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 자서전 ‘Becoming’ 이야기 3

큰 돈이 걸린 투견을 위해 싸움개를 전문으로 기르는 자들이, 장차 돈을 벌어 줄 미래의 챔피언 싸움개를 양성하는데 사용하는 기술을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족보가 좋은 새끼개를 골라서 은퇴한 늙은 싸움개와 장난반 연습반 싸움을 붙이면서 훈련을 시키는데, 잘 지켜 보면서 새끼개가 은퇴한 개로부터 기술은 배우되 절대 진다는 느낌이 들때까지는 놓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런 훈련을 많이 한 다음 큰 돈이 걸린 진짜 투견 대회에 참가 시키는데, 이렇게 체계적으로 훈련된 그 개는 두려움이 무었인지를 모른다고 한다. 단 한 번도 패해본 적이 없으니. 전혀 겁을 내거나 위축되지 않는 상태에서 싸움에 임한다더라. 이게 무슨 뜻일까?

미셸 오바마 여사가 자서전에서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인종차별의 ‘최대 최악의 원인이자 결과’가 미국흑인들로 하여금 ‘시작도 해보기 전에 이미 두렵고 무서워서 정신적으로 패하도록’ 미국사회가 온갖 방법으로 그들에게 패배의식 혹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얼마나 무섭고 나쁜 이야기인 줄,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 대부분은 경험 해본 적이 없을테고 또 나아가 미국의 영부인까지 왜 이런 이야기를 자서전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큰 주제로 다루고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지난번 글에 ‘남의 나라의 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감추는 중년 남자’ 언급을 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블로그에 등장했던 그 보살원장은 나의 아내다. 나는 그녀를 통하여 뉴질랜드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난 십여년간 많이 듣고 또 알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에서 서당개 노릇하느라 내가 좀 바쁘다 🙂 이를 통하여, 이 나라의 국가 1절이 왜 원주민말인 마오리어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또한 왜 국가의 가사에 내가 이전에 말했던 그런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이 나라의 공립 유치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몇 주전에 아내의 유치원이 속해 있는 지역협회에서도 90주년 기념일을 크게 축하 하였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학습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것의 배경이 되는 교육철학적인 측면도 정부와(문교부) 유치원협회들이 함께 개발하고, 실행하며 또 모니터링 한다. 원장이나 선생들 마음대로 (시끄럽다고 보드카를 몰래 먹여 ‘곤히’ 재우거나 하면서) 아무것이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유치원 교육 내용에 반영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서, 뉴질랜드 국민 다수가, 아빠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 아가에게 무었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그 원하는 내용들을, 합의된 교과와 방식 그리고 절차에 따라서 유치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아내가 유아교육과 학생으로 유아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시절부터 십수 년이 지나 큰 공립유치원 원장으로 일하는 지금까지,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또 아무것도 모르던 나 같은 사람도, 이 나라의 유치원 교육에서 원주민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를 얼마나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아이들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성들여 가르치는지, 때때로 이것 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너살된 어린 아가들에게, 일찍부터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알게하고 또 자신과 이질적인 문화를 대할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마치 밥 먹을 때마다 테이블매너를 가르치듯이 지속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장차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버스에서 들리는 외국어 소리, 식당에서 나는 이질적인 음식냄새 그리고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화의 차이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 새끼 싸움개가 패배나 두려움이 무었인지 모르면서 큰 싸움개로 자랐듯이. 비록 목적은 극단적으로 다르나 그 방법은 지혜로우며 또 결과는 같지 않을까?

그냥 개인적으로 내 생각과 비위에 맞지 않다는 것과, 저것들이, 저 인종들이, 저 무리들이 하는 짓이니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지난날 나는 사소하고 어리석은 이유들로 때로 상사나 동료들과 언쟁을 벌였던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건데 한 번도 ‘인종간의 어떤 문제’가 원인이 되었던 기억은 없다. ‘인간간의 어떤 문제로’ 부딪혔었지. 이 두가지가 매우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아마 잘 이해하고 공감 하실 것이다.

나는 이 착하고 훌륭한 국민들, 약자를 보살피고, 쉽게 믿고 또 인간적인 동정을 베풀며, 있다고 별로 거만하지 않고 또 없다고 별로 기죽어 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 피부색 언어 그리고 문화가 다른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화목과 조화를 위하여, 그 좋은 머리와 세금을 아낌없이 쓰고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감동을 느낀다. 서로에 대한 존경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구성원 상호간의 유대와 지원은 이런 과정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돈으로 살 수 없고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조차도 이나라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 되고 싶게끔 만든다. 그래서 이나라 국가를 부를때면 내가 늘 눈물을 몰래 훔치게 되는 것이다.

영어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 A great man shows his greatness by the way he treats little men (Thomas Carlyle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사회도 나라도 그의 위대함을 약자와 소수를 대접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보이지 않을까?

그대가 속해 있는 그 조직, 그 사회와 나라는 어떤 식으로 약자와 소수를 대접하는가? 당신은 그것에서 위대함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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