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세월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고작 100년전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으며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그때 스페이스셔틀이니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이야기를 티비에서 우연히 보고 있었거든.

장수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아버지대에 처음으로 인간이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것을 목격하고서, 자기대에 화성 목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이는 인류가 바퀴를 굴리며 그 성능을 향상 시키며 살아 왔던 지난 수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과 비교하면, 실로 그 발전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술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인류가 지난 몇 천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축척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발전을 지난 100년 혹은 50년 기간에 이루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런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와 양 모두) 그리고 그 결과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 인류가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할 시간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깜작 놀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종교가, 지난 수십년 기간만을 본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또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복잡한 요리 레서피가 과연 진짜인가 알아 보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는 그 레서피로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어 보고 어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종교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유래없이 급변하는 불안하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언제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행복을 증진시키며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신도수가 감소하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리가 없겠지.

어쩌면 이토록 엄청난 속도로 나르는 (flying) 현대인들에게는, 지난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던, 바퀴 굴리는 시절의 종교는 더 이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가르침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었나? 그 해답은 스스로 알아보고 깨달아야 하지 싶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뜨는 쪽으로 자기 발끝만 보며 오래 오래 걷는다고 히말라야 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뒤늦게,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아무데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미 사라진 옆사람들을 나무래겠나 아니면 불쌍한 내 발을 혼내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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