렸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는 자네와 함께 이곳에 몇날 몇주를 머물든지 상관이 없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였다. 여때까지는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였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저 아래에서 세상이 뭐라든, 이곳에서는 오직 두사람 뿐인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는 파트너 두사람 뿐. 케빈은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재시도한다. 그리고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그 횡단 코스를 성공적으로 돌파한다. 아! 감동이다. 두 위대한 인간이 만들어낸 인생 드라마…
하지만 산넘어 산이다. 정상을 동반 등정하기 위해서 케빈은, 토미가 이미 도달한 그 높이까지 최대한 빨리 (당연히) 자력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시간을 더 끌면 정상에 다다르기 전에 둘다 지쳐 쓰러진다. 이미 지쳐있다. 토미가 암벽등반가로서는 극히 드물게, 상당한 거리를 아래로 내려와 우회 통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어려운 구간에 이제 케빈이 도달하였다. 토미와 동일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시간도 없고 또 암벽을 자유등반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기보다도 더 어렵다. 이 구간은 중간에 실제로 잡을 것이 전혀 없어서, 2-3미터를 점프해서 쥐꼬리만한 바위틈을 손가락 한두개로 움켜 쥐어야 하는 곳이다. 바로 이 점프때문에 토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회 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어쩌면, 작은 바위타기에 능한 케빈은 점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방법은 없고 무조건 점프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 기적과 같은 점프를, 토미도 하지 못했던 그 점프를, 케빈은 해낸다. 이런 드라마를 거치며 또 그런 희노애락속에서 울고 웃으며, 두 사람은 결국 정상에 선다. 이래서 위대하다는 것이다. 체력이 강해서 또 기술이 좋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결정을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내리며 또 서로를 믿고 도왔던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위대하고 또 그들의 성공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새들은 그곳을 그저 날아서 올라갈테고 어쩌면 훈련된 원숭이나 다른 동물들도 그곳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늘 ‘보살행’이라고 표현하는 바로 이것은 오직 인간들만이 가능하며, 또 토미와 케빈뿐만 아니라 우리도 자신의 삶속에서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계적인 암벽등반가가 아니어도 된다. 인터뷰도 없고 또 상금도 기네스기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룬 이것을 당신과 나도 이룰 수 있다. 그대와 나도,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보살’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